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조금 달라진 비닐공장

하우스용 비닐을 만드는 A사.

처음에 갔을 때 회사측의 담당자가 우리를 30분씩 기다리게 할 정도로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사업장 규모가 100인이 넘어 일년에 네번가야 하는데 갈 때 마다 가기싫은 마음을 누르느라고 애를 먹었다.  건강진단 유소견자 상담하고 나서 화학물질관리의 상태도 미심쩍고 사람의 근력으로 드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중량물을 반복적으로 취급하는 넓디 넓은 작업장을 한 번 돌고나면 기운이 쫙 빠진다. 

 

회사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작년에 소음성 난청 유소견자가 1명 발생함으로써 3년연속 산재발생으로 노동부의 집중점검대상이 된 다음부터.



지난 번 방문땐 처음으로 법정 의무교육인 근골격계질환 예방교육을 했고 유해요인 조사결과에 따라 심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에 대한 근무중치료와 치료비 보장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왔다. 차에서 내리면서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그 뒤로 별 진전이 없었다고 해서 그럼 오늘은 환자상태에 대한 추적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다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출하실, 생산1과...... 작업장을 돌면서 설문조사에서 심한 증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만나 작업을 살펴보고 간단한 진찰을 하고 작업방법과 증상관리요령을 설명한다. 지난 번 교육을 한 번 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해 주니 일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광폭실 -  넓은 폭의 비닐이 감겨나오면 접어서 박스에 넣고 포장하는 작업이 있는데 넓은 폭 비닐 한 박스는 100Kg이 넘는 것도 있어 작업자들은 허리가 아프다.  이런 작업은 이주노동자한테 많이 시킨다. 여기도 10명정도 있다. 제일 우리 말을 잘하는 이주노동자를 찾아 요통예방체조를 알려주고 동료들에게 전파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의료보험증이 잘 못되어 얼마전에 병원비를 4-5만원이나 내서 회사에 해결해달라고 두번이나 이야기 했는데 안 준다고 화를 낸다.  사무실에 가서 확인하고 잘 이야기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봄에 요통을 호소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보니 이젠 별로 안 아프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새로 리프트가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개선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는데 드디어 바꾼 것이다.


이 전동식 리프트는 오백만원쯤 한다. 생각에 따라 비싸다면 비싸고 싸다면 싼 돈이다.

나는 이 공정이 주로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이라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했었다. '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이 적은 다른 작업장은 가능하다' 

 

기분이 좋아져서 마지막에 들른 곳은 현장사무실이었다. 생산과장과 인사를 하는데 언젠가 입안이 헐었는데 한참동안 증상이 지속되었던 것이 기억나 요즘은 괜찮으시냐 물어보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물어볼 것이 있다고 서류뭉치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지난 여름 공고에서 실습생이 나왔는데 휴식시간에 장난을 치다가 칼에 뺨에 좌상을 입었다. 공상으로 23바늘을 꼬맸는데 흉터가 질것같아서 성형수술도 하라고 했더니 싫다고 하고 갔는데 그저께 내용증명이 배달된 것이다. 그 흉터때문에 인상이 나빠져서 취업이 안되니 성형수술을 산재로 해달라는 것.  사장에게 보고하여 공상으로 수술을 해주기로 했는데 어디서 하면 좋겠냐는 의견을 물어왔다. 본인은 자기가 사는 동네 작은 병원에서 하기를 원하는데 되도록이면 대학병원(우리 병원)에서 하는 게 뒤끝도 없고 서로 좋지 않을까 하여 설득했는데 싫다고 했다는 거다.  생산과장이 섭섭한 것은 전화하거나 찾아와서 이야기를 했어도 해결될 일을 내용증명까지 보냈다는 점이다.   증거자료로 제출한 사진을 보니 여드름이 잔뜩 나 있었고, 내가 보기에도 뺨의 상처가 흉칙했다.  서류를 보니 그 학생은 축구부 주장을 했었고 드리볼이 강하고 슛이 빠른 아이였고 홀어머니 외아들이다.  작업장 순회점검을 하면서 기분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그의 하소연을 충분히 들어주고 우리 병원 진료의뢰서를 써 줄테니 그 학생과 다시 의논해보시라고 하고 일어섰다. 진실은 물론 양쪽 말을 다 들어보아야 아는 것.

 

  사무실에 가서 보건관리담당자인 총무과장과 오늘의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주노동자 의료비문제를 말하니 깜짝 놀란다. 의사소견서가 두 장 총무과 직원 책상에 있길래 물어보니 아무도 상황을 아는 사람이 없어 서류가 계속 그 자리에 있다는 거다. 굳이 따지자면 그가 의료보험증을 분실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로 회사가 진료비를 물어줄만한 책임은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주노동자 입장에서 돈 오만원이 큰 것이고 사기문제도 있으니 선처바란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끄덕하긴 한다. 그리고 최근 요추 추간판 탈출증으로 수술을 권유받았으나 일단 운동요법을 해보기로 한 사람에 대해서 근무중 물리치료를 해주어야 산재 연속 4년 발생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열두시간 맞교대근무이니 치료비보다 치료할 시간이 더 어렵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불행히도 여기는 작업전환을 할 만한 공정이 없다.

 

 시간을 보니 12시. 여기서 점심을 먹고 다음 사업장에 가야 한다. 식당앞에 손씻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작업장에서 먼지나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에게 밥먹기 전에 손을 씻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이정도의 시설을 해주지 않는 영세 사업장들도 많다. 그런 곳에 가면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꾸준히 조금씩만 달라져도 다닐 맛이 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