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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3/31
    성령강림의 약속과 초대교우들의 기도
    목동
  2. 2008/03/25
    Jesus'resurrection and the foundation of Christian faith
    목동
  3. 2008/03/25
    예수님의 부활과 믿음의 기초
    목동
  4. 2008/03/16
    Jesus,Our King!
    목동
  5. 2008/03/16
    종려주일
    목동
  6. 2008/03/11
    고질적인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목동
  7. 2008/03/09
    기도의 능력
    목동
  8. 2008/03/03
    If you pray in faith, you will be answered
    목동
  9. 2008/03/01
    믿음과 기도
    목동

성령강림의 약속과 초대교우들의 기도

사도행전1: 4-14

1. 성령 강림의 약속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시고,
그리고 그의 가르치심의 결론을 맺으신다.
그의 마지막 부탁은 땅끝까지 가서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배움도 약하고,힘이 없는 변방의 사람들이다.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그들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 방법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1.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교회를 떠나지 말라, 은혜를 받을 자리에 있어야 한다.
은혜 받을 자리에 있어야 , 교인들의 신앙은 우선 자리를 지키는 것이 필요,
주일성수 모든 은혜받는 모임에 가야 한다.
2. 그리고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는 방법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대감을 가져야 한다.
희망이란,기대감을 갖으면 일을 이룰 수 있다.
기대감은 강렬한 바람이다. 기도는 기대감이 상승 작용하여,
바라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강한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
기도는 기대감의 정비례한다. 바라는 마음이 기도의 응답을 가져온다.

주님의 약속에는 누가 11:13에 좋으신 아버지께서 기도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그 가장 좋은 것이란 바로 성령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성령을 바라는 것은 신자의 가장 주요한 기대감이다.
성령의 세례, 성령의 충만을 바라라는 것이다.

2. 예수님의 승천
예수님의 우리의 신앙에 목표이다.
승천하시는 주님은 신자들에게 하나의 이상을 주는 목표를 제시한다.
그의 승천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마지막 영광의 자리이다.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며,그분이 계시는 영광의 자리를 바라보며 신앙의 경주를 하는 것이다.

3. 다락방에서의 기도
그들은 약속을 받은 공동체로,그들은 하나님의약속의 실현을 위해
기도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1.그들의 기대감은 동일하다
2.그들의마음이하나가 되었다.
3.기도에전념하였다.
4.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가져올 간절한 간구였다.

본문 이해
4.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몸의 부활을 추가로 보여주신 증거를 알려준다.
주님의 나타남의 증거는 그의 부활의 사실성을 확증 한다.
주님의 부활 후에 승천하시기에 앞서 주 예수님은 따르는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는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시는 새로운 약속을 부여하신다.
누가 복음24: 49에서 아버지께로부터 약속하신 선물이 오시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이시다
(행 1:5, 요14: 16, 15:26, 16:7).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주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요1: 33, 행전2: 38).
사도들은 오순절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주 예수님께서 여러 번 반복해서 약속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신다는 내용이다
(눅11: 13, 24:49, 요7: 39, 요20: 22).
그리고 나서 모든 신자들은 구원받을 시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고전 12: 13, 롬8: 9, 고전 6:19-20, 디3: 5-6).
6.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사도들은 여전히 메시아의 지상 왕국이
곧 세워질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눅19: 11, 24: 21).
그들은 알았다. 겔 36장과 요엘2장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부으심이
그 왕국의 도래와 더불어 오리라는 것을.

7.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구약에서 예언되고 주님이 가르치셨던 왕국이
지상에 도래하리라는 것을 기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가르침의 핵심을 수정하여 고쳐 알려주셨다.
때와 시즌은/ 이 두말은 시기와 기간에 대해
그의 지상 왕국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그리고 그의 재림에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다(마25: 21-34).
그러나 그의 다시 오심에 대한 정확한 때에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막13: 32, 신29: 29).

8.
사도들의 복음 전파의 사명은 성령이 그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시는 주된 이유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틱하게 세계 역사를 바꿀 것이며,
복음의 메시지는 결국에 세상의 모든 곳에 전파될 것이다 (마28: 19-20).
능력을 받으리라/ 사도들은 이미 성령의 구원, 인도하심, 가르치심,
그리고 기적 행하심의 능력을 경험하였다.
이제 곧 그들은 성령의 내주하시는 거주하심과
증인으로서의 새로운 차원의 능력을 받을 것이다 (행2: 4, 고전 6:19,20, 엡 3:16,20).
증인들/ 예수님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 (요14: 26, 벧전3: 15).
희랍어의 의미는 증인은 일반적으로 그의 증거의 가치로 인하여
그의 믿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9.
둘리우심/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활하신 몸의 주 예수님을 세상에서 취하여
그의 오른편에 올리신다 (눅 24:51, 행 2:33, 요17: 1-6).
주 예수님의 영광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신다.
구름으로/사도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바라보았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의 현존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이번만이 아니고 과거에도 그들은 그 영광을 경험하였다 (마9: 26).
그 구름은 마지막 때에 주님이 오실 때에도 나타날 것이다(막13: 26, 14:62, 계 1:7).

10.
흰 옷 입은 두 사람/
사람의 형태를 취한 두 천사를 의미한다(창18: 2, 여호수아 5: 13-15, 막16: 5).
그들은 주님의 승천을 맞이하기 위해 영광의 구름 가운데에 나타나,
주님의 승천을 알리며, 그리고 재림하실 주님을 예언하고 있다.

11.
갈릴리 사람/
자살했던 가롯 유다를 제외한 사도들은 모두가 갈릴리 사람이다.
갈릴리 사람들은 유다중심의 이스라엘에는 변방의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을 수행한 사람들이다.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가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의 그루터기의 신학은
변방의 사람들의 헌신을 통해 발전하게 되었다.

12.
감람 원이라는 산/ 예루살렘 동쪽의 기드론 계곡에 위치한 그 도시보다
200피트 높은 넒은 오르막의 언덕이다 (눅24: 50, 51).
안식일에 갈 수 있는 거리/반 마일 정도의 거리이다.
신실한 유대인이 출16: 29에서 금하는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여행의 거리이다.
이 거리는 전통적으로 광야의 천막 생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장막들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으로
안식일에 성막에 닿을 수 있는 2000의 피트 정도의 거리이다 (수3: 4, 민35: 5).

13.
다락방/주님의 마지막 만찬(성찬)이 시행되었던 곳이다.
부활 후에 주님이 그곳에 나타나셨다.
다락방은 초대 교회의 시작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이곳에 성령의 강림을 통해 교회의 탄생과 더불어 복음 전파의 근원지로 세워졌다.

14.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이 때에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패턴이 생겼다 (요14: 13,14).
초대 교회의 기도는 합심 기도로 시작하여,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기도하는 공동체로 나타난다.
교회는 이때부터 기도하는 공동체로서의 자기 정체의 상징을 세우게 되었다.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는 주님의 교훈이
지상 교회의 현실로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신학적 가르침
성령/ 성령님은 성자의 사역을 통해 이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들 가운데에 강림하셔서, 그의 지상 사역을 이루어 가신다.
성령은 원래, 창조 사역 속에서 이미 활동하셨으나,
주님의 승천을 통해 그의 사역은 구속과 구원 사역을 이루어가신다.
성령은 주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구속 사역의 완성을 통해,
지상에 있는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영원히 거주하시며, 사역하시게 되었다.
성령의 강림과 사역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공동체의 기도 실천을 통해 이루어 진다.
주님의 증인이 되는 길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믿는 무리들이 그의 약속을 믿고,
성령의 강림을 대망하는 기도하는 심령 위에 임하게 되며,
그의 임하심을 통해 주님의 증인으로 변화되는 권능을 입는다.
고로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은 성령의 사역이 아니면 이루어 지지 않는다.

승천/ 주 예수님의 승천은 초림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 받는 메시아의 위상을 벗어나,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주권자로서의 위치를 알려준다.
주님의 승천은 지상 사역의 완성과 더불어, 장차 이루어질
우주적인 구원의 사역의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승천은 그의 영광의 자리에 나아감을 의미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으사,
통치하시는 만주의 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승천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궁극적인 희망이 되며,
장차 그들도 그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나갈 것을 기대하게 한다.

합심 기도/ 초대 교회는 일심하는 마음으로 합심 기도를 드린다.
교회의 신앙적인 성격을 알려준다.
기독교의 영성이나 신앙의 근거는 공동체의 연합적인 테두리에서 출발한다.
개인의 영성이나 묵상으로서의 주님과의 개인적인 관계 위에 세워지는 영성도 있지만
교회의 공동체의 영성의 성격으로서 교회의 신앙을 알려준다.
고로 교회는 합심하는 무리들의 일치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바라보는
약속 받은 공동체의 그 약속을 실천해 옮기는 무리들의 모임이다.

성경 공부안
약속된 성령 4-8
부활하신 주 예수님은 따르는 무리들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신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교회의 탄생과 시작의 예언),
그리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선물을 기다리라(성자의 사역의 결과로 오시는 성령의 강림)
그리하면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성령의 내주와 충만의 사역의 시작 예언),
그리고 나서, 그들은 모두가 내 증인들이 되었다(성령의 능력을 통한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
1.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2. 주님의 증인이 되려면?

예수님의 승천 9-11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승천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을 바라보는 것은
신앙인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그분은 우리의 목표이며,
최종적으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믿는 자는 주님은 바라봄의 대상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믿는 무리들에게 다시 오시는 재림의 주로 다가오신다.
3. 현재 자신의 신앙적인 목표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4. 주님의 승천은 자신의 신앙의 목표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다락방에서의 기도 12-14
다락방에 모인 초대 교우들 중에는 예수님의 형제들처럼 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이 있다.
초대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로 그들은 성령을 부어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전혀 기도에 힘쓰는 무리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성령을 대망하는 공동체이며,
그 약속을 실현시키는 실천하는 기도자들이다.
5. 초대 교우들처럼 성령을 갈망하는 자신의 믿음은?
6. 자신의 영성 강화(성령 충만)를 위해 얼마나 기도에 힘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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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resurrection and the foundation of Christian faith

 Corinthians 15:1-19

* The resurrection of Jesus is the heart of the Christian faith and message.
The fact of Jesus’ resurrection rests upon the certainty of Jesus’ death and burial,
and sealing of the tomb, and empty tomb,
and on the record of ten different physical appearances of the risen Jesus.
The main message of the apostles is Jesus’ death on the cross and the resurrection of Christ. The message gives the guarantee of the redemption of sin and defeat of death
and the hope of eternal life.

Do I believe in Jesus’ resurrection?
What is the certain testimony among the facts of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The witnesses of the resurrection of Christ (5-11)/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causes the change of those who believe Jesus.
The change of the apostles and the early believers is
the result of witnessing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The witnesses of the resurrection showed in their sudden and amazing changes.
The representative change is the change of Paul
from persecutor to the witness of the resurrection.
The results of the changes are upon the descent of Holy Spirit as the guarantee of
the resurrection and the beginning of the church of the Lord.

3. What is your relationship with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and your Christian faith?
4. What aspects of the resource for changing me?

* The indispensable relationship between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and Christian faith
Sometime in the church, there are those who disbelieve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Their disbelief does not the foundation of their salvation.
Without believing in the resurrection, their faith is in vain.
Without the resurrection people deny God’s salvation the Christ who rose from death.

The result of denial of the resurrection (15-19)/
The message of apostles who speak of the resurrection would be in vain
and they would be false witnesses.
Christians would still be in sin, those who died in the Lord were destroy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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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과 믿음의 기초

고전 15: 1-11, 12-19
본문 분해
주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신앙과 메시지의 핵심이다.
주님의 부활의 사실성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확실성과 그의 장사 지냄과 무덤 인봉, 돌을 옮겨놓음, 빈 무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10번의 가시적인 증거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가시적인 증거들은 6권의 성경 책에 기록되어있다(4복음서, 행전, 고전).

1. 복음의 메시지(1-4)
크리스천의 메시지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의 사실에 있다.
주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의 메시지는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죽음에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 메시지는 크리스천의 구원에 효력을 가져오는 죄의 구속과 죽음의 파멸과
그리고 영생의 부활을 보장한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5-11)
주님의 부활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변화를 가져왔다.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변화는 주님의 부활의 증인의 결과이다.
부활의 증인들은 자기들이 주님의 부활을 본 것,
그 부활을 경험한 것의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생애에 갑작스럽고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대표적인 변화는 교회의 핍박자가 부활의 전도자가 된 바울이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의 결과에는 부활을 보증하시는 성령의 강림과
목숨을 걸고 전하는 그들을 통한 주님의 교회의 탄생이 있다.

3.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12)
간혹 교회 안에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믿음은 구원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4. 부활과 믿음의 관계(13-14)
부활을 믿지 못하면 믿음이 무효이다. 주님의 부활도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다면 죽음에서 부활을 이루신 구원의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부활을 전하는 메시지도 헛된 것이다.

5. 부활의 부인의 결과(15-19)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의 메시지도 헛것이며, 거짓 증인들이다.
크리스천들은 여전히 죄의 상태에 놓여있으며, 주님 안에 먼저 믿고 간 이들은 멸망한 것이다.
사도들과 모든 전도자들을 포함한 크리스천들은 가장 불쌍한 자들이다.

본문 이해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교회(1,2), 성경(3,4), 증인들(5-7), 바울 사도 자신(8-10),
그리고 부활에 대한 메시지(11)로 증명하고 있다.

부활의 증인들(5-7)
1. 요한과 베드로(요20: 19-20; 눅 24:34) 2. 11사도(요20: 19-20, 눅24: 36, 행1:36),
3. 500 신도(벧후 3:15,16). 4.야고보(행15:13-21) 5. 사도들(요20: 19-29).

1-2
바울이 고린도에 전한 복음은 사도들이 전해 변치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한 메시지의 변질이나
부활의 가르침에 대한 변형이 발생하였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고린도인들에게 진행되는 구원 경험의 필수적인 기본이 된다.
부활의 가르침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몸의 부활을 거부하는 것은 복음의 내용을 변질시키는 것이며,
믿음의 원리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복음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있는 믿음을 굳게 잡는 것을 포함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복음에 대한 믿음은 무효인 것이다(마태13: 18-22).

3-5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진리를 받은 것에 대해 말할 때에
모든 믿는 이들 속에 자신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구절들은 복음의 핵심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고백으로 여기는데,
그것은 두 가지로 그리스도가 모든 이들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과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이것의 사실성은 성경에서 증명되고 있다 (시편 16:10, 이사야 53:8-10)
그리고 역사적인 증거로 빈 무덤의 사실과 그곳에서 살아있는 주님의 현존이 나왔다.
그 사실은 예수님이 그의 죽으심이 무덤에 묻혔다는 것과
그리고 그의 부활하심이 다른 이들에게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베드로가 증인이었고, 그 후에 남은 주님의 가까운 제자들에게 증명되었다.

6.
그 후에 더 많은 무리에게 주님의 부활이 증거되었다.
주님을 따르는 무리 500명 정도가 그의 부활의 증인으로 마태 28:19-20 주님의 승천 시에 있었다.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쓸 무렵에 이들 중 대부분 당시에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7-8.
어떤 이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는 이들만이 단지 믿음의 눈으로 본 것으로 여겼다.
그들 중에 두 사람이 처음에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이복동생이였던 야고보와
믿는 이들을 핍박했던 바울 자신이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바울과 같이 야고보도 아마 부활하신 주님의 출현(행 9:2-6, 22:6-11)으로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요7:5 와 행 1:14를 비교).
바울은 그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사람처럼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고 있다.
이전에 언급한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것처럼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고전 9:1).

9.
그는 덜 자란 동물처럼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자신을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로 고백한다.
그는 더 나아가 사도직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교회를 핍박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행22: 4; 딤전 1:15-16).

10.
그러나 그는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자신을 받아들인자로 교회 안에서 활동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덕분이라고 한다.
교회의 역사는 그의 헌신을 무시하지 않고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다른 사도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곳을 방문하여 전도하였으며,
많은 핍박을 받았으며, 누구보다도 많은 신약의 서신들을 기록하였으며,
그리고 여러 곳에서 여러 교회들을 세웠다.
그러나 바울은 결과적으로 이런 여러 가지 이룬 일들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한다(고전2: 4-5).

11.
바울은 마지막으로 메신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메시지 자체에 대해 언급한다.
사도적인 메시지는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이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로 이루어졌다.
그 메시지를 바울이 전했으며, 고린도 교회가 믿었던 것이다.

12.
바울은 아무도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구조 안에서 부활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3
그 원리 안에서 몸의 부활을 부인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안에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어,
그런 불신의 결과는 심각한 믿음의 손상을 가져온다는 것을 경고한다.

14.
그런 신앙적 부인은 복음의 메시지 안에서 부활을 부인하는 것인데,
그 복음의 메시지는 생명이 없음을 알려준다.
만일 그렇다면 고린도 교우들의 믿음은 쓸모 없는 것이며,
그들의 믿음 여전히 죽은 것으로 여김을 받기 때문이다.

15-16
그 교회의 사도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를 확증하였기에 부활이 없다는 고린도 사람들에 의하면,
그들은 사기꾼이며, 거짓 증인들인 것이다.

17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는 고린도인들의 구원은
실제적인 구원이 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부활은 하나님의 유효성의 확증을 통해 구속 받음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희생을 대가로 치른 것을 받아들인다.
부활이 없이는 십자가의 구원은 효력이 없으며,
여전히 고린도 교우들은 구원에서 벗어났으며, 죄 가운데에 있게 된다.

18
그리스도가 부활이 없다면 고린도교우들중에 죽었던 이들은
영생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벌에 머물러 있게 된다.
이방 종교의 영혼의 자유 개념은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부활이 없이는 죽음의 형벌에 머물러 있으며, 영원한 고통에 처하게 된다

19
부활이 없다면 이방인들이 옳은 것이다. 십자가의 어리석음은 정당하며,
바울과 사도들 같은 이들은 복음을 위해 고통을 받았으므로 불쌍한 자들인 것이다.
찰나의 즐거움을 위해 사는 이들이 옳으며,
크리스천들의 희생은 단지 불쌍한 자들의 천박한 행동이며, 자기 연민의 조크에 지나지 않는다.

신학적 가르침
부활 신앙
주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시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적인 증거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의 부활을 통해
온 세상의 주님과 구원받을 자의 메시아(그리스도: 구세주)와
원래 하나님의 아버지와 똑 같은 신적인 존재이셨던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므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온 우주의 전능하신 통치자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시므로 죄와
죽음 아래에 놓여있는 인간들의 문제들을 해결하시고,
이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의 구원의 기관으로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의 부활의 보증이셨던 성령을 보내사, 전 세계에 그의 복음을 전하셨다.
부활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이러한 사실들을 믿음의 근거로 세우며,
그 기초들 위에 신앙의 집을 세워나간다.
부활의 첫 열매인 주님의 부활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주님의 재림 시에
즉 세상의 마지막 때에 일어날 영생의 부활을 믿으며,
하나님의 자녀들의 몸의 구속(영광의 변화)을 기다린다.

성경 공부
* 주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신앙과 메시지의 핵심이다.
주님의 부활의 사실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확실성과 그의 장사 지냄과 무덤 인봉,
돌을 옮겨놓음, 빈 무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10번의 가시적인 증거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가시적인 증거들은 성경 6 책에 기록되어있다(4복음서, 행전, 고전).

복음의 메시지(1-4) 크리스천의 메시지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의 사실에 있다.
주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인간의 지를 위해 죽으셨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의 메시지는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죽음에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 메시지는 크리스천의 구원에 효력을 가져오는 죄의 구속과 죽음의 파멸과
그리고 영생의 부활을 보장한다.
1. 나는 주님의 부활을 믿는가? 2. 주님의 부활은 가장 확실한 증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5-11) 주님의 부활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변화를 가져왔다.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변화는 주님의 부활의 증인의 결과이다.
부활의 증인들은 자기들이 주님의 부활을 본 것,
그 부활을 경험한 것의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생애에 갑작스럽고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대표적인 변화는 교회의 핍박자가 부활의 전도자가 된 바울이다.
그 변화의 결과에는 부활을 보증하시는 성령의 강림과 목숨을 걸고
부활을 증거하는그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주님의 교회의 탄생이 있다.
3. 주님의 부활과 자신의 믿음의 관계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4. 부활하신 주님은 나에게 무엇을 변화시키셨는가?

* 주님의 부활과 자신의 믿음
간혹 교회 안에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믿음은 구원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부활과 믿음의 관계(13-14) 부활을 믿지 못하면 믿음이 무효이다.
주님의 부활도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다면 죽음에서 부활을 이루신 구원의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부활을 전하는 메시지도 헛된 것이다.
부활의 부인의 결과(15-19)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의 메시지도 헛것이며, 거짓 증인들이다.
크리스천들은 여전히 죄의 상태에 놓여있으며,
주님 안에 먼저 믿고 간 이들은 멸망한 것이다.
사도들과 모든 전도자들을 포함한 크리스천들은 가장 불쌍한 자들이다.
5. 혹시 자신이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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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Our King!

Luke 19:28-44


* The Meaning of Palm Sunday/
Jesus went to Jerusalem to be a part in the feast of Passover in final week.
There would happen very important things in the public ministry of the Lord.
He was raised among the people as King and Messiah before His death on the cross

1. What about your experience in accepting Him as the Lord of life?
He wants to be the Lord of my life and rule my life.
All the parts in my life, what is His position in my life?
Guest, even an invited guest, spectator or the Lord of my life.

* To be His tool means to be a humble servant and respect Him.
Jesus’ using the colt give us an important lesson.
We need to serve Him with a humble and a pure heart.

2. What about my attitude to serve Him?

*Triumphal entry/ People raise Him joyfully and respectfully as the King of peace.
To raise Him means the joy and ministry of people of the Lord.
People are those who serve Him asking, or someone reject Him so they must be destroyed.
Jerusalem that rejects Him should demolish in final.

3. Lord Jesus comes to us the King of our life. In our life, how about raising Him?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to serve Him or reject Him?
Joy and anguish, heaven and hell, victory and defeat, courage and desp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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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종려 주일
예수! 우리의 왕이여! (누가 복음 19: 28-44)

본문 분해
* 종려 주일의 의미/ 주 예수님은 마지막 공생애의 한 주간을 남기시고 예루살렘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시기 위해 그곳에 가셨다. 주님의 사역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중요한 일정을 이루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에 두고 승리자로, 왕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으신다.
28-29 예루살렘 도착
29-34 제자들의 파송, 나귀의 쓰임

* 주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은 그분의 선택하심과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그분을 모시고 사는 섬김의 신분으로 그분에게 쓰임을 받는 것이다. 나귀의 쓰임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겸손과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 예루살렘 승리의 입성 하심
35-38 예수님의 행차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백성들은 기쁨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쁨으로 높이고 있다. 주님을 높이는 일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기쁨이며, 사명이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기뻐하는 인생들이 있는가 하면, 그분의 통치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찬양을 원치 않아, 주님의 평화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의 구원과 평화를 거부하는 예루살렘은 결국 파멸되리라는 주님의 예언을 받게 된다.
39- 바리새인들의 항변
40- 예수님의 답변
41-44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예언

본문 이해
예루살렘에 가시는 예수님의 목적은 메시아로서 자신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예루살렘에 가셔서 두 가지 부분에서 사역하셨다. 하나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셔서 메시아로 드러내시며(19: 28-44), 또 하나는 그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거기서 몇 일간을 가르치셨다 19: 45-21:38).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세상에 가져오신 메시아로 알리셨다. 이제까지 주님은 자신을 메시아로 알리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는 이스라엘 사회에 공개적으로 자신을 알리시며, 자신의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신다.
28-34 예루살렘 입성의 준비
누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때를 알린다. 그는 여리고로부터 올라오셔서 (18: 35-19:10), 예루살렘에서 짧은 거리인 베밧게과 베다니에 계셨다.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신다.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나귀를 발견하면 이리로 끌고 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스가랴 9:9-10의 메시아가 나귀를 타리라는 예언을 이루셨다 (마태21: 2에서 나귀와 나귀 새끼로 언급하고 있다). 군중들은 상징 뒤에 있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다. 나귀 새끼의 주인들은 그 두 제자들에게 그들이 요구 한대로 허락한다. 주님에게 그것이 필요한 대로.

35-40 예루살렘 입성의 모습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시로 나가시기 위해 감람산의 서쪽으로 나가셨다. 군중들에 의해 그들의 메시아로 높임을 받으셨다. 예수님의 앞에 놓인 길 위에 그들의 옷을 펴는 행위는 존경의 표시였다. 따르는 제자들의 무리들은 그들이 보아왔던 기적을 행하신 그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기 시작하였다. 이 신자들은 시편 118:26에 인용되어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그의 제자들을 꾸짖을 것을 언급하였다. 즉 그들은 그가 메시아나 왕으로 불리움을 받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그가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돌들이 그를 위해 증거하기 위해 부르짖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모든 역사는 그 메시아가 공식적으로 그 자신을 그 나라에 드러나게 위해 있어왔다. 하나님은 메시아에 대한 그 선포가 알려지기를 원하셨다.

41-44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열정을 보여주셨다. 그는 장차 그 도시가 파멸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언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거부한 예루살렘을 거부하셨다. 그는 그 도시를 향해 우셨다. 왜냐하면 그 도시의 사람들이 그가 가져오신 평화를 가져오신 그 날을 국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때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 도시가 철저히 파괴될 것이다. 로마 군인들이 주후 70년경에 그 일을 이루었다.

28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20마일 가량 동안에 약 4000피트를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다. 이것은 9:5에서 시작한 여행의 긴 여정이었음을 알려준다.

29 벳바게와 베다니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에 자주 그곳에 머무셨다. 감람이라 불리는 산/성전에 인접해있는 기드론 계곡의 동쪽에 위치해있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있는 지구의 주요 봉우리이다. 올리브 분지는 그곳을 많은 올리브 나무로 덮고 있는 지역이라는 이름에서 나왔다.

30 나귀 새끼
다른 복음서에서는 당나귀의 새끼로 알려졌다 (스가랴 9:9). 마태에서는 엄마 당나귀도 같이 오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그 새끼 나귀는 한번도 아무도 타지 않은 어린 나귀였다.
36 그들의 옷을 펴고
누가는 마태와 마가에서 언급한 종려나무 가지를 자르는 내용을 생략하고 있다.
37 제자들의 큰 무리가
이 많은 무리가 진정한 제자들은 아닐 것이다.
큰 기적을 행하심
요한 12:17,18 그 나사렛 사람 에 대한 뉴스는 그 소문을 듣고 싶어 하는 군중들 사이에 전해졌다.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큰 기적의 사역을 요한 12:17,18에서 언급하고 있다.
38 그 왕을 축복하신다.
시편118: 26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외친다.
하늘에 평화가
단지 누가만이 이 구절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천사의 메시지인 2: 14의 내용과 비슷하다.

39 제자들을 꾸짖기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그런 예배적인 찬양으로 돌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며, 그런 행위들을 멈추기를 원했다.

40 돌들이 즉시 소리지르리라
성경은 자연 세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자주 언급한다(시편 96:11; 98: 7-9; 114:7; 이사야 55:12. 세례 요한의 언급 마태3: 9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성취에서 마태27: 51.

41, 42
여기서 누가만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도시를 위해 우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주님은 적어도 다른 때에 두 번 정도 예루살렘을 슬퍼하셨다 (13:34, 마태23: 37). 이 탄식하심은 승리의 입성하시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예수님은 백성들의 마음의 진정한 면을 알고 계심을 보여준다. 같은 군중들이 곧 얼마 있지 않아 주님의 죽으심을 향해 슬퍼한다 (누가 23:21).

43 너를 에워싸고 너를 가두리라
21:20, 이것은 주후 70년경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할 때에 사용하는 방법이 되었다. 그는 그 도시를 4월 9일에 포위하고, 그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공급원을 차단하여,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내려는 그 성안의 수만의 사람들을 가두는 함정에 걸리게 하였다. 로마 군인들은 조직적으로 그 성을 포위하는 방둑을 건설하여 그 도시의 주민들을 점차로 굶주리게 하였다. 그리고 여름에 하나씩 하나씩 그 도시의 여러 곳을 패배시겼다. 그리고 9월 초순에 가서 그 도시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44 너가 다 평지가 되리라
이것은 그대로 이루어 졌다. 로마 군인들은 그 도시의 성전, 거주지들, 사람들을 다 깔아 뭉게 버렸다. 수만의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까지 잔인하게 살해 당했다. 겨우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아, 로마의 경기장의 놀이개로, 혹은 검투사로 사용되었다.

너가 너의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멸은 메시아가 그 도시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신학적 가르침
종려 주일(Palm Sunday)
종려주일은 크리스천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리스도가 승리하심과 그가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요한도 계시록에서 마지막 승리의 의미를 부여할 시에 종려를 흔든다고 언급한다(계시록 7:9),

호산나
도와주세요,구원해주세요 의 외침의 표현이다. 그냥 혼자 쓰이기도 하고 다윗의 자손이여 라는 말에 붙여 쓰이기도 한다.
구약의 시편에서 할렐 시편에서 쓰이기도 한다(시113-118). 그리고 장막절에 종교 의식적으로 암송되어진다 (시118:25). 그것은 유월절이나 오순절에도 그리고 봉헌시에도 불리어진다. 할렐이나 송축할 때에, 국민적인 축제에 참석한 왕들이나 승리자들에게 인사하는데 불리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승리의 입성시에 예수님은 약속된 그리고 기대한 왕으로서 백성들에게 영광송으로 불리어 지게 된 것이다.

종려나무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아름다운 데이트 종려로 나와있다. 코코넛 종려나무는 중동에서 자라지 않는다. 긴 가느다란 줄기는 높이가 80에서 100피트가 된다. 그 나무는 100년에서 150년을 산다. 굵고 긴 뿌리는 그 나무를 사막에서도 잘자라게 한다. 그 나무는 모든 부분을 유용하게 쓰인다. 종려나무는 구약에서 종교적인 행사에 쓰인다. 장막절에 무화과 잎을 사용한다(레23: 40, 느8:15). 솔로몬 성전(왕상6: 29)이나 에스겔의 승리의 성전(겔 40: 16)에 문이나 벽에 장식으로 무늬로 새겨졌다.

성경 공부안
* 종려 주일의 의미/ 주 예수님은 마지막 공생애의 한 주간을 남기시고 예루살렘 유월절 잔치에 참여하시기 위해 그곳에 가셨다. 주님의 사역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중요한 일정을 이루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에 두고 승리자로, 왕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으신다.
1. 자신의 생애에 예수님께서 왕으로 등극하심을 어떻게 경험하였습니까? 즉 주님은 나의 주인으로 혹은 나의 주님으로 통치하시기를 원하신다. 나의 삶의 모든 분야에 그분은 어떤 분으로 계시는가? 손님, 불청객, 주인, 주님, 아니면 방관자로

* 주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은 그분의 선택하심과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그분을 모시고 사는 섬김의 신분으로 그분에게 쓰임을 받는 것이다. 나귀의 쓰임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겸손과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2. 주님 앞에 쓰임 받은 나귀처럼 순전하고 겸손한 자세로 주님을 모시고 섬기는데, 자신을 그분을 높이는 믿음의 자세는?

* 예루살렘 승리의 입성 하심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백성들은 기쁨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쁨으로 높이고 있다. 주님을 높이는 일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기쁨이며, 사명이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기뻐하는 인생들이 있는가 하면, 그분의 통치하심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찬양을 원치 않아, 주님의 평화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의 구원과 평화를 거부하는 예루살렘은 결국 파멸되리라는 주님의 예언을 받게 된다.
3. 주 예수님은 우리의 생애에 왕으로 임하신다. 우리의 삶 안에서 그분을 높이는 길은?
그를 왕으로 모시는 것과 그를 거부하는 것의 차이는? 기쁨과 고통, 천국과 지옥, 승리와 패배, 용기와 낙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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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질적인 병폐내지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늘 잊어 버리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늘 걱정에 휩싸여 사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남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해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항상 약속시간에 늦거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늘 무엇인가를 잊어버리는 습성은 자신의 생각에 몰두하거나
어느 부분적인 것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할 때에 일어난다.
차에서 내릴 때에 차열쇠를 두고 내리는 일이나,
아파트집을 나설때에도 문열쇠를 집에다 두고 나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증상은 자신에 대한 연민적인 상태의 지속이나,
자기만의 세게에 몰입하여 있으면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외부의 세계와의 대상화에서 자신의 전체일을 파악하지 않아,
늘 보면 길을 나서거나 일을 준비할때에는 무엇인가 빠진 것들이 있다.
특히 이런 일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해도 자신의 사고반경이 부분적일 때에는 빠뜨려 지는 일들이 일어난다.
고로 자기중심의 패턴에서 벗어나는것은 물론 부분적인 것에서
전체를 볼수 있는안목을 키워야 할것이다.

늘 걱정을 안고 사는 경우는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거나, 소심한 사람에게 일어난다.
모든 일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보니 쓸데없는 걱정,
부질없는 소일까지 늘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인간의 삶자체가 불안을 안고 사는 존재이다.
고로 사람이 일상의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닌것이다.

걱정의 생각은 사고하는 인간의 의식을 가두어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처럼 늘 걱정의 한 짐을 지고 살아간다.
고로 이런 상태에서 걱정을 벗어나는데 마음의 평안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의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신의 마음이나 삶의 위치가 안정된 상태에 있을 때에,
평안이 생긴다. 신을 믿고 의지하는 유익은 인간의 자기존재에 대한 무지나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신을 통해 사람은 자기의 존재의 위치나 미래의 전망에 대해 확실한 보장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불안을 극복하는 신이 주는 평안을 맛볼수 있다.
그 평안함이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걱정하는 습성을 해소할 수 있다.

남을 향해 항상 부정적인 반응을 드러내는 사람은 자신안에 자신에 대해
부정적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도 오랫동안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싸여서 그렇게
남에게 욕을 해대는 사고패턴에 길들여 온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남에게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욕을 하므로
일시적인 마음의 짐을 더는 효과가 있으나,
그것이 늘 상용적으로 나타나면, 자칫 자신의 결점을 평소에 노출하며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입에서 뱉어나오는 악한 말들은 마음에서 가지고 있는 악한 생각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을 가꾸는 일은 마음에 들어가는 정보를 통해 형성이 된다.
그리고 무엇을 마음에 담고 있는 가는 자신의 언어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늘 마음을 열고 좋은 말이나 선한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은
그 지식을 통해 마음을 바르게 갖게 한다. 그리고 바른 판단을 하게하며,
옳은 일을 하게 하며, 좋은 말을 쏟아낸다.
반면에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남의 말이나 주는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옳은데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게 한다.
마음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래동안 묶은 생각들로 고여 있으면,
신선하지 않게되며, 마음의 창은 어두워 지고,
그 어두운 마음안에는 악한 생각이나 쓸모없는 부정적인 사고들로 차게 되어,
그런 악한 것들을 입으로 쏟아내게 되어, 자신의 입을 더럽힐 뿐 아니라,
남에게 상처를 주는 욕을 해대기가 쉬워진다.
그동안 좋았던 인간관계도 쓸데없는 말이나
부정적인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을 통해 악화되기도 한다.
고로 사람은 항상 마음을 열어놓고 신선하고
선하고 좋은 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이 필요하다

약속시간에 늦거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는 습성은
항상 우리의 일이나 약속시간에 대한 준비가 그 시간의 끝에 맞추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약속시간에 늦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정해진 약속시간을 향해 그 시간에 닿으려는 생각때문에,
그 생각에 의해 진행하는 시간계산이 갑자기 일어나는 해프닝으로 인하여
제대로 정상적으로 진행이 안되어 일어난다.
정해진 시간내에 일을 마무리하는 것도
시간의 끝에다 맞추다보니, 일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모자라기 마련이다.
고로 항상 시간을 처음에 맞추어 나가면
시간의 끝에 가서는 제 시간에 약속시간을 맞추거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잘 사용하는 길은 그 시간의 때에 필요한 것을 하는 것이다.
시간은 필요에 의해 생겼으며, 유용한 사람은 필요를 따라 시간을 잘 선용할 것이다.
고로 사람은 때에 맞는 필요를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이 무엇을 할 때인가?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 일을 하는 것이 시간을 정복하여 활용하는 사람일 것이다.
지금 내 영혼의 일에 대해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이 그런 일을 생각해야 할 때인가?
그렇다면 그 일을 생각해보면 영혼의 유익을 위해 좋은 일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병폐적인 습관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길들여온 자신의 사고의 패턴에 의해 나타난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이 고칠려고 애를 쓰고 결심하여
그것을 개선하려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고로 이런 패턴을 깨뜨리기 위해 과감하게 자신을 향해
변화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자신을 내어놓는 일이 필요하다.

신을 믿는 저자로서는 그런 고질적인 패턴을 깨는 방법으로는
그런 병폐적인 패턴을 깨는 기도를 드리면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이런 패턴을 깨는 기도는 내면의 치유에 필요한 내적인 치유기도의 한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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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능력

야고보서 5:13-18

본문 분해
* 기도해야 할 이유
1. 고난을 당할 때에(주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할 시에)
2. 병이 들었을 때에(연약한 중에 있는 자신을 위해)
* 찬양을 하는 이유
1. 만족한 상태에서(영혼의 자족하는 자세) 하나님께 찬양을 노래함
2. 기쁜 마음으로(마음의 기쁨=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것과 다름(요한15: 11)
* 치유를 위한 기도
1. 믿음의 기도=치유의 역사와 용서의 역사(육체의 치유와 영적인 치유)
2. 합심 회개기도=서로 죄를 고백하며, 서로 기도하시오(중보 기도의 힘)
* 기도의 사람: 엘리야
1. 같은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나, 그는 믿음의 기도의 사람이다.
1. 자연을 지배: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였고, 비가 오기를 기도함
2. 응답의 역사: 믿음의 기도, 기도의 힘

본문 이해
야고보의 서신의 클라이맥스는 기도의 강조에 있다.
신자가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것 중에 신실한 기도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기도는 돌봄의 분명한 증거이다.
기도는 사람들의 일중에 복잡하거나 불가능한 것에 대해 도울 수 있는 하나님에게 직통하는 것이다. 기도 안에서 나누는 것은 신자들에게는 누군가의 필요에 민감함을 나타내며,
필요한 사람들을 부지런히 간구하며 그들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13/ 오늘날 교회 안에서 두 가지 약한 면은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면이라 하겠다.
이런 것에 약한 것은 영적인 둔감함으로 인하여 일 것이다.
기도와 찬양에는 둘이 다 그것을 하는 이유기 있다.
고난을 받을 때에는 그 고난을 통해 거기에 맞는 기도가 나오고,
만족이 있을 때에는 거기에 맞는 기쁜 찬양이 나온다.

13/고난/ 핍박에 의해 혹은 악의 영향으로 고난을 당하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평안을 구한다.
기쁜 마음의 자연스런 반응은 하나님께 찬양을 노래하는 것이다.

아픈 자가 있는가?
야고보는 단순히 병든 이를 이야기 하기보다는 고난 중에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약한 상태에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불러 그들을 돕게 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겁있는 자들을 용기를 북돋우며, 약한 자들을 돕는다(살전 5:14).

14-15/ 아픈자즉 고통에 의해 약하게 된 사람들을 위해 교회의 지도자(장로)들은 힘을 북돋우며,
지원하며 기도로 돕는 것이다. 약한 자들을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 새롭게 하며, 격려하며,
그리고 그들의 신앙을 기름 부음을 통해 앙양하는 것이다.

14/ 기름을 붓고 기름으로 문지르는 의미이다. 이것은 아마 의식적인 기름 부음을 의미할 것이다.
야고보는 핍박에 의해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는 신자들을 위해 의학적으로 다루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기름 부음은 은유적으로 신자들에게 장로들의 격려, 위로
그리고 힘을 강화시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타락한 자, 낙심한 자, 낙담한 자들을 위해 지도자들에 의해 그들에게 회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강건하며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받아도 육체적으로 아픈 자들은
여전히 아플 수 있기에, 그래서 여기서 신자들에게 생각케 하는 바는
영적인 회복보다는 육체적인 회복에 대해 오해를 주기도 한다.

15/ 믿음의 기도는 장로들이 드리는 기도로, 병든 자를 구원(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느 경우는 그들의 공중 고백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아
육체적인 고통으로 얻은 병을 고치는 경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장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 진다(이사야 43’;25, 단 9:9, 막 2:7).
당시에는 죄를 지은 이들이 장로들이 참여하는 중에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경우이다.

16/ 서로의 허물을 고백하며/ 상호간에 정직하게 열린 마음으로 신자들이 서로를 대할 때에,
영적인 싸움에서도 신자들이 서로의 필요를 나눌 수 있다.
경건자들의 강하고 열정적 기도는 아주 효과적이다 (민수기 11:2).

신앙인으로서 서로에 대한 관심은 좌절과 낙심을 이기는 길이다.
치유는 개인적인 고백과 기도의 관심에 의해 이루어 진다.
여기서 말하는 치유는 단순히 육체의 치유뿐 아니라, 영혼의 치유를 의미한다
(마태 13:15, 히 12:13, 벧전2:24). 의인의 강력하고 효과적인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치유를 가져온다.

17-18/
엘리야는 구약에서 가장 강한 기도의 능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기도에 의해 우상 숭배자들의 갈멜산의 영적인 대결에서 승리하여 850인의 바알,
아세라 우상 숭배자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는 3년 반 동안 자연 세계를 움직이는 기도를 드렸다.
가뭄과 단비의 역사가 그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엘리야는 신앙인으로 같은 고난을 받았던 사람이며,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는 기도의 사람으로 자연 세계를 지배하였다.

열심 있고 끈질긴 기도는 기도의 응답을 가져오나,
두 마음을 품은 기도는 자기 패배로 자기를 속이는 것으로 응답을 가져오지 않는다(약1: 6-8).

신학적 가르침
고난에 대해/ 신앙인으로 겪는 고난은 신앙으로 인한 수고이며,
영적인 이유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의 우리네 신앙인들은 외부적인 고난보다는
내면적이고, 영적인 갈등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
영적인 갈등은 외부적인 요인(사람이나, 환경등)도 있지만,
자기 내면의 정리되지 않은 영적인 일관성을 잃은 데서 오는 혹은
유혹이나 잘못된 가르침이나 안내를 통해 자기도 모르게 갈등을 겪는다.
내면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와 마음의 자세와 사고하는 태도를 통해 나타난다.
그 세가지 면에 대해 과거의 사건이나 상처들을 통해 오며,
현재의 정상적이지 못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기도 한다.

기도에 대해/ 의인의 간구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통해 형성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분 앞에 아브라함처럼 의인으로 여김을 받는 믿음을 소유한 자이다.
기도자는 기도할 믿음이 요구되며,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조지뮬러는 수 만번씩 응답을 받았는데,
그의 응답의 비결은 그는 하나님의 필요를 따라 구한 사람이라는 데 있다.
기도의 응답은 끈질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엘리야의 기도는 끈질긴 기도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한번이 아니고 일곱번 엎드려 기도한 그는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치유에 대해/ 온전한 치유는 영혼과 육체의 건강에 있다.
전인적인(영, 혼, 육) 웰빙이 기독교의 온전한 치유이다.
온전한 치유는 성도들 모두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완전한 샬롬의 축복을 받은 상태를 의미한다.

성경 공부안
* 성도들의 건강한 신앙 생활에 기도와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중요한 영적인 표현 방식이다.
누구에게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필요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늘 아버지께 간구와 호소를 드렸다. 우리에게는 더욱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아뢸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1.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맨 처음의 자신의 반응은? 걱정한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등

2. 육체의 병이나 영혼의 병이 들었을 때에(연약한 중에 있는 자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3.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만족한 상태에서(영혼의 자족하는 자세) 하나님께 찬양을 노래하며,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마음의 기쁨=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것과 다름)
(요한15: 11)찬양한다. 자신이 찬양하는 이유와 찬송 생활하는 모습은 어떤지?

* 성도들을 위한 치유를 위한 기도는 믿음의 기도=치유의 역사와 용서의 역사(육체의 치유와 영적인 치유)와 합심 회개기도=서로 죄를 고백하며, 서로 기도하는 것(중보 기도의 힘)이 필요합니다.
1. 믿음의 기도는 어떤 기도라고 생각하는가?
2. 자신이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할 문제는?
3. 회개 (고백) 기도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 기도의 사람: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나,
그러나 그는 믿음의 기도의 사람이다. 그는 자연을 지배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는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였고, 후에는 비가 오기를 기도함.
그는 응답의 역사를 이루었다. 그는 믿음의 기도, 기도의 힘으로 이루어냈다.
1. 기도의 사람의 특성은? 2. 그 외 성경에서 내가 알고 있는 기도의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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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pray in faith, you will be answered

(Mark 11:20-26)
*Making fruit is for believers to the important issue.
True believers can make fruit in the presence of God.
Through the happening of the fig tree,
the lesson was that Jesus judges the fruitless one .
His work comes to the proclamation of His words and its following accomplishment.
So, the words of Jesus appear the following miraculous sign by their power.
Before God, how can believers do fruit?
Obedience, devotion, eagerness, faith, trustworthiness, and etc.

*What is it means faith for believers?
Faith has the power to get own desires.
Faith can give believers to get own desires.
The practice of faith can be accomplished by the example of prayer.
The Lord gave the lesson to move unmovable mountain by the power of faith.
The object of own faith is the very important to effectiveness of own faith.
What about own faith?

*What does it mean for believers to pray?
It means to confirm own faith, to produce the personal relationship with God,
to make do God’s works.
What about own prayer? For what do you pray?
And what about your own prayer life?

*In order to answer your prayer, you have in faith.
Faith can make prayer to respond to God.
The answer of prayer needs to cooperate in the works of faith and forgiveness.
What do I need to get for effective prayer?
Patience, forgiveness, faith, to be fitted to the will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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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도

마가복음 11:20-24(25-26)

본문 분해
*무화과 나무의 비유/ 열매의 교훈과 심판의 교훈을 준다.
예수님의 능력과 사역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능력으로 인하여, 따르는 표적이 나타난다.

*믿음이란?
1. 믿음이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는 힘이 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 진다.
2. 믿음의 실제

산을 명하면 믿음대로 이루어 진다는 사실
* 믿음과 기도와 용서
무엇이든지 믿고 기도한 것은 얻는다.
믿음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다.
기도의 응답에는 믿음과 용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본문 이해 (마태 복음 21:20-22)
마가 11:12-13
다음날 월요일 아침에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길에 예수님은 시장하셨다.
길에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바라보며,
열매가 있는가 확인하셨는데, 열매는 없고 입만 무성하였다.
마가는 그것은 무화과가 아직 제철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그때는 4월 유월절 기간이다.
팔레스틴의 무화과 나무는 3월에서 4월에 잎이 나타나,
먹을 수 있는 싹에서 수확을 할 수 있는데,
이 나무에는 그 열매 있는 싹은 없고 푸른 잎만 무성하였다.
이 열매 있는 싹을 주님은 기대하셨다.
그런데 나중에 그 싹은 정상적인 열매를 맺는 늦은 5월이나 6월 에는 나무에서 떨어진다.

20-21은 12-13절의 내용과 연결되어있다.
다음날은 화요일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무화과나무가 하루 사이에 뿌리채 말라 시들어 버린 것을 발견한다.
이 기사는 이스라엘에 다가오는 하나님의 생생한 심판의 그림으로 알려진다.

20/ 뿌리째 말랐더라
나무가 위로 뻗어 열매 맺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황폐로 결국 그 나무는 죽었다.
마태 복음은 보다 빡빡한 일정의 시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

22/ 하나님 안에 믿음을 가지라
주님의 말씀의 능력 속에는 그의 제자들에게 믿음 없는 것을 부드럽게 책망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명한 믿음은 하나님의 드러난 계시의 진리, 그의 능력,
그리고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요일 5: 14, 마태21: 21).
마태 21: 21에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고 구하는 것이 무화과나무에 대한 일뿐 아니라,
이 산을 명하여 바다에 빠지라 하는 일도 그대로 일어난다고 언급한다.
마가 9:24에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의심이 없는 믿음이라고 언급하며,
귀신들린 아이의 아빠가 필요한 믿음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하였다.
하나님안에 믿음을 가지라의 의미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신실한 선하심에 대해 흔들림이 없는 신뢰심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마가 5:34).
여기에 이산은 감람산을 의미하며 움직일 수 없는 산으로 묘사,
바다는 감람산에서 바라 본 사해바다를 가리킨다.

하나님안에 갖는 믿음은 의심을 떠난 흔들림이 없는 신뢰심을 가리킨다.
고로 믿음 있는 기도는 인간적으로 불가능 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움직이는 것이다 (마가 10:2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권면하신다.
믿음은 실질적인 응답이 장래에 있지만 그것을 현재에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전제하신 것은 간구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여야 함을 말씀하신다 (막 14:36, 마태 6:9-10; 요한 14: 13-14; 15:7; 16:23-24;
요일 5:14-15). 이 가능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순종적인 신자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계신다.
신자들은 불가능한 것이 없으며 어려운 것이 없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것이다.

23/ 이 산을 바다에 빠지라
이 표현은 불가능한 것이나 어려운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위대한 랍비나
영적 리더들의 유대문학에서 당시 사용되었던 산들의 뿌리들에
대한 일반적인 비유와 연결되어있다. 분명히 예수님은 산들을
뿌리채 뽑는다는 문학적인 표현을 하지 않고,
사실, 그런 불신적인 유대 리더들을 위한 기적들을 거절하셨다 (마태 12:38).
예수님의 초점은 신자들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그안에 있는 그런 믿음을 통해 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능력을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신다. (요한 14:13-14, 마태 21:21).

24/ 무엇을 구하든지 구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면
믿는 자의 기도에 제한이 없음을 알려주신다 (마태17: 20).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의 믿음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불일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자가 얼마나 진실해야 하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신 교훈은 기도가 신실하고 순종적임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구속사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들을 통해서 이며,
그의 구원하시는 목적은 복음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임을 알려주신다 (약5: 16).

25/ 서서 기도하는
서서 기도하는 것은 전토적인 유대적인 기도의 자세이다
(삼상 1:26, 왕상 8: 14,22; 느헤미야 9:4; 마태 6:5; 눅 18: 11,13),
무릎을 끓고 기도하는 것이나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는 것은
극단적인 긴급한 기도의 자세이다 (왕상8: 54, 에스라 9:5 단6:10; 마태26:39; 행전7:60).
누구에게 혐의가 있거든
죄를 짓는 것이나 단순히 싫어하는 것을 포함하여 신자가
다른 사람에게 혐의를 가지게 된다.
그 다른 이는 신자나 불신자나 다 해당이 된다.
용서하라
예수님은 신자가 용서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임을 언급하신다.
성공적인 기도에는 믿음이 필요하듯 남을 용서하는 일도 꼭 해야 할 일이다
(마태 5:22-24; 엡4: 32).

25-26
하나님의 용서와 타인에 대한 신자의 용서는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태 18: 21-35).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는 것을 기대한다 (엡 4:32).
만일 그가 타인을 용서하지 않으면 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거부하고 사는 것이다.

신학적 가르침
믿음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바라보는 대로
가능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갖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에는 구원하는 믿음이 있고, 경험적인 믿음이 있고,
행동하는 믿음이 있으며, 관계적인 믿음이 있다.
더 나아가 믿음은 죄에서 구원 얻게 하는 믿음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따르는 믿음이 있다.
구원 얻는 믿음에는 행동적인 인격적인 신뢰와 주님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중생하는 재생산하는(영적 출생하는) 믿음이다.
믿음과 기도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필연적인 영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하고, 기도하는 곳에 믿음을 전제하며, 믿음의 역사가 나타난다.

기도와 용서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타인에 대한 용서와 연결이 되어있다.
용서 없이는 기도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주님은 주기도문에서 기도의 중요한 요소로 용서를 말씀하셨고,
십자가상에서 용서하는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기도를 교훈하실 때에 많은 부분에서 용서를 말씀하셨다.
기도는 용서가 관계적인 용어이듯이 관계적인 용어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의 기도 속에 타인과의 용서를 다루며,
그 용서에서 자유 할때에 하나님의 응답은 쉽게 다가온다.

성경 공부안
* 열매 맺는 일은 신앙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신앙적인 주제이다.
하나님 앞에서 참 신앙인은 좋은 나무처럼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능력이 열매 없음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나신다.
예수님의 능력과 사역은 그의 말씀의 선포와 그에 따르는 표적으로 다가 온다.
고로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능력으로 인하여, 따르는 표적이 나타난다.
하나님 앞에서 열매 맺는 일을 하려면? 순종, 헌신, 열심, 믿음, 진실 등등

* 신앙인에게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는 힘이 있다.
신자에게 믿음은 바라는 대로 자기에게 주어지게 한다.
믿음의 실제는 말씀에 대한 믿음을 통해 그대로 실행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믿고 산을 명하면 믿음대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교훈하셨다.
자신의 믿음에서 믿음의 대상(주님과 그의 약속하신 말씀)은 아주 중요하다.
자신의 믿음은?

* 신앙인에게 기도는 무엇인가? 믿음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기도는 어떤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가?
기도의 제목이나 내용은? 그리고 자신의 기도 생활은?

* 기도의 응답을 이루려면,
신앙인에게, 믿음과 기도는 필연적인 관계이다.
무엇이든지 믿고 기도한 것은 얻는다.
믿음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다.
기도의 응답에는 믿음과 용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기도의 응답을 이루려면 내게 무엇이 필요한가?
인내. 용서, 믿음, 주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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