의존과 착취

잡기장
역시 직접 해먹지 않으면서 채식을 하기는 어렵네요. 생각같아서는 생선도 먹고 싶지 않고, 안먹을 수 있으면 안먹지만, 그래도 계속 먹게 되네요. 대표적인게 떡볶이에 딸려오는 오뎅.. "오뎅말고 떡으로 주세요"하면 왜 반가운 표정이 아닐까요. 오뎅이 더 싼 걸까? -_-

"육식의 종말"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산적한 일땜시 속도는 나지 않지만 똥 눌때나, 컴퓨터와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을때 한 두장씩이라도 읽고 있는데요, 역시 육식을 멀리하는게 옳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생태주의적" 관점이랄까? 그런게 지금 상태의 제 의식에는 더 들어와 있기에, "남겨져 버려질" 음식은, 물론 남긴 사람보고 먹으라고 해야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육식이라도 먹어야 하는 건 아닐까? 확신이 안서네요. 떡볶이의 경우도, 오뎅을 빼달라고 했지만 막 푸면서 딸려오는 오뎅 쪼가리들은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일단 지금까지는 먹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치르던", 그러나 내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행위 중 하나인 "먹음". 이걸 의식하고, 생각해보게 되니까 마치 걷다가 자기 걸음(근육과 뼈들의 움직임)에 대해 의식했을때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네요. 하여간 간단한 식사에도 얼마나 많은 과정이 있고,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연관되는 것인지.. 이런걸 거의 의식 못한채 대충 대충 때우고, 생각없이 먹어치우고 살면서 난 뭘 생각하고, 뭘 하며 살았던 걸까? 대체 무슨 대단한 일을 해왔기에 이렇게 많은 과정, 그것도 내 생명 유지를 위한 기초적인 과정을 "그냥 넘겨"올 수 있었을까?


사무실 주방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되던 안되던 간식꺼리라도 만들어 먹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몰랐는데 냄비와 후라이팬이 있고, 식용유, 간장, 소금 등도 있군요. 간단히 할 수 있는게 뭐 있을까? 인터넷을 뒤져봅니다. 먹을 생각하니 배는 고파 맘은 급해지는데, 검색해서 나오는 것들을 보니 왜케 "아름다운" 것들 뿐입니까?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게 얼릉 안찾아지네요. 라면과 콩나물국, 수제비 외에는 할 수 있는 요리가 없다보니, 조금만 복잡해보여도 겁부터 납니다. 재료 망치면 어떡하나 -_-

무작정 나왔습니다. 오늘은 추석, 시장은 문을 닫았고, 노점은 과일만 팔고 있습니다. 할 수 없이 자전거를 꺼내 약간 떨어진 곳의 대형 마트로 갑니다. 뭘 살까.. 감자라도 사서 걍 후라이팬에 튀겨 먹을까.. 이런 저런 고민하면서 마트 안을 둘러봅니다. 왠지 이런 내 모습이 재밌습니다. 즐겁습니다. 삶의 기술이랄까요, 그런 것들을 너무 몰랐고, 무관심 혹은 지나쳐 왔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럼 그 동안 내가 덕을 본 것이 얼마나 큰 것인가. 다른 방식으로 보답하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내가 의존하고, 착취한 가사노동, 가정 운영 활동이 적지 않았다는 걸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 30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형태로. 협력이라고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의존과 착취인 성별 분업구조. 내 가장 중요한 활동, 내 삶을 유지시키는 그런 활동을 남에게 맡긴채 살아온 나는,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다녀도 결국 어린애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많은 남성들도. 내 삶은 온전히 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자. 결심합니다.

마트를 돌며, 그동안 지나치던 부분들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봅니다. 가재도구, 주방도구.. 냄비는 있지만 한번씩 들었다 놔보고, 밥솥도 들여다봅니다. 그렇게 계속 돌다보니 살림이라는게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대책없이 자립하면 첨엔 돈 정말 많이 깨지겠구나.. 신경쓸게 이리 많구나. 이런 거 신경 안쓰고 살 수 있다는 건 정말 유리한 조건이로구나...

그러다보니 걷잡을 수 없이 배고파 졌습니다. 지하로 내려가 시식코너를 돌아보려고 했는데, 이론 생두부와 녹두전 말고는 죄~다 고기만 내놓고 있습니다. 윽. 게다가 생두부/녹두전 해 주시는 아주머니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침 행색도 꾀죄죄..(맹물 머리감기+자전거바람 헤어스타일, 페인트 묻은 츄리닝 반바지,..-_-) 한게 신경 쓰입니다. 괜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_-;;

아... 결국 못 참고 떡볶이 코너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오뎅 빼달라고 했는데 들은체도 안하고 많이도 퍼주십니다. "아주머니.." "예? 뭐달라고요? 드시고 가실건가요 싸가실건가요? 얼마입니다..." 그냥 먹기 시작했습니다. -_- 다 먹고 나니 배가 불러, 음식 재료를 사 직접 해먹겠다는 생각이 약해져버렸습니다. 윽,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바나나를 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왠지 커피가 땡기네요. 끊은 후 한잔도 안마셨는데. 쩝 걍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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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좀 더 일하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와보니 엄니가 고추전, 호박전.. 그리고 동그랑땡까지 해놓으셨습니다. 손님이 오고 가진 않았지만 추석이라 식구들 먹이겠다고 요리 솜씨를 발휘하셨습니다. 전 지금까지 울엄니 동그랑땡에 항상 쓰러졌습니다. 반찬을 먹을때 맛있는 것부터 밝히면서 먹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건 예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먹지 않습니다. 고기가 있으니. 콩고기가 있고 밀고기도 있다던데 그거 사 들고 와서 해달라고 해볼까요 -_- 아뇨. 직접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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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한 후로 배가 무지 고픕니다. 평소에 얼마나 고기를 많이 먹었길래 그러냐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왜그런지 모르지만 하여간 수시로 배가 고픕니다. 좋은 징조인걸까요? 집에 오자마자 밥을 퍼 먹기 시작했더니 가족들 아무도 저녁을 아직 안먹었다네요. 10신데. 그러면서 고추전, 호박전, 동태전, 깻잎전? 등을 계속 부치십니다. 그러면서 "XX네(둘째 이모)는 재료만 사 놓으면 두 딸이 다 한다더라, **네(셋째 이모)는 아들이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제사 음식 혼자 다 한다네.." 그러십니다. 움찔 -_- 심하게 부끄러워지는데 울 아빠와 형은 TV를 보며 밥만 잘 먹습니다.

"반찬 그만하시고 와서 같이 드세요" 울 아빠와 형이 하는 말입니다. 난 이말이 엄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믿고 싶지만 왠지 '그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라는 투거든요. 여러번 얘기해서 짜증난다는 투. 정말 그걸 원하면 밥상 차리는 일이라도 돕고, 요리라도 같이 해서 식사 준비가 빨리 끝나도록 하면 될거 아닙니까? 근데 그러지는 않고, 먼저 밥상에 놓인 것과 함께 밥을 먹으며 TV보고, 신문보고 딴거 하다가 꽤 먹었을때까지도 엄니가 뭔가 더 하고 계시면 그때 얘기하는 겁니다. -_- 쩝. 뭐라하고 싶긴한데 엄니가 먼저 "밥 드셔" 해놓고 계속 하시다 보니 말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일어나서 엄니 보조 역할이라도 하고 있다보니 다시 슬슬 열받습니다. 집에서 아빠와 형은 거의 말로만 때우거나 그나마도 하지 않고 받아먹는 입장이고 일은 엄니가 다하고, 난 요리를 못한다 재료 망친다는 핑계로 보조 역할만 합니다. 집에서 이 요상한 구도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빠와 엄니, 형과 나... 쳇.

문제 의식이 있어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 실천을 못하는 나도 뭐 다를게 있겠습니까. 역시 남자는 자기 앞가림 스스로 못하는 철부지 어린애들입니다. 그러니 정신 연령이 그런거겠죠. 이번 채식하는 김에 내 먹거리는 내가 만들어 먹는 것을 꼭 몸에 배어놓고 말겠습니다. 근데 잘 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식재료를 낭비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할지.. 에구,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죠? 잘 될겁니다.
그나저나 벌써 12시군요. 에혀 시간 자알간다. 추석 잘 보내시라는 메시지를 올해는 아무에게도 안 보냈습니다. 추석을 잘 보내라는 말이 왠지 잔인하게 느껴졌거던요. 누구에게 하는 말인데? 남성 어른을 위해? 그 외 사람들은 대개 그저 괴로운 기간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추석도 이제 "잘 살아남으세요" 라고 말해야 하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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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7 00:08 2006/10/0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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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 2006/10/11 09:03 URL EDIT REPLY
"괜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_-;;"
ㅋㅋㅋ 초공감
지각생 2006/10/14 20:07 URL EDIT REPLY
그런데 가면 뻔뻔해지는 줄 알았는데요 ^^ 2인조가 아닐때는 안 그런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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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풀리네

잡기장
벌써 12시가 넘었네.. 일은 잘 안풀리는데 시간은 잘도 간다.
나도 연휴중 하루정도는 쉬어야 할거 아냐? 이러다간 내일도 쉬긴 틀렸다. 그리고 토욜은 런던팀 스터디 -_- 그리고 저녁엔 서버 이전 작업.

그나마 다행인건 서버 이전 작업이 예상보다 간단히 될 수 있다는 거.

하지만 드루팔 분석, 게시판 데이터 이전 작업, 매뉴얼 만들기
그리고 6월 로마회의에서 나온 다른 용어들 해설자료
독립미디어온라인플랫폼 개발계획.
이걸 다 언제 만드나. 에혀. 문제는 일의 "양"보다는, 지금 도무지 "발동"이 안걸린다는거.

만일 내게 어떤 압박도 없다면
당장 채식요리 직접 만들어 먹는 법을 배우고, 해보고 싶다! 오늘도 결국 떡볶이로 저녁을 때운 지각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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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6 00:23 2006/10/0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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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2006/10/06 04:37 URL EDIT REPLY
실로 알흠답지 못한 상황이군요. 흠......... am 4:40
지각생 2006/10/06 11:05 URL EDIT REPLY
한국을 벗어나면 정말 신나게 놀고 올거에염 +_+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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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잡기장
어릴때 워낙 병약했고, 항상 쪼들리고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신비한거("현실"이라는 걸 뒤흔드는), 초월적인것(악순환의 고리를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로) 을 관심을 살짝 가졌더랜다. 보통 이럴때 독한 사람은 지극히 현실적이 되겠지만, 난 "물"과 같은 사람이었다 :)

중앙일보 배달로 시작해서 조선일보 6년, 한국일보 1년 배달을 하며 조선일보와 그 자매지를 통해 쇠뇌가 됐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고, 신문배달이 음식배달로 바뀌어 추가적인 쇠뇌는 멈추고, 내 스스로 그런 사상을 강화하며 살게 됐다. 그래도 원체 사랑과 관심을 받는 걸 좋아하는지라(생존을 위한 반사적인 몸부림) 공부를 제치고 일하는 시간 말고는 사람들 따라다니며 밥과 술을 얻어먹었다.

그러다, 특히 내게 밥 잘 사주는 선배 따라다니다가 "빨갱이" "불순분자" 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며 심한 충격, 그러나 바로 운동에 몸 담기에는 그 충격을 스스로 감내할 만큼 단단하지도 못했고, 몸에 배어 있는 습관(생각과 생활)들이 그걸 계속 거부하게 만들었더랜다.


공부는 싫지 않았지만 성적 따는 요령은 없었고, 꼼꼼하거나 치밀하지도 못했다. 성적이 안나오니 더 하기 싫어졌다. 그렇다고 운동 하는 사람들과 좀 같이 있어 볼라치면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방식들..(그때는 내가 뼈속 깊이 물든, 이미 그른 놈이라고 생각했다 -_- 지금은 아니지만) 결국 내가 택한 것은 알바 시간 외에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이책 저책 집히는 대로 읽는것. 알바도 야간에 할 수 있는 걸 했다. 과외는 두번 짤린 후로 더러워서 안하기로 했다. 총체적 요령 부재 - 낙천적 현실부적응자.

그곳에 틀어박힌게 98년. 이때 여기서 내가 리눅스를 알게 되고, 비로소 텅 비어 있던 삶의 "목표" 항목에 다시 "후회할 걱정 없이, 속을 걱정 없이 맘놓고 빠져들어도 될만한" 것을 채워넣은 것도 언젠가 얘기했던 것 같고..

하지만 그때 기술 서적만 본 건 아니고, 철학과 신비주의 서적도 봤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파고 들어 가며 치열히 본 게 아니라 그냥 집히는 대로 보다가 재미없으면 던져버리는 식으로 봤다. 특정한 종류만 판 것도 아니고, 동서양, 고전 근대 현대.. 철학, 그리고 UFO와 "신의 계획" 운운하는 서적들.. (디테일 내용은 기억도 안난다. -_- 그래도 지금의 내 정신 상태가 그때 읽은 것들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99년이던가 출판사에서 알바를 했는데, 동양철학의 말초적 활용 -_-이라 할 수 있는 "점보는 법", "만세력", "손금보는 법", "명당잡는 법", "관상보는 법"..  뭐 이런 책을 내는 곳이었다. 읽다보니 흥미 있으면서도 워낙 깊이 없이 얄팍한게 싫어 역시 조금 읽고는 던져버리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신비한 거,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 보다 깊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금 차원의 인류가 알고 겪고 실현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기는 있을 거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신문배달을 할때도 나는 지각생이었는데, 남들이 다 끝내고 돌아오고, 빠트린 곳 다시 넣어주러 가는 후속작업 하는 시간(신문 안 들어왔다고 바로 리포트 해주는 부지런한 할아버지들.. )에야 기어 나와 신문을 돌렸다. 일단 시작하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지만 시작할때까지는 세월아 네월아였는데.. 이거는 잠을 끊고 벌떡 일어나지 못하는 내 성격도 있겠지만, 사실 어두운 새벽 골목 구석구석이 얼마나 무서운지, 익숙했던 것들이 괴물처럼 보이고, 바람에 날리는 작은 것도 귀신이 아닐까 하고 떨게 만드는 두려운 곳이라는 걸 느껴본 사람은 알건데, 그게 너무 싫었다. 그 외에 손에 얼음이 들어 새벽 제일 추운시간을 괴로워했던 것도 있고.

그래서 타로니, 러시아 집시 카드 이런 것도 일단 신기하고, 한번씩은 대개 접해보고는 하는데, 그 결과는 대개 맘에 들지가 않는다. 물론 첨에 들을때는 "맞어, 정말 그래!"하고 감탄하게 되지만, 잠시 있다보면, "그건 이 상황이면 당연한거 아냐 -_-"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제 손금 봐주신분 감사 ^^) "서른쯤(이후)에 직업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는 말. 올해로 지금 몸담은 곳을 접고 계속 운동을 다른데서 할지 아니면 돈을 벌러 가야할지 고민하던 나는 "이야~ 딱 맞어 딱" 해버렸지만, 다음날 자고 일어나니 "아니 서른즈음에 자기 진로 다시 고민 안하는 사람이 있을까? -_-"
물론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건 알고 있지만.

운명이라는게 있을까 없을까. 있다고 하면 그건 어떤 의미일까. 이미 모든게 정해져 있다는 숙명론적인 것일까 아니면 지금 상황과 의지 그리고 여러 요소를 감안한 결과를 경험적으로 통계 내린 과학적 예측인 걸까. 그리고 운명을 점 등을 통해 "미리 안다"는게 어떤 의미일까. 영화에서 보면 보통 운명을 미리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운명에 포함되어 있는, 운명을 보고 그것을 피하려고 바꾸려고 해서 결국 그렇게 되는 이야기가 너무 많지 않은지. (강풀의 "타이밍"도 그런 얘기가 들어있고)

사실... 갑자기 이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내 운명의 상대를 몇년 후에야 만난다는 말 때문.  *-_-* 그렇다면 난 당연히 그걸 가볍게 물리쳐 줄 수 밖에 없다. 운명은 내가 만들어가는 "역사"일 뿐이고, 여러 사람과 환경과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변해가는 것이라는(그리고 세상은 점점 복잡해진다, 그러나 점술류는 여전히 단순하다) 생각을 채택할 수 밖에 없다. 설사 지나보면 "정말 그랬던 것이었구나.."라고 쓸쓸하게 말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지금의 내가 영향받을 생각 따윈 없다. 그때 가서 그렇게 말하지 뭐. 백번 양보해 그게 맞다고 하더라도, 그럼 그때 가서 운명의 사람을 만나도록 하고, 지금은 일단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 오히려 맘 편하게, 집착함 없이 임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드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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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난 운동을 시작했고, 설사 운동을 안한다고 해도 지금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기 위함일 뿐, 실험일 뿐. 지금의 관점과 이상을 포기할 맘은 없다. 적은 상근비나마 받으면서 작게 나마 나를 위해 돈을 쓸 수 있게 됐고(자전거, 기타..)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 감각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아직 충분히 체화되진 않았을지라도 무엇이 옳은지는 감을 잡고 배워가는 중이다. 바꿔가는 중이다. 아직 모든 걸 충분히 즐기며, 재밌게 하진 못하는 것 같지만, 적어도 가끔은 기차게 재밌게 살기도 하는 것 같고, 그 주기가 짧아진다는 생각, 그리고 그 파장이 커진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아.. 이 말을 왜 꺼냈더라. 그냥.. 최근 들어 내 얘기를 너무 안했다는 생각에. 윽. 난 사람들하고 대화를 더 많이 해야 된다. 빡빡하게 살다 컴퓨터만 붙잡고 살다보니 조곤조곤 얘기하는 게 아직도 익숙치가 않다. 술을 먹었거나 얘기가 한참 진행되고 나야 슬슬 말문이 열리는.. -_- 그래도, 난 전반적으로 계속 좋아지고 있다. 난 점점 더 미치도록 멋있어지고 있다. 내 바램은 내가 완전히 미쳐버리는 것, 꼭지가 완전히 돌아버리는 것. 그래서 이제 오직 하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버리는 것. 아, 역시 글의 처음과 끝이 별 연관이 없는가.. -_- 읽어주셔 감사. 가벼워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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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5 20:27 2006/10/0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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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2006/10/05 21:19 URL EDIT REPLY
좋아좋아요! 지각생은 열나 멋져! 짱! 현재에 충실한 인간만이 인생을 살.고.있.는. 거 아니겠삼?
지각생 2006/10/05 23:15 URL EDIT REPLY
감사. *^^* 하지만 부끄럽삼
re 2006/10/06 04:41 URL EDIT REPLY
만나서 조곤조곤 얘기해도 재미날 것 같다는 느낌.
글에서 그런 느낌이 풍겨져 나와요. ㅎㅎ
다 읽고나니 기분 좋아지는 글이에요~~
지각생 2006/10/06 11:06 URL EDIT REPLY
re// 어머 정말요? 느무 고맙삼. 자신이 생기네요 ^^
smilrady 2006/10/06 15:19 URL EDIT REPLY
지각생님은 글을 참 차분하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요즘 느끼는 건데,말재 보다 글재가 훨 없는 것 같아서 진보넷에서 어떻게 버텨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웃는 사진 쵝오에염...^^
지각생 2006/10/06 18:11 URL EDIT REPLY
스밀라디// 칭찬 고마워요 :) 근데 나 사실 글쓸때 좀 격앙되는데.. 정말 "차분"히 보인단 말이죠? ㅋ
ScanPlease 2006/10/07 03:37 URL EDIT REPLY
차분하지는 않지만, 잘 쓰시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ㅋㅋ
지각생 2006/10/07 19:33 URL EDIT REPLY
거듭 감사.. 근데 사실 어리둥절할때가 많삼 :)
아침 2006/10/10 22:05 URL EDIT REPLY
음... 제 손금 믿지 마세요. 저도 안믿어요. ㅋㅋ 아마도 제가 손금볼 때 처음보는거, 이 사람이 자기중심인가 타인중심인가 그런거는 정말로 맞더라구요. 디디님 말처럼요, 제 식으로 표현하자면 지금 여기에 내가 살아있는 걸 느끼는거 그게 내 운명의 주인이 되는 길이랍니다.
지각생 2006/10/14 20:01 URL EDIT REPLY
아침// 지금 이곳 런던 회의중인데, 영어를 못하다 보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없이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_- ㅋ 밑천 바닥 나지 않게 조금씩 가르쳐 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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