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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고소가 보여주는 이명박 정권의 통치 원칙

절대군주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 박원순 고소가 보여주는 이명박 정권의 통치 원칙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지난 6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위클리 경향과 인터뷰를 가졌다. 여기서 그는 국정원의 민간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올 여름을 휩쓴 중요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는 이메일 압수수색, 인터넷 패킷 감청 등 국가 감시의 문제였다. 일정정도의 위기의식을 느낀 국가는 느닷없이 수개월이 지난 일을 들추어 박원순에게 고소장을 들이밀었다. 9월 15일 발부된 이 고소장에는 박 변호사가 “지난 6월 ‘위클리 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민간사찰을 해 시민단체들의 사업이 무산된다’는 식의 허위발언을 해 국가 안보기관으로서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박원순은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고소장의 원고가 대한민국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복종하지 않는자에게 가해진 치졸한 복수

  

이명박 정권에 들어 강하게 나타난 정치적 특징 중 하나는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의 지배를 공고히 하려 한다는 점이다. 지배란 기본적으로 타자를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굴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의 지배는 시민사회의 굴복과 짝을 이루고 있다.

 

시민사회의 복종은 자발적으로 혹은 순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배는 언제나 복종에의 혐오를 통제할 수 있는 토대 위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 복종에의 혐오를 통제하는 토대가 바로 폭력이다. 지배는 폭력 행사를 근본적 조건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때로 국가의 지배는 직접적 폭력이 행사 되지 않을 때에도 무리 없이 이루어 지는듯 하지만, 사실 그 때 조차 그 지배의 저변에는 폭력이 가장 혹은 변형된 형태로 놓여 있다.

 

자발적 복종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복종이 지배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과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실제로 자발적 복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지배에 예속될 때 복종은 피지배자의 완전한 동의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폭력적으로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반복될 때 복종은 자발적인 것처럼 보여 진다.

 

문제는 그 선택조차 온전한 의미의 선택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선택이란 외부 조건의 간섭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복종으로부터의 탈피, 즉 자유를 선택한다는 것은 지배자의 폭력에 노출되어 자신의 삶을 훼손당할 수 있는 가능성의 상태로 진입하는 것이다. (올해 용산에서 목격한 것, 그 잔혹함에 치를 떨며 확인한 것이 바로 이러한 사실이다.) 따라서 복종은 선택이 아니다.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그래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자유라면, 최악의 상태로 치닫지 않기 위해 복종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유를 선택할 수 없도록 하는 것, 어쩔 수 없이 복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적 억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종 대신 자유를 선택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저항이라 부른다. 자유를 선택하는 저항은 폭로, 시위, 캠페인, 혁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저항은 집단적으로 행해지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때 가해지는 폭력(억압)의 방식 또한 고문, 검열, 감시, 감금, 추방 등 다양하다. 박원순 고소 사건은 지배에 저항하는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방식 중 하나이다. 이 사건은 국가라는 거대 조직이 한 개인을 상대로 행하는 가장 치졸한 방식의 폭력을 보여준다.

 

어찌보면 법적 고소라는 것은 공적 규칙을 통해 시비를 가리는 것이므로 형식적으로는 폭력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거꾸로 이야기 되어야 한다. 박원순 고소는 폭력을 원초적 법 사실로 정립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그것은 국가가 (언듯 합리적인 것처럼 보여지는) 법을 매개로 한 개인의 삶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원고는 대한민국, 피고는 국민

  

사실 국가가 군대나 경찰을 동원해 수 많은 개인에게 폭력을 가해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특이한 점은 그것이 법을 매개로 했다는 점, 그리고 명예를 훼손 당한 주체가 국가 자신이라는 점이다. 고소장에 원고가 대한민국으로 되어 있다. 국가가 원고가 되어 한 개인을 민사재판으로 불러들인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시민단체 뿐 아니라 보수적인 법학자나 단체마저 국가를 원고로 내세운 이번 고소가 법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법적으로 국가는 추상적 실체이므로 인격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격권이 없는 실체가 어떻게 명예를 훼손당할 수 있겠는가.

 

‘추측컨대’ 국정원이나 국가는 바보가 아니다.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을 몰랐을리 없다. 그러한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이번 고소를 추진했다면, 이것은 이 정권의 무지가 아니라 그들이 준거하고 있는 통치 원칙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 정권은 국가의 토대가 되는 시민사회를 보호하고 유지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지배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사회를 보호하고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과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파괴하더라도 자신들의 지배의 조건들을 마련하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이다.

 

지배의 조건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폭력이다. 현대 정치 제도는 폭력의 무차별적 사용을 제한한다. 현대 정치에서 폭력은 이미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종영이 정확히 지적했듯 공적 폭력이란 그것이 지배를 위해서 사용되는 한에서, 즉 이른바 공공성이라는 것이 사실상 지배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갖는 한에서는 궁극적으로 사적폭력으로 환원된다. 이데올로기적 외장을 벗겨내고 제도적 매개를 제거하고 나면, 지배는 적나라한 폭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용산참사에서 확인되었으며, 박원순 고소를 통해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이 정권이 고소장에서 대한민국을 원고로 내세웠을 때, 즉 대한민국을 명예훼손 당할 수 있는 인격권을 가진 존재로 상정했을 때, 그 인격권의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이 정권의 지배 세력들이다. 이 정권은 대한민국이 지배 세력의 것이라는 절대군주 시대에나 있을 법한 사고 방식을 통치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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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 전시 : 도시 속에서 발견한 외부적 사유의 공간

도시 속에서 발견한 외부적 사유의 공간

 

 

 

       도시는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주조된 어떤 것이다.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낡은 것들이 파괴되고, 새로운 것들이 형성되는 공간이다. 도시는 파괴와 생성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 어떤 것들은 생성을 위해 파괴되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그냥 파괴되기만 할 뿐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시간 속에 축적시킨 삶의 흔적들은 종종 도시가 가진 변화의 속도 속에 함몰된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문제는 바로 그 변화의 속도이다. 휘황찬란한 변화의 속도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저 도시의 속도에 적응해 나갈 뿐, 자신만의 속도를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2008년 작 '도시의 섬'       정수진의 작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녀가 주목하는 지점은 자동차가 질주하는 도로의 한 복판에 있는 ‘안전지대’이다. 자동차가 침범하지 못하는 공간, 자동차를 피해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는 공간. 그 곳은 움직임의 속도가 멈추는 공간이며, 그렇기에 도시의 속도에 함몰되지 않는 공간이다. 때문에 그 곳은 속도의 외부에 놓인 성찰의 공간처럼 보인다. 그녀는 2008년 첫 개인전부터 <도시의 섬>이라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일관되게 도시 속도의 외부, 그곳의 성찰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녀는 2009년 또 다시 <도시의 섬>을 주제로 개인전을 마련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같은 것들의 작은 변주만이 존재하는 지난 전시의 반복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그녀의 작품들은 진화하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묻고 있다. 안전지대, 그 곳은 진정으로 멈춤의 공간이며, 성찰의 공간인가? 여전히 그곳은 도시의 속도를 관조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멈춤과 성찰의 공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속도에도 저항할 수 없는 무의미의 공간이기도하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 그곳은 도시의 속도를 만들어내는 생산지로서 기능한다. 이 정지된 공간은 도시의 속도를 필연적인 것으로 제시하는 환영들을 만들어낸다.

 

      

        이 환영들은 나무에 장식된 현란한 조명들을 통해, 다양한 모양을 연출해내는 토피어리를 통해 재현된다. 이 토피어리들은 때로는 화목한 가정을, 때로는 해피엔딩을 예고하는 동화의 한 장면을, 때로는 도시 진보를 형상화한 상징들로 전시된다. 도시에서 사는 이들의 속도는 자신의 속도라기보다는 가정을 위해, 아직 오지 않은(未-來)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해피엔딩을 위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가족, 민족, 회사 등 허구적 공동체의 앞날을 위해 적응하고 버텨야할 삶의 속도이다.

 

 

2009 년 작 '도시의섬'        어떤 사물도 다른 사물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도시가 파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개별자들이 독특하게 지니고 있는 시간의 질적 차이이다. 도시의 속도는 개별적 시간을 하나의 균일한 시간으로 흡수해버린다. 정수진의 작품에는 개별자들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다. 그녀는 도시의 속도가 물결치는 도로 한 복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 속도가 멈추는 곳에서, 즉 추상화된 속도의 텅 빈 결들 속에서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안전지대에서 그녀가 찾으려고 하는 것은 새로운 시간을 구성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곳에는 이미 도시의 속도를 긍정케 하는 신화적 형상들로 가득 차 있다. 정수진은 화려한 조명과 토피어리를 통해 그 신화적 형상들을 비판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비판 대상이 안전지대 자체가 아니라 안전지대를 채우고 있는 신화적 형상들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도시의 신화를 비판하면서도, 안전지대를 여전히 도시의 공적 공간 내부에 존재하는 외부로 간주한다. 그래서 그녀는 여전히 추상적 속도가 휩쓸고 다니는 그 도로의 한쪽 편에 있는 안전지대에 조그마한 호수와 정자를 그려 넣음으로써 삶의 여유를 찾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곳에는 어김없이 시속 60Km 이상을 금지하는 도로 표지판이 놓여 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혹은 자신의 속도대로 살아가라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속삭임이기도 하다. 도시의 속도 속에서 살아오며 자신이 느꼈던 상실, 결여, 혼돈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정수진은 젠체하는 조언자가 되기보다는 자기 삶의 고민들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작가가 되고자 한다. 그녀의 작품들이 다른 치기어린 작가들의 작품과 달리 허황되거나 과장되지 않고,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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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 2009 개인전 '도시의 섬' , 전시 서문

 

전시 : 2009. 9. 18 - 9. 30(수), 오전 11:00 - 오후 7:00

장소 : 문화일보 갤러리(충정로, 문화일보 사옥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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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과 정치의 이상한 만남

문제라는 단어에는 비정상, 예외, 비틀어짐과 같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그것은 해결해야 할 것,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는 지향을 가진다. 때문에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즉 문제의 대상을 무엇으로 설정하는가는 해결이라는 지향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적합한 문제 대상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종종 듣는 용어 중에 여성문제라는 것이 있다. 이 용어에는 문제의 대상이 여성인 것과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요소가 스며들어 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들을 규정해온 남성적 시선이다. 여성문제라는 용어를 썼을 때 거기에는 문제의 핵심을 굴절시키는 어떤 전도의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2PM의 재범 ‘문제’ 혹은 재범 사태라고 명명된 사건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도 이와 유사한 전도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문제의 대상은 2PM의 재범이 아니다. 논란을 유발한 계기는 그이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재범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형성된 담론의 지형 그리고 그런 담론이 형성된 사회적 맥락에 있다.

 

아이돌 가수는 일반적으로 젊은 층에 인기를 얻는 가수를 말한다. 그들은 가수지만 음악만이 아닌, 젊은 층이 자신들을 동경할 수 있는 갖가지 조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그들은 철저하게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하나의 우상이 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대중들을 위한 환상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대중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이미지에 자신들을 끼워 넣기도 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환상은 언제나 대중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선에서 구성되어야 한다. 문제는 한국적 상황에서 아이돌이 되기 위해 혹은 아이돌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부합해야 하는 대중의 기대라는 것이 정치적 맥락과 강하게 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이돌에게 부여된 정치적 임무


10여 년 전부터 아이돌은 한류열풍의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그들은 ‘한류 열풍의 중심에 선 아시아의 스타’이면서 ‘아시아를 정복한 대한의 건아’가 되었다. HOT나 NRG를 넘어 비, 원더걸스, 보아와 같은 스타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동방신기나 천상지희 같은 아이돌 그룹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팀 이름도 한자로 만들었고, 기획 단계에서는 중국 현지에서 같이 활동할 현지인 멤버까지 고려되어 있었다. 슈퍼주니어에는 중국인 멤버(한경)가 한국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아이돌 가수들은 한류열풍 속에서 연예 산업에 종사하는 직업인이 해야 할 역할을 넘어 국위를 선양하고, 국부를 증진시키는 역할까지 해야 했다. 그들에게는 연예 산업을 넘어 국가의 부와 명예를 드높여야 한다는 정치적 임무가 부여되었다. 아이돌에게 부여된 정치적 임무라는 상황 속에는 미묘한 괴리가 숨어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돌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교포이거나 외국국적자이고, 그들이 하는 음악 역시 한국적인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탈국적화된 정체성을 가진 아이돌에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정치적 임무를 부여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러니까 아이돌 스스로가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있든 말든, 그들에게 국가와 민족에 대한 기여를 기대하는 상황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2PM의 재범에게 가해졌던 비난은 이러한 맥락과 결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4년 전에 썼던 글이 문제의 계기가 되었지만, 그 이후에 비난의 강도와 폭은 확장되었다. 재범의 일과 관련된 글이나 그의 사과문에 달린 댓글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사과문 개제 이후에도 반성의 시간을 갖지 않고 한동안 활동을 지속한 그의 태도를 문제삼기도 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한국인 비하 발언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았으며, 어떤 이들은 유승준의 군 회피로 인한 연예계 퇴출과 연관지어 미국 시민권과 군대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 <해럴드 경제>의 한 대중문화전문기자는 “교포출신 연예인에 대한 정체성 교육”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비난의 지점들은 이미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있다. 비난들은 이제 연예인의 역할과 직업 윤리를 넘어 폐쇄적인 정치적 심급으로 환원되고 있는 것이다.



오리지널을 완성시키는 번역들의 경합


2PM의 재범은 비난을 못 이겨서든, 그 비난을 수긍하고 반성하기 위해서든 팀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 상황은 반전되어 그를 동정하는 누리꾼의 글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의 한국 비하를 문제삼던 연예 뉴스에서도 팀 탈퇴로 이끈 일부 누리꾼들을 꾸짖으며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관점을 바꾸었다. 이러한 변화는 재범의 팀 탈퇴와 출국이라는 결과가 보여준 임팩트의 사후 효과이기도 하지만, 그 관점 변화의 근거를 제시해준 것은 팬클럽과 이 사건을 민족주의 혹은 애국주의의 귀결로 규정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한 비평가들이었다. 그들은 재범에게 강한 알리바이를 제공해 주었다. 죄가 발생한 장소에 재범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강한 알리바이들 말이다. 그 알리바이들은 무엇보다도 그의 글을 새롭게 번역하는 과정에서 마련되었다.

 

재범의 소속사였던 JYP 측과 2PM의 팬들은 재범의 글이 악의적으로 번역되고, 이용당했다며 글의 전문을 번역해서 새롭게 제시했다. 실질적인 글의 의미뿐 아니라, 맥락을 보고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부 비평가들은 글 속에서 재범이 하고자 했던 말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그 글이 쓰여진 시점은 재범의 ‘치기 어렸던’, ‘철없었던’ 혹은 ‘건방졌던’ 과거였을 뿐이라고(그래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표현이 상당히 거칠긴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답답한 심정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좀 더 나아가 한 비평가는 재범의 글을 “저급한 상품문화에 포섭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쓴 소리”로 번역하기도 했다.

 

어떤 측면에서 이번 사태는 ‘악의적 번역’(재범에 대한 비난의 근거)과 ‘호의적 번역’(재범의 알리바이) 사이의 갈등 과정으로 읽힐 수도 있다. 담론 속에서 제시된 재범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악의적 번역에서 호의적 번역으로 옮겨감으로써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악의적 번역에서 재범은 한국을 폄하하고 한국민을 모욕한 죄인이지만, 호의적 번역에서 그는 상품화된 대중문화에 쓴 소리를 하거나 철없었던 과거를 극복하고 어른이 된 사람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두 번역 모두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입장 모두 재범의 글이라는 오리지널에 대한 번역을 수행함으로써 올바른 번역과 그렇지 못한 번역의 대립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원본과 파생의 문제로 환원되고 있다. 두 입장은 오리지널이 의미의 기원이며, 번역된 것은 기원에서 파생된 해석에 불과한 것이라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리지널 혹은 원본으로 알려진 것이 어떤 확고한 입장이나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그 원본이 충만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 그 원본이 어떤 의미의 결여를 가지고 있어서 번역 과정에서 파생된 것들의 보충을 통해서만 그것이 가진 의미를 완성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번역들의 경합이 오히려 오리지널의 의미를 보충하고 결정하는 요인이라면 어떨까?

 

여기서 원본이나 오리지널(재범의 글)의 위치는 토착적인 것 혹은 국가로 소급되는 정치성이 차지한다. 그렇다면 오리지널의 결여를 문제시 하는 것은 국가로 소급되는 토착성(nativism) 자체가 의미의 불충분함과 결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국가로 소급되는 토착성 자체가 고유의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담론의 형성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PM의 재범은 더 이상 이 사태의 핵심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재범 문제라고 명명했을 때 이미 거기에는 이러한 담론이 발생시키는 효과의 핵심을 굴절시키는 전도의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논란이 계속되는 과정, 즉 재범을 둘러싼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는 이미 재범은 없다. 거기에는 대신 미완의 국가 정체성과 토착성을 (때때로 그것에 대한 저항 혹은 비판까지도 흡수하면서) 완성시키는 무엇인가가 공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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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 기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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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 : 퇴보를 향한 위험한 도발

저작권법이 개정과 함께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저작권법은 ‘창조성과 같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과 ‘창조적 생산물을 향유하는 문화적 삶’을 구성하는 법적 규제의 하나이다. 인간의 정신적 능력과 문화적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해 보인다. 문화는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거치며 풍요로워져야 하는 무엇이다. 저작권법은, 특히 이번 개정 저작권법은 그것들을 통제하고 규제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무엇이 문제인지 한 번 살펴보자.

 

이번에 개정된 저작권법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일명 ‘인터넷 3진 아웃제’의 도입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 3진 아웃제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음악 등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대량 유포하는 업로더의 계정이나 인터넷의 게시판을 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회 경고 후 최대 6개월까지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행정 권력의 과도함이라는 문제와 표현의 자유 침해의 문제 등을 지니고 있다.


개정 저작권법의 문제들


우선 개정 저작권법에 따르면 독립된 사법 영역을 행정 권력이 침해할 소지가 있다. 저작권과 관련된 분쟁은 침해사실이 명확히 규명되기 어렵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개정 저작권법에 따르면 그것을 행정 권력이 판단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행법의 기준에 따르자면 저작권 침해 사례는 무수히 많기 때문에 전수 조사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행정 기관은 무수히 많은 침해 사례 중 일부를 자의적으로 골라내야 한다. 누군가는 법적 책임을 면제받고, 누구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형평성의 문제를 낳는다. 그리고 저작권법 위반자나 게시판을 찾아낼 때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저작권법에 따른 처벌 대상은 단순한 위반자나 게시판이 아니라, 행정 권력이 위반했다고 판단하는 이용자나 게시판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저작권을 위반했다고 판단된 게시판이 이용 정지될 경우 저작권 위반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 역시 그 게시판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법에 저촉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공간을 잃게 된다. 이를테면 ‘다음의 아고라’의 특정 게시판이나 디시인사이드의 어떤 갤러리를 행정 권력이 저작권법을 근거로 이용 정지 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용자들에게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일 수 있다.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즉 자신의 표현물이 올라간 혹은 올릴 예정인 게시판이 정지될 수 있다는 위협 때문에 인터넷 이용자의 표현 행위 자체가 위축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위와는 아무 관계없이 자신이 올린 표현물이 일정 기간 동안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정 저작권법의 주 내용인 인터넷 3진 아웃제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이미 이 제도를 입법하려는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 때문에 시민 사회 단체의 주도로 위헌소송이 제기되었고, 결국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6월 초에 위헌 판정을 내렸다. 프랑스 헌법위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은 인권에 관한 문제”라고 명시하고 개인의 인터넷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은 법원 판사의 판결을 통해서만 부여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그것을 규제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청소년 보호용 인터넷 차단 프로그램인 그린댐(Green Dam)을 비롯해 호주나 뉴질랜드, 영국, 스웨덴, 일본에서도 비슷한 시도들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인터넷에 대한 규제 시도가 해외의 사례에서 발견된다고 해서 그 제도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나라에서 역시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려는 시도에 대한 저항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인터넷 규제 법규들은 해외의 사례와 차별되는 독특한 방식을 띠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한 게시판 자체를 일정 기간 동안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은 해외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개정 저작권법은 ‘헤비 업로더와 불법 복제물의 유통에 이용의 편의를 제공하거나 상업적 이익을 제공하는 게시판을 규제’하는 것이며, ‘포털 등의 카페, 블로그, 미니 홈피 등은 정지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안에는 ‘헤비 업로더’와 같은 개념 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블로그나 활동 카페에 타인의 글이나 신문기사 등을 옮겨 놓는 행위는 모두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한다. 행정 명령을 통해 블로그나 카페 등의 게시판도 정지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에서 산업으로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개정 저작권법에서는 눈에 띠는 변화를 한 가지 더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저작권법 1조(목적)의 한 문구이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 1986년 1차 전부 개정 이후 2009년의 17차 개정 이전까지 1조는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었다. 이번 개정 이전에 저작권법 1조는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17차 개정에서는 1조의 ‘문화의 향상발전’이라는 문구가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으로 바뀌었다.

 

이는 저작권법이 존재하는 실질적인 이유를 보여주는 증상적인 변화로 보인다. 어찌보면 이러한 변경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저작권법은 명목상 저작자와 저작 인접권자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지만, 저작권법을 통해 실제로 이익을 얻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본다면 이 법의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저작권법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개인 창작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문화는 그러한 극소수의 개인들의 창작물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경제적 이득을 얻지 못하는 수많은 창작자들과 그들의 창작물을 공유하고 향유하는 이용자들, 그리고 창작물들을 활용해서 새롭게 해석하고 발견하는 패러디 작가들(겸 이용자들)등 모두의 노력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저작권법은 그나마 있는 개인 창작자에게 돌아 가야할 권리마저 특정 기업이나 조직으로 전환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의 제도화와 함께 개별 창작자의 이득은 거대 기업의 이익으로 대체된다. 개별 창작자들은 종종 무시되거나 착취당한다. 기업이나 정부에 고용된 이들이 보호할만한 가치를 가진 창작물을 만들어냈을 때 그것은 해당 조직의 저작물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은 창작물이 유통되는 과정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상품이 유통과정에 들어가기 위해서 창작자는 판매자가 되어야 하는데 개별 창작자는 직접 판매 활동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 상품의 유통로를 거대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창작자는 판매자가 된다 하여도 거대 기업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창작자는 자신의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서 유통로를 장악하고 있는 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판매의 유통로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이전받는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창작물은 기업소유가 되고 창작물의 판매에 따른 보상은 기업으로 돌아간다. 창작자의 개성은 기업의 자본이 된다.

 

이처럼 저작권법은 개별 창작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저작물이 탄생하는 산업 구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번 개정 저작권법 1조의 문구 개정은 저작권법의 실질적 목적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저작권법의 개정은 이러한 목적을 충실히 실행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문화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말 그대로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것들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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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작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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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망명 : 억압적 국가를 거부하는 정치적 사유의 매개

 

한국판 위키 백과에 따르면 사이버 망명은 2009년 6월 “검찰의 PD수첩 수사 관련 내용”이 발표되면서 불거진 용어이다. 지난 6월 검찰에 의해 PD수첩 작가의 이메일 내용이 공개되면서, 사생활 보호 및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국가 권력에 의해 심각하게 침해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이후에 YTN 노조원들의 이메일이 압수수색 당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러한 불안감은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실 이와 같은 사이버 검열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4월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에 대한 선거법 위반 수사에서 수사 대상자 100여명의 이메일 7년치가 압수수색 당한 바 있다. 사이버 망명은 이와 같은 국가 권력에 의한 인터넷 규제에 대한 저항의 한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인터넷 본인확인제,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저작권법 등 나날이 인터넷에 대한 국가 권력의 규제는 확대되고 있으며, 사이버 망명 역시 계속 확대되고 있다.


포섭과 탈주가 경합하는 사이버 공간


망명이란 정치적 탄압이나 종교적 압박을 피하기 위해 타국으로 도피하여 보호를 요청하는 행위를 말한다. 망명을 정의하는 데는 두 가지 핵심적 요소가 필요하다. 정치적 억압과 타국의 보호가 그것이다. 사이버 망명은 정치적 발화에 대한 국가 권력의 검열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외국의 서버로 인터넷 계정을 옮긴다는 점에서 하나의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망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이버 망명을 일반적인 망명의 하나로 정의하려 할 때 미묘한 괴리가 발생한다.

 

망명은 하나의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의 이동을 전제로 한다. 때문에 망명은 민족국가의 경계를 문제시하는 정치적 질문을 내포한 행위이다. 사이버 공간이 물리적 한계, 즉 국경이 없는 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사이버 세계에서 망명이란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이 민족국가라는 정치적 경계에 포섭되어 있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수많은 담론 속에서 그것은 대의제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곤 한다. 그런 식의 담론들은 사이버 공간의 형성과 관련된 정치경제적 기반을 무시하는 매체 결정론에 불과하다. 사이버 공간은 정치적, 경제적 권력이 경합하는 갈등의 장소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인터넷의 기원인 아르파넷(ARPANET)은 미국방부의 첨단기술연구계획국(ARPA)에 의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은 1990년대 초 ‘정보고속도로 구상’을 발표하고 인터넷 민간화 이후의 지구적인 정보화 격랑을 예고했다. 이는 1993년 발표된 ‘국가정보하부구조(NII)구상 행동계획’과 1994년 발표된 ‘지구정보하부구조(GII) 구상’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보고속도로 구상’ 발표 이후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고속도로라는 은유에 대한 것이다. 고속도로라는 이미지는 선형적 운동, 물리적 이동, 물질적 고체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버 공간의 다방향적 정보통신, 가상적 상호작용을 지시하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는 반론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국가에 의한 디지털 기간망의 증진이라는 목적만큼은 분명히 보여줄 뿐 아니라 인터넷의 발달이 새로운 매체환경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기존 권력의 통제 아래에서, 그것들을 위하여 설계 및 추진되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인터넷은 9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기존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전유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95년 이후 국가 주도의 통신 정책이 수립 된다. 정부는 한국통신의 글로벌경쟁력을 갖추게 한다는 명분과 초고속 정보통신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목표로 ‘정보화촉진기본법’을 제정한다. 그리하여 95년에 PC통신 서비스에 인터넷접속 서비스(일명 PPP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이때 설립된 규격화된 인터넷 구조의 기반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요컨대 인터넷 구조의 상당 부분이 경제적, 그리고 그 경제 성장의 필수적 요소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조건을 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은 결코 기존의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곳도, 그것이 가진 내적 가능성이 자동적으로 실현되는 곳도 아니다. 인터넷의 발전을 통해 발생한 사이버 공간은 ‘기존의 정치경제적 권력’과 그 곳에 내재된 ‘권력으로부터의 도피 가능성’이 경합하는 곳이다. 적극적 저항 없이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은 하나의 망상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버 망명은 억압적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그리고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향해 가는 하나의 시도로 볼 수 있다.


사이버 망명, 국가 그리고 정체성


앞서 언급했듯이 망명이란 정치적 억압을 피해 타국의 보호를 요청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정치적 억압의 외부를 사유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 세계에서 망명은 타국의 보호를 요청하고 허가를 기다리는 과정 없이 진행된다. 망명은 (인터넷 계정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과정을 따라 진행된다. 그것은 타국의 존재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망명객이 속했던 국가의 억압적 정치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이다. 사이버 망명은 다른 국가를 필연적으로 요청한다기보다는 국가라는 억압적 정치체 자체를 거부하는, 즉 국가부재를 사유하는 한 방식이다.

 

국가부재를 상상하는 힘은 국가에 의해 버려진 이들이 보이는 정치에 대한 환멸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능동적으로 억압적 국가를 거부하는 힘이다. 국가의 외부에 있는 것은 자연이 아니다. 억압적 국가를 거부하는 이들이 귀환하는 곳은 자연상태가 아니라 다른 정치가 상상되는 공간이다. 물론 ‘거부’ 자체가 다른 정치에 대한 ‘생성’은 아니다. 그럼에도 ‘거부’는 기존의 억압적 정치를 부정함으로써, 다른 정치를 상상할 수 있는 ‘정치적 사유의 공간’을 배태하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사이버 망명이 거부를 통해 다른 정치를 상상하는 적극적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은 파업이나 혁명과 같이 일거에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집단적 힘이 아니다. 때문에 그것이 가진 희망의 계기는 조심스럽게 제기되어야 한다. 새로운 정치가 이미 존재한다거나, 이미 존재하는 대안적 정치에 다가감으로써 기존의 정치를 폐기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하지 말도록 하자. ‘거부’는 정치적 사유의 공간을 개시하는 하나의 형식일 뿐이다. 그것은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 어떤 것도 직접 지시하지 않는다.

 

사이버 망명이 가진 저항의 가능성은 미시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정체성 게임과 관련되어 있다. 국가는 특정한 소속양식을 제공함으로써 국민 혹은 시민이라는 봉합된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정치체이다. 국가부재를 상상한다는 것은 이러한 소속양식을 거부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새로운 정치를 상상할 수 있는 ‘정치적 사유의 공간’은 국가가 제공하는 소속양식을 거부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낡은 이야기이지만, 현대적 의미의 사이버 망명의 문제를 거의 최초로 제기한 <공각기동대>를 떠올려보자. 그곳에는 사이버 세계로부터 유발된 정체성의 문제가 강하게 기입되어 있다. 공안 9과에 들어간 ‘인형사’는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다. 사이버 세계에 떠도는 하나의 프로그램에 불과한 인형사는 과연 망명할 수 있는 ‘존재’인가. 그를 존재하는 실체로 만드는 그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인형사는 고정된 정체성을 필요로 했는가. 오히려 정체성을 버림으로써 사이버 세계에 존재하는 실체가 된 것은 아닌가. 그는 결코 고정된 정체성을 획득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는 낡은 정체성을 회복함으로써 뻔한 결론을 맺으려 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정체성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집착은 자신을 구속한다. 그것을 돌파하라”. 정체성, “그것은 자신을 제약”하는 것이다. <공각기동대>는 거부가 개시하는 정치적 사유의 공간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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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대학원 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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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망명 : 저항의 공간을 개시하는 작은 몸짓

일단 세 가지 사건을 이야기해 보자.

1. 4월 :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에 대한 선거법 위반 수사에서 수사 대상자 100여명의 이메일 7년치가 압수수색 당했다.
2. 6월 : 쇠고기 광우병 관련 보도를 조사 중이던 검찰이 PD수첩 작가의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다.
3. 7월 : YTN 노조원 20여명의 이메일이 압수수색 당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널리 알려진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이 널리 알려진 예외적 사례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실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에 다음 한메일과 네이버 메일에 대한 압수수색이 3360건이나 있었다고 한다. 다른 포털까지 합산한다면 이 수치는 엄청나게 불어날 것이다. 나랏님께서 국민의 안전과 치안을 위해 이메일 몇 개 본거가지고 무슨 큰 문제가 생길까라고 깔보면 안된다. 인터넷 본인확인제를 비롯해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저작권법 등 인터넷에 대한 국가 권력의 규제가 무제한적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잉된 권력이 흘러 넘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명을 시작했다. 일명 사이버 망명이 그것이다.

 

내친김에 한 가지 사건을 더 이야기해 보자. 얼마 전 구글은 유튜브 한국 사이트에서 우리나라의 인터넷 본인확인제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사실 구글이 한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본인확인제를 거부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트위터 같은 마이크로 블로그의 확산 사례(지난 1월 트위터 방문자수는 1만 4천명이었던데 비해 6월 방문자수는 58만 7천명이었다. 이는 국내 마이크로 블로그인 미투데이 6월 방문자수가 12만명인것과 비교해도 엄청난 수치이다)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에 의한 인터넷 규제의 과잉과 함께 사이버 망명이 늘어나면서 외국계 인터넷 기업에 의한 국내 시장 잠식이 점점 증대하고 있다.

 

구글과 같은 거대 인터넷 기업이 거대 자본과 인터넷 시장 잠식을 통해 국내 인터넷 업체를 인수합병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국내 인터넷 기업을 수호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사이버 망명의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이버 망명이라는 것이 단지 국내 자본에서 외국계 자본으로의 시장 이동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없다. 거기에는 흥미로운 저항의 계기들이 숨어 있다.

 

인터넷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는 표준 선점이다. 표준을 선점하면 그 소프트웨어의 독점력도 강해지고, 시장 지배력이 급격히 강화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한글이나 마이크로 소프트 오피스 같은 것이다. 이런 소프트웨어들의 독점은 시장 독점외에도, 다른 프로그램과의 호환성을 차단하기 때문에 정보 독점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독점 소프트웨어는 프로그램 소스 정보를 활용할 수 없도록 하는 지식 독점 체계에 기반한 상품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소스 공유를 통한 소프트웨어의 혁신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또한 한글이나 MS오피스는 소프트웨어 독점력 때문에 잠금효과가 강해서 어떤 측면에서는 그것들보다 더 편리하고 뛰어난 기능을 가진 오픈 소스에 기반을 둔 오픈오피스(open office)와 같은 소프트웨어의 사용을 가로막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사이버 망명이 발산하는 효과 중 하나는 이와 같은 독점 소프트웨어로부터의 탈주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가장 강력한 독점 소프트웨어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웹 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IE)인데, 사이버 망명이 활성화 되면서 웹 브라우저의 독점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가진 정보 독점과 악용 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사이버 망명이 유행처럼 번져 나가고 있는 요즘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용 비중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아일랜드 웹분석 업체인 ‘스캣카운터’에 따르면 2009년 3분기 기준 한국 웹브라우저 점유율에서 모질라 재단의 파이어폭스가 8.5%, 구글의 크롬이 1.8%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국내 이용 비중은 90% 후반에 달했었던데 비해 현재는 8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사용 비중이 여전히 상당히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점유율이 이렇게 떨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정치적 억압의 외부를 사유하는 사이버 망명

 

사이버 망명이 가진 더욱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정치적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망명은 정치적 탄압이나 종교적 압박을 피하기 위해 타국으로 도피하여 보호를 요청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이버 망명은 정치적 발화에 대한 국가 권력의 검열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외국의 서버로 인터넷 계정을 옮긴다는 점에서 하나의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망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이버 망명을 일반적인 망명의 하나로 정의하려 할 때 미묘한 괴리가 발생한다.

 

망명은 하나의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의 이동을 전제로 한다. 때문에 망명은 민족국가의 경계를 문제시하는 정치적 질문을 내포한 행위이다. 사이버 공간이 물리적 한계, 즉 국경이 없는 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사이버 세계에서 망명이라는 말은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이 민족국가라는 정치적 경계에 포섭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인터넷은 국가적 프로젝트를 통해서 물리적 기반을 확립하고 발전해왔다. 자연스레 사이버 공간은 국가의 규제와 통제 속에서 형성되었고, 그 역할이 규정되어 왔다. 올해 개정된 저작권법에서 문화부 장관의 권한으로 특정 개인 혹은 게시판을 활동 정지 시킬 수 있게 된 것은 사이버 공간에 대한 국가 통제의 적절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사례들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인터넷 규제가 상당히 정치적인 사안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 망명은 이와 같은 국가의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기 위한 방식으로 고안되었다. 따라서 사이버 망명은 국가의 정치적 억압의 외부를 사유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정치적 억압의 외부를 사유하는 것은 정치적 자유를 향한, 즉 폭넓은 의미에서 표현의 자유를 향한 몸짓이다. 자유란 저항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사회를 통제하는 금지, 규제, 권위, 법률과 같은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지 않고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없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사이버 망명이 나타난다면, 망명 후 망명객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가진 생각들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저항의 언어를 획득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는 일이다. 때문에 사이버 망명이라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치적 자유를 향한 적극적 실천의 일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사이버 망명은 망명객이 속한 국가의 억압적 정치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이다. 때문에 그것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의 이동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억압적 국가의 외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치를 요청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이버 망명은 시장 독점과 정보 독점 그리고 억압적 정치에 대한 저항을 동시에 보여주는 다층적인 문화 현상이다. 그것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사이버 공간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거부’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 거부는 곧바로 대안적 정치경제시스템을 생산해 내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그것들을 사유할 수 있는 새로운 외부의 공간을 개시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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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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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운동의 역사와 공공성의 과제 by 황규만, 홍지은

 

정보통신운동의 역사와 공공성의 과제

 

글쓴이 | 황규만, 홍지은

 

 

 

 

1. 통신의 시작- 통신망의 발전과 PC통신의 등장

남한에서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론의 장은 82년 데이콤의 설립과 함께 시작된 PC통신 서비스에서부터 출발한다. 중화학공업중심이었던 한국경제 구조가 국가주도로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비스 산업의 근간은 바로 통신망의 건설이었다. 생각보다 일찍이 국가와 자본은 통신 산업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고속도로건설처럼 통신망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한다.

 

이런 육성책의 일환으로 당시 체신국으로 통합되어 있던 통신기능을 한통과 데이콤으로 전문화시킨다. 이는 각 사업자들에게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줌으로서 이루어졌는데, 이는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통신망구축의 교과서적인 방식이었다. - 오늘날 KT의 시장지배자적 지위의 근원이기도 하다. - 그 중 데이콤은 통신서비스 중 데이터통신 서비스 영역을 전문화시킨 것이다. 이후 데이터통신 서비스는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급속도록 자리를 잡으며, 천리안 그리고 하이텔 서비스가 80년대 말-90년대 초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80년대 PC통신 이용자들은 90년대 말 초창기 인터넷 이용자들과 마찬가지로 선진의식으로 가득 무장되었던 집단이었다. 이들을 매우 기술 중심적인 집단이었으며 향후 인터넷1세대를 이끄는 세력들로 부상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PC통신 시장이 활성화된 것은 통신망에 경쟁체제가 도입되고 기간망사업자와 별정통신업무가 분리되는 등, 시장에 대한 법제화가 구체화되는 90년대 초반부터이다. 통신에 경쟁이 도입된 것은 국내자본의 요구도 있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80년대 말 미국의 부가통신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과 함께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한 것이나, 93년 UR이후 94년 WTO 기본통신협상이 시작되는 세계 무역질서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화사업등 유선망시장이 유효경쟁 모델에 따라 여전히 국가관리형 경쟁체제가 도입된 반면,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았던 부가통신업에는 94년 나우누리가 등장하면서 PC통신 시장은 본격적으로 무한 경쟁에 돌입하여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는다. 즉 남한에서 통신망의 활성화는 기본적으로 국가주도 개발사업으로 시작되었지만 개방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와 정확히 궤를 같이해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전화와 같이 1대1 통신기능에 머물던 통신망이 PC통신과 같이 사회적 참여의 장으로 확장된 것은 단순히 국가주도의 개발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1가구 1전화라는 발전전략에 따라 망 자체가 서구유럽 부럽지 않게 급속도로 확장되어 그 자체로 엄청난 대중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과 통신비가 일반 전화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점이 PC통신 확장에 물질적 기반이 되기는 했지만, 90년대 운동이 다양하게 확장되면서 당시의 사회적 의제들을 PC통신이라는 새로운 매체에서 실험하려는 일군의 활동가들의 역할도 매우 컸다.

 

참세상, 하이텔, 나우누리의 진보적인 동호회의 활동을 비롯하여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전신인 ‘참세상’ 서비스 등 사설BBS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소련이 해체되고 91년 투쟁이후 패배적인 정세와 유럽에서 유입된 포스트 맑스적인 운동의 경향은 새로운 미디어 속에서 꽃피웠고 이후 정보통신운동의 자양분을 제공하였다. 그중 통신연대의 활동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98년 0141x망의 공공성의 주장하며 요금인상반대 투쟁을 벌여낸 것은 남한에서 망의 공공성을 주장한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으며, 통신사업자의 검열을 주도했던 윤리위원회폐지 주장했던 통신검열반대운동은 오늘은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또 한편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당시의 사설 BBS 운동이었다. 90년대 초기 BBS서비스는 데이터베이스구축과 같은 매우 기술 중심적인 운동이었지만, 앞에서 언급한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활용은 BBS를 단지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민주주의적인 소통의 공간이자 이용자가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생산과 소비 그리고 관리자와 이용자이라는 이분법적인 근대적 사회적 관계에서 쌍방향 적이고 대안적인 사회적 네트워크에 대한 실험의 장이었다. 또한 당시의 소중한 자산은 이후 진보진영의 독립네트워크의 물질적인 자산으로 계승되게 된다.

 

2. 인터넷의 등장 - 신세대 사회운동

80년대 말 90년대 초반 대학 - 특히 서울대학교 전산실과 KAIST - 중심으로 인터넷이 처음 서비스되기 시작하였다. 유선전화망 사업과 달리 우리나라도 초창기 인터넷은 국가주도형이었다기보다는 대학중심의 자율적인 발전과정을 겪었다. 인터넷에 다소 미온적이었던 정부를 상대로 대학에서 연구목적으로 허가 받아 시작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초창기 인터넷 문화는 산업적 측면이 아니라 대안 문화로서 먼저 수용되었다. 인터넷이 대안문화로 대안매체로 인식된 데에는 단순히 대학중심의 학술문화였기 때문은 아니다. 1986년 프랑스 학생 운동가들은 미니텔을 이용하여 신자유주주의적인 대학 개혁 반대운동을 이끌었으며 1993년에는 미국 산타모니카주의 활동가들이 지역 네트워크 PEN을 이용하여 노숙인 편의시설 확충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과 노숙인의 주장을 시정부에 관철시키기도 했다. 1996년에는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 농민혁명군 사빠띠스따가 인터넷에 신자유주의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전세계적인 연대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인터넷은 기술의 특성상 그 자체로 전세계적이다. 이런 세계적 경험들은 초창기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 즉각적으로 알려졌으며, 이런 전세계적인 경험들은 남한사회의 선구적인 활동가들 사이에서 인터넷을 ‘아래로부터의 혁명’, ‘전세계적인 연대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매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90년대 인터넷은 미국을 중심으로 단순한 군사기술이나 대안문화를 넘어서 신자유주의의 핵심 기간망으로 성장해가기 시작했다. 클린턴 정부가 정보고속도로사업을 시작하였고 남한정부도 95년 한국통신의 글로벌경쟁력을 갖추게 한다는 명분과 초고속 정보통신사업자의 조속한 추진을 목표로 ‘정보화촉진기본법’이 제정된다. 그리하여 95년에 PC통신 서비스에 인터넷접속 서비스(일명 PPP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서서히 한국에서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되었다. 이렇게 인터넷이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대중화되어가던 시기에, 정보의 상품화에 저항하고 인터넷의 대안적 성격을 사회운동화하려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95년 진보넷의 또 다른 전신이었던 ‘정보연대 SING’이 ‘정보화의 상품화에 반대하고 정보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주장하며 결성된 것이다. 비록 당시의 한계로 인하여 이슈홈페이지 제작 등 매우 도구적인 활동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지만, 실제 활동가들의 문제의식은 도구적인 활용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정보를 당시대 생산력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단순히 민주주의 문제를 넘어서 소유권과 생산양식의 재편 문제로 이해‘하고, 정보의 독점에 근거한 수직적 권력관계를 수평적 권력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정보를 사회재생산을 위한 인류의 공공자산으로 파악하였다. 엔지니어들의 선구자적 자부심에 머물던 정보공유운동을 CopyLeft라는 구호로 대중화시킨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3. 독립네트워크 운동 - 정부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변혁운동으로서의 정보통신운동

97년 노동법 날치기통과 저지 총파업은 신자유주의저지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투쟁이자, 한국 미디어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97년 총파업 투쟁 시 인터넷을 통한 전세계의 연대를 이끌어낸 것은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과거 선진적인 활동가들의 무기에서 대중적인 무기로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경험은 제1회 노동미디어행사와 그것의 이어진 성과로서 노동네트워크와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출범할 수 있는 대중적 동력을 제공하였다.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크게 네 가지 지점에서 추상화 시켜보고자 한다.

 

첫째, IMF와 신자유주의의 이식. 그리고 초고속망의 확장. 97년을 기점으로 통신산업에 있어 인위적인 진입장벽은 사라지게 된다. 97년2월 타결된 WTO기본통신협상에 의해 98년부터 통신시장이 단계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하였으며. 97년 IMF를 통해 한국사회에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전면적인 이식이 이루어진다. 이때 초고속망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주식투자열풍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던 묻지마 벤처열풍이 불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90년대 말부터 PC통신은 점차 인터넷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된다. 즉 대중성을 획득한 것이다. 더불어 남한에서 통신망과 정보재에 대한 본격적인 자본진출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둘째, 국가와 통신사업자들에 의한 검열과 내용삭제 행위는 90년대 PC통신 시절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미 그 기원이 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노총 CUG에 있던 게시물 등이 불온 컨텐츠라는 명목으로, 선거 시기 각 통신망 플라자의 글들이 선거법위반행위라는 명목으로 비일비재하게 검열당하고 삭제당한 것이다. 이런 경험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사이버스페이스 상에서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감시받지 않는 독립적인 네트워크를 요구하게 되었다. 국가와 자본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지는 보수화된 노동조합에서 조차 매우 중요한 의제였다. 이런 대중성을 바탕으로, 인터넷 초창기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몇몇 지역정보통신단체들이 호스팅사업을 중심으로 독립네트워크 운동은 활발히 전개될 수 있었다.

 

셋째,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망의 확장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발견에만 그친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CCTV, 생체인식등 정보통신 기술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감시망을 구축하고 있다. 주민등록증을 전자주민증으로 전환하려는 국가의 시도는 이미 96년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당시 정보통신 활동가들은 다양한 사회 세력들과 연대하여 당시 전자주민증 발급기도를 철회시킨바 있다. 당시 정보통신 활동가들은 정보통신기술이 경찰국가, 감시국가의 근본적인 기술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하였다. 그리고 이런 기술을 매개하는 사회적 통제체계로 주민등록제도임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넷째, 당시 노동운동진영은 물론 거의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까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대안미디어로서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바 있는 97년 총파업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간 지배세력에 철저하게 복무하였던 기존의 미디어(방송, 신문)에 대항할 수 있는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미디어로서 주목한 것이다. 또한 기존운동진영의 인터넷에 대한 주목 못지않게, 새로운 미디어를 매개로한 새로운 활동들도 생겨났다. 쌍방향적 미디어이자 진입장벽이 낮은 멀티미디어 기재로서 새로운 미디어운동의 영역으로 주목받았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진보넷이 시작되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사회운동의 정보화, 정보의 사회운동화를 기치로 독립네트워크를 표방하였고, 사설 BBS서비스 이었던 ‘참세상’, 정보연대 SING의 자원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진보넷의 의제를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거칠게 말해 ‘국가라는 자본주의의 대리도구를 배제하고 인터넷을 온전히 민중들에 의한 사회공공의 미디어로 쟁취해내려는 변혁운동’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민주노총 그리고 전농 등 기존의 변혁운동의 대중운동조직을 사이버스페이스로 확장하여 대중적 기반으로 삼되 국가로부터 독립을 보장하고, 또한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생산/사회관계 창출을 위한 변혁운동의 무기로 삼는 다는 것이었다. 이는 세부적으로 3가지 운동 흐름으로 표현되었다.

 

1) 정보통신기술과 정보재의 사유화저지

앞에서 우리는 장황하게 PC통신부터 시작된 정보운동의 역사와 남한에서의 통신 산업의 발전을 설명했다. 그리고 가급적 두 가지 맥락을 병렬적이면서 상호대립적인 관계 속에서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통신망이 국가주도로 개발된 공공재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또 한편으로는 폭력기구인 국가의 감시와 폭력에 저항하면서 운동의 영역을 확장해왔던 운동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국가의 공적자원이-세원- 투여된 공공재로서 구축된 통신망이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재편과 맞물려 급속히 사유화되어 왔던 과정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진보넷은 이렇게 정보가 사유화되고 자본축적의 도구로 발 빠르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정보재는 기존의 상품과 질적으로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사용할수록 가치가 마모되는 기존의 상품과 달리, 정보재는 사용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보재는 음악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상품으로만 평가될 수 없는 사회/문화적 공유를 전제로 한 사회/문화적인 공공의 자산이기도 하다. 원래 지적재산권은 이런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한 공공의 보상제도였지만, 정보재가 자본축적의 도구로 급속히 변질되면서 지적재산권은 피해보상의 개념으로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진보네트워크는 정보재의 사적소유에 반대하고, 공공재로서 모든 민중에게 공유됨으로써 그 온전한 가치가 드러나는 정보재의 속성에 주목하였다. 정보운동SING으로부터 이어져온 CopyLeft운동으로 시작하여 지적재산권문제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연구/활동하기 위한 IpLeft를 1999년 발족시켰다. 이후 1999년 MS독점반대운동, 2000년 삼성 BM특허 반대 기획소송, 소리바다등의 P2P서비스에 대한 과도한 지적재산권반대투쟁, 폭력적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 반대, 디콘법 반대운동, 2003년 WTO반대 투쟁을 해왔다. 2004년에는 CopyLeft운동을 보다 체계화시킨 ‘정보공유라이선스’를 발표하였으며 이후 특허법과 저작권법 개정운동 및 개정안 대응운동을 벌여왔으며 2006년부터는 ‘한미FTA 지적재산권 대책위’ 활동을 해오고 있다. 우리가 특히 특허법과 저작권법에 주목한 이유는 이두가지 법 모두 단순한 피해보상이나 권리보장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매우 한시적인 권리이며, 특히 공정이용이라는 면책사유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법의 취지가 지적재산을 사회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사회의지의 표현이다. 진보네트워크는 애초에 정보공유를 기반으로 한 정보재가 신자유주의의 자본축적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에 반대하고, 정보재의 사회적 공공성에 대해 강조해왔다. 그런 면에서 최근 세계화추세에 맞물려 강화되고 저작권과 특허법은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었다.

 

2) 아래로부터의 혁명 인터넷.

90년대 인터넷은 두 가지 점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주목 받아왔다. 첫째는 인터넷은 그 시작부터 민족국가의 틀을 벗어나 그자체로 전세계적인 연대가 가능한 미디어라는 점, 그리고 과거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이분법적인 근대적시선과도 구별된다는 점에서 대안미디어로 평가받아왔다. 또한 계급, 성별, 신체적 차별에서 벗어나 모든 민중들의 평등하고 직접적인 참여가 보장된다는 점과, 이를 통해 과거 지배권력의 정보의 독점에 기인한 지배전략을 깨트릴 수 있는 혁명의 무기로 인식되기도 했다.

 

둘째는 자본의 세계화와 관련이 있다. 자본의 세계화는 ‘전세계적인 사회적 관계의 강화’를 의미한다. 즉 세계화는 단순히 자본과 상품 그리고 노동력 이동의 전 지구적 확장뿐만이 아니라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을 구축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자본이동의 시공간 단축이라는 절대 절명의 지상과제는 지역적 한계에 제한받지 않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이 단순히 정보전달 도구의 지위에서 쌍방소통과 공동체를 지향하는 미디어로 그 지위를 격상된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맥락이 상호 공통점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산관계를 지향하는 모순의 지점으로 보았다. 진보네트워크는 인터넷이 아래로의 혁명의 무기로서 발현되기를 욕망했다. 97년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저지투쟁 당시, 총파업통신지원단은 네트워크가 국가와 자본의 권력외곽에서 기존권력을 전복시킬 수 있는 소통과 연대의 도구임을 보여주었다. 진보네트워크는 이런 네트워크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98년 시작되었고 크게 세 가지 경향으로 드러났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대중운동조직이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자원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인터넷의 멀티미디어적 실험과 대안미디어로서의 모색이었다.

 

초창기 인터넷은 그동안 주류미디어가 애써 외면하던 민중들의 투쟁을 온전히 드러내고 저들이 왜곡 축소하던 사건들에 대한 폭로와 고발에 주력하였다. 1999년 지하철노조 파업 통신지원단 활동과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시 공권력에 의한 조합원폭행 사건을 고발하여 대중운동으로 확장시켰다. 이것은 단순히 기존의 대중운동의 효율적인 선전선동의 수단이기도 했지만 당시의 미디어생산 방식은 과거 주류미디어의 생산방식을 극복한 실험이기도 하였다. 과거 생산자-언론/방송사의 기자-와 소비자-시청자/구독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와해시키고 현장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아래로부터 컨텐츠를 생산하고 이를 전국적/전세계적으로 유통하는 쌍방향적인 방송과 미디어로서 자신을 증명한 것이다. 이는 과거 지배세력의 독점적 소유였던 정보와 미디어를 민중들이 아래로부터 직접 전취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대의제적 국가시스템과 공공성을 동일시하던 편협한 공공성의 의제를 민중직접참여적인 공공성으로 확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초창기 실험들은 2002년을 즈음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에게 그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면서 다시 대의제적질서와 시장질서내로 재포섭 된다. 군부독재시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언론개혁운동진형은 인터넷의 권력 해체적인 성격에 주목하여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온라인신문에 주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2년 노무현 정권과 2005년 신문법 개정으로 주류미디어로 제도화하는 과정을 겪는다. 이는 한편으로는 인터넷을 대의제적 질서 내에서의 공론장으로 격상시킨 것이자 한편으로는 대중 참여적이고 직접적민주주의의 장이었던 미디어를 대의제적 틀로 다시 제한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2005년 신문법 개정은 한편으로 인터넷언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가능하게 하여 일면 공공성이 확대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보다 엄격한 과거 언론의 기준을 강요하여 민중의 자발적인 참여행위에 대한 규제장치를 마련하여 참여 지향적인 공공성을 제한시킨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인터넷언론을 광고시장으로 내몰아 자본주의 일반의 이해에 복속시킨 것이기도 하다.

 

더욱 주목할 점은 2003년을 기점으로 포탈서비스가 급속하게 인터넷을 평정하기 시작한 점이다. 1997년 ‘야후코리아’를 시작으로 초기 포탈은 검색, 메일, 커뮤니티 전문형 사이트들이었지만 2003년 <미디어 다음>의 등장은 포탈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하게 된다. 포탈의 강력한 접근성과 집중화 현성에 따라 뉴스의 소비패턴도 포탈로 집중화된 것이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과 같은 인터넷언론이 온라인 저널리즘에 불을 지폈다면, 포탈은 모든 언론을 모두 불살라먹는 통합적 저널리즘을 완성시켜버렸다. 즉 일반통신사업자인 포탈이 한국에서 중요한 정치, 사회적 의제를 아우르는 미디어 권력의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포탈의 권력수렴 현상은 단순히 언론시장의 왜곡문제만은 아니다. 포탈은 기본적으로 이용자가 생산한 컨텐츠로 운영되는 서비스이다. 문제는 포탈사업자가 이런 이용자컨텐츠에 대해 일정부분 저작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온라인상의 모든 컨텐츠에 대한 불공정한 수집행위이자 독점적 권력을 누리는 것이다.

 

당시 진보진영의 대응은 격랑 치는 미디어시장에 지분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04년 총선을 기점으로 진보넷은 미디어의 커뮤니티-언론-개인 트라이앵글 전략을 수립하고, 과거 진보넷의 하나의 서비스였던 뉴스와 방송을 <미디어 참세상>으로 확대하는 한편 시청자지원채널 R-TV에서 방송을 시작하여 방송시장으로의 진출도 모색한다. 그리고 2005년 별도의 법인으로 독립시킨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다시 제도화되는 인터넷과 그리고 보수화되는 노동운동진영으로부터 다시 아래로부터의 미디어역량을 창출하고자 모색하기 시작한다. 2004년 블로그 서비스는 개인의 다양성과 조직되지 않는 사회의 공공적 의제와 욕망을 발굴하고 모색하기 위한 네트워크로서 기획된 것이다.

 

초창기 인터넷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성격과 그것의 직접민주주의적인 공공적 의제에 주목하였지만 오늘날 포탈 중심으로 재편된 미디어환경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 인터넷은 시장 친화적이고 주류 대의제적 정치 질서의 동원시스템이다 못해, 대중들의 민족주의적 욕망이나 성차별적인 성향들을 가감 없이 표출하고 때로는 소수자에 대한 내면의 짐승 같은 폭력성향을 과감하게 배설하는 공간이다. 참여적 미디어의 공공성은 소수자의 목소리가 배제되지 않는 다양한 목소리가 소통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현재 포탈이 수집/편집하는 미디어는 과거 주류미디어의 확대재생산에 다름 아니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7세기 상인들의 자발적인 필요에 의해 사용되던 인쇄매체가 당시 민족국가형성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민족국가와 대의제적 틀 내로 수렴되면서도, 한편으로 19세 말~20세기 초 사회주의 혁명의 기운 속에서 대중조직의 자발적인 언론활동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것을 상기해보면, 현재 인터넷은 초창기 새로운 매체에 대한 기대 속에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던 시기를 한참 지났다고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포탈을 비롯한 인터넷을 새로운 주류 미디어로 규정하고 그것에 걸 맞는 전선구축과 대응전략을 논의해야 할 때이다. 과거 진보넷은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에 대하여 자유주의적인 전략을 취해왔다. 국가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주장해왔지만 이는 한편으로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기대의 표현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우 시장친화적인 노선이기도 하였다. 진보넷은 과거 운동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한편으로는 대안미디어로서 진보진영의 튼튼한 진지를 구축해야 하는 것은 과제와 더불어 포탈과 같은 독점미디어 공간에 대한 해체투쟁을, 또 한편으로는 전체 미디어시장의 문제점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보다 포괄적인 정책운동이나 대중운동이 필요한 시점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3) 표현의 자유 수호와 국가 및 자본에 의한 감시 강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진보넷 출범의 가장 큰 동기가 과거 PC통신 시절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사업자에 의한 감시 검열문제였다. 진보넷은 지난 10년 동안 한편으로는 게시판 운영원칙을 제정하고 민주노총 등의 대중조직과의 연계를 통해 진보진영 게시판의 민주적인 운영을 위한 모델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기도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국가의 감시와 검열에 저항하고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를 수호하려는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고 자평한다. CCTV등의 노동 감시 대응, 의료정보화분석, KT 노동 감시 문제, 삼성SDI 위치추적 등의 노동 감시 문제, 전기통신사업법 54조의 폐지운동, 선거 시기 표현의 자유 운동, 통신질서 확립법 반대운동, 정보통신윤리위원회 폐지운동, 청소년유해매체 등급제 대응, 인터넷 실명제 반대운동 및 선거 시기 실명제 반대운동(선거법), 국가보안법 반대 운동, 전기통신망법 반대운동(임시조치, 북한게시물 삭제명령), 통신비밀보호법 대응, NEIS 거부 투쟁,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입법 운동, 지문날인반대운동, 전자건강카드 반대운동, 전자주민카드반대운동 주민등록법 개정 운동, 생체여권 반대운동 등. 정보인권이라는 기치아래 그동안 셀 수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전장을 치러왔다.

 

인터넷 초창기부터 국가기구는 이 미디어가 통제하고 감시하기에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간파했다. 과거 전통적인 매스미디어들이 비록 지난한 투쟁을 통해 상대적 자율성과 권력을 확대해왔지만 궁극적으로는 법률과 행정기관들에 의해 효율적으로 통제되어 왔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자체로 일국적 수준을 벗어난 것이며, 기존의 대의제적 의사결정과정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의구심을 처음부터 받아왔다. 당연한 것이다. 남한에는 이미 1992년에 인터넷 국가감시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미국에서도 1996년 인터넷을 방송과 동일하게 취급하고자 하는 취지의 연방통신품위법(the Communication Decency Acc: 일명 CDA)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이런 정부의 노력들은 초창기 대부분의 실패를 경험한다. 1997년 미연방대법원은 연방통신품위법에 대하여 위헌 판결을 하였으며, 2002년에는 한국에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불온통신 조항도 위헌판결을 받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존립 근거를 흔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과거의 지난한 싸움은 지속적으로 수세로 내몰리는 싸움의 연속이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포탈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비난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국가기구에는 다시 회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해방이후 한국의 주요 사회통제 이데올로기는 반공과 불온이었다. 하지만 87년 민주화투쟁 이후, 과거 반공과 불온의 이데올로기는 점차 축소되고 각 사회분야에서 감시와 검열 그리고 통제의 틀은 느슨해지고 자유는 확대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검열을 담당하던 관료조직들은 살길을 모색했고,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신천지를 발견했고 포탈을 비롯한 인터넷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과 악성 댓글로부터 명예훼손피해를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신천지에 완전히 자리를 틀었다. 이러한 노력은 눈물나게 가열찬 것이었고 최근의 포탈규제논쟁은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전쟁을 명분으로 각종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법률들은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이렇듯 인터넷을 둘러싼 대부분의 감시통제 기술과 법제도는 거의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대리인으로써의 국가기구가 일반 민중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국가의 개입은 곧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경험적으로 입증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국가와 자본의 관계는 보다 복잡해졌다. 자본의 주도권을 더욱 강화되었으며 국가로부터의 감시문제가 문제가 자본 스스로에 의한 감시와 검열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다음카페에 개설된 이랜드 비정규직노동조합 카페가 임시 조치된 사건이나, 삼성비자금관련 김용철 변호사 폭로사건으로 전국이 들끓던 당시 네이버 뉴스면 초기화면에서 단 한 줄의 기사도 찾을 수 없었던 일들은 상징적인 사건들일 뿐이다. 또한 국가기구가 국민의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것 못지않게 기업들 스스로 수집하는 개인정보와 재판매를 통한 개인정보관리와 통제전략은 향후 방통융합 그리고 유비쿼터스 시대에 자본에 의한 민중들의 직접통제라는 위험을 내포한 것이다. 즉 이제 국가기구가 문제는 아닌 것이다.

 

4. 미디어환경의 변화와 미디어융합

1) 독립네트워크의 위축

1998년경의 독립네트워크는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감시와 통제받지 않는 네트워크라는 정치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정보화의 지원의 의미를 강하게 함축하고 있었다. IT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사회운동진영 대부분은 시장메커니즘 속에 편입된 최근에도, 독립네트워크는 주로 국가와 자본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정치적 의지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검열반대라는 정보인권 담론을 지칭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운동 전반의 변혁운동과 연대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독립네트워크운동은 점차 개별화되었다. 이는 첫째로는 IT기술 발전과 시장의 확장, 둘째로는 한국사회의 정상화, 그리고 진보진영의 정치적 분화가 가속화되는 사회적 변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진영의 인터넷에 대한 관료적 접근 태도들이 맞물린 결과이다. 시민운동진영의 성장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 속에서 대다수 주요정치/시민운동진영은 일찌감치 독자서버를 운영해왔으며, 최근 노동운동 내 정치적 분화 속에서 민주노총 등도 독자서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로 전환되는 노동운동의 흐름역시 독자서버의 필요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IP주소를 저장하지 않고 공권력의 개입을 일체 거부해왔던 과거 단일한 전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나 노동운동 진영의 경우 인터넷을 과거처럼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미디어로 활용하기 보다는 관리하고 통제해야할 미디어로, 관료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관료주의적인 경향은 한편으로는 홈페이지에 대한 자체 역량을 강화하기보다는 시장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고, 또 한편으로는 자유게시판에 대한 통제와 감시기능-IP 주소 저장 등-을 요구하며 결과적으로 국가와 자본에 의한 통제시스템에 편입될 우려도 강화시킨다.

 

2) 인터넷과 통신 시장의 독점과 미디어융합

진보운동진영이 각자의 진지로 해체되고 관료화되는 동안, 자본의 독점과 국가의 통제전략은 통합적으로 구축되어 왔다. 이제 인터넷은 독점 시장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주류 상업 미디어이다. 최근 ‘방통융합’이라 불리 우는 미디어 융합 국면은 이런 경향이 만들어낸 질적 변화이다. 미디어의 융합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IP-TV에서 선보여지는 멀티미디어 기술-다중컨텐츠 전송기술이나 VOD서비스들-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서비스이다. 방통융합은 기술의 새로움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새로이 창출되는 시장에 대한 구획 설정과 법제도 정비의 표현이다. 이미 통신망과 인터넷은 KT 등의 망사업자와 포탈 등에 의해 독과점이 형성된 포화시장이다. 지금 방통융합과 관련한 일련의 논쟁에서 새로운 것이라고는 사실상 방송서비스를 하고 있는 통신서비스사업자에게 공식적으로 명함 하나 제대로 파주는 것밖에 없다. 방통융합이 마치 최근의 이슈처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정통부나 KT등의 통신사업자들은 NgN, BcN등의 새로운 국가기간통신망 구축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이미 2010까지 구축을 완료한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설정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방통융합서비스라 불리는 IP-TV등은 이렇게 새로 구축되는 국기기간통신망건설과 이를 통한 새로운 시장창출이라는 일련의 목표 속에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통신과 미디어 산업의 과잉 축적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자본은 이미 새로운 시장창출로 그것을 돌파하는 것까지 그려두고 있었던 것 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와 같은 장밋빛 전망은 단순히 몽상가들의 호들갑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무모한 도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자본가들의 투철한 도전정신이었던 것이다.

 

방송과 통합을 아우르는 독점의 고도화는 결과적으로 자본에 의한 정보와 컨텐츠의 독점을 심화시킬 것이다. 공유에 기반 한 정보재 고유의 대안적 생산관계를 무력화시키고 저작권의 틀 속에서 폐쇄적이고 일방향적인 망으로 다시 회귀하려 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용자의 표현을 제한하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저해하고 오히려 대중동원의 기재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경향은 이미 여러 군데에서 증명되어 왔다. 포탈들이 인터넷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 획득한 이후 나타난 일련의 사례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황우석 사태’나 영화 「디워」 논쟁에서 보듯이 많은 논객들이 포탈을 통한 대중의 자발적인 국가주의에로의 동원,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에 너도나도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말들이 많다고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님을 보여준 이런 사례들은 인터넷이 과거보다 빅브라더에 의한 대중동원을 더욱 쉽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이는 시장의 독점에 의한 인터넷구조의 왜곡 때문이다. 포탈의 독점적 지위는 결국 인터넷의 다양성을 위축시킨다. 과거 많은 진보진영이 독립적인 홈페이지의 구축과 독자적인 소통공간을 중요히 생각했지만, 이제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모든 온라인 활동이 포탈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포탈에 집중될수록 정부와 기업에 의한 감시와 통제는 더욱 용이해진다. 망과 플랫폼의 독점의 문제는 단순히 자본에 의한 시장지배라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담론과 문화 그리고 컨텐츠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국가와 자본에 의한 감시를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매개로한 자본의 대중 동원기재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모든 문제를 독점자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대중 동원의 기재로 작동하는 것이 인터넷이라는 기술과 포탈의 서비스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참여가 보장된 UCC 서비스를 보자. 과연 그곳은 이용자가 직접 생산한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컨텐츠가 유통되는 대안의 공간이던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포탈의 UCC 서비스는 크게 세 가지 컨텐츠 시장에 기반하고 있다. 우선은 방송컨텐츠의 2차 소비시장(하이라이트와 스타 컨텐츠), 둘째는 음성적으로 유통되던 불법 영상 컨텐츠를 시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자체시장인 스타 발굴/육성 시장이다. 물론 간간히 주류담론에 균열을 내고 다른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컨텐츠가 올라오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절대적인 양에서 부족하다. 이는 자본의 전략이기에 앞서 대중들의 상상력과 생산력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빈약한 탓일 것이다. 미디어융합이 우려스러운 점은 바로 이런 독점의 문제를 심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자본과 국가의 통제모델 변화

미디어의 융합은 인터넷을 포함한 미디어의 환경의 변화 크게는 통신자본의 방송진출이라는 자본시장 측면의 의미뿐만 아니라, 방통융합기구로 통합되는 국가기구모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방송과 인터넷을 아우르는 통제와 관리시스템을 정비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미디어와 예술영역은 과거 군부독재시대에 비하면 상대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인터넷의 통제장치들은 과거와 세 가지 면에서 크게 다르다. 첫째는 그것이 기술 중심 적이라는 점이다. 과거 경찰의 수사방식에 비해 인터넷을 통한 수사는 글게시자나 개인정보주체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루진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감시 프로그램의 경우 네트워크 이용자는 전혀 인지하지 못한 체 이루어진다. 둘째는 사업자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직접 규제보다는 간접 규제의 형태로 사업자로 하여금 직접 감시의 주체로 역할 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법이나 공권력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사업자 스스로가 더 이상 감시대상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활동을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절차에 얽매인 공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화하려는 경향과도 맞물린 것이다. 이제 기업은 조합원들의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애써 국가기구에 의존하지 않는다. 휴대폰이나 CCTV 그리고 웹의 접근기록을 통해 스스로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감시의 사회적 확대, 또는 내면화 과정이기도 하다. 셋째, 인터넷의 특성상 인터넷의 감시체계는 그 자체로 범세계적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이는 감시체계의 세계화를 동반한다. 네트워크 모니터링을 위한 국제적인 기술 표준부터, 각국의 수사공조 체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정세들은 우리로 하여금 총체적인 혼란으로 몰아놓고 있다. 국가의 감시체제 강화는 물론 자본에 의한 민간감시체제의 강화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가에 의한 정보통제와 대중동원체제보다는 자본의 독점에 의한 정보독점과 대중동원체제가 더 문제시 되고 있다. 그간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너무 추상적으로 다뤄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의 도구로서 정보통신기술이라는 설정은 너무 환원론이며, 국가의 감시와 통제에 대한 반대 투쟁은 여전히 ‘국가와 개인’이라는 근대적 시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개별적인 자본의 독점과 감시기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총의로서 어떤 공적영역을 통한 견제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한편, 공적 기구의 비대화를 통한 해결은 민중에 대한 국가에 의한 직접적 통제라는 양날의 검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인터넷이라는 대안적 미디어를 지켜내고, 정보인권이라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국가배제적인 노선을 견지해왔지만, 앞서와 같은 여러 정황들은 우리에게 공적 영역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란 해 묶은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만일 우리가 근대적 이분법을 잠시 벗어버리기로 하고, 국가/자본/노동/사회운동/공동체/개인 등 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주체들의 운동이라는 관점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면, 이런 다양한 주체들은 비록 상호 계층적이면서도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때로는 적대적일수도 있는 매우 정세에 민감한 관계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한 사회의 운동이 이런 다양한 주체들의 상호 대립적이면서도 상보적인 운동 속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한다면, 자본의 독점과 국가기구의 사이에서 전술적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국가기구의 개입을 견제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진보적인 의제들을 공적 영역에 확장함으로써 자본의 독점에 저항하고, 자본의 독점에 대한 배타적인 저항을 하면서도 국가기구에 대응하기 위해 그들을 견인할 대안담론과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5. 미디어의 공공성 의제

인터넷이 비록 계속 협소화되고 대안미디어로서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넓게 보자면 여전히 가능성이 충분한 공간이다. 여전히 인터넷은 넓고 대안의 공간도 충분하다. 우리는 초창기 인터넷이 그러하였던 대안미디어로서, 자본주의적인 생산과 소비의 관계에서 쌍방향성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생산관계와 삶의 다양함과 풍부함으로서 인터넷의 가치를 지켜내고, 미디어를 민중의 손으로 끌어내려 ‘아래로부터의 끊임없는 혁명’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를 위해 우리는 앞으로 미디어의 융합과 발전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몇 가지 의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1) 다양성

앞장에서 이야기 했듯이, 포탈의 근본적인 문제는 언론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독점적 지위에 근거한 정보수탈과 정보독점, 그리고 정보배제 문제이다. 방송과 포탈에 정보의 노출빈도를 높이는 것이 대중과의 담론의 소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경로라니, 초기 인터넷이 그 자체로 다양성의 상징이었던 것에 비하면 얼마나 수세적인가?

 

우리는 포탈의 인터넷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해체하고, 정보의 가치와 권력을 이용자에게 되돌려주는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포탈이 가지는 정보의 독점권은 부당한 것이다. 포탈에 넘쳐나는 정보는 모두 이용자가 생산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IN의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그 공간에서 향유하는 민중이 스스로 창출한 지적 성과물은 온전히 이용자들의 것이다. 따라서 지식IN의 컨텐츠에 대한 지적소유권과 활용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이용자들의 것으로 되돌려져야 한다. 포탈은 단지 그 공간을 임대해줌으로써 얻는 광고수익만으로 초과수익을 얻는 것이다. 또한 현재 수렴형, 폐쇄형인 포탈서비스를 개방형으로 바꿔내어야 한다. 그리고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포탈사업자들은 컨텐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위한 지면배치를 해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 이것은 인터넷의 다양한 컨텐츠가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며, 그것은 인터넷이 다시금 다양한 욕망과 대안의 모색공간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며 포탈사업자가 이용자들과 공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세상에는 포탈서비스와 같은 단일하고 규격화된 플랫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세상에 Window XP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그 외에도 다양하고 대안적이며 실험적인 플랫폼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날 유명한 구글이나 유투브등이 만들어진 과정은 단순히 그들만의 힘이 아니었다. 오픈소스등의 참여적이고 공유에 기초한 개발환경과 실험들이 없었다면 과연 그들이 가능했을까? 아니 인터넷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했을까? 인터넷의 풍부한 발전은 소통하고 싶은 소박한 욕망들이 담겨있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플랫폼과 서비스에 있다. 이런 다양한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들을 단순히 시장에만 내몰 것이 아니라, 대안적이고 창의적인 욕망과 지적자산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계가 보다 활성화되어야만 한다.

 

2) 문화의 향유권의 보장과 참여보장

둘째는 방통융합국면이라 불리 우는 국면이 단순히 시장의 강화와 활성화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IP-TV등의 새로운 융합서비스가 UCC 서비스처럼 소비지향적인 시장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2002년 즈음의 대중들의 인터넷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주류미디어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배우고 터득한 기성질서에 대한 모순과 대안적인 가치에 대한 자기표현 때문이었다. 또한 그동안 누리지 못해왔던 다양한 문화적 가치에 대한 향유와 다양한 공동체적 삶에 대한 향유 때문이었다. 멀티미디어컨텐츠가 주류컨텐츠로 떠오른 융합미디어에 대해서도 민중들은 같은 것을 꿈꾼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다양한 컨텐츠를 통한 문화의 다양성을 체험하고 그를 통해 계급, 성별, 신체의 제약 없이 평등하고 다양한 공동체적 경험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협하는 몇 가지 우려 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자본의 세계화와 맞물린 지적 재산권의 강화문제이다. 이는 단순히 초국적 독점자본의 수탈체계이기도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고자 욕망하는 대다수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없다. 결국 문화와 역사라는 토대위해 재구성되는 것이고 그것의 공유야 말로 창조의 기반이다. 앞으로 지적재산권이 강화되면, 어쩌면 우리는 게시판에 글을 쓸 때마다 영상을 편집할 때마다 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만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지적재산권의 강화는 모든 생산활동을 자본주의적인 관계로 재구성해내려는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이런 위협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지적재산권이 적절한 수준에서 제한적일 필요가 있다. 원래 특허권과 지적재산권은 피해보상이나 배타적 정보독점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는 원래 지식을 널리 공유하도록 장려하고, 창조적인 활동에 대한 적절하고 제한적인 사회적 보상을 해주기 위함이다. 즉 사회의 지적 자산을 공유하기 위한 공공의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초국적 자본의 논리에 개인들의 지적공유와 향유의 권리가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둘째는 이런 지적재산권이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되기 위한 공정이용이 확대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언론사나 방송사는 공정이용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경우 지적재산권의 예외적 활용으로 혜택을 입고 있다. 하지만 실제 컨텐츠의 생산자인 시민운동진영이나 다수의 대중은 해당 방송과 기사를 활용할 수 없다. 심지어 자기 홈페이지에 퍼 나를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비영리적이고 사회의 공적인 목적으로 생산된 컨텐츠에 대해서 사회적 지원을 확대하고 공정이용으로 다수의 대중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보와 지식의 공유를 장려하는 대안적인 생산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실험들이 필요하다. 사실 대부분의 지적생산물은 사적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애초에 민중의 것이었으며, 민중들의 세금에 의한 공적자원의 지원을 받은 것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러한 컨텐츠들, 예를 들어 공영방송의 컨텐츠나 공적지원에 의한 공공의 컨텐츠들은 반드시 사회의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대안라이센스 운동이 보다 확장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운동 진영도 마찬가지이다. 근시안적인 자기생존 논리 속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3)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강화되는 국가기구에 의한 통제와 감시의 강화는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일국적 수준의 문제가 아니며 최근 전자여권문제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전 세계를 나와 적으로 구분하고 전세계적 수준에서 자본과 노동력 그리고 정보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이는 단순히 국가 검열기구의 강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국 자본에 의한 민중의 직접 통제를 강화하려는 자본의 욕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 CCTV나 생체인식과 같이 작업장내에서의 감시문제는 이랜드 노조 사태에서 보듯이 이제 단순히 작업장내에서의 물리적인 통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정치적 입장에 대한 의사표현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권리에 대한 투쟁인 것이다. 개인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대의제적 민주주의 틀의 한계를 보안하고 때로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사회가 진보적으로 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조건이다. 또한 익명성도 보장되어야 한다. 익명성은 한 개인이 자신의 계급과 학력 그리고 성별과 신체적 차이를 넘어서 평등하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도록 하는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악성 댓글을 차단하겠다는 하지만 실제 차단되고 있는 것은 개인의 정치적 의사표현이지 연예/스포츠 면에 실리는 악성댓글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이러한 실명제의 폐해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이번대선에서의 선거법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오히려 국민의 발언을 제한하는 관료적인 접근이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퇴행적인 악법이다. 한국에서 실명제가 위력적인 이유는 주민등록번호라는 전 국민 단일 인증체계 때문이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 시스템은 과거 오프라인에서의 유사시 신분증명과 이동통제의 기능을 뛰어넘어 온라인에서의 실시간 감시가 가능하게 하는 진정한 빅브라더이다. 우리는 주민등록번호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최소한 그것의 사용은 감시가 아니라 유사시 신분증명과 같은 소극적 의미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온라인에서의 단일한 개인증명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를 불가피하게 제한하여야 할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반드시 사법적 판단에 의한 엄격한 것이어야 한다. 행정기관에 사법권을 부여하거나 포탈사업자에게 임시조치를 강제하는 것은 현행 헌법상 명백히 삼권분립의 위반이며 전국가적인 감시체제에 대한 용인에 다름이 아니다. 물론 모든 미디어에 적용되기는 힘들 수도 있다. TV등의 지상파 방송은 미디어의 특성상 일정정도의 심의체계와 행정력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률적인 규제보다는 각 미디어의 특성에 따라 차별적인 규제가 필수적이며, 심의기관도 국가조직이 아닌 민간자율합의 기구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4)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과 개인정보보호

정보화가 진전된 사회에서 살면서 삶의 이기를 위해 일정정도 개인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내가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나의 어떤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반드시 개인이 인지하고 선택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 본인의 의사나 동의 없이 수집되거나 재판매되는 일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위배되는 것이고,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집된 개인정보는 철저히 관리되어 개인정보유출에 따른 피해를 사전에 철저히 막아야 한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많은 금융피해 중에 하나가 이렇게 함부로 유출된 개인정보에 의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노력은 기업들에 자율에 맡겨서는 가능하지 않다. 많은 기업들이 고객의 내밀한 정보를 원하고 기업들의 이익만 일치한다면 언제든지 사고파는 행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기구를 통한 강력한 지원과 규제, 그리고 처벌이 필요하다. 이미 유럽은 오래전부터 독립적인 국가기구를 통해 개인정보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 비하여 한국은 모호한 지원체계와 규제 틀에서 머물러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은 특히나 주민등록번호라는 치명적인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하나의 개인정보 유출은 사실상 모든 정보의 유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정보수집과 관리에 대한 철저한 규제는 그 어느 나라보다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차원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당연한 임무이다. 그런 면에서 개인정보보호는 단순히 민간시장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국가정보원같이 국가 행정기관이 통제받지 않고 개인정보에 접근하고. 필요이상으로 국민의 성향을 판단하고 감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기관은 반드시 국가독립기구체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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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美日 포르노업체 한국네티즌 수천명 고소(저작권)

수도권 경찰서 10곳에 고소장…"추가고소 계획"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 성인용 영상물을 제작하는 미국과 일본의 대표 업체 50여곳이 자사의 영상물을 인터넷을 통해 불법으로 유통해 상업적으로 판매했다며 1만명에 가까운 한국 네티즌을 고소해 파장이 예상된다.

   13일 법조계와 경찰에 따르면 이들 미.일 업체의 저작권을 위탁받은 미국의 C사는 최근 국내 변호사를 선임, 파일 다운로드 사이트에 자사의 영상물을 올려 회원들이 내려받게 하고 돈을 받은 이른바 `헤비 업로더'의 ID 1만개에 대해 저작권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이 업체는 피고소인 수가 많은 점을 고려, 해당 사이트를 운영하는 업체의 소재지를 담당하는 서울ㆍ경기 지역 경찰서 10곳에 나눠 고소장을 냈다.

   한 네티즌이 여러 개의 ID를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고소된 네티즌은 수천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경찰이 `조사 대상 피고소인이 너무 많다'며 업무부담 가중을 이유로 고소장 접수를 꺼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네티즌이 올린 영상물은 `하드코어' 수준으로 노출 수위가 매우 높다고 변호인 측은 설명했다.

   이번 `무더기 고소'에 고소인 자격으로 참여한 업체는 세계 최대의 성인 영상물 제작사인 미국의 V사 등 해외업계에서 대표적인 곳은 사실상 모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C사가 선임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상습적으로 영상물을 사이트에 올려 경제적 이득을 취한 ID 1만개를 추려 고소장을 냈다"며 "현재 확보한 불법 다운로드 건수는 10만건으로 향후 계속 고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포르노 영상물이 인터넷을 통해 청소년에게 무분별 유통되는 관행에도 제동을 건다는 의미도 있다"며 "이를 방조한 책임을 물어 다운로드 사이트를 운영하는 국내 업체 80여곳에 대해서도 민ㆍ형사상 조치를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C사는 그러나 피고소인이 미성년자로 밝혀지면 청소년 선도 차원에서 고소를 취하할 계획이다. 저작권법 위반 행위는 친고죄여서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기소할 수 없다.

 

 

원문 =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d%8f%ac%eb%a5%b4%eb%85%b8%ec%97%85%ec%b2%b4%20%ed%95%9c%ea%b5%ad%eb%84%a4%ed%8b%b0%ec%a6%8c%20%ec%88%98%ec%b2%9c%eb%aa%85%20%ea%b3%a0%ec%86%8c&contents_id=AKR200908121893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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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과 섹슈얼리티 혹은 성산업과의 만남.

 

이데올로기적 표류/은폐/교차/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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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이 발병시킨 문화적 우울증

개정 저작권법이 시행된지 일주일여가 흘렀다. 막상 시행되고 나니 인터넷 3진 아웃제에 대한 논란도 잠잠해졌다. 이제 ‘창작물에 대한 이용자의 권리’와 ‘웹공간에서 표현의 자유’가 가혹하게 침해당하는 일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이에 대응해서 참여연대나 정보공유연대는 3진 아웃제의 위헌성을 문제 삼아 헌법소원을 준비 중에 있긴 하다) 물론 지금까지도 이용자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는 지나치게 많이 침해당해왔다. 개정 저작권법은 그 침해를 극대화 할 것이다. 개정 저작권법의 주 내용은 저작권을 침해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저작권은 정보사회 혹은 지식기반경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없어서는 안될 경제적 장치로 인식되고 있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경제적) 권리를 보장해 줌으로써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핵심 동력으로 취급된다. 우리 주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저작권을 둘러싼 논의는 창작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과 그 방식에 집중되어 있다. 창작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창작의 유발동기가 되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활성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그것은 강력한 법적(처벌)장치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저작권에 대한 강한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두 가지 축일 뿐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일종의 허구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간단하다. 이렇게 질문해 보자. 


저작권은 왜 저자의 권리(author's right)가 아니라 복제의 권리(copyright)인가?

저작물 혹은 창작물은 왜 그리고 어떻게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단속의 대상이 되었는가?

과연 특정인이 문화적 생산물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문화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가?

문화적 생산물을 함께 공유하고 향유하는 것이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저작물은 유일하고 특수한 개인의 온전한 창작물인가?

저작물의 독점적 소유권자로 상상되는 저자란 무엇인가?

저작권을 통해 실재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하나씩 곱씹어 본다면 저작권을 강화시켜온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물론 어떤 질문들은 쉽게 증명될 수 없고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만, 다른 어떤 질문들은 저작권의 역사나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간단한 서술만으로도 쉽게 논증될 수 있다.



정보에 대한 반독점적 권리로서의 저작권


역사적으로 보면 초기의 저작권은 지식이나 정보를 배타적으로 사유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저작권은 15세기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등장했다. 그것은 1496년에 시행된 출판특허제를 그 제도적 효시로 해서 16세기 초에 유럽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저작권은 인쇄술의 발명과 연관되어 있다. 인쇄술이 발명됨에 따라 지식과 지식 창안자 사이의 분리가 이루어졌고, 지식은 창안자로부터 독립되어 남에게 양도할 수 있는 상업적 권리로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에 저작권 제도는 근대 인쇄혁명이라는 사회역사적 조건에서 생겨난 법률적 제도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저작권은 인쇄술의 발명으로 출판업이 발달하면서 넘쳐나는 출판물을 규제하기 위한 제도로 고안되었다.

 

근대적 의미의 저작권법은 1710년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이것이 앤 여왕법(Statute of Anne)이다. 앤 여왕법은 두 가지 의미에서 과거의 저작권법과 질적으로 다른 차별성을 지닌다. 하나는 저작권의 보호기간을 설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자의 권리를 등장시킨 것이다. 앤 여왕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출판업자들은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사는 것은 집이나 땅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므로 출판물에 대한 권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제한 없이 보장되었다. 따라서 출판업자들은 한 번 판매된 저작물의 권리가 아무리 오래되어도 그것을 시장에서 독점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앤 여왕법은 이러한 출판업자들의 독점적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저작물에 대한 권리에 기간을 정했다.

 

그리고 앤 여왕법은 서문에서 ‘의심할 바 없는 재산을 가진 저자의 동의 없이는 어떤 저작물도 출판할 수 없다’고 명시함으로써 처음으로 저자의 권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저작권의 기간 한정이나 저자의 권리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출판업자들의 독점을 깨기 위한 의도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저자(author)라는 개념은 출판 독점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당시의 저작권은 엄밀히 말하면 ‘저자의 권리’(author-right)가 아니라 ‘복제의 권리’(copy-right 혹은 right to print)였다. 저자 개념 자체가 저자의 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출판업자들의 독점적 복제권을 견제하기 위해 네거티브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초기의 저작권법은 반독점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의 권리를 명시함으로써 이제 타인의 소유물과 저자의 소유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 그리고 재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해 졌다. 이러한 상황은 이후 진행된 ‘결정판’ 혹은 ‘전집’의 편집 열기라는 18세기의 사회적 배경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당시에 내가 쓴 글과 타인이 쓴 글을 구별하는 인용부호와 같은 문법적 규칙이 표준화되고 그것의 강제적 사용이 의무화된다. 현대사회에서 사용하는 표준화된 인용부호가 완성된 것이 바로 18세기 후반이다. 18세기 이전에도 인용부호와 같은 것이 있었지만 그것은 표현의 소유자를 규명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8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인용부호는 그 인용된 구절의 소유권이 타인에게 있다는 표시가 아니라 성서나 격언, 속담과 같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읽을 필요가 있음을 표시하는 기호에 불과했다.



저자 살리기 혹은 저자 죽이기


저자란 지식이나 정보가 특정한 개인에게 소유될 수 있다는 관념을 유지시키기 위한 (그러나 실제로는 저작권을 구조화 시키는 중심으로서 기능하는) 허구적 개념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적재산권을 통해 실질적인 이윤을 얻는 소유권자가 창작자로서의 개인에서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크발(Ekbal, B)에 따르면 “지적재산권의 제도화와 함께 개인창작자의 이득은 거대 기업의 이익으로 대체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창작자는 지적재산으로부터 이익을 얻지 못한다. 독립된 발명가들은 종종 무시되거나 착취당한다. 기업이나 정부에 고용된 이들이 보호할만한 가치를 가진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해당 조직의 저작이나 특허가 된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은 독창성과 영감을 가진 낭만적 저자라는 개념에서 자신들의 (일종의 갈취) 행위의 정당성을 찾고 있다. 정보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면 기업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목격할 수 있는데, 그것은 기업이 정보의 소유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의 성립근거가 되고 있는 ‘정보의 창작자가 생산물을 소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창작물이 기업의 소유가 되기 위해서는 창작물의 자기 소유라는 이데올로기가 거부되어야 한다. 그리고 창작자가 창작물을 소유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부정되기 위해서는 창작물이 ‘생산자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창작물이 창작자로부터 분리되어야 ‘개인 생산자의 소유’라는 사실이 부정되고 소유권이 기업으로 이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 창작자의 소유가 부정되고 소유권이 기업으로 이전되는 과정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업무상 저작물(works made for hire)’이라는 형태로 기업이 개인이 생산한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통과정에서 계약을 통해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의 일부나 전부를 양도 받는 것이다.

 

먼저 업무상 저작물에 대해 살펴보자. 18세기 이후 확고하게 자리 잡은 ‘낭만적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창조적 업무에 종사하는 일개 노동자(creative worker)로 전락한다. 저작권법 내에는 ‘업무상 저작물’에 대한 규정이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작품을 창작한 사람은 개인일지라도 작품의 실질 소유자는 이들에게 임금을 지불한 기업이 된다. 이렇게 기업은 작품의 소유자, 즉 저자가 된다. 여기서 저작권자로서의 기업은 창작한 노동자들에게 일정액의 보상금을 주고 그 창작물을 양도받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이기 때문에 그 권리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방송 사업자가 자신이 고용한 방송작가, 소속 배우, 소속 음악가 등 기타 인력과 설비를 투입하여 영상물을 만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러한 경우 방송사업자는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영상저작물 작품은 물론이고 ‘사용된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실연 등에서의 권리’ 등 모든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소유하게 된다. 이때 외부의 독립제작사를 활용하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스스로 자체 제작한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에 방송사업자가 저작권자가 된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만들어진 영상저작물이 향후 다원적으로 활용될 때에도 개별 권리자의 권리는 주장될 수 없다. 더욱이 업무상 저작물에 대한 조항은 저작권법이 개정될수록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정보의 실질적 소유권자가 개인에서 기업(법인)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유통과정에서 창작물의 소유권이 개인에서 기업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자. 상품이 유통과정에 들어가기 위해서 창작자는 판매자가 되어야 하는데 개별 창작자는 직접 판매 활동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 상품의 유통로를 거대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창작자가 판매자가 된다 하여도 거대 기업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창작자는 자신의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서 유통로를 장악하고 있는 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판매의 유통로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이전받는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창작물은 기업소유가 되고 창작물의 판매에 따른 보상은 기업으로 돌아간다. 창작자의 개성은 기업의 자본이 된다.


이처럼 앞서 제기된 질문들을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저작권을 둘러싼 논의가 얼마만큼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간단히 독점이나 보상과 같은 저작권의 경제적 측면만을 살펴보았지만, 그것의 정치적 측면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이에 대해서는 '저작권, 정치에 다가가기' 참조해도 될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 측면이든, 경제적 측면이든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저작권이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협소한 의미의 정치 혹은 경제의 한 측면이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창조성과 같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과 ‘정신적 생산물을 공유하는 문화적 삶’ 그 자체라는 점이다. 저작권법은 우리의 문화적 삶을 치명적인 문화적 우울증에 빠뜨리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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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정치에 다가가기

 
이달 23일 시행되는 개정 저작권법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저작권법의 핵심은 일명 ‘인터넷 삼진 아웃제’라고 불리는 제도의 도입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음악 등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대량 유포하는 업로더의 계정이나 인터넷의 게시판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회 경고 후 최대 6개월까지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이 제도는 사법부의 판단 없이 행정부가 죄를 판단하고 처벌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월권을 내포한 제도이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삼권분립이라는 원칙을 직접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과 관련된 분쟁은 침해사실이 명확히 규명되기 어렵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행정권력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규제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권력자의 시선으로 규제할 수도 있고, 거대 기업의 경우 각종 로비를 통해 행정명령을 무력화 시킬 위험도 있다. 때문에 인터넷 삼진 아웃제는 행정권력에 의한 인터넷 사업자와 이용자에 대한 일방적 통제가 확대될 위험성을 잉태한 제도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은 더욱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논란이 발생하는 지점도 바로 이 곳인데, 그것은 바로 표현의 자유라는 영역이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는 핵심적인 동력이 되는 만큼 문제를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이제 상식을 넘어 식상하고 진부한 것이라 표현될 만큼 기본적인 권리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 정부의 통치하에서는 역대 그 어느 정권보다도 심각하게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이 글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표현의 자유 침해 실태를 모두 이야기 하긴 힘들다. 관심이 있다면 지난달 22일 문화연대를 비롯한 진보넷, 인권운동사랑방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이명박 정부 표현의 자유 침해 실태보고> 기자회견문을 참조하라.)

 

물론 개정 저작권법에서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 삼진아웃제’가 유독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기는 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에도 인터넷 삼진 아웃제(Three strike out policy 혹은 유럽권에서는 graduated response-누진대응) 입법을 추진 중이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이 제도의 입법을 추진했었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 때문에 시민 사회 단체의 주도로 위헌소송이 제기되었고, 결국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지난달 10일 위헌 판정을 내렸다. 프랑스 헌법위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은 인권에 관한 문제”라고 명시하고 개인의 인터넷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은 법원 판사의 판결을 통해서 부여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이와 관련된 일부 내용을 수정해서 이달 8일에 안건을 재상정 했고, 상원 의결을 통과했다. 수정된 내용은 인터넷 접속을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신설되는 정부 전담기구인 아도피(Hadopi)에 두었던 것을 판사에게로 옮기는 것이었다.

 

이처럼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그것을 규제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청소년 보호용 인터넷 차단 프로그램인 그린댐(Green Dam)을 비롯해 호주나 뉴질랜드, 영국, 스웨덴, 일본에서도 비슷한 시도들이 있었다.

 

해외의 사례에서 발견된다고 그 제도가 정당화를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인터넷 규제 법규들은 해외의 사례와 차별되는 독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인터넷 규제 시도가 저작권을 이용해 정치적 맥락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외국의 사례에서 발견되는 삼진 아웃제는 저작권을 어긴 인터넷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개정저작권법은 이용자 삼진아웃뿐 아니라 게시물이 올라간 게시판까지도 삼진아웃 시키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로써 인터넷 상에서 적극적인 정치적 발화가 이루어지던 아프리카 TV나 아고라의 게시판을 활동 정지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 다시 거대 언론사나 그것의 대리 역할을 하는 법무법인들이 시민 단체 등을 상대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는 행위에 대해 저작권 침해 배상 요구를 하고 있다. 신문 기사의 제목만을 노출시켜놓고 이를 클릭했을 때 해당 신문사 사이트로 이동하도록 링크를 거는 행위는 합법이지만, 기사를 스크랩하는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스크랩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토론을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일반적 행위이지만, 그 자체를 불법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특히나 기사 스크랩에 따른 저작권 침해 배상 요구는 재정이 취약한 시민단체를 표적으로 삼아 그 단체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저작권법의 목적은 창작자에게 창작물에 대한 일정한 보상을 부여함으로써 창작 활동을 활성화 시키고 나아가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데에 있다. 창작 활동이란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삼지 않으면 결코 활성화 될 수 없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시행되고 있는, 혹은 앞으로 시행될 저작권법은 창작 활동의 기반이 되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할 뿐만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상황에서 악용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 지금 연출되고 있는 것은 법을 만든 정부가 자신이 만든 법의 원래 목적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테러범도 피해가는 저작권법의 힘


정보를 제3자가 사용한다고 해서 아이디어나 정보의 창작자 또는 보유자가 가진 지적재산은 양적으로 줄어들거나 그 효용이 감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와 정보를 이용할수록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의 후생과 이익은 커진다. 특히 인터넷은 정보를 유통시키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정보의 가치를 증진시켰다. 인터넷의 힘이 가진 긍정성은 타인이 정보에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정보는 소유가 아닌 공유를 통해 가치를 증진시키며, 정보기술의 혁신은 공유 문화를 확산 시킬 수 있는 기술적 배경이 된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과 내가 사과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서로 교환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나와 당신은 각각 하나의 사과를 가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과 내가 아이디어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서로 교환 한다면 우리는 두 개의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역시 “내게서 어떤 생각을 전달받는 사람은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지만, 그로 인해 나의 지식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는 내 촛불에서 자기 초에 불을 붙여 간 사람은 빛을 얻게 되지만, 그로 인해 내 주위가 어두워지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고 말한다.

 

버나드 쇼나 제퍼슨의 말은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 결코 지식 혹은 그것의 사용에 대한 독점이 아니라 공유와 나눔이라는 점을 가리킨다. 저작권법은 이런 의미에서 문화 발전에 대한 기여라는 자신의 목적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저작권법은 창작물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끊임없이 권리자에게 귀속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창작물에 대한 권리가 창작자가 아닌 그 권리를 사들이거나 양도받는 기업에 귀속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창작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창작자는 자신의 창작물을 유통시키기 위해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기업에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의 일부 혹은 전부를 해당 기업에 (계약을 통해) 양도해야하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작권의 왜곡된 법 체계보다 더욱 위험해 보이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저작권이 물질적 영역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영역에서 작동한다는 점이다. 저작권법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등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잘못 악용될 경우 극도로 위험할 수 있다. 유나바머로 알려진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의 사례에서 이러한 위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유나바머는 대학과 공항을 중심으로 폭탄테러를 자행한 테러리스트이다. 유나바머는 1995년 테러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유력지에 과학문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과학기술문명비판논문 게재를 요구했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지에 그의 논문이 실렸다. 이것이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제목을 가진 유나바머 선언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선언문의 각주 16번에는 “만약 저작권법이 문제가 되어 게재가 불가능하다면 주16을 다음 문장으로 바꿔주기 바란다”는 구절이 나온다. 유나바머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거의 20년 동안 16차례에 걸친 폭탄테러를 행한 현대 사회의 가장 위협적인 테러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폭탄테러라는 강력한 무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저작권법 때문에 자기 글이 실리지 못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선언문에서 그는 자신의 테러를 하나의 혁명이라고 말하며 “혁명의 목표는 정부의 전복이 아니라 현존 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테크놀로지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현대사회를 병들게 한 것은 각종 테크놀로지라고 비판하는 극단적인 기술혐오주의자였고, 주된 테러 대상도 대학에서 테크놀로지를 연구하는 학자였다. 문제는 그의 공격 대상인 각종 테크놀로지가 자신이 존중하는 저작권이나 특허와 같은 지적재산권을 통해 보호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96년 체포 당시 그는 산골 오두막집에서 전기와 수도도 없이 살고 있었다. 그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현대문명을 등진 채 살고 있을 정도로 테크놀로지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지만, 정작 그것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지적재산권을 문제 삼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처럼 저작권과 같은 지적재산권은 인간의 의식 영역에 침투해 내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나바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인간 내면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저작권의 위력이다. 앞서 지적했듯 저작권법의 강화는 창조성과 같은 (협소한 의미의) 문화적 퇴보를 야기시킬뿐 아니라 특정 정치적 맥락에서 이용될 경우 법적 감시와 통제 그리고 처벌을 통해 정치적 개인들이 가진 비판의 언어를 탈각시키는 기재로도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즉 정치적 맥락에서 기능하고 있는 저작권법 집행 및 개정의 방향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입증하는 하나의 증상처럼 보인다. 이제 저작권법은 단순한 하나의 규제가 아닌 듯하다. 그것은 민중의 정치적 삶의 방식을 강제적으로, 그러나 내면 깊숙이 변화시키는 정치적 매개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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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 기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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