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산의 추억...

from 단순한 삶!!! 2007/01/19 15:54

행인님의 [뚝방의 추억(2)] 에 관련된 글.

뚝방의 추억을 그냥 쓰기에는 뚝방에 살지 않아서 그렇고,

칼산의 추억이 어울릴라나..ㅎㅎ

행인이 물 얘기를 썼으니 산오리도 물 생각이나 해 볼까나.

 

처음 서울에 왔을때는 문래동 고모 집에 얹혀 살았는데, 그 집들은 일제시대때 지은

집들이 행과 열을 맞춰서 같은 모양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그긴 당연히 수도도 있었고...



시골에서 식구들이 올라 오고 칼산 아래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당시 기역자로 된  '부로꾸'(블록인 모양인데, 일본애들이 이렇게 불러서 그랬나?) 집이었다.

대지25평에 건평 12평인데, 그당시 70만원을 주고 샀다고 했다.

 

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부로꾸로 담을  쌓고  지붕은 스레트로 덮었다. 처음 갔을때는 집에 물이 없었다. 그래서 한참 아랫동네에 물을 길러 다녔다. 물론 물 길러 가는 것은 버글버글한 애들의 몫이었고, 한바께쓰 물떠서 오면 절반은 흘리고 떠 왔다. 동네에 수도는 물론 없었으니까 길건너 아랫쫏에 물 길러 가는 곳은 펌프였다.

 

얼마간 물을 길어다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엄청 불편했으니까 아버지가 집 안에 펌프를 박기 위해 지하수 구멍을 뚫기로 했다. 먼저 화장실 앞 쪽에 물길이 지나간다고 해서 그길 뚫었는데, 조금만 내려가니까 바위가 버티고 있어서 포기 했다.(그당시에도 기계로 드릴을 걸어서 뚫었는데, 바위는 뚫지 못했는지 금새 포기했다. 요즘 같으면 지하 암반수를 먹을수도 있었을 건데..ㅎ)

다시 작은 방 앞쪽에다 뚫었는데, 그기도 바위가 부닥쳐서 실패.... 마지막으로는 아예 담 바깥의 길에 구멍을 뚤었는데, 여기서 물이 나온 거다.

 

그리고는 파이프를 박고 펌프를 연결했는데, 파이프가 직선으로 바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담밖으로 꺽어졌다가 땅아래로 내려갔으니, 물이 제대로 올라올 리가 없다. 물은 많이 있다는데, 쉽게 눌러서 퍽퍽 올라오지 않고, 아주 힘들게 조금씩 올라왔다. 그래도 그게 어디랴, 시골에서 우물물 두레박으로 퍼 먹다가, 바께쓰로 물 길러 다니다가 담장 안에 펌프가 있는데... 엄청 좋았지..

 

중학생이 되었고, 학교 갔다 오면 양말이고, 옷가지고 손빨래로 잘도 빨아서 입었다. 물론 엄마가 그 많은 애새끼들거 다 빨아주지 못하니까 자기 것은 자기가 빨았다. 겨울이라고 예외가 없었다. 한놈은 펌프질하고, 한놈은 비누칠해서 빨래 문지르고...

 

추운 겨울은 좀 문제였다. 펌프에 남아 있는 물이 얼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또 연탄불에 물 끓여서 한참을 부어 넣고, 이렇게도 시루고, 저렇게도 시루어야 겨우 얼음이 녹아서 물이 올라오곤 했다. 그러다 고무 패킹이 얼어서 찢어지거나 하면 또 며칠간은 옆집으로 물 길러 다니고...

 

늦은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는 그 펌프 옆에서 목욕을 해야 했다. 한여름에 식구들만 있으면 팬티만 입고 그냥 씻어 대면 그만이었고, 여자들은 밤 늦게 식구들을 모두 방으로 몰아 넣고, 방문 닫으라 하고서는 씼었다.  그 더운데 방문 닫고 여자들 목욕할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기다리는게 어려운게 아니라 가끔 놀다가 밖에서 여자들이 목욕한다는 걸 잊고서는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문을 벌컥 열고 나서다가는 '빌어묵을 소상'이란 어머니의 욕설을 두어마디 들어야 했다.

 

그건 괜찮은 편이었는데, 문제는 밤 늦게 들어오는 식구가 있는 날이었다. 늦게 들어오려니 하고, 더워서 견디다 못해 목욕을 하고 있는데, 대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바로 대문안이 펌프가 있는 야외 목욕탕이니 어쩌겠어... 목욕 끝날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수밖에..

 

이쯤되면 펌프 주변을 막대기를 하나 세우든지 해서 천막천이라도 둘러서 샤워라도 하게끔 만들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싶다. 그런데, 그 집 뜯어낼 때까지 그러고 살았던거 같으니까 끝까지 만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천막 쪼가리조차 구하기 어려웠기에 그랬거나, 너무 좁아서 그기까지 울타리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였던게 아닐까 싶다.

 

담에 목욕 이야기나 써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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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9 15:54 2007/01/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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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뚝방의 추억(3)

    Tracked from 2007/01/20 15:35  delete

    산오리님의 [칼산의 추억...] 에 관련된 글. 뚝방을 있게 만든 안양천은 거의 '똥물'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뚝방 아래로 일대가 논밭이었는데, 거기서 사용된 농업용수가 안양천으로 흘러들었

  1. 행인 2007/01/19 19:3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ㅎㅎㅎ 산오리님 이거 추억물로 만들어서 시리즈로 연재한 다음 책 한 권 내세요. 요즘 7080세대를 겨냥한 상품들이 잘 나간다는데, 아마 '그 때를 아십니까' 수준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듯 하네요. 목욕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2. 연하 2007/01/19 21:0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느 추운겨울날 마늘주 먹고 술이 안깨서 다음날 하루종일 들락거렸던 생각납니다.
    근데 펌프는 기억이 가물가물.....

  3. 준혁맘 2007/01/21 16:0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초등학교 때 살던 우리집에도 펌프있었어요.
    근데 여름이면 그 펌프에서 실지렁이 같은 것도 나왔어요.
    아마 지금 같았으면 기겁을 하고 그 물 절대 안 먹었겠죠.
    그래도 그 땐 끓여서 먹었네요. 시원하게 나오는 물에 별로 힘들지 않고 펌프질했던 것 같아요.
    목욕이야 대중목욕탕 이용했고... 목욕하는데 창문에서 몰래 훔쳐 보던 남자랑 눈이 마주쳤던 기억도나고...
    목욕이야기하면 재밌겠다.

  4. 준혁맘 2007/01/21 16: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참... 지금 같았으면 그녀석한테 물 한바가지 부어주고 기어이 잡아서 넘겼을 텐데... 혼자서 얼른 나왔네요. 어릴 때니까.

  5. 산오리 2007/01/22 11:4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행인...벌써 '그때를 아십니까?'를 그리고 있으면 안될거 같은데요. 행인의 글에 생각나는 거 있으면 붙여 보지요..ㅎ
    연하...마저, 마저요...그때 왜 마늘술을 담궈서 맛있다고 퍼마셨나 모르겠네요.ㅎㅎ
    준혁맘...지렁이 나오는 물이면, 요즘에도 살아있는 물이라고 잘 마실듯 한데요..ㅎㅎ

  6. simon 2007/01/23 17:1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는 물긷는 사람 기억은 없고 양쪽의 페인트 통에다 똥을 퍼서 다니시던 아저씨는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