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한국의 가난 :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한국사회의 빈곤에 관한 종합 보고서라... 그러고 보면 외국 사례를 소개한 책은 있었지만, 이런 것은 없었던 듯하다.

 

----------------------
우리 사회 가난에 관한 종합 보고서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2010-01-05 07:29)
〈한국의 가난〉 김수현·이현주·손병돈 지음/한울·2만3000원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빈곤에 관한 종합 보고서다. 가난이란 무엇인지, 누가 가난한지,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왜 가난한지, 가난을 이겨낼 방법은 무엇인지 두루 살펴보는 저자들은 "빈곤층이 15%가 넘는 시대에도 가난한 이들이 보호받을 권리는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된다"며 "우리의 가난을 정확히 바라보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의 근본적인 시각은 가난이 개인적인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원인이 누적된 결과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을 해도 가난한 근로빈곤층(Working Poor)까지 등장했다. 일을 할 수 없는 노인들이 가난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서구 복지국가에서는 노인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특히 더 가난하지는 않다. 노후소득 보장제도가 미흡해 자녀에게 노인복지를 내맡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일하지 못하는 노인들과 젊었을 때부터 가난했던 노인들뿐 아니라 자식이 가난한 노인들까지 가난하다. 가난한 노인들은 돈이 없어 주거 환경이 열악하며 건강 상태도 더 좋지 않고, 그 때문에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21세기 들어 크게 늘어난 빈곤층은 일을 하거나 일할 수 있는데도 가난한 이들이다. 저자들은 근로빈곤층이 등장한 원인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 데서 찾는다. 기업이 기존 업무를 외부에 하청 주거나 해외 공장으로 이전하면서 '좋은 일자리'는 줄고 비정규직이 양산됐다는 것. 비정규직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가난하다.
 
저자들은 '가난은 모인다'는 특성에도 집중한다. 소득이 낮을수록 주거비 부담이 큰데, 설상가상으로 대도시 재개발이 계속되면서 빈곤층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이 사라지고 있다. 재개발 사업 인근의 전ㆍ월세 주택이 품귀로 값이 폭등하고, 빈곤층은 더 열악한 주거지로 내몰린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반이 취약한 동네에 살 수밖에 없는데, 가난한 곳의 자치단체 역시 가난하므로 빈곤층을 구할 복지 혜택도 적다.
 
저자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이다. 이들은 "빈곤 '지역'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시도한 사례가 거의 없다"고 지적하면서 빈곤층과 비빈곤층이 함께 사는 혼합단지를 건설하는 등 지역 발전 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근로빈곤층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 일자리를 여러 개로 나누는 방안, 공공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저자들은 "빈곤 대책은 사회, 경제, 문화, 복지 전 분야에 걸쳐 세워져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현행 정책이 3대 사회안전망 가운데 '마지막 안전망'인 공공부조 중심이므로 사회보험과 사회서비스 등 나머지 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선진국의 국격? 똑똑히 보라, 이 가난을 (부산일보, 임광명 기자, 17면 | 입력시간: 2010-01-09 [16:23:00)
 
책은 묻는다. 한국은 가난에서 벗어났는가? '아니올시다'라고 책은 답한다. 현 정부가 "원조 받던 나라로서는 최초"라며 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을 자랑하는 판에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책이 보여주는 수치는 그 답을 수긍케 한다. 2007년 기준 한국의 가처분소득 기준 빈곤율(중위소득의 50%가 안되는 가구소속 인구의 비율)은 16.5%로 추산됐다. 2007년 한국 인구가 4천850만명 정도였으니, 약 800만명 정도가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2008년 세계적 경제위기 이후 빈곤율은 현저히 늘어나는 추세다.
 
노인 문제에 이르면 빈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2007년 기준 가처분소득 기준 노인 빈곤율은 35.6%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부의 사회복지 지원금이나 세금감면 등의 혜택이 고려된 수치다. 이들을 뺀 시장소득 기준으로는 45.5%가 빈곤 노인으로 분류된다. 그런 노인들은 "밤에 불도 한 번 안 켜"고 "지독하게, 그냥 되는 대로" 살고 있다. 거기다 노숙인, 결혼이주 여성,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등으로까지 시선을 돌리면 한국 사회의 가난 문제는 "선진국", "OECD", "국격", "비전" 따위 호사스런 말잔치로 덮어질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가난을 정확히 바라보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한데, 책은 "사회적 원인이 누적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 최근 급속히 양산되고 있는 점이 그 증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 것이 그 원인.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이 양산된 것이다. 비정규직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가난하다.
 
가난 중 제일 오래고 깊은 고통이 주거 가난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주거비 부담이 큰데, 설상가상으로 대도시 재개발이 계속되면서 빈곤층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이 사라지고 있다. 재개발 사업을 한다지만 빈곤층은 오히려 더 열악한 주거지로 내몰린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한군데로 몰리게 되는데, 가난한 곳의 자치단체 역시 가난하므로 빈곤층을 구할 복지 혜택도 적다. 결국은 사회적 원인이 가난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
[주말을 여는 책]‘한국의 가난’ (내일, 차미례 언론인·번역가, 2010-01-15 오후 12:44:23)
빈곤의 책임 누구에게 물을까
‘비상업적 가난연구서’ … 한국인 관점에서 우리 자신 문제 다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면서 국민의 15%이상이 가난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철거민 노숙자 문제 연구가인 김수현(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 , 차상위 빈곤층 연구와 빈곤에 관한 기존 논의를 정리했던 이현주(한국보건사회연구원 ), 대학에서 빈곤문제를 가르치며 ‘빈곤과 사회복지 정책’을 펴냈던 손병돈(평택’대 사회복지학과 ) 세명의 저자가 의기투합해서 가난에 관한 책을 냈다.
 
다른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의 빈곤 문제를 다룬 책은 더러 출간된 적 있지만 이 책은 한국인의 관점에서 한국의 빈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전문가들의 일부 토론을 제외하고는 가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교재도, 대중적인 빈곤관련 독서물도 없는 판에 이 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를 전부 한 책에 담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엮었다.
 
한때 ‘잘살아보세’를 구호로 개발연대의 빈곤탈피를 구가하는 듯 하던 한국도 IMF이후 다시 급격한 빈곤층의 증가를 보게 된다. 어느 정도 경제회복이 된 후 2008년 미국발 경기침체를 계기로 빈곤층이 다시 늘어 이제는 15%, 6~7명중 한명 꼴로 빈곤층이다. 굶는 사람은 줄었지만 일을 열심히 해도 가난한 근로빈곤층은 점점 늘었다.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못하거나 안하고 있는 사람도 늘어난다. 외환위기를 겪는 동안 떠오른 ‘양극화’란 용어 뿐 아니라 이제는 ‘ 일하는 빈곤층 (워킹 푸어)’ 또는 ‘신 빈곤층’의 문제가 심각하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빈곤이라고 하는지,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왜 가난해지며 어떻게 하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 책을 빈곤이란 무엇인가 , 가난의 모습, 왜 가난해 지는가, 빈곤 넘어서기의 4부로 나누어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특히 ‘가난의 모습’ 부분에서는 전체 노인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가난한 노인들, 누적된 가난과 소외의 상징인 노숙인들, 결혼이주 여성과 탈북자 등 늘어나는 신종 빈곤층 문제 등을 조명한다. 단순한 학문적 고찰 만이 아니라 저자들의 시각은 우리 대부분이 늘 보면서도 간과하고 있는 분명한 현상을 흥미롭게 포착하고 있어서 매우 창의적이다. 이를테면 ‘가난은 모인다’라는 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동네에 산다, 돌볼 사람이 떠난 농촌의 가난과 노인들만의 고립, 가난한 동네 이해하기, 가정문제를 넘어서는 ‘동네’로의 접근등 신선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가난을 개인과 가구단위 수치로만 보지 않고 지역단위로, 이를테면 ‘가난의 지리학’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특히 수입이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절대빈곤층 외에도 중위소득의 40~60%이하로 정의되는 상대빈곤층의 개략적인 모습까지 정리한 점은 주목할만 하다. 거리의 노숙인만해도 가족도 집도 없이 떠도는 빈곤층의 극단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쪽방, 고시원, 심야 사우나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구층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그리 간단히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저자들은 보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수성가 신화는 문제를 올바로 보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가난은 당사자 책임으로 전가되며 그들이 보호받을 권리는 창피한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붕괴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은 더 늘어나는 한국사회 최대의 우려는 가난의 세습이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가난속에서 희망 없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한 선진국의 제도는 재산정도와 관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사회적 차별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만, 한국에선 어려서부터 가난에 따른 차별과 불이익을 피할 길이 없다.
   
--------------------
때깔만 고운 한국…‘빈곤의 생얼’ (한겨레, 전진식 기자, 2010-01-15 오후 09:21:51)
 
한국에서 빈곤층은 ‘공식 통계’로 15%에 이른다. 가난한 탓에 질병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가구는 12%를 넘는다. 65살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50%에 가깝다. 빈곤 극복은 여전히 가장 무거운 과제다. 국제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처음으로 국제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보호받을 권리가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되는 사회, 여전히 자수성가의 신화가 가득한 사회 아니냐고 지은이들은 묻는다. 40년 전 청계천 노동자 전태일이 ‘나는 두 발로 일어서기가 너무 힘겹다’고 말했던 현실에서 한국은 얼마만큼 달아났는가.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 사람의 정신을 잠식하는, 전쟁 같은 가난을 격퇴하는 데 한국 사회는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의 가난’을 정확히 바라보자는 지은이들의 주장엔 이런 절박함이 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 빈곤문제 가운데,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제구조를 지은이들은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빈곤’이다. ‘고용 없는 성장’은 ‘희망 없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이 보기에 한국은 ‘빈곤 위험 사회’로 치닫고 있다. 첫째, 빈곤의 위험 범위가 매우 넓어졌다. 경계선에 있는 이들을 더하면 빈곤율이 30%에 이른다는 연구도 있다. 둘째, 가난을 느끼는 영역이 넓어졌다. ‘밥은 먹고 산다’는 식의 생존이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로 확장된 것이다. 주거·의료·교육 등에서 개선의 여지가 ‘거의’ 없다면 그것은 빈곤이다. 셋째, 가난의 결과가 물질적 결핍을 넘어 사회적 고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구임대아파트 지역에 사는 아이들을 다른 지역의 아이들이 ‘영구’라고 놀린다. 더 따질 것도 없이 ‘안타까운 상징’이다.
 
넷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마저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 소득이 기회를 낳는 세상에서 박봉은 박탈을 뜻한다. ‘스펙 쌓기’와 가난의 대물림이 하나의 함수관계로 굳어진 지 오래다. 노부모 봉양도 못하고 자녀 교육도 못한다. 결혼조차 ‘무기한 연장’하는 이들도 늘어난다. 오로지 생존에만 매달리고도 통장은 초라하다. 가족 가운데 큰 병을 앓는 이마저 있으면, 그건 나락으로 추락하는 걸 뜻한다. 불안만 있고 희망이 없는 노동은 이처럼 참혹하다. 사회복지의 현실은 어떤가. ‘가난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원하는’ 대증요법식 정책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느냐는 유행어에는 무시 못할 진실이 있는 셈이다.
 
그러면 해법은 무엇인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공공부조(국민기초생활보장제), 사회보험(국민연금·의료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사회서비스의 강화다. ‘저인망식 사회안전망’이 절실하다. 일할 기회가 더 많이 마련되고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구조는 필수다. 하나도 새롭지 않지만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서도 복지국가 운운하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한 세상에서 “과연 우리에게 희망은 있을까?” 비록 ‘희망 고문’이 될지언정 포기해선 안 된다고 지은이들은 강조한다. “우리의 꿈을 감히 빈곤 극복이라고 정하자.” 한국 사회 빈곤의 현실을 ‘빈곤이란 무엇인가, 가난의 모습, 왜 가난해지는가, 빈곤 넘어서기’로 나눠 정리했다. ‘슬픈 통계’가 가득하다. 
 
--------------------
살기 좋은 대한민국…부자에게만? (프레시안, 전홍기혜 기자, 2010-01-17 오후 5:27:19)
[화제의 책] <한국의 가난 :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가난의 수천년 인류 역사와 함께 한 가장 '오래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2010년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동시에 '가난'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어떤 상태가 가난한 건지, 왜 가난해지는지,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고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등은 끊임없이 변한다.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그 사회의 태도에 따라 가난의 규모에서부터 가난이 내포하는 비참함까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발간된 <한국의 가난>(김수현.이현주.손병돈 지음, 한울 아카데미 펴냄)은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한국의 가난에 대해 집중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그동안 가난을 주제로 한 외국서적은 많이 출간돼 몇몇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지만 정작 우리의 가난을 주제로 한 사회과학서적은 많지 않았다.
 
빠른 경제성장으로 세계 13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경제대국이 됐다고 하지만 가난은 여전히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사회적 문제다. 1997년 외환위기를 포함해 두 번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더 심각한 문제가 됐다. 2007년 현재 한국의 빈곤율은 가처분소득 중위 50%(평균 가구소득의 절반)를 기준으로 16.5%다. 100명 중 16명이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빈곤율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복지국가로 빈곤율이 가장 낮은 그룹에 속하는 스웨덴(2005년 기준)은 5.6%, 핀란드(2004년)는 6.5%로 우리의 3분의 1 수준이다. 프랑스( 7.3%)와 독일(8.4%)은 10% 미만의 빈곤율을 보이고 있고, 영국은 11.6%, 이탈리아도 12.8% 수준이다. 반면 한국경제의 일종의 롤 모델인 미국은 17.3%로 우리보다도 빈곤율이 높았다. 한국의 빈곤율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점차 줄어들다가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다시 상승했다. 경제성장이 곧 빈곤율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미국의 빈곤율이 한국보다 높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한국은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의 빈곤율 차이가 1.7%포인트에 불과하다. 정부 정책을 통해 시장소득의 불균형이 거의 교정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이 수치가 7.2%포인트로 20%포인트 안팎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낮다. 정부 정책의 개입 정도가 그만큼 크지 않다는 뜻이다. 빈곤율이 27.3%나 되는 멕시코의 경우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의 빈곤율 차이는 -6.2%포인트였다. 정부 정책을 통해 오히려 시장 소득의 격차가 더 벌어진 셈이다. 정부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노인, 장애인 등 '일을 할 수 없는 이들'이다. 여성가구주 등 일을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저임금인 이들은 가난에 더 쉽게 노출돼 있다. 2007년 노인의 빈곤율은 47.0%였다. 절반 가까운 노인들이 가난을 경험하고 있다. 장애인의 빈곤율은 34.6%, 여성가구주의 빈곤율은 21.8%였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하고 있는 문제는 '일하는 빈곤층'이다. '워킹 푸어(근로빈곤층)'이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을 할 수 있어도 기회가 없어서('88만 원 세대'로 통칭되는 20대 청년 실업자), 일자리가 불안정해서(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이 낮아서(영세기업 노동자) 등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런 '워킹 푸어'는 대표적인 신빈곤층이다. 이들 외에도 노숙인, 이주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 탈북자 등 가난한 이들의 범주는 더 다양해졌다. 이처럼 빈곤층의 구성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은 빈곤 문제의 양상이 더 복잡해졌다는 얘기다. 특히 이주자의 문제는 세계화가 가난의 문제를 얼마나 복잡하게 만들고, 그 해결에도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나라 안에서 높은 수준의 임금을 줄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하고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고, 낮은 임금으로 다른 나라의 일자리와 경쟁하도록 강요된다.
 
또 과거에 비해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가난한 어른이 되기 쉽다는 얘기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질병의 위험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노출돼 있고, '배제'라는 사회적 낙인찍기에 시달리며,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교육 시스템에서 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소위 명문대학에 진학한다 하더라도 100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렵고, 학자금 대출로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괜찮은 일자리를 갖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만에 하나 취업을 하더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학자금은 갚다보면 혼기를 놓치기 일쑤고, 어렵사리 결혼을 하더라도 수억 원대에 달하는 집 장만은 은퇴할 연령에나 꿈꿔볼 수 있는 일이 됐다. 이런 모든 관문을 개인의 힘으로 뛰어넘어 대물림되는 가난의 고리를 끊으라는 것은 억지에 가까운 얘기처럼 들린다.
 
6-7명 중 한명이 가난의 언저리에서 살고 있는 한국에서 가난은 여전히 예외적이고 부끄러운 일이며 개인의 게으름 내지는 무능력의 문제인가? 또 애써 무시하거나 외면한다고 사라질 문제인가? 이처럼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난의 문제에서 당신의 삶은 자유로운가?
 
현재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미 세대의 문제로도 자리 잡은 가난은 그 영토를 더욱 확장시켜나갈 가능성이 크다. 2050년 한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골드만삭스의 전망이 현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2010년의 미국처럼 높은 빈곤율에 신음하는 '선진국'이 될 것이다. 가난이라는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앞에서 살펴봤듯이 가난의 규모와 의미는 그 나라의 정책에 따라 얼마든지 재조정이 가능하다. 많은 부모가 자신의 노후의 삶은 포기하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과 '가정의 해체' 위험성까지 감수하면서 자녀를 '교육 이민'을 보내거나, 서너살부터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내몰아 입시 경쟁 체제에 편입시키는 상당수 중산층의 삶은 과연 우리 사회의 가난의 문제와 무관할까? 지금이라도 <한국의 가난>에 대해 주목해야할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