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전문가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법

 

  출장검진 시작전, 사업장 보건관리화일,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보고 있는데 출장검진팀장이 생긋 웃으면서 말한다. “교수님, 저희가 필요한 안내문구 다시 만들었거든요, 좀 봐 주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바퀴 둘러보고 말했다. “아유, 정성스레 잘 만들었네요. 고생들 많이 하셨어요, 카메라 가져왔으면 사진찍었을 텐데”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 당시 출장검진팀장에게 수검자들에게 검진흐름을 제대로 안내해달라고 하자, ‘그 사람들한테 그런 거 필없어요, 얘기해도 잘 몰라요’하는 답변을 듣고 좀 화가 났었다. 그 팀장은 검진의 질엔 관심이 없고 영업실적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고, 하급자에 대한 폭언 등 문제가 좀 있었다. 몇 달간 관찰한 뒤 팀장 교체를 결정했는데, 실의에 빠져 병원을 그만두어버려 마음이 무거웠다. 몇 달 참으면 다른 과로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그만 둔 것이다. 그 뒤에 보험회사 영업을 한다고 들었는데 끝내 나한테는 찾아오지 않았고 그 일도 잘 안된다는 말을 전해들을 때마다 ‘이게 다 내 업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직장에서 보건관리대행팀장시절, 10년된 산업보건 간호사의 불성실함을 참다 못해 과장에게 같이 일 못한다고 병동으로 올려보냈고, 사업장에 가서 건강식품을 파는 황당한 문제를 야기한 간호사도 병동으로 돌려보냈다. 무능하고 성의없는 산업위생사는 일년을 지켜보다가 교체했다.  그 때마다 속이 쓰려서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 등 나역시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일 안하려고 했는데 새 직장에서도 악역은 계속 되었다. 여기 와서 몇 달 뒤에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했는데 그 뒤로 직원들과 썰렁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노동보건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제도권 산업보건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노동계에서는 ‘새 판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올해 초에 어느 워크샵에서 노동부 산업안전국 보건환경과장은 노말헥산에 의한 말초신경병증 집단 발생을 조사하면서 우리나라 산업보건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사실 아직 답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했다.


  한편 어느 쪽이든 산업보건 전문가들의 도덕적 해이가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보건 전문가들의 도덕적 해이는 왜 생겼을까?

우리 병원에서 산업의학과는 수지가 안 맞아 독립채산제 전환 검토 등 시련이 있었고, 사무처장이 산업위생사들은 돈 안되는 작업환경측정같은 거 하지 말고 병원 마당 풀이나 뽑으라는 망언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산업보건 업무의 수가는 낮은 편이다.  이렇게 낮은 수가는 산업보건기관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검진, 작업환경측정, 보건관리대행 수수료의 덤핑을 거쳐 더 낮아진다. 덤핑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모 대기업의 작업환경측정이 시가의 27%에 낙찰될 정도이다. 덤핑의 결과는 질낮은 서비스의 제공으로 나타난다. 또 사업주들이 노동부에 보고해야하는 특수건강진단과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조작해달라고 요구해 올 때 사업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감수하고 소신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우리 과 직원들은 많이 지쳐있다.

우리 동네에 올해 안전보건진단명령을 받은 사업장이 서너개 되는데 모두 우리 과에서 내 보낸 특수건강진단 유소견자, 작업환경측정시 노출기준 초과 등의 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사업주가 노동부로부터 안전보건진단명령이라는 것을 받게 되면 꼼짝없이 작업장을 개선해야 하는데 최소한 수 천만원이상의 비용이 든다. 웃기는 건 작업장이 열악하게 문제가 발생했다는 진실에는 눈을 감고 우리 병원이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서 그렇다고 화들을 낸다는 사실이다. 일이 생길 때마다 엄청나게 많은 전화 통화, 집요한 추궁, 해고되지 않게 도와달라는 담당자의 통사정.....우리 과 직원들의 직무스트레스 수준은 하늘을 찌른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산업보건 전문가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기 위해서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작업환경측정결과 초과, 특수건강진단 유소견자 발생, 직업병 환자가 발생하고 나서 일정기간안에는 사업주가 산업보건기관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산업보건 전문가가 직업병 발생 우려가 상당하다고 판단했을 때 근로감독을 요청할 권한을 주고 근로감독관과 함께 작업장을 순회점검하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윤의 논리가 산업보건에 적용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기적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 과 같은 최소한의 기본 서비스에 대한 비용은 개별 사업주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국고에서 나와야 한다. 사업주와 산업보건기관사이에 갑과 을의 계약관계가 지속되는 한 건전한 산업보건활동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