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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사업장에 가면 정신지체인 작업자를 종종 만난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그들.
되도록 쉬운 말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하지만 알아듣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때 마음에 구름이 잔뜩 낀 기분이 되곤 한다.
사진속의 청년을 작년에 처음 만났을 때 아프신 아버지를 걱정하면서 이것저것 물어왔고 집안일과 회사일 모두에 스트레스를 받아 잠이 안 올때가 많다고 했었다. 당시에는 포장작업을 했고, 특별한 문제는 없어 너무 걱정하지 말하고 했는데 오늘 가보니 작업이 바뀌었다. 새로 생긴 세척공정에서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변변치 않은 환기시설에 마스크(호흡용 보호구)도 쓰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세척액의 성분은 부틸 셀루솔브 계통으로 잘 알려진 생식독성물질이다. 이 연기많이 맡으면 장가가서 아이를 못 낳을 수도 있고 나이 들어서 치매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하고 일단 방독마스크라도 꼭 쓰라고 하고 담당자에게 이 청년을 자주 돌아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회사사정이 어려워서 갈 때마다 울상짓던 회사의 보건관리 담당자도 그가 이직률 높은 이 회사의 몇 안되는 장기근속자이며 성실한 사람이라며 그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어 빠른 시일내에 유기용제용 마스크(방독마스크)를 사주겠다고 한다.
사진을 찍으려고 다시 가 보니 청년이 어느새 방진마스크를 찾아 쓰고 환하게 웃는다. "이거 쓰면 되요?" 하고 묻길래 "회사에서 검은 색 방독마스크를 줄꺼다. 그전까지는 이거라도 꼭 쓰라"고 하고 다음 사업장으로 이동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잊은 것이 있다.
오늘 내가 한 일은 좋은 사례(good practice)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사례란 근본적인 해결을 추구해야 하는 법. 그런데 나는 이 회사가 사정이 많이 안 좋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덜 유해한 물질로의 대체'나 '국소배기시설의 설치'와 같은 근본적인 해결을 권하지 않은 것이다.
한가지 더. 산업안전보건법은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중지권을 명시하고 있다. 이 작업을 당장 중지해야만 할 위험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연환기라도 좀 되는) 옥외작업이며, 정확한 노출농도를 알 수 없고, 중독을 의심할 만한 급성 중추신경계 증상이 없는 상황에서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는가? '아니다'가 지금의 대답이지만 적어도 그에게 심한 중추신경계증상이 생긴다면 작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가 정신지체이기 때문에 잘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나의 편견이 결과적으로 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담당 산업위생사와 통화를 했다. 지난 번 측정결과는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하여 재측정을 하도록 하고 내가 놓친 것을 설명한다. 그가 남은 문제들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처럼 일상은 종종 우리를 이긴다.
일상의 무서운 힘에 밀려 근본적인 관점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일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잊지않기 위해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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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Sc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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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슈아님은 제 블로그 덧글에서 일상이 위대하다 했지만, 저는 일상이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끔찍하고, 잔인하고..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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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님/달군님 게시판에서 봤는데요. 영세봉제사업장여성노동자에 대한 교육자료를 만든다고 하셨던 것 같아서요. 제가 다음 작업으로 이주여성노동자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하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이 대부분 봉제사업장에 계시는 분들 같아요. 전태일열사 시절과 같은 환경이 그래도 있고 사람만 바뀐 그런 상황...그래서..저도 어찌 자료를 구할 수 있음 좋겠어서요.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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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님/그리고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훌륭하세요. 자신의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뻐꾸기님 보면 짜릿합니다.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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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님/일상의 힘..저도 무서워요. 어제는 일상적으로 오가는 지하철 갈아타는 곳이 어찌나 울렁거리던지..정말...일상은 무서운 것 같습니다. 저도 일상을 잘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 인 것 같은데..그래도 그런 일상을 하루 하루 견뎌내는 사람이야 말로 위대한 것이 아닌지. 하루 하루 그 일상의 무게를 견뎌내며 자신의 생각을 잊지 않고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야 말로..아...그래야 할터인데..죄송...덧글..떡칠을 했네요.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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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님. 당사에 오셨다더군요. 최선배님에게 이야기들었습니다. 아아... 아쉽다.... "뻐꾸기 아줌마(최선배의 표현임.ㅋㅋ)"를 뵐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는데... 행인의 우상, 뻐꾸기 아줌마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ㅡ.ㅡ+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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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최선배라함은 네오님 말씀이셔요? 그럼 hi님이 네오님 보다 후배신가요? 허허...신기신기...kuf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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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아// 자료를 만들면 보내드리지요. 번역은 그쪽에서 자원봉사 구해서 해서 이쪽에도 전파해주세요^^. 그리고 행인, '행인의 최선배', 네오, 뻐꾸기....묻지마세요^^ 다쳐요......kuf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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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싸인받으러 간 건데...아쉽다.NeoSc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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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아/ 저는 hi님이 최선배라고 부를만한 연배가 아니여요. 그리고 새로 옮겼다는 민주노동당 당사는 구경도 아직 못 해봤어요.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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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ffs//감사감사..그런데 번역이라함은...이주노동자를 위한 것 말인가요?네오//그렇구나..여전히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