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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2/25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 이외수
    나은
  2. 2005/12/24
    (2)
    나은
  3. 2005/12/15
    도청 수사 발표
    나은
  4. 2005/12/12
    나의 초상(3)
    나은
  5. 2005/12/12
    매듭
    나은
  6. 2005/12/12
    회의 잘 하세요(1)
    나은
  7. 2005/12/12
    연상(聯想)(2)
    나은
  8. 2005/12/10
    ...(2)
    나은
  9. 2005/12/05
    겨울을 느끼면서.
    나은
  10. 2005/12/04
    그의 뒷모습(5)
    나은

  • 등록일
    2005/12/24 13:34
  • 수정일
    2005/12/24 13:34

#

이왕 꾸는 꿈, 즐겁고 행복한 꿈을 꾸었으면 좋겠는데-

무언가 답답하고, 막히고, 걸리고, 꼬이고, 짓눌리고 뭐 이런 거 밖에 없다.

미치겠네.

 

 

#

9시 뉴스보다가 기자 이름이 학창시절 동창이랑 비슷해서 메일을 보내 보니 답장이 왔다.

맞네. 나도 한 때는 기자가 되려고 했었는데 네가 되었구나.

만날 기회가 될란가. 옛날 친구들과 거의 연락하지 않는다.

요즘 만나면 누구는 어디 취직했고, 결혼을 하고, 무슨 일을 하고 그런 얘길 듣곤 한다.

어떤 식으로든 다들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은데 나는 뭘하고 있는지 싶기도 하고.

자기만의 혹은 자기 가정만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안정적인 삶을 가질 수 있는 그네들의 여건이 조금은 부러운 느낌도 들고.

옛 친구들 만나면 자신있게 나는 뭘 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쩝. 이렇게 패배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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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수사 발표

  • 등록일
    2005/12/15 10:49
  • 수정일
    2005/12/15 10:49

동아일보 사설 제목이

"두 '민주화 정권' 가면 벗긴 도청 수사"다.

 

푸하하. 이만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실체를 까발린 제목이 또 어딨겠냔 말이다.

동아일보 사설은 YS와 DJ더러 국민 앞에 사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1800명 정도가 주요 도청대상이었다고 한다.

정치인이 55%고, 노조간부가 5%였다 하니 대략 90명 정도가 되는군.

 

예전에 핸드폰 도청 가능하냐 논란이 일었을때 기술적으로 불가하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그때 잠깐 믿었던 내가 바보였지.

 

이런 얘기들 바로바로 대자보 내고, 얘기 붙이고 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지 않은가.

그나마 만나는 다른 사람들과도 활발히 대화하기를 즐기지 않는 것 아닌가.

미리 의식적으로 무슨 얘기를 해야겠다 마음먹지 않는 이상 얘기 잘 안 하는게 나의 스타일인데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해 볼 만한 대화의 소재들, 메모해 놓는 습관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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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상

  • 등록일
    2005/12/12 23:45
  • 수정일
    2005/12/12 23:45

한 동지가 논의 도중 그려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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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 등록일
    2005/12/12 18:48
  • 수정일
    2005/12/12 18:48

알렉산더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지.

 

풀 수 없는 것이라면,

단칼에 잘라버릴 것.

 

For me.

For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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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잘 하세요

  • 등록일
    2005/12/12 00:55
  • 수정일
    2005/12/12 00:55

회의(會議) 잘 하세요~

회의(懷疑)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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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聯想)

  • 등록일
    2005/12/12 00:52
  • 수정일
    2005/12/12 00:52

 

  홍범표 사장은 미스 방의 얼굴을 비스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급사로 들어왔던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세련되어졌지만 역시 나이는 속일 수가 없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린 나이에 한 집안의 생계를 맡아야 했던 피곤함이 무겁게 깔려 있다. 홍범표 사장은 그런 그녀에게 약간의 연민을 느낀다. 돈을 아끼려고 점심을 굶던 그녀를 데리고 나가 설렁탕을 사주었을 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설렁탕 뚝배기에 얼굴을 처박고는 꾸역꾸역 밥알을 씹던 어리던 그녀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게 벌써 십몇년 전의 일이 아니던가.

 

[공지영, 잃어버린 보석, 1990]

 

밥먹다가 문득 떠올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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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5/12/10 11:32
  • 수정일
    2005/12/10 11:32

안그래도, 조금씩 커져 가는 마음 씀씀이를 확인하면서

욕심이 커져 간다는 경계심이 들었다. '그래선 안 돼..... 정말?.... 왜?.... 결국....'

그런데 그토록 멍청하게 굴다니-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는 욕심 좀 부리면 안 되나?

욕심이 없는 게 더 문제 아닌가?

 

문제는 문제다. 06년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스케치를 위해 연필을 쥘 의지조차 나질 않는다.

글 하나 써서 보냈더니 되돌아온 답장이 나를 더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래, 너의 능력은 거기까지인가보다.

이렇게 답장을 보내줄까보다.

그래. 이게 지금 현실이고 수준이라고.

 

연말이라고 도심은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되어 가는데,

그리고 은근슬쩍 한 해를 정리하라고 강요하는데,

올 한 해를 시작하면서 소망하지 않았던 결론들이 자꾸 다가오는 것 같아서 답답하기만 할 뿐.

신음을 하든, 고함을 치든 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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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느끼면서.

  • 등록일
    2005/12/05 13:48
  • 수정일
    2005/12/05 13:48


나뭇가지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기차가 눈길을 달릴 때면 양 옆으로 하얀 눈보라가 날린다...

 

 


얼마 전에도 난 너를 찍었었지. 손가락으로 만져보니 넌 꽁꽁 얼어 있더구나. 그대로-

 

 

 

며칠 전에 물대포를 맞을 때만 해도 조금 춥다는 생각 말고, 딱히 겨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하얗게 쌓인 눈과 어느새 질퍽이는 거리를 걷다보면 갑자기 시간이 너무나 많이 흘러버린 것 같은 느낌에 너무 생소하기만 하다. 어쨌거나 12월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는데 나는 끈을 제대로 말아쥐지 못하고 놓쳐버린 느낌이다. 요 며칠 당장 내 눈 앞에 놓인 몇 달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를 두고 씨름을 했다. 너무나 의외로 일은 풀려 버리고, 그 고민은 내년 봄으로 연기되어 버렸지만, 어느새 나는 내 주변의 6개월, 1년밖에 보지 못하고, 이른바 정세라는 것에 대한 감은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음을, 우리에게는 최소 5~6년을 내다보는 시야가 필요하지만, 나 자신을 개인적 조건과 한계 속에 가두어 두고 눈을 들어 보기를 거부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솔직히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보다는 이왕 이렇게 된거 적당히 빨리 마무리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있었음을 부인하진 않을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 유물론적 정세분석이라는 이름 하에 나는 그 때 가서 볼 일이라고 미루어 두지는 않았는지, 그 속에서 수동성을 강화시켜 오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2005년은 기껏해야 며칠 남지 않았다. 예전에 내가 자평했던 것처럼 창조적인 인간으로, 활발했던 노력가로, 문득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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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뒷모습

  • 등록일
    2005/12/04 00:37
  • 수정일
    2005/12/04 00:37

휴가 하루 전날 전화가 왔었고, 다음 날 오전 11시에 녀석은 도착했다. 전날 아버지 선물 사가지고 일찍 들어가야겠다는 소리에 점심이나 먹고 보내면 되겠거니 하며 시작한 술자리는 거의 6시간 동안 이어졌다. 탕수육에 빼갈, 점심때 연 맥주집이 없으니 커피숖에서 병맥주. 그리고 나서는 삼겹살을 먹어야 한다고 우겨서 소주까지. 술이 오르는지 먼저 군대에 그렇게 가버려서 미안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은 북한 인민들 문제를 가지고 짧은 입씨름을 해대고, 원래 하려던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하루를 이대로 공치는구나 싶어서 은근슬쩍 짜증이 돌기 시작했다. 사실 술이 취할 대로 취했다. 새로 올 사람은 없었다. 갑작스런 방문에 한낮에 달려올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니까. 한편으로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꼬박꼬박 제일 먼저 만나고 챙겨주는 사람은 나다...

석 달 후면, 지겹게 볼 거라고. 이제 그만 들어가자고 힘주어 말하고선 일어섰다. 지하철역까지 바래다 주었다.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엔 부대에서 읽었던 극단의 시대며, 부하린의 글이며, 철학책이며 들어있는 쇼핑백을 들고선 술에 취해 휘청휘청 걷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또 가슴을 쳤다. 안쓰러웠다.

녀석을 보낼 때면, 항상 그랬다. 가까운 사람과 헤어질 때, 꼭 한번씩 뒤돌아보는 습관이 있는 나는 아마 거의 매번 그랬지 싶다. 왜 그럴까. 내가 교만한 것일까. 아무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녀석이기 때문에 안쓰러운 것인지. 아니면, 군복 때문에 안쓰러운 것인지. 둘 다인지. 정리안되는 생각 속에 욕지거리가 나왔다. 끌려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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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 등록일
    2005/12/02 10:21
  • 수정일
    2005/12/02 10:21

며칠 전에 한밤 중에 극장 가서 영화를 보았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받아든 할인권을 꼭 쓰고야 말겠다는 불같은 의지 때문이었지. 동생이 간절하게 데려가 달라는 눈치여서 같이 갔다. "나의 결혼원정기" 어떤 이가 봤다고 하길래 그게 생각나서였다. 최근에 여성운동 내에서 이주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데, 국제결혼이 주요한 통로가 되고 있어 사실 조금 걱정은 되었다. 안타까운 현실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상업영화란 그렇다. 주체사상을 버리지 않고 60년을 감옥에서 버틴 양심수 이야기를 찍은 "선택"을 극장에서 보고 나오면서, 이런 것도 극장에서 틀게 해 주는구나 싶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거대한 포섭력에 압도당했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재미있었고, 감동적이라고 표현하긴 그렇지만 내가 좋아할 만한 그런 영화였다. 다만, 신기하게도 나는 영화보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다는 점이 좀 쑥스러울 뿐.

 

.확실히 정재영의 연기는 볼 만하다. 정재영이 내 기억에 깊이 남았던 것은 "아는 여자"에서였다.

 

.수애의 이북 말투도 인상깊었다.

 

.영화 보는 내내 간간히 내일 총파업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싸움은 잘 될까. 내일부터 싸우는데 영화보고 있어도 되나. 확실히 자본주의 대중문화는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는가란 생각.

 

.우즈베키스탄의 풍경. 그 이국적인 풍경들이 신선했다. 오랜만에 보는 진득한 농촌풍경도 그렇고. 사실 나는 우즈베키스탄이길래 동남아 시골 풍경을 떠올렸었는데, 그게 아니더군.

 

.극중에서 수애의 신분은 탈북자다. 사실 영화보면서 러브스토리보다 내가 더 신경썼던 건 이 부분이다. 마침 며칠 전에 친구녀석과 북한 핵 문제를 지지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술취한 상태에서 말도 안되게 한 5분 정도 입씨름을 했었다. 그리고는 영화 속에서 신분을 위장한 채 한국으로 가기 위해 기를 쓰는 탈북자의 모습을 보며 도대체 저 이북에 대해서 어떤 입장과 실천을 해야 할 지가 고민스러웠다. 솔직히 고민이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생각해 봐야겠다.

 

.주인공이 남성들이다 보니 남성중심적인 시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맨 끝에 수애는 결국 한국으로 들어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만택에게 국정원 직원들이 찾아온다. 검은 승용차에 검은 양복들이 농촌마을에 도착하는 장면을 본 순간, 나는 저 새끼들이 분명히 외국에서 북한 사람과 접촉했다고 조사하러 나왔을테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실제로는 수애가 탈북했으니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전해주러 왔던 것 같다) 국가기관에 대한 뿌리깊은 적개심. 당연하다.

 

.그리고 몇 가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안난다.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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