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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병 원내검진

  우리 과에 오면 성인병 검진과 암검진을 받을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이 검진이 무료니까 형식적이라고  우습게 아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병원에서 받는 수가는 일반수가보다 낮아서 싸구려지만 검사항목과 그 질은 돈내고 하는 검진과 같으니 싸구려라고 볼 수는 없다.



  멀리 예산 당진 서산에서부터 건강진단 받는다고 곱게 차려입고 이웃간에 손 붙잡고 나들이 삼아 오시는 분들도 있고, 늙어서 아프면 서럽다고 꼬박 꼬박 검진받으러 오시는 노인들도 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진찰실에 앉아 있어야 했다. 사실 나는 원내 성인병 검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주 업무도 아니다. 어쩌다 큰 마음 먹고 뭔가 기대를 잔뜩 하고 오시는 분들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자궁경부암 검사하는 것도 싫고 살아가는 이야기 하소연 하는 것도 처음 한 두 분이야 그럭저럭 들을 만 하지만 칠순 넘으신 분들이 소일거리 삼아 이야기하시는 것을 듣고 있자면 배울 점도 많지만 바쁠 땐 좀 괴롭다.  

 

 오늘은 혈압이 약간 높은 아주머니랑 운동 좀 하시는 게 좋겠다는 말이 실마리가 되어 유명 김치 공장에 생산직 파견으로 일한 지 두 달만에 파레트에 발을 찍혀 산재요양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긴 하청업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질 않더라구. 막 하대해요.'하는 아주머니 말에' 나쁜 사람들이네요'.....아직 아픈데 요양종결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숨쉬는데 다행이 우리 병원 재활의학과에서 가장 마음 따뜻하고 실력있으며 산재에 경험많은 선생님한테 치료받고 있어 잘 의논해보시라고 했다.

 

 생전 처음 자궁암 검사를 받는다고 긴장한 아주머니는 멀리서 왔는데 산부인과 의사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산부인과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그리로 보냈다. 그래도 자궁경부암 검체 채취를 6건이나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는데 장애인 부부가 접수마감후에 닫힌 우리 과 문을 두드린다. 그 문을 열어주고 나가려는 간호보조원에게 접수받아주라고 하고 나서 지켜보았다. 예약도 안 하고 그냥 밥만 굶고 와서 병원에 한 번 오기 힘드니 내 돈 내고라도 싸악 다 검사받게 해달라, 이 기회에 흔한 병은 다 점검했으면 좋겠다고 두서 없이 말하는데 점심먹으러 가려던 우리 과 직원은 괴로운 표정......큰 병원이라고는 생전 처음 와 보았다니 이 정도 상황이면 예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돌려보내는데 한 이십분은 걸릴 것이다.

 

 내가 나가려다가 그 부부를 지켜본 이유. 

한동안 가끔씩 오밤중에 백세주 사러 가곤 했던 우리 동네 ** 마트 아저씨 아줌마였다. 우리 동네는 못사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나이 오십이 되도록 검진 한 번 받아본 적 없고 부부가 큰 결심하고 한 번 병원에 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 중학교 다니는 아들도 학교가고 없을 텐데  오늘 가게는 누가 볼까?

 

**마트 아저씨 아줌마는 큰 병원에 왔다고 잔뜩 주눅이 들으신 것 같았다. 우리 과 직원들이 다 친절하기도 하지만 내가 동네 아는 분이니 기왕이면 진료예약도 좀 해드리라고 했으니 우리 보조원이 상냥하게 잘 안내해 줄 것이다. 이제 의사라는 것을 들켰으니 오밤중에 그 집에서 술 사는 것을 자제해야겠다. 동네에 소문나니까- -;;;.

 

  아 벌써 점심시간이 끝나가네.

검사하느라 비위가 좀 상했다. 맨 마지막 수검자는 정말 귀지가 너무 너무 많아서 고막을 볼 수가 없었다. 덕분에 입맛이 없어 미루어두었던 도시락 먹고 일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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