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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살다가 가끔 생각나는 고향집같다

10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7/18
    봄-1
  2. 2011/06/27
    엄마는 무엇을 왜 챙피해할까?
    봄-1
  3. 2011/06/27
    아침 꽃잎
    봄-1
  4. 2011/06/14
    올해 솔방울 잣방울들
    봄-1
  5. 2011/04/19
    지금 벚꽃나무에는
    봄-1
  6. 2011/04/11
    엄마생각
    봄-1
  7. 2011/03/01
    2011년삼일절마라톤대회
    봄-1
  8. 2010/03/08
    봄-김기택시
    봄-1
  9. 2010/01/05
    한계령 연가(2)
    봄-1
  10. 2009/12/12
    생선반토막
    봄-1

천성을 바꾸어 놓는 힘-햄릿

 

   천성을 바꾸어 놓는 힘

 

 

 

 

                                                                 Refrain tonight,
                              And that shall lend a kind of easiness
                              To the next abstinence; the next more easy;
                              For use almost can change the stamp of nature,
                              And either master the devil, or throw him out
                              With wondrous potency.


                                                                            (Hamlet  3.4.167-172)

 


                              오늘 하룻밤 참고 극기해 보시오.
                              그러면 내일 참기는 한결 쉬워지고
                              그 다음엔 더더욱 수월해진다오.
                              대저 습관이란 천성을 바꾸어 놓는 법,
                              비상한 힘이 있어
                              악마를 굴복시켜 몰아내 버리지요.
                                                    

                                                                (『햄릿』3막 4장 167-172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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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그친후에 비친 얼굴

봄비그친후에 비친 얼굴

 

봄비에 초목이 기뻐서 운 날이다. 가뭄이 해갈되면서 사람도 풀씨도 좋아하였다. 빗물이 뭉쳐서 흘러가는 웅덩이마다 송화가루가 노랗게 떠있다. 마치 수채화용 노란물감을 개어놓은 것 같이...... 붓을 대고 흠뻑 찍어서 허공에라도 그릴것이 있다. 얼굴......

오늘은 막걸리에 파전. 그것이 그립다.

오늘은 누군가를 마음껏 그리워해도 되겠지. 해가 눈부시지 않으니, 대낮에 술취한 듯 그리움에 멈칫거리는 내 모습이 덜 비추어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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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기행

변산 기행

 

박영근 시인

1

 

산다는 일은 저렇게 곧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기어이 산맥은 길을 끊어 왕포나

채석강에서 바위 절벽 아래 떨어지고

바다 끝까지 달려간 마음도

저녁 노을로 스러지고

 

2

 

방첩대나 지서 사람들이 밤새 술상머리를 두드리며 부르던

그 유행가 소리를 옛집에서 듣는다

 

선거場이 설 때마다 공화당 표몰이꾼들에게

말들이 막걸리와 그 질긴 만월표 고무신짝을 풀며

신명을 내던 아버지

내 모든 생각들이 숨을 멈추고 엎드려 있던

대공수사대

벌건 갓등 아래

시멘트벽에

발가벗겨진 내 알몸의 그림자

외롭게 춤출 때 듣던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

빨치산 전향자라는 이름

 

할아버지 살아계시던 옛집엔

지금도 정정한 참오동나무 한그루

아침 저녁으로 가지를 흔들며

마당에 옛말을 뚝뚝 떨구고 있다

 

아들의 목숨을 사기 위해

한 마을을 부리던 논마지기도 당신이 묻혀서

들판을 지켜보고 싶던 선산마저 올려세우더니

그예 돌아가셨다는 말

 

3

 

세월이 어떤 시간의 물살에 허물어져

그 이름이 쓸려가고

살붙이들에게마저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

거기 묻힌다 한들

아버지에겐 끝내 지울 수 없었던

칼날의 마음

흰 눈에 호랑가시나무 마냥 푸르른

겨울숲에 홀로 들어

그 붉은 열매 앞에

몇 번이나 멈추어서서

고개 돌리고 눈물지었으리

 

쓰러진 마음들이

바위 절벽으로 저를 세워

파도의 아우성 키우는

변산

 

4

 

파도는

한 바다를 이루어놓고도

저렇게 돌아서고

돌아서서 어느새

물소리 한자락 없이

제 생애를 비워놓고

 

-변산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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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보았네  

여덟 팔자를 그리며 날아간다

여덟 마리가 대장 한마리를 앞세우고 쐐기모양으로 진을 쳤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맨 끝에 있는가?

 

막 어둠이 몰려오는 저녁찰나에

길을 재촉하듯 날아간다.

어디로 가는가?

새여

 

세찬 날개짓이 무겁다고 탓하겠는가?

날아가는 자유를 본 자만이

저 어둑어둑해질 저녁하늘을

날아오를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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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무엇을 왜 챙피해할까?

요새는 시간이 날때 가능한 엄마와 같이 놀려고 한다.

 

오늘 화초를 들여다보는 엄마와 아버지의 사진을 찍었다. 어찌 그리 웃음이 나오던지..

 

엄마에 관한 책을 꼭 써보리라..

 

엄마에게 엄마관련한 책을 한번 써보면 어떨까?하고 물었다.

 

배운것도 없이 챙피하다고 하신다.

 

엄마네 여자형제들은 오빠만 배우면 다 잘사는 줄 알았다고 하신다.

 

외할아버지는 딸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셨다.

 

엄마가 오직 할 수 있었던 것은 집에 굴러다니는 재봉틀을 가지고 놀았던 것. 그래서 엄마는 지금도 옷을 잘 만드신다.

 

이것이 불과 몇십년 전의 일이다. 엄마세대가 이렇게 여성에게 왜곡된 시대였는가? 나는 정말 여성해방이 이루어지려면 정말 여성 의식의 물질적 기반이 무엇인지? 그것의 변화과정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서 파악해야 될 것 같다. 정말 할 것도 많구나

 

엄마는 못배운것을 창피해하신다. 그래서 지금도 절에 가시는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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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꽃잎

  아침 꽃잎

 

 

                                                   양성우

 

 

           오늘따라 그가 내 안에 가득하다. 밀물이듯이
           밤새 내 머리맡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치 터질 것만 같이 가슴이 벅차오르다니
           내가 그의 거처가 되고 그릇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의 이름만 불러도 내 눈에 금세 눈물이 넘쳐흐름은,
           이미 그가 내 안에 아침 꽃잎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까닭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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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솔방울 잣방울들

올해 솔방울 잣방울들

 

 

너무 주렁주렁 열렸다.

 

한가지에 서너개가 열렸다

 

그렇게 귀해서 눈에 잘 안보였던

 

그래서 눈을 씻고 하늘을 쳐다보아야

 

겨우 높은 잣꼭대기에 거만하게 뾰죽한 방울을 내밀었던 잣방울들도

 

올해는 정말 많이 열렸다

 

희귀한것과 풍성한것...

 

희귀할수록 좋은것이라는 말..무심히 듣고 있었지만 이제야 깨닫는자.  이건 아니라는 것을!

 

진실은 풍성할수록 좋은 것이다...

 

이것도 어쩌면 우리가 자본주의사회에 살면서 왜곡된 언어풍습의 하나일 것이다.

 

아주 작은것에서부터 나를 고쳐나가야 겠다.

 

곧 다가올 새로운 사회를 위하여...

 

올해 풍성한 잣방울과 솔방울들이

 

오늘 나를 기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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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벚꽃나무에는

지금 벚꽃나무에는

왕벌이 가득하다^^

나만 벚꽃을 바라보고 웃고 있는 줄 알았더니

나보다 더 실속있는 놈들도 있었구나.

그들은 아예 벚꽃속에 들어가 벚꽃을 감싸 안고

사랑을 한다^^

 

지금 벚꽃나무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나만 사랑을 찾는 줄 알았더니

그들은 나보다 더 사랑을 하고 있구나.

아주 무심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낯설지 않게

사랑을 한다^^

 

 지금 벚꽃나무에는

생명이 가득하다^^

이제 막 태어나는 것들과 죽어가는 것들의 교차됨이

영원히 이어지면서

자연을 아름답게 만들고 살아있게 만드는구나.

 

지금 벚꽃나무에는

삶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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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생각

드문드문 생각나는 기억들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너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한다. 그동안 엄마와 그 많은 세월을 살아왔는데..... 언젠가 엄마에 대한 자서전을 하나 써드리고 싶은 소망이 있다.. 혹시 작은 수필집이라도.. 이를 위해서 엄마의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보아야 겠다. 조금씩 생각나는대로...

 

(1) 엄마, 분유를 찜통에 찌다

 

오늘 나는 즉흥적으로 만든 일명 우유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었다. 그냥 간단하다. 영화광인 나는 영화 한편을 보느라 저녁을 건너뛰어야만 될 위기에 처했고, 이때 냉장고에 우유가 있고 콩물이 있길래 우유와 콩물을 반반씩 부어 끓였다. 그랬더니 크림처럼 걸죽하고 제법 맛이 났다. 여기에 라면 반으로 잘라 넣은 것이 전부.. 쫄깃한 라면을 젓가락으로 건져서 올리브오일과 간장을 섞은 소스에 찍어먹는 것이 내가 개발한 요리이다. 그래도 맛있었다. 다음에는 정말 폼나게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어봐야 겠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먹으면서도 엄마생각을 했다. 옛날에 충주 달천강가에 살 때 "물난리"가 났었다. 어느해 여름, 날짜는 8월 19일 이었는데, 비가 너무 와서 강이 범람한 것이다. 쓰나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강물이 허리춤까지 오는 것을 저만치서 바라보면서 강둑을 서둘러 올라 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 다음날 산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황토강으로 묻혔었다. 그 강물은 지금도 계속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이다.

이 물난리로 인하여 그해는 학교수업이 중단되고 몇달간 나와 동생은 외삼촌댁에서 기거했었다. 몇달 후 집에 돌아가니, 어느새 기와집이 덩그러니 새로 지어져 있다. 아버지의 친척분이 부랴부랴 1-2개월만에 지은 집이란다. 달랑 방 3칸에 부엌이 하나있고, 방들의 중간에는 마루가 있는게 전부 였다. 화장실은 당연히 밖에 원시적인 형태로 존재했기때문에 집안에 있을 필요가 없었던 터였다. 나는 그때 알았다. 집을 이렇게 빨리도 짓는 구나.

엄마는 우리가 돌아오자, 그때 구호품으로 받아 놓았던 미제 분유가루를 시루에 쪄 주었다. 이 대목이 계속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우유는 고사하고 분유가루를 처음 본 엄마는 이것을 어떻게 요리하는 줄 모르셨던 것이다. 엄마는 분유를 밀가루처럼 생각해서 물에 개어서 시루에 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쿡쿡 웃음이 나온다. 찐 우유가루는 정말 딱딱했던 것 같다. 바로 먹어도 시원치 않은데 조금 나두면 딱딱하다 못해 이빨도 안들어간다. 그것을 씹다 못해 빨아먹었던 생각을 하며 엄마가 생각나서 웃음이 절로 난다.

 

(2) 엄마, 닭을 내다 팔다

 

물난리가 난 후 며칠만에 우리는 산에서 내려왔었다. 그 당시 볏집으로 지붕을 해 얹은 흙집인 우리집은 온데 간데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웰빙집이었는데...... 엄마와 우리가족은 산밑에서 며칠 임시로 거주하면서 집에 가서 흙더미속에 남은 것들을 추렸다. 추릴 것도 없었는데, 우리 집은 과수원을 하고 있었고, 엄마는 과수원 모퉁이에 닭을 몇십마리 기르고 있었다. 이 닭들이 다 죽어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마음이 상했던지...... 그러나, 엄마는 정말 강했다. 엄마는 슬퍼할 틈도 없이 그 닭들을 깨끗이 씻어서 충주 장에 내다 판 것이다.

그때 엄마가 지하수를 길어 올리는 펌프옆에 앉아서 닭을 다듬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3) 엄마, 사과장수를 하다

 

아버지는 국민학교 선생으로는 7남매인 자식들 학교도 보낼 수 없음을 깨닫고, 충주 달천에서 과수원을 하셨다. 그러나, 국민학교 선생이 과연 과수원을 잘 하실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겨우내 무슨 영농책자를 들여다 보셨지만, 나무에 달린 사과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았다.

결국, 사과들은 영세규모로 수확이 되었고, 이것을 도매로 넘기기도 어려운 형편에 처했다. 이때 엄마의 힘이 또 나왔다. 엄마는 리어커에 사과를 궤짝채 담아서 충주 시내 영화관 근처에서 리어커를 세워두고 사과를 파셨다. 이때 아버지도 물론 같이 가셨고, 큰 오빠도 동원이 되곤 했다.

우리는 엄마를 기다리린 것인지, 엄마가 들고 들어오시는 크림빵을 기다린 것지도 모르게 밤늦도록 엄마를 기다렸다.

 

(4) 엄마, 시를 짓다

 

몇년이 지나 우리집은 충주시내로 나왔다. 아버지는 과수원으로도 7남매를 키우기 어려우셔서 결국, 충주 시내에서 조그만 문방구점을 시작하셨다.

드디어 나는 충주시내에서 국민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일명 남한강 국민학교이다. 나는 지역이름이 들어가 있는 이 학교가 무척 좋았다.

나는 촌에서 온 아이라 기가 죽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해 그렇지 않았나보다. 3월달에 새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시내학교로 전학을 갔었는데, 나는 가자 마자 보기좋게 1등을 했다. 아버지가 어찌나 신기하게 생각하시고 좋아하시던지.. 그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도 내게 그런 기대를 안했었나보다..

어느날 담임선생님은 내가 쓴 몇개의 동시들을 보기좋게 복도에 전시하시더니, 나보고 문예반을 하라고 하셨다. 나는 뜬금없이 문예반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5월달 쯤 탄금대로 전체 국민학생들이 소풍을 가는날 도내 글짓기 대회도 같이 있었다. 나는 그 대회에 나가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왠일, 내가 너무 긴장했나보다. 아침에 설사를 하고 열이나고.. 도저히 못가겠는 거였다.

이때 나는 아마 숨고 싶었다보다.

그런데, 엄마는 내 속마음을 아셨는지 내 손목을 잡아 끌고는 탄금대로 향했다. 도착하니 막 백일장이 진행되려고 하고 있었다. 시의 제목이 주어졌다. "꽃"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난감했다. 꽃이라니...... 한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꽃이다.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백일장 근처 풀밭에 앉아서 멍하니 있는 나에게 엄마가 슬며시 다가와서 힌트를 주셨다^^ 시를 한번도 읽어보지 않으신 엄마인데......엄마는 외할아버지께서 여자는 배우면 안된다면서 안가르쳐서 배우지 못한 대표적인 한국여성이다. 외할아버지네는 매우 잘 사셨다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지금도 이 생각만 하면 외할아버지가 정말 밉다..

어쨋든 엄마는 내게 많은 힌트를 주셨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시를 읊고 내가 받아적는 수준이었다..

지금 언뜻 생각나는 것은 "꽃이 피었네..이 산에도 저 산에도 예쁘게 피었네...꽃은 이내 아가 얼굴이 되었네.. " 등등 이었던 것 같다.... 어쨋든 나는 그렇게 엄마의 읊조림을 대부분 적고는 마지못해 내고 나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얼마 뒤에 전교학생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 앞으로 내 이름이 불려졌다. 내가 시 부문 장려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놀랄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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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삼일절마라톤대회

자연은 다가가면 무언가를 준다.

 

오늘 춘천에서 삼일절 마라톤대회에 참석하면서 큰 산에 한발 다가갔더니 그 산은 흰눈덮인 아름다운 모습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도 사람들에게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텐데......아니, 나도 꼭 다름사람들에게 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내면서 살아갈꺼야......

 

삼월에 눈이 내리는 것은 춘천에서는 매년 있어온 일이다. 어느해에는 거의 삼월말에 눈이 펑펑 쏟아지고, 정말 봄눈녹듯이 녹아버리기도 했었다.

 

오늘아침에도 눈발이 굵어지고 삽시간에 나무에 쌓이기 시작했으나, 대회가 다가오니 가까운 곳에는 눈이 다 녹았으나, 먼 산에는 눈이 쌓여 산은 상아색이 비치는 흰색과 감청색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었다. 알프스도 저렇게 아름답나? 노르웨이의 협곡을 갖다가 육지위에 얹어놓은듯한 모습이다. 오늘 나는 이 아름다움을 봤으니, 마라톤대회는 정말 성공했다!! 고 생각했다.

 

겨울내내 수영을 게을리하지 않고, 식사를 제때 챙겨먹고, 잠시간을 규칙적으로 지켜서 그런지, 달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오늘 진정한 마라토너가 된 느낌이었다. 아무런 미련과 집착도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그저 평온한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면 어느새 내가 달려온 곳을 뒤로 내버려둔채 나는 그렇게 달리고 있었다. 끝이 안보인다고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어디가 끝인가? 묻지도 않는다. 오직 나에게는 자연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자유가 있을 뿐이다.

 

오늘 부천에서 멀리 오셔서 같이 달려주신 장근형네 오십리팀 (우리 백오리팀에 비해 오십리만 한다고 하시면서^^)과 함께 해서 더욱 즐거웠다. 자유로운 인간들의 멋진 향연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나는 더 진중해졌다. 아 나는 그냥 이대로가 너무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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