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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님의 [비정규직 용접사의 세계] 에 관련된 글.
어제는 문에서 문까지 한 시간 오십분 걸려 출근해서 회의를 한 건 하고, 전공의 논문 지도하는데 한 시간 썼고, 직업병 역학조사 추가자료때문에 여기저기 전화를 한참 했고, 동료 교수와 우리 과 이런 저런 현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누리의 베프의 친구의 동생이 우리 병원에 입원했다 하여 가서 살펴보았고, 사업장 방문해서 조사결과 보고서주면서 설명하고 다시 한 시간 오십분 걸려 집에 와서 아이들 밥주고 설거지 하고 엄마랑 이야기도 좀 하고 나서 직업병 역학조사 최종 보고서를 마무리해서 송부하고 나니 새벽 한 시더라.
지난 주 금요일까지 주어야 했던 다른 자료들이 있긴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면서 좀 기분이 가라앉았다. 해도 해도 일이 줄지를 않는 나의 신세를 약간 가련하게 여기면서 여러가지에 대해서 후회했다. 힘 조절 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얄미워할 정도로 기를 쓰는데도 이모양이니.
아침에 여기 저기 메일을 보내고 나서 한 숨 돌리고 있는데, 편지가 와 있더라. 비정규직 용접사의 호흡기 질환에 대한 업무관련성 평가 보고서를 받고 그쪽 책임자가 ' 이 한건에 들여 써준 정성에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는 한 줄의 글을 보고 그동안 쌓인 피로가 사르륵 사그라 들었다. 사실 고생 좀 했다. 여러가지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부딪힌 무관심과 비협조가 제일 힘들었고, 이제나 저제나 이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을 환자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급해지곤 했다. 결과가 나쁘지 않으니 홀가분하다. 어떤 사람이 남은 인생을 아픈 몸으로 살면서 생계도 막연하고 치료비도 없는 끔찍한 상황을 면하게 되는 데 기여를 했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이렇게라도 할 수 없는 다른 비정규직 용접사들의 세계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여기까지 썼는데, 지금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발주처에서 전화가 왔다. 그쪽 담당자가 내가 그쪽 책임자 스타일을 못 맞추어서 속이 타는 모양이다. 살살 달래서 내일 오전까지 자료보강해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에잇, 모처럼 쫓기는 기분없이 하루를 시작하려고 했더니만, 기분 잡쳤다. 그래도 오늘이 덜 막막하긴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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