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끄적끄적, 가볍게 쓰다.

29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9/19
    뭐라도 써야지.(1)
    나은
  2. 2006/09/17
    발바리 떼거리 잔차질(3)
    나은
  3. 2006/09/15
    황당함
    나은
  4. 2006/09/08
    역시나?
    나은
  5. 2006/09/03
    2006년, TV드라마가 화두를 던진다.(1)
    나은
  6. 2006/09/03
    의문
    나은
  7. 2006/08/31
    831
    나은
  8. 2006/08/31
    어제는..
    나은
  9. 2006/08/28
    지금 이 길에 전망은 있을까
    나은
  10. 2006/08/22
    그냥
    나은

발바리 떼거리 잔차질

  • 등록일
    2006/09/17 00:33
  • 수정일
    2006/09/17 00:33

다녀오다. 9.16토. (이거다 -> http://bike.jinbo.net/uboard.asp?id=balbari&u_no=10&u= )

 

아는 사람 하나 없어 뻘쭘했으나, 좋았다.

"(평택) 강제철거 반대한다"는 깃발 달고 달리는 분도 있었고...

나도 뭐라도 준비할걸 그랬나 싶었다.

 

그리고 오늘도 타면서 분명하게 들었던 생각(맨날 하는 생각이지만). 노동해방 세상에서 인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은 자전거로.

자전거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인민들에게 용도에 맞는 자전거를 분배.

기름도 아끼고, 건강도 챙기고. 얼마나 좋냐.

 

어쨌든 석 달 만에 발바리 떼거리 잔차질까지 참가해 봤다.

처음 지음님 블로그(http://blog.jinbo.net/antiorder)에서 잔차 소개글 보고 심각하게 자전거 타는 것 고민 시작 -> 발바리(http://bike.jinbo.net) 들락 -> 자출사(http://cafe.naver.com/bikecity) 들락 -> 다른 동지들 보기에 요란떨면서 자출퇴 시작 -> 제주도 일주 -> 곧 광주 여행 계획.

참 뭐 많이도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황당함

  • 등록일
    2006/09/15 23:56
  • 수정일
    2006/09/15 23:56

한국노총 규탄집회를 마치고 일이 생겼단 얘길 듣고 잠시 들를 수 있었다.

토론회 간다는 것도 막고 경찰놈들은 난리 부르스였다.

이 나라가 참 이런 나라다.

똥배 튀어나온 형사 새끼들이 오늘따라 그리 미워보일 수 없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역시나?

  • 등록일
    2006/09/08 01:11
  • 수정일
    2006/09/08 01:11

로젤루핀님의 [KTX 여승무원 투쟁의 대안은 과연 무엇인가? _1] 에 관련된 글.

오늘 낮에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 그대로군...

나도 진보넷속보에 뜬 광고보고 한 번 가볼까 했는데. 시간이 안 맞는 바람에. 갔으면 오히려 쓸 게 많았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이념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이념의 차이를 낳는 사회적 지위의 차이가 있는 것은 불가피한 듯.

하지만 아직. "역시나"를 말하기엔 이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싸울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모 공장 여성위원회가 참 잘 됐으면 하는 바램.)

 

덧불이는 글은 웹섭하다가 찾은 글-



http://public.nodong.org/jb/bbs/view.php?id=jb_free&no=67

 

지난 주 도청 앞 공공연맹 집회가 있었지요.

뜨거운 날에 집회를 준비하랴, 또 다른 동지들을 기다리느라, 집회 진행하랴, 끝나고 저녁에 선전전까지... 다들 너무 수고하셨는데 집회 진행 속에서 나온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어서 적어 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서 나오는 운동 사회의 여성들을 소외시키는 가부장성, 또는 군대문화의 표현들에 대한 것인데요...

먼저 집회 참여자들을 소개하면서 보통 "~노조 ~지부 ~노동자 동지들"이라고 소개했는데, 유독 KTX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소개할 때는 "KTX 승무원"이라고 소개를 하는 겁니다. 소개뿐만 아니라 발언을 할 때도 그렇게 호명했고요.

"KTX 여승무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른 분들은 ~노동조합 ~지부 ~동지들 이라고 소개하는데 왜 KTX는 승무원일까? 이 집회에서도 그분들이 여성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에 소속된 승무원이어야 되나? 그분들은 이 집회에 KTX 소속 승무원이 아니라 싸우고 있는 공공연맹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로서 참여한 것일텐데 그분들을 지지하고 함께 싸우는 우리들은 그분들을 노동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들을 보는 시선이나 생각이 실제로 그렇진 않겠지만 ‘KTX 승무원’이라고 들었을 때 여성 노동자들은 아직 노동자에 포함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표현들이 그분들을 여성 노동자가 아닌 자본에 소속된 승무원으로 규정하고 있구나 하는 걱정이 ......  싸우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을 분명히 여성 노동자로 규정해야 한다고 봐요.

KTX 승무원이라는 표현 외에 또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었는데요.
공무원 노동조합을 소개할 때 ‘공공연맹의 형제’라고 한다거나(공무원노조에는 형제(남성)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점심을 먹지 못한 동지들을 위해서 점심을 ‘공수’해 온다고 한다거나(‘공수’라는 말은 군대 용어) 하는 것들이에요.

운동의 역사 속에서 함께 투쟁하는 여성들을 배제하고 소외시켜온 과정에 대해서 그간의 수많은 비판과 반성이 함께 있었고, 운동 사회 내 가부장성을 바꿔내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봐요. 또 우리 안의 비민주적인 질서에 대한 고민들도 함께 이뤄지고 있고요.

운동 사회,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여성을 배제하는 가부장성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일상 속에서 바꾸려고 하는 작은 노력들이 필요한데, 누구보다도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먼저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운동 사회 내 가부장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작은 실천들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적습니다.

개인사... 제가 이글을 적게 된 것은 어떤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공식 문서에 도청 미화 노동자들의 투쟁을 ‘도청 아줌마 문제’로 표현한 것을 보고 뜨끔한 적이 있었는데, 나조차 일상적으로 도청 미화 노동자 또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아닌 “도청 아줌마~ 도청 아줌마~” 라고 불렀던 것을 반성하고 그렇게 부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분들에게 의식적으로라도 도청 아줌마가 아닌 ‘도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라고 불러야 저 스스로도, 그리고 그분들의 자기규정도 싸우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로 확실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년, TV드라마가 화두를 던진다.

  • 등록일
    2006/09/03 00:57
  • 수정일
    2006/09/03 00:57
"당은 무오류인가요?"

드라마 전개를 죽 안 봐서 모르겠는데 김일성은 문동기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평양에서는 오철영에게 문동기를 숙청하라는 명을 내린다. 오철영도, 김해경도 묻는다. "당은 무오류인가요?"

오철영은 문동기에게 몸을 피해 소련으로 즉각 망명하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문동기는 거부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실패로 간주하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혁명가다." 마지막 기개는 지키겠다는 것이다.

오늘의 대사 하나하나들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TV드라마가 화두를 던진다.
내가 다른 일 대신 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게 참 모순적인 거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의문

  • 등록일
    2006/09/03 00:50
  • 수정일
    2006/09/03 00:50
지금의 '나'는 과연 혁명가인가.
혹은 혁명가가 과하다면 활동가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831

  • 등록일
    2006/08/31 23:59
  • 수정일
    2006/08/31 23:59
남산에 올랐다.
생각했던 것만큼은 힘들이지 않고서.
작년엔 걸어서 한 바퀴 돌았던 그 곳을
이제는 두 바퀴 타고서 한 바퀴를 돈다.
야경은 볼 만 했고,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추울 지경.
한여름에 올랐다면 더 좋은 기분이었을텐데.
작년엔 학교 창문에서 멀리나마 바라보던 남산타워. 새롭게 변했다.
역시 대기업이 마음 먹고 돈 벌려 달려들면 뭔가 다르긴 다르다.
8월 31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날은 아니지만 작년부터 '팔삼일 부동산대책'이란 말이 귀에 익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제는..

  • 등록일
    2006/08/31 23:54
  • 수정일
    2006/08/31 23:54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붙인 것 말고는 딱히 만족스런 일이 없었다.
빈둥빈둥 시간만 보내는 것 같았다. 이제 벗어나 볼까 하고 엉덩이를 드는 새에
눈에 들어온 작은 화분.
선인장 종류인 것 같다.
뾰족하게 서 있는 화분을 보면서 차라리 저것으로 콕콕 찔러주면 좋겠다 싶었다.
손을 뻗어 스윽 쓰다듬어 보았으나 가시는 없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금 이 길에 전망은 있을까

  • 등록일
    2006/08/28 23:36
  • 수정일
    2006/08/28 23:36

오랜만에 한 선배를 만났다.

역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맞는지,

벌이가 생기니까 후원도 흔쾌히.

 

그러던 중 문득 물었다.

"전망은 있니?"

 

둘 다 뒷걸음질 치던 시대에 운동을 시작했고,

먼저 접은 이가 물었다.

 

뒷걸음질 연속이라, 전망이 환할 리 없다.

그래도 이런 질문, 참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도통 생각해 보지 않은 주제인데 말이다.

 

솔직하게 답한다.

다른 게 안 땡기고 이게 제일 땡긴다고.

눈에 잡히는 꼬라지들 때문에 다른 일을 하는 건 아직 회의스럽다고.

절대 멋있는 대답은 아니다.

 

참 거시기 하다. 포지티브하게 말 못하시고 네거티브하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다니 흠...

선배 만나러 가는 길에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았다. 100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언덕길.

하지만 꽤 심한 경사라 가장 가벼운 페달로 놓아도 허리가 끊어질 것 마냥 힘들었다.

그냥 내려서 끌고 올라갈까 하는 생각도 문득문득. 그래도 쫀심이 있어서인지 두 번 중간에 쉬었다가 끝내 올랐다.

언덕이 얼마나 더 길게 있을지, 저 위에까지 올라서 뭘 어쩌자는 건지, 올라가면 그 땐 어떡할건지. 아무런 생각도 없었지만-

 

운동도 그렇게 가나 보다.

빈둥빈둥 혹은 건들건들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짧디 짧은 시야로... 제한시간을 걸어놓고 하나하나 맞춰 나가니 재미가 없다. 그리고 제한시간 이후의 시간은 너무 까마득하다. 눈에 들어오는게 아무 것도 없고, 지금 난 그 미래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런 와중에 나는 전망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차라리 반갑고 고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냥

  • 등록일
    2006/08/22 00:11
  • 수정일
    2006/08/22 00:11

*

끼적끼적 남겨 봄.

이제 열대야는 없나보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자면 아침에 쌀쌀함에 이불을 폭 뒤집어 쓰게 된다.

 

 

*

일단, 책을 눈앞에 두고 보니 좋긴 하다.

고생했던 과정도,

어딘가로 보내면서 밀려올 고민도 다 뒤로 넘기고

일단 눈 앞에, 손 안에 두고 있으니 참 좋더라-

 

 

*

몸무게가 많이, 꽤 줄었다. 몇 년 만인지.

재미있지만 피곤할 때도 있다.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술을 거의 안 먹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만큼 멀어지고 있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

도서관에 한 번 갈 수 있음 좋겠다.

훠이훠이 뒤적이다가 재미있는 책 하나 발견했으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내가 결혼했다.

  • 등록일
    2006/08/13 21:33
  • 수정일
    2006/08/13 21:33

이 소설은 일단, 재미있다.
그러나 재미만으로는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아직까지 이 이야기만큼 사랑, 연애, 결혼, 가족에 대해 쿨하게, 신선하게 생각하게 해 준 것이 없었다.

*
어쩌면 과감하게 두 남자와 결혼을 선택한 이 여자야말로 혁명적일지도 모르겠다.(물론 그 자신은 혁명가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지금까지 술자리나 잡담판에서 "나중에 사유재산제도가 사라지고 나면,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 나오는 집단혼의 형태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때야 진정한 자유로운 결합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현실로 생각하진 않았다. 일부일처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에 대해 비난하면서도 정작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랑, 연애 등의 공식에 가두어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도 그랬고. 그러다 보니 '감정의 낭비(질투심, 자괴감 등등)'와 '시간의 허비(에잇! 아무것도 하기싫어!)', '돈 낭비(퍼마신 술값 등)'가 걷잡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닐런지.....

*
폴리피델리티 : 가족 확대를 통해 친밀감을 강화하는 것이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집단 결혼과 공동 양육, 완전한 재산 공유, 그리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겠다는 발상. "폴리피델리티는 자발적으로 함께 만드는 평등한 결혼이다. 그것은 개인적 선택, 자발적인 협동, 건강한 가족 생활, 그리고 달콤한 낭만적 사랑이 한데 어우러진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사랑이다. 폴리피델리티는 성적 평등, 소유욕 없는 관계, 그리고 배우자 간의 친밀성과 진정한 사랑을 모두 아우른다."

나는 이 대목을 보면서 이런 생활이야말로 꼬뮌의 단면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오바인가?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

둘만의 사랑에서 다자간 관계로 확장될 때 생기는 성적 질투심에 대한 대안은? -> 컴퍼션compersion. 성적 질투심과 반대되는 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생기는 따스한 감정.

호오. 이런 기똥찬 생각을 하다니.
작가는 은근히 자료분석을 꽤 한 모양이다. 뒤에 참고자료 목록까지 주욱 나열해 놓은 것을 보면. 인터뷰와는 달리 그냥 소설로만 읽히길 바란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면 단순히 서비스용일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의 집단혼 유지기간에 대한 연구를 인용한 것을 보면 5년 이상 지속된 관계는 매우 작은 비율이었다고 한다. 이건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일부일처제를 공식화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둘러싸인 섬일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
지금까지 결혼, 가족 등에 대해서는 이렇게만 생각했다.
가부장적 결혼과 가족제도 등등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전제해도 가장 확고한 결론은 "활동가가 기존의 결혼/가족제도에 편입되면 운동하는 데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결혼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물론, 같이 사는 건 해야지), '애는 절대 낳지 말아야지!'(공동책임 하에 피임을 철저히!) 정도다.
그런데 활동가들만으로 혁명을 할 수도, 세상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낀다. 그건 이데올로기의 측면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긍정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터. 그걸 강요로 바꿀 수는 없을 게다. 남은 것은 끊임없는 설득과 대안을 꾸준히 연구하고 함께 그려보는 것일 뿐.
그래서 이 소설은 훌륭한 상상의 나래라고 본다.

*
어쨌든, 말랑말랑한 사고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연애 과정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리고 어떤 실천을 하려고 했을까.

자신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는 얘기는 사실 자만심의 표현이다.
외부관찰자의 지적이 오히려 더 정확할 때가 많다.
'애정결핍, 욕구불만' 98% 정도 옳다고 생각한다. 잔차질만으로 도무지 해소가 안되는 게 사실이다.

근데 이건 단지 연애를 못하고 있어서 생기는 불만은 아니다.
총체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더 정확히 말하면 현재 (내가 생각하기에) 인생을 걸고 있는 운동 속에서의 동지적 관계에 대한 욕구불만이 겹쳐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현재 같이 하고 있지 못한 수많은 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를 생각하거나
까닭없이 완전히 연락을 두절한 이들을 떠올리며 신경질을 부리는(꼭 그래야만 하는걸까? 서로 이해와 용서의 시간을 가지면 안될까?).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