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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에게 검진휴가를 허하라

   50인 규모의 물류업체에 갔더니 경리아가씨가 검진에 대해서 물어온다.  매년 하는 정기건강진단을 사업장에 와서 하는 출장건강진단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 병원이 일정이 꽉차서 어렵다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다.  모든 사업장에서 출장건강진단을 원하지만 사업장의 규모가 작으면 나갈 수가 없다. 검진팀의 구성원이 열명이 넘는데 오전중에 한 오십명 검진해서는 한마디로 수지가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병원에 개별적으로 들어와서 하든지 오후시간에 하든지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병원에 와서 하는 것이지만 시간이 곧 돈이므로 어떻게든 출장을 원하여 결국 검사조건이 나쁜 오후라도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암 검진대상자 명단이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험공단에 물어보았더니 대학병원에서는 안 할 것이니 작은 병원에 가서 하라고 했다고 한다.



40세 이상이면 나라에서 반, 본인이 반 부담하거나 공짜로 위내시경과 같은 암검진을 받을 수가 있는데,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챙겨볼 만한 일이다. 19,800 원에 위내시경을 하기란 쉽지 않기도 하지만, 근무를 빼먹고 검사받으러 가기가 어렵기때문에 회사차원에서 검진을 실시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 지역에는 두 개의 대학병원이 있고, 그 중 한 병원은 이 검진을 하지 않는다. 우리 병원은 하긴 하는데 봄이면 이미 예약이 완료되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 병원 입장에서 보면 돈이 안되기때문에 더 확대하기도 곤란하다.  명단을 보니 50명중 14명이 위암 검진 대상자이다. 마침 이 검진을 하는 친구가 그 근처에 개업을 하고 있어서 그쪽에 의뢰해보라고 하는데 옆에 있던 관리자가 " 그거 병원가면 결국 수면내시경하라고 해서 돈 많이 들긴 똑같아요" 한다.  수면내시경과 그냥 내시경의 장단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굳이 수면내시경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옆에서 듣고 있던 사장이 "검사시간은 얼마나 걸리는 거요?" 하고 묻는다.  어차피 아침에만 검사를 하니 출근하면서 세네명씩 검사하고 현장에 들어오도록 하면 업무에 큰 지장은 없을 거라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나오는 데 사장이 혼자서 중얼거린다. " 만구천원이면 싸네, 열네명이란 말이지, 할 수 있으면 해야지"  영세 사업장 사장들은 노동자들과 같은 경험과 정서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기가 크게 손해보지 않으면 노동자의 건강문제나 복지에 호의적일 수 있다.  다음에 방문하면 사람들이 모두 검사를 받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장형식으로 진행되는 직장건강진단을 두고 여러가지 말들이 많다. 검진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여성의 경우 중요한 자궁암 검진은 누락이 된다. 그나마 출장검진이라도 하니까 노동자들의 건강을 최소한으로라도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도 있긴 하다.  현장에서 가까운 의사들일 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현장의 상황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눈앞의 현실에만 치우치다 보면 상상력이 결핍될 수 있다.  제일 좋은 것은 질낮은 출장검진을 폐지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일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보건휴가를 주는 것이다.  한 번 외쳐볼까?  " 모든 노동자에게 검진휴가를 허하라" 지금은 조그맣게 외치지만 언젠가는 큰 소리로 말해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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