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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만타씨 시신이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1) 2006/12/27
-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 2006/12/24
- 끝내 일어나지 못한 사만타 (1) 2006/12/19
- 별처럼 빛난 이주여성들 (2) 2006/12/17
- 2006 세계이주민의 날 2006/12/11
- 중환자실의 사만타씨 2006/12/07
-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사만타씨 (1) 2006/12/04
- 방글라데시 독립 미디어활동가 그룹의 '한국에서 희망찾기' 2006/12/03
- 사만타는 여전히 누워있다. 2006/11/29
- 백병원에 누워있는 사만타씨 2006/11/26
12월26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스리랑카로 돌아갔습니다. 옷가지가 들어있는 가방 1개가 함께 동행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간 사만타씨를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생업을 거의 놓다시피하며 동분서주 노력한 니로산씨, 사업주와 달리 끝까지 사만타를 돕기 위해 애써주신 박봉호 공장장님, 넉넉지 않은 형편임에도 200여만원의 돈을 모아주신 공장동료들, 시신을 본국까지 보내는데 도움을 주신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와 김봉천 목사님, 어려운 사정을 듣고 흔쾌히 도움을 주신 외국인의료공제회분들, 이메일을 보고 후원을 해주신 정재룡 회원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애써주신 백병원 의사,간호사 선생님들과 원무과직원분들, 대사까지 직접 찾아와서 일이 빨리 해결되도록 도운 주한스리랑카대사관 분들....등등등 미처 열거하지 못한 분들까지 포함해 모두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사만타씨가 이제 길고 험난했던 여정을 끝내고 가족들이 있는 고향에서 영원히 편안하게 잠들기를 빕니다. |
사만타를 본국으로 보내는 일이 얼추 마무리되었다. 다음주 화요일 밤에 비행기로 가게 된다. 그때까지 서울의 한 장례식장 영안실에 누워있을 것이다. 일이 좀 정리되니까 며칠간 있었던 일들이 다시 떠오른다. 누군가의 임종을 지킨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의사의 급한 호출로 중환자실에 들어가면서도 난 사만타가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도 지금껏처럼 고비를 넘길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만타는 이미 몇 번의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맥박이 50이하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침대주변은 인공적으로 심폐소생을 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피들로 얼룩져있었다. 갈비뼈도 대부분 부러져서 가슴이 쪼그라들어보였다. 의사는 앞으로 30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 사이에도 맥박이 제로가 되기도 하였다. 의사가 급히 가슴을 치고 약을 좀더 투입해서 다시 30~40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다시 맥박이 제로가 되었다. 의사는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심장이 멈췄음을 알리는 기계신호가 삐-익하고 길게 울렸다. 사망을 하였지만 사만타의 가슴은 인공호흡기때문에 위아래로 움직였다. 움찔하는 듯한 움직임도 없었다. 체온도 아직 그대로였다. 사만타의 손을 세게 잡아주었다. 왠지 그렇게해야할 것 같았다. 죽은 사람의 몸을 만진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불운했던 그의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다는 것이 슬펐다.
중환자실은 엘리베이터로 바로 영안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중환자실은 지하1층이고 영안실은 지하2층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는 겨우 한 층밖에 되지 않았다. 영안실 직원들은 밝고 친절했다. 산 자를 다루는 중환자실 의사와 간호사들보다 얼굴이 훨씬 밝았다. 혹시 영안실 측에서 일부러 그렇게 교육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는 게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생각을 들게하였다. 하긴 영안실 직원들이야 업무상 아무리 큰 실수를 해봤자 뭐 더 나빠질 것이 없으니까. 의사들이 폭주를 즐기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아시아의 친구들 송년회가 성황리에 끝났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250여명의 손님들이 찾아주셨다. 전날 음식을 더 장만하지 않았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뻔했다. 송년회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함박눈이 쏟아졌다. 마치 하늘도 아름다운 오늘 이 밤을 축복해주는 것 같았다.
송년회에서 우리 결혼이주여성들은 정말 별처럼 모두 빛났다. 세상에 이들처럼 아름다운 여성들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신감이 이들의 아름다움을 더 빛나게 하였다.
이제 더이상 '나 못해요'라는 기죽은 말투 대신 '나 해요(할 수 있어요)'라는 당당한 말들만 하게 될 것이다. 이주여성들 화이팅!
올해 4월에 입국한 36세의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사만타씨는 지금 백병원 중환자실에 눈을 감고 누워있다. 지난10월28일 밤10시경, 근무를 마치고 옆공장에 있는 친구를 만나다가 옹벽공사를 위해 파놓은 구덩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 다음날 스리랑카 스님의 연락을 받고 백병원으로 달려갔다. 사만타씨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뇌출혈과 뇌부종(뇌가 붓는 증상)이 심했다. 사만타씨가 일하던 공장에서는 직원 한 명이 와 있었고 도의적인 차원에서 최대한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날 뇌부종이 더욱 심해져서 급한 수술을 받게 되었을때 회사는 수술동의서 사인을 거부하였다. 언제까지 치료를 계속해야 할 지 모르는 상태에서 회사가 모든 것을 떠안기는 힘들다고 했다. 몇 시간을 쓸모없는 논쟁을 하다가 결국 아친이 보증을 서고 수술동의서에 서명하기로 하였다. 새벽에 끝난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뇌부종으로 인한 압력을 낮추기 위해 사만타씨의 두개골이 떼어내졌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에 다시 수술을 받았다. 이번에는 1차 수술때 머릿속에 넣어두었던 거즈를 제거하기 위한 수술이었다. 다행히 지난 1차 수술 이후 뇌부종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어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고 의사는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식이 회복될지, 회복된다면 얼마나 회복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경험상으로는 이 정도 뇌가 부은 환자가 의식을 회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의사는 언제나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기때문에 희망을 완전히 버리기에는 너무 이르다. 오전7시에 한다던 2차 수술은 담당과장이 주말이라 늦게 출근하는 바람에 11시반에야 시작했다. 보호자에게는 10분도 늦어선 안될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정작 의사는 마음대로 늦어도 되는건가? 화가 치밀었지만 수술이 잘 되는 것이 우선이라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2차 수술도 무사히 끝났다. 수술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지고 중간에 수혈용 혈액이 들어가는 걸 보고 무척 불안했었는데 다행이었다. 하지만 사만타씨에게는 앞으로 넘어야할 산이 너무나 많다. 두개골을 떼어냈지만 앞으로 뇌부종이 더 가라앉지 않는다면 뇌의 일부를 떼어낼 수도 있다. 지금 매우 독한 약을 계속 투약하고 있어서 간과 신장 등이 허약해지고 있다. 만약 다른 합병증이 발생하면 다시 몇번이고 수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수술까지는 사회복지기금 등을 통해서 어찌어찌 해결하였지만 앞으로 계속 발생할 추가비용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책이 없는 상태이다. 만약 사만타씨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채 장기입원을 해야한다면 병원측도 그냥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자국민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음에도 스리랑카 대사관측은 너무나 한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사관 임대료도 밀려있다며 공장사업주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했단다. 그리고 스리랑카에 있는 가족이 한국에 들어롤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도 늑장대응이다. 이들이 뭐하러 한국에 와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한국정부의 사정도 그리 나아보이진 않는다. 어쨌든 한국에 들어와서 일을 하던 노동자인데 의료보험 적용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노동자를 위한 장기요양시설 하나 변변한 것이 없는게 한국의 현실이다. 가족중에 한명이라도 장기요양환자가 발생하면 가족 전체가 붕괴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의료보험은 의료할인제도에 불과하고 보험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사보험들은 주판알 튕기기에 바빠 이리저리 빠져나가서 결국은 별 도움이 안된다. 입국시 들었다는 삼성생명은 모든 치료가 종료된 후에야 심사 후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안전시설 없이 공사를 하는 공장사업주와 건설업자들 그리고 자국국민보호에 관심이 없는 대사관, 변변한 사회복지시스템도 없으면서 '복지병'을 걱정하는 한국정부와 사회때문에 오늘도 건장한 청년 하나가 자신의 운명을 오로지 힘없는 시민단체에게 맡긴 채 저렇게 누워있다. |
+ 종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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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던 병원의 입장이 어제 갑자기 바뀌었다.
사만타의 뇌부종(부어오름)이 계속 진행되어 두개골을 열어주지 않으면 안된단다.
물론 수술 후에도 의식이 회복되거나 하는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더 악화되는 것을 막자는 차원이다. 그리고 수술 중이나 또는 그 후에 사망할 확률도 무시못한다.
문제는 협조적이던 회사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비용이 어디까지 나올 지 예상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회사가 모두 떠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별 권한이 없는 회사 직원을 상대로 오랜 시간 결론없는 논쟁만 하다 결국 우리가 떠안기로 하였다. 일단 수술동의가 필요한 상태라 수술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우리를 미더워하지 않는 의사를 설득해 수술에 들어갔다.
다행히 수술은 별 문제 없이 끝났다. 수술 중에 뇌가 흘러내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은 지라 괜히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많이 걱정했었다.
수술을 모두 마치고 중환자실 면회까지 마친 후 병원을 나오니 새벽4시경이었다. 오후7시에 병원에 와서 9시간이나 있었더니 몸도 마음도 우울해진다.
아침에 들렸다온 백병원에 누워있는 그 친구는
지금도 그대로 누워있을 것이다.
머나먼 한국땅까지 돈벌러 온지 채 1년도 안되었는데
일산 어느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코마상태로 누워있구나.
뇌가 안으로 부어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두개골을 절제하고
스리랑카의 더운 바람 대신
차가운 한국의 겨울을
맨살로 맞이하고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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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만타씨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