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8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25
    <청두2> 이건 서비스 버전이다^^(12)
    제이리
  2. 2006/04/12
    <송판> 결국 싸우고 헤어진다(9)
    제이리
  3. 2006/04/12
    <구채구> 물빛이 장난이 아니다(5)
    제이리
  4. 2006/04/12
    <청두> 다시 봄날이다(5)
    제이리
  5. 2006/04/03
    <캉딩>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10)
    제이리
  6. 2006/04/03
    <리탕> 샹청을 지나 리탕까지(7)
    제이리
  7. 2006/04/03
    <중덴> 론리 너무하다!!!(6)
    제이리
  8. 2006/04/01
    <옥룡설산> 완전히 퍼지다(6)
    제이리
  9. 2006/04/01
    <호도협> 결국 가긴 갔다(7)
    제이리
  10. 2006/04/01
    <리장>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4)
    제이리

<청두2> 이건 서비스 버전이다^^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 이미 말한 바 있듯이 여행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한 곳인바 게스트하우스 내에 있는 인터넷 방에서 노트북 연결이 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비수기인 지금은 비용도 받지 않는다. 그 결과 티벳 가는 비행기를 끊어놓은 날 저녁 남는 시간을 주체 못해 메신져로 수다를 떨기 전에 생전하지 않던 짓을 했으니 다음카페 중국여행동호회에 질문이란 걸 올렸던 것이다. 이만저만해서 성도에서 비자연장을 안하고 라싸에서 연장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라는 것이 요지였는데... 메신져로 수다를 한참이나 떨고 다시 들어가 보니 요새 라싸에서 비자연장 안되는데요. 라는 요지의 답변이 올라와 있더라는 말이다. 허걱 일주일도 연장을 안 해 준다니 이건 또 뭔 소리래.. 부랴부랴 컴퓨터를 끄고 역시 게스트하우스 내에 있는 여행사로 가 본다. 저 요새 라싸에서 비자연장이 안되나요? 그랬더니 잘 모른단다. 그때 마침 담날 라싸에 들어가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 중 한 분이 옆에 계시다가 티벳 가이드에게 전화를 해보시겠단다. 전화 결과는 마찬가지, 요즘 라싸에서는 비자 연장이 안 된단다. 간신히 항공권을 연기하긴 했는데 도무지 일주일을 뭐 하고 지내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다.   

 

쓰레기통에 버렸던 가이드북을 다시 찾아들고 갈 만한 곳을 찾아본다. 성도에서 이제 갈만 한 곳은 러산과 아미산 뿐이다. 산은 싫은데.. 하면서 곰곰 읽어보니 아미산은 산이 맞는데 러산은 댑다 큰 불상이 있는 곳으로 산은 아닌 듯 하다. 가기 싫지만 달리 방법도 없어 주말에는 거기나 다녀오기로 한다. 담날 비자 연장을 신청해 두고 저녁에 숙소 스탭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한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한 친군데 한국말을 곧잘 한다. 내가 할 일이 없어 고민이라니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기에 그러기로 미리 약속을 해 둔 터다- 옆에서 누가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 다행히도 아저씨는 아니다^^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같이 저녁을 먹는다. 맥주 한잔 하실래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맥주좋죠 라는 대답이 날아온다. 앗싸.. 술 싫어하는 친구는 아니고.. 같이 밥을 먹어보니 말이 많은 친구도 아니다. 됐고.. 게다가 이 친구도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다음 일정이 티벳가는 거란다. .. 그동안 군인 아저씨 땜시 고생했다고 하늘이 보너스를 주시는 상황인 듯 하다. 


 

비록 하루지만-담날부터 밤근무라 시간이 없었다는^^-나의 한국어 제자 두상

 

그 다음 일주일은 거의 같은 패턴으로 지나간다. 아침에 거의 10시까지 늦잠을 자 준다. 느즈막이 일어나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국수 내지는 만두국을 한그릇 먹어준다. 그 다음 동네 마트에 가거나 공짜 인터넷을 즐기다가 심심하면 맥주나 한잔 한다. 가끔은 마트에서 산 한국산 사발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음악을 듣거나 탁구를 친다. 그러다가 저녁을 먹고 노트북으로 영화를 한편 본 다음 다시 맥주를 마시다 잔다. 이 친구 노트북에 저장된 한국 영화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기로 했던 러산도 포기하고 대략 이런 패턴으로 일주일을 보내니 드디어 우리 도미토리 최고참인 미국남자 제프가 한마디 한다. 너 중국에 와서 한국남자친구 찾은 거니? 아냐! 우린 그냥 친구야 라는 대답에 몹시 의아한 표정이다. 니들하고 달라서 우리는 국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잘 논다니까 참 못 믿네 짜식.. 해주고 싶은데 뭐 영어도 짧은데다 어차피 이해도 못할 거 그냥 참기로 한다. 


신라면 사러 간 마트에서 발견한 한국어^^ 김치, 결국 못먹고 버렸다.


이따위로 술을 마신다.

 

결국 어찌 보내나 했던 기간이 훌쩍 지나고 예약해 둔 날짜가 모레로 다가와 있다. 일주일을 언제 보내나 했던 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왠지 성도를 떠나는 게 아쉬운 마음도 든다. 이래서 한곳에 너무 오래 있으면 결국 못 떠난다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이 친구도 나보다 하루 늦게 라싸에 올 예정이니 아예 같이 떠날까 싶어 비행기를 하루 연기할까 하는 생각으로 여행사에 가보니 이미 퍼밋이 나온 상태라 연기는 곤란하단다. 뭐 할 수 없지 하고 담날 비록 하루 상관이지만 간단하게 이별주나 하자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여행사 직원이 연기가 가능하니 비행기를 연기하겠냐고 묻는다. 우씨 빨래도 다 해놓고 짐도 대충 싸놨는데 이제 와서리.. 그래도 그냥 연기하겠다고 한다. 결국 간단한 이별주나 하자는 자리는 밤 12시 가까이 되어서야 끝이 난다. 이날은 혼자 여행 온 20대 한국 여학생-정확하게 말하면 졸업한지 1년 된 취업재수생-도 함께다.


, 취업재수생 혜원 그리고 사진작가 종길

 

결국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에서만 꼬박 10일을 머물고 나서야 성도를 떠난다. 비행기 일정을 하도 조정해서인지 아님 아무 것도 않고 게스트하우스 죽순이로 있어서 인지 전날 비행기 티켓을 수령하러 여행사에 들르니 이집 안주인이 내일 라싸가는 비행기를 탄다니까 파이널리? 하고 웃는다. 같이 웃어준다. 그래 파이널리 티벳에 가는 모양이다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거 낼 안개 심하게 끼거니 바람 오지게 불어 비행기 안 뜨는 거 아냐 싶은 생각도 든다. 여튼 마지막날은 그저 조신하게 훠궈나 먹으러 다니며 하루를 보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이 친구 직업이 사진작가라 라싸에는 사진찍으로 가는 길이라 같이 이곳저곳을 둘러볼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여튼 낯선 곳에서는 혼자 보다야 둘이 나은 법이니 라싸로 가는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진 셈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송판> 결국 싸우고 헤어진다

 

송판으로 떠나는 버스는 아침에 한번 밖에 없어 열한시경에 택시를 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주자이거우나 한나절 더 보고 오후에나 떠나면 되는 건데 이래저래 처음부터 일이 꼬인다. 주자이거우에서 송판까지는 대략 2시간, 택시에서 내내 이 군인아저씨 떠난 사람들 욕이다. 하루 밤이지만 내가 보기엔 고사리 아저씨, 그리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해도 나로서는 군인 아저씨의 일방적인 얘기가 그리 신빙성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건성건성 예예 하기도 참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 아저씨도 변함없이 말이 많다. 정말이지 이제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은 지긋지긋하다. 이건 뭐 아줌마들 반상회도 아니고 도무지 남의 말이라곤 듣지를 않으니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외로워서 그런 건지 내가 만나는 인간들만 그런 건지 모를 일이지만 이 인간들 실컷 자기 얘기만 해놓고 미안한지 끝에는 꼭 한마디 한다. 참 과묵하시네요.. (내가 과묵한 인간이라니 소가 웃을 일이다^^)


송판에는 다행히도 한국식당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당근 론리에는 나오지 않는데 언젠가 다른 여행자들에게서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어 물어물어 찾아간다.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송판에 갈 생각이 없어서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나쁜 삼촌>이라는 식당이름이 인상적이라 다행히 기억이 난다. 중국 간판은 호숙숙 뭐 대략 좋은 아저씨쯤 되는데 뭐 한국어로 된 간판에도 나쁜 삼촌이라고 되어 있다^^. 송판에 내려 그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나쁜 삼촌이 나타난다. 다행히 상태가 괜찮아 보인다. 식당만으로는 운영이 힘들어 다음날이면 돈벌러 몇 달간 심천에 간다는데 하루 먼저 오길 다행이다 싶다. 술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이 양반이 담궈 놓은 각종 희귀주들을 마시며 간만에 맘 편하게 술을 마신다. 나중에 족보를 따져보니 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학번은 거의 10년 차이가 나지만 중간 중간에 아는 이들도 있어 군인아저씨가 사이사이 놓는 삑사리를 이리저리 피해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담날 일찍 나쁜 삼촌은 심천으로 떠나고 우리는 말트레킹을 떠난다. 전날 밤에 이미 1박 2일로 예약을 해 둔 터다. 말트레킹은 1박2일짜리부터 일주일짜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2박3일 코스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양한(?) 트레킹 경험에 의해 모든 트레킹은 밤이 매우 춥고 긴 관계로 일행이 마땅치 않을 경우 상당히 힘든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나로써는 이 아저씨와 2박 3일은 결코 가고 싶은 맘이 없다. 1박 2일 코스도 쉬운 코스와 힘든 코스 두 가지가 있는 모양인데 쉬운 코스는 반나절 가량 말을 타고 가서 오후에는 국립공원 하나를 돌아보고 담날 돌아오는 코스인데 비해 힘든 코스는 반나절 말을 타고 산을 하나 넘은 뒤 점심을 먹고 다시 산을 하나 더 넘어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라고 한다. 그 무섭다는 말을 하루종일 탈 자신은 없어 또 쉬운 코스를 택한다.   


트레킹 코스 중에 있는 산의 정상, 이 길부터는 걸어 내려가다 아스팔트가 나오면 다시 말을 탄다.


군인 아저씨의 권유로 털모자도 샀다. 따뜻은 하더라만 모양새는 영^^ 글구 전날 술 먹다 카메라 배터리 충전하는 걸 깜빡해 말트레킹 사진은 거의 못 찍었다는ㅠㅠ 

 

 아침에 약속 장소로 나가보니 트레킹을 떠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수기라 마부 하나에 우리 둘 달랑 세 명만 떠나는 길이다. 말이 생각보다 무섭다는 말은 많이 들어 제법 긴장이 된다. 처음 30분은 이걸 왜 하겠다고 했나 싶게 무섭더니 조금씩 나아진다. 산위로 올라가니 주변으로는 채 녹지 않은 눈들이 나뭇가지를 하얗게 덮고 있고 멀리 설산이 보이는 것이 조금씩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길 주변이 낭떠러지라 아찔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군인아저씨 잠시도 입을 그만두지 않는데 입만 열었다 하면 지난 일행들 욕 아니면 자기 자랑이다.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 번 들으면 듣기 싫은 법인데 욕 아니면 자랑이니 아주 듣기 싫어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자랑의 수준도 어찌나 유치 찬란인지 자기가 한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빵을 먹으며 여유 있게 말을 탔다는 자랑을 그날 하루 종일 스무번쯤한다. 네네 잘 타시네요를 하다하다 그 담엔 아예 못 들은 척 한다.   



모닝구라는 이름의 풍경구(우리로 치면 국립공원쯤 되지 싶은데 아직 채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다)



구채구를 안봤으면 모를까 그냥 그만그만하다


서너시간 말을 타고 모닝구라는 호수 공원에 도착한다. 어려운 코스를 택하면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는데 쉬운 코스를 택하니 오후에는 공원 구경이나 하며 보낸다. 인터넷에서 본 트레킹 정보에 의하면 초원에서 천막을 치고 잔다는데 잠자리도 공원 내에 있는 쓰지 않는 건물에 마련된다. 아무래도 이곳이 덜 춥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운치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은 수제비로 저녁은 감자와 양고기 볶음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술을 가져가긴 했지만 그 전날 숙취도 숙취려니와 도무지 이 아저씨랑 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결국 아침은 오고 6시부터 들락이던 이 아저씨 결국 10시에 떠난다는 마부에게 부득부득 9시에 떠나자고 해서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참 피곤한 양반이다.



점심에 먹은 수제비, 우리나라 수제비랑 거의 같은 맛이다.


송판에 돌아오는 길에는 또 나쁜 삼촌 욕이다. 그전에도 이런저런 소리를 하는 걸 못 들은 척 했는데 결국 내가 못 참고 싫은 소리를 한다. 나는 그전 일행에 대해서도 나쁜 삼촌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이 안 드니 제발 그렇게 생각하시더라도 나한테 동의는 구하지 말아달라고 일침을 놓는다. 도대체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은 다 나쁜 사람이니 나랑 헤어지고 또 나는 얼마나 나쁜 년이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랬더니 삐졌는지 내려오자마자 이번엔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고 한다. 원래 청두까지는 같이 가지고 한 길이었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다. 하지만 운도 지지리 없는 것이 이번엔 비행기가 없다는 거다. 어차피 청두까지는 같이 가야 하나 보다 싶다.


그럭저럭 외면 수습은 하고 저녁을 먹다 -사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만 참자 다짐하면서 먹은 저녁이었는데- 결국 내가 폭발한다. 만나고 나서부터 자기가 젊어 보인다느니, 잘 생겼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열 번쯤은 했는데 이번엔 식당에서 일하는 어린 중국 여자친구들에게 자기가 몇 살쯤 되어 보이느냐고 묻는다. 뭐 대략 사십 후반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아마 오십 초반의 나이인 것 같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쟤들이 저렇게 대답하는 건 나쁜 삼촌이 자기 나이를 이야기해서이고 모든 중국 사람들은 자기를 삼십대 후반으로 본단다. 그러면서 중국 친구들에게 자기 근육을 만져보라고 난리다. 더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오십대로 보이시거든요 그리고 그만하세요 한두 번도 아니고. 입만 열면 자기 자랑 아니면 남 욕이니 참 같이 다니기 힘든 분이시네요. 해 버린다. 결국 저녁 먹는 분위기는 썰렁해지고 담날 새벽에 버스를 타러 나가니 이 아저씨 사람을 본 척도 않는다. 에구 차라리 잘됐다 싶은 게 청두까지 대략 8시간 동안 그 수다를 듣느니 그냥 모른 척 해주는 게 고마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버스에서도, 버스를 내려서도 데면데면 헤어진다. 맘이 불편한 건 아닌데 그래도 여행 다니면서 이렇게 헤어지는 사람도 있구나 싶은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이쯤에서 놓여났으니 한편으론 발걸음이 가볍다.


이번에 청두에 도착해서는 바이러스의 동생이 강력 추천하는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 바이러스 동생이 <궁극의 게스트하우스>라고 극찬한 이곳은 여행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생각해 운영되는 곳인 듯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은데다 교통빈관보다 거의 모든 가격이 저렴하다. 게다가 인터넷은 랜선만 이용할 경우는 무료이고 주위에 대형마트와 공안국도 있어 필요한 것은 거의 걸어가서 해결할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티벳행 비행기 가격이 교통빈관의 여행사보다 250원이나 싸서 완전히 본전을 뽑는 느낌이다. 일단 도착해 샤워를 마친 후 빨래를 돌려놓고 저녁을 먹으니 다시 마음이 상쾌해진다.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 입구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 식당


다음날 비자 연장하러 공안국으로 간다. 흑 그러나 비자를 연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휴일 빼고 5일이나 걸린다는 소리에 막막해진다. 여기서 비자를 연장하려면 오늘이 수요일이니 무려 일주일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다른 여행기에서 읽은 바로는 징홍이나 캉딩에서는 하루 만에 연장이 된다고 해서 여기서도 그런 줄 알았더니 생각지도 못한 복병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어쩔까 고민하다 그냥 티벳행 비행기표를 예약한다. 아직 비자 기간은 일주일쯤 남아 있고 라싸에서 일주일 정도 연기가 가능하다니 티벳은 2주 만에 빠져 나오는 수 밖에 없다. 정 안되면 비행기로 카트만두까지 가거나 여행사를 통하면 기간을 조금 더 연장할 수도 있다고 하니 라싸에 도착하자마자 비자 문제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여튼 내일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으니 우여곡절 끝에 티벳 가는 길로 접어드는 셈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구채구> 물빛이 장난이 아니다

 

결국 구채구를 간다. 청두에서 10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이긴 하지만 어차피 청두에서 갈 수 밖에 없는 곳인데다 그 고질병..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가겠어 하는 맘이 결국 구채구로 가는 버스를 타게 만든다. 가는 길에 아주 송판까지 들렀다 올 예정이다. 송판은 말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인데 대체 어찌된 일인지 중국 여행 석달 동안 말을 한 번도 못 탄데다 앞으로 갈 티벳도 말 탈일은 없어 보여 한번은 타 보자 하는 맘이다. 코끼리는 태국에서, 말은 중국에서, 낙타는 인도에서^^ 그래도 한번씩은 타봐야 하지 않겠냐 말이다. 무엇보다 애매한 건 비자인데 라오스에서 받은 두달짜리 비자가 어느덧 만료 기간이 두 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리장에서 너무 놀았다니^^- 바로 티벳으로 떠나면 두주 안에 티벳을 떠나야 한다. 티벳에서는 비자 연장이 짧으면 삼일, 길어야 일주일이라는데 네팔의 정치 상황도 불안정하다는데 비자까지 빠듯하면 맘이 더 조급해질 것 같고 청두에서 연장하자니 만료 기간이 일주일 정도 남아야 비자 연장이 가능하다니 비자를 연장하자면 일주일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이래저래 티벳 가는 길은 참 멀기도 하다.


구채구 가는 길도 절대 만만한 길은 아니다. 게다가 이제 진이 다 빠졌는지 10시간 버스 타는 일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창 밖도 보는 둥 마는 둥 꾸벅꾸벅 졸다가 깨다가 구채구 입구에서 내린다. 요금은 4월 1일부로 성수기 체계로 바뀌었다는 데 저녁 무렵이라 그런지 숙소로 가득한 구채구 입구는 한산하기 짝이 없다. 날씨도 청두보다는 훨씬 더 추운 것 같다. 결국 버스 내리는 데서 삐끼를 따라 60원짜리 호텔에 들어간다. 썰렁하긴 해도 뭐 호텔은 호텔인 듯 시설은 그럭저럭 봐 줄 만한데 시간제로 나온다는 온수가 영 시원찮다. 결국 처음엔 더운물이다 중간에는 미지근한 물로 바뀌어버린 온수 앞에서 샤워를 하다 말고 대략 난감해진다. 역시 삐끼는 따라오는 게 아닌데 방 돌아보는 것이 귀찮아 따라나선 것이 결국 이 모양이다. 그래봐야 하루 밤이긴 하지만 방도 왠지 썰렁한 것이 영 춥다.


다음날 구채구 내에서 하루밤 묵을 요량으로 짐을 모두 들고 숙소를 나선다 -원래 청두에 짐을 맡겨 놓고 작은 배낭 하나만 지고 오긴 했지만 이것도 무게가 꽤 나간다- 입장료 비싸기로 유명한 중국 중에서도 구채구는 거의 최고의 입장료를 자랑하는데 공원 내의 교통비를 포함해 무려 310원(4만원 정도다)이나 한다. 가짜 학생증을 내미니 50원이 할인된다.^^ 이 표로 이틀을 볼 수 있는데 다음날도 보겠다고 미리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쓰지 못하도록 입장권에 디카로 찍은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인쇄해서 준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니 공원 입구에 버스가 대기해 있다. 공원은 한 길로 쭉 이어지다가 중간쯤 되는 지점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진다는데 이 버스가 어느 쪽으로 가는지는 모르니 그저 운에 맡기기로 한다. 버스는 원래 하루를 묵으려고 했던 중간지점을 지나 동쪽으로 들어선다. 그러더니 한참을 달려 동쪽 끝 호수 입구에서 사람들을 내려준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산 아래 예의 그 쪽빛 호수가 펼쳐져 있다. 사진에서 본 그 물빛 그대로다.


동쪽 끝의 호수인 장해


오색 연못, 비수기긴 해도 사람은 여전히 많은 것 같은데 성수기엔 발디딜 틈도 없단다.

 

호수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걸어 또 다른 호수를 둘러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중간 지점으로 내려온다. 이쯤에서 숙소를 정하고 배낭이나 맡길까 하고 중간 지점 근처에 있는 장족 마을 근처를 둘러본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침대 하나당 20원 정도면 된다는데 마을 안은 여전히 비수기인 듯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아서라.. 여기도 해지면 많이 우울하겠다 싶어 그냥 공원 앞에서 하루 더 묵기로 맘을 바꿔먹는다. 중간 지점에서 33원짜리 뷔페로 점심을 먹고 이번엔 서쪽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서쪽 길이 볼거리가 더 많다는데 과연 올라가는 길 주변이 온통 푸른빛의 호수다. 끝까지 가서 천천히 걸어 내려와야겠다 생각하고 올라간 꼭대기 호수에서 한국 남자 둘을 만난다. 한국사람 없는 동네에선 인사만 해도 무척 반가워한다. 이 둘도 조합은 좀 이상한 조합인데 여튼 숙소에 방도 남는다며 잘데 없으면 재워준다고도 하고 다음날 신선지라는 현지인들만 아는 근사한 장소에도 같이 가자고 뜻밖의 호의를 보인다. 안 그래도 내일 그냥 송판으로 갈까 어쩔까 생각하던 참이라 신선지나 따라갈까 싶다. 여튼 그 양반들이 동쪽을 안 봤다고 해서 저녁 무렵에 공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서쪽 길에 있는 호수 중 하나, 물에다 무슨 짓을 했길래 빛깔이 저런지 모르겠다^^


여기도 마찬가지.. 사진보다 직접 보는 게 더 이쁘다.


접니다요^^


원래 이틀을 보려고 설렁설렁 다니던 발걸음이 바빠진다. 서쪽 호수 끝에서 걸어 내려오니 시간이 꽤 걸리는데 아직 중간지점에서 입구에 이르는 길도 못 가봤는데 벌써 약속시간이 다 되어간다. 괜한 약속을 했나 싶기도 해서 중간에 내려 호수와 폭포를 하나 더 보고 약속시간을 제법 넘겨 입구에 도착한다. 갔으면 그만이다 싶은데 어라 이게 웬일인지 기다리고 있다. 결국 그 양반들이 묵고 있다는 호텔까지 같이 간다. 현지에서 고사리를 수거해서 한국에서 파는 아저씨와 퇴역군인 -이 둘은 중국으로 오는 배에서 만났단다- 그리고 고사리 아저씨의 중국 운전기사 셋이 일행이다. 원래 방을 셋 잡았는데 하나를 비워준다. 어지간하면 그냥 돈내고 따로 방을 잡을까도 싶었지만 그 호텔 방값이 200원이나 한다기에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아 못 이기는 척하고 그냥 그러기로 한다.


그때부터 일이 복잡해진다. 뭐 처음 사연이야 내 알바 아니지만 중국으로 오는 배에서 만나 이런저런 사유로 일주일가량 일을 겸해 같이 다닌 이들은 이미 서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있는 상태다. 고사리 아저씨는 어차피 일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상태라 퇴역 군인 아저씨가 송판 간다는 내게 신선지에 들렀다가 같이 송판으로 가자는데 싫다고 할 수도 없어 그러자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전날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선지에 들렀다 가는 일정도 이미 어긋나 있고 고사리 아저씨는 제 갈 길로 가고 군인아저씨는 바로 송판으로 가자고 한다. 좀 황당하지만 어차피 가는 길이니 큰 문제는 아니다 싶어 그러기로 한다. 결국 끝이 좋지 않다, 거의 싸우다시피 헤어지는 일행을 보니 이 군인아저씨랑 같이 다닐 일이 걱정이 된다. 에구.. 그래도 말트레킹 하려면 일행이 있는 게 낫겠다 싶어 일단은 같이 송판으로 떠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청두> 다시 봄날이다

 

다행히도 청두 가는 버스는 꽤 여러 대가 있는 모양이다. 숙소에서 물어보니 8시 차가 있다고 해서 간만에 여유 있게 길을 나선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길을 게다가 추위에 떨면서 나서는 일은 당분간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캉딩의 아침은 여전히 춥지만 다행히 터미널은 코앞에 있다. 버스가 떠나자 이번에는 사뭇 다른 풍경이 이어진다. 늘 어느 산으론가 올라가기만 하던 버스가 이번에는 산과 산 사이로 이어진 계곡을 따라 달린다. 좁은 계곡을 끼고 형성된 마을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해발이 높지 않아서일까.. 주변은 온통 유채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신혼여행지의 대명사인 유채꽃이 여기서는 당당히 밭작물의 하나다. 어린 순은 볶아 먹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주 목적은 기름을 짜는데 있는 것 같다. 하루 사이에 겨울과 봄을 넘나들고 있다.



청두 가는 길에 만난 유채밭, 봄빛이 완연하다.


버스는 이제 고속도로에 접어들더니 드디어 커다란 빌딩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대도시로 들어선다. 드디어 청두에 도착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내리면 항상 숙소를 찾는 일이 고민인데-대부분 그냥 택시를 타긴 하지만 택시 기사도 숙소를 잘 찾는 편은 아니다- 여기서는 고민할 새도 없이 내려보니 그 유명한 교통빈관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잠깐이지만 온통 봄날인 길을 혼자 겨울옷을 바리바리 입고 숙소에 들어선다. 다행히 교통빈관은 그 유명세답게 도미토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나 운영의 수준이 거의 호텔을 방불케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미토리가 있는 호텔인 셈이다. 먼저 더운물로 샤워를 하고 그간 입었던 겨울옷들을 세탁기에 돌려 널고 나니 비로소 한숨이 돌려진다. 호텔 앞 여행자 식당에 들러 간만에 맥주도 한잔 마시고 인터넷도 접속해본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도시에 와야 맘이 편해진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음날은 그냥 청두 시내를 돌아다닌다. 살 물건이라고 해야 매번 샴푸니 치약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쇼핑센터나 백화점에서 이것저것 고르는 일은 나름 재미가 있다. 이번에는 로션과 스킨이다. 여행 떠날 때 그 큰 걸 들고 간다고 구박구박을 받으면서도 들고 왔는데 어느새 새로 살 때가 된 것이다. 로션은 샴푸랑은 달라서 한번 사면 꽤 오래 써야 하는데다 피부에도 맞아야 해서 좀 비싸더라도 익숙한 외국제품을 사야 하나 백화점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늘 쓰던 한국 제품 매장이 백화점에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들러 보니 한국 제품은 그대로 다 있다. 문제는 물건값이 한국이랑 거의 같다는 건데 한국에선 별 생각 없이 쓰던 물건이 여기 가격으로 환산되어 있으니 왜 그리 비싸게 느껴지는지 살까 말까 잠시 망설여진다. 결국 로션과 스킨 두 개를 508원(6만5천원 정도)을 주고 산다. 손이 떨린다.^^게다가 여기는 샘플 화장품 하나, 화장솜 하나도 더 얹어 주는 게 없다ㅠㅠ.


청두 시내. 시내 한가운데 모택동의 동상이 서 있다.


그 다음날은 가이드북을 뒤져 시내 여기저기 가볼 만한 곳을 찍는다. 참 오랜만에 해 보는 일이다. 가고 싶은 몇 곳을 버스 노선과 동선을 고려해 정한 뒤 숙소를 나선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청두에서 가장 크고 보존이 잘된 절이라는 문수원이다. 절을 한 바퀴 둘러본 뒤 경내에 있는 찻집에 앉아 봄볕을 즐긴다. 그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흐른다. 천천히 절을 빠져 나와 버스를 타고 청양궁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번에는 도교 사원이다. 뭐 그만그만하다. 다시 걸어서 두보초당으로 옮겨 본다. 다들 두보는 아실 것이다. 당나라때의 시인인 그는 20세 때 세상을 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천하를 유람하다가 반란군을 피해 청두에서 4년간 살면서 200수가 넘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말이 당나라 때지 우리나라로 치면 고구려쯤인데 그가 살았던 흔적이야 있을 리 만무하고 그저 잘 꾸며 놓은 정원에 복원해 놓은 초당이며 두보의 흔적을 모아 놓은 전시실이 군데군데 있는 곳이다. 간만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니 여행 초반 죽어라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문수원 내의 찻집


청양사내의 탑,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탑으로 도교 철학의 건축적 성과를 보여 준다는데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 양반이 두보다. 중국 동상들은 근엄하지 않아서 좋다 -모택동 동상은 빼고^^-.


하루는 판다를 보러 간다. 중국의 동물 대사라는 판다는 청두 근처에 있는 판다 번식 연구센터라는 곳에서 연구와 서식을 함께 하고 있는데 일반 동물원과는 달리 제법 자유롭게 판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단 판다의 습성상 아침 일찍 가야 하는데다 -아침을 먹고 나면 주된 소일거리인 잠을 자러 우리로 돌아가 버린단다- 대중 교통편도 없어서 여행사의 투어를 이용해야 하는데 갈까 말까 고민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실제로 판다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결국 반나절 투어를 신청한다. 아침 7시에 떠나 시내를 한바퀴 돌아 오늘의 투어 시청자를 죄다 싣고 공원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지나 있다. 몇 개의 우리들을 둘러보며 판다를 구경한다.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크긴 하지만 하는 짓이 제법 귀여워 한참을 우리 주변에서 서성이다 센터 내에서 보여주는 판다의 일생쯤 되는 영화도 한편보고 돌아오니 여전히 오전이다.



판다들, 무지 먹는다


누워서도 먹고..


아님 늘어져 자고..


이제 청두에서 할일은 거의 마친 셈인데 바로 티벳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그 유명하다는 구채구와 송판을 들렀다 가야할지 여전히 고민이다. 특히 구채구는 한번 가보고 싶긴 한데 가는 길도 만만치 않은데다 여전히 춥다는 소문에 계속 망설여진다. 대체 움직이기 전날까지도 일정을 결정하지 못하다니 여행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고민만 많아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캉딩>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에 눈을 떠 창밖을 살펴보니 캄캄한 거리 너머로 하얗게 쌓인 눈이 보인다. 망했다. 밤새 눈이 더 내린 모양이다. 일단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보기로 한다. 버스가 안 다니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다닌다면 다닐만 하니까 다니겠지.. 이 동네 눈 한 두 번 오는 것도 아닐 텐데.. 생각하기로 한다. 대체 이 동네는 버스들이 왜들 이리 꼭두새벽에 떠나는지 중덴에선 7시 30분, 샹청에선 7시 그리고 리탕에서 6시 30분 출발이란다. 게다가 중국은 전역이 베이징 표준시에 맞춰져 있어 해가 늦게 지는 대신 대략 7시가 넘어야 조금 밝아지는 정도라 6시면 거의 꼭두새벽인 셈이다. 배낭을 메고 나서니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 눈이 뽀얗게 쌓여 있다. 그새 얼었는지 밟으니 미끌한다. 랜턴을 꺼내들고 눈길을 걸어 터미널로 향한다.


다행히 버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표를 팔고 있다. 잠시 고민하다 표를 끊는다. 뭐 내일이라고 더 낫겠어.. 그새 눈이 녹을 것도 아니고.. 다 운이야 운.. 그런 생각이다. 버스를 타니 온기가 느껴진다. 히터를 튼 모양이다. 아니 중국 버스가 난방이 안 되는 게 아니었잖아.. 에이 진작 좀 틀어주지 싶으면서도 따뜻하니까 당장 기분이 좋아진다. 터미널앞 식당에서 얻어 온 더운 물로 커피를 타고 혹시 몰라서 비상식량으로 사놓은 빵이며 과자들을 꺼내 먹으며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이렇게 눈이 오는데도 버스는 사람들로 거의 찬다. 눈탓인지 해가 얼핏 밝아진 7시가 넘어서야 버스는 터미널을 떠난다.


캉딩가는 버스


세상이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다


같은 버스에 탄 할머니


리탕을 벗어나자 마자 버스는 다시 눈덮인 산길을 달린다. 처음엔 그나마 마을이며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더니 한시간쯤 지나자 그저 하얗게 눈덮인 산들뿐이다. 어느 지점에선가 체인을 감은 버스는 내 걱정과는 달리 서너 시간을 별 문제 없이 달려 준다. 이러다가 제시간에 도착하는 거 아닌가 하는 야무진 생각이 날 무렵 결국 버스가 멈춰 선다. 반대편 도로에서 차 한대가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 막고 멈춰서 있다. 체인없이 올라오다 미끄러진 모양인데 그래도 도로에 멈춰서길 다행이다 싶다. 다행히 차가 고장난 건 아니라 한시간 여를 체인을 감고 수선을 피우더니 다시 도로가 열린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버스는 눈쌓인 협곡을 굽이굽이 달려 저녁 7시쯤 캉딩에 무사히 도착한다. 정확히 12시간 걸린 셈이다.



 캉딩 가는 길1


캉딩 가는 길2


그 와중에 사진도 찍고^^


캉딩 역시 제법 높은 산들 사이에 형성된 도시인데 내 바램과는 달리 리탕 못지않게 춥다. 게다가 눈이 내리는 건지 산위의 눈이 날리는 건지 여튼 아직까지 눈발이 분분하다. 이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를 찾을 힘도 없어 그냥 삐끼를 따라 터미널 앞에 있는 숙소에 들어간다. 그만그만한 방이다. 밥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아 나머지 비상식량을 저녁삼아 털어먹고 일찌감치 자리에 눕는다. 며칠 샤워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았는데 더운물이 나온다는 이 숙소에서도 씻을 엄두는 나질 않는다. 캉딩 구경이고 뭐고 내일 아침에 그냥 성도로 떠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추운 게 사람을 이리도 무기력하게 만들다니.. 앞으로 티벳이며 네팔 트레킹은 어찌해야 할지 아득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제 하루만 더 지나면 성도에 도착이니 일단 티벳 가는 길의 반은 온 셈이다. 결국 예정과는 3박 4일을 거의 버스만 타고 달려 온 셈이지만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본 여정이기도 하다. 하루 평균 9시간 정도 버스를 탔지만 지루하거나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리탕에서 5시간 반 만에 내릴 땐 왠지 좀 아쉽기도 했는데.. 여튼 버스 안에서 많이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한 번이면 충분하다. 다음부턴 어지간하면 비행기 타고 다니고 싶은 길이기도 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리탕> 샹청을 지나 리탕까지

 

일반적으로 중덴을 윈난의 마지막 도시라고들 한다. 더 위로 올라가면 신장성 즉 티벳땅인데 현재 외국인이 이곳을 육로로 가는 것은 매우 비싸거나 불법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가끔 불법을 무릅쓰고 육로로 라싸에 갔네 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긴 하지만 그것도 간뎅이가 부은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고 나처럼 소심하기 그지없는 인간은 그저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로 한다. 티벳땅을 눈앞에 두고도 다시 오른쪽으로 살짝 꺾어 사천성 성도까지 가는 기을 택한 이유는 합법적인 루트 중 성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티벳으로 가는 것이 가장 싸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요, 성도까지 가는 들르는 사천성 서부의 도시들이 이전 티벳 땅이었던 고로 현재 한족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라사보다 훨씬 더 티벳스럽다는 소문이 두 번째 이유되겠다. 중덴을 지나 샹청-리탕-캉딩을 찍어야 성도로 갈 수 있는 이 길 역시 만만치 않은데 3월까지는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린다는 고로 무지 춥거니와 눈 때문에 길이 막혀 한없이 발이 묶일 수도 있다는 게 첫 번째 난관이요, 해발이 높아-특히 리탕의 경우 해발이 4,680m에 이른다- 고산병의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이 두번째 난관이다.


중덴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새벽에 짐을 꾸려 터미널로 나선다. 그리 따뜻하지도 않은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기는 왜 그리 힘든지..  간만에 느끼는 새벽 추위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어렴풋이 해가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놈의 나라는 한겨울에 영하 20도까지 내려간다는 도시에도 도무지 난방이라는 게 없다. 버스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버스 안이나 밖이나 온도는 비슷하다. 버스는 터미널을 떠난 지 100m를 못가고 고장이다. 기사가 내려가서 몇 분을 뚝닥거리더니 이번엔 정비소로 향한다. 한 시간이나 차를 고치고 나서야 다시 출발이다. 그나마 산길에서 고장 안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중덴을 벗어나자 마자 굽이굽이 산길이 이어진다. 아직 햇살이 채 퍼지지도 않은 길은 끝도 없는 산길로 이어진다. 높은 해발 탓이지 채 자라지도 못한 관목숲 사이를 두어시간 달리더니 이젠 까막득한 협곡을 아래에 두고 눈도 채 녹지 않은 산길로 이어진다. 눈앞에 설산이 펼쳐진다. 장관이긴 한데 여기서 덜컥 고장이라도 나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샹청 가는 길1


샹청 가는 길2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자 딱 그만한 거리에 산장이라고 쓰여진 건물이 한 채 보이고 거기서 모두들 밥을 먹는다. 별로 식욕은 없지만 그래도 먹어둬야지 하는 맘에 푸슬거리는 밥위에 기름기 가득한 고기볶음을 덮어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아.. 체하지나 말아야 할 텐데.. 점심을 먹고 좀 더 달리니 슬슬 산 아래로 티벳식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족의 집들은 기와 비슷한 것을 얹어서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비해 티벳식 집은 지붕이 따로 없고 진흙으로 만든 네모반듯한 건물이다. 단순한 구조에 비해 창문 주변을 화려하게 치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다시 산길을 내려서니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티벳식 마을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한차례 검문을 거치고 나니 사천성이다. 드디어 한달 만에 운남성을 벗어난 것이다.


12시간 걸린다고 했으니 아직 두어 시간은 더 가야 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 협곡 사이로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이런 데 저렇게 큰 마을이 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여기가 샹청이라고 내리라고 한다. 길이 그새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9시간 만에 샹청에 도착한 것이다. 어차피 리탕까지 하루 만에 갈 수는 없는 길이라 이곳에서 하루를 자야 한다. 터미널에 내리니 게스트하우스 안내판을 든 언니가 반겨 준다. 가리키는 쪽을 보니 전형적인 티벳탄 스타일의 집이다. 터미널에서도 멀지 않아 안성맞춤이다. 어차피 그저 하루 묵고 낼 새벽에는 떠나야 할 곳이 아니던가. 짐을 풀고 잠시 동네를 둘러본다. 다행히 생각보다 날씨가 춥지 않다. 아마 이곳은 해발이 그리 높지 않은 곳인지도 모르겠다. 여튼 산과 산 사이에 이만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것도 보통일을 아니지 싶은데 마을 전체가 공사 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통 새 건물을 올리느라고 정신이 없다. 전형적인 티벳탄식의 건물들도 마을 뒤쪽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 큰길가는 온통 국적을 알 수 없는 현대식 건물이다.


샹청 메인거리


샹청에서 묵었던 티벳식 숙소


그 숙소의 방.. 알록달록 나름 예쁘다^^.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새벽에 다시 리탕행 버스를 탄다. 어제는 산길의 연속이더니 이제는 눈 덮인 고원이 이어진다. 버스를 타는 거야 시시각각 변하는 창 밖 풍경 덕에 그리 힘들지 않은데 리탕의 고도가 슬며시 걱정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산병이라도 나면 내려가기도 쉽지 않은데 어쩌나 싶다. 일행을 만들어서 왔어야 하나 생각해 봐도 없는 일행을 만들어 낼 재주야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어제의 일을 교훈삼아 리탕까지 10시간 걸린다고 했으니 한 7시간쯤이면 도착하겠다 생각하고 있었더니 이번엔 5시간 30분만에 리탕터미널에 도착한다. 아침 7시에 떠났으니 12시 30분에 터미널에 내린 셈이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이 그거 밖에 없으니 다시 론리 숙소편 첫줄에 있는 센허빈관을 찾아간다. 여기도 손님은 나 혼자다. 몇 날을 팔자에 없는 싱글룸 신세다. 여기도 전기장판 하나가 위로가 될 뿐 추워서 방에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리탕, 눈이 내린다.


리탕의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


리탕에 이틀쯤 머물 생각이었지만 오후에 두어 시간을 둘러보고 나니 딱히 갈 데도 없다. 다행히 고도가 꽤 높다는 데도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에이.. 괜히 걱정했잖아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이곳은 전형적인 티벳탄 마을인 듯 전통적인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주황색 장삼을 입은 라마 승려들이 많이 보인다. 조금 덜 추우면 그저 길에서 사람들만 바라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추워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나마 유일하게 난로가 보이는 티벳식 찻집에 앉아 버터티를 홀짝인다. 버터를 더운 물에 녹여 소금 잔뜩 탄 것 같은 이 버터티는 티벳 지역의 대표적 차라는데 입에 맞을려면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으니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어.. 눈이다. 올해는 눈 못 보는 줄 알았는데.. 하다가 생각해보니 내일 캉딩으로 갈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돌아와 삼인실 도미토리 가득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 TV를 켜놓고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리는데 내일 버스가 안 다니면 여기서 뭘 하며 보낼까 한숨만 나온다. 하우아시아가 캉딩가는 버스에서 하루밤을 보냈다고 했던가.. 만일 버스가 다녀도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중덴> 론리 너무하다!!!

 

리장에서 퍼진 이유야 그저 쉬고 싶었다는 것이 가장 크겠지만 다음 일정이 엄두가 안 났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추위와 더불어 고도와의 힘겨운 싸움 역시 조금 뒤로 미루거나 아님 피해갈 방법이 없을까 하는 맘도 컸었는데 결국 여러 가지 고민 끝에 그냥 원래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나란 인간도 꽤 융통성이 없는 것이 매번 고민은 하지만 나중에 보면 꼭 원래 루트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여튼 중덴은 무지하게 춥다는 여러 여행자들의 조언에 따라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두꺼운 것들은 죄다 꺼내 입고 버스를 탄다. -다행히 겨울옷은 징홍에서 태국으로 내려간 세아이 엄마에게 미리 얻어둔 게 있었다는- 리장에서 중덴까지는 4시간.. 두시간 정도는 제법 봄 들녘이 이어지더니 호도협 입구인 처우터우를 지나자마자 황량한 겨울 풍경이 이어진다.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중덴의 티벳식 사원식 송찬림사(송짠린쓰)


티벳식 기도 깃발인 타르초가 보이기 시작한다


송짠린쓰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 점심 공양하러 가신단다.


버스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괜히 왔나 싶은 게 풍경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도무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중에 봄빛은 하나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자 버스는 여지없이 중덴 터미널에 도착한다. 듣던대로 중덴의 날씨는 꽤 쌀쌀하다. 그래도 한참 추울 때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3월 중순까지 눈이 내린다는 소문에 비하면 견딜만한 정도다. 일단 다음 행선지인 샹청 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아침 7시 반에 한대 있단다. 론리에는 삼사일에 한대씩 있다고 되어 있는데 그새 변했는지 매일 있는 모양이다. 배낭을 메고 택시를 세워 론리 숙소편 젤 앞줄에 나와 있는 친절하고 깨끗하다는 티벳 호텔로 가자고 한다. 말이 호텔이지 저가의 도미토리도 있는 곳이다. 다행히 기사가 그 곳을 알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택시를 내리고 보니 황당 그 자체다. 호텔에 들어서니 방은 거의 삼사십 개는 되어 보이고 식당이며 카페 간판은 보이는데 도무지 사람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리셉션에도 아무도 없다. 뭐 여행자 거리도 아닌 것 같은데 나가서 다시 택시를 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핼로우 하고 인사를 한다.


다행히 영업은 하는 모양인데 이렇게 손님이 없다니.. 그새 사람이 그리워진 나로서는 우울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4인실 도미토리에 짐을 풀어도 손님은 달랑 나 하나다.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식당을 기웃거려 보니 아까 인사하던 그 친구가 식당은 영업을 안하니 나가서 먹으란다. 다행히 근처에 가격은 좀 비싸지만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눈에 뛴다. 조금 더 나가볼까 했지만 썰렁한 거리 풍경에 질려 그저 밥만 먹고 돌아온다. 론리에는 공용 욕실이 깔끔하고 저녁 8시 이후엔 더운물도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사상 처음 보는 문 없는 화장실에, 수도 꼭지하나 덜렁 있는 샤워실에, 더운물은 밤 10시 이후에나 나온다고 하니 도무지 씻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간신히 이만 닦고 방에 들어오니 그나마 전기장판이 위안이 된다. 생각 같아서는 내일 당장 중덴을 뜨고 싶지만 담부터 가야 하는 곳이 거의 이 수준이거나 이것보다 나쁠 것이 뻔한데 싶어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뭐 모든 여행기에 나와 있듯이 중덴은 중국 정부가 <샹그릴라> -뭐 이상향, 그런 뜻인데 제임스 힐튼이라는 작가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배경이 된 곳이라고 우기는 모양이다- 라고 개명하고 대대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힘쓰는 곳이라는데 샹그릴라는 커녕 을씨년스럽기가 무슨 유령의 도시 같다. 옥룡설산에서 만났던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티벳의 험준한 여러 도시들을 거쳐 중덴에 도착하면 마침내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그때야 비로소 샹그릴라로서의 중덴의 참맛을 알 수 있다는데 티벳의 험준한 도시는 커녕 따리와 리장의 아기자기한 고성을 거쳐 온 나로서는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 이야기이다. 


중덴에도 규모는 작지만 고성이 있긴 하다


누구말대로 할머니들이 관광 자원이다. 고성 앞 광장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민속춤을 추시는 할머니들


담날도 거의 씻지도 못한 채로 시내로 나선다. 이 동네 아저씨들 머리가 떡져 있다고 은근 흉봤더니 남의 일도 아니다. 아시다시피 내 머리 하루만 안감아 주면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데다 날도 추워 이불 속에서 비비고 잤더니 뭐 거의 이 동네 아저씨 머리와 별다를 바가 없다. 에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앞으로 남 흉보지 말아야겠다 싶다. 중덴에서 유일한 볼거리인 티벳식 사찰인 송찬림사에 들렀다가.. 중덴 시내를 걸어서 한 바퀴 돌고.. 아직 남아 있다는 구시가지를 돌아보니 얼추 하루가 간다. 다음 행선지인 샹청도, 리탕도 여기 보다 환경이 나쁘면 나빴지 좋을 리는 없는데 그렇담 머리는 언제까지 떡져서 다녀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렇다고 얼음짱같이 찬물에 머리 감을 엄두는 전혀 나질 않는다. 물론 더운물이 나온다는 밤 10시 이후까지 기다릴 생각은 더더욱 안난다.


고민하고 있는데 미용실이 눈에 뛴다. 그래,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으면 되는구나 생각하다가 내친 김에 아마추어의 손길이 완연한 머리를 나름 프로에게 맡겨보기로 한다. 일단 말이 안 통하니 손짓으로 감고 자르려고 한다 했더니 알아듣는다. 일단 머리를 감겨 주는데 샴푸를 머리에 바르더니 머리 밑을 확실히 손톱으로 문질러준다. 그것도 매우 여러 번 꼼꼼히.. 손톱으로 머리 밑을 문지르면 피부가 죄다 상한다는데.. 그래도 시원은 하다만 우리나라 미용계 인사가 알면 기절할 일이다. 그 다음 커트에 들어가는데 이 꽃미남 되다만 남자 미용사 조금만 잘라달라는 사인을 조금만 남기고 다 잘라달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는지 성큼성큼 가위질이다. 후회가 몰려온다. 그냥 감기만 할 걸 어쩌자고 이 시골 프로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단 말인가^^ 그래도 이 친구 이 가위 저 가위 심지어 이 면도기 저 칼까지 동원해 공을 들인다. 원래 머리 자를 때는 안경을 벗는 법이라 내 머리 몰골이 어찌 되어 가는지 과정은 보이지 않는데 여튼 이 친구가 이리 공을 들이니 맘에 안 들어도 웃어줘야지 굳게 다짐한다. 막상 안경을 쓰니 헉!! 이건 완전히 <영구업따>다. 그러나 어쩌랴 머리야 자라는 거고.. 억지로 웃어준다. 머리감고 깍은 값이 6원, 우리 돈으로 780원이다. 에구 가격대비 화낼 계제도 아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뭐 어제와 그대로 아무도 없다. 그리고 여전히 춥다. 론리 숙소편 첫줄에 있으면서도 도무지 손님이 안 드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여전히 도미토리는 내 싱글룸이다^^ 앞으로 여정이 만만치 않으니 일찍 자두어야 할 텐데 잠은 오지 않고 밤만 깊어 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옥룡설산> 완전히 퍼지다

 

두 번째 오는 이 곳은 비교적 익숙하다. 아래층에 방하나를 잡고 짐을 푸니 맘이 편해진다. 호도협에 가서 씻지도 못했는데 욕조에 더운 받아 누워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한국에서도 안 밀던 때도 밀고^^ 한식으로 된 저녁도 먹고, 맥주까지 한 잔 하니 기분이 알딸딸하다. 하지만 저번에는 뭔가 해드리러 온 거였고 이번엔 그냥 신세를 지는 셈이니 밥상 차리기며 설거지 등등을 열심히 한다. 참 그러고보니 설거지 해 본 것도 무척이나 오래간만이다. 문씨 아저씨도 거의 서너달을 이 인적도 없는 곳에서 공사하느라 지치셨는지 이런 저런 말씀이 많으시다. 그저 말동무도 되어 드리고 하면 되겠다 싶다.

 

별로 하는 일이 없는데도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가끔 리장에 가서 시장을 보거나 하는 정도가 고작인데도 어느새 삼사일이 지나 있다. 컴퓨터가 24시간 되니 메신져나 하려고 간만에 접속을 해 봐도 온라인 되어 있는 인간 하나가 없다. 별 수 있나.. 네이트 온으로 문자를 날린다. 메신져에 접속해라 오바!! -참 좋은 세상이긴 하다^^- 결국 별 방법을 다 써 메신져로 수다도 떨고 간만에 이런 사이트 저런 사이트 웹서핑도 하고 밀린 메일 답장도 쓰고.. 그러다 보니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것이 그저 연락도 못 할 상황일 때는 오히려 그러려니 싶은데 조금씩 관계의 끈이 닿으니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싶은 게 두고 것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더라는 얘기다. 한국에 잠시 다녀올까.. 아니면 북경에 가서 김과장 아니 김차장이랑 수다라도 떨고 올까.. 아니 그냥 티벳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바꿔 먹는다.



객실, 컴퓨터도 있다 물론 인터넷도 된다.


설거지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 부엌 겸 거실


삼사일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한다. 컴퓨터가 되고 나서 다음 카페에 아직 오픈은 안 했지만 그래도 지나는 사람들은 들르시라는 글이 올라간 탓일까.. 이전부터 아는 동생이라는 한국인 가이드가 데리고 온 손님 7명을 필두로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심심하지는 않아 좋은데 조금 애매한 처지가 된다. 이곳은 산 속이라 따로 밥 사먹을 곳도 마땅치 않은데다 쥔장 성격에 밥 사먹으라고 내보내지도 못하니 그저 삼시 세때 다 밥을 해 먹여야 하는데 요리는 쥔장이 하지만 객식구 주제에 두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처지라 이것저것 거들고 설거지까지 하다보면 도대체 내가 여행자인지 이곳 복무원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주일쯤 지나니 슬슬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무지 개인적인 여유는 없어지고 점점 복무원화되어 가는 내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주인장이 스님들을 따라 호도협으로 떠난 어느날 그래도 떠나기 전에 신세는 갚아야지 싶어서 한글XP 까는 작업을 시작한다. 혹시 하는 마음에 쥔장방 컴퓨터는 그냥 둔 채로 내가 묵고 있는 방부터 포맷을 시작한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 XP포맷하는 거 구경만 했지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이다. 일단 포맷하는 것 까지는 성공했는데 복사판 한글XP CD가 말썽이다. 프로그램을 한참 깔다가 무슨 파일인가를 찾을 수가 없다고 버틴다. 네이버에 물어보니 대충 CD가 불량이라는 답변이 나온다. 여기가 한국이라면 한글XP CD구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마는 헉 여기는 중국인 것이다. 컴퓨터는 이미 포맷되어 버렸는데 프로그램은 안 깔리고 이런 난감할 데가 어디 있냐 말이다. 할 수 없이 이곳저곳을 뒤져 보니 한글 XP CD 하나가 더 나온다. 이걸로 다시 깔아보니 애도 또 무슨 파일인가가 없단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파일이 없다는 대목마다 CD를 번갈아 넣어주니 알아서 프로그램이 깔아진다.



숙소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숙소 앞의 호수, 물막이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숙소 앞에 제법 큰 호수가 생긴다고 한다.


여튼 우여곡절 끝에 한글XP를 깔고 나니 이제 대충 신세는 갚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설거지하기 싫어서^^ 내려간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그저 오늘 내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엔 감기가 온다. 열심히 다닐 때는 감기도 안 들더니 막상 쉬니까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별 수 없이 며칠을 더 보내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어느 날 짐을 싼다. 이런저런 고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원래 가려고 했던 루트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며칠 쉬면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마치 처음 떠나는 길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결국 삼주 만에 리장을 떠난다. 믿거나 말거나 여행자들의 전설에 따르면 삼주 안에 못 떠나면 석달 이내엔 못 떠난다는데 간신히 기간 안에 떠나는 셈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호도협> 결국 가긴 갔다

 

<낭만일생>으로 다시 돌아오니 채 풀지도 않은 짐이 그대로 방에 놓여 있다. 다행히 옆 침대는 그대로 비어 있다. 잠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여주인인 승경씨가 방을 좀 옮겼으면 하고 찾아온다. 커플이 한 방에 묵을 예정이니 옆방 침대로 옮겨 달라는 부탁이다. 그러마 하고 옮겨보니 그 비구니 스님과 한 방이다. 그 사이 호도협에 다녀오셨단다. 스님과 하루밤을 묵은 뒤 스님은 루구호로 떠나시고 표준방으로 방을 옮긴다. 원래 도미토리로 지은 곳이 아니라 씻는 것이 영 불편한데다 승경씨가 가격도 조금 낮춰 줘 그냥 며칠 편하게 지내자 하는 맘으로 옮긴 것이다. 그날 저녁 게스트하우스로 한 쌍의 남녀가 찾아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둘도 그냥 어딘가에서 만난 사이일 뿐 커플은 아니다. 호도협 같이 갈 일행을 찾으러 왔다는 거다. 둘이 가면 되겠구만.. 그건 좀 그런가 싶어 새로 들어온 커플에게 물어보니 이미 다녀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밖에 없다. 하긴 나도 호도협에 가긴 갈 예정이다. 단지 언제 갈지 결정을 안했을 뿐이다^^ 언제 갈 거냐고 물었더니 내일이나 모레 아무 때나 좋단다. 그래 이 기회에 갔다오자 싶어 다음다음날 떠나기로 약속을 한다.


다음날 호도협에 같이 가기로 한 일행 중 중 남자가 숙소를 낭만일생으로 옮긴다. 혹시 숙소를 옮기게 되면 같이 방을 쓰자고 했던 여자는 그냥 원래 숙소에서 묵겠다고 한다. 방값이 조금 부담되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다. 간만에 혼자 방을 쓰니 그 편안함이 돈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날 은행 관련 일처리를 부탁하려 메신져에 들어갔다가 결국 문제가 생긴다. 은행 문제를 부탁하기엔 내 후임인 명희가 제격이라 명희에게 뭔가 부탁을 하고 난 뒤 인사말로 결산은 잘했냐고 물으니 결산 서류를 좀 봐달라고 한다. 잔액이 딱 떨어지게 안 맞는다는 거다. 일단 파일을 받아 봐도 잘 모르겠다. 이 복잡한 숫자들을 이전에는 어찌 맞췄단 말인가^^ 결국 하루종일 메신져로 이야기를 해봐도 이 서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결산 제출을 하루 이틀 미뤄보라고 하고 다음날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여행하고 처음으로 밤새 액셀과 씨름을 한다. 결국 답이 나온다.


답은 나왔지만 아침에 명희와 얘기도 해야 하고 잠도 거의 못자 도저히 호도협을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7시 30분에 어디서 만나기로 한 것 외엔 묵고 있는 숙소도, 이름도 모른다. 7시 반에 약속 장소로 나가 사정을 설명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늦게 잠든 탓인지 눈을 떠보니 벌써 8시다. 그래도 다른 일행이 있으니 괜찮겠지 했는데 아침에 나가보니 웬걸 그 남자, 재철씨도 약속장소에 안 나갔단다. 둘이 서로 황당해한다. 이 친구, 일행 찾으러 일부러 한국인 게스트하우스까지 왔는데 이렇게 바람맞다니 무척 황당했겠다 싶다. 미안하지만 방법이 있나.. 그저 잘 다녀오겠거니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다시 한나절을 메신져와 씨름을 하고 나니 겨우 그럭저럭 결산 문제는 해결이 된다. 호도협 일정이 이렇게 어긋나 버리고 나니 그저 숙소에서 빈둥거리는 것 외에 별로 할 일이 없다. 낮에는 여주인인 승경씨와 농담 따먹기나 하고 밤에는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과 술이나 마시고 그도 심심하면 방마다 설치되어 있는 DVD나 보거나 장기 체류자에게서 빌린 스피커로 음악이나 들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 모두들 궁금해 하실 장기 체류자는 그새 어떤 중국 여인네에게 낚이셨다고 하니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기로 한다.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며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렇게 이삼일을 보내고 나니 어느 날 저녁 승경씨가 미안한 듯이 말을 건넨다. 언니가 언제까지 있겠다는 말을 안해서 방예약을 모두 받아버렸다고.. 그래서 내일 하루는 옆집에서 묵을 수 없겠냐며 미안한 표정이다. 순간 기분이 상한다. 미리 언제까지 묵겠냐고 물어보지도 않아 놓고 묵고 있는 방을 옮기라니.. 뭐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짐 한번 싸는 건 쉬운 일인가.. 사실 그것보다 정붙이고 있던 곳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마음이 더 크다. 그냥 홧김에 내일 방 빼겠다고 말하고 방으로 올라와 버린다. 그리고 나서 짐을 싸려 하니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차피 내일은 방이 없다니 호도협이나 다녀오기로 한다. 호도협은 어차피 1박 2일 코스이다. 그 다음 일정은 다음에 결정하기로 하고 아침 일찍 짐을 맡기고 호도협 가는 버스를 탄다. 막상 버스표를 끊고 보니 돈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난다. 원래 일정에 없던 일을 하면 꼭 이런 일이 생긴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은행을 들러 봐도 아침이라 그런지 ATM기는 사용이 되질 않는다.


버스를 타고 처우터우 호도협 입구에서 학생증을 내미니 다행히 반액할인이 된다. 앗싸.. 그래도 가지고 있는 돈은 80원 정도 밖에 없다. 하루밤 방값이랑 세끼 식사, 리장으로 돌아가는 차비까지 그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산속이라 물가가 비쌀텐데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래도 어찌되겠지 하며 호도협으로 들어서는 산길로 접어든다. 이미 들어 왔던 대로 마부 하나가 뒤따라 붙는다. 호도협은 28밴드로 불리는 약 1시간 30분에 이르는 산길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탄한 굽이길인데 이 곳에서 말을 타게 하기 위해 거의 두어 시간을 마부가 뒤따라 붙는다고 한다. 뭐 초기부터 표적이 된 모양인지 그리 많지 트레킹족들 중에 유독 내 뒤만 졸졸 따라온다. 그래 뭐 상태로 봐서 표적을 잘 찍긴 했는데 미안하다. 돈이 없다^^ 하며 그냥 걷는다. 누구는 말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거슬려 나는 스테파니야.. 저건 목동의 방울소리고.. 하는 최면을 걸기도 했다는데 아무도 없는 산길에 마부라도 따라와 주니 차라리 안심이 된다.



호도협 입구에서 본 금사강


저 말이다. 저리 앞서가다가도 어디선가 보면 옆에 다가와 있다.


점심을 먹은 곳인 나시객잔, 반대쪽에서 오면 여기서 자게 될 지도 모르겠다.


두 시간쯤 산길을 오르니 점심을 먹는 장소인 나시객잔이 나온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볶음밥 하나를 시키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탁자에 놓인 콜라 하나를 집어 든다. 아무리 산 속이지만 설마 콜라 하나에 20원이야 받겠어 하는 맘이다. 다행히 볶음밥과 콜라를 합쳐서 10원이 나온다.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서니 그때부터 28밴드가 시작된다. 나를 따라 오던 마부는 그새 중국인 관광객 4명 중 하나를 싣고 저만치 앞서간다. 이제 말을 탈래도 돈도 없고 말도 없다^^. 냅다 걷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한 삼십분을 헐떡이며 걸어가니 말을 타고 가던 일행이 쉬어 가는 곳이 보인다. 잠시 쉬었다 다시 말타는 일행보다 먼저 길을 나선다. 저만치에서 말을 타고 오는 일행이 보인다 싶더니 이내 나를 앞지른다. 말에 타고 있던 중국 아저씨 하나가 걸어가는 나를 보더니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하는 말이 니가 말보다 낫단다. 얼떨결에 쎄쎄 해놓고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말이야 말뼉다구야 싶다^^. 다시 한 시간여를 부지런히 올라가니 정상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대충 내리막길 내지는 평지다. 까마득한 협곡을 아래에 두고 부지런히 걷는다. 이제 미부도 따라오지 않고 모두들 어디에 갔는지 앞뒤를 둘러봐도 나 혼자다. 세 시간여를 걸으니 숙소로 점찍어 둔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보인다.


아래쪽으로 까마득한 협곡이 보인다.


실처럼 보이는 것이 길이다.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 이른바 중도객잔이다.


게스트하우스는 다행히 도미토리가 있는데다 가격도 10원이라는 감동적인 수준이다. 이 정도면 대충 돈이 없어서 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낭패는 없겠다 싶다.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에 있으니 아침에 버스에서 만났던 일행들이 속속 도착한다. 그러면 그렇지 니들이 가면 어딜 가겠냐 싶은데도 이상하게 트레킹 도중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하긴 굽이굽이 산길이니 조금씩만 떨어져 있어도 인적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프웨이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에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 티나객잔에 도착한다. 보통 이곳에서 다쥐꺼지 트레킹을 계속하면 2박 3일 일정이 된다는데 뭐 2박 3일까지는 엄두가 안나 그냥 버스를 타고 리장으로 돌아온다.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폭포. 지금은 건기라 그렇지만 우기 때는 저길 어찌 지나가나 싶다.


리장에 도착하자마자 은행에 들러 돈을 찾는다. 돈을 찾고 나니 안심이 된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진다. 짐을 맡겨 두었으니 낭만일생에 들르긴 해야 할텐데.. 오늘은 늦어서 어디 다른 도시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일도 내키지는 않는다. 그냥 하루밤 더 묵는 수밖에.. 짐이 거기에 있으니 일단 낭만일생으로 가 본다. 승경씨도, 원래 호도협에 같이 가기로 했던 재철씨도 심지어 앤디도 보이질 않는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기체류자에게 물어보니 어제 문씨아저씨가 내려와 모두들 술한잔하고 한밤중에 옥룡설산으로 올라갔단다. 그래.. 옥룡설산에 가도 되겠구나 싶다. 혹시나 하고 받아두었던 번호로 전화를 해보니 오늘 사람들과 함께 내려 올테니 기다리고 있으란다. 그래 그럼 옥룡설산에나 가서 며칠 쉬었다 가야겠다 맘을 바꿔 먹는다. 아직 중덴으로 올라갈 준비는 되지 않은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리장>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

 

리장에 도착하고 이틀간은 비교적 정상적인 여행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벌써 기억이 아득하다^^. 티벳까지 동행하기로 한 친구가 이전에 가본 적이 있다는 나시족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그간 한국인 숙소를 다니며 늘어졌던 맘도 조금은 긴장이 살아나는 것 같은 게 웬지 거리도 새롭게 보인다. 리장은 들은 대로 한옥을 연상시키는 집들이며, 미로 같은 골목길 그리고 그 옆을 흐르는 수로들만으로도 맘을 빼앗길 만한 도시다. 그러나 그 골목길이 전부 상점으로 변해있고 어느 골목이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으니 누구 표현대로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재앙이 된 도시라는 감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체 관광객이 붐비는 메인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70년대 도시 변두리에서 보았음직한 골목길이며 집들, 시장을 만날 수 있으니 어디서나 발품은 조금 팔고 볼 일이다^^



언덕 위에서 본 리장고성


이층 객실에서 내려다 본 게스트하우스 마당, 이 지역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집을 개조한 것이다.


도착한 날 오후부터 동행한 친구가 이 길로 가면 이전에 보았던 어디가 나올 것 같은데.. 해가며 헤매는 통에 골목 구석구석을 몇시간 누비고 다니다 시장통에 앉아서 저녁을 먹는다. 당근 술이 빠질 리 없다. 둘이서 서너 병 먹어 주고 나서야 저녁 식사가 끝난다. 근데 이 친구 보기보다 말이 좀 많다. 주로 자기 옛날 여행담이 주 레파토리인데 사실 남의 여행 이야기처럼 지겨운 게 어디 있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행기를 매번 읽어주시는 여러분들도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긴 한다. 뭐 대략 사진만 보시는 분들도 많다는 사실도 알고는 있다^^- 슬며시 술 먹는 일이 고문이 된다. 담날도 고성 주변이며 리장 신시가지를 돌아다니는 걸로 하루를 마감한다. 이제 다음날이면 리장을 떠나 중덴으로 움직일 차례인데 문득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장에서 며칠 더 있고 싶기도 하고 호도협도 다녀오고 싶고.. 하는 맘이 다시 고개를 든다. 게다가 따리에서 만난 노과장 왈 리장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체류자가 하나 있는데 매우 괜찮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지 않았냐 말이다^^


사실 티벳 가는 길이란 게 이 친구를 따라 간다고 해서 육로로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같이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게다가 같이 다니는 일이 썩 즐거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밤에 다시 맥주를 마시다가 혹시 육로로 못가면 어떻게 갈 꺼냐고 물었더니 이 친구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단다. 대책이 없다ㅠㅠ. 실제로 공안에 잡혀서 되돌아 나오는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런 생각을 안 해봤다는 건 무슨 오기란 말인가.. 그랬더니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몬살아.. 그래도 만에 하나 걸리면 어쩔 거냐고 했더니 꺼얼무로 돌아서 들어갈 거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못 들어갈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이다. 혹시 문제가 되면 그 다음 루트도 나랑은 다르다. 어떻게 하나.. 어떤게 잘하는 결정일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리장에 며칠 더 있겠다고 한다. 다행히 쉽게 받아들인다.


리장의 골목길


담장너머 봄꽃이 환하다


길에서 만난 꼬마, 지가 모델인 줄 안다^^


다음날 중덴으로 떠나는 그 친구를 보내고 한국인 여자 승경씨와 대만인 남자 앤디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낭만일생>으로 방을 옮긴다. 해발이 비교적 높다는 리장에서도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을 배낭을 메고 오르니 숨이 턱에 까지 찬다. 이곳은 도미토리가 주가 아니라 욕실이 딸린 소위 표준방이 주가 되는 곳인데 욕실 없는 트윈방 두개를 그냥 침대당 20원을 받고 내주고 있다. 방하나를 다 쓰고 싶으면 나머지 침대 가격까지 내면 되는데 이 비수기에 손님이 들까 싶지도 않아 그냥 침대 하나만 쓰기로 한다. 사실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라고는 하지만 주인이 늘 붙어 있는 것도 아니라 주로 중국인 복무원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 복무원들 중 영어가 가능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게 현실이라 이 정도 이야기를 하려면 온갖 손짓과 발짓이 동원되어야 하는 바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막 짐을 풀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운영하는 카페에 앉아 있는데 따리에서 만났던 비구니 한 분이 들어온다. 함께 온 일행이 이전 따리에서 넘버3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시던 문씨 아저씨다. 셋이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새로 만든 옥룡설산 밑 게스트하우스 이야기가 나온다. 따리의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하고 새로 만든 이 게스트하우스는 아직 오픈은 하지 않은 상태로 공사를 마치고 인터넷은 깔았는데 다음 카페에 글이 써지질 않으신단다. 지금은 중문 XP가 깔려 있는데 한글 XP로 바꾸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함께다. 쿤밍에 있는 동생들에게 부탁했는데 공사기간 넉달이 지나도록 한 놈도 안 온다고 속상해하신다. XP는 몰라도 다음 카페에 글 정도는 쓰게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지금 당장 같이 올라 가자신다. 비구니 스님도 좀 도와드리라고 역성이다. 뭐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옥룡설산에 가보겠냐 싶어 짐은 게스트하우스에 둔 채로 따라나선다. 도대체 장기 체류자 얼굴은 언제 본단 말이냐^^


옥룡설산


옥룡설산 아래 호수


리장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옥룡설산은 한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산으로 멀리서도 그 위용이 한눈에 드러난다. 입장료가 120원이라는데 문씨 아저씨의 차를 타고 올라가니 무사통과다. 매표소를 지나 20분이나 달렸을까.. 드디어 게스트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게스트 하우스라기 보단 무슨 펜션 같다. 도미토리가 아니라 개별 방에 욕실, 방마다 컴퓨터까지 설치되어 있는 최고급 숙소다. 방에 있는 전면 유리창을 통해 호수며 멀리 설산이 한 눈에 보인다. 배낭여행하는 학생들이 묵기에는 좀 고급 숙소다 싶은 느낌이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바쁘게 움직이는 배낭여행객들보다 그저 며칠 조용히 쉬었다 가는 사람들이 묵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만든 곳이란다. 언제 오픈하시냐고 물어보니 공사하느라고 너무 지쳐서 쉴 때까지 쉬다가 내키면 하시겠다는데 글쎄.. 그게 언제일지는 모를 일이다.


다음 카페에 글이 안 써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방화벽 때문에 activ-x라는 프로그램이 안 깔려서 그런 건데 방화벽을 몇 개 낮추고 프로그램을 내려받으니 해결이 된다. 내친김에 한글XP까지 깔까 하다가 혹 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이 산중에 AS부를 데도 없는데 하는 생각에 그냥 두기로 한다. 저녁을 거하게 얻어먹고 담날은 차로 옥룡설산 아래 산길을 따라 따쥐까지 다녀온다.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기는 했어도 산 중턱에 있는 마을 어귀마다 복숭아꽃을 환하게 피워 올린 나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봄날을 실감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낸다. 결국 하루만 자고 내려가려 했던 것이 이틀이 된다. 며칠 더 머물고 가라시는 걸 짐이 아무것도 없어서요.. 했더니 그럼 리장에 며칠 묵다가 오고 싶으면 전화를 하면 데리러 오시겠단다. 말씀은 고맙지만 뭐 그럴 일이 있을까요..하는 맘이었지만 그저 네.. 하고 대답은 해놓고 리장에서 호도협이나 갔다가 중덴으로 올라가야지 하는 맘으로 다시 리장으로 돌아온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