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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그립다.

9/1 검진

 

  이상하게도 우리가 관리하는 사업장중에 K자가 들어가거나 D자가 들어가는 회사는 황당한 곳이 많다. 여기서 황당한 곳이란 회사 자체의 관리체계 자체가 불안정하여 우리가 보건서비스를 제공하기 조차 어려운 곳이거나 경영방식이 전근대적이라 노동자들에게 인간이하의 조건을 강요하는 곳이기 때문에 '건강'이란 말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곳을 말한다. 



  그 순간 우리 앞에 벌어질 일을 예감하고 모두들 부르르 떨었다.

 

  새로 계약한 사업장이라 해서 모르는 곳인 줄 알았는데 버스에서 내려 보니 두 번인가 왔던 곳이다. 말이 안통하는 총무과장과 보건담당자, 생산과장 등과 씨름했던 기억이 있다. 알고보니 보건관리대행 수수료를 몇달 째 내지 않아 해지되었다가 다시 계약했다고 한다. 검진 중에 만난 엔지니어 출신의 사장은 그 일을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그 총무과장을 짤랐다고 했다.

 

  작업환경이 나쁘니 개인보호구라도 좀 원활하게 지급하라고 하자 사장이 반론을 펼친다. 자기가 돌아본 선진국의 동종업계 공장에선 누구도 개인보호구를 쓰지 않더라.

 그래서  " 예, 맞습니다. 개인 보호구의 최후의 방어수단입니다. 환기를 철저히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환기가 잘 안되고 있으니 작업환경개선전까지는 보호구 착용에 신경써야 합니다." 그랬더니 곧 환기시설을 보완할 예정이란다(나중에 간호사에게 들으니 이미 산업안전공단으로 부터 경고를 받고 개선계획을 수립했다고 함)

 

  중소기업 사장이 이 정도 말할 줄 알면 상당히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중간관리자들이 참 문제이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총무팀장이란 자는 검진이 시작되기도 전에 빨리 빨리 하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나, 내가 신규 채용된 이주노동자들은 따로 모아 교육후 검진하겠다고 했더니 막 짜증을 내지를 않나, 나의 인내심을 자극한다.

인내심 많은 뻐꾸기는 목소리 톤만 조금 높혔을 뿐, '모아주면 검진이 더 빨리 끝난다' 꼬셨다. 

 

  입사한 지 이주 째 대만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태국노동자 14명중 9명은 MDI라는 천식유발물질에 노출되는 발포공정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한달전 수립된 검진계획에는 이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배치전 건강진단을 하도록 했다.

 

 다행이 이들은 중국어를 좀 하고 회사에는 중국 교포가 있어서 약간의 소통이 되었다. MDI의 건강장해, 배치전 건진에서의 폐기능 검사, 호흡용 보호구 착용에 대해서 설명하고 통역을 부탁하는 데 내가 한 2분 정도 말하면 통역이 한 10초쯤 말한다. 그걸 옆에서 듣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막 웃는다. 내 경험상 이정도면 상당히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진찰을 하는 데 또 관리자가 소리를 지른다. 다들 여기 있으면 작업이 안 돌아간다는 것이다. '조용히 해라, 이러면 더 늦게 끝난다.' 내 딴에 가장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이고 자리에 돌아와 진찰하던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저 양반 진짜 나쁜 사람이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평소에는 착해요. 오늘 생산량 맞추어야 하는데 이게 늦어져서 그런 걸"

 

 검진끝나고 점심시간. 건데기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된장국에 가물에 콩나듯 야채과 햄이 보이는 볶음밥이 나왔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한테 이 집은 원래 국에 건데기가 적은 편인가요? 물어보았더니 웃기만 하고 대답을 피한다.

 

 이 회사는 정말 할 말을 잃게 한다.  사장의 말에 의하면 여러가지 면에서 성장추세에 있는 회사인데 뭐 하나 상식적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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