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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공장 특검

뻐꾸기님의 [아주아주 씩씩하고 예쁜 언니들] 에 관련된 글.

   일하는 사람이 약 80명정도 되는 작은 고무공장.  오랜만에 갔더니 담당자가 바뀌었다. 미정씨는 어디갔을까? 그 밖에도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공장을 새로 지어 반바리-투입-재단 공정은 좀 깨끗해졌고, 이주노동자들은 우즈베키스탄출신에서 베트남 출신으로 바뀌었다. 보건관리대행 서류를 보니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00인 미만 사업장은 의무사항이 아닌데 웬일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작년 한 해 손가락 협착 등 아차사고만 10건이다. 허걱. 그중 9건은 공상(공상대상 질병이 4일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경우 이를 다른 말로 산재은폐라 한다), 1건은 산재처리를 했더라.



  여성 노동자 4명이 작업하는 계량작업은 여전히 각종 발암물질과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포함된 가루를  국자로 푸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어깨와 손목의 통증도 여전하다.  청소아주머니도 바뀌지 않았고 자동세탁기를 사용한 이후 지금까지 어깨통증이 없었고 이제는 자동세탁기로 빤 작업복이 공장 담벼락에 널려있는 모습이 산뜻하다. 

 

  타이어고무를 가열하면서 나는 냄새는 검진장소인 식당까지 구석구석 스며들어 나를 괴롭혔지만 정작 특검을 받는 작업자들은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에 관하여 별다른 호소가 없었다. 작년까지 특검대상 유해인자가 선정된 것을 보니 소음, 분진 그리고 끝이더라. ABS를 가열하면 스티렌과 부타디엔이 나온다고 책에 쓰여있고,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보니 접착제에 포름알데히트가 화합물형태로 있었다. 

 

  우리 산업위생파트는 작업시 발생물질에 대해서는 측정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 이 작업장의 측정을 맡은 산업위생사에게 전화하여 스티렌 노출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했다. 과거 고무공장 측정에서 스티렌을 검출한 경험이 꽤 있으나 유사한 다른 작업장에서 스티렌이 검출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생각해볼 수 있는 원인은 펌프식이 아닌 뱃지로 시료를 채취해서 그럴 수도 있고 워낙 다양한 원료가 사용되기 때문에 작업환경측정당시 ABS가 투입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포름알데히드는  열을 가하는 공정에서 발생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나 가루 화합물 형태도 인체에 유해한지는 잘 모르겠다. 스티렌과 포름알데히드에 대해서 하반기 작업환경측정때 신경써서 해보기로 하였다. 하반기 측정때는 그동안 누락된 공정인 실험실도 포함해달라고 했다. 고무를 가열할 때 나는 증기의 성분이 무엇이냐,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냐는 해당 근무자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하루 1-8시간까지 성분미상의,아마도 스티렌이나 포름알데히드로 추측되는 물질에 노출되고 있었다.

 

   또 한가지 이런 공정에서 흔히 쓰이고 유독한 물질은 DOP가 있다. DOP는 동물실험 발암물질이고 현장에서 들어보면 그 취급자들은 아주 적은 양에 노출되더라도 대단한 논, 코, 호흡기 자극증상을 호소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상 규제물질은 아니다. 최근 산안법의 규제대상에 수십종의 화학물질이 새로 포함되었는데 열거식으로 정할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이 이해는 가지만 기타 산업의학 전문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물질 이런 식으로 여지를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 수검자인 생산과장한테 물어보니 이 회사의 최종생산품은 모두 18종류이고 대부분은 ABS가 투여되지만 그 양은 다르다고 한다. 하여간 스티렌은 대사물검사를 필수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는 유기화합물이므로 해당 작업자들에 대한 주말작업종료후 대사물 검사를 하도록 권고했다. 해당 작업자들에게서 만성 유기화합물 중독에 관한 증상은 거의 없었는데 대부분의 작업자들이 2-3년 미만 근무자들이다. 이직이 참으로 많은 회사라서 그럴 수도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에게서 알레르기 관련 증상도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현장내에 있는 사무실 근무자중에 이런 저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두 명 있었다. 좀 지켜보아야겠다.

 

  타이어를 만드는 큰 공장에서 30년씩 일하다가 정년퇴직하여 계약직으로 입사한 고령노동자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소음성 난청 유소견자 수준의 청력을 보이고 있었다. 난처하다. 이분들은 체력이 허락하는 한 일하고 싶어하시는데 직업병 유소견자 판정이 나면 재계약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 이 분들의 소음노출력에 대해서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U판정(판정보류)을 낼 생각이다. 그러나 정기적인 청력평가는 하도록 권고했다. 

 

  요추 추간판 탈출증으로 몇달전 수술을 한 20대 청년은 과거 7-8개월동안 했던 허리부담작업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작업전환을 했다. 산재신청을 하고 싶었으나 방법을 몰라서 못하고 있다고 했다.  업무관련성 평가를 위해 NIOSH 공식 등 믿을 만한 평가도구를 가지고 작업평가를 해서 그 결과를 알려주기로 했고, 산재요양신청에 관한 일반적인 절차를 알려주었다.  담당자에게 작업분석예정이라고 하자 그 사람이 그 작업때문에 허리가 아프다는 건 말도 안 되며 지금은 그 작업을 안 하니 필요없는 것 아닌가 반문한다. 그 작업자의 산재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작업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득.

 

  근무기간이 일년쯤 되는 베트남에서 온 남성 이주노동자 네 명중 세 명이 수개월된 위장관증상을 호소하는 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다. 그중 제일 말 잘하는 사람, 중간관리자, 나 셋이서 손짓발짓해서 내린 결론은 오래된 증상이니 검사와 투약을 위하여 내과진료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증상이 야근주간에 악화되는 점으로 보아 야근시 덜 자극적이고 부드러운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그 식당밥을 먹어보니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맵고 짠 반찬 세 가지에 미역만 넣은 미역국이라니.

 

  작고 마른 체형의 50대 아주머니의 문진지를 보니 술, 담배를 많이 하셨다. 시골에선 흔한 일이 아니라 고개를 갸우뚱 하는데 잠을 못 주무신다고 증상을 체크한 것으로 보고 물어보니, 재작년에 22살난 아들을 잃고서는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신경정신과 진료도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하고 혼자 있으면 너무 힘들어서 낮에라도 잊어볼까 하여 직장을 구해서 다니는 것이라 한다. 잠을 자기 위해 성분미상의 약국약을 일년넘게 자가투약하고 있단다. T T

 

  고령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들이 주를 이루는 공장. 아, 두어명 정도 경도 정신지체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 사회적 소수자들이 모여있는 작은 공장이다. 71명중 30명이 특검대상자이다. 꼬박 4시간 꼬박 걸렸다. 젊고 증상이 없는 사무실 근무자들은 거의 그냥 통과시켰는데도 말이다. 목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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