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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한 자동차 부품 생산 작업장에 라인이 모두 5개. 고로 협력업체도 5개이다.

라인마다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고 오늘의 생산량이 붉은 색으로 번쩍이고, 이 숫자는 완성차 생산량과 동일한 것이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부품을 가지고 완성차 공장에 들어가야 하므로 라인은 절대 세울 수 없다. 라인을 세우면 일분에 수십만원씩을 물어내야 한다.  실제로 얼마전 한 협력업체에서 작업자들이 한꺼번에 짐싸는 바람에 생산에 차질이 생겨 700만원을  물어냈다고 한다.  



  크지 않은 현장사무실은 칸막이에 의해 5개 구역이 나누어져 있고, 한 구역엔 책상이 3개씩 있다.  빈 책상은 사장 몫이고, 현장관리를 담당하는 직원과 그외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직원, 이렇게 2명씩 앉아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한 협력업체의 현장관리 담당하는 직원이 와서 약 삼개월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다. 정밀검사를 할 만한 상태는 아니고 스트레스에 의한 증상으로 보였다. 들어보니 그는 완성차 공장의 사내 하청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이 회사가 생기면서 스카웃(?)되어 관리직이 되었다. 현장일하고 지금 일하고 어느 게 더 힘드냐 물어보니 "현장일이 더 편하다"고 한다. 현장에서 일할 땐 8시간에 2시간 잔업해서 열시간 2교대하고 나면 특근없으면 푹 자고 나면 피곤이 풀렸는데, 이 회사에 와서는 아침 7시반부터 저녁 11시까지 쉴 새없이 일하고 쉬어도 몸이 무겁다는 것이다. 사내 하청과 사외 하청 중에 어느 게 더 좋으냐 물어보니 '당연히 사내 하청'이라고 대답했다. 사내 하청보다 여기 월급이 10만원이상 적다는 것. (더 낫다는 그 완성차 회사의 사내 하청회사 중의 하나는 언젠가 월차인가를 쓰려고 한다는 이유로 관리자가 노동자를 칼로 찔러서 신문에 났었다).

 

  당연히 이직률이 높다. 아무리 사업초기라해도 6-70명 되는 회사에서 한달에 열 명씩 들고 나다니, 심하다.  관리직 사원들은 신입사원을 모집하고 그에 따라 4대보험에 가입했다가 다시 취소하는 일, 그리고 기타 채용및 퇴직에 관계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밤 12시까지 일한다.  이직률이 높으면 불량도 많아지고 궁극적으로 원청의 손해일 것 같지만, 불량에 대한 책임은 하청업체에 있기 때문에 원청에서 아쉬울 것은 없다고 한다. 이직률을 줄이기 위해선 월급을 올려주어야 하는데 하청업체는 직원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줄 여력이 없다고 한다. 흠...... 10만원 차이나는 돈은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력수급이 어렵지만 채용조건은 까다롭다고 한다. 절대 대졸은 안된다. 노조가 생기면 큰일이니까.

 

  이 직전에 방문했던 사업장과 비교가 되었다. 특수필름인쇄를 하는 곳이었는데 수십억원짜리 기계를 혼자서 조작하려면 현장에서 일하면서 혼자 배우는 것이긴 하지만 7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다고  현장 관리자가 목에 힘을 주면서 말했었다.  전통적인 제조업 특유의 분위기, 현장에서 일해서 사무실 먹여살린다는 식의 자부심같은 게 있는 곳이었다. 한 번 들어오면 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고 서로의 사정이 어떤지 훤한 그런 곳. 혈압이 높은 동료에게 '키가 얼마냐, 관 짤 때가 된 것 같다' 농담도 하면서 '술, 담배를 줄이긴 줄여야 할텐데... '이런 걱정도 같이 할 수 있는 곳.

 

   오늘이 첫 방문이니 현황파악을 할 겸 현장을 둘러보는데 사람들이 마치 채플린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많은 작업장에 가 보았지만 이렇게 숨막히는 풍경은 보기 힘든 것이었다. 한시간에 한번 트럭에 실어야 하는 제품의 양이 결정되어 있는 상황의 긴장감이 공기중에 가득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작업장에서 화학물질을 쓰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래도 좀 여유가 있어보이는 작업자에게 물어보니 "일이 힘들진 않는데 지루해요" 한다. 그가 하는 작업은 조립이 끝난 제품에 뭔가를 마킹하는 일이었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이 펄쩍 뛰면서 '얘네일은 쉬운거예요. 저기 중간에서 조립하는 애들이 젤 힘들어요" 한다. 작업들을 돌아보니 만만치 않는 반복성과 힘, 부적절한 자세가 보인다. 지금은 시작한지 얼마안되어 아픈 사람이 별로 없지만 일년이내에 속출하리라.

 

  작업장을 나오면서  새로 지은 그  깔끔한 건물에 크게 쓰인 글자를 다시 읽어보았다.

"...사람을 생각하는 기술.." 이란 글씨가 눈에 크게 들어온다.

노동자는 사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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