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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시 <푸른영상>사무실에 다닐 때

은기, 라는 친구가 있었다

사북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던 그 친구는

어느날 노가다 알바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지하철 역에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오늘, 또 다른 사람의 죽음을 들었다

나는 언제 어떻게 사라질까

 

 



은기는 나와 동갑이었고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사무실 청소도 열심히 하고

기획안 작업도 꾸준히 했다

회원소식지를 발송하게 되면

주소목록을 뽑고 붙이는 단순노동을

말없이 독차지하곤 했다, 고 기억한다

하지만 기억이란 것은

미화되거나 왜곡된다

내 방에는 은기와 김동원 선배, 김태일 선배와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놓여있는데 

게을러지려고 할 때 마다 그를 떠올리려고 애쓴다

애를 쓰지 않으면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멀어진 시간, 멀어진 마음이 가슴을 먹먹하게도 한다

 

김경률 감독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은기와 달리 기억해야할 아무 것도 없다

서울독립영화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상영작 목록에서 <끝나지 않은 세월>이라는 제목을 본 것 말고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뇌출혈로 쓰러진 그의 소식을 접하고 할 말을 잃었다

 

며칠 전, 사흘 동안 한 숨도 자지 못했을 때

'이러다 죽으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다음 작품을 만들어보겠다고 무리해서 온갖 알바를 하고 있지만

이러다가 작품은 커녕 사람노릇도 못하게 몸이 망가지면 어쩌나 하고...

하지만 그건 아직 살아있는 자의 사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작지원제도가 많아졌다고 한다

조만간 독립영화전용상영관이 설립될 것이라고 한다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가 많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한 사람, 또 한 사람의 목숨은 구하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그저 눈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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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5 02:29 2005/12/05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