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서 빨리 자고 싶지만 밀린 일로 봤을때 지금 안 쓰면 또 언제 쓸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은 정말 간만에 "하고 싶은 일"에 몸을 던졌다. "정보통신활동가 워크샵".
참가하신 분들의 후기가 워크샵 홈페이지((http://ictact.net )에 올라오고 있으니 어떤 분위기였는지 궁금한 분들은 가보면 살짝 느끼실 수 있을 것.
오늘은 이번 워크샵의 특징 중 하나였던 "공유마당"에 대한 얘기만 하고 자야겠다. 공유마당은 지각생이 작년에 "바캠프(barcamp)" 행사에 참가하고 꽂혀서 언제고 꼭 하고 싶었던 방식으로 진행됐다. 선택된 전문가가 내용을 만들어 혼자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한쪽으로 전달하는 "강의"형식이 아닌,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시간을 나눠, 얘기하고 싶은 주제를 제안해서 돌아가며 함께 얘기하는 "언컨퍼런스" 방식이다.
원래는 40명 가까이 참석을 예상했지만 역시나 주말 일정이다보니 각자 이런 저런 사정들이 생겨 조금 줄어, 22명이 모였다. 지각생보다 더 지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래도 와준게 얼마나 기쁘던지) 예정보다 한시간? 정도 늦게 공유마당을 시작했다. 진행방식을 간단히 설명한 후, 벽에 붙인 큰 종이에 사람들이 포스트잇에 써 붙여 주제를 제안했다. 그렇게 모인 주제는 10가지 정도. 중복을 빼고, 빠졌다 싶은 걸 제안해서 정리한게 9주제. 2개의 세션으로 나눠 한 주제 당 20분씩 갖기로 하고 공유마당을 시작했다.
제안된 주제는 기억나는 걸 나열해보면
- 웹접근성
- 자유소프트웨어로 사무실 환경 구축하기
- 표준 문서 포맷
- 웹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면
- 사회단체 사이트/서버 운영 현황 / 비용 절감 방안
- AS기사 노릇을 벗어나려면
- 기술활동가들의 협력방안
- 정체성 : 활동? 사업?
20분은 정말 짧았다. 15분이 지나 "5분 남았습니다"라고 양쪽 세션에 알려주자, 사람들이 놀래며 "에~ 벌써?" "아직 제대로 토론도 못했는데" "그냥 쭉 가요" 하며 서둘러 얘기를 계속 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진행하지 않고 평소의 지각생이었다면 "어.. 어.. 그럼 계속 갈까요?" 이랬겠지만, 처음으로 시도하는 방식이기에 단호히 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웹접근성도, "사회단체..."도 남은 5분이 다 지났지만 얘기가 끊길 줄을 모른다. 웹접근성으로 시작한 세션의 다음 주제는 "자유소프트웨어" 였는데 자연스럽게 화제가 이어질 것 같아서 일단 넘어갔고, 다른 세션은 도저히 얘기를 끊을 수 없어 두번째 주제를 첫번째 주제와 연결시키는 편법(?)으로 계속 얘기를 진행했다. ^^
두번째 주제도 다를 게 없었다. 또다시 20분이 다 지났지만 얘기는 멈추지 않는다. 10분간 쉬기로 했지만 몇 사람 말고는 움직이지 않고 계속 얘기를 나눈다. 그 열기를 어찌 끊으랴. 알아서 하라고 하고 화장실 갔다 오고, 커피 마시고 쉬다 들어오니 그때까지도 얘기는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함을 속으로 아쉬워하며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한 세션의 이번 주제는 "AS기사 노릇을 벗어나려면"이다. 볼 것도 없이 그쪽으로 가서 함께했다. "별"님의 진행으로 시작된 이 세션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저마다 그동안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해결책을 구하는데 공감과 해소의 기쁨?으로 신나는 환호와 웃음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럴때 어떻게들 하세요?" 진지한 해법에서부터 "살짝 무시하는척 했더니 열받아서 배우더라", "칭찬해줬더니 알아서 연구해서 직접 하더라"하는 심리적 방법까지 제시되니 또다시 웃음이 터져나온다.
마지막 주제를 양쪽 세션에서 마치고 다시 10분 휴식 시간. 하지만 이번에도 쉬는 사람은 손을 꼽을 정도다. "아... 저도 괴롭습니다. 그래도.. 제발 좀 쉬세요 제발" 이렇게 말해야 되는 상황이 올 줄 예상이나 했을까? ㅋㅋ 그냥 10분을 보낸 후 "다시 하고 싶은" 주제를 추천받기 시작했다. 괜찮았고, 다시 좀 더 오래, 많은 사람들과 얘기해보고 싶은 주제를 선정하는 것이다. 통합 리바이벌 세션 주제로 가장 많이 추천된 것은 "웹의 흐름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와 "기술 활동가의 협력 방안"이다. 두개의 주제가 개별 세션에서 어떤 얘기가 오간 것인지 제안자가 살짝 정리해서 얘기하니 서로 연관성이 많은 주제고, 다른 주제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통합 리바이벌 세션은 주제를 열어놓고 진행했다. 그리고 또 다시 30분의 시간이 눈깜짝할 새에 흘러, 공유마당에 할당된 시간은 모두 끝나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사 후에는 다른 강의가 예정되어 있어 아쉽지만 공유마당은 예정대로 마쳤다. 여기까지 얘기된 내용을 시민행동 신비님이 잘 기록해 놓으셨다. http://amyjang.springnote.com/pages/1657778
오늘은 공유마당에 대한 얘기만 하고 마쳐야겠다. 내일 일찍 또 출근해서 밀린 일을 해야하니까. 그동안 이런 방식,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처음부터 나눠져 고정된, 한쪽 방향으로의 소통, 재미없고 지루한 전통적 "강의 위주의 방식"이 아닌, 탈권위적이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다양한 얘기들이 오가는 이런 방식을 그동안 늘 시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과연 그게 실제로 될까, 뭔가 미리 주제를 정하고 내용을 잘 정해서 능숙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되고, 사람들도 모이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적인", 경험에 바탕한 생각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막상 해보면 역시 절대로 안될 것은 없다.
이런 방식을 통해 좀 더 다양한 주제가 제안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내용의 말놀이가 아닌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재미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의미도 의미지만, 사실 이런 방식은 준비하는데 품도 덜 든다. 주제를 미리 정하고, 강사 섭외하고, 강의 내용 준비하고, 강의 자료집 만들고 하는게 얼마나 힘든가. 그나마 잘되면 다행인데 주제가 엇나가거나 준비가 부족하면 식은땀 쭉 흘리며 차라리 안하니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냥 참가할 사람들을 믿고, 그들 모두를 주체로 세우는, 이런 방식의 모임이 앞으로 이곳 저곳에서 시도되면 좋겠다.
캠코더로 촬영도 하고, 사진도 더 많이 찍고 그러고 싶었지만 준비하지 못한게 좀 아쉽다. 그때의 분위기가 지금까지의 말로 어느 정도 전달될 수 있을지. 그래도 한번 해봤고 만족스러웠으니 다음에 또 이 방식을 도입할 수 있을거고, 그땐 더 자신있게, 매끄럽고 풍부하게 진행할 수 있을 거다. 그때는 꼭 촬영을 해둬야지. 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