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말 마지막, 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끔찍한 일도 조금은 더, 며칠은 더 견딜 수 있었다.
많은 영화제에서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그리고 영화제 밖에서도 여러 곳에서 '돌속에갇힌말'을 상영하게 되었을 때, 고마움의 무게만큼이나 고통스러웠다. 촬영이나 편집의 기술적 수준을 질책하는 분들 앞에선 할 말이 없었다. 당시 상황을 놓고 '나, 지극히 개인적인 나, 구멍 나고 흠집이 생겨 지금도 일그러지고 있는 어떤 나' 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기엔 스스로 돌아봐도 부끄러운 것이 많았다. 어딘가 이상한 그 영화에 대해 궁금해하는 눈 앞에서 늘 당황했다.
첫 상영을 앞두고, 가깝다고 생각했던 한 분으로부터 '재수없는 영화'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 작업실 가까이에 살면서 '나도 당시 현장에 있었지만 투표함의 행방은 모른다'고 2-3년 동안 딱 잡아뗐던 사람이 '사실은 그날밤 택시를 타고 선배들과 같이 그 투표함을 어떤 분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고 털어놓아 숨이 넘어가는 걸 간신히 참았던 장면,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그 땐 다 이렇게 고생했다, 뭘 이렇게 혼자 힘들었던 것처럼...'이라고 (아마도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충분히 왜곡되었을 내용이지만) 짜증내더라는 이야기 , 그리고...또...덜컥, 거리다 지우고마는 몇 가지 아리고 쓰린 장면들.
'돌속에갇힌말'을 손에서 놓고 나서, 뭔가를 해내서 기쁘다거나 묵은 숙제를 마무리해서 홀가분하다거나 하는 마음도 물론 조금은 있었지만, 여기 저기서 뺨을 내어달라는 것만 같아 어리둥절했다. 가족들의 걱정과 지인들의 반대와 여러 사람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매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기어이 그 일을 해버린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더 많았다.
지난 4월 참사로 가족 중 하나를 잃고 먹지도 눕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분들에게 '그만해라, 이제 좀 조용히해라, 돈을 바라냐?'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모욕을 감수해야하는 것이 남은 자들의 몫일까. 그런 무례를 무릅쓰고라도 낯선 이들 앞에 서서 '진실규명'을 외쳐야하는 어떤 숙명, 어떤 사회적 책임, 그리고 그들 각자가 가진 저마다의 고민과 갈등.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속이 끓어올라 감당하기가 몹시 힘겹다.
그들이 왜 거기 있는지, 꼭 당신이 똑같이 겪어야만 공감할 것인가.
옆에 있지 못하더라도, 잠시라도, 고개를 끄덕여보자.
사람이니까, 그렇게 하고 있다고, 나도 조금은 안다고.
적어도 이 일에 관해서만은, 조언이나 비판보다, 공감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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