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만화영화책 - 2004/08/31 17:55

차마 두눈 뜨고 볼 수 없었던 하늘...
- 영화 [엘리펀트] 관람기 - 

 

평온함

 

고요한 음악과 깨끗한 구름이 빛나는 하늘...
흘러가는 영상이 마치 나의 눈을 통해 들어와 머리로, 심장으로, 팔다리로 '평온'이라는 혈액을 전달해주는 것 같다.


 



 

답답함

 

나른해짐도 잠시, 이내 카메라는 지상으로 렌즈를 돌린다.
시원하고 깔끔하게 구획된 마을의 모습이 무색하게도 가까이 줌인한 카메라에 비친 모습은 술취한 아버지를 간신히 달래 차키를 움켜쥐며 한숨을 몰아쉬는 소년이다.
그를 따라 들어간 학교의 복도를 거닐다보면 평범한 듯 평범치 않은 이 시대 고등학생들의 군상이 스쳐간다.
인기 커플, 왕따당하는 소녀, 사진찍고 현상하는 소년, 거식증 소녀들, 세미나중인 소년소녀들, 그리고 학교에서 총격전을 준비하는 소년들...
어두운 복도를 따라 아이들의 일상적 모습을 쫓다보니 왠지 모를 벽이 느껴진다. 진정 소통이 필요할 때 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 답답하다.

 

 

공포스러움

 

집에 도착한 총기를 시험하고 옷을 차려입고 학교를 향하는 두소년들...
그들에겐 살인자의 잔인한 미소도 영웅처럼 보이고 싶은 오버액션도 없다.
그저 평범하고 무표정한 고등학생의 얼굴일 뿐.
하지만 그들이 내달리는 복도, 그들을 피해 내달리는 아이들은 고통 그 자체다.
결국 손에 쥔 전단지로 눈을 가릴 수 밖에 없었던 공포스러움.

 

싸늘함

 

마지막 희생자들의 주검이 예상되며 천천히 바뀐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에서 보여줬던 맑은 구름의 하늘. 그 하늘의 절반은 움켜쥔 전단지 때문에 보지 못했다. 더이상의 희생자를 보기엔 가슴이 너무 쓰려서.
'평온'이라는 이름의 혈액은 '한기'로 변해버렸다.

올 여름, 그 어떤 호러물보다 공포스럽게 본 영화.

 

참으로 더럽고 화창한 날이로다~!

 

---------------------------------------------------------------------
* 영화 [엘리펀트]는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의 총기 난사사건을 영화화한 작품. 감독은 구스반산트.

* 사진 출처 : 씨네2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4/08/31 17:55 2004/08/31 17:55
TAG , , , ,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jineeya/trackback/94
  1. Subject: 엘리펀트

    Tracked from 2004/09/05 01:34  삭제

    jineeya의 차마 두눈 뜨고 볼 수 없었던 하늘...- 영화 [엘리펀트] 관람기 -에 트랙백. 보고 싶었던 영화 "엘리펀트"를 드디어 관람. 일반적으로 영화를 먼저 보고 영화평을 읽는 것이 순

  1. neoscrum 2004/08/31 2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서워'도 영화 괜찮죠? 저야 맨날 인터넷을 통해 구해서 보니깐두루 벌써 몇개월 전에 보긴 했지만.. 괜찮은 영화로 기억해요. 제 기억에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무서웠던 건 '라이언 일병 구하기'였어요. 영화관에서 도망가고 싶었음.

  2. 레니 2004/09/01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고 싶은 영화 중에 하나인데... "볼링 포 컬럼바인"과 비교한 영화 평들이 많이 올라와 있더라구요. 난 누가 휴가 안 주나;;;

  3. jineeya 2004/09/01 1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eoscrum/응 꽤 볼만. 롱테이크도 편집도 내용을 잘 살렸다고 생각해요.
    레니/왠지 neoscrum과 레니의 정보공유 파일서버 하나 구축했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__^;;

  4. rivermi 2004/09/02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희의 영화평 수준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거같다.허허허허...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때문에 더 슬프고 처절해서 오히려 괴로워하며 보다...나 고맙지? 지희야?

  5. jineeya 2004/09/02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ivermi/음훼훼.. 별말씀을... 말장난수준이죠. 캄사캄사

  6. neoscrum 2004/09/02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때 약 3000여편의 영화를 수집한 적도 있으나.. 작년 말 정도 부터는 그 수집병이 시들해져서 요즘은 그냥 보고 지우는 편이에요. 한참 모을 당시에는 사무실에서도 일주일에 한차례 정도씩 계속 상영회를 갖기도 하고 그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