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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특집 10

- [돌 속에 갇힌 말-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 사건]  


  영화는 ‘87년 이후 구로구청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는 감독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빠른 영상과 강렬한 음악이 관객을 긴장하게 한다. 구로구청에서 감독은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 영화는 ‘광주 민주화운동 만큼이나 중요했다’고 표현하는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사건을 과거에서 현재로 불러오고, 관객은 감독의 기억에 차근차근 접근하게 된다.

  영화는 목적이 뚜렷하다. 그때 구로구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재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혼란스럽기도 한데, 감독은 무엇을 먼저 말하고 무엇을 결론 내려야 하는지 괴로워하는 것 같다. 영화는 일단 구로구청 주민들의 인터뷰로 시작하지만 주민들은 ‘많이 싸웠다더라 데모가 컸다더라’ 식으로 사건을 희미하게만 추억할 뿐이다. 감독은 당시 데모에 참여했던 사람을 인터뷰한다. 어떤 사람은 일이 있은 후 서울을 떠나 몇 년 동안 칩거 생활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알콜에 의지해서야 인터뷰를 응할 수 있었다. 그동안 파묻어놨던 어두운 기억을 끄집어내듯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말을 꺼낸다. 이제 영화가 혼란스러운 이유가 드러난다, 감독 역시 여전히 고통스러운 것이다. 다시는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을 되짚는 작업이 힘겨운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그때는 87년 12월 16일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표 한 장에 10만원씩 주는 돈 거래가 오가던 부정선거가 이뤄지던 때였다고 사람들은 증언한다. 결정적인 사건이 구로구청에서 일어나는데, 빵 뭉치로 위장된 투표함이 봉고트럭에 실려 투표장을 나가려다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에 항의하는 농성이 이뤄지고 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부정선거의 현장을 알려야한다는 판단아래 6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인다. 영화는 이 사실을 여러 인물의 인터뷰와 기록화면과 사진을 이용해 숨 가쁘게 추적한다. (개중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인 김희선씨나 유시민씨 같이 익숙한 얼굴도 있다) 영화는 이 증언 중에 거짓말도 있고 잘못된 기억도 있다고 반박하거나 때로는 인터뷰 대상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혼란이 존재하게 된 건 18일 새벽에 일어난 일 때문이다. 영화가 되짚기 두려워했던 그 처참한 순간, 그러니까 공권력이 투입돼 무자비한 진압이 이뤄진 순간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은 미리 소문을 듣고 빠져나갔지만 현장을 잘 모르던 어린 대학생과 지역 주민들만 남아있던 상태에서 무참히 진압이 이뤄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당시의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검은색의 암전 속에서 우는 소리와 비명, 고함과 소란스럽게 부서지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의문이 떠오를 무렵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이 전경을 피해 캐비넷 안에 숨어 있는 중이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이것이 20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영화는 수많은 질문을 풀어놓는다, 그때의 부정투표함은 어디 있을까, 그때 사상자는 몇 명이었을까, 지금 거짓말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많은 사람과 기록과 사진을 통해 재구성 하는데도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나중에 공표된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강한 의혹이 때문이면서, 또한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존재하는 육체적 정신적 상처와 후회와 죄책감 같은 감정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뒤섞이면서 우리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그 말들은 모두 돌 속에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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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jinbo.net/hyunhyun/


제목 : 돌 속에 갇힌 말-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사건 Words Kept In A Stone Sit-down Strike Against An Illegal Ballot In Guro Ward District
감독 : 나루
정보 : 2004 / DV / Color / 70min

2007/03/20 13:26 2007/03/20 1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