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올라온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의 월례포럼 공지를 읽다가 엄청나게 당황하며 글 씀.
"여성인력 활용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는 대부분 간병, 보육, 서비스 등의 '여성적'인, 즉 주변화되고 보조적이고 소위 숙련이 필요없는 일자리입니다"
[소위 여성의 노동이라 일컬어지는 돌봄노동은 과연 무엇인가?]
돌봄은 사람이 사람을 보는, 자신의 욕구가 아닌 타인의 욕구를 들여다봐야 하는 타인지향적 노동이다.
돌봄을 노동이라 칭할 때 마르크스가 칭하는 필요노동에 배치될 이 노동은 다른 노동이 목적 충족을 위해 생산물을 내는 것과는 달리 그 자체가 목적인 생산물(즉, 사람)에 노동이 투여된다.
따라서 이 노동은 자동화나 여타의 기제를 통해 감소나 효율화될 수 없는, 투여되는 시간을 줄이면 바로 목적 자체가 훼손되는 노동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필요노동의 '0', 자유노동의 추구, 자기 실현의 노동에 다다름과 같은 노동의 변증법 상으로는 해소되기 어려운 점이 명백히 존재한다.
또한 이 노동이 서비스 노동과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지점은 바로 그 필요성이라는 부분과 더불어 긴급성과 강제성을 들 수 있다.
즉, 남편에게 제공하는 밥상은 서비스지만 아이에게 제공하는 식사는 돌봄으로 볼 수 있는데(물론 몇몇 아내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찾기 위해 남편의 밥상을 돌봄으로 탈바꿈시키는 경우도 있다지만),
돌봄이 제거되면 돌봄받는 대상은 결정적인 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으로는 아이에게 계속 밥을 안주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긴급성과 강제성은 특정 윤리(주로 가족주의겠지?)나 심리학에 묶여 착취 이데올로기를 양산한다.
집에 누워있는 노모를 돌보지 않으면 외부에서 욕먹는 것은 당연하지만, 더불어 자연스러운 측은지심 발동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옆에 노모가 있기 때문에 나의 자기 실현과 전혀 관계없어도 반드시 돌봄노동을 행해야 한다.
즉, - 늘 여성에게 부과된 - 돌봄을 제공하는 자는 착취에 취약한 집단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 '늘 여성에게 부과'되었다는 점에서 여성적 노동이란 주변화되고 보조적이고 숙련이 필요없는 노동이 아닌,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오랜 전통의 전수와 각종 윤리의식과 심리적 작용을 통해 여성이라는 나름대로 숙련된 - 또는 숙련이 기대되는 -, 그리고 피권력자인 집단에게 매우 필수적인 노동으로 강제되어 온 셈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는 일자리입니다"
[돌봄노동의 공공성을 제기하는 이유]
돌봄노동에 대해 공공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단순히 종사자의 정규직화나 여성의 업무(?)라는 것을 덜어주기 위한 개념이 아니다.
(물론 닥친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점도 존재하겠지만)
지금까지 돌봄을 포함한 필요노동이 분배되는 과정은 모두 잘 알 것이다.
계급, 인종, 성별에 따라 착취자가 피착취자로 하여금 필요노동에 종사하게 하여 자신의 필요노동을 줄이는 방식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노동은 자연스레 피권력자, 유색인종, 여성에게 부과되고 착취되어 왔다.
따라서 돌봄노동은 '주변화되고 보조적이고 숙련이 필요없어서' 저평가된 것이 아니라, 착취를 내재한 노동의 하나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피착취자에게 그 몫이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건가?
돌봄을 제공하는 자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설사 '그 일이 좋아서' 시작한 자라 할 지라도 적합한 보상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지치게 된다.
하지만 돌봄노동은 누군가 대신할 수 없는 상황과 지속적인 요구가 발생하게 된다.
돌봄노동자는 항상 고민하게 된다.
이 '자기착취적 노동을 해소'해야한다는 생각과 '돌봐야한다는 윤리' 사이에서...
그리고 '돌봐야한다는 윤리'가 언제나 승리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돌봄이 제거될 경우 결과는 매우 심각하지만
착취에 자신을 내버린 결과는 스스로 자괴감이 들 지언정 돌봄의 제거보다는 덜 긴급하고 덜 위험한 것이다.
(물론 계속 쌓이면 정신질환에 시달릴지도...)
따라서 돌봄노동자가 매일 빠지는 딜레마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돌봄에 대한 착취 문제가 제사회 문제로 인식되어져야 하며, 결과적으로 돌봄노동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평등하게 분배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의 공평 분배는 공산주의 사회의 탁아소같은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탁아소같은 역할 분담 방식은 결과적으로 사적 돌봄(육아, 가족구성원 돌봄등)에 있어서의 역할 분담으로 이어지고 그 역할에 '여성'이 배치되는 것은 우리가 익히 많이 보아온 수순이다.
(탁아소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공평 분배의 의미를 설명했을 뿐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아마도)
돌봄이라는 영역은 타인지향적이고 매우 착취적 노동이지만 매우 근본적인 필요 노동이며, 그 긴급성과 강제성으로 인해 주변인은 - 괴로움을 감내하고라도 - 해내야 하는 노동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당연히 이 '여성만의 것이 아닌' 노동에 대해
순전히 '여성의 업무(?)'를 덜어주기 위해
보육시설을 많이 짓고 복지관을 투명화하고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줄어들지 않는 부담의 노동은 계급과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여 나누는 수 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남녀 역할 분담을 통해 이루어지는 피의 역사가 아닌,
전사회의 머리 속을 뒤집어서라도
전 사회구성원이 돌봄의 의무에 엮일 수 밖에...
* 참고자료 : 노동으로서의 돌봄(care)에 대한 여성주의적 이해를 위해서
(제가 위에서 주저리주저리 적은 건 모두 위 참고자료에서 나온 소리들입니다.
훨씬 정돈되고 깔끔. 강추~!)
위 참고자료에 의하면
돌봄을 시민적 의무로 받아 여성,남성 모두가 일생 일정 기간을 '돌봄서비스'에 참여하도록 하는 사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국가가 제공하는 돌봄만이 아닌 ...
(끔찍하죠?^^;;)
여성위원회 4월 월례포럼 진행합니다. | |
2005.04.19 사회진보여성위 | |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4월 월례포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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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2005/04/23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정권은 이런 조건을 은폐한 채, 여성들에게 무조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식으로 정책을 펴고 있지요. 그리하여 나온 여성인력 활용방안이라는 것이 현재 여성들이 처한 이중착취의 조건을 개선하기는커녕, 이런 조건을 더욱 활용하려한다는 것입니다. 보육, 간병, 서비스와 같이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해야 한다고 여겨진 일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손쉬운 일이라는 관념 속에 평가절하되어 왔고(소위 숙련이 필요없는 일), 이는 이런 일에 대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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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2005/04/23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제안서에 쓴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지점을 지적하려는 것이었지, 돌봄 노동을 평가절하하는 의미는 아닙니다(저는 제안서의 전반적인 맥락에서 저의 문제의식이 아주 잘못 전달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여 여성을 고용하겠다는 것만으로는 여성의 빈곤을 해결하거나, 여성의 노동권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가 쟁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님께서 밝혀주신 입장은 이에 대한 답이고, 같이 토론해봐야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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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jineeya님의 [사회진보연대의 돌봄노동 정의(?) 또는 기술(?)에 이의를 제기하며] 에 관련된 글입니다. 생각해 볼 문제 1. 돌봄의 대상이 지니는 자율성에 관하여 2. 전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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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jineeya님의 [사회진보연대의 돌봄노동 정의(?) 또는 기술(?)에 이의를 제기하며] 에 관련된 글입니다. 올려주신 자료는 잘 읽어보았어요. 제가 고민이 짧아서인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