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토론회소개]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과 한국사회의 대응방안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과 한국사회의 대응방안
 
l       일시 : 5월 19일(월) 오후 1시 - 4
l       장소 : 서울의대 동창회관 함춘회관 3층 대회의실 (대학로 소재)
l       주최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 1부 발제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과 국제사회의 대응 :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새로운 전염병 vCJD의 역학과 전망 : 정해관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예방의학)
 
■ 2부 토론
권호장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예방의학)
정태인 (성공회대학교 겸임 교수, 경제학)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 수의사)
우석균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의사)
송기호 (민주사회을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99.98%가 아닌 0.02%를 위하여

5월 9일 금요일날 서울로 새벽에 출발하여 몇개의 일을 해치우고, 7시 반쯤에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중학생들이 보인다. 청계천이 어디로 가면 되냐고 했더니, 동대문운동장 1번출구로 나가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나보고 "촛불집회(학생들은 그것을 문화제가 아닌 집회로 불렀다)"에 가냐면서 주먹손을 어깨위로 올리며 "잘싸우라"고 한다.. 나 참... 이런 일도 있다니.. 학생들이 격려도 다 해주고... 어느 지하철을 막론하고, 어느 학생을 막론하고 거리에서 "청계천방향"을 물어보면 학생들은 눈빛을 마주치고, 시익 웃으면서 마치 "오랜 동지"를 대하듯 한다. 요즘 거리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모습은 1987년 대투쟁이 있던 시청앞이나 서울역앞을 연상시키고, 95-96년도 종로 파고다공원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내가 중학교때를 비교하면, 학생들의 의식발전이 놀랍다......

 

나는 촌놈이라 할 수 없이 다시 동대문운동장 지하역 통로에서 3명의 대학생인듯한 학생들에게 "청계천광장"을 물었다. 학생들은 광화문으로 가면 빠르다며 자기들을 따르라고 한다. 그들은 5월 2일부터 매일 참가했는데, 매일 분위기가 다르다며 최근 매우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광화문역사를 나와서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또 한번 놀랐다. 중학교 쯤 될법한 어린 남학생들이 전지종이에 직접 쓴 플랭카드를 들고 나와 하나씩 들고 서 있다. 내용은 학교당국의 집회참가억제에 대한 항의와 학교에서 토론과 결사, 집회의 자유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나도모르게 '얘들이 혹시 교장선생님이라도보면 어쩌려고 하나?'하는 보수적인 걱정을 했지만, 이것 역시 학생들의 의식을 따라잡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걱정에 불과했다.

 

'난, 너희들이 참 자랑스럽구나'

 

나는 이렇게 그들을 자랑스러워하고 또 부러워하고 있었다.

 

매일 왔던 3명의 대학생들이 "오늘이 최고로 많이 모인날"이라고 한다. 무대를 중심으로 빽빽히 인파가 들어서서 발디딜 틈이 없는 곳을 한발짝 한발짝 밀려서 중앙으로 들어가는 중에도 무대앞에서는 등장인원이 쉴새 없이 바뀌면서 놀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여학생의 연설에 이어, 몇개의 랩송을 부르는 팀이 등장하고, 그 뒤에 어떤 남학생이 등장했다. 이 남학생의 연설을 그야말로 짧았고, 매우 간단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거기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에게 참가의 근거와 의의 등을 명쾌하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99.8%가 아닌 0.02%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까? 99.8%가 안걸린다해도, 0.02%가 걸린다면 우리는 막아야 합니다!!!"

 

연설이 심각하고 비장함이 지속되려하면, 그 남학생은 마지막 단어에 후렴구를 넣어서 모든 사람을 선동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 호... 오 호 호... 오 호 오....."  이렇게 하면서 말미에 후렴구를 넣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야말로 집회장에서 이렇게 "즐거운 후렴구와 노래가 어우러진 멋진 연설"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정말 기막힌 연설이었다...... 집회에서 이렇게 누구나가 나와서 발언을 하는 문화, 인간으로써 가장 멋진 문화가 아닌가?

 

앞으로는 모든 집회에서 이런 창조적 문화를 만들어 나가면 어떨까?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안해공연-5월 25일까지 춘천에 오시라

이제 봄이와서, fta반대, 의료민영화반대, 비정규직투쟁 등등 여러가지 투쟁을 준비해야할 때이지만...

 

혹시 그래도 올 5월까지 춘천으로 지나갈 일이 있으신 분들은 연락주시라......

 

김유정의 안해공연을 보여드리겠다.

 

극단 art3 홈페이지(아래)들어가시면 3000원 세일도 합니다...... 60세이상 어른은 무료랍니다.  어버이날 오세요. 저도 우리 부모님과 함께 가보려구요^^

 

극장전화: 033 253 7114 또는 033 255 1748

장소: 춘천 후평3동 세경 6차 아파트 상가건물 왕마트 건물 3층 소극장

 

http://www.art3theatre.com/

 

[안해]

일시:2008년3월21일(금)~5월25일(일)
연장공연합니다!!!!!!!!
평일-7시30분, 토.일요일-오후4시
(월요일 공연없음)
장소:Art-3 Theatre ZONE
입장권:일반-10,000원/청소년-8,000원
배우:김경태, 정은경, 이지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춘천호반마라톤대회 소감ㅠㅠ

2008 4월 20일 춘천호반마라톤대회를 정말 가까스로 끝냈다. 이제 정말 운동을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마라톤을 하겠다고 하면 안되겠구나!!! 이번에는 20km근방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가고 있던 한 마라토너를 만나지 않았으면 완주가 불가능했다. 이번엔 정말 준비도 못하고, 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뛴것에 대해서 반성을 많이 한다. 또한 준비를 못했으면 못한 만큼만 뛰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끝까지 뛰었던 것이다. 토요일날 정옥이가 왔을때 절대 끝까지 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은 다 뛰었다. 결국 나는 계획성도 없고, 일을 가늠하지 못하는 무대보성을 반성해야하는 것이다.

 

준비를 못 한 가장 큰 것중에 하나는 운동화를 준비하지 못했다는것, 준비운동을 전혀 못했다는 데 있었다. 두가지는 마라톤을 하려는 사람에게 기본인데, 이 기본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준비를 못한것에 더하여 무더위가 복병으로 나타났다. 약 20km까지는 선선한 바람에 그늘에 시원하게 달렸다. 날씨가 이정도라면 괜찮겠다고 마음을 달래며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양강가에서 내륙지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람은 잦아들고, 한낮의 태양은 머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29도라나..이 날씨에 뛰고 있는 내가 정상이 아닌것 같아보였다. 거기다가 아무생각없이 쓰고 나온 검은 챙모자는 태양의 복사열을 다 끌어들여 머리속이 타고 있었다. 이러다 열사병, 내지는 뇌일혈이 생길것 같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 더위에 뛰는 것을 미친짓이다!'

 

라고 하며 마라톤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회송차를 타려고 비틀거리며 가고 있는데, 회송차 바로 앞에서 걷는지 뛰는지 모르게 가고 있는 한 남자분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저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저렇게 가니 완주는 하겠는데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타려던 버스에서 다시 내렸다. 그 남자분을 쫒아서 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속도가 아주 느려서 나로선 아무 걱정없이 옆에서 뛰기만 해도 될 정도였다.

 

'더워서 완주할 수 있을까요?' '완주는 당연히 해야죠..'  그 분의 말씀이 이러하신데, 어쩌랴...... 같이 뛰어야지...... 그 뒤로 골인점에 도달할 때까지 결국 끝까지 뛰었다. 골인점까지 도달하기까지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신작로에 차량통행을 막아둔 표지판을 다 철거하여 결국 인도로 뛰어야 했고, 식수도 다 철거하여 아이스케키를 사먹으면서 달려야 했고, 간이 화장실도 다 없어져서 들판에서 간단한 "쉬"도 봐야했다. 보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이렇게 볼일보는 일이 간단한 것을 도시에서는 왜 그렇게 내가 싫어하는 앉아서 보는 좌변기를 사용하는 것인지...... 이것이 내가 지금 이시대를 사는 데 일상에서 가장 불편한 일이다. 좌변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이번엔 아주 천천히 달렸기때문에 오히려 무릎이나 다리는 멀쩡함을 느낄수 있었다. 달리면서 오히려 천천히 달리는 것을 즐겼는데, 워낙 빵꾸가 날지경인 운동화를 신고 나와서 무리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은인을 만났던 것이었다. 나는 성격이 급하여 아무리 뚫어진 운동화를 신고 나왔어도 이렇게 천천히는 못가는데, 이 분은 정말 무심하게도 한발 한발 걷는 것 같이 뛰면서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닌가?

 

항상 마라톤을 하면, 운동을 했다는 자체가 아니라, 그 짧은 시간에 인생을 배운다. 이번엔 좀 길었다. 6시간이었으니... 그러나, 그동안 참 많이 배웠다......그래, 인생도 이렇게 가는 것이구나.

 

늦었어도 의연하게, 늦었어도 희망을 가지면서, 늦었어도 자신감을 가지면서 늦은만큼 천천히......

 

마지막으로 들른 한 식당에서 다시한번 화장실을 갔는데 (이날은 물을 약 5통은 먹었던 것 같다......),  아저씨 저희가 너무 늦었지요? 하니 아저씨 왈.. 아냐, 금방 와르르 몰려갔어... 늦지 않았어...참 대단하구만.....내가 놀란 것은 그 아저씨가 우리가 늦은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방금 지나갔다는 데 있었다. 그래, 우리가 늦었지만, 그게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니야... 인생도 마찬가지일꺼야.. 지금 조금 늦어보이지만, 결코 그렇게 늦은게 아니야......약 30분차이도 안나잖아?

 

결국, 몰려간 팀의 후미와는 약 30분정도 차이가 났던것 같다.

 

내가 너무 고맙다고 꿩만두국을 사니까, 그분도 내가 아니었으면 못 뛰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의지는 했지만, 그 분도 나를 의지하고 뛰었던 것이다.

 

참으로 인생이 이러한가 보다. 이렇게 무식하게 가야하고, 또 가다가 같이가는 사람도 만나고,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그러다 나는 수영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면서 멀리 시흥에서 오신 그 분께 인사를 하고, 또 홀로 어디론가 가지 않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목련이 필 때

목련이 필 때


                                                        고 명

누가 거기

맺힌 그리움을 터뜨리고 있는가


느닷없이 귓볼

달아올라 달아올라

눈을 감으면 희미한 옛 이름의

향기가 몰약처럼 퍼져 온다


하얀한 꽃그늘 가버린 날들이여

구름구름 피어올라

피어올라 날고 있는가


비 그친 봄 하늘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he Sonnets 112 -셰익스피어시

 그대는

You are so strongly in my purpose bred

That all the world besides methinks th'are dead.

 (The Sonnets 112)

그대는 너무도 강하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기에


그 밖의 온 세상은 죽은 것같이 생각되노라.


 (『소네트집』112, 신영수 역)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국좌파들은 지금?-New Left Forum스케치

미국 New Lwft Forum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이 포럼은 매년 3월에 뉴욕에서 열린다.  이번 포럼에서 핵심은 미국좌파들은 "자본주의체제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있다. 그 외, 중국이 사회운동의 주체로써 서야함을 보여주고 있다.

 

http://www.leftforum.org/

 

 

미국 좌파들은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케냐, 수단을 주목하고 있다. 이번 포럼의 제목이 [Craks in the edifice] 인것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제국주의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미국 좌파들의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1. 20080314 금요일 오픈세션: Craks in the edifice

 

첫연자로 나선 Naomi Klein 은 지금 전 지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인디아, 러시아등.. 두번째 연자인 Mahmood Mamdani는 미국의 계급투쟁의 역사를 소개하며 1700년 이전까지 노예운동이 일어나기 어려웠으나, 그 이후 1780년대에 노예무역에 반대하는 투쟁의 전개한 것을 비롯해, 미국의 계급투쟁의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세번째 연자인 Tariq Ali는 아프리카에서 수단 다푸 등의 문제를 언급하며, 아프리카 노동조합의 부패( corruption)을 말하고 있다. Adam Hochschild는 현재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더이상 계급분화 (class divisions)가 적용되지 않으며, 반혁명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중국,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등을 예로 들면서 자본주의 체제가 극단적으로 귀화시키는 체제(adoptive system)인 것에 주목한다.  

 

2. 20080315 토요일 오전 10시 차베스정권의 성격 (Evaluating Chaves from the Left)

 

Steve Ellner 는 베네주엘라 교수인데, 차베스정권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보고 잇다. (1) 사회적 측면 (social front)에서는 차베스정부가 사회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질이 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decrease of quality of quality).

(2) 경제적 측면 (Economic Polocy)에서 볼 때, 차베스정부가 너무 많이 단결과 연대 (solidarity)를 강조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예를들면, 차베스가 석유수출을 하면서 석유-카리브해조약을 맺어서 카리브해 국가들에게 60%의 가격으로 석유를 파는데, 베네주엘라국가에게는 이익임 됨에도 불구하고, 차베스는 너무 많이 국제적인 연대 (international solidarity)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3) 정치적 측면에서 빈민의 이동하는 문제에 있어서 내부적인 논란이 많다는 것을 지적했다.

 

토론에 나선 이 (이름을 기억못했음)는 차베스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차베스정부는 1999년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했는데, 지방분권화체제이고, 권력분권체제는 결국 부르조아적인 내용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경제정책에서 개량적인 정책(reformative category)의 범주에 들어가며, 석유산업에서 볼 때도 상당한 개량주의적인 성격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정부가 석유회사들에게 너무 의존적이다. 사회정책의 측면에서 볼 때, 사회프로그램 (social programmes)이 퇴화 (regress)하고 있으며, 부패하고 있다고 말한다. 연자는 대외정책면에서도 퇴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연자는 결론적으로 차베스정부는 볼리비아운동 그 자체이며, 민주주의적 당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번째 연자 (Greg Wilpert)는 차베스를 지지한다고 하면서, 차베스를 지지하지 않으면, 그 외에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론과 실제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하고 반문하면서 이론과 실제를 연결하기가 어려운 것을 지적하고 있다.

 

 

3. 20080315 토요일 오전 10시 - 미국달러의 붕괴, 붕괴냐? 제국의 유연성이냐?

(Decline of the dollar: Decline or flexibility of the empire?)

 

Socialist Register에서 주관한 포럼인데, 토론내용만 간추리면, 연자들은 미국통치계급의 혁신 (Regeneration)을 주목하고 있다. David Harvy는 사회운동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파리코뮨이 도시를 빼앗은 것이었다며, 뉴욕도시도 운동으로 빼앗아야 함을 주장했다. 또한 투쟁은 국제적으로 일어나야함을 주장하고 있다. 예를들면, 인디아 등의 민족정책 (national policy)는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해야한다.. 중국또한 현재, 군부대의 통치하에 있는데, 국제운동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4. 20080315 토요일 오후 12시 -14시: Rethinking Marxism and the future of global struggles: Class Theory, Political Subjects, and Contempoarary Capitalism

 

Rick Wolff는 맑스는 자본주의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가 있다는 것을 제시했다. 맑스의 변증법이 새로운 동전해볼 거리이다. 즉, equity를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Maliha Safri는 자본주의체제가 주관적인 정신체계위에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들면, 곅브에 반대하는 것이 무의식적이지만, 일부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욕망도 주관적인 정신체계의 하나이다. 대안으로써의 주관주의 (Alternative Subjectivity)의 한 예로, 아르헨티나를 들었다. 100만명의 노동자가 있는 아르헨티나에서는 투쟁의 목적은 생산수단을 가져가는 것과 주관적인 경제(subjective economy) 를 운영하는 것이다.

 

David harvy는 계급이 어떤 형상이나, 지형, 윤곽(configuration)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process)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보는 측면에서, 하비는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착목한다. 현재의 프로젝트로써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반자본주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대답으로써 David harvy는 또한 geography를 비판하며, 비밀스런 국가적인 차원의 전통을 비판한다.

 

독일의 한 연자는 맑스주의이론을 형성하고자 한 그람시에 주목한다. 맑스의 철학은 자기의식 (self-consciousness)이다.

 

토론에서 Rick Wolf는 개량주의를 경계할 것을 주장했고, David harvy는 맑시즘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예로 David harvy는 중국에서 계급형성이 일어나고, 프로레탈리아운동이 공산당(CP)에 의해서 차단되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Rick Wolf는 미국의 상황에서 1920-1970년까지 미국의 운동이 활발했으나, 1970년이후에 미국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쇠퇴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미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증가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시간은 실제 증가하고있고, 육체적으로 고갈된 상태이다. 이것을 계속할 다른 길이 없다.. 미국 노동자들은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 미국 노동자들은 이 문제에 직면해야할 때이다. 또한 조직을 해야할 때이다.

 

 

5.20080315 토요일 오후 15-17시 -금융위기 (DIMENTION OF THE FINANTIALISATION CRISIS)

 

DAVID McNally는 금융위기 (finaltial crisis)는 범금융유행 (finantial pandemin) 이라고 지적한다. 어떻게 독점자본이 붕괴하는가? 1990년대에 비금융부분가 더 많은 금융을 빌려갔다.  돈을 많이 빌리다보니, 거품경제가 형성되었다. 빌리는 기간을 짧은데 비해서 투자하는 기간은 길다. 이윤(profit)이 그 자체로 창출되고, 돈을 빌리게 되고, 공공체계가 민영화가 되고, 비공공분야에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의 옐르들어보자면, 1970년대에는 56%가 신용시장이었는데, 현재 신용이 거품이 되고, 녹아져 내리고 있다. 시장중심체계가 가치를 파괴시킬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의 정책이 필요하다. 주관적으로 체계를 해결해야한다. 재산을 구입하여 부채없이(세금?, free liability?) 기관들에게 주는 것이 필요하다.  Free Liability!! 우리는 당신이 이것을 하길 원한다... 체제가 허물어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DAVID McNally는 이어서 은행의 위기에 대해서 착목한다. 은행이 붕괴하고 있다. 은행은 자본주의가 기능하는 중심기관인데 이 기능이 멈추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붕괴(Liquidity)의 위기가 아니라, 대안이 없는 것의 위기이다. 대안은 시장중심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6. 20080316 일요일 오전 10:-12:00 Dialectics of liberation: Praxis for a New Century

 

Matt Birkhold는 미국의 흑인저항운동에 주목하면서, 혁명은 새로운 형태의 인간을 생산한다고 주장한다.

Matt Birkhold는  1960년이래 흑인 노동계급의 운동에 주목하면서, 혁명운동과 지역의 문화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에 주목한다. 그는 미국의 혁명운동의 역사와 마약, 코카인등의 문화사이에 변증법적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전체 사회에서, 흑인이 투쟁의 가장 선두에 서 있다. 혁명은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하고있다.

 

Kazembe Balagun에 의하면, 해방의 변증법을 이야기한다. 그는 소외의 문제를 지적한다. 철학적 프레임은 자유이다. 사회주의는 사회적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다.

 

Melanie Bush는 변증법적 변화에 대해서 몇가지 질문을 하였다.

 

토론에서는 젊은 청년들을 조직에 다시 끌어들이기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가 질문이었는데, 운동을 재창출해야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또한 인간으로써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7. 20080316 일요일 오후 12:-14 : Precarious work, Precarious lives

 

Bill DiFazio는 현재 자본주의체계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했다.

 

Mia Son은 한국의 비정규직의 증가와 불평등의 심화가 건강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지며, 특히 여성노동자에게 가장 많은 부담이 지워지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였다.

 

Iris Nowak 은 베를린의 로자 룩셈브르크 연구소에 있는데,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새로운 형태의 관리체계가 등장했으며, 이로인해, 가난의 증대, 실업의 증가, 복지의감소를 가져왔으며, 새로운 삶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특히 Iris Nowak 은 독일에서 최근 비정규직노동자와 프리랜서들사이에 경계가 모호해지고, 유사해지는 경향을 발견하고 이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프리랜서가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프리랜서도 나 자신을 조직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시장으로 조직된 방법이기때문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프리랜서도 한계가 있으며, 나의 삶을 향상시킬 수 없다. 그래서 모순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종류의 주관 (subjectivity)를 세워갈 필요가 있으며, 좌파 지식인들은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좌파 노동조합이나 당은 프리랜서들을 조직할 수 있는 작은 프로젝트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David Van Arsdale은 현 사회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업예비군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고용상태와 산업계비군의 상태를 계속 왔다 갔다 이동하는 상태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서비스분야 산업이 발전하면서, 거대한 자본가들이 이 산업예비군을 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의경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의 거대한 자본가들이 산업예비군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형태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자기파괴적인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푸른 마술사 -양희순 시

 

푸른 마술사



 양희순



 씨앗은 땅을 나오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온몸 물음표가 되어 푸른 질문을 던진다

 대답 못하는 당신 향해 아나, 쑥떡을 먹인다

 그리고는 마녀처럼 머리를 반으로 나누어

 작 짝 짝 신나게 박수를 친다

 당신이 박수 소리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

 소매 안에서 슬쩍 비둘기를 꺼내 날리는 마술사처럼

 새싹은 손바닥 안에서 스윽 꽃대를 뽑아올린다

 당신이 한 눈 파는 사이,

 씨앗은 햇빛과 바람과 물을 흙에 잘 버무려

 웃음 같은 얼굴 하나 당신 코앞에 들이민다

 잘 보셨나요? 그럼 이만 안녕, 안녕,

 내년에 또오...하며 씨앗이

 제 향기를 뭉텅 잘라 허공에 던지고 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름다운 꼴찌는 이제 없다: 20080301삼일절 마라톤 소감

아름다운 꼴찌는 이제 없다

 

20080301삼일절 마라톤 당일날, 멀리 서쪽에서 원정오신 형네 가족과 형 친구네 가족으로 부산스러웠다. 조용하게 가서 미친듯이 달리곤 언제 달렸냐는 듯이 조용하게 돌아오는 때와 달리, 가족들이 옆에서 부산을 떨어주니, 마치 소풍이나 온 것 같다. 이래서 가족이 좋은거여......

 

형이 일찍 도착하여, 여유있게, 꿩만두국도 먹고 (이것이 나중에 화근이 되었지만 말이다..) 춘천 명동거리로 나섰다. 가족들은 추운데서 구경꾼이 되느니, 청평사나 금병산을 다녀오시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청평사 입구에서 입장료 1300원이 아까와서 문앞에서 되돌아왔다고 한다. 아니 그럼, 그 유명한 회전문도 못보고, 고려시대 건축도 못봤겠구만......거기다가 오봉산 자락에 멋지게 걸터앉은 청평사의 산세도 못보았겠구만...... 나와 똑같은 양반들이 여기에도 있었구만...... 지난번에 내소사에 들렸다가, 입장료 안내려고 안들어갔었는데, 나는 괜찮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덩달아 안들어갔던 몇몇 지인들께 어찌나 미안했던지... 어쨋든 입장료는 무조건 없어져야혀......

 

약간 쌀쌀한 날씨가 적응이 안되던지, 서쪽에서 오신 형이 몇겁씩이나 되는 긴 팔과 긴 바지를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는 사이, 나는 과감하게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이번에 기념품으로 제공된 빨간 티셔츠를 엄마에게 주려고 사이즈를 바꾸러 갔다오고 하는 사이에 벌써 오후 1시, 뛸 시간이 되었다.

 

작년에 맨 뒤에 서 있다가 뒤따라오는 회송차를 물리치느라 고생한 것을 생각하여, 이번엔 일찌감치 앞자리를 차고 들어갔다. 몇만명이 일제히 총소리에 달려나가는 큰 대회보다는 사람의 구령에 맞추어서 하나 둘 셋! 할때 뛰어나가는 맛이 더 있다는 것을 느끼자 마자, 소수가 뛰는 고독감을 맛보아야 했다. 이번엔 어떻게 된게 여성주자들도 보이질 않는구나...... 형은 벌써 저만치 간 것 같고.. 올해도 나 혼자 투쟁이구나......

 

1km도 안 뛴것 같은데, 이게 왠일인가? 아까 2시간전에 먹은 만두국이 위에 그대로 앉아있는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하다. '형도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역시 음식은 3시간전에 찰떡이나 밥으로 먹으란 말이 괜한 말이 아니구나.. 후회해봤자 소용없고, 이제는 몸의 생리적 기능이 좋아지길 기다리는 수 밖에......

 

평상시에 물속에서 다리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운동장돌기를 게을리 한 것이 겉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역시 숨을 가뿐한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반환점을 돌 때까지는 몰랐는데, 반환점을 돌아나오니, 내 뒤에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뿔사...... 올해에는 맨 앞에 섰는데도 이게 왠일인가?

 

처음엔 의아해 하다가,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결국, 내 앞에 쌩쌩거리면 달린 이들은 배테랑급들이고, 몇년전까지 헉헉거리면서 내뒤를 따라오는 군단이 없어졌다. 아니 몇년동안 서서히 없어지더니, 결국 올해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오직, 체중이 제법 나가는 한 청년이 한참만에, 반환점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내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할 당시, 즉 2003년도 즈음엔 마라톤은 축제였다. 그 때에도 꼴찌를 했었는데, 그 때 같이 마지막까지 걸었던 사람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땐 꼴찌도 일등도 모두 같이 뜀뛰기를 마쳤다는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바하흐로 잘뛰는 사람들만이 마라톤을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하고 생각하다가 오늘 깨닫게 되었다. 이것도 바로 자본주의의 성공위주, 실력위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고......

 

예전에 영국에서 맥주집(팝)에 간 적이 있다. 유럽 전체는 모르겠지만, 1997-1999년시기엔 영국도 한국이나 일본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팝안에 비디오가 설치되었고, 노래방기기가 설치되어서 맥주를 마시다가 원하는 사람들은 나와서 노래를 부르도록 무대를 만들어 놓았었다. 그 때, 친구들과 우연히 들른 팝에서 느낀 것은 영국 사람들은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 무대에 나서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노래를 아주 잘 부르는 사람들만이 무대 앞에 나가서 노래를 하고, 상대팀과 경쟁을 할 뿐, 나머지는 모두 구경꾼에 불과 했다. 그리고 무대 앞에 나선 대표주자들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노래를 잘 불러야 했다. 안 그러면, 구경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나는 노래를 잘하건 못하건 너 나 할 것없이 의무적으로 불러야 하는 우리의 문화랑 달라서 놀란 적이 있다. 이게 무슨 재미야? 하고......

 

나는 올해에 마라톤을 하면서 갑자기 영국의 노래방이 생각났다. 잘부르는 사람들만의 축제...... 자본주의가 먼저 발달된 나라에서의 발달된 문화는 경쟁의 문화였다면, 이제 우리도 서서히 경쟁의 문화에 젖어드는 것일까? 그래서 모든 곳에서 아주 잘하지 않으면, 아예 명함도 못내미는 경쟁사회가 되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은 열심히 한 노력의 댓가가 없는 자본주의사회속에서 이제, 성실, 노력, 진심 등의 언어를 잊어버린 것일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라고 하면서......

 

어쨋든 나는 점차 프로들만이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를 우매하고 우직하게도 계속 참가하고 있다. 나의 실력이 늘어난 것도 아니면서 나이를 꺼꾸로 먹는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더 잘달릴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지만, 잘나가는 경쟁위주의 사회를 방해하고자, 나는 끝까지 꼴찌로라도 달릴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숭례문앞에 통곡하다

숭례문앞에 통곡하다

 

 

고요한 적막에 덮인 산골, 설이 조용히 지나가던 날, 숭례문이 타고 있다는 인터넷소식이 장난기사이길 바랬다. 그리고, 또 11시경 불길이 잡혔다고 해서 이제는 안심해도 될 줄 알았다. 하루밤사이에 몇 번을 놀라면서 가슴에는 깊은 못이 박힌듯이 아프다.

 

아직 서울을 못가봤다. 아니 가보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한참동안은 남대문시장근처를 쳐다보지 못할 것 같다. 폐허더미 숭례문앞에서 나는 왜 이렇게 통곡하는가? 왜 사람들은 가슴에 깊은 상처를 받았는가?

 

 

서울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겨울이었다. 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비정규직 여사원으로 서울로 일하러 갔고, 동생에게 서울을 보여주겠다고 데려간 것이었다. 70-80년대 서울모습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기억하는 것은 길바닥에 쌓여있는 연탄재였다. 왜 그렇게 연탄재가 길바닥에 너부러져있었는지... 서울역근처가 언니의 단칸방이 있는 곳이어서 역의 시커멓고 쾌쾌한 먼지와 길바닥의 연탄재가 어우러져 먼지속의 서울만 보았고, 나는 급기야 서울에서 살수 없을 것 같는 느낌만 받았었다. 내가 그당시 본 것은 순전히 이런 풍경들이었다. 그것이 서울의 다가 아니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언니는 주말이면 동생을 데리고 그 삭막했던 서울거리를 쏘다니곤 했는데, 언니를 따라다니면서 유독 기억나는 것이 바로 숭례문이었다. 그 당시 굉장히 높고 웅장하게 보였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그 다음에 숭례문을 기억하는 것은 87-88 민주화 대투쟁때이다. 그 당시 거의 매일 데모대열에 합류하면서 매번 서울역까지 갔던 것 같다. 그러면서 대모대열이 거대하게 형성되면,우리는 서울역에서 숭례문까지 마구 뛰어갔다. 그 때 숭례문을 지나쳐 뛰면서 나의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나의 심장의 고동소리는 점점 커졌던 것을 기억한다. 아! 그 곳을 그렇게 마음대로 뛰어봤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던가?

 

시골내기였고, 인생에서 숭례문에 대한 기억이 한 두 장면 밖에 나지 않는 나도 이럴진대, 숭례문을 평생동안 보고 살아온 서울의 평범한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70-80년대 자본주의의 쓰레기로 뒤덮인 그 추잡한 거리, 추악한 삶의 세파속에서 살면서도, 우연하게도 숭례문을 한번 쳐다보노라면, 그 아름다움과 기개와 웅장함에 마음이 정화되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찌든 삶속에서, 어머니의 품처럼 다가갈 수 있는, 숭례문이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숭례문이 과거 권위의 상징이었고, 왕권의 소유물이었으며, 현재는 자본주의에 의해 희생되었지만, 그것은 우리가 숭례문에게 애써서 어떤 상징과 명함을 달아주는 것일게다. 숭례문에겐 그러한 권위적인 상징조차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 아름다움은 결국 그 당시에 가장 평범했던 민초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던가?

 

 

내가 오늘 숭례문앞에서 통곡하는 이유는 바로 600년을 이어주는 민초과 민초의 만남, 그들의 역사가 사라졌기 때문일것이다. 숭례문을 만들면서 몇 명의 민초들이 얼마나 심한 노동강도속에서 일을 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일하다가 죽어갔는지.. 나는 이러한 정황을 정확하게는 모른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아련히 떠오르지 않는가? 600년을 거슬러가면서 민초들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그들이 만든 역사가 어떠했는가를.....

 

 

우리가 지금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역사를 상실했기때문이 아닌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