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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은 잘 안들어가던 사이트 중 하나다. 최근에 자료 찾을 일이 생겨 자주 접속하게 되는데, 아래 소개한 글을 읽으면서 숨이 턱 막혔다. 회피하거나 비아냥대거나,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도록 스스로 억압했거나,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던 길고 긴 시간들이 아래 올라온 글들로 인해 수면 위로 다 올라와 버렸다. 괜찮다. 더 늦으면 안되지. 혼자 간직했던 기억들을 볕에 내놓고 나도 나름대로 먼지를 털어야겠다. 이런 글을 써올릴 처지는 아니니까 그저 조용히. 다만, 여성의 입장에서(혹은 학교 안에서 생협이나 부분계열 운동에 속했다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어떤 사람들, 그리고 학교 밖에서 길을 냈던 사람들 중에서)누군가 한마디 더 해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1.조병훈의 글 



"왜 진보신당에 입당 안해?"
[진보, 야!] 젊은 이들 입당할 맛 안나게 하는 논쟁

 

 

"당원이에요?"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적당할 때 정당에 가입했냐고 물어본다. 상대가 대부분 젊은 사람들 중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 제한되긴 하지만, 안 그런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보았다가 슬쩍 물어보기도 한다. 지방선거 이후 정당에 대한 입장이 바뀌는 변곡점을 찾아보고 입당을 독려하려는 속셈인데, 유행까지는 아니지만 상징성 있는 그룹들이 입당을 고려하는 중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젊은이들과 입당

8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들과 진보정당 입당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어느 당에 가입할 것이냐 하는 문제보다 정당 가입 여부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통적인 좌파들은 정치운동의 약화가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를 본 좌파 운동권의 와해로 득세한 90년대 자유주의 계열의 운동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2000년대에 20대가 된 젊은 세대의 눈에 비친 사회에는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이라기보다는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억압하는 기득 권력이 있었고, 이에 대항하는 그룹으로 노동운동 전통에 있던 운동권과 각 부문으로 나뉘어 활동을 시작했던 시민운동이 있을 뿐이었다.

기득 권력에 대항하는 대학 내 그룹이었던 이른바 '학생운동권'은 NL과 PD로 나뉘어 단과대와 총학생회를 잡으려고 경합하고 있었지만, 2000년대는 이미 이들에 대한 관성적 지지조차 신자유주의 경쟁의 바람에 의해 줄어드는 상황이었고, 학내 민주화나 다양하게 촉발된 지역, 혹은 부문별 시민운동의 요구가 새롭게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기존의 학내운동권이 권위를 상실한 것은 학생사회에서 제기된 두 가지 주요 문제에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IMF 이후 대학에 생존형 경쟁이 가속되면서 대학이 투쟁의 전위여야 하는가에 대한 보수주의 학생들의 전통적인 비난과 함께, 다양한 부문으로 분화된 저항운동의 요구를 학생회에서 포괄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그것이었다.

두 가지 다른 진영의 비판이 학생사회의 민주화라는 어쩐지 미심쩍은 주장으로 학생운동권을 공격하는 형국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수배까지 받고 있던 지도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집행부 중심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학내운동권으로서는 외부와 내부의 두 가지 저항을 해소할 여력이 없었고, 점차 기득 권력에 친화적인 '비권'들에 권력을 내주는 빈도가 잦아지다가 결국 잔류하던 기존 운동권도 '비권'과 같은 공약을 내걸지 않고는 학내 권력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대학 운동권 권위 상실 이유

특히 두 번째 문제는 학생운동권이 지도부 중심 운영과 함께 학내의 또 다른 권위주의를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새로운 활동가를 재생산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탈한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활동영역을 바꾸어 '광역화된 부문운동'으로 분화되었다. 이 시기에 각 시민사회가 대학생이나 청년단위를 만드는 등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면서 '시민사회단체 인턴'이라는 특이한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시민사회 인턴십의 경험을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하거나 기업의 취직 요건에 포함시킨 것은 자본을 위시한 기득 권력의 발 빠른 대응이었던 반면, 피해자 의식이 강했던 학생운동권은 이탈에 속수무책이었으며 이들을 '부르주아 자유주의 운동'이라며 오히려 격리했다.

당시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책연합 등을 위시한 연대활동을 이어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학생사회는 학내 학생회 집권을 목표로 하는 학생회그룹과 학생회그룹의 '꼰대로움'에 질려 대학 밖으로 자리를 옮긴 학생 개개인으로 분리되었다.

정치적 연대가 형성되는 것은 각 그룹이 동시에 '연대 필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대학에서 이루어진 저항적 학생들의 분리는 "학우대중의 지지가 줄었다"는 애매모호한 외부 요인 탓이라기보다는 학생운동권 지도부가 기득 권력과 자신 모두에게 비판적인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구조변혁을 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학생 운동권의 기득권 유지

  실제로 NL과 PD 사이의 경합에서 살아남은 학생운동권은 조직능력이나 학교당국과의 협상능력의 우위를 내세워 '등록금 투쟁'을 전문으로 하는 소수의 조직운동집단으로 생존을 유지했는데, 학생회 선거에서 패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비권'과의 차이가 희미해졌지만, 예의 비판적인 학생들이 학생회 선거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운동권 완장'은 유지됐다. 그러나 라이벌을 상실하자 자신의 세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다행인지 학생운동권의 몰락이 바닥을 칠 때 즈음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면서 학생운동권과 학교 밖으로 흩어졌던 젊은이들의 '연대 필요'가 공유될 기회가 다시 생겨났고, 거의 동시에 등장한 20대 담론이 이론적 근거로 제공되었다.

구체적 배경으로는 학생회 선거에서 위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수주의그룹에 대항하기 위해 뒤늦게라도 구조변혁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을 시작하는 한편, 자신이 선택한 부문운동 내에서 세대차별을 경험한 청년들이 자기조직화의 필요를 찾은 것이다.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문화 부문에서 활동하던 이론가나 활동가, 문화와 생태를 기치로 건 대학 총학생회 선본의 출현, 철거와 농성현장에 달려가는 음악가 등을 매개로 분리된 활동영역이 연대하기 시작했다. 2010년 두리반에서 열린 노동절 파티는 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런 움직임이 즉각 견고하고 강력한 연대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20대 담론에 대한 반응은 즉각 20대 내의 계급 차이며 문화적 차이에 따른 20대의 다양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20대가 다 같은 20대가 아니다'는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연대를 방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뚜렷한 입장 차가 있을 때 연대의 필요와 가능성도 보다 명확하게 도출될 수 있다.

  20대의 전면적 연대

지금은 명박반대나 청년실업해결과 같은 다소 일반적인 목표를 공유하는 실정이지만 청년문제와 이어지는 구체적인 목표가 설정된다면 그 때가 이들이 전면적으로 연대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핵심은 '연합 우선'이 아니다. 공유할 만한 구체적인 목표나 정책위에서 나오는 전략이 중요하다.

덧붙여 주목해야할 것은 이들 서로간의 연대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기존 학생운동권이 당시 새롭게 등장한 여성과 소수자, 환경, 평화, 문화 부문의 활동그룹들과 적극적으로 연합하는 대신 자기의 전통에 기대 수세적인 생존을 선택한 것이 결국 학생운동권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반성을 공유한다.

이를테면 이들의 연대는 공통적인 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더 다양한 문제에 저항하기 위한 연대이고, 필연적으로 새로운 지향을 요구한다. 조금 더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지지율이 올라간다거나 "대세를 위해 연대해야 한다." 따위의 수를 부리면 상대가 코웃음 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선거 후 진보신당을 둘러싸고 터져 나온 논의 중 어느 쪽이건 정권교체를 위해 정치 연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원천 반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식으로든 선거 연대는 필요하다는 동의에 기초해서 통합당으로 갈 것이냐 각각의 정당을 유지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하고 있는 상황인데, 워낙 작은 동네다 보니 서로 잽만 날리면서 우왕좌왕이랄까.

급기야 조용하던 분들까지 힘을 보태려고 가세하는 형국인데, 대부분은 해묵은 욕잔치가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통합론이나 독자론 모두 그다지 새로운 당원을 염두에 둔 논의가 아니라는 것이 더 답답하다. 솔직히 새롭게 입당을 고려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냉정하게 보면 지금 상황은 “이래서야 입당할 맛 나겠냐?”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200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을 주로 만나다보니 대개 그들에게 “당원이야? 왜 진보신당에 입당 안해?” 라며 묻는다. 글쎄,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답을 내리시겠는가? (2010. 7. 5)

 

 

 2. 홍명교의 글

 

 

   무지한 반성이 '학생운동 위기' 지속시킨다
[조병훈 비판] “‘운동권’도 ‘위기’도 없다…정치 실종시킨 선거정치 문제"

 
 
이 글은 조병훈씨의 “왜 진보신당에 입당 안해?”라는 글에 대한 비판이다. 학생운동의 몰락에 대한 조병훈씨의 해석은 그의 정치적 ‘당파성’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지만, 일종의 협소한 ‘정파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조병훈씨와 동일한 견해를 갖는 입장은 꽤 많이 접했지만 열에 아홉은 항상 진보신당 당원들이었거나, 스스로를 ‘자유로운 개인’으로 규정하는 것에 나름의 자부심을 갖는 것처럼 보였다.

4년 전인 스물네 살까지도 나는 어떤 학생운동 단위에서 활동했지만 저와 같은 입장을 대할 때마다, 그들이 스스로 ‘20대 일반’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들 역시 하나의 정파성을 띤 ‘그룹’으로 드러날 뿐이라고 생각했다. 본래 정치-행위란 ‘입장’을 중심으로 발현되고 밝혀지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그룹’은 표면적이건 표면 아래에서이건 생성될 수밖에 없다.

'일반'을 대변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그룹'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실체 없는 유령을 자꾸 끌어들이게 되는데, 그건 다름 아닌, '기존 운동권'이다. 사실 이런 실체 없는 대상을 놓고 뭔가를 이야기한다는 건 굉장히 넌센스한 일이다. 아주 한동안 소위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이 실체 없는 대상을 반대급부 삼아 재미를 보아왔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까?

오늘날 조병훈씨가 ‘부정적인 것’으로서 호명하고 싶어하는 ‘대상’으로서의 '기존 운동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전국적인 규모에서 움직이는 안에서의 일군의 민족주의 학생운동 진영과 소수의 알튀세르주의의 이론적 논거틀에 친화적인 좌파학생운동 그룹, 진보신당보다는 좀 더 조직적인 사회당의 학생단위, 그리고 동아리 수준에 머무르는 여타의 수많은 그룹들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까 조병훈씨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호명하며 부당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안이한 인식인가. 오히려 조병훈씨야말로 홀로 2000년대 초반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학생정치조직을 만들어 학생운동을 전개하려는 그룹들은 더 이상 90년대 후반 한총련 해소 논쟁을 경과하던 시기처럼 ‘학생운동 위기’ 담론을 나누지 않는다. 때로는 자조적으로, 때로는 자책하며, 또 한편으로는 암울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더불어 소위 “학생운동 위기”담론은 그 위기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오랜 시간동안 지속된 바 있다. 그러나 더 이상 '학생운동 위기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존재하지 않는 것을 두고 이야기를 꺼낸 글에 대해 굳이 반박해야할까 나는 무수히 고민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위기’란 뭔가 활발했던 시기를 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언이지만, 이제 더 이상 그들은 학생사회에 존재하지도 않고, 따라서 지금은 ‘위기’라는 이름으로 명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우리는 근간에 학생운동 그룹들이 소위 진보진영, 시민사회, 진보학계의 담론과 함께 어우러져 고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그런데 참 황당한 것은 대체 10년 전 이야기를 왜 여기서 하는 것인가. 2001년쯤에 나왔을 법한 글을 말이다.

 10년쯤 때늦은 이야기

 어쩌면 바로 그 점이 오늘날 진보신당의 암울한 상태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이 ‘이론적’ 안이함! (나는 이것마저도 ‘공부하지 않는 게으른 활동가’의 오래된 전형이라고 비판하고 싶다.) 운동의 ‘위기’에 대한 협소한 인식과 분석, 그리고 실천에 대한 몽매한 부당대립. 만약 내게도 '기존 운동권'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러니까 항상 ‘부정적인 것’으로서만 호명되는 그 유령이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조병훈씨를 통해서였음을 고백하고 싶다.

수 년만에 나는, 조병훈씨를 통해 '기존 운동권'을 보았다. 그는 15년간 쌓여온 무수한 ‘학생운동 위기 담론’의 역사적 전개 자체를 몽매하게 뭉개버렸다. 만약 그가 ‘20대의 새로운 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위기’ 자체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위기’ 자체를 오로지 '기존 운동권'이라는 유령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러나 어쩌면 ‘위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기’ 자체를 도덕적인 문제로 환원시키는 도덕주의자의 태도가 아무 사정없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병훈씨는 학생운동의 위기가 흩어지는 개인들의 다양한 욕망을 살피지 못하고 차단된 정파들의 지도부(?)에 의해 자기변명과 옹호만 하려했기 때문에 확대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것은 ‘학생운동 위기’를 바라보는 몇 가지 원인 분석 중 하나로써 오랫동안 위기담론을 맴돌던 해석이다. 이 ‘도덕적 비판’은 ‘학생운동 위기론’이 제기될 때 가장 먼저 등장한 것으로, 오랫동안 학생운동 활동가들의 화두였다. 90년대 중반 이래 학생운동 진영에서 생산된 아주 무수한 텍스트들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유명한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이나 '한총련은 역사적으로 해소되었다!'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대학의 교지들, 학생운동 그룹들이 펴내는 신문과 팜플렛 등등. 그러나 이 도덕론에 입각한 자기비판도 당대에 그들 각자에겐 아주 유효했겠지만 오늘날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더 이상 도덕적 반성의 주체도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아주 단순한 표층적 진리만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피스톤 운동이랄까. ‘단절’없는 이런 순환이 지겹다. 언제까지 우리 주위를 맴돌 것이란 말인가.

 이제 도덕 반성의 주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조병훈씨가 도덕주의적으로 매도한 '기존 운동권'의 폐쇄적 태도는 어느 조직에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폐쇄적이어서 그들이 망한 것이라면, 그건 오직 그들의 업보이고 그들이나 혹은 그들에 이어서 그 당파의 운동을 펼치는 후배들이 뒤집어쓴 과오로 남았을 뿐이다. 조병훈씨가 결국 조병훈씨 말처럼 그 범위에 수렴되지 않는 여러 ‘개인들’이 외부로 가서 나름의 흐름을 만들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그런 식의 비난은 아예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조병훈씨 개인의 트라우마만 상상하게 할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정 중요한 건 다른 문제이다. 우선 어느 조직이든 원 외부에 존재하는 다른 시선이 보기엔 모두 ‘폐쇄적’이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은 부차적이고 지나치게 일반적인 문제이다. 진실은 이데올로기 자체이다.

조병훈씨는 대체 어떠어떠한 점에서 ‘폐쇄적’이라고 느꼈는지 말하지 않고 있다. 이런 입장은 뻔하다. 그는 기존 학생운동 그룹들 중 특히 ‘레닌주의적 당파성’을 견지하고 있는 그룹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글에서 “학생운동권 지도부가 기득 권력과 자신 모두에게 비판적인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구조변혁을 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자신이 지닌 급진좌파그룹의 운동에 대한 반감을 다소 악의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그가 무지한 점이 몇 가지 드러나는데, 실제로 좌파학생운동은 자기 안에서 무수히 구조변혁을 가해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90년대 중반에 제PD계열 중 일부가 한총련 주류의 ‘주체주의’에 대해 비판하며 그 질서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전국학생연대’를 결성하였고, 97년 한총련 사태 이후로 “한총련 혁신”을 주장하던 제PD계열이 한총련에서 모두 빠져나오며 ‘전국학생연대회의’라는 제 좌파 그룹 연대체를 결성한 바 있다.

또 그 밖에 얼마나 많은 구조변혁 ‘시도들’을 볼 수 있는가. 03년 전학협 일부의 학생회 해소론, 몇몇 단위의 학생회운동과 자치단위 운동의 병행 선언 등등. 무수한 시도들이 ‘위기론’과 함께 전개되어왔다. 물론 우리는 결과적으로 실패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만약 조병훈씨가 조금이라도 더 성실했다면 이 실패의 역사를 두고 면밀하게 고찰해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정도도 살피지 않고 초지일관 몽매했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조병훈

 다시 '기존 운동권'의 유령에게로 돌아와서, 과거 변혁적 학생운동 그룹들의 ‘정치’는 강고한 이념적 단결을 전제로 펼쳐지며 그것이 전제되었을 때 그 정파의 ‘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건 어느 나라를 가건 마찬가지이고, 그런 룰을 정하는 건 그 단체 자유이다.

 예컨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입 가능한 조기축구회가 있는가 하면, 축구를좋아하더라도 매회 참가를 약조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입회할 수 있는 K3리그급 조기축구회도 있다. 우리 아버지는 축구를 못해서 우리 동네 조기축구회에 가입 못하시고 분통을 터뜨리며 옆동네에 가입하셨는데 그렇다고 우리동네 조기축구회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게 그들의 조직론이라는 것을.

 다만, 논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오로지 그 조직론이 가진 정치 그 자체를 두고 가능할 뿐이다. 레닌주의자가 아닌 조병훈씨에겐 소위 '기존 운동권' 그룹들이 폐쇄적인 패권 집단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쨌단 말인가. ‘조직론’을 두고 이론적으로 논쟁할게 아니라면 고작해야 조병훈씨는 우파적 비난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조병훈씨는 좀 더 자유분방하고 누구나 가입가능한 진보신당에 가입하신 것 아닌가.

 물론 나는 ‘민주집중제’라는 레닌주의적 조직운영 방식에 대해 여전히 고민이 많다. 당적 운동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답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무엇이 보다 더 옳을 것인가, 합당한 방법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만약 조병훈씨가 좀 더 근원적인 문제로 다가가서 레닌주의와의 전쟁이라도 선언한다면, 그에 따른 논쟁은 유효해진다.

 그러나 그는 기껏해야 ‘도덕적 비난’을 가할 뿐이며, 그마저도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무엇이 폐쇄적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더불어 그는 '기존 운동권'이 다양한 부문운동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야말로 얼마나 몽매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인가! !

 비정규노동자 지원활동을 하는 '기존 운동권'

 우선 예를 들어, 고려대의 경우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에 아주 새로운 개인들이 한 것 처럼 보도된 무수한 활동들이 '기존 운동권'이 새로운 시각으로 발굴하고 기획한 투쟁들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요컨대 오늘날 고려대학생행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룹은 과거에 활발하게 학내 미화원 노동자들을 만나왔다.

 02년부터 일군의 진보적 학생들을 규합해 ‘불철주야’(‘불’안정노동‘철’폐를‘주’도할꺼‘야’)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이를 중심으로 학내의 200여 명의 시설관리노동자들을 만난 것이다. 처음에 이 문제는 50만 원도 되지 않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중심으로 회자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과 연계되어 이후에 노조 결성의 밑거름이 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여전히 ‘여성주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과거 생활도서관 운동과 같은 학회학술운동, 자치공간확보를 위한 운동, 학내 스타벅스 입주에 대한 반대 활동들 등 조병훈씨가 부당하게 호명하는 '기존 운동권'들이 무수히 변신을 꾀하며 얼마나 많은 ‘부문들’에서 활동했는지 하나하나 열거하기에! 도 입이 아플 지경이다.

 그리고 이에 반해 진보신당의 20대 당원들께서는 자기 생활공간에서 얼마나 대중들을 열심히 만났는지 되묻고 싶다. 결국 나는 지금 다소 무리해서 위악적으로나마 ‘도덕주의적으로’ 묻는 것인데, 우리의 이런 질문은 끝이 없지 않겠는가? 정말 이런 “너는 얼마나 잘했는데?”라는 식의 도덕주의가 위기의 본질을 보게 하는가? 얼마나 우스운가?

 그런데 조병훈씨에게 진보신당 지도부의 폐쇄성은 왜 비판대상이 아닐까? 그건 진보신당 지도부의 이데올로기가 자신과 동일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얼마 전 지방선거 전에 있었던 5+4회의에 참가한 진보신당 지도부가 보여준 기이한 협상의 태도, 그 과정에 있었던 폐쇄성, 선거시기 심상정의 몽매하고 독단적인 항복 선언, 노회찬씨가 종종 드러내는 정치엘리트적인 태도들, 이 모든 것이야말로 진정 ‘폐쇄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왜 그걸 비판하지 않는가.

 아마도 그는 모르고 나는 아는 것 같다. 그건 그가 진보신당 지도부의 이데올로그들과 입장을 같이 하기 때문이고, 반면 여전히 당에 가입하지 않는 좌파학생운동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이 조병훈씨와는 다른 이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념 선택의 문제

 그런 점에서 조병훈씨의 '기존 학생운동권' 비판은 조야할 뿐만 아니라, 비겁한 면이 있다. 나는 그 점을 도덕적으로 매도하고 싶지 않다. 다만, 위기담론을 면밀하게 살피지 못하고, 우리가 거처하는 ‘학생사회’라는 곳을 한때나마 강하게 휩쓸고 간 ‘저항 이데올로기’(대중적 학생운동)에 몰락 상황에 대해 ‘이데올로기 비판’으로서 응대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불성실함’을 부디 ‘공부’로서 채워주시라고 말하고 싶다. 조병훈씨처럼 학생사회의 위기상황이나 20대의 대중운동 따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활동하는 ‘정당 활동가’마저 이렇게 몽매하게 굴면 어쩌란 말인가.

 그가 학생운동 활동가들과 어떤 관계맺음을 맺었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의 특수한 경험에서 근거한 특수한 분석이 단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언제까지나 ‘학생운동권’을 악의적으로 호명하며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자기 정치를 세워내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하려는 것일까.

 “왜 진보신당에 입당 안 해?”라는 질문으로 환급되는 그의 ‘정치적 행동-플랜’이 담겨진 그의 글만으로는 그의 정치가 대체 무엇인지, 그래서 대체 무엇으로 진보신당에 가입하지 않는 20대들을 혹하게 할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매력적이지도 않다. 조병훈씨는 글에서 ‘학생운동권’을 몽매하게 비판하고 있었지만, 실은 자기 정치의 빈약함을 드러내고만 것이다.

 물론 그가 내세운 입장들 중 일견 타당하고 귀기울일만한 것은 분명 존재한다. 요컨대 두리반 51파티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나는 그 파티를 준비하거나 공연에 참가한 몇몇 친구들을 아주 좋아한다. 저항의 경로를 새로이 발굴하고 있는 그들을 계속 응원하고 싶다. 또 아주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연대론-일반에 대한 입장도 일견 동의한다.

 그러나 결국 그가 이야기하는 그의 정치의 내용을 열심히 찾아보니, ‘선거’와 ‘입당 권유’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여전히 운동이 이론과 실천, 학습의 트라이앵글로 구성되는 것이라면, 그의 학습은 부재하고, 실천은 ‘선거운동’이며, 조직은 ‘입당 권유’이다. 정치는 실종되었고, ‘피스톤운동하는 객체들’만 남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평소에는 입당 권유하러 다니고, 달력보다가 선거시기 되면 선거 얘기하면서 선거운동판 가서 땀 흘리면서 춤추고, 선거 끝나면 자조적으로 ‘선거평가’하고. 오, 이런... 믿고 싶지 않다! 정녕 이것이 진보신당 20대모임의 ‘정치’란 말인가? 나는 지금, 조병훈씨의 글에서, 오늘날 이 땅에 만연한 ‘정치’ 자체의 위기를 본다. (2010. 7 6)

 

 

 

3. '구르는 돌'의 글

 

 

2010년 07월 09일 16:42

 

 

[홍명교씨의 글에 반론]

새로운 학생운동, ‘자유주의로 내던져진’ 이들에게 주목하자

- 김예슬과 고시생은 한 끝 차이다!




일단 제 족보부터 까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2003년에 대학에 입학해 2008년 여름에 졸업할 때 까지 전국학생연대회의/전국학생행진(전자는 후자의 전신입니다)에서 활동했습니다. 말하자면 홍명교씨와 족보가 같은 셈이죠. 제가 부득이 본명은 밝히지 않지만 글을 읽다보면 제가 누군지 아실겁니다.


처음 홍명교씨의 글을 읽고 들었던 느낌은 ‘불편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글을 계속 곱씹어보다가 든 느낌은 ‘익숙함’이었습니다. ‘불편함’은 너무 오랜만에 만나보는 이런 날이 곧게 선 글을 읽는 것에 대한 감정입니다. 잘못하면 그 날 끝에 베일 것만 같은 공격성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찾아온 익숙함은 언젠가 제 자신도 그랬을 법한 자신의 것과 다른 입장에 대한 ‘구별짓기’ 때문입니다. 저는 조병훈씨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그의 정치적 입장이 어떤 것인지 판단할 근거가 없지만, 그를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개념으로 가둬놓고 집중포화를 날리는 홍명교씨의 모습은 저 스스로 얼마 전부터 단절하고자 노력했던 익숙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자유주의자 김예슬’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제 주변에서는 오히려 은어처럼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약간은 비아냥 섞인 말을 더 많이 쓰곤 했죠. 대강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 욕망에 따라서 ‘제 멋대로’ 활동하려는 이들을 부르는 용어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날 이 ‘자유로운 영혼’을 대표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예슬씨라고 생각합니다. 김예슬씨는 얼마 전 발간한 책에서 “우리는 충분히 래디컬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과 함께 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학생운동 선배들은 진정 래디컬하게 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홍명교씨는 이렇게 말하는 김예슬씨에게는 어떻게 대답할 것입니까? 그에게도 “당신이 말한 학생운동 선배라는 집단은 대상없는 실체다”, “세상 어느 조직이나 다 그렇다”, “좌파학생운동이 그 동안 얼마나 변화하려고 노력했는지 당신이 알기나 아냐?”라고 말씀하실 건가요? 아니면 김예슬 당신이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고?


김예슬은 비판하지 말아야 할 성역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론 홍명교씨는 김예슬의 대학거부 선언이 있은 후, 그녀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학내에 게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홍명교씨는 김예슬씨로부터 삶의 용기는 얻었지만,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현재 학생사회의 ‘조건’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부족하나마 ‘저항의 공간’으로 기능해 왔던 대학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김예슬씨의 선언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85년도에 적발된 위장취업자 수만 해도 321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위장’취업자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규모는 그것의 몇 곱절은 될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홀연히 학교를 버리고 노동현장으로 뛰어든 이들의 행렬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한 학생이 자퇴 선언을, 그것도 공개적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학생운동의 쇠퇴와 정확히 비례하여, 그 위기의 최종점에서 터진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학생운동이 대학사회에서 건강한 세력으로 인정받고, 그들이 이데올로기가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었다면 김예슬씨는 자퇴가 아니라 대학에 남아서 ‘교투’를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교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김예슬씨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교투에 관심없는 전국 수백만의 대학생 전부를 ‘무지한 자유로운 영혼들’이라고 비난해야 합니다. 그 결과는 지금처럼 학생운동만 전국구 왕따가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홍명교씨를 비롯한 소위 ‘좌파’가 고민해야 할 것은 왜 좌파운동이 이런 진보적 자유주의자들마저도 이해시킬 수 없을 정도로 대중과 융합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반성입니다.



90년대 위기의 연장으로서 2000년대 학생운동


그것이 한총련의 주체주의를 비판하며 또 다른 결집의 공간을 만들었던 좌파학생운동의 역사를 반추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저는 그것이 결코 성공적이지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런 얘기는 특정 학생운동그룹 내부의 비공개 세미나를 통해서만 교육되는 ‘자기 집안 역사’ 아닙니까? 그걸 모른다고 상대방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홍명교씨나 제가 경험했던 2000년대의 학생운동은 90년대 위기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특정 학생운동그룹의 문제가 아니라 8,90년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학생운동 전반(NL/PD 할 것 없이 모두 다)에 해당하는 문제이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운동권의 자리는 게토화 되었지만, 그것 때문에 “운동권의 위기는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음은 물론이고 위기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예전에 레디앙에 기고한 “200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 말하기”에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경과하면서 운동진영은 규모 있는 대중동원이 가능한 학생운동의 힘에 많이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대중적 학생운동은 필연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로 인해 ‘학회-써클’이라는 지적공동체를 통한 학생운동은 ‘학회-학생회’의 틀로 대체됩니다. 이제 3,4학년이 된 활동가들은 학생회 간부로 충원되어 자기조직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조합조직으로서 학생회의 임무와 정치투쟁체로서의 학생회의 임무를 동시에 책임지게 됩니다. 교조주의라는 혐의가 덧씌워지긴 했지만 어쨌든 대학사회의 보편적 이념으로 자리잡고자 했던 맑스주의는 이제 특정 조직을 재생산하기 위한 도구(학생회 수권과 활동가 재생산)로 전락하고, 이걸 ‘대중성’이라는 이름 하에 억지스럽게 학생회의 조합주의와 결합시킨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적 교조성과 조야한 대중성의 엉성한 조합인데, 이것이 학생운동 이념 자체의 역동성을 감소시킨 것은 물론이고 90년대 대중-상업문화의 폭발로 상징되는 대중 이데올로기와 융합되지 못했던 것도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입니다.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中 장석준의 글 “필요한 것은 운동이다 : 90년대 학생운동의 비판적 회고와 전망”에서 참고) 2000년대 학생운동은 홍명교씨가 말한 좌파학생운동의 무수한 구조변혁 실천들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홍명교씨도 어느 정도 동의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은 그룹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이렇게 드러나는 방식으로 기존 운동권을 비난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부유하며 학생운동 조직과 융합할 기회도 없고, 또 그래야 할 이유도 없는 사실상 ‘자유주의로 내던져진’ 사람들입니다. 홍명교씨 말대로 조병훈씨 같은 ‘진보적 자유주의자’가 그룹으로 보이는 것은 ‘사회적 대세’가 되어버린 자유주의가 다소 ‘진보적인 방식’(?)으로 표면화된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유주의로 내던져진 사람들을 흔히 ‘자기계발 주체’라고 부르죠.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 속에서 스스로 삶의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에게 목숨을 겁니다. 그래서 자격증도 따고, 멘토링도 하고, 해외 봉사 캠프도 다니며 자기 인생의 금고에 자산을 채워가죠. 그런 면에서 저는 ‘자발적으로’ 자퇴를 선언한 김예슬씨나 ‘자발적으로’(?) 고시공부를 택한 신림동 고시생이나 한 끝 차이라고 봅니다. 김예슬씨의 선택이 소중하기는 하나, 그것이 예전처럼 ‘민중해방’이라는 거대담론을 내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것조차 꿈이 되어버린” ‘자기’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비관이기 때문입니다.


김예슬씨는 그렇게 학원, 어학연수, 자격증 등 전단지의 홍수 속에서도 ‘자기’ 답을 찾지 못하고, ‘자기만의’ 주관식 답을 찾아 뛰쳐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오직 ‘자기’라는 좁은 틀로 후퇴한 것이 아니라, ‘나눔 농사터에 세워질 진정한 삶의 대학’을 만들겠다면서 나눔문화라는 단체에 들어가 더 넓은 공동체를 지향했습니다. 자기 주체적인 ‘선택’에 의해 대학이 아닌 더 큰 공동체로 나아간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운동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집회 이후 늘어나고 있는 소위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적 객관식 답안지를 넘어 자유롭게 새로운 영토를 개척할 수 있게 하는 것 말입니다. 이를 위해 학생운동을 비롯한 기존의 사회운동들은 강령수준의 입장을 반복해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대안적 삶과 경제를 스스로 구성해내는 운동을 통해 대중에게 그 본보기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대안사회의 이념이라는 것도 이런 미시수준의 실천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게 진보정당 가입하라는 선동으로는 가능하지 않음은 물론입니다. 저는 조병훈씨의 글이 바로 이렇게 자유주의로 내던져진 이들에게 진보정당이라는 ‘당위’만으로는 함께할 수 없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렇기에 홍명교씨가 조병훈씨의 글을 통해 자유주의자 비판을 수행한 것은 참으로 부적절해 보입니다.



몇 가지 사족


사족이지만 첨언하자면, 저는 학생운동의 거점이 학생회는 물론이고 대학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학생운동의 목적은 대안적 지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연한이 생애주기 전체에 걸쳐 확장되고, 대학이 아니어도 자본의 교육을 통한 노동력 재생산이 얼마든지 이뤄지고 있는 현재의 ‘평생학습사회’라는 조건에서 대안적 지적 공동체가 꼭 대학 안에서 만들어져야 할 필요도 없고, 어떤 면에서는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내부에만 천착해서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였던 故박지연씨처럼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이들의 문제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절대 소수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대학시절 가장 후회되는 일 하나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한 후배를 억지로 동아리연합회 학생회장에 출마하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교직이수를 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학생회 선거를 하느라고 학점이 미달되서 교직이수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싼 돈 내고 교육대학원을 다닙니다. 얼마 전에 그 친구를 만나니 나중에 선생님이 된 후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는 괜히 농이나 치며 나도 그 학교 취직시켜 달라고 했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그 친구의 꿈을 함께 꿔주지 못했던 나의 왜소한 학생운동의 기억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학생운동은 이렇게 ‘다른’ 꿈을 꾸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장광설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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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에 투고함. 아직 게재되지는 않음.

 

관련 글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9078

 

 

 

4. 양승훈의 글 

 

  

20대, 좌파, 학벌 그리고 돈
[진보, 야!] 조병훈-홍명교 논쟁을 읽고…"자유주의자라는 유령"

 
 
‘자유주의’ vs ‘혁명적 맑스주의’?

 지금의 구도는 홍 명교의 글만 읽어보면 마치 ‘진보적 자유주의자’ 조 병훈과 90년대의 언어로 ‘대장정/전국학생연대회의 /행진’ 출신의 ‘혁명적 맑스주의자’ 홍명교의 논쟁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문건’에 익숙한 사람들은 홍명교의 글이 ‘정합적’이라며 ‘개념 글’이라고 추어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연 그런가? 일단 조병훈이 ‘자유주의자’를 말할 때 ‘전통적인 좌파’가 ‘자유주의 계열의 운동’을 공격했다는 표현일 뿐, 그는 ‘자유주의’적인 어떤 것도 자신의 입장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다양한 부문 계열 운동’의 구체적인 ‘자유주의적’ 양상들을 언급하지 않는 이상 ‘자유주의자’라는 말이야 말로 홍명교의 말처럼 ‘유령’에 불과하다.

 그리고 홍명교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면 홍명교는 ‘자유주의자’ 범주 바깥의 운동, 예컨대 1990년대 <문화과학>과 ‘문화연대’ 그룹 같은 문화운동 진영, 반자본주의적 청년 생태주의자 ‘KEY’ 같은 좌파 생태주의자 그룹, 학생회 바깥에서 다른 방식의 ‘일상의 정치’를 말하기 시작했던 급진적 여성주의자들 등에 대해 ‘몽매’하다고 표현해도 억울하면 안 될 것 같다. “이런 입장은 뻔하다”라고, 그리고 “불만이 많았을 것”이라며 ‘도덕주의’라는 단어를 동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도덕주의적 비난’에 대한 이야기가 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성’ 이야기만 남는 것은 아닐까. 어떤 조직이 진정성 있게 ‘학우대중’과 함께 했냐며, ‘자본주의’의 회로를 타격했냐며 논쟁할 것인가?

또한 홍명교가 생각하는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그 근거에 대해서 입증 책임은 오롯이 홍명교에게 있다. 그것을 엄정하게 밝히지 않으면 ‘드잡이’만 하자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학생운동권의 정황에 대해서 ‘알고/모르고’가 쟁점이 된다면 학생운동권 바깥의 모든 사람은 아무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 “내가 겪어서 안다”라면서 이야기를 계속할 것인가?

 ‘메이저 캠’이란 말

 그런데 여기서 올 초 있었던 ‘김예슬 선언’이 생각난다. 아니 정확하게는 김예슬 선언을 조명하는 기성 언론의 기술하는 태도 말이다. 힐난하는 태도의 평가라며 욕을 먹었지만 ‘김예슬이 고대생이 아니었다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담겨 있었다.

 2000년대 초반 학생운동 선거와 관련한 ‘집계’를 해주는 사이트들(예컨대 http://stunet.jinbo.net-지금은 불통-그리고 다음 카페의 ‘학생운동’ 카페 http://cafe.daum.net/HAKSANG )이 있었다. 그 집계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늘 다른 결과들을 보여주었다.

 좌파 그룹의 학생 운동권은 늘 몇 학교(예를 들어 부산대, 상지대)를 제외하면 서울 인근의 몇 개 대학에서만 총학생회든 단과대 학생회 선거든 출마하고 당선이 되곤 했다. 절대다수 학교에서는 NL(한총련-한대련)과 비권의 경합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어떻게 되었나? 서울의 5~6개 학교만 ‘좌파’ 운동권이 남아있을 뿐 다른 학교에서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었다. NL도 다수이긴 하지만 거의 소멸했다.

 여기서 운동권에서 흘러 다녔던 ‘메이저 캠’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매번 어떤 운동권들은 ‘메이저 캠’에서의 학생회 선거 승리가 중요하다며 이야기하곤 했다. ‘유의미한’ 다양한 운동권들의 선거가 가능한 학교는 몇 개가 되지 않았다.

 1993년 한총련 출범 이후 NL이 한 번도 총학생회를 하지 않았던 학교가 서울대밖에 없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점이었다. 즉 굉장히 보편적으로 들리는 ‘NL/PD’라는 구도조차도 사실은 특정 몇몇 학교에서만 유지된 경향이었을 따름이다.

 가장 ‘좌파적’인 성향을 유지하려면, 한국사회에서 가장 ‘좋은’ 학벌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도 경험적으로는 성립이 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학생 운동가조차 거의 없다. 이렇게 보면 몇 학교의 학생운동 이야기를 전반적인 ‘학생운동사’처럼 1990~2000년대를 기술하는 것이야 말로 판타지에 불과하지 않을까. 얼마나 많은 지역적인 차이가 있는가. 게다가 대학 바깥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라면?

 20 대의 정치화와 돈

 좀 다른 시선으로 20대 혹은 젊은이의 ‘정치화’라는 걸 이야기 해볼 수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정치화’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했던 ‘메이저 캠’이 아닌 이상 기존의 ‘운동’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통상적인 ‘운동가의 자질’을 언급하자면 말이다.

 '헌신’적으로 대중들(학생이든 아니든)과 함께 뭘 하려면 늘 돈이 든다. 2000년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등록금은 인문계의 경우 200만 원을 조금 상회했다. 그런데 지금 2010년 대학생의 등록금은 500만 원에 근접하고 있지 않나.

 거기에다가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과 술 한 잔씩 마시고, 나름의 ‘정치적 활동’을 하기 위해서 드는 돈은 한 달에 얼마씩 들까? 1년에 드는 돈을 추산해 보자. 1000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등록금과 ‘활동비’. 결국 활동비를 벌기 위해서는 휴학을 하고 알바 하면서 돈을 벌거나 학교를 다니면서는 알바나 과외를 뛰어야 한다.

 여러 가지 종류의 알바를 하면서 학교를 ‘온전히’ 다닐 수 있을까? 그나마 과외가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조건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과외를 할 수 있는 조건은 서울에서는 ‘메이저 캠’ 몇 군대에 다니는 경우다.

 한 주에 2시간씩 두 번을 한다고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과외비는 40~50만 원 정도가 SKY 대학과 몇 군데 ‘상위권’ 대학을 다닐 경우이고, 이른바 ‘중위권’ 대학을 다닐 경우는 30만원 이내인 경우도 태반이다. 아, 물론 ‘운동’을 하지 않아도 과외를 하고, ‘운동’을 할 경우에도 과외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조건으로 학생이라는 신분과 운동을 동시에 재생산하기 위해서 물적 토대를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과외 아니었나? 그런데 한 건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고 최소한 2개의 과외는 뛰어야 하는 상황, 아니면 엄마한테 받은 용돈을 보태거나.

 물론 ‘물적 토대’를 만듦에 있어서 자기 손으로 벌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중간계급’ 이상의 부모가 있는 경우다. 5월 22일 있었던 '분개한 젊은 래디컬의 비명'에서 권용만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혁명은 엄마 돈으로!”라는 말을 비웃을 수 있을까?

 바디우를, 지젝을, 랑시에르를, 고진을, 발리바르를 읽었거나 말았거나 이 문제에서 아무도 자유로워지지 않았고, 그 강박은 대다수에게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구조적인 불안정 노동과 취업대란 상황에서 운동을 접고 고시나, 취업 준비를 선택하는 것도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그래서 결국 2000년대 이후 20대의 ‘정치화’와 관련해서 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 아무도 말하기 쉽지 않았지만 ‘돈’이었다. 학생회비를 연대하는 단체들 때문에 쓰거나, 어떤 정치적 ‘행동’을 위해서 쓸 때마다 여기저기서 문제가 되었던 것도 ‘운동’을 위해서 쓸 수밖에 없는 ‘운동권’과, 그 돈을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쓰겠다는 비권(비운동권)이 선거에서 붙었던 것이다.

 조병훈이 말하듯이 결국 어떤 정파의 운동권이든 학생회 선거를 할 때에는 ‘비권’과 닮지 않을수 없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 과연 ‘비난’이기만 할까? 그리고 이는 1985년 근처의 ‘학도호국단’을 철폐할 때의 학생회를 부활시키고자 했던 이들이 ‘운동’을 말할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기도 하다. (이와 레닌주의적인 조직론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나 이는 기회가 되면 다음에 하겠다.)

 학생회의 ‘정치화’가 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학생회에 기반을 두었던 학생운동들이 분해되어가고 것도 이해되지 않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학생위원회 같이 정당을 경유하거나, ‘행진’처럼 다른 방식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방식의 운동, 개인들 그리고 좌파의 정치

 또 젊은 세대들의 ‘운동’ 전반은 학교를 경유하거나, 혹은 하지 않으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선 기존의 ‘조합주의’ 운동으로 불리면서 맹비난을 받았던 ‘생협’도 재편되기 시작했고, ‘생태주의’라는 이념들을 흡수하면서 더 급진화되기 시작했다.그리고 그 안에서 다른 방식의 ‘반자본주의’ 운동을 꿈꾸는 코뮨주의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박가분을 위시한 ‘공동생활 전선’이 바로 그렇지 않나?).

또 다른 방향에서 ‘20대 당사자 운동’이랄지, 시민운동, 생태운동 계열에서 ‘급진화’되면서 등장하는 조류들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립’이라는 측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이념적 ‘급진성’보다 엄마와 떨어진 상태에서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이랄까. 그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나와 논쟁이 나오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게다가 기존의 ‘정치적인 것’ 바깥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 계발하는’ 주체였던 개인들이 조금씩 변하는 경우도 있다. 2008년 촛불을 계기로 진보 정당에 들어온 젊은 ‘개인들’이 있다. 이들을 ‘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노빠 출신이라고, ‘강남 좌파’라고만 할 수 있을까? 다른 명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많은 20대들이 진보신당 언저리를 많이 거닐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경우 여러 경향들의 젊은이들이 5월 1일의 두리반의 경우처럼 마주치면서 다른 방향의 ‘정치’를 상상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정치’에 대한 규정도 다음 기회에 이야기했으면 한다.)

 ‘자유주의’ 유령을 잡을 때가 아니라, 전통적 방식의 이야기 바깥,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급진적 정치’ 이야기들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보이지 않던 ‘몫이 없는 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오히려 기존의 진보정당과 단체들이 그들의 ‘생태계’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잘 모른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정확히는 학생운동권이 문제가 아니라 ‘윗세대 활동가’들이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아닐까. 그들을 기존의 좌파 담론의 프레임으로 분류하고, 평가하며 꾸짖는 습관의 문제 아닐까.

 이미 새날은 왔는데 해가 뜨지 않은 것만 같다. 그리고 당 내부의 젊은이들에게 진보정당은, 각종 진보적 단체들은 얼마나 ‘환대’를 하고 있는가? 매번 ‘자립적이지 못하’다며 뒷담화와 앞담화로 ‘20대 개새끼론’등을 외치는 좌파 단체와 진보 정당의 지도부는 과연 자기 공간 안의 젊은이들에게 얼마의 활동비를 주고 있나?

 ‘헌신’만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는 ‘문화적 감수성’이 중요하다면서 얼마나 많은 ‘문화비’를 주고 있나? 엄마한테 ‘의존’하는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삶의 존엄에서 조금 비껴나간 활동가들의 저소득의 ‘찌질한 삶’을 포장하는 것은 아닌가?
 

 

 

5. 홍명교의 재반론

 

 

 [구르는돌 비판] 멜랑콜리한 주체의 목적론적 반성
  2010/07/09 18:41
 
 
이 글은 http://blog.jinbo.net/rollingstone/?pid=325 에 대한 비판이다.
처음에 레디앙에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9059 이 올아왔고,
내가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9078 를 통해 비판했더니,
http://blog.jinbo.net/rollingstone/?pid=325(구르는돌) 글과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9123(양승훈) 글이 올라온 것이다.
곧 나는 '레디앙'에 본 글과 함께 양승훈 글에 대한 재비판도 투고하였다.
 


구르는돌님은 굳이 ‘족보’를 밝히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저와 같은 학번이고 같은 ‘족보’(?) 안에서 활동하셨지만, 저는 구르는돌님이 누구인지 조금도 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적 공유는 우리의 논쟁에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글을 읽고 불편했다니 안타깝습니다만, 이해는 됩니다. 구르는돌님이 글에서 ‘불편함’의 기억을 저 역시 갖고 있고, 안타까운 기억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전 그 글을 ‘자유주의자 일반’을 상정해놓고 쓰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들에게 그렇게 읽히고 있히고 있다면, 제 글실력의 문제입니다만, 저의 비판 대상은 ‘조병훈씨’였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공연히 역사 자체를 자유주의적으로 소환하는 태도 자체에 대한 비판이지, 현상에 대한 비판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도덕주의’를 짚고 넘어간 것이기도 합니다.
 
김예슬과 고시생은 한 끝 차이라는 말도 동의하고, 학생운동이 그 흩어지는 자유로운 개인들을 포괄하지 못하게 된 실력 저하의 문제도 동의합니다. 일단 그 전에 우리가 과연 완전히 자유롭게 '주체'인척하면서 학생운동에 대해서 '회고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다. 10학번들의 시대에 03학번이 끼어드는 것은 위험합니다. 어쨌든 제가 비판하는 것은 학생운동 비판 자체가 아니라, 그러니까 학생운동을 비판해선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학생운동 비판을 왜 이상한 방식으로 하냐, 였습니다. 다시 읽어보시죠. 저 역시 학생운동 활동가일때, 내부에서 수도 없이 반성적 비판을 했지만, 어떤 지독한 정체 상태 앞에서 지난한 좌절을 겪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좌절에 대해 우리는 무수히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구르는돌님의 비판은 엇나간 데가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과 ‘자유주의자’는 다릅니다. 제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말 그대로 ‘리버럴리스트’입니다. 오늘날 ‘진보’인 척 하는 이들의 대다수가 자유주의자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은지 되묻고 싶은 것이고, 저는 그것이 우석훈이 아주 쉽게 당사자운동이 주체로서 호명한 ‘88만원세대’로서가 아니라, 저 자유주의자 우석훈이 우스꽝스럽게 몽매화시킨 자기 자신들의 ‘썩은 유산’을 떠안은 좀비가 된 자들의 이름으로 ‘자유주의’를 돌아보겠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두 가지 유산을 떠안은 채 우리들의 20대를 출발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대학사회에서 어느덧 마이너리티 문화가 된 ‘운동권-공동체’라는 유산이고, 두 번째는 ‘자유주의’입니다. 전자는 모두 우리들의 책임으로 떠안겨져 돌아왔고, 386세대는 이를 전혀 모르는 척하지요. 나는 그 불발된 명명이 얼마나 합당했었는지 묻고 싶은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부당하게 우리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나는 아주 종종 타인에게 상처주는 이기주의자였을지언정 ‘세련되지 못하고 너저분한 20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 ‘패션좌파’담론은 괴이하게 ‘운동권’을 그 틀 안에 가두고, 그에 따르는 몇 가지 키워드는 항상 이런 것들입니다. “아직도 레닌을 읽냐”, “아직도 마르크스를 읽어?”, “왜 맨날 투쟁 투쟁 그러면서 팔뚝질을 한데?” 토가 나올 것 같습니다. 후자는 ‘자유주의’인데, 나는 저 무수한 분방한 개인들은 열렬하게 응원할지언정, 그들이 ‘자유주의’라는 유산마저 상속받으려 하는 것에 대해서는 온몸 다해서 막고 싶습니다. 제가 조병훈씨에게 던진 비판은 바로 이 지점에 있었으며, 그가 몽매하게 아버지-세대의 언어(자유주의적 비판)로, 학생운동 위기담론을 몽매화시키고, 분방한 개인들(혹은, ‘자유로운 영혼’?)을 이상한 지점으로 호명하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에 대해 보다 면밀한 이야기는 제가 오늘(7월 9일) 올린 양승훈씨 비판글에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 욕망에 따라서 ‘제 멋대로’ 활동하려는 이들”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자의건 타의건 자기 바운더리를 찾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부당하게 호명하지 말기 바랍니다. 쉬운 예로 자꾸 ‘자유로운 영혼’으로서의 김예슬씨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이것도 참 이상합니다. 그 분은 같은 과 후배였는데 자기 정치를 찾아 <나눔문화>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해온 사람이었으며 학생운동을 생각하는 ‘활동가’였습니다. 다만, 유명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단체라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예슬씨의 이야기는 제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귀기울일만 합니다. 저 역시 구르는돌님이 그랬던 것처럼 “진정 래디컬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혀 구르는돌님이 되물은 방식으로 말할 생각이 전혀 없고, 예전에 김예슬씨를 광화문에서 마주쳐서 레바논 파병에 반대하는 서명운동란에 싸인하고 반갑게 해후했듯이, 그의 삶도, 저의 달라질 삶도 긍정하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구르는돌님이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추측한 점은 비판하고 싶습니다.
 
근 4년간(저는 2006년 가을 어느날 새벽, 고려대 총학생회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오며 학생운동과 멀어졌습니다.) 저는 꽤나 오랫동안 자기혐오와 좌절에 갇혀 암흑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른 학교를 오고, 군대를 갔다오면서 보니 더 이상은 옛 친구들과 가까이 지낼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가운데서도 저는 제가 정치경제학, 사회과학보다는 인문학 공부와 영화 만들기에 더 많은 열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한예종에서 미숙하지만 새로운 시도들을 모색해보고 있습니다. 또 386세대를 향해, 저 자신의 실용주의를 향해 되돌아보았고, 최근에 지속적으로 ‘진보진영’ 안의 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말을 쏟아내 왔습니다. 저 혼자 끄적이는 수준이지만 한겨레hook에서,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혹은 제 블로그에서 말이죠.
 
그런 점에서 저는 김예슬씨로부터 삶의 용기도 얻었고, 구르는돌님이 자의적으로 추측하는 것과 반대로 학생운동을, 사실은 저 자신의 20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가 ‘교육투쟁’에 가담하는 것과 ‘자퇴’를 선언하는 것 사이에 무수한 고민의 시간을 가졌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리고 학생운동이 얼마나 부족하기에 그런 흩어진 불만들에 응대하지 못하겠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르는돌님은 그 흩어진 욕망들을 잘못 호명하고 있는데, 그 흩어진 개인들의 욕망들은 ‘자유주의’가 아닙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볼까요. 진보신당이 아직(그 당에 대해 일말의 애정이 있는 저는 ‘아직’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떨치지 못하고 있는 의회주의, 선거주의는 저 개인들의 다른 이름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저 ‘개인들’을 말할 때 자유주의를 호명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며, 저 빠져나온 돌부리들이야말로 운동이 나아가야할 지점이라고 도리어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는 구르는돌님은 저에 대해서 일정 ‘편견’을 지닌 채 말하고 있으며, 사실은 저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유독 구르는돌님만 이렇게 ‘저’라는 사람 자체의 표면 자체를 부당하게 제 텍스트로 끌어들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아주 당당하고 자신감 넘쳐서 발언하고, 데모질한 것이 구르는돌님이 알고 있는 홍명교라는 인간의 전부이겠지만, 혹여나 저의 그 자신감 이면에 항상 내재된 자기혐오와 우울증을 알고 계신지 묻고 싶습니다.
 
학생회가 맑스주의와 어울리지 않았다는 생각이시군요. 저는 되려, 맑스주의를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고, 우리가 정말 “맑스주의자답게” 학생회운동을 했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구르는돌님의 말은 핑계처럼만 들립니다. 사실 저는 “맑스주의다운 것”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만, 혹여나 우리는 그것을 역사의 어느 한 지점에 ‘정박된 것’으로서만 사고하고 있진 않습니까? 구르는돌님의 글을 보면 그런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바, 우리는 ‘대중 이데올로기’에 대해 조금도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저는 구르는돌님처럼 2000년대 학생운동이 무수한 구조변혁 실천들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저는 좋은 구조 변혁 사례의 싹들을 봅니다. 오히려 구르는돌님의 반정립적 태도야말로 저 실패의 사례에 속할 것 같습니다만, 오늘날 학생사회에서 대체 그 누구가, 이주노동자와의 연대나 학내 시설관리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실현’해냈는지요? 차라리 저는 저 모든 슬프고도 실패한 역사를 인정하고서라도 저 성공 사례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무릇 운동, 연대란 하나 하나의 ‘성공 사례’, 모종의 ‘증거’를 바탕으로 커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구르는돌님은 “학생운동의 거점이 학생회는 물론이고 대학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말씀하시며 ‘20대 일반’에서의 정치를 말씀하셨는데 일견 동의하면서도 굳이 존재 조건으로서의 대학을 부정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이것은 객관적 조건입니다. 대학에 다니지 않는 이들의 영역에서의 운동도 절실하고, 학생운동도 아직은 20대 대중운동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많은 이들의 삶의 조건이자 배경이지 않습니까. 한 끝으로 몰고가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맨 끝에 첨부하신 개인적 경험담은 너무 멜랑콜리(melancholy)해서 참으로 듣고 있기 힘듭니다. 저야말로 과오로 얼룩진 학생운동을 했었지만, 그런 얘기는 그렇게 회고하듯이, 과거를 후회한다는 듯이 얘기하면 안 됩니다. 어느덧 예기치 않게 구르는돌님은 멜랑콜리하게 학생운동을 반성한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꼰대 선배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채감으로 저 학생운동에 얘기한다고 한들 저 무수한 386세대들이 그렇게 하듯이 멜랑콜리한 태도를 보여주면 되겠습니까? 발터 벤야민에 의하면 그것은 역사 자체를 ‘진화주의’적인 것으로 보는 가장 근본적인 태도입니다. 과거가 원인이고, 현재가 결과이지요. 그리고 미래는 항상 ‘기대’를 품고 내다보는 창입니다. 왜 멜랑콜리해야하는 것이죠? 그것이 과거나 미래를 바꿔주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저는 구르는돌님이 보이는 이런 인과론적이고 목적론적인 태도마저 부정하고 싶습니다. 정말 우리가 같은 ‘족보’에서 활동하기라도 했었던 걸까요? 제가 보기엔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6. 양승훈의 글에 대한 홍명교의 반론

 

 


"내가 비판한 건 '유령'이 아니다"
386 자유주의 맞서, 20대가 할 일
[양승훈에 답함] 담론에 대한 실용주의적 독해를 비판하며


글을 잘 읽었고, 문제의식도 이해되었지만, 글이 너무 중언부언이라서 하나하나 다 집어서 종합적으로 말하기가 난감하다. (이런 말하기 참 미안하지만) <레디앙>에는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지만, 난독자이거나 자기 논리도 정리하지 못한 채 발설되는 글이어서는 안 된다.

일단 양승훈씨는 대체적으로 내 글에 대한 '비판' 성격으로 그 글을 썼는데, 내 글이 지목하고 있는 바에 대해선 전혀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냥 다른 얘기하는 것 같은데, 돈 이야기와 운동권 학생회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일정 부분 내 생각을 자의적으로 '가늠'하면서 쓰기도 했다.

그래서 좀 황당하고, 왜 잘 읽어보려 하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그래서 참 난감한데, 일단 그가 댓글에서 스스로 그 글의 핵심 주제라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나머지 몇 가지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비판하도록 하겠다.

자유주의야말로 '아버지 세대'의 것

그는 마치 내가 전통적인 방식, 아버지 세대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다소 엉뚱하다. 만약 편의상이라도 386세대에 대해서 그렇게 '아버지 세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내가 보는 아버지 세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유주의적'이다.

그들의 근본적인 멘탈은 91년을 경과하면서 '자유주의'로 기울었다고 생각한다. 소비에트연방을 사회주의의 고향으로 상정했기에 그 체제의 몰락이 자기 근본을 뒤흔든다고 생각했고, 91년 열사 투쟁의 심대한 후퇴 상황을 목도하면서 하나같이 절망했다.

물론 오늘날 '좌파 진영'에 제목소리를 내며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극소수'이며, 결코 '아버지 세대'를 대표하지 못한다. 내가 보는 바, '윗세대'의 멘탈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의심의 여지없이 '자유주의, 노사모, 반MB'이다.

이 지점에서 나의 심상정 비판도 삐져나온 것인데, 따지고 보면 최근에 그가 보이는 행보들은 이 주류 정신에서 한 치도 벗어나고 있지도 못하다. 나는 바로 이 정신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유령'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들을, 진보진영을, 혹은 시민사회운동판을 뒤흔들며 모든 의제를 좌지우지하는 게 바로 이 정신 아닌가. 나는 이 정신을 혐오한다. 이것과 완전히 단절해내지 않으면 새로운 세대의 운동도 없고, '진보정당 수권' 따위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적을 명확히 목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잃지 않은 가운데, 자기 안의 자유주의, 자기 밖의 자유주의와 싸울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자유주의 비판은 '아버지 세대의 언어'가 아니라, 되려 충분히 우리 세대의 언어가 될 자격이 있는 '언어'이다.

양승훈씨는 (필자가 쓴 글의)댓글에서 "자유주의’ 유령을 잡을 때가 아니라, 전통적 방식의 이야기 바깥,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급진적 정치’ 이야기들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보이지 않던 ‘몫이 없는 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했다.

아니, 자유주의는 유령이 아니다. 오늘날 자유주의는 실용주의, 실용적인 노선, 실용 전략, 당장 실행 가능 목표 따위의 이름으로 소환되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MB만의 이념, 4대강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좌파 내의 실용주의들

예를 들어볼까. 심상정의 사퇴 논리는 얼마나 실용주의적이었는가. 또 저 유명한 '반MB전선'이라는 전략은 얼마나 실용주의적인가. 자기 정치의 내용은 모두 다 제거시키고 '실용주의'만 남은 것이다. 심지어 내가 거의 몇 안 되게 희망을 안고 투표했던 곽노현 교육감은 얼마나 실용주의적인 노선을 보여주고 있는가.

요컨대 이미 그것은 우리 안에 침투했다. 실용주의라는 철학, 자유주의라는 이념에 있어서 저들은 모두 한 패거리이다. 심지어 학생운동 위기를 둘러싼 근본 없는 '회고담'에서 우리는 얼마나 '위기'에 대한 '위기'를 연상시키는 실용주의적 담론을 목도하고 있는가.

위기를 바라 보는 조병훈씨의 태도는 실용적 독해를 노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점에서 양승훈씨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메이저캠 학생운동의 돈 문제 이야기를 하다가 김예슬 이야기하는 건 지나치게 편의적인 발상이다.

김예슬의 선언은 스스로 자기 존재 조건에서 제 나름의 저항 양식을 창출해내려 했다는 점에서 긍정되는 것이지, 대체 그게 왜 '고대생이니까 그렇게 주목받는 거지'라는 식으로 발현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야말로 진상이고, 그럼 뭐 강남 살고 먹고 살기 편하니까 문화 비평도 하지, 라는 식으로도 말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참으로 안이한 '읽기 방식'이다. 나는 이미 이 전 글에서 그 모든 것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이야기 바깥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양승훈씨가 나의 첫 번째 글을 읽으며 그것이 마치 모든 '새로운 흐름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여겼다면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거나, 그가 잘못 읽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리반을 비롯한 흐름에 대해서 긍정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어쨌든 이 새로운 흐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양승훈씨는 그것이 '전통적 방식의 이야기 바깥'이라고 말했는데, 설령 나의 세련되고 새로운 자유주의/실용주의 비판이 '전통적'이라고 느끼는 걸 취향으로서 인정해준다고 해도, 그들이 정녕 '이야기 바깥'인지는 의심해봐야 한다. 요컨대, 대체 '이야기 바깥'이란 게 어디 있는가?

최근 나의 일상은 이 '새로운 흐름'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데, 그럼 난 '이야기 바깥'인가? 그는 전반적으로 구조 안에 함몰된 태도를 보이면서, 구조주의적이진 못하다. '외부'나 '탈주' 운운하는 최신 철학 이념과 자기 안에서도 해명되지 못하는 뒤섞인 개념이 서로 혼동을 겪고 있는 것이다.

추상적인 말만 남발할 게 아니라, 잘 생각해야 한다. 이미 '이야기'는 우리가 '새롭다'고 말하는 저 '새로운 흐름'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오늘날 <프레시안>이나 <레디앙> 같은 좌파 성향의 인터넷 매체들 중 그 누구가 '학생정치조직'의 운동에 대해서 말하는가. 두리반이나 파티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올드한 찬양

그가 다소 매너 없게 신상적인 면에서 내 정치 스펙트럼을 규정하려고 해서 별 도리 없이 이야기하자면, 지난 3년 여간 확실히 나는 후자 쪽(소속 없는 개인들의 놀이터)에서 놀았고, 그들과 친하게 지낸다. 나는 과거에 다니던 대학에서 '전국학생연대회의' 활동가군으로 불리는 축에 속해 활동했지만, 양승훈씨가 말하는 '대장정'이 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학생행진 회원도 아니다.(만약 舊대장정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는 확실히 잘못 알고 있거나 ‘정보과 형사’스러운 짓을 하고 있다. 수정하기 바란다.)

오히려 그의 규정 따위가 정말 쌩뚱 맞게 느껴질 뿐이다. 그런 면에서 그야말로 올드(old fashionable)하다. 그러나 대체 그런 구분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오히려 나는 양승훈씨나 조병훈씨가 '새로운 흐름' 운운하면서 '대상'에 대해 다소 '도구주의'적으로 이야기하다가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대체 혁명적 흐름을 만들어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섹시한 파티들은 이미 100년 전에도 있었고, 68년에도 있었다. 그것들이 섹시하고 재미있을지언정 여러분이 갖고 있는 저 '대상'에 대한 도구적 환상은 정말 섹시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나는 그 '찬양'이 지겨울 지경이다. 찬양하기 전에 그냥 말없이 놀면 될 것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찍이 90년대 중반에 학생운동의 PD 계열 일부가 이미 '저것'보다 더 섹시하게 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과거의 자료들을 확인해보기 바란다.)

그 당시 학생운동 문건과 자료들에는 무수한 문화담론이 있었다. 얼마나 풍부했었는가. 만약 아주 잠시 구질구질한 시기가 있었다면 2000년대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어쨌든 그 새로운 흐름에 대한 물신과 지나친 환상, 절대화가 대체 뭘 가져왔단 말인가.

나는 저 재미있는 놀이들과 그 놀이들의 주체들은 긍정할지언정 여러분의 망상은 지지하기 어렵다. 한동안 '패션좌파' 운운하던 우석훈의 제자들이 연세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해서 얼마나 올드하게 놀았는지 나는 익숙히 들은 바 있다. (<유쾌한 반란>이었던가? 한 15년 전쯤 저 올드한 운동권들이 그런 식으로 놀았던 것 같은데!) 그 '망상'의 신화야말로 이데올로기적 전복을 방해하는 물신화된 도구주의의 '이데올로기'이다.

흔들리는 주체

돈 문제 이야기하는 건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뭐 이상한 방식으로 논리를 정리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학생회 운동이 돈의 문제로부터 허우적댔다는 말은 맞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드러나는 문제들 중 하나였을 뿐 모든 것을 환원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원인은 되지 못한다.

그러면서 진보신당 언저리에 여러 개인들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들을 모두 싸잡아서 '자유주의자'라고 명명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양승훈씨의 오독일 뿐이다. 나 역시 부르주아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한동안 노사모 회원이었고, 오랫동안 자유주의자였다.

그나마 행운을 얻어 급격한 변화를 겪을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보적 자유주의자로서만 살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학생 대중운동이 망하니 개인들은 방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나는 소속이 없다. 내 주위의 무수한 좌파적 견해를 지닌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새로운 흐름'이라고 운운하며 찬양하거나 지나친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 새로운 주체가 어떻게 하여 스스로의 삶들을 '정치화'시키는가를 주목하고 우리 각자도 실험해나가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바깥'에 대한 망상을 부디 버리길. '현실'에서 ‘이야기의 바깥’ 따위는 없다. 바깥의 경계에 다가서는 탈구조적 운동만이 있을 뿐이다. 그 운동 자체를 긍정하는 나는 그 '보잘 것 없는' 실험들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지 못하고 자유주의적 포션과 실용주의적 시선으로 '과거'를 '과거'로서만 바라보는 행태를 갖는 것과 멜랑콜리한 망상을 갖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과거가, 정말, 끝났다고 믿는 것인가? 과거는 끊임없이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내가 말한 '유령'의 진정한 의미이다.

자립에 대해서

끝으로 다소 독해하기 어렵게 배열되었지만, 자립에 대한 양승훈씨의 고민의 뿌리 자체는 지지하고 싶다. 양승훈씨는 “새날은 왔는데 해가 뜨지 않은 것만 같다.”고 말한다. 진보정당과 단체들이 젊은이들이 자립적이지 못하다고 비판만 하지 환대하고 있진 않다는 것이다. 저 윗세대가 20대에게 ‘헌신’만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환대 따위 별로 욕망하지도 않는다.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이란 말인가? 나에게 있는 욕망은 그저 저 ‘빨간색’이나 ‘주황색’, 혹은 ‘노란색’이나 ‘연두색’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이들 중 대다수를 점하는 멍청한 자유주의자 아저씨들을 끌어내리는 것뿐이다.

최근에 심상정 씨의 자유주의적 망상으로 가득 찬 토론회 기사를 보고 더욱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되었고, 만약 이 오래된 ‘위기’가 종지부를 고하기 시작할 수 있다면, 그들을 끌어내릴 주체는 다름 아닌 ‘젊은이들’이 되어야만 한다.

양승훈씨의 말처럼 그들의 훈수는 20대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칭찬도 모종의 냄새가 느껴지기 일쑤다. 그러나 양승훈씨의 말은 어떤 갈구처럼 느껴진다. 돈을 달라는 것인데, 그건 너무 현실에서 많이 벗어난 투정처럼만 느껴진다.

그저 우리는 앞으로 꽤 오랫동안 가난하게 버틸 수밖에 없다. 김슷캇이라는 분은 ‘입당’보다는 ‘개드립’을 권하겠다는데, 오타쿠들의 ‘자위’가 지긋지긋한 나는 ‘개드립’은 추천할 수 없고, 차라리 ‘가난한 좀비들’이 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작년 겨울 군복무 중일때 나는 TV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알려진 바에 의하면(<나는 전설이다> 감독 에디션) 좀비들은 사랑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떼거지로 달려가 저 합리적인 인간들을 습격하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헌신한다는 것이다.


    2010년 07월 12일 (월) 07: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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