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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미 국방 "北ICBM, 위협 안되면 격추까진 필요없어" 대폭 후퇴

카터 미 국방 "北ICBM, 위협 안되면 격추까진 필요없어" 대폭 후퇴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7/01/11 [10:4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0일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재임 중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이틀전인 8일에 했던 "북한 탄도미사일 미국 위협시 격추할 것"이라는 강경발언에서 대폭 후퇴를 한 "北ICBM, 위협 안되면 격추까진 필요없어"라고 발언하였다. 이는 결국 "격추불필요" "격추불가"를 말 하는 것으로서 이틀만에 대 조선 유화발언을 하였다.     © 이용섭 기자


10여일(현지 시간)후 물러나게 될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8일 미 NBC방송과의 대담(인터뮤)에서  "北ICBM, 위협 안되면 격추까진 필요없어"라고 발언하여 이틀 전에 했던  "북한 탄도미사일 미국 위협시 격추할 것" 이라는 강경발언에서 대폭 뒤로 물러섰다.

 

당초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조선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국들을 위협할 경우 격추할 것"이라고 강경발언을 했었다. 그러나 애슈턴 타커 미 국방장관은 8일에 했던 자신의 대 조선 강경발언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10일 임기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북한) 미사일이 위협적이면 요격하겠지만 위협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반드시 요격할 필요는 없다"는 카터의 발언을 전한 AFP통신의 보도를 인용하여 연합뉴스가 전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이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위협이 안된다면 굳이 격추할 필요가 없는 이유로 "우선 요격 미사일 재고를 아끼고 다음으론 (북한 미사일의) 비행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 더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굳이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요격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을 했다고 AFP의 보도를 인용하여 연합뉴스가 전했다.

 

한편 애슈턴 카터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ICBM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강경 발언과는 대비된다며, 조지프 던포드 미군 합참의장도 카터 장관의 발언에 같은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차기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 물러나는 카터 장관과는 달리 던포드 합참의장은 합참의장직을 그대로 맡을 예정이다."는 로이터통신보도를 받아 연합뉴스가 보도하였다.

 

한편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8일 미 NBC방송과의 대담(인터뷰)에서 "조선의 핵 능력과 탄도미사일 개발계획(프로그램)은  '심각한 위협'이고, 국방부의 임무는 '북한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것'"이라면서 조선이 만약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시험을 하게 된다면 적극적으로 격추에 나설 것이라고 강경한 발언을 했었다.

 

하지만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불과 이틀 후 그의 임기중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이전에 했던 강경한 발언에서 대폭 뒤로 물러나 "北ICBM, 위협 안되면 격추까진 필요없어"라고 발언을 하였다. 이는 실질적으로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시험을 해도 격추하지 않겠다거나 혹은 격추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까지 해석을 할 수가 있다.

 

요즈음 오바마정부 퇴임을 10여 일 앞 둔 시점에서 미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나 전문가 그리고 언론들이 나서서 대 조선 강경발언들을 쏟아냈는데 정작 국방을 담당하는 국방장관이 "격주무용론" "격추불가론"을 언론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밝혔으니 대 조선 강경발언들은 완전히 그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물론 1월 20일 출범하게 되넌 도널드 트럼프 신정부에게 가장 큰 핵심문제이자 중대한 문제는 세계의 수많은 언론들이나 전문가들이 평하고 있듯이 조선의 핵 과학기술의 뚜렷한 향상과 《단 · 중 · 장거리》 미사일의 사거리 연장과 정확성, 정밀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선의 핵, 미사일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미국이 동맹국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애슈턴 카터가 강경발언을 한 이틀만에 대폭 뒤로 물러선 유화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항상 "우리의 핵 폭발력의 한계가 없다." "우리 미사일의 사거리에는 한계가 없으며, 폭발력에도 한계가 없다." "적들이 지구상 그 어디에 숨어 있어도 단 한 놈도 모조리 격멸소탕할 수 있다.",,,,라고 끈임없이 강조해오고 있다. 이제 미국은 조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양 국간의 정상적인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대폭적인 대 조선 정책전환을 해야한다. 그 길은 오로지 《조미평화협정체결》밖에 없다. 그 길만로 가는 것만이 세계의 평화를 담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된다.

 

조선의 핵물리학자인 리학남은 "우리에게는 원쑤들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릴수 있는 소형화된 핵무기들과 그 운반수단들초정밀타격무기들이 있고 지금 실전배비되여 발사명령만을 기다리고있다."라고 강조하여 이미 소형화, 경량화된 핵무기가 실전배치되어 있음을 밝혔다. 계속하여 그는 "우리는 핵탄두폭발시험과 핵탄두장착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탄도로케트시험발사를 비롯하여 공화국의 자위적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갈 것"이라고 조선의 핵 물리학자들의 의지를 전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조선이 공개하는 핵 과학기술의 진전과 미사일기술에 대해 더 이상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정책을 세워야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해법이 생기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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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하게 아무것도 안 한 유엔총장, 반기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1/11 11:49
  • 수정일
    2017/01/11 11: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충렬의 정권+교체] 누가 '영혼없는 대통령'을 권하나?
이충렬 작가  2017.01.11 08:50:33

 
곧 있을 대선에서 '영혼이 없는 대통령'이 뽑힐 가능성은 혹시라도 없을까? 이번 주 귀국하여 본격적으로 차기대선에 뛰어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막스 베버가 최초로 설파한 '관료는 영혼이 없다'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널리 희자되곤 한다. 한국사회를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관료사회를 묘사할 때 이 말만큼 정곡을 찌르는 말은 없다. 
 
반기문 전 총장은 1970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무공무원으로 관료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22년동안 유신독재와 전두환 독재, 그리고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주미대사관 참사관, 본부 미주국 국장, 장관특보 등을 거치면서 출세의 발판을 닦았다. 특히 1985년 노신영 국무총리의 의전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권력핵심과 줄이 닿아 장래의 출세를 예약하였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는 지금도 반기문이 가장 존경하는 멘토라고 한다.  
 
60년대 박정희독재가 강화되던 시절 그가 학생시절에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없다. 공무원으로서 그는 유신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미화하는 본국의 훈령을 충실히 홍보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광주시민학살도 북한의 사주를 받은 불순세력의 폭동이라는 전두환 정권의 공식 설명을 충실히 홍보하였을 것이다. 그는 관료로서 독재정권에 부역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이나 가책없이 오로지 개인의 성실과 노력으로 승진과 출세 코스만 바라보고 위로 달리는 인생을 걸었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도 그는 대통령외교안보 수석비서관과 외교통상부 차관을 역임하는 등 승진가도를 달렸다. 모두의 부러움을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코스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외교정책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기였다. 냉전기간 우리 외교의 원칙이었던 북한과의 대결정책을 평화와 화해정책으로 정책의 기조를 극적으로 전환하였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이나 개성공단의 설립 등 새로운 대북정책을 시현하였다. 또한 미국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었던 외교정책을 한국의 능동적 역할 중심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대전환의 시기에 반기문이 단순 실무 이외의 족적을 남긴 것은 없었다. 육사출신의 보수적 군인이었던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팀을 이뤄 남북관계의 새 장을 개척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반기문은 그저 '실무적으로만' 존재하는 외무관료였다. 정책의 철학이나 패러다임의 전환은 그의 관심밖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영혼없는 실무자'였던 셈이다. 
 
인맥이 전혀 닿지않은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이었다. 2003년 대통령 외교보좌관을 스타트로 2004년에는 외교통상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곧이어 그에게 인생 최대의 행운이 다가온다. 유엔 사무총장은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호선하는 시스템이었는데, 2007년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아시아 몫이었다.  
 
원래 이 사무총장 자리를 노렸던 인물은 중앙일보의 사주 홍석현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의하면, 그는 유엔 사무총장을 거치고 대통령에 도전하겠다는 플랜을 세웠다고 알려지는 야심가였다. 그는 이 플랜의 첫 단계로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아그레망을 들고 주미 대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 해 말 갑작스럽게 터진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중도하차하였다. 홍석현 대사의 불행은 반기문의 행운이 되었다. 승진과 출세에 동물적 감각이 뛰어난 반기문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유엔 사무총장 도전의사를 밝히고 그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내 마침내 자신이 꿈에서도 꾸어보지 못했던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다.   
 
유엔의 사무총장은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을 중심으로 줄타기의 파워게임을 하는 것이 주된 작업이다.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완충하면서 국제적 난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주된 임무다. 물론 상임이사국 중에서도 미국이 가장 입김이 센 나라인 것은 말한 필요도 없다. 역대 약소국 출신의 사무총장 중에서도 일부 소신파는 강대국의 압력을 뿌리치고 강대국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 총장도 있었다. 코피 아난 직전 총장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반기문 총장은 물론 여기에서도 그의 특별한 재능을 발휘한다. 그는 평생 권력에 충성을 바치고 대세를 따른 사람이다. 유엔에서 그는 미국의 충실한 대리인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받는다. 그래서 나온 말이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사무총장'이라는 말이다. 소신을 내세우지 않고 원만함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기름장어'니 하는 별명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여기서 반기문의 일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나온다.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게 실무력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반기문은 국내에서 고위직을 지낼 때나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당대의 권력과 충돌하면서 가치를 추구한 적이 없다.  
 
반기문을 차기 대통령으로 미는 사람들 중에서 유엔 사무총장으로 얻은 경험과 네트워크가 통일 문제나 북한 핵 문제를 푸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황당무계한 주장이다. 실적을 보면 안다. 그가 사무총장을 지낸 지난 10년간 남북한 관계는 최악으로 발전(?)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북한 핵 문제를 아예 어젠다에서 제외하였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남북의 모든 대화 채널을 끊어버렸다. 북한은 이제 미국을 겨냥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남한은 개성공단조차 폐쇄하는 등 지난 20여년 쌓아온 남북관계는 완전히 냉전시대로 되돌아갔다. 
 
이 와중에 반기문은 완벽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남북관계에 관한 철학도 노력도 보여준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오로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장단을 맞추었을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영혼없는 대통령'을 필요로 하는 시기인가? 금년 초 한국경제신문과 MBC는 공동여론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차기 정부의 국정과제에 대하여, 국민들은 부정부패 척결 (29.9%), 경제위기 극복 및 성장 (26.7%), 민생문제 해결 (18.4%), 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 (8.7%)를 들고 있다고 한다. 하나 같이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굳건한 철학과 강인한 개혁의지로 무장하여 기득권세력과 싸워야 할 과제들이다. 한경과 MBC는 이 여론조사의 결과에 대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분노한 국민이 그동안 쌓인 적폐청산을 차기 정부의 최우선과제로 보고 있다고 분석한다. 
 
앞에서 본 국정과제 중에서 반기문 전 총장이 제일 잘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반기문은 아니다라는 결론만 나온다. 그는 민생과 동떨어진 외교관 생활만 한 사람이다. 경제와 민생을 알 리가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10년씩이나 국내에서 유리된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기득권 네트워크의 한복판에서 큰 사람이다. 그가 무엇을 어떻게 개혁을 하겠는가? 평생을 영혼없는 공무원 생활을 한 사람이 이제 와서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철학과 소신을 어떻게 발휘하겠는가?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은 집무실에 이런 글귀를 항상 비치했다고 한다. '모든 책임은 여기서 멈춘다.' 대통령 직은 누구에게 책임을 미루는 자리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의 모든 책임이 마지막으로 귀결되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다. 국민들이 탄핵한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이번에 또 다시 '영혼없는 대통령'을 권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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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답변, 탄핵 결정적 증거 나왔다.

법정에 제출한 공식적인 해명이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 알아봤습니다
 
임병도 | 2017-01-11 08:59: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진행 중인 헌재가 당시 행적을 제출하라고 지시한 지 19일 만이었습니다.

10일 헌재에 제출한 세월호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지난 11월 1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나왔던 “세월호 당일, 이것이 팩트입니다”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홈페이지(28개)보다 5개가 늘어났고, 행적에 대한 설명만 조금 체계적이었을 뿐입니다.

“오후 3시35분경 미용 담당자의 머리손질”이 추가됐는데, 이 부분은 언론 보도와 국조특위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보면 ‘보고서 검토’와 ‘전화 통화’ 등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에 그칩니다.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별로 없습니다. 결국, 헌재는 통화 기록을 제출하라는고 합니다.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답변을 보면, 오히려 탄핵에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의혹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법정에 제출한 공식적인 해명이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 알아봤습니다.

① 세월호 참사를 인지한 시각은?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언제 알았을까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세월호 침몰을 처음 알게 된 시각은 오전 9시 19입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9시 24분에 안보실에서 문자로 상황을 전파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헌재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10:00경 국가안보실로부터 08:58 세월호 침수 사고에 대해 처음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9시 24분 문자로 사고를 인지한 것인지, 10시에 서면으로 보고받았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진성 헌법재판관은 “답변서에는 우선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에 대한 최초 인지 시점이 언제인지가 나와 있지 않다”며 “TV 등을 통해서 (사고가) 오전 9시 조금 넘어서부터 보도됐는데, 대통령이 TV를 통해서 확인하지 않았는지를 밝혀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해경 첫 구조선인 123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9시 34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시 24분에 사고를 제대로 인지했다면, 알고도 제대로 구조 명령을 내리지 않은 셈이 됩니다. 만약 10시에 인지를 했다면 구조를 할 수 있는 최초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됩니다.

② 긴박했던 순간, 53분 동안 전화 통화가 없었다.

10시 서면 보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해경청장과 전화 통화를 합니다. 그런데 오전 10시 30분부터 오전 11시 23분까지 53분 동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화 기록이 없습니다. 대리인단은 이 시간에 서면 보고를 검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박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합니다.

오전 10시 30분은 탑승객 470명 가운데 고작 70명만이 구조됐을 시간입니다. 오전 11시 23분까지도 구조 인원은 161명에 불과했습니다.

국가안보실이 11시 20분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선수 하단부만 빼고 뒤집혀 선체가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세월호 사진이 첨부돼 있었습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배가 뒤집힌 상황에서 구조인원이 161명에 불과하면, 도대체 왜 구조를 하지 않느냐고 난리가 났어야 정상입니다. 국민들의 생명이 차가운 물 속으로 점점 들어가는 중요한 순간에 보고서만 붙잡고 있었다는 자체가 이미 탄핵 사유로 차고도 넘칩니다.

③ 서면 보고서는 누가 전달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받았다는 서면 보고는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윤전추 행정관은 오전 10시에 ‘급한 서류’가 와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윤 행정관은 ‘당시 박 대통령은 문을 나와서 서류를 받아 갔다’라고 진술했습니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12시 5분과 12시 33분에 서면 보고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시각 윤전추 행정관은 관저 집무실에는 들어간 적이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 그날 관저 출입은 당일 오전 피청구인의 구강 부분에 필요한 약(가글액)을 가져온 간호장교(신보라 대위)와 외부인사로 중대본 방문 직전 들어왔던 미용 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세월호 당일 행적)

대통령 대리인단은 세월호 참사 당일 간호장교와 미용 담당자 외에는 관저에 출입한 사람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직접적인 서류 전달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서류로는 보고서가 올라가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이메일로 보고를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메일을 보내고 수신했던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아직 뚜렷하게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메일로 보고서를 받았는지 아닌지가 나와야 합니다. 만약 그 기록이 조작됐거나 수신이 되지 않았다면, 박 대통령은 제대로 사건 보고도 받지 않고 엉뚱한 짓을 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④ TV도 없었던 관저, 왜 청와대 벙커에 가지 않았나?

박근혜 대리인 측은 “청와대는 어디든 보고받고 지시·결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으며 대통령의 일상은 출퇴근의 개념이 아닌 24시간 재택근무 체제”라고 말했습니다.

수시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TV로 사고를 인지했는지는 제대로 해명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윤전추 행정관은 관저 집무실에는 TV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벙커에 국가안보종합상황실을 설치했습니다. 상황실에는 국내 23개 주요 정부기관으로부터 실시간 전송되는 위기-재난 현장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자상황판(KNTDS 시스템)도 있었습니다.

육해공군뿐만 아니라, 경찰청, 산림청, 소방본부, 한전 원자력 상황실의 정보가 청와대로 연결됐습니다. 심지어 한반도 주변을 운행 중인 항공기와 선박의 정보도 나왔습니다.

달랑 노트북 하나만 있는 관저 집무실에서 근무했다는 대통령 대리인측의 변명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습니다. 마치 4K 영상으로 통화할 수 있는 위성 전화가 있는데, 손으로 쓴 편지로 소식을 전달한 상황과 같습니다.

‘탄핵 사유의 결정적 증거’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 측은 ‘오전 10시에 세월호 사고 발생 보고를 처음 받았다’라고 밝혔습니다. 사고 상황이 전파된 9시 24분에서 무려 36분이나 지난 시각입니다. 이미 수많은 생명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것입니다.

대리인 측이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구조 상황을 보고 받고 보고된 상황에 따른 지시를 하는 등의 대처를 하다가 15:00경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국가안보실이 11시 20분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승선원 474명 구조작업 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전 11시 현재 161명 구조’에 선체가 뒤집힌 ‘세월호 현재 상태’라는 사진도 있습니다.

이런 보고서를 11시 20분에 읽었는데 어떻게 오후 3시에 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지를 했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골든타임을 놓치고, 대통령으로서 사고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등 직무 유기를 했습니다. 헌법 제10조에 보장된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입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충분하다 못해 넘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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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기득권 세력", 박원순 시장은 왜 화가 났나

 

'측근 빼가기', '자리 나눠먹기' 정황 있다고 판단한 뒤 작심 발언

17.01.09 21:28l최종 업데이트 17.01.09 22:26l

 

 

 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오전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2017년도 서울시 청년보장사업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문재인도 청산 대상'이라고 한 발언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박 시장이 작년 12월 26일 오전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2017년도 서울시 청년보장사업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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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 전주에서 지역 언론인들과 만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청산의 대상이지 주체가 될 수 없다", "문 전 대표는 기득권 세력"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시장은 문 전 대표와 관련해 "기득권이 된 사람", "지금의 민주당은 기득권에 기반을 둔 폐해가 적지 않고 당내 '줄 세우기'도 심각하다", "심지어 다음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사람까지 찍어놨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라며 비판했고, 이에 대한 누리꾼 반응도 엇갈렸다. 발언과 관련해 '난데없는 총질 발언' '정치꾼'이라는 비판과 함께 '소신 발언'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호평도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정치권, 특히 야권에서도 박 시장의 발언에 대해 "이렇게 수위 높은 발언을 할 줄은 몰랐다"며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박 시장은 왜 갑자기 '친문(재인) 패권 청산' 발언을 쏟아냈을까?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박 시장은 민주당의 '친문패권'에 대한 정황을 나름대로 파악한 뒤 논란이 된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하는 모 전직의원에게 차기 서울시장 선거 후보를 보장하고 문(재인) 측에서 데려갔다" "전북의 누구는 복지부 장관에 내정돼 있다는 얘기도 하더라"는 말이 박 시장의 귀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문재인 캠프가 차기 정부 집권을 일찌감치 상정하고 벌써부터 '자리 나눠먹기'를 하고 있다는 판단이 박 시장의 '문재인 청산' 발언에 깔린 셈이다.

박 시장의 의중을 잘 아는 인사는 8일 저녁 <오마이뉴스>에 "이런 패권과 독식이 문재인 전 대표의 뜻이든, (그게 아니라) 그 (지지)세력의 뜻이든 지속되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지난 몇 년간 정국을 주도해 온 것은 문 전 대표인데, 오늘 이 사태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한, 박 시장은 문재인 캠프의 '사람 빼가기'에도 크게 낙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의 선거캠프 당시 총괄팀장을 지냈고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임종석 전 의원이 문 전 대표 측 설득으로 지난해 10월 캠프 비서실장으로 옮긴 게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캠프가 박 시장에 우호적인 또 다른 서울 지역 의원을 데려가려고 한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돌고 있다.

박 시장의 입장에서는 핵심 측근의 이탈과 차기 자리 보장·내정설 등의 정황들을 '친문패권'의 맥락에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박 시장 측 인사는 "지난 전당대회도 (친문이) 독식하더니 요즘 국회의원들이 다 그쪽을 (의식하고 바른 말 하길) 두려워 한다"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측근들에게 "내가 당해보니 안철수(가 문재인과 결별하고) 당을 나간 것이 이해가 되더라,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캠프 "박원순 아쉽다", 안희정 캠프 "문재인에 '통합' 리더십 있나 의문"  
 
옛 사진 함께 보는 문재인-박원순 박원순 서울시장과 새정치민주연합 선대위원장 문재인 의원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양도성 남산코스 산행 도중 스마트폰으로 사법연수원 시절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있다.
▲ 옛 사진 함께 보는 문재인-박원순 박원순 시장의 '친문 패권 청산' 발언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측에서 '차기 서울시장 후보', '복지부 장관 내정' 등 차기 집권을 상정한 '자리 나눠먹기' 정황이 감지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014년 4월, 함께 산행 중인 박 서울시장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선대위원장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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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의 다른 주자들은 이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일단 문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정치 언어라는 게 참 조심스러운 것"이라며 "(박 시장 발언이) 참모진과 충분히 논의한 결과는 아닌 것 같다. 아쉽다"라면서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이어 "탄핵 가결 후 민심의 제일 큰 요구는 정권교체다. 이런 민심과 조응하면 국민 마음에 닿지만, 충돌하면 오히려 자기 지지(기반)를 무너뜨리게 된다"라면서 박 시장을 에둘러 비판했다. "(지지율로) 앞서가는 문 전 대표가 견제받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정치는 권투와 다르다. 권투는 관중이 누굴 응원하든 이긴 사람이 이긴 거지만, 정치는 국민이 응원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설명이다.

반면, 김부겸·이재명·안희정 캠프는 "친문패권이 실체가 없다고만 볼 수는 없다"며 대체로 박 시장을 거들면서도 문 전 대표에 대한 대응 수위에서는 온도 차가 뚜렷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박수현 대변인은 "안 지사는 당이든 국가든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비판 발언 관련한)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 논란 등을 보면 소위 '친노(무현)' '친문(재인)' 패권이라는 게 통합이 절실한 사회와는 잘 맞지 않는다. 문 전 대표가 당을 통합적으로 끌어왔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이 비판한 '친문패권'이 실제로 정치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평가였다.  

안 지사는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당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은 역시 문재인 후보다. 그 후보에게 문제제기하는 것마저 비판할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도 "당에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문 후보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나서줬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김부겸 캠프 관계자는 "('친문패권주의' 논란이) 촉발된 것은 민주연구원의 개헌 관련 보고서 때문"이라며 "추미애 대표가 처음에는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해서 지켜보려고 했는데, 대책이 안 나오면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문패권주의' 실체를 대체로 인정하며, 이와 관련해 당의 공식적인 해명 및 정리가 필요하다는 견해였다.

이재명 성남시장 측 관계자는 "(대선을 놓고) 당내에서 경쟁이 이뤄지는 건 당연하고, 선의의 경쟁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서로 내부에서 음해한다든지, 사실 왜곡이나 비방 등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이재명) 시장의 견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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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항거 정원 큰스님 입적, 대책위 유지계승 행동 돌입

분신항거 정원 큰스님 입적, 대책위 유지계승 행동 돌입
 
 
 
이나윤, 이창기 공동취재 
기사입력: 2017/01/09 [21:5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정원스님     ©자주시보

 

▲ 박근혜 체포, 세월호 진실규명, 한일위안부협정 폐기, 사드 반대 및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주장하며 분신하시는 정원스님,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끝까지 가부좌 정좌 자세로 분신하였다고 한다.     © 자주시보

 

지난 7일 토요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 분신한 정원스님이 이틀만인 9일 저녁 7시 40분 경 안타깝게도 마지막 호흡을 거두고야 말았다.

 

가족들은 '정원 큰스님의 분신항거 비대책위원회'의 박교일 대표에게 장례와 관련된 모든 일을 위임한 상항이다.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못했던 정원 큰스님은 특히 뒤집힌 세월호 안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박근혜 정부에서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민간잠수사들의 활동까지 가로막는 등 천인공노할 상황을 당시 팽목항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던 충격이 너무 커서 무척 괴로워했음을 스케치북 유언장에 남겼었다.

이후에도 일본군 성노예문제를 사죄도 받지 않고 완전해결을 선언해버리는 박근혜 정권을 보고 분노를 금할 수 없어 상징적 응징 차원에서 외교부에 화염병을 투척하여 8개월 감옥살이까지 하였다.

 

하여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터지자 이번에는 반드시 박근혜를 체포 구속하고 수구적폐세력을 깨끗히 청산하여 자주로 존엄 높은 통일조국을 반드시 건설해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온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한 몸을 고스란히 바친 것이다.

 

9일 '박근혜즉각구속 정원큰스님 분신항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발표한 정원 큰스님이 분신 전, 한 권의 노트에 촛불을 든 시민들에 대한 당부의 말을 남겨 놓았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박근혜정권의 부정선거 규명과 내란범죄 처벌

    ② 한­일간 위안부합의 및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사드배치 반대

    ③ 세월호 사건의 완전한 진실규명

    ④ 자주 평화 통일 완성

 

특히 “소신공양으로 매국노 집단이 일어나는 기회를 끊고 촛불시민에게 힘을 주기 위함이다”라는 유언에서도 드러나듯이 황교한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에서 촛불을 탄압하고 수구사대매국 세력들의 준동이 거세지는 것을 보고 한 몸을 그대로 불사를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결국 정원 큰스님은 분신의 책임은 박근혜, 황교안과 같은 반민중 사대매국세력에게 있음을 역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우리 국민들은 정원 큰스님의 뜻을 기어이 이루고야 말 것이다.

 

다음은 정원 큰스님 분신항거 입적에 따른 비상대책위원회 성명이다.

 

참고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의 방이 없어서 현재 임시 분향소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층 행사장에 마련하였다. 

정식 조문은 방이 나오는 내일 오전 11시부터 받을 예정이다.

 

 

........................................................................................................

[정원 큰스님의 분신항거 입적에 따른 비상대책위원회 성명서]


1.  2017년 1월 9일 19시 40분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 소속 정원 큰스님이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2. 분신항거 비대위는 큰스님의 유지가 아래와 같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① 박근혜 즉각구속, 대선무효소송 속결
    ②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③ 한일위안부 합의 및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사드배치 반대

 

3. 분신항거 비대위는

   ①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 이하 시민단체 및 시민들과 함께 연대해 정원 큰스님의 유지를 계승하고 실현하기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

   ② 정원 큰스님 입적 책임은 박근혜에게 있음을 밝히고, 박근혜와 그 일당의 구속과 처벌시까지 정원 큰스님을 보내 드릴 수 없다.

 

3. 장례위원회 구성을 위해 분신항거 비대위는 10일 10시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 및 제 시민단체에 대표자회의 개최를 (장소는 별도 공지) 제안한다

 

4. 장례위원회 구성을 위해 분신항거 비대위는 10일 10시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과 제 시민사회단체에 대표자회의 개최를 (장소는 별도 공지) 제안한다.  [2017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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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4시 16분, 팽목항에서 세월호 기원제 열려

1000일 맞은 팽목항, ‘미수습자 수습’과 ‘세월호 인양’ 기원9일 오후 4시 16분, 팽목항에서 세월호 기원제 열려
팽목항=임재근 객원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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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9  22: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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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1000일 맞은 1월 9일 팽목항에서는 ‘미수습자 수습’과 ‘세월호 인양’을 기원하는 기원제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세월호 진상규명을 염원하며 방울종 304개를 등대 주위에 매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세월호 1000일을 맞은 2017년 1월 9일, 오후 4시 16분.

진도 팽목항 등대 앞에서는 세월호 인양 기원제가 시작되었다. 기원제의 시작은 목탁소리와 종소리가 맞춰 진도 향적사 주지 법일 스님의 집전으로 진행되었다. 이어 세월호 미수습자의 수습을 기원하며 9개의 노란 연꽃초에 촛불을 밝혔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상징하며 초와 작은 방울종 304개를 등대 주위에는 놓기도 했다. 또한 미수습자 9명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밥과 탕 9그릇을 올렸으며, 아직은 차가운 바닷속에 있지만 따뜻하게 입으라는 의미에서 배냇저고리와 털신, 흰수건을 함께 올렸다.

세월호 미수습자인 권혁규 군의 큰아버지 권오복 씨도 연꽃초를 함께 밝힌 후 팽목항을 찾은 시민들을 향해 “어제까지는 날씨가 좋았던 날씨가 천일이 되니 바람이 거세졌다”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동생과 조카를 수습하지 못해) 지금까지 진도 땅을 떠나지 않고 있다”며, “끝날 때까지 같이 해달라”고 호소했다.

   
▲ 세월호 미수습자인 권혁규 군의 큰아버지 권오복 씨가 노란 연꽃초에 불을 붙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미수습자들에게 올리는 배냇저고리와 털신, 흰수건. 아직은 차가운 바다 속에 있지만 따뜻하게 입으라는 의미이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본격적인 기원제 공연이 등대 앞에서 펼쳐졌다.

판소리 명창 천명희 씨는 ‘심청가’에서 심봉사가 물에 빠진 대목을 불렀다. 고수 권혁대 씨는 “심봉사가 물에 빠졌지만, 결국은 화주승이 건져냈다”며, “우리 국민 모두가 물에 빠진 학생들을 건져내는 화주승이 되자는 의미에서 이 대목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금비예술단장 전연순 씨와 FCD무용단 서윤신 씨는 함께 '천일의 춤' 퍼포먼스를 진행했고, 전남 장흥에서 온 신고구려군은 ‘12월 이야기’와 ‘천개의 바람’을 불렀다.

   
▲ 금비예술단장 전연순 씨와 FCD무용단 서윤신 씨의 '천일의 춤' 퍼포먼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마지막으로 기원제 참가자들은 미수습자들이 조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염원하며 9명의 이름이 적힌 노란색 연 9개를 띄웠고, 세월호 선체 인양을 기원하는 '인양술래'로 마무리했다.

   
▲ 미수습자들이 조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염원하며 미수습자 9명의 이름이 적힌 노란색 연 9개를 날렸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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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정유라에게 사준 말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핵심은 권력을 불법적으로 이용해 사적 이익을
 
임병도 | 2017-01-10 08:57:3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제일 중요한 핵심 중의 하나는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불법적으로 이용해 사적 이익을 얻었다는 부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독대한 후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 찬성표를 던집니다. 이후 삼성전자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말을 사주고 훈련비 등을 지원합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 보유 주식 가치는 합병 전에는 2조 1050억 원이었는데, 합병 이후에는 1조5186억 원으로 27.9%, 약 5865억 원이 감소했습니다.

국민의 이익은 감소한 반면, 제일모직 지분만 갖고 있던 이재용 삼성부회장은 엄청난 이익을 얻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는 삼섬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됩니다. 삼성이 정유라씨에게 말을 사준 과정을 정리해봤습니다.


‘삼성이 정유라에게 사준 말들:살바토르, 비타나V, 라오싱’

 

▲국제승마연맹 홈페이지에 나온 정유라씨가 승마대회에 출전하면서 탔던 말들

 

국제승마연맹에는 출전 선수들이 어떤 말을 탔는지 상세히 소개합니다. 국제승마연맹 홈페이지를 보면 정유라씨는 2014년부터 ‘로얄레드’,‘피프티 센트 6’,‘살바토르’,‘비타나 V’,‘라우싱 1233’ 등 총 5마리의 말을 타고 출전했습니다.

5마리의 말 중 ‘살바토르’는 2015년 11월 삼성이 7억 원을 주고 구입해 정유라씨에게 준 말입니다. 삼성은 2016년 2월 ‘비타나V’와 ‘라오싱’ 등 말 2마리를 모두 25억 원을 들여 사줍니다. 2014년부터 정유라씨가 탔던 말 5마리 중 3마리를 삼성이 사준 셈입니다.

승마대회에서 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승마계에서는 ‘말이 7할, 기수가 3할’이라고도 합니다. 삼성은 정유라씨에게 30억이 넘는 말을 지원했습니다. 결국, 정유라씨는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삼성으로부터 특혜를 받아, 다른 선수보다 유리하게 선수 생활을 한 것입니다.


‘삼성 박상진 사장,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겠다’

도대체 삼성은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씩이나 정유라씨에게 말을 사줬을까요? 최순실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독대한 후 박원오 승마협회 전무를 통해 삼성에 정유라씨의 말을 사줄 것을 요구합니다.

삼성은 최씨의 요구를 받고 2015년 11월 7억짜리 ‘살바토르’를 구입해 정유라씨에게 줍니다. 그런데 이 말의 소유주는 정유라씨가 아닌 ‘삼성’으로 등록됐습니다.

최순실씨는 ‘말을 사주라고 했지, 빌려달라고 했느냐’라며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을 독일로 보내라’며 화를 냈습니다. 이 말을 전달받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은 최순실씨에게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겠다’라고 합니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의 말처럼 삼성은 2016년 2월 25억을 들여 ‘비타나V’와 ‘라오싱’ 등 말 2마리를 구입해 정유라씨에게 제공합니다.

박 사장은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최순실씨 모녀가 독일에 설립한 ‘코레스포츠’에 삼성이 280만 유로(약 35억 원)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코레스포츠의 공동대표이자 로베르트 쿠이퍼스 독일 헤센주 승마협회 대표는 “삼성이 2020년까지 최순실씨가 계획하고 있는 스포츠센터 건립 자금 등 총 2200만유로(약 280억 원)을 지원하기로 돼 있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떳떳하지 못해 자살 생각이 깊어졌다’

삼성전자 박상진 사장은 1월 9일 열린 마지막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박 사장이 국정조사 특위에 제출한 진단서와 사유를 보면 “(박 사장은) 평생 살아온 의미가 없어지고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면서 자살 사고(思考)가 심화돼 폐쇄 병동 입원 치료와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박상진 사장은 경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와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11년 삼성SDI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2014년 삼성SDI가 제일모직과 합병하자, 삼성전자 대외협력부문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5년 3월 승마협회장에 취임했습니다.

명문고와 서울대를 나와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사장으로 타워팰리스에 살며, 인생에 부러울 것 없이 성공한 인물, 그러나 그는 ‘떳떳하지 못한 일 때문에 평생 살아온 의미가 없어져, 자살 생각이 깊어졌다’라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만을 심판하는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재벌과 경영인이 어떻게 기업을 운영했고, 권력에 빌붙어 성공했는지 그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공평하며 정의로운 사회”
대한민국에서 사라지는 말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기억하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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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탄핵 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박근혜 '옹호 집회' 관찰기 "폴리스라인 밀어붙여"
[기고] 朴 탄핵 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김동규 동명대학교 언론광고학과 교수  2017.01.10 08:21:32
 
두 가지의 천국을 만났다. 하나는 아멘과 할렐루야가 흘러넘치지만 사실은 아귀같은 탐욕과 저주가 이글거리는 곳. 다른 하나는 다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연대의 물결이 강물처럼 고요히 흐르는 곳.
 
휴일 오후에 봉은사 근처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근데 봉은사역 계단을 오르자마자 대형 스피커 소리가 진동을 한다. 코엑스 쪽으로 군중이 모여 있고 엄청난 음량으로 "할렐루야!"가 터져나온다. 가짜 군복을 입은 해병전우회 할아버지들, 흔들리는 하이톤에 수시로 '박근혜 대통령 살려내야 한다' 중얼대는 할머니들이 가득하다. 말로만 듣던 극우 집회다.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이 무리들을 제대로 관찰하겠는가. 
 
태극기가 난무하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난데없이 집회 초입에 커다란 성조기가 펄럭인다.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부터 20대 초반 청년 그리고 늙수그레한 할머니까지, 년령도 다양한 일가족이 손팻말과 깃발을 흔들고 있다. 
 
마스크 쓰고 성조기 흔드는 청년에게 슬쩍 물어본다. "어디서 왔어요?" 인천에 있는 교회에서 참석했단다. 대절버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박사모(박근혜 대통령 팬클럽)와 어버이연합의 합동 집회라 한다. 아무래도 60대 이상 연령층이 많다. 그런데 의외로 청년층과 젊은 여성들도 적지 않다.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성조기ⓒ김동규

▲박근혜 탄핵 집회에는 '태극기'를 든 젊은이들이 꽤 눈에 띠었다. ⓒ김동규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는 사실관계가 다른 이야기들이 '구호'로 등장하기도 했다 ⓒ김동규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포착된 한 목사. 그의 가슴에는 '스테프(STEFF)'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김동규

코엑스 앞 8차선 도로 중 4차선을 점령할 정도로 상당한 인원이다. 대형 중계 모니터도 여러 대 설치되어 있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은 50대 여성이 "폴리스 라인을 밀어붙여요"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혹시라도 돈받고 동원된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 유심히 면면을 살펴본다. 그건 아닌 것 같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니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상당히 열정적으로. 옆의 할아버지에게 여쭤봤다. 주로 누가 나왔냐고. 
 
말씀인즉 모임 주도는 교회 사람들이란다. 어디서 이런 인원들이 집회에 동원되는지 지금까지 몰랐다. 오늘 분명히 확인한 것은 이들 군중의 절대 다수가 극우 개신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에서 괴성 지르며 "오 주여"를 외치는 자들이 하나같이 목사들이 입는 설교복 차림이다. 실제로 무슨무슨 교회 목사님 어쩌고 군중들에게 연사를 소개한다.  
 
이 목사들이 열에 들떠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탄핵 주도하는 좌파 세력에게 벼락같은 저주를 내려주시고 우리 박대통령의 억울한 누명을 하느님께서 벗겨달라고 통성기도를 한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에서 오싹하게 묘사된, 서북청년단과 그들의 이념적 모태가 되었던 서북기독교의 악몽이 오늘에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집회의 수준과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긴 말은 필요없겠다. 코메디를 능가하는 다음 사진 한 장만 보면 된다. 연단에 올라있는 주요 목사님들이 가슴에 붙인 명찰이다. 한글로 진행(요원)이라 적고 그 위에 영어로 이렇게 써놓았다.'STEFF'. 
 
목 쉰 소리로 탄핵 반대를 외치는 기도 속에 하느님이 난무하고 역사와 정의가 춤을 춘다. 그들이 꿈꾸는 천국이 바로 저 단어들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그들만의 천국, 그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과 독선을 숨기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먹는 아귀들의 가짜 천국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저녁 7시 경 광화문에 도착했다. 며칠 있으면 304명의 세월호 참극 희생자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000일이 되는 날(1월 9일)이다. 차가운 맹골수도 깊은 물 속에 아직도 9명의 미수습 실종자가있다. 유가족 합창단이 눈물의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을 잃은 9명의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무대에 올랐다. 대표 학생이 글을 읽는데 그 중에서 가장 울컥한 것은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 나중에 18살의 모습으로 서로 만나자는 말이었다.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닦다가 이런 확신이 들었다. 저 아이들의 희생이 이 삭막한 땅에 씨앗을 뿌린 것이라고. 그 씨앗에서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그러한 세상의 일그러진 모습에 분노하는 수백만 촛불의 꽃이 태어났다고. 그러므로 누가 나에게 천국은 어디냐고 물으면 바로 그곳, 아이들이 먼저 가 있는 그곳이 천국이라 답할 거라고.
 
뿌옇게 흐려진 시야 너머로 세월호 천막과 그 위에 펄럭이는 작은 깃발들이 보인다. 애들아 너희들을 잊지 않을께. 이 어둠이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를 묶을지라도 너희들을 위해 촛불을 절대 꺼트리지 않을게. 나는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지상의 엄마 아빠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저 높은 곳을 향해 조용히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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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최순실, 박근혜 선거 주도적 관여’ 증거 잡았다

[단독]검찰 ‘최순실, 박근혜 선거 주도적 관여’ 증거 잡았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ㆍ“서울→대전→대구→부산 유세” 제안 “역순이 좋겠다” 바꿔
ㆍ특검, 9일 ‘뇌물공여 혐의’ 삼성 최지성·장충기 참고인 조사

검찰이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배후에서 최순실씨(61·구속기소)가 각종 선거를 진두지휘해온 증거를 다수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8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8)의 휴대전화 등에서 나온 녹음파일들을 들어보면 최씨가 ‘문고리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과 함께 1998년 이후 박 대통령이 직접 출마하거나 간접 지원했던 선거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미공개 녹음파일에서는 한 참모가 ‘서울→대전→대구→부산’ 순으로 일정을 제안하면 최씨가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게 좋다”는 식으로 일정을 수정했다. 

검찰은 최씨가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핵심 조언자 역할을 해온 정황을 포착했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최씨를) 웬만한 국회의원보다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검찰이 확보한 박 대통령과 최씨, 정 전 비서관 간 ‘3자 대화’ 녹음파일 11개 중 10개는 2012년 대선이 열리기 전에, 나머지 1개는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일 때 각각 녹음됐다. 당선인 신분일 때 나눈 대화는 2012년 12월 세 사람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할 때 녹음됐는데, 주로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정무적 조언’을 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검찰은 전체 녹음파일 236개 중 일부는 청취만 하고 아직 서면용 녹취록을 만들지 않았다. 법원에 제출한 녹취록도 29건뿐이다. 최씨의 재판 도중 녹취록이 추가로 제출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94억원대 뇌물공여 혐의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실장(부회장·66)과 장충기 차장(사장·62)을 9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다. 이들을 상대로 삼성전자 등의 최씨 측 지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인지 등을 추궁할 방침이다.

두 사람은 조사 도중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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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스님, 이틀 넘기기 어려울 듯

[3신종합] 정원스님, 이틀 넘기기 어려울 듯자주평화통일의 한길, 나의 죽음 헛되지 않기를, 민중이 승리하는…
▲ 사고 당일 "웃는 사진 남기려 했는데..."라는 문구와 함께 페이스북에 사진을 남겼다. [사진출처 정원비구 페이스북]

정원 스님의 동생으로부터 치료와 관련한 일괄 위임을 받은 박교일 자주평화통일 상임대표(정원 큰스님 분신항거 비상대책위원장)는 평소 본인의 지론과 가족(동생)의 뜻에 따라 연명과 관련된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중환자실 정원스님 담당 책임 의사인 이한나 교수는 환자의 기도 상태 등에 비추어 현 수준을 유지할 때 이틀을 넘기기 어렵다는 한강성심병원의 소견을 전했다.

▲ 정원스님은 11월26일자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유서 같은 글을 남겼다. [사진출처 정원비구 페이스북 ]

정원 스님의 분신 시도는 일시적인 충동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유서는 현재 검찰에 넘어가 있는 휴대폰과 테블릿pc에 기록돼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평소 SNS를 통해 몇 차례 (분신) 암시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26일 페이스북 담벼락에는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나의 죽음이 어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 제도화 된 수사로 소신공양을 수식하지마라. 나는 우주의 원소로 돌아가니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마라”라고 적힌 도화지를 찍은 사진을 남겼다.

정원 스님은 평소 도화지에 자신의 뜻을 적어 SNS에 올리곤 했다. 이를 통해 그의 세계관과 현 정국에대한 견해를 확인할 수 있다. “승가는 시주물이 하늘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오는것이며, 사회구성원이 눈물과 땀의 결과물로 제공됨을 잊지 말고 시주자인 민중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 정원스님은 도화지에 자신의 의견을 적어 SNS로 공유하곤 했다. [사진출처 정원비구 페이스북]

“박근혜는 즉시 물러나고 직무 중단하라! 대법원은 부정선거 소송 심판하라! 시민혁명을 성취하자! 한·일 협정 파기하라! 한·미 군사협정 파기! 정치인들은 민의를 배신하지 마라”

한편 경찰이 점유해간 정원스님의 휴대폰과 테블릿pc를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경찰은 사고 접수 직후 여권과 지갑만 있고 휴대폰은 없었다고 발표한데 이어, 휴대폰을 국과수에 넘겼다고 했다가 돌연 검찰이 가져갔다며 말을 돌리고 있다.

박교일 대표는 이와 관련하여 “지난 백남기 농민 때도 그렇고,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등 군사정권 시절에 정권의 위기를 용공조작으로 돌파하려는 음모를 한 두번 꾸민게 아니다”라면서 검찰과 공안기관의 용공조작 가능성에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주문했다.

▲ 정원스님은 유독 대선 부정선거에 유독 관심을 보였다. [사진출처 정원비구 페이스북]

 

 

[2신] 정원스님 분신 장면, 사진 공개

-용공조작 의혹 제기, 분신 장면 포착 시민 제보 사진 공개

▲ 시민의 제보로 포착된 정원스님의 분신 당시 사진

8일 16시 정원 큰스님 분신항거 비상대책위(위원장 박교일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 상임대표)는 기자브리핑 통해 시민의 제보로 확보한 광화문광장 인근 공원에서 분신을 시도한 정원스님의 모습이 포착된 사진을 공개했다.

한편 박교일 위원장은 기자 브리핑에서 경찰이 정원 스님의 휴대폰과 테블릿pc를 가족들에게 돌려주지 않는 것과 관련해 용공조작 음모를 꾸미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측은 점유한 휴대폰과 테블릿pc가 현재 수사를 위해 검찰에 넘어가 있다고 밝혔다.

▲ 정원스님이 페이스북에 남긴 4자 시

 

[1신] 정원스님 의식불명, ‘박근혜 즉각 구속’ 요구 분신

-자주평화실천연대 정원 큰스님, 세월호 1000일 집회 직후 분신, 서울대병원 중환자실, 의식불명

▲ 세월호 1000일 집회에 참석한 정원 큰스님(비구)이 세월호 천막앞에서 초를 들고 있다.

7일 22시30분경 세월호 1000일 집회가 끝난 직후 분신을 시도한 정원 큰스님(비구)이 8일 11시 현재 서울대학교 병원 중환자실에서 온몸 70% 이상의 3도 화상으로 인한 의식불명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위중한 상태로 볼때 화상 전문병원으로의 이송조차 불가능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자주평화통일 실천연대 불교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정원 큰스님(비구)은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 규탄과 부정선거 내란범 처벌,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 및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사드 배치 반대 등과 박근혜의 즉각 구속 및 처벌을 외치면서 광화문 광장에서 온 몸에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장에서 경찰은 정원 큰스님(비구)의 휴대전화와 태블릿pc를 수거하였으나 보안상 및 수사상의 조치라며 돌려주지 않아 응급 상황임에도 가족과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했다.

▲ 박교일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 상임대표가 서울대병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경찰은 현장에서 이미 정원 큰스님(비구)의 신원을 파악했고, 그의 거주지에 경찰을 파견하여 거주여부까지 확인해 놓고도, 처음 가족들에게 '휴대폰이 없었다'고 답했다”라며 점유한 휴대전화와 태블릿 pc를 가족들에게 돌려주고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또한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아 응급상황에서 가족과의 연락을 방해한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며 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했다.

한편, 정원 스님은 "벗들이여 그동안 행복했소. 고마웠소. 고마운 마음 개별적으로 하지 못하오. 메세지 다 지웠고, 이 글 올리는 즉시 초기화 할것이오. 사랑하오. 민중이 승리하는, 촛불이 기필코 승리하기를 바라오. 박근혜와 그 일당들을 반드시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정의가 바로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촛불은 가슴에서 불붙여 활활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안녕. 부디 승리하여 행복해지기를..."이라는 마지막 메세지를 남긴 것으로 확인 됐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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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사의 청와대 비밀회동과 조선의 전략핵압박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1/09 10:55
  • 수정일
    2017/01/09 10: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 223> 밀사의 청와대 비밀회동과 조선의 전략핵압박
 
 
 
한호석 통일학연구소장 
기사입력: 2017/01/09 [09:26]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6월 이후 갑자기 강도가 높아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
2.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에 나타난 밀사
3.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꾸는 전환계기
4. 전술핵압박을 전략핵압박으로 전환시킨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
5.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6. 조선의 대미전략은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 <사진 1> 이 사진은 2017년 1월 1일 0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여사와 당, 국가, 군대의 핵심지도성원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경의를 표시하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고위지휘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경의를 표시하였던 예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조선의 최고영도자와 핵심지도성원들은 1993년부터 23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이 끝나게 될 2017년을 그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맞은 것으로 해석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6월 이후 갑자기 강도가 높아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

 

대북발언의 강도를 비교할 때,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은 이전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발언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격해졌다. 지난 몇 달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공격적이며 극렬한 대북발언을 연신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을 보도한 언론기사들을 분석하면, 한 가지 변화양상이 돋보인다. 원래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은 취임 직후부터 험하게 들려오기는 했지만, 특히 2016년 6월 이후 대북발언강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발언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립이니 자멸이니 응징이니 하는 매우 자극적인 말까지 사용하여 공격성과 과격성을 드러내었다. 2016년 6월 1일부터 이 글을 탈고한 10월  16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6월 6일 - 북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고집할수록 고립과 자멸에 빠질 것이라는 발언 
6월 13일 - 비핵화 없는 북의 대화제의는 기만일 뿐이라는 발언  
7월 11일 북의 도발위협을 방치하는 것은 수많은 인명피해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는 발언
8월 15일 - 북의 간부들과 주민들에게 행복을 추구할 새로운 기회를 안겨주겠다는 발언  
8월 23일 - 북측 체제가 균열조짐을 보이며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발언 
8월 24일 - 북의 무력도발이 임박하였다는 발언 
9월 6일 - 북의 무력도발은 북의 자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발언 
9월 12일 - 북이 핵개발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발언 
10월 1일 - 공포정치와 인권유린으로 고통 받는 북의 주민들이 탈북하여 남으로 오기 바란다는 발언 
10월 11일 - 폭정에 신음하는 북에서 대량탈북이 있을 것을 예상해 대량탈북을 수용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발언 
10월 13일 - 북의 가혹한 공포정치가 북측 주민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으니, 탈북하여 남으로 오기 바란다는 발언 
10월 16일 - 북에서 사회지도층 탈북이 증가하는 것은 폭압적인 공포정치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발언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이 지난 6월 이후 더욱 공격적이고 극렬하게 바뀐 원인은 무엇일까?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비공개로 서울을 방문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얼핏 봐서는 서로 무관하게 그 두 현상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인과관계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2016년 5월 4일부터 1박2일 비공개로 서울을 방문하고 워싱턴 디씨로 돌아갔다.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1,750명 요원들이 근무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을 이끌면서, 16개에 이르는 각종 국가정보기관들의 수장으로서 국가정보사업 전반을 감독, 지휘하며, 국가안보문제에 관한 극비정보를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매일 직보하는 고위직이다.


그런 고위직에 있는 ‘거물’이 왜 갑자기 서울에 나타난 것일까? 그는 서울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협의한 것일까? 이 흥미진진한 물음에 해답의 실마리를 준 것은,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부와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부에 각각 실린 보도기사들이다. 그 두 보도기사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2.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에 나타난 밀사
 
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 나타난 클래퍼 국장은 한민구 국방장관, 빈센트 브룩스(Vincent K. Brooks) 주한미국군사령관, 청와대 고위당국자, 국가정보원 고위당국자를 줄줄이 만났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만나지 않은 것일까?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 보도기사에서 한국 정부 “핵심소식통”은 클래퍼 국장이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느냐고 묻는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자, 그 문제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잡아뗐다. 만일 클래퍼 국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다”고 명백히 답변하면 되는데, “확인해줄 수 없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꺼내놓은 것은, 그 두 사람의 비밀회동사실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 <사진 2>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 국가, 군대의 핵심지도성원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경의를 표시한 때로부터 12시간 뒤인 2017년 1월 1일 정오에 신년사를 발표하였다.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었을 때, 조선은 격정으로 들끓었고, 세계는 시선을 집중하였다. 신년사 중에서 특히 국제사회가 주목한 것은,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클래퍼 국장의 이전 서울방문사례를 들춰보면, 그는 2011년 5월 30일 서울방문 중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났고, 2014년 5월 13일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드러난다.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 회동사례를 보면, 그가 2016년 5월 4일 서울방문 중에도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클래퍼 국장이 2011년 5월과 2014년 5월에 각각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그가 한국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당시 체류일정도 2박3일로 잡혔었는데, 2016년 5월 그가 서울을 세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한국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며 체류일정도 1박2일로 짧아졌다. 이것은 2016년 5월 세 번째 서울방문이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 서울방문과 달리, 뭔가 급하고, 더 중대한 임무를 갖고 방문한 것이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2016년 5월 4일 클래퍼 국장을 서울에 보낸 사람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다. 국가정보국장이 대통령의 지시나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나라를 비공개로 방문해서 그 나라 수뇌를 만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6년 5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은 클래퍼 국장을 서울에 급파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중대한 문제를 협의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백악관이 다른 나라에 대통령 특사(presidential envoy)를 파견하게 되면, 일정한 외교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준비시간이 요구된다. 하지만 매우 중대한 국가안보문제가 불거져 시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외교절차를 생략하고 밀사(secret emissary)에게 특명을 주어 급히 파견하는 관례가 있다. 그런 특별관례를 생각하면, 2016년 5월 4일 서울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비밀리에 만난 클래퍼 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급파된 밀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 밀사와 한국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음을 말해준다.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 보도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외교안보부문 고위당국자”가 전한 말을 인용한 그 보도기사에는 “클래퍼 국장과의 대화 내용 중에는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과 관련한 논의를 할 경우 한국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문의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인용문은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에서 조미평화협정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준다. 만일 그 충격적인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면, 청와대는 자기에게 몰아친 일파만파를 수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밀사를 보냈는지, 그리고 왜 과거사례들과 달리 청와대 비밀회동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는지, 이제야 분명해진다.


“한미동맹은 영원무궁하다”고 외치는 미국의 선전을 티끌만한 의심도 없이 믿어온 열렬한 동맹예찬론자이며, 주한미국군과 핵우산이 한국과 자신을 지켜준다는 미국의 선전을 신봉하는 정통파 친미주의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밀사가 자신에게 느닷없이 조미평화협정문제를 꺼내놓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꽤 컸을 것이다. 조미평화협정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는 지름길이고,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의 폭발뇌관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어찌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아니 그로서는 종내 생각하기 싫은 조미평화협정문제가 미국 대통령 밀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충격적인 장면은, 비밀회동 직후인 2016년 6월 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공격적이고, 극렬한 대북발언을 계속 쏟아내고 있는 원인을 밝혀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대북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클래퍼 국장과 만난 비밀회동에서 받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심리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꾸는 전환계기

 

지난 40여 년 동안 조선은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제의를 수없이 보냈으나, 미국은 성의 있는 답변을 보내기는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되레 각종 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실전급 대북공격연습으로 대답하였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밀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그처럼 오만방자한 미국이 이제는 자기 입으로 조미평화협정문제를 거론할 만큼 태도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미국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그 만큼이라도 바뀐 것일까? ‘세계의 지배자’로 자처하는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꿔놓을 극적인 전환계기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적국이 힘을 집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확 떠밀어버릴 때, 바로 그럴 때 파멸공포에 전율하는 ‘거대한 공룡’은 황망히 꼬리를 내리며 적국에게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날강도 미제와는 반드시 피의 결산을 보아야 한다”며 적개심과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조선이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핵타격력을 갖춘 여세를 몰아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어 백악관을 파멸공포로 전율하게 만들었을 때, 바로 그럴 때 미국은 이제껏 40여 년 동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평화협정문제를 황망히 꺼내들며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 <사진 3> 이 사진은 2016년 3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병기화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화성-14 곁을 지나는 장면이다. 조선은 2016년 상반기에 네 차례 성능시험을 통해 화성-14의 성능을 질적으로 향상시켰고, 지금은 시험발사를 앞두고 있다. 성능이 질적으로 향상된 화성-14의 사거리는 11,000km이고, 뭉툭하게 생긴 탄두부에는 각개발사식 재진입체 5-6개가 들어가는데, 재진입체 1개마다 열핵탄두 1발씩 들어간다. 만일 화성-14가 4발만 떨어지면, 미국 본토 전역은 완전히 초토화되어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주목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 밀사가 조미평화협정이라는 사상 최대의 안보문제를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 앞에 나타나기 11일 전인 2016년 4월 23일 조선에서 일어난 사변이다. 그 날 조선은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초강력한 핵타격수단의 위력을 세상에 보여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전략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수중발사하는 시험에 성공한 것이었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극성’ 수중발사시험을 지도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제는 남조선괴뢰들과 미제의 뒤통수에 아무 때나 마음먹은 대로 멸적의 비수를 꽂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시뻘건 불줄기를 내뿜으며 동해 바다 속에서 솟구쳐 올라 포물선 비행운을 하늘가에 수놓으며 날아간 ‘북극성’이 예리한 비수가 되어 자기 뒤통수에 꽂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 미국은 지난 40여 년 동안 입 밖에 전혀 꺼내지 않던 조미평화협정문제를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비밀회동에서 꺼내놓았던 것이다.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 나타난 클래퍼 국장은 청와대로 가기 전 국방부에 들러 한민구 국방장관과 담화하면서 “북한이 지난달 23일 함경남도 신포 앞바다에서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북극성, KN-11)의 위협능력과 개발실태도 공동평가”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대통령 밀사를 청와대에 급파한 미국의 관심이 조선의 ‘북극성’ 수중시험발사에 온통 집중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청와대 비밀회동을 거론하면서 그냥 스쳐갈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평화협정을 먼저 간청하는 게 아니라, 조선이 미국에게 그 문제를 제의해오면 그에 응하겠다는 단서가 미국의 손에 들려있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 보도기사에서 한국의 외교안보부문 당국자는 “중국이 평화협정 논의의 필요성을 워낙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데다 북한도 당대회 이후 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클래퍼 국장이 평화협정을 거론한 것은 그런 국면에 대비하는 차원 같다”고 말했는데,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미국은 청와대 비밀회동이 있은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6년 5월 6일부터 나흘 동안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공식 제의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 제의에 응답할 긴급준비가 요구되었기에 대통령 밀사를 청와대에 급파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사진 4> 이 사진에 보이는 것은 미국의 피스키퍼 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부에 들어가는 각개발사식 재진입체 W87이다. 열핵탄두 6개가 들어간다. 화성-14 탄두부에도 그런 각개발사식 재진입체가 들어간다. 타격목표를 향해 비행하는 화성-14 탄두부에서 각개발사식 재진입체들이 분리, 사출되면, 그 재진입체들은 위성항법으로 유도되는 극초음속 하강비행을 계속하면서 제각기 지정된 타격목표들을 향해 각개돌진하여 동시다발로 타격하게 된다. 이것은 화성-14가 전 세계에 현존하는 모든 미사일방어체계를 뚫고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미국의 그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국의 섣부른 예측과 달리,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미국은 핵강국의 전렬에 들어선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여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군대와 전쟁장비들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4. 전술핵압박을 전략핵압박으로 전환시킨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

 

과거에는 조선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수없이 제의했으나 요즈음에는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는 까닭은,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이 대미핵협상을 영구히 중지하고 대미핵압박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지난날 조미핵협상이 진행되던 시기에, 미국이 억지와 전횡을 부려 협상이 중단되면 조선은 핵시험이나 탄도미사일발사연습을 단행하는 핵압박으로 미국을 몰아세워 핵협상을 재개시키곤 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핵무장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던 지난날 조선의 대미핵압박은 전술핵압박이었다. 조선의 전술핵압박은 미국의 억지와 전횡으로 중단된 핵협상을 다시 재개시키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오늘 조선은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전략적 핵공격력을 가졌으므로, 조선의 대미핵압박은 전술핵압박에서 전략핵압박으로 전환되었다. 조선의 전략핵압박은 미국의 억지와 전횡으로 중단된 핵협상으로 미국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조선의 강력한 핵압박으로 벼랑끝에 떠밀린 미국이 벼랑에서 떨어져 파멸하든지 하는 최후의 양자택일로 미국을 끌어가는 것이다.


2016년에 조선의 대미관계에서 발생한 여러 현상들은 조선이 전략핵압박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이며 미국을 최후의 양자택일로 끌어가고 있으며, 조선의 연속적인 전략핵압박을 받는 미국은 양자택일의 아슬아슬한 벼랑끝으로 떠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정치사를 새로 쓰게 만들 사회주의핵강국과 제국주의핵강국의 숨 막히는 마지막 대결이 바야흐로 우리 눈앞에서 왕왕 벌어지는 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올해 2016년에 들어와서 조선은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미는 전략핵압박강도를 높이기 위해 핵무기병기화 완성단계를 하나씩 세상에 공개해오고 있으며, 벼랑끝에 떠밀린 미국은 전략폭격기, 전략잠수함, 항모타격단 같은 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출동시키고,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인권공세, 악선전, 정보유입 등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조선의 전략핵압박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핵무장 완성으로 조미관계의 전략균형이 깨져버린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그런 군사적 움직임은 벼랑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모질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17년 1월 1일 0시를 몇 초 앞두고 트럼프 당선인과 그 가족이 플로리다주 팜비취에 있는 그의 호화휴양소 마러라고에서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뉴스>를 통해 새해 첫 시각을 알리는 생방송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웃고 있지만, 만일 조선이 화성-14 시험발사를 단행하면, 갓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가 버티기에는 너무 무거운 압박으로, 너무 혹심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지난날 조선의 전술핵압박은 핵협상궤도에서 이탈한 미국을 다시 끌어들기를 반복하면서 무려 10년 이상 지루하게 이어졌지만, 조선이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밀어버리고 있는 오늘 사회주의핵강국과 제국주의핵강국의 마지막 대결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날 것이다. 그 마지막 대결은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조선의 최후결전으로 미국이 파멸하든지 둘 중의 하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다.


예견하건대,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지 않으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게 될 것이고,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여 조선에게 덤벼들면 조선은 최후결전으로 미국을 파멸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16년 5월 4일 청와대의 문을 열고 들어선 미국 대통령 밀사의 입에서 조미평화협정문제가 나온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핵강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못한 ‘겁쟁이’ 미국의 초라한 경력에 따르면,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5.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면, 조선은 그 간청을 받아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미평화협정은 급속히 체결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과 미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밀고 당기는 장기적인 평화회담을 진행할 처지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조미평화회담이 지난날 진행되었던 조미핵협상처럼 장기화되면, 안보위험에 빠진 한국이 자기의 생존방도로 핵무기개발을 택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선과 미국에게 모두 매우 불리한 정세가 조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과 미국은 평화회담을 신속하게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조선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미국은 한국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미평화협정이 주한미국군 철수와 핵우산 철거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고 핵우산을 철거하지 않으면서 평화협정을 체결할 길은 없다. 조선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목적은 미국이 아무 때나 휴지조각처럼 내던질 수 있는 평화협정문이나 받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켜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고 핵우산을 철거시켜 평화통일을 실현할 결정적인 정세변화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는 날은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최후의 날이 될 것으로 예견된다. 다시 말해서, 조미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과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의 대격변 속에서 벌어질 두 갈래의 사변들인 것이다. 


위와 같은 전망과 예측에 따르면, 2016년 5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이 밀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기 전에 백악관 내부에서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기하는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된 것으로 추론된다. 이런 추론은 미국이 한국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온 동맹예찬론자들과 친미주의자들의 믿음이 몽매하고 허망한 환상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급격한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태도를 갑작스럽게 180도 바꿔버린 충격적인 경험은 세계정치사에서 흔하다.


최근 한국의 일부 언론매체들이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분석기사를 내보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문화일보> 2016년 9월 21일부에 실린, “미, 한국 떠나지 않는 생각은 착각, 중과 수교하면서 대만 ‘헌신짝’처럼 버려”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 시선이 멎는다. 그 기사에서 한국의 어느 국제정치학자는 “우리 국민 중 상당수가 한미동맹은 아무런 문제없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우리는 미국이 지켜주기에 별 걱정할 것 없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에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은 결코 한국에서 떠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지적하였다.

▲ <사진 6> 이 사진은 2017년 1월 2일 오후 6시 5분 트럼프 당선인이 트위터에 올려놓은 글이다. 이 짤막한 글은 또 한 차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 트위터 문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신년사에서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힌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예고하였는데, 트럼프 당선인은 트위터에서 그런 시험발사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런 단정적인 표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또한 그 기사에서는 지난날 미국과 대만의 관계변화를 거론하면서 “미국은 1972년(1979년을 착오함-옮긴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우방국인 대만을 버렸고, 대만은 유엔회원국 지위에서도 헌신짝처럼 내던져졌다”는 경험을 상기시키고, 미국이 대만을 포기한 것처럼 한국도 포기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였다.


하지만 그 보도기사를 쓴 기자는 미국-대만관계의 심층정보를 알지 못한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은 대만을 포기하는 척하였으면서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지배권 안에 붙들어두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중국이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지 못했고, 되레 미국의 계략에 끌려 다니며 수교회담을 오랫동안 지루하게 진행하였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날 중국, 미국, 대만 3자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는 오늘 조선, 미국, 한국 3자관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예측할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6. 조선의 대미전략은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1954년 12월 2일 미국은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고, 1955년 3월 3일 그 조약을 발효시켰다. 그로써 대만은 미국에게 안보를 내맡기고 미국의 지배를 받는 미국의 반공거점, 군사기지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그런 미국-대만관계가 언제까지나 원상대로 유지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 미국, 대만 3자관계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계기는 중미관계정상화였다. 1971년 7월 9일 당시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가 대통령 밀사로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하였는데, 그로부터 6일 뒤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son) 당시 미국 대통령은 중국 정부의 방중초청을 수락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로써 중국과 미국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중미수교회담이 시작된 배경과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은 핵무기와 위성운반로켓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자기의 전략적 지위를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이를테면, 중국은 1964년 10월 16일 자기의 첫 핵시험을 진행하였고, 1966년 10월 27일에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으며, 1967년 6월 17일에는 수소탄시험을 진행하였다. 중국은 핵무장에 성공한 이후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핵시험을 45차례나 진행하면서 자기의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강화, 발전시켰다.


그것만이 아니라, 중국은 1970년 4월 24일 자기의 첫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고, 1971년 3월 3일 두 번째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다.


중국이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면서 중미관계의 전략균형은 깨져나갔는데, 그런 근본적인 정세변화가 시작되자 미국은 중국과 적대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1971년에 미국이 중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둘째, 196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소련을 사회제국주의라고 헐뜯으며 타도대상으로 규정하였고, 미제국주의보다 사회제국주의가 더 위험한 존재라고 하면서 새로운 대소전략을 추진하였다. 그것은 중국이 소련을 고립시키기 위해 소련의 적국인 미국과 손을 잡는 전략이었다. 1971년에 중국이 미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중국이 핵보유국, 인공위성발사국의 전략적 지위에 올라서자 유엔에서 중국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이를테면,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는 “중국 대표를 유엔의 유일한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하면서, “장제스(蔣介石)의 대표들이 유엔에서 불법적으로 차지하였던 자리에서 그들을 축출”한다고 규정한 유엔총회 결의안 2758호를 채택하였다. 그로써 유엔은 대만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을 박탈하고 그 자리에 중국을 영입한 것은 물론이고, 대만의 유엔회원국 자격도 박탈하고 유엔 밖으로 완전히 축출해버렸다. 이것은 중화민국이라고 참칭해온 대만이 하루아침에 국가지위를 잃어버리고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었음을 말해준다.

▲ <사진 7> 이 사진은 2017년 1월 4일 션 스펜서 백악관 대변인 내정자가 시카고대학 정치연구소가 주최한 간담회에 발언자로 출연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사진에서 가운데 있는 사람이 션 스펜서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즉흥적으로 트위터를 한다는 생각은 오해라고 지적하면서, "복잡한 문제를 처리할 때, 그는 매우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스펜서의 평가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의 트위터 정치활동에는 그의 전략적 사고가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대만은 그런 최악의 안보위험 속에서도 붕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미국은 중국과 수교회담을 진행하면서도 대만과 단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대만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여전히 유지하였고, 대만방위사령부(Taiwan Defense Command)를 대만에 여전히 존치시키면서 대만을 미해군 제7함대 작전구역에 포함시켜놓았으며, 대만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공약을 재확인하였고, 미국산 무기수출과 군사교류를 통해 대만군을 강화시켰고, 대만과 무역 및 투자를 지속하였다.  


그런데 대만에게 또 한 차례 치명적인 안보위험이 닥쳐왔다. 그것은 1979년 1월 1일 중국과 수교한 미국이 대만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종지(terminate)하겠다고 대만에게 통고한 것이다. 그에 따라 1979년 4월 28일 미국은 대만방위사령부를 해체하고, 대만에 주둔하던 미국군 병력을 전원 철수하였다.


그러나 대만은 그런 최악의 안보위험 속에 두 번째로 빠졌는데도 붕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대만방위사령부를 해체하고, 대만에 주둔하던 미국군 병력을 철수하기 18일 전에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을 대체할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을 채택하였다. 대만관계법에서 미국은 만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경우 미국은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무력개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았다.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이 종지된 이후 미국군이 대만에 주둔할 수 없고, 미국군이 대만군과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할 수도 없지만, 미국군은 여전히 대만군과 고위급 군사회담을 계속 진행하였고, 대만군 고위지휘관들을 미국에 불러와 군사교육을 계속하였으며, 미국산 무기들을 해외수출경로를 통해 대만군에게 끊임없이 제공하였다. 이런 사정은, 미국이 중미수교 이후 대만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한 중국의 대미전략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음을 말해준다.


미국은 대만을 자기 지배권 안에 계속 붙들어두기 위해 중국과 대만을 각각 상대하는 노회한 책략을 펼쳤던 반면, 중국은 미국의 책략을 저지, 파탄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대만을 귀속시키는 통일위업을 성취하지 못하였다. 중미수교로 대만을 미국의 지배권에서 분리시켜 자기에게 귀속시키려던 중국은 아메리카제국의 음험한 본성을 간과하였기에 전략핵압박으로 그 제국을 강박하지 못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오늘 조선의 대미전략이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1970년대 초 중국은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의 지위에 올라 중미관계의 전략균형을 깨뜨렸으면서도 전략핵압박을 가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밀어버리지 못한 채 미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그 수교회담이 장기화되었고, 그런 틈에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오늘 조선의 태도는 전혀 다르다. ‘동방의 핵강국’, 위성발사국의 전략적 지위에 오른 조선은 조미관계의 전략균형을 깨뜨리고, 전략핵압박을 단계적으로 가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어버리고 있으며,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미국이 조선의 최후결전으로 파멸하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최후의 양자택일을 강박하는 것이다.


지금 조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제의 뒤통수를 아무 때나 마음먹은 대로 찔러버릴 멸적의 비수”라고 표현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꺼내들고 전략핵압박을 단계적으로 가중시키고 있으므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어쩔 수 없이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떠밀려, 평화협정 간청이냐 미국의 멸망이냐를 택해야 하는 참으로 가긍한 신세가 된 것이다.


만일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날에는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그로써 남과 북은 평화통일을 급속히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경우 급속히 실현될 통일씨나리오에 대해서는 2016년 10월 10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격동시대에 생각하는 평화협정, 핵무장, 평화통일’에서 논한 바 있다.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지금 조선은 중국도 손대지 못한 사상 최대의 경국대업,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을 굴복시킬 사상 최대의 경국대업을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오직 자력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구는 중국에 비해 55분의 1밖에 되지 않고, 영토는 중국에 비해 8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조선이 왜 스스로를 ‘천하제일강국’이라 하는지 이해할 만하다.  

 

▲ <사진 8> 이 사진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마이클 플린이 2016년 11월 18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타워에서 걸어가는 장면이다. 플린은 2016년 11월 하순 백악관 국가안보부문 관리들로부터 조선의 핵무기프로그램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지만, 그 설명에 나오지 않은 극비정보를 더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조언하여, 국가정보기관 고위관리로부터 직접 조선의 핵무기프로그램에 관한 특별기밀정보를 듣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9> 이 사진은 2016년 12월 21일 플로리다주 팜비취에 있는 마러라고 휴양소 안으로 들어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맨 앞에 있는 사람이 트럼프 당선인이고, 가운데 보이는 사람이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사람이 레인스 프리버스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이다. 그 날 저 호화로운 휴양소에서 만난 이 세 사람은 국가정보기관 고위관리로부터 들었던 조선의 핵무기프로그램에 관한 특별기밀정보에 관한 대책을 숙의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10> 이 사진은 2016년 3월 15일 키 리졸브 조선침공전쟁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한반도 해상작전구역으로 출동한 미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가 함재기들을 잔뜩 싣고 부산해군작전기지 부두에 접안하는 장면이다. 만일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키 리졸브' 전쟁연습준비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조선은 이미 예고한 대로 화성-14 시험발사를 단행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선과 미국이 무력격돌을 벌이는 미증유의 대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키 리졸브' 전쟁연습준비를 중단시키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갓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에게 죽음의 선택으로 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11> 이 사진은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여 마오쩌둥 당시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는 장면이다. 닉슨 대통령은 마오 국가주석을 만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할 때, 윌리엄 로저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가지 않고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과 키신저의 특별보좌관 윈스턴 로드만 대동하였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을 자신의 밀사로 베이징에 급파하여 미중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것처럼, 며칠 뒤 공식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을 자신의 밀사로 평양에 급파하여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조미핵대결 최종국면에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에게는 이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12> 1993년부터 23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은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막강한 핵공격능력이 완성된 올해에 끝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미핵대결 최종국면에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전략전 선택에 직면하였다. 2017년은 23년 간의 조미핵대결을 끝낼 대격변을 향해 도도히 흐르기 시작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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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테러’당할뻔 했던 ‘아찔했던 순간’

 
 
 
‘문재인을 향한 기습 돌진과 차량 방화 암시, 단순 시위가 아닌 테러 행위’
 
임병도 | 2017-01-09 08:32: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북 구미에서 극우단체와 박사모 회원들의 시위와 폭력으로 차량에 갇히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월 8일 문재인 전 대표는 구미시의회에서 지역 기자단과의 간담회가 예정됐습니다. 극우단체와 박사모 회원들은 문 전 대표가 방문하기 1시간 전부터 구미시청 입구에서 태극기와 피켓을 들고 문재인 전 대표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극우단체 회원들과 박사모 회원들은 ‘우리가 뽑은 박근혜 대통령 우리가 지킨다’, ‘구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라’는 내용의 현수막과 함께 ‘종북수괴 물러가라’ ‘문재인은 평양가라’ 등의 문재인 전 대표를 비난하는 피켓을 들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문 전 대표가 간담회를 마치고 구미시청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차량을 에워싸거나 앞에 드러누워 문재인 전 대표가 탄 차를 포위했습니다. 극우단체와 박사모 회원들은 주먹으로 차를 내려치거나 침을 뱉기도 했으며 “빨갱이 밟아 죽여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차 안에 갇혀 있다가 경찰의 도움으로 25분 만에 구미시청을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전에 모의 된 박사모의 조직적인 문재인 시위’

 

▲ 박사모 카페에 올라온 문재인 전 대표 구미시청 방문에 결사항전한다는 글 ⓒ박사모카페 캡처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극우단체의 폭력과 난동은 단순한 시위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이미 문 전 대표가 구미시에 오기 전부터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박사모 카페에는 1월 8일 오전 10시쯤 ‘오늘 구미시청에 문재인이 온다고 해서 결사항전 할 겁니다’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장본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이가 구미시청을 방문한다’라며 ‘우리는 막아야 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다른 박사모 회원은 ‘문재인 간첩의 구미시청방문을 저지해 주십시오’라며 문 전 대표의 구미시 방문을 막아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구미시 방문을 막아 달라는 글에는 ‘몽둥이로 개 패듯이 때려잡으세요’,’빨갱이 개새끼들은 몽둥이가 약이죠’라는 험악하고 폭력적인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문재인을 향한 기습 돌진과 차량 방화 암시, 단순 시위가 아닌 테러 행위’

 

▲문재인 전 대표의 차량을 방화했어야 하는데 아쉽다는 트위터의 글과 문 전 대표를 향해 기습 돌진을 시도하다 저지 당하는 모습 ⓒ트위터 캡처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극우단체의 시위를 단순 시위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트위터에서는 차량 화재 사진과 함께 ‘이렇게 태웠어야 합니다.’라며 ‘하늘이 준 기회였는데 아쉽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단순히 글에서만 차량 방화를 암시한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극우단체 회원이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기습적으로 돌진하려다가 사복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는 글과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구미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는 순간에도, 밖에서는 극우단체 회원이 ‘문재인 나랑 1:1 맞장 뜨자’라는 폭력적인 극언이 이어졌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간담회를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려는 과정에도 문 전 대표를 향해 욕설과 폭력을 가하려는 행동이 이어졌고, 일부는 쓰레기가 섞인 흙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단체 회원들이 비상식적이고 폭력적 집단 행위를 했다”라며 “그들이 보여준 범죄 행위에 대해 사법당국은 철저히 수사하고 응분의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라며 당국의 수사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에서 돌아다니는 ‘문재인 떨어뜨리는 방법’

 

▲박사모 카페에 올라온 문재인 떨어뜨리는 방법 ⓒ박사모 캡처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폭력적인 행동 이전에도 온라인에서의 조직적인 악플과 유언비어 유포 등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일베와 박사모에는 ‘문재인을 떨어뜨리는 방법’이라며 ‘문재인 지지자인 것처럼 북한 대놓고 옹호하기’,’다른 민주당 후보들이랑 싸움 붙이기’,’문재인이랑 상관없는 주제랑 연관시키기’ 등 지능적이면서 악의적인 수법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금괴를 보유하고 있다거나 엘시티에 연루됐다는 유언비어도 계속 유포되고 있습니다. 문 전 대표가 금괴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현실성 없는 거짓에 불과하고, 엘시티 관련자들도 대부분 새누리당이었습니다. 당시 문 전 대표와 민주당 사람들은 엘시티 이영복 회장이 로비할 위치도 능력도 되지 않았었습니다. (관련기사:문재인 금괴 보유량이 한국 전체보다 많은 1000톤?)

대선주자 1위로 손꼽히는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극우세력의 불법적인 행동과 조직적인 악성 유언비어 유포는 계속될 것입니다. 문제는 극우세력이 하는 불법적인 행동들이 처벌받지 않는 비정상적인 모습에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경호 강화와 함께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흑색 선전 등에는 단호히 법적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233 

▲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8일 오후 구미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떠나려 하자 보수단체 회원들이 문 전 대표의 차를 막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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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떡, x새끼... 욕 나오지만, 성난 민중이 이깁니다"

 
[촛불에게 길을 묻다] 이철수 목판화가

17.01.09 07:02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정대희쪽지보내기

▲ 매일아침 '나뭇잎편지'를 배달하는 이철수 목판화가. 그의 작품은 통찰적 언어와 선적인 그림이 특징이다. ⓒ 정대희

"욕을 입에 달고 삽니다."

첫 마디부터 뜻밖이었다. 통찰적 언어와 선적인 그림, 이철수 판화 속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농촌에서 퍼 올린 고즈넉한 삶의 모습과 경구 같은 시적 표현을 판화에 담아왔기에 더욱 그랬다. 나무판 앞에서 탐욕을 끊는 칼을 들 때는 경건한 수도자 같기도 했다. 여백을 단 한 줄로 채운 촌철살인 문구는 우리 등짝을 세게 후려치는 선승의 죽비소리였다. 그런 그가...   

목판화가 이철수 씨(63. 제천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만난 건 작년 12월 22일, 10차 촛불집회를 앞둔 때였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2시간 30여 분만에 제천 백운면 평동삼거리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주변 가게에서 음료수라도 사려고 두리번거렸는데, 자동차 창문을 연 그가 활짝 웃었다. 그냥 타란다.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데, 도착 시간에 맞춰 마중 나왔다.     

이철수의 '욕'
 
▲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에 대한 목판답시 ⓒ 이철수

"여보! 우리 왔어요."

이철수씨가 마당에서 큰소리로 소식을 알리자 주방에서 부인 이여경씨가 "우리, 좀 이따가 봐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기분 좋은 만남, 두 분과의 인연은 항상 이랬다. 1천여 평 논 앞에 선 그의 집 낮은 담장을 보고 걸을 때부터 작은 설렘과 평화가 찾아왔다. '이철수, 이여경이 사는 집'이라는 문패를 지나면 사뭇 농부 예술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는 작업대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칼을 들고 나무를 팠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무슨 작품이냐고 물으니 "오래전에 스케치했는데,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에 대한 답시 성격"이란다. 나무판에 거꾸로 새긴 글씨가 익숙하지 않아 낭송을 부탁했다. 

"누가 부르는지/누가 길을 일러주는지/담쟁이 어린잎이/앞서 걷는다/제일 작은 잎이/늘 앞에 선다/앞서 걷다/뒤서게 되는 날 /뒤 선 거기서 조용히/제 잎을 키워/크고 짙은/푸르름이 된다/어느 바람 부는 날/앞서 걷는 담쟁이들/어서 가라고/서둘러 가라고/손 흔든다/어린잎들 앞서가는/벽에서"

'담쟁이 어린잎이 앞서 걷는다'라는 문구가 그의 최근 심정을 대변하는듯하다. 담배를 피워 문 그에게 '요즘 마음자리가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너무 화가 치밀었어요. 경제가 어렵다고 모두 애를 태우는데, 저 짓을 하느라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60년 넘게 살면서 갈고 닦은 인문학적, 미학적 감수성을 총동원해 보면 욕이 합당합니다. 여전히 마음의 평화를 구하지만, 분노가 일지 않을 수 없어요. 존재에 대한 이해나 통찰도 필요하지만 싸울 때, 분노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성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000만 촛불이 광장을 밝히는 지금이 분노하고 싸워야 할 때라는 뜻이다. 그는 최근 작업 노트에 구체적으로 분노한 흔적도 남겼다. "제가 할 수 있는 현란한 욕을 적기 시작했다"면서 작품 밑그림을 보여줬다. 

"개떡, X발, X새끼..."

꼭두각시와 악마들... 그리고 뒷산 무덤
 
▲ 장탄식을 금할 수... ⓒ 이철수

그의 말처럼 현란하지 않아 실망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대하는 불편한 마음자리가 보였다. 그가 매일같이 이메일로 보내는 '나뭇잎 편지'에도 요즘 거친 형용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추악한, 사악한, 뻔뻔한, 비굴한, 교활한...'   

"과거 독재와 단순 비교하기도 어려운 정권입니다. 정신병자 집단에 가까운 기형 권력이죠. 마약 중독자라고 거칠게 퍼붓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흔치 않은 권력자를 보고 있어요. 이에 기생해 온 하수인 방조자들의 권력 속성도 보았습니다. 꼭두각시를 앉혀놓고 주인 없는 집안처럼 마구 주워 먹었습니다. 악마들이죠."

분노의 크기만큼, 촛불을 든 시민들에 대한 경외심도 컸다. 그에게 새해 신년 인터뷰에서 독자들에게 해주실 덕담을 부탁하니, 손사래부터 쳤다. 

"아호를 뒷산 무덤으로 바꿀까 해요. 하는 일 없이 엎드려있는 사람입니다. 촛불을 보면서 이제 저의 사회적 역할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어요. 길을 너무 잘 찾고 있어요. 특히 대안 언론과 청년세대의 약진이 놀랍습니다. 이렇게 성장하리라고 짐작도 못 했습니다. 87년 민주화운동 때보다 국민적 분노가 크고, 지혜로워졌습니다. 

무당 같은 어쭙잖은 여성에 농락당한 대통령, 우리가 위임한 권력의 부도덕성과 무능력에 대한 표피적 분노를 넘어 사회 권력 구조라든지, 그 아래 기생하는 권력의 존재방식까지 두루 인식하고 있어요. 이미 미래의 과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87년 군중들과도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군중이 촛불을 들고 있어요. 통찰력 있는 대중을 보게 된 거지요."

박근혜가 밉지 않은 단 한 가지 이유

그가 말한 '다른 차원'은 자기 일상 속에서 성찰하는 촛불에 맞닿아 있다. 

"일상 속에서 갑질을 경험하고 자기가 갑의 자리에 설 때도 있을 겁니다. 권력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일상 속에서 왜 이리 무력했는지, 또는 내가 왜 이렇게 함부로 했는지를 통찰하는 눈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 우리 일상 속의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그 관계를 한꺼번에 통찰하는 계기였고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박근혜를 미워할 필요가 없다면, 그 하나가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그는 작년 12월 16일에 배달한 나뭇잎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시린 주말입니다. 우리들의 촛불군중은 순한 초식동물입니다. 뻔뻔하고 교활한 권력과 하수인들은 파충류·포식자를 닮았습니다. 그래봐야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난 초식의 민심이 이깁니다. 꼭!"
 
▲ 성난 초식의 민심이... ⓒ 이철수

- 촛불 시민을 초식동물에 비유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처음에 촛불 든 시민들을 보면서 이렇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상투적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촛불이 매주 고조되는 것을 보면서 걱정할 게 없다는 생각이 또렷해졌어요. 

민심은 자기의 거대한 잠재력을 알고 있어요. 몸이 대형차급이어서 누구를 작심하고 때리지 않아도, 자칫 살인에 이를 수 있어서 몸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비폭력 촛불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여기까지 이르렀구나 하는 경이로운 생각이 들었어요. 절대로 지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n/1로 사는 초식동물들의 지혜
 
▲ 때 되면 다시 켜 지지요 ⓒ 이철수

매 주말 광장의 촛불을 세던 일부 언론들은 김진태 국회의원이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말한 뒤에 더 조바심을 냈다. 날이 추워지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촛불이 줄어들지 않을까? 매 주말 감격과 걱정의 연속이었다. 작년 12월 10일 전국에서 100만 촛불이 타오른 뒤에도 그랬다. 그는 12일에 보낸 나뭇잎 편지를 이렇게 맺는다.

"촛불 숫자를 세고 계시는지요? 촛불 가꾸고 거두려 들 것 없습니다. 때 되면 다시 켜지지요."

- 왜 그런 말을 새겼나요? 
"선한 초식동물들은 쉬지 않고 풀을 뜯어야 존재를 지킬 수 있는 생명체입니다. 민중의 삶도 그렇습니다. 앞만 보라고, 일만 하라고 하면서 존재를 분열, 파편화시키는 사회에서 그 알량한 주말을 반납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초식동물은 연약하지만 생태적으로 군집할 때를 압니다. 필요하면 모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는 150만분의 1이 되려고 나왔다'는 한 시민의 말에 감동을 받았죠. 이제 잘난 사람도 대중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n분의 1'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혜가 바깥으로 흘러넘치는 시대입니다. 리더를 자처하거나 짐짓 가르치고 이끌겠다는 낡은 사고도 이참에 청산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이어 "지금의 혁명적인 상황을 이끈 것은 지식인이나 운동가가 아니라 다중지성"이라면서 "역사 변화의 순간은 도둑처럼 오기도 하는데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거저먹으려 하거나 운동권의 조급증으로 재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우린 이깁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2002년부터 쓰기 시작한 나뭇잎 편지는 3000여 통에 육박한다. 최근 두 달 어간에 쓴 나뭇잎 편지의 소재는 오롯이 '촛불'이었다. 기승전 '탄핵', 기승전 '하야'였다. 그는 작년 11월 11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촛불로 차고 어두운 밤을 밝히고 시린 마음을 덥히지요.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촛불은 따로 또 함께 시대를 건너는 길동무들입니다."

촛불 개벽
 
▲ 시대를 건너는 길동무들... ⓒ 이철수

- 우린 지금 어떤 시대를 건너는 길동무들인가요? 
"돈만 생각하는 신자유적인 시장경제를 살고 있어요. 나남 없이 고립되어 외로움을 느끼는 시대, 뿔뿔이 흩어져 나 하나를 지키는 데에도 허덕거리며 살도록 강요받는 사회입니다. 또 판에 박힌 고집불통의 언어들이 내면화된 사회입니다. 청문회에 나온 완고한 법률가, 국민을 통치대상으로 보고 그 틀에 사람들을 집어넣으려는 사람들. 대중들은 이들이 던져주는 말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그걸 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이런 세상에서라도 나를 돌아보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경책을 전하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시민들이 이미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시대 한 공동체를 함께 살면서 저 만의 생각도 가꾸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요."

그는 "요즘 한 대선 후보가 혁명이라는 말을 썼다고 쏘아보는 사람들이 있던데, 우리가 버린 언어 중에 개벽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질적으로 변화하면서 시대를 건너고 있는 촛불 혁명을 촛불 개벽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적의 촛불'을 만드는 법
▲ 질기고 집요한... ⓒ 이철수

작년 12월 13일에 쓴 나뭇잎 편지의 주제는 '시민의 연대'였다. 

"검사장의 120억 무죄! 도 개탄스럽고, 삼성을 위시한 재벌가의 2세 승계 과정에서 드러난 편법상속은 상상 이상입니다. 이런 현실, 박근혜만 치운다고 될 문제가 아닌 건 잘 아시지요? 서두를 것 없습니다. 질기고 집요한 시민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 무엇을 위해, 어떻게 연대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2016년 겨울을 밝힌 촛불은 기대 이상으로 경이로웠습니다. 주권자들의 권력이 이렇게 장엄하고 아름답게 존재를 드러낸 적이 있나요? 광우병 촛불이 있었고 그 뒤에 크고 작은 시민 결집을 보아왔는데, 얻어야 할 것 충분히 얻지 못한 채 흘러버렸어요. 허탈했죠. 밑천 없는 삶들 때문입니다. 현실의 변화나 구조적 개혁을 강제할 저력이 부족했던 거지요.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자기 삶의 일상에서 변화를 만드는 지속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를 향하는 손가락질을 나에게도 해야겠죠. 그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살아온 것을 반성하고 고쳐야 합니다. 무적의 촛불을 만드는 근원은 성찰과 반성입니다. 자신을 태우면서 밝히는 촛불의 미덕처럼 말입니다."

그는 "자기 안의 모순을 고치려는 일상적인 노력과 연대가 필요하다"면서 "촛불을 내려놓으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촛불 현장에서 모금통이 오면 돈을 넣듯이 우리들의 변화의 열망을 대신해줄 시민단체 회원이 되어 후원금이라도 내야 하고 바른 언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연대하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 앞에 함부로 군림하고 살던 자들이 우리의 일상으로 우리 곁으로 어김없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촛불은 00이다
 
ⓒ 이철수
 
▲ 촛불은 "우리"입니다. ⓒ 이철수

- 그동안 수많은 촛불을 새겨 나뭇잎 편지에 담아 보내셨습니다. 촛불은 000이다. 한 마디로, 또는 한 개의 그림 형상으로 정리해주실 수 없나요? 
"음... 그런 것은 미리 질문을 줬어야지요. 하-하-하."

그는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는 웃음으로 넘겼다. 대신 다음 날 아침, 8만여 명에게 배달한 나뭇잎 편지로 답했다.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수만 개의 촛불 속에 7개의 붓 자국(깃발)을 남긴 그림과 함께...

"촛불은 우리입니다."      
 
"촛불 드는 심정으로 바른 언론 후원하자"

이철수 판화가가 <오마이뉴스>에 준 두 가지 선물

이철수 목판화가는 "일상에서 촛불 드는 심정으로 시민운동을, 바른 언론을 후원하자"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제천참여연대 공동대표이면서 여러 시민사회환경단체-대안언론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또 오마이뉴스에 매월 1만 원 이상씩 자발적 구독료는 내는 10만인클럽 회원이다.  

그에게 두 가지 부탁을 했다. 10만인클럽의 글씨와 홍보 동영상이다. 그는 즉석에서 동영상을 찍었고, "모눈종이의 한 칸 한 칸을 채워나가듯이 10만인클럽 회원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은 글씨를 써서 이메일로 보내왔다. 
▲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 이철수
 


"우리가 관제언론이라고 표현하잖아요. 권력이 원하는 말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말을 그들의 말을 하도록 하고 싶어 하는 시대죠. 정치권력도 시키고 싶은 말이 있고, 경제권력, 때로는 문화 권력도 우리에게 말을 강요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온전한 말, 바른 언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마이뉴스도 우리 시대의 정론, 올바른 말의 창고 역할을 하고 있는 미디어인데 10만인클럽(매월 1만 원 이상씩 오마이뉴스를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시민들의 모임)을 가득 채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촛불 정국에서도 바른 언론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지 확인했잖아요. 10만인클럽에 회원이 되어주십시오. 저도 회원입니다. 보람 있는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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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친구들 만나면,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 할 수 있길”

“먼저 간 친구들 만나면,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 할 수 있길”

 
등록 :2017-01-07 19:46수정 :2017-01-08 10:08
 
세월호 생존학생들 촛불집회서 첫 공개 발언
“7시간 동안 제대로 보고받고 지시했다면…”
“비난받을까 두려워 숨어있었지만 용기낼 것”
새해 첫 촛불집회 주최쪽 추산 전국 64만명 참여
세월호 1000일을 이틀 앞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집회에서 참사 이후 처음 대중 앞에 나타난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이제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월호 1000일을 이틀 앞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집회에서 참사 이후 처음 대중 앞에 나타난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이제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들이 새해 첫 집회 무대에 올라 지난 1000일을 말했다. 생존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시민들 앞에서 발언을 한 건 참사 이후 처음이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생존학생들은 “우리는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게”라는 말을 남겼다.

 

7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 집회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가라’에서 당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9명(김진태, 김준호, 이종범, 박준혁, 설수빈, 양정원, 박도연, 이인서, 장애진)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 대표로 발언을 한 장애진(20)씨는 “시민 여러분 앞에서 온전히 입장을 말씀드리기까지 3년이 걸렸다”며 “많은 시민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이야기를 열었다.

 

장씨는 “저희는 모두 구조된 것이 아니다. 저희는 저희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한다”며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 구하러 온다고해서 그런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게 됐고 평생 볼 수 없게 됐다. 저희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저희가 잘못한 거라면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저희가 나온 것 죄송하고 죄지은 것 같아 유가족 뵙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상징하는 구명조끼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상징하는 구명조끼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월호 참사가 3년 지난 지금 생존학생들의 상처는 무뎌지지 않았다. 장씨는 “단호히 말씀드릴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괜찮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친구 페이스북엔 잔뜩 글이 올라옵니다.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괜히 전화도 해봅니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싶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밤을 새기도 하고 꿈에 나와달라고 간절히 빌면서 잠이 들기도 합니다”고 말한 뒤 울음을 참지 못했다.

 

생존학생들은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규명에 대해서도 강력히 의지를 보였다. 장씨는 “저희는 대통령 사생활 알고 싶은 게 아니다. 그 7시간 제대로 보고받고 지시했더라면, 가만히 있으란 말 대신 당장 나오라는 말만 해줬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희생자 낳지 않았을 것”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어 “저희는 그동안 당사자이지만 용기 없어서 비난받을까 두려워 숨어있기만했다. 저희도 용기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장씨는 친구들을 향해 말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나중에 친구들 다시 만났을 때 너희 보기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책임자한테 제대로 죗값 물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저희 뜻 함께 해주시는 많은 시민분들 우리 가족들,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조속히 규명되길 바랍니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게. 우리가 나중에 너희들을 만나는 날이 올 때 우리들을 잊지말고 열여덟 그 시절 모습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감사합니다.”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참사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 세월호 생존학생들과 유가족들이 포옹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참사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 세월호 생존학생들과 유가족들이 포옹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발언을 마치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올라와 눈물을 흘리며 생존학생들을 한 명씩 껴안았고, 지켜보던 시민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날 오후 5시45분께 시작된 본집회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추산으로 서울에만 시민 60만명(전국 64만)이 모였다. 경찰은 저녁 7시45분 기준 광화문광장에 2만4천명의 시민이 모였다고 추산했다. 가수 이상은씨는 <어기어디어라>, <언젠가는> 등의 노래로 시민들을 위로했다. 7시35분께 주최 쪽은 아직 검은 바닷 속에 있는 미수습자 9명을 위한 소등 행사를 진행한 뒤 노란 풍선 1000개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이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노래에 맞춰 시민들은 다같이 일어나 율동을 함께하며 추위를 녹이고 청운동과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유가족과 시민들은 단원고 학생들의 단체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을 들고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로 행진했다. 이 행진에는 고 김관홍 잠수사의 어머니, 박원순 서울시장,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이 함께했다. 박원순 시장은 청운동 앞 연단에 올라 “제가 대통령이었다면 세월호 참사 당일 지체 없이 헬리콥터 타고 팽목항에 가 한 명도 남김없이 구조하고 또 성역없이 진상 조사해서 책임자를 처벌했을 것”이라며 “이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상상하는 바”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어 “세월호 인양되고 모든 진실 공개될 때까지 유가족·시민들과 함께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노란색 종이에 ‘3주기를 넘기지 말고 세월호를 인양하라’, ‘거짓 없는 대한민국’ 등의 문구를 적어 청운동에 설치된 차벽과 폴리스라인에 붙이는 활동을 벌였다.

 

박수지 고한솔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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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위독한데” 경찰, ‘분신’ 정원스님 보호자 연락 ‘세월아 네월아’

 

전신에 3도 화상.. ‘골든타임’ 허비한 세월호‧백남기 참사 반복되나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박근혜 즉각 퇴진’ 촛불 집회에 참석한 60대 남성이 7일 밤 10시30분경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분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분신한 60대 남성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사찰의 정원스님(속명 서용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씨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현재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하지만 경찰이 서씨의 소지품을 수거, 현재 돌려주지 않고 있어 8일 새벽 4시 현재까지도 보호자와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측은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서씨에 대한 응급조치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 5시 기준, 서씨는 응급조치 후 중환자실로 옮긴 상태다.

☞ (영상) 긴박한 정원스님 응급실 밤샘 상황

이날 서울대병원에는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만이 소식을 듣고 뒤늦게 달려왔다. 정 전 의원과 취재 중인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현장에 있던 종로경찰서 강력계 형사에게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다’고 항의, 조속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시간을 끄는 듯한 모습마저 보였다.

   
▲ 정원스님 분신 소식에 서울대병원으로 달려온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이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미지=이상호 기자 트위터(@leesanghoC)생중계 화면>

현장의 시민들은 ‘당초 종로서는 정원스님의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가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가 이제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고 전했다.

경찰은 ‘확인할 것이 있다’며 소지품을 돌려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시민들은 ‘경찰이 의도를 가지고 시간을 끌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 종로경찰서 앞에서 시민들이 정원스님 보호자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소지품을 돌려달라며 경찰에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다. <이미지=이상호 기자 트위터(@leesanghoC) 생중계 화면>

정 전 의원과 이상호 기자, 일부 시민들은 종로경찰서까지 동행했다. 정청래 전 의원은 “종로서 정보과 형사는 가족 아니면 소지품을 돌려줄 수가 없는데 같이 활동한 대표의 신원조회 후 소지품을 돌려주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경찰 측은 서씨 소지품에 휴대폰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분신 현장에서 ‘경찰이 정원스님의 휴대폰을 수거해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도 있는 상황이다.

☞ (영상) 정원스님 소지품 주지않는 경찰에 애걸하는 시민들

 

한편, 경찰은 서씨의 소지품 감식 후 결과가 나오는 대로 서씨와 함께 활동한 지인에게 이를 통보해주겠다고 밝힌 상태다. 서울대병원에는 현재 30여명의 시민들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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