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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0/15
    엉덩이가 차가웠다.
    나은
  2. 2004/10/14
    할 게 참 많다.
    나은
  3. 2004/10/07
    데칼코마니인 집회 문화?(1)
    나은
  4. 2004/10/06
    노동자권력
    나은
  5. 2004/10/05
    끙. 생산의 압박...(2)
    나은
  6. 2004/10/02
    성별 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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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4/10/01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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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1)
    나은
  9. 2004/09/25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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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4/09/25
    한숨소리 더 커지는 중소영세 노동자들의 사연
    나은

엉덩이가 차가웠다.

  • 등록일
    2004/10/15 00:45
  • 수정일
    2004/10/15 00:45

2004. 10. 14 명동성당 들머리.

매주 목요일 7시마다 열리는 이주농성투쟁단 집중집회에 갔다.

추석 연휴 지나고 처음이었다. 6시 55분에 시작해서, 약 30여분간 이주 동지들의 발언과 연대온 동지들의 발언을 듣고, 노래 몇 곡 부르고 마무리되었다.

 

농성 335일째 되는 날이었다.

 

처음 집회 시작할 땐 정말 적은 수의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30명이나 되었을까?

다행히 집회 중간중간 조금씩 조금씩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이더니 그나마 끝날 때는 그래도 조금은 북적대는 분위기가 나더라.

 

이제 한 달만 있으면 1년. 그리고, 아마 그 때 투쟁을 외쳐왔던 그 텐트는 접힐 지도 모르겠다.

1년의 이주노동자 농성 투쟁이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토록 열심히 노동자는 하나다! 한국노동자 이주노동자 단결 투쟁!을 외쳐 왔다. 그러나 사실 쉽지 않았다. 파견법 개악 저지를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도 나서서 총파업 투쟁을 해야 한다는 선동들이 필요한 지금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1년 전에 농성을 시작할 때 같은 느낌이 나서 조금 뜨아하다는 이주 동지의 농담 아닌 농담을 듣고 보니, 문득 앉아 있던 들머리의 땅바닥이 참 차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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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게 참 많다.

  • 등록일
    2004/10/14 13:48
  • 수정일
    2004/10/14 13:48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맴돌던 고민들을 정리해야 한다.

공동전선에 대한 얘기도 그렇고 그 속에서 전노투에 대한 입장도 필요하고.

한편으로는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 구호에 대한 판단도.

여하튼 종합적으로 지금 이 시기에 무엇을 할 것인가?

 

반성폭력 운동 연구 학습도 해야 하고,

요즘 좌파 학생운동 입장도 다시 분석해 봐야 할 테고.

유로코뮤니즘 관련한 책도 마저 다 읽어야 한다.

얇아 보여서 덜컥 잡아서 재밌다 싶었는데 왜 이렇게 재미없어졌을까.

 

블로그도 좀 꾸며봐야 할텐데. 탑이미지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데 엄두가 잘 안 난다.

에고 졸리기만 졸립고 할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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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코마니인 집회 문화?

  • 등록일
    2004/10/07 12:56
  • 수정일
    2004/10/07 12:56

* 이 글은 핀트님의 [나를 우리를 현재를 돌아보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연속되는 트랙백을 보면서 우리의 집회 문화를 되돌아 본다. 사실 처음은 아니다. 집회는 과연 참석한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 소통하교 교류하는 공간이 되고 있는가. 현실의 집회는 과연 그러한가? 으레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민중의례와 사회자의 발언, 가끔씩 부르는 투쟁가와 대회사, 투쟁사, 연대사 그리고 투쟁결의문 낭독까지 체계적인 순서로 정형화된 형식 속에서 투쟁의 의미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

 

특히 민주노총 주최의 노동자 집회에서 이런 것들을 많이 느낀다. 집회 때는 연사들이 나와서 하는 소리 가만히 듣고 있다가 행진이라도 시작해야 좀 숨통을 트면서 우리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현실. 철저하게 짜여진, 혹은 통제된 순서 속에서 다양한 발언과 문제제기 - 특히나 전투적인 입장이나 아래로부터의 문제제기, 성폭력에 대한 지적과 시정요구들! - 들은 입막음 당하기 십상이다. 이쯤되면 확실히 뭔가 뒤바뀌었다. 사람이 '동원'되는 집회는 우리에게 필요 없지 않은가.

 

나 역시도 직접 집회를 기획해 보았고 사회를 보기도 했지만, 막상 집회 발언 배치와 사회자 발언을 통해 집회 참가 대중에게 내용을 선동하는데만 골몰했지, 참가 대중으로부터의 발언을 이끌어 내면서 후배들에게 집회라는 공간에 대해 설명했던 - 투쟁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면서 결의를 모아나가고 직접 싸우는 장 - 그 모습을 이끌어 내는 고민은 정말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유연하고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일단은 마이크를 개방해야 한다. 지정된 연사들만이 아니라 발언을 하려는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작년 시청 앞의 노동자대회 때, 미리 지정된 것이긴 했지만, 모든 노동자들의 귀를 끌어당긴 것은 민주노총 위원장의 발언도 아니요, 민노당 대표의 발언도 아니요, 투쟁하는 현장조합원들의 발언이었다. 그리고, 가끔 집회 때 검은 옷을 입은 분들이 분필로 땅바닥에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적는 걸 보았는데 그것도 참 좋다. 아예 집회하고 행진하지 말고, 행진을 먼저 하고 정리집회를 하는 것은 어떨까? 단숨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겠지만, 이런 고민들이 우리를 관성으로부터 끄집어 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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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권력

  • 등록일
    2004/10/06 12:57
  • 수정일
    2004/10/06 12:57

* 이 글은 돕헤드님의 [모골이 송연해지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현실은 힘의 관계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어떤 투쟁이든지, 그렇다. 더 나아가 사회 자체를 바꾸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 권력투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물리적으로 탄압하는 자본가들의 국가권력에 맞서기 위해서 대안은 노동자권력일 따름이다.

 

그러나, 노동자권력의 의미를 자본가권력의 의미와 동일하게 이해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청와대의 주인이 노동자로 바뀐다고, 국회의사당의 다수를 노동자가 차지하고, 국정원장에 노동운동가 출신이 취임한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자권력은 아닌 것이다.

 

시청 앞에서 열린 보수층 집회를 보면서 나 역시 전율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동원된 대중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한다. (혹시 아니라면 지적해 주시길) 반면에, 우리의 운동은 다르다. 자발성과 해방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바탕이 된 운동만이 진정한 운동이다.

 

그래서 저들과 다르며, 달라야 한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특히나 조합주의의식과 가부장성을 넘어서 세계의 모든 억압받던 이들에게는 열려 있고, 지금까지 억압해 오던 자들에게는 날카로운, 그런 권력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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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생산의 압박...

  • 등록일
    2004/10/05 01:30
  • 수정일
    2004/10/05 01:30

처음엔 별 생각없이 블로그를 개설했다가, 매일같이 진보넷 블로그에 들어와 보면서 블로그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 지가 머리속에 자리잡았다. 개인적인 공간임과 더불어서 모두의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것. 그게 바로 블로그의 묘미고 매력인 것 같다. 그 때문에 특히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이들에게는 자기의 실천과 생각을 퍼뜨리는데 얼마나 용이하겠는가. 요즘은 틈만 나면 주변 동지들에게 블로그 좀 만들어 보라고 권하고 다닌다.

 

한편, 매일 자가증식 블로거진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생명력있는 블로그는 필히 자가 생산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짤막한 감정의 나열, 혹은 퍼옴과 스크랩 위주로는 좀 곤란하다는 것이지. 특히 나에게는. 내가 온라인을 활용하는 스타일 자체가 어떤 시기에는 온라인 글쓰기에 굉장히 열중하지만 어떤 때는 그저 내버려두기도 하고, 이게 반복되는 형상이다. 그리고 사실 요즘이 글쓰기에 좀 소홀한 시점인 것 같다. 그래서 웬지 모르게 밀려오는 듯한 생산의 압박... 과거에 다음 까페도 만들어 봤고, 이른바 싸이질도 해 봤지만 모두 오래 가지 못하고 버려졌다. 블로그도 은근슬쩍 그렇게 된다면 참 끔찍하다.

 

내일부턴 맘 잡고 뭔가 좀 써 봐야겠다.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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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분업

  • 등록일
    2004/10/02 00:04
  • 수정일
    2004/10/02 00:04

선봉대의 구성과 가두투쟁

대자보와 플랜카드를 포함하는 선전작업

후배 챙기기

뒷풀이 자리 분위기 조성

과일 깎기

...

 

운동권 내에서 보이는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토론했다.

단숨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감해야 한다.

부여잡아야 한다.

진정, 해방을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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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 등록일
    2004/10/01 00:40
  • 수정일
    2004/10/01 00:40

* 이 글은 후지이님의 [오늘 난 자유롭게 책임을 선택한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가끔 학교에 가 보면 지나다가 후배들을 만나곤 한다.

반갑게 인사하고.

걔 중엔 같이 학생회를 하자고 열심히도 매달렸던 이도 있고,

집회에 나가자고 무던히 붙잡았던 이도 있고,

학회에서 세미나 한 번 해 보자고 열심히 침튀겼던 이도 있고.

 

때로는 5초 안에 손 흔들고 살짝 웃으며 "안녕" 한마디로,

때로는 "잘 지내냐"라는 한 마디를 덧붙이고,

때로는 "언제가 졸업이냐, 복학이냐, 휴학이냐, ..." 잡다한 것들을 약간 덧붙이고는 "다음에 보자"로 마무리 한다.

 

지나치면서 항상 던져보는 질문 하나.

과연 그/녀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그/녀들은 이렇게 지나친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쨌든 분명한 것은, 만약 내가 변한다면

분명 그/녀들은 확인하고야 말리라. '운동'이라는 길에는 전망이 없다는 것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한편으로, 추석 연휴 탓에 꽤 오래 만나지 못한 후배 동지들을 생각하며,

그 동지들에게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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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등록일
    2004/09/30 09:46
  • 수정일
    2004/09/30 09:46

시골에 다녀왔다.

연세90을 바라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버지 10남매 형제 중 몇과 숙모들이 그렇게 모였다.

명절 때마다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린 말싸움 한 판.

구순이 되어서도 끝까지 농사 짓겠다는 고집불통 할아버지와,

이제는 좀 편히 살자는 할머니의 하소연과,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그렇게 하듯

집에서 숙모들에게 똑같이 하는,

성질머리가 똑같은 아들들의 고함과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숙모들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오고가는 차안 라디오에서,

TV프로그램 속에서,

수십 번도 더 나왔던 그 말.

 

할아버지를 두고 한 숙모가 나지막히 했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남자들에게) 여자들의 일은 일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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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 등록일
    2004/09/25 11:47
  • 수정일
    2004/09/25 11:47

퍼온 글입니다.

예전 한국에서의 프로야구 선수노조 생각나더군요.

그때 강병규 참 멋있었는데..

 

http://blog.jinbo.net/sabotage/?pid=12

 

 

오래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빴습니다. 그리고 어제 큰 마음먹고 써 놓은 글이 업로드 과정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컴퓨터의 신뢰도(통계적 의미에서)가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했던 제 잘못이었습니다. 카피라도 하나 해 놓는건데.

 

오늘의 주제는 프로야구입니다.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은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제게 매우 중요한 관심의 대상입니다. 물론 학술적 차원의 관심입니다. 이들 세나라에서 최근에 공히 화제가 되는 뉴스의 소스가 프로야구입니다. 물론 컨텐츠는 모두 다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구상에서 프로야구 즉, 사업으로서의 야구, 직업으로서의 야구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이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미국과 일본의 경우 프로야구의 경제효과, 즉 해당 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 또한 매우 클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그에 비하면 좀 규모가 작고 장사도 잘 안되는 분위기죠.

 

최근 미국 프로야구계의 스포트라이티는 단연 스즈키 이치로 선수입니다. 2000년 11월, 일본의 유명한 게임기 제조업체 닌텐도(게임보이 제조업체)가 대주주로 있는 시애틀 마리너즈에 입단했습니다. 물론 일본에(오릭스) 있을 때부터 타격에 관련한 이러저러한 기록들을 세운터라 약간의 기대는 있었죠. 헌데 이친구 데뷔 첫해에 타율 3할 5푼으로 사상 두번째 메이저리그 신인왕과 정규시즌 엠브이피를 동시에 석권합니다. 미국과 일본의 프로야구 신자들을 놀라게 했죠.

아 그런데 이 선수 올해 미국 프로야구사에 또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무려 80여년을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한시즌 최다안타 기록입니다. 최근 두 경기에서만 9개의 안타를 몰아쳐 1920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즈의 조지 시슬러가 세운 257개의 안타에 불과 10개차로 뒤진 247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즌 잔여 경기가 10경기니 한 경기당 1개씩 치면 타이가 되고 한 경기에서만 두개 이상을 치면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셈입니다.   

만일 이치로가 미국 프로야구계의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고 앵글로 색슨이었다면 지금쯤 전국 맥도날드 샾의 지붕위에 예의 배트를 곳추세워 투수를 노려보는 그의 사진이 풍선 따위에 매달려 이치버거나 빅이치 등을 광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대단한 선수입니다. 

짧은 스윙 동안에 배트의 궤적을 3번이나 바꿀 수 있는 타구능력과 빠른발은 그의 천재성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일본인 특유의 성실함과 승부근성이 재능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습니다. 이 선수 1980년 88올림픽 개최지를 둘러싸고 스위스 바덴바덴에서 서울과 경쟁했던 나고야 출신입니다. 도요타 자동차와 함께 나고야가 만들어 낸 세계적 상품입니다.

 

다음은 한국의 프로야구 입니다. 영어에서 스캔들이라는 말로 정의하는 일련의 사태나 현상을 일본에서는 불상사(후쇼우지)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불상사라는 말은 우리에게도 익숙하죠? 아무튼 이 불상사 범주에 들어갈만한 큰 일이 한국의 프로야구계를 강타했습니다. 무려 50여명의 선수들이 자신들의 신체를 조작해 병역을 면제받은 사건이 터진겁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국민개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지구상 몇 안되는 나라이고 그 군역의 이행 여부는 법률적 의무를 넘어서는 윤리와 정서 차원의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유력했던 대통령 후보가 두번씩이나 아들 군대문제 때문에 낙마를 했으니 관련한 분위기를 짐작할만 하죠. [신성한 병역]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시민사회 일반의 생활세계와 군대사회 생활의 사회적 거리를 짐작할 수 있으며 그 거리를 단절 고립 부자유 등이 메우고 있는 것입니다. 술먹 먹었다하면 예비군들 입에서 나오는 군대 이야기의 배후에 그러한 단절과 고립의 트라우마가 내재 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단절과 고립이 가져올 경제적 손실, 신체의 조작을 통한 역의 면제와 경제활동의 지속, 들킬 경우에 지불해야 할 비용 등이 하나의 함수를 만든 셈인데 그 결과는 네가티브가 되었습니다. 병역관련 불상사만 뉴스로 되면 금새 비등하는 우리네 정서 또한 당자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죠. 관련 혐의자 50여명의 경기 출장을 정지시킨 프로야구 위원회의 결정 또한 사회적 압력에 기인한 바 큽니다. 아무튼 연예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꽤 큰 규모가 될 이번 사태를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해결하는지 두고 볼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프로야구입니다. 바로 어제 잠정적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만 최근 일본 사회는 개시 70년만에 처음 일어났던 선수노동조합(일본프로야구 선수회)의 파업으로 한차례 대사를 치루었습니다.

첫번째, 최근 경영란에 빠진 오사카의 긴테츠 버팔로가 인근의 오릭스와 합병을 발표했습니다. 두 사업체가 하나로 합치는 구조조정(리스토라)을 할 경우 불보듯 뻔한 것은 감원입니다. 리던던스를 정리해고 하는거죠. 게다가 선수들간 생존을 둘러싼 경쟁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긴장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파업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두번째, 원래 일본 프로야구는 총 12개 팀이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에 각 6팀씩 나뉘어져 한 시즌 경기를 한 후 해당리그 1위팀들끼리 제팬시리즈를 통해 챔피언을 가리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한 팀이 줄어들 경우 밸런스가 깨져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생기게 됩니다. 단일리그로 하는 옵션 그리고 인터리그 경기의 수를 늘리는 방안등이 다양하게 논의되었으나 어느 경우에도 야구노동자들 노동강도의 상승은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세번째, 프로야구 사용자 집단은 독점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신규업체의 시장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동안 일본 프로야구의 사용자 조직은 몇몇의 스타트업 컴퍼니(벤쳐기업)들의 프로야구 시장 참여를 여러가지 방식과 논리로 거부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그 폐쇄적 보수성이 드러났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긴테츠와 오릭스의 합병 발표후 라이브도아라는 신흥 인터넷 기업과 빗셀 고베(몇몇의 한국선수들이 속해있던 구단)라는 프로축구팀을 운영하는 라쿠텐이라는 인터넷 쇼핑몰 업체가 프로야구 사업에의 내년 시즌 신규참입을 희망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선수 노동조합에게는 샘물과 같은 뉴스였을테지요. 헌대, 사용자조직인 엔피비는 이러한 신청을 한 방에 거절했습니다. 내년 신참은 어렵다구요. 사용자 집단은 인터넷 벤쳐들을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동네 피씨방 수준의 사업체들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귀족들 노는 물에 들어 오는 거 못봐주겠다 이거죠. 어찌되었든 이러한 거부가 지난주말 선수회 파업의 직접원인이 되었습니다.

어제 장장 10여시간의 교섭끝에 두단주들이 내년 시즌 새로운 팀의 야구시장 참여를 허용하고 팀의 구성을 위해 지원한다는데 합의 함에 따라 사태가 일단은 마무리 된 상태입니다. 물론 여전히 여러가지 문제들은 남아있습니다. 다이에를 비롯한 몇 구단들의 재무상태가 계속 심각해 지고 있어 장기생존의 가능성이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번 프로야구 노사간 분쟁은 노동조합의 판정승으로 끝났습니다.

 

이번 일본 프로야구 노사분쟁과정에서 흥미로운 논의가 있었습니다. 바로 프로야구 선수들의 직업적 지위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의 파업발표가 있고 나서 사용자단체는 곧바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구단주들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들이며, 따라서 노동조합 조직, 교섭 그리고 단체행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합법적인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이 없는 상태에서 집단행동을 할 경우 사유재산의 침해 등에 따른 손해배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노동자에 대한 법률적 정의는 두가지 법에 의존하는데 하나가 노동기준법(우리의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입니다. 노동기준법은 타인에의해 고용되어 있는, 즉 피용자 일반을 노동자의 범주로 정의하며, 노동조합법은 임금 등의 보수를 받아 생활하는 임금생활자를 노동자로 정의합니다. 타인을 고용해 상품을 제조하거나 고용관계에 편입되지 않고 사업체를 자영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범주를 노동자로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 경우 프로야구 선수들 또한 명백히 노동자가 되는 거죠. 이번 일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노동자로서 사회적, 법률적 인정을 받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85년 도쿄 지방법원이 프로야구 선수회에 대한 자격심사를 통해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수회는 힘을 얻게 되었죠.

물론 단체교섭의 구조나 파트너 구성 등의 문제는 여전히 복잡합니다. 하지만 이번 프로야구계의 단체교섭은 기업별 노동조합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고 산업별조직이나 연맹조직의 교섭권이 부재한 일본에서 예외적인 업종별 교섭이었다는 점에서 제게는 큰 흥미거리입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송편먹어본지 증말 오래되었습니다.

 

09/25/204, 권순원,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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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소리 더 커지는 중소영세 노동자들의 사연

  • 등록일
    2004/09/25 01:59
  • 수정일
    2004/09/25 01:59

안타까운 사연들,

반복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노동부"는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해결하는 수밖에.

http://www.labortoday.co.kr에서 퍼온 기사입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43161

 

추석을 닷새 앞둔 23일 서울 마포 서부지방노동사무소. 점심시간인데도 3층에서 진정서를 접수하는 사람들, 근로감독관의 출석요구서를 받고온 사람들로 끊이질 않는다.

“진정서 접수하려면 돈 내야 돼요? 돈 내는 거면 그냥 가게.” 한 아주머니가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묻는다.

“돈 안내도 돼요. 아주머니 무슨 일로 오셨어요.”

유자현(가명, 50)씨의 사연은 이렇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파출부 등 여러 가지 일을 5년 넘게 해온 유씨는 최근에는 은평구의 한 횟집에서 일당 5만원을 받기로 하고 주방 일을 했다. 그런데 일한 지 1주일 만에 주인은 “소개비 10%를 별도로 내는 것이 아깝다. 안쓰겠다”고 했다. 문제는 1주일치 돈을 못 주겠다는 것.



“네가 한 게 뭔데”…억울해서 잠도 못자

“네가 무슨 주방장이냐. 네가 한 게 뭐 있냐. 놀러 왔지.” 주인의 트집과 모욕, 무시에 아주머니는 서러움을 느꼈지만 참았다. “주방, 홀, 담배 심부름 등 다 했는데 그러면 설거지 값이라도 달라.” 유씨의 말에 주인은 달랑 4000원을 던져줬다.

“아침, 저녁으로 전화해도 주인은 피하기만 하고, 한 푼 받으려고 차비에 시간 낭비에, 이렇게 시달리면서도 보호받지를 못하니 너무 억울해요. 내가 종가집 맏며느리인데 추석 생각하면 밤에 잠도 못 자요. 심장도 뛰고.”

“여지껏 파출부 일 5년 하면서 이런(체불) 일은 처음이에요. 일한 대가가 ‘탁탁’ 나오니까 그동안 재밌게 일을 했죠. 그런데 이번에 이런 일 당하니 완전 의욕상실이에요.”   
 
용산전자상가 DVD유통업체에서 3년6개월을 일했다는 이창윤(가명, 29)씨도 진정서를 접수하고 있었다. 퇴직금 500여만원을 석달이 지나도록 받지 못했다. “주겠다, 월말로 하자, 어렵다고 하더니, 추석 앞두고는 피하더라고요. 사장이 (퇴직금) 줄 마음이 없다고 판단해 진정을 넣으러 왔어요.”

광고 쪽으로 업종전환을 계획 중인 이씨는 같이 살고 있는 여동생이 용돈도 주고 해서 버텼지만 석달을 쉬다보니 이제 동생까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저축해놓은 것도 없고 돈 나올 곳은 퇴직금뿐인데, 추석은 또 다가왔다.

“목포가 고향인데 내려가기 싫죠. 그냥 부모님 얼굴만 보고 빨리 올라올 겁니다.” 이씨는 월급날 되면 외려 화를 내던 사장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정말 일을 잘 못했던 걸까. 올해 미룬 결혼,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명절을 앞두고는 참고 참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찾는 분들이 많죠.” 30년 넘게 근무했다는 방정강 명예상담원의 말이다. “하루에 약 70여명 정도 와요. 요즘은 더 많아졌죠. 대부분이 체불문제에요. 다들 사정이 딱하고 어려워 상담하면서도 참 안타까워요.”

▲ “이제 다른 직장도 못들어 가겠어요.” 체불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너무나 크다. 의기소침해진 자신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 매일노동뉴스
고객상담실 옆의 근로감독관 대기실에서는 삼십대의 회사원이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소득세 환금액 미지급금 40만원을 받으려 하는데 다니던 건축사에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과 심지어 ‘퇴직증명서’까지 떼주지 않더라는 것. “왜 이렇게 사람들이 무책임하나. 공무원들도 똑같다. 약속시간을 지켜야지. 휴~.” 안산에서 서울 마포까지 몇 번을 오고가는 번거로운 일에다가 약속시간이 미뤄지자 그는 짜증이 났다.

“엄마, 나 용돈 좀 보내줘”

체불로 인한 생계 문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심적인 고통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부분 변변한 노동조합조차 없는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로서 깊은 한숨과 눈물만 가득했다.

안동에서 서울로, 다시 안동으로 내려간 20대의 박연수(가명)씨. 체불로 인해 겪게 된 경험은 그의 젊은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고향 선배 소개로 3년 전부터 다닌 신생건설업체. 통신기술자인 그는 경리업무와 사장의 비서 일을 하면서 자신의 돈까지 회사에 바치며 열성으로 일했다. 그는 그러나 올 6월말에 퇴사를 하면서 두달치 급여와 퇴직금·미지급금 등 500여만원을 받지 못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8월말까지는 꼭 주겠다던 사장은 이후 “주기 힘들다”고 하더니, 9월 들어서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서울로 올라와 만나니, 사장은 안면을 몰수한 채 “집도 압류된 판이고 이혼까지 하게 생겼다”며 ‘배째라’식이었다.

몇 달을 기다린 게 허무해진 그는 곧바로 진정서를 접수했고, 23일이 첫 출두일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죠. 같은 회사 다니던,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 체불까지 합치면 900여만원이에요. 둘 다 이번일로 망가진 것 같에요. 다른 일자리도 알아봤지만 일주일 만에 그만 뒀어요. 예전같이 ‘부딪히면 되겠지’하는 자신감도 없어지고, 포기하게 되더라구요.” 

의기소침해진 맏딸. 그는 부모님께 처지를 말씀드리지도 못하다가 8월말 생신 때서야 알리게 됐다. “엄마, 나 용돈 좀 보내줘.” 부모님 선물은커녕 고향 내려갈 돈이 없어 전화하는 딸의 처지. 그는 어머니의 객지생활과 억척스런 삶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노동부에 신고하면 돈을 받을 수는 있는거냐. 네 고생한 건 받아야지.” 그는 “부도나면 (체불임금은) 거의 못받는다는데, 추석에는 또 무슨 면목으로…”하며 근로감독관실로 향했다. 

23일 오후 3시경, 방배동에 위치한 서울강남지방노동사무소는 더욱 붐볐다. 진정, 고소고발 등 접수는 끊이지 않았고, 5층 근로감독관실 계단에는 오고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계단에서 체불임금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고 있었다. 20여명의 직원이 무려 5달치의 월급을 받지 못했던 것. 그들은 더 이상 얘기하지 않으려 했다. “사장님과의 관계도 그렇고, 혹시나 불이익이 따르지 않겠어요. 죄송합니다.” 

“남들은 추석선물 들고 고향가는데…”

그 옆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김씨(64)가 한숨지으며 앉아 있었다. 8년간 경비 일을 하던 곳에서 8월 중순 “젊은 사람과 교체해야겠으니 이달 말로 나가달라”는 갑작스런 통보였다. 최소한 한달은 여유를 줘야 자리도 알아보고 하는데, 추석을 앞두고 해고통보니 김씨는 너무 억울해 ‘부당해고’ 진정서를 접수한 참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김씨는 “좋은 일도 아니고, 이득될 것도 없는데…”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계단 곳곳에 붙여진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센소늄(브랜드명 네띠플러스) 대표를 상대로 한 ‘체불’ 진정인들은 건물 지하식당에 모여 달라’는 공지였다.

텔레마케팅 업체인 이 회사가 7월말 부도를 내고, 사장은 달아났던 것. 70여명의 텔레마케터들은 한달에서 석달까지 각자의 ‘체불임금 확인원’을 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기본급 85만원 외에 인센티브나 사측에서 매달 지급한 10만원의 핸드폰 요금은 고스란히 떼일 수밖에 없는 것. 회사는 사업자 등록도 되어 있지 않았다. 소득세는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가면서도 회사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20대에서 40대까지의 다양한 구성만큼 그들은 ‘대표자’도 없이 개별적으로, 또는 몇몇 친분있는 사람들끼리 진정을 넣었다. “직원들 이직률이 높다보니 서로 잘 몰라요.” 정형준씨(가명, 25)는 “회사 사정이 어렵지만 건물보증금으로 해결해주겠다”던 임원들의 말을 믿었지만, 임원들은 회사 자산을 정리하고 도망간 상태였다.

“최소한 귀경길 내려가는 차비는 줘야죠.” “남들은 추석선물 들고 고향가는 데 못가죠.” “본인명의로 되어있는 휴대폰 요금 때문에 신불되어서 그거 막고야 가까스로 취업했어요.” “억울해서 포기 못해요. 정당하게 일한 것 받아야죠.” “노동부에서 부르니까 안올 수도 없고, 와보니 처리된 건 없고 (노동부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에요.” “실질적인 지휘감독은 실장이 했어요. 그런데 노동부는 사장만 진정이 가능하데요.” “사업주는 고작 2천만원 이하 벌금에 불과하네요.”

지푸라기라도 잡고픈 20대 남녀 노동자들의 아픈 상채기는 쉽게 아물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 사장은 놀음하러 전국을 방랑하는데, 그런 사람을 노동부는 신고한 사람에게 찾아오란다. 뒤편의 텔레마케터들은 “남들은 추석선물 들고 고향가는 데, 우린 뭐냐”며 하소연한다. ⓒ 매일노동뉴스
식당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김정인씨(가명, 62)는 자신만 억울한 사연이 있는 줄 알았는데, 체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라는 표정이었다. 김씨는 서울 신사동에서 실내포장마차 주방장을 하다 7월경 한달반 급여를 받지 못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일하기 전후로 7개월여 놀다보니 신불 신세다. 요즘 사글세 집값은 물론이고 버스카드도 없이 다닌다.”

“놀음하러 다니는 사장 우리보고 찾아오라니”

아주머니는 눈물로 호소했다. “포장마차 주인은 카지노로 노름하러 다닌다는데 사업자등록증도 확인이 안돼 고발도 못할 판이다. 폐업하고 또 다른 데 가서 사기치는 상습범이다. 사람들이 귀찮아서 안한다는 것을 아는 인간 같다. 돈이 들더라도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

곁에 있던 남편이 말을 거들었다. “노동부가 힘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민원인들이 오죽 답답해서 오는가. 그런데 (노동부는) ‘못 받을 테니까 가지마라’ ‘우리보고 사장 찾아와라’ 이런 말만하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고, 한달 벌어 한달 사는 노동자들에게 체불은 엄청난 생활의 타격이다. 생활유지 어려움은 물론, 심한 마음고생을 누가 보상할까. 애처로운 사연을 듣고 답답한 마음에 담배 한대 피우러 올라간 옥상의 간이 휴게소. 모여 앉은 사장과 임원들의 말이 비수처럼 등 뒤에서 들려온다. “(체불임금) 못 받을 때는 지랄지랄하더니, 받고나니까 ‘고맙다’ 소리도 안 해. 하이고.”

‘방귀 뀐 놈이 외려 성질’내는 꼴이었다. ‘정당하게 일한 노동의 대가를 받겠다’는 노동자와 ‘돈 몇푼 못준 것 같고, 못살게 구냐’는 식의 사용자들의 의식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한자리에서 일했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취재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 휴대폰이 울린다. 오전에 서부노동사무소에서 만난, 식당일 하셨던 아주머니다. “추석 전에 기사 나와요. 어디서 보면 되요. 답답해서요. 사장 주민번호도, 사업자등록증도 모르는데, 진정서 서류에는 그걸 쓰라는데 어떻게 해요.”

 
이수현 기자  shle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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