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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더린 - Hälfte des Lebens (반쪼각난 삶)

Hälfte des Lebens

Mit gelben Birnen hänget
Und voll mit wilden Rosen
Das Land in den See,
Ihr holden Schwäne,
Und trunken von Küssen
Tunkt ihr das Haupt
Ins heilignüchterne Wasser.

Weh mir, wo nehm’ ich, wenn
Es Winter ist, die Blumen, und wo
Den Sonnenschein,
Und Schatten der Erde?
Die Mauern stehn
Sprachlos und kalt, im Winde
Klirren die Fahnen.


반쪼각난 삶

누렇게 익은 배 한아름 안고  
들장미 난무하게 가득 채운체
들판은 호수로 미끄러져 들어가네
여보시오 백조님들 [날 좀] 굽어 살펴주오  
그러나 백조님들은 [뮤즈의] 키스에 만취하여
초자연의 맑은 물에
머리만 적시네.

찢어지는 아픔 안고 어디가서 구할까?
[옹기종기 모여 앉아 두런거리는] 겨울이 오면, 꽃들을 [다시 피게하는]
해의 양기를,     
그보다 땅의 음기를 어디가서 구할까?
주고받는 말소리가 사라진 벽들은  
차갑게 서있고, 지붕위로 바람만  
풍향기를 삐걱거리네.




제대로 된 번역인지 모르겠다. 이해한 만큼 번역한다면 뭘 이해했는지 먼저 제시해야겠다.

이 시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출간되기 2년전인 1805년에 발간되었다. 이 시를 읽어보는 동기는 헤겔과 함께 훨더린이 뭘 추구했는지 알고 싶은데 있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이 „실천“이 아니었나 한다. 헤겔이야 어찌되었던 훨더린이 말하는 실천은 „Ge-spräch“, 즉 „말 주고받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실천을 통해서 삶이 반쪽으로 남지 않고 온전하게 된다는 것을 이 시가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훨더린은 이 시에서 백조가 보여주는 (초)자연적 아름다움의 자기연관성(Selbstbezüglichkeit)에 기대지 않고 Ge-spräch를 통해서 „꽃들을 다시 피어나게 하는“ 상호관계성이란 실천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시의 핵심단어는 „sprachlos/주고받는 말없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면 주노변증법이 핵심이 되고. 그러면 자기의식에서 „자기/Selbst“는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성을 통해서 마침내 형성되는 것이 되고 …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여기저기 다니게 된다. 근데 종종 „사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낼“ 때가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사랑하는 사람과 경험했던 장소를 혼자 가보면 그 장소가 썰렁하다. 남아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경험했던 것의 반쪽도 안된다.  이런 직관에 기대어 이 시를 이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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