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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노동이 어떻게 건강장해에 기여하는가?

 불안정노동이 어떻게 건강장해에 기여하는가?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노동환경이 육체적 건강 및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

불안정노동이 건강장해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장해의 원인에는 노동강도강화 이외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불안정 노동으로 인한 이직횟수의 증대, 직업변동등 직업의 불안정성 그 자체이며,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로써 받는 차별감, 모멸감 등이다. 물론 이 부분도 그 근원을 따져 들어간다면 불안정노동 그 자체이다.


2003-2004년도 여수건설 노동자와 철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2003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황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서 “불안정노동이 건강장해에 미치는 기전”을 파악해 본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연구는 여수지역 산업단지에서 산업시설의 보수와 수리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건설노동자 200명과 철도 노동자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심박동수, 작업공정조사를 통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 노동환경 및 건강상태를 파악하였다.


건설노동자의 경우, 근골격계질환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다변량분석을 통하여 주요요인들을 색출한 결과, 근골격계질환의 경우에 1주 노동시간이 45시간이상인 경우 40시간이하인 경우보다 3.93배 (신뢰구간: 1.27-12.36), 한달 특근일수가 많을수록 3.85배(신뢰구간 0.73-20.36), 직종을 바꾼 경우가 아닌 경우보다 3.72배(신뢰구간 1.01-13.73) 더 높게 나와, 노동시간과 직업과 직종의 불안정성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장해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다른 건강장해, 즉, 직무스트레스, 피로도, 결근율에도 일년내에 실직가능성, 1년동안 이직횟수, 회사가 비정규직을 차별할 경우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다.

 

이 연구는 건설지역 노동자의 건강장해에 가장 심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장시간의 노동시간과 직업의 불안정성으로 이 두가지의 문제해결이 건설 노동자의 건강장해를 막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노동자의 건강장해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요인들과 건강장해와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또한 철도 노동자의 직업의 불안정성 요인들과 가장 연관이 깊은 건강장해는 근골격계질환, 결근율, 정신신체증상, 피로도이었다. 즉,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업의 불안정성이 증가할수록 육체적 정신적 건강장해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철도 노동자의 노동강도요인 (장시간의 노동시간 및 육체적 하중과 주관적인 노동강도강화요인)과 가장 연관이 있는 건강장해는 근골격계질환과 결근율이었다. 철도 노동자의 건강상태(근골격계질환)에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주요요인들은 1주당 노동시간, 한달특근일수, 직장이직, 직종이직, 직업의 불안정성, 주관적인 노동강도 (Borg scale)들 이었다.


특히, 건강상태(근골격계질환, 결근율, 정신신체증상, 직업적 스트레스, 피로도)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다변량분석을 통하여 주요요인들을 색출한 결과, 1주 노동시간이 45시간이상인 경우, 직장이직을 한 경우, 직종을 바꾼 경우에서 더 높게 나와, 노동시간과 직업과 직종의 불안정성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장해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초래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연구는 철도 노동자의 건강장해에 가장 심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장시간의 노동시간과 직업의 불안정성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평소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모욕감을 당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느끼거나, 노동강도가 더 세다고 느끼는 집단에서 직무스트레스요인, 정신신체장해, 피로도가 매우 증가하고 있어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인권차별을 받을수록 정신적인 건강장해가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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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의 죽음을 불사하는 산재투쟁, 노동해방의 첫걸음 되어!

노동자계급의 죽음을 불사하는 산재투쟁, 노동해방의 첫걸음 되어!

 

 

1.산재투쟁의 역사: 산재승인과 관련된 노동자들의 죽음과 죽음을 불사하는 투쟁

 

우리나라에서 노동부의 산재승인된 산업재해의 통계만 보더라도 매년 약 10만명의 산업재해노동자, 3000명의 산재사망 노동자가 발생하고 있다. 2003년 노동부의 산재분석자료에 의하면, 2003년도의 총재해자수는 94,924명 (2002년도 81,911명)이었고, 총 사망자수는 2,923명 (2002년도 2,605명)이다. 물론 산재보상보험에 의해 인정되지 않는 산재와 직업병을 합하면 이것의 몇 배이상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산업재해를 당했을 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산재요양신청을 해야되는 줄도 몰랐고, 그 체계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몰랐다. 80년대 중반 그당시 박노해시인이 지은 손무덤이란 시에는 기계에 짤려진 동료형의 손을 들고, 산재관계 책을 찾아서 아무리 책을 찾아보아도 노동자가 읽을 책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시에서는 자본의 착취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지만, 더욱 그 시대를 절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산재관련 책을 다 뒤져도 찾지 못했다는 대목인 것이다.

 

1980년에서 2000년을 훌쩍 넘기고 벌써 중반에 오는 이 시기까지 산업재해보상과 관련해서 변한 것은 무엇인가? 자본가계급은 1980년 산업안전보건법을 만들어놓고, 점점 개악을 하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은 지난한 산재승인투쟁의 역사를 거쳐왔던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년은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와 직업병을 업무상재해로 승인시키기위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과 죽음을 불사하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그 한가지 한가지를 한번 풀어헤쳐보자.

 

우리나라에서 산재승인과정의 역사는 노동자들의 죽음과 죽음을 불사하는 투쟁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졌다. 17년 전인 88년 7월2일, 온도계공장에서 두 달밖에 일하지 않았던 열다섯살의 문송면 군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그가 직업병 승인을 받은 지 2일만의 일이었다. 문송면은 결국죽어서야 산재인정이 되었다. 이렇게 1980년대 중반에는 작업장에서의 죽음을 산재인정과 맞바꾸어야만 했다.

 

1980년대말부터 1997년 경제위기이전까지의 기간은 한국자본이 생산력의 양적확대 및 대량생산을 통하여 노동자들의 강도를 높여가는 시기였다. 이때 자동차공장에서는 작업속도의 두배이상의 증가가 있어왔고, 여러 공장에서 과로사로 인한 죽음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노동자들의 과로사로 인한 죽음은 작업장에서의 과도한 노동강도때문이었다.

 

1997년 말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 라는 타이틀을 걸고, 자본가계급이 자본주의 경제위기를 노동자계급에게로 전가하는 과정이었다. 이것은 크게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대량실업, 반실업 및 불안정노동의 상태와 노동강도의 강화로 귀결되었다. 경제위기이후, 자본은 경제위기의 이름하에 산재승인을 급격하게 줄이고, 산재급여를 줄이게 된다. 그 결과, 1999년 산재 치료 중 자살한 노동자가 11명이나 되었다. 특히 1999년 6월 22일 산재요양치료중 산재요양 연기신청이 거부되어 음독자살한 이상관으로 인해 기폭제가 되고, 이로 인해 노동자계급의 산재승인투쟁이 무려 153일이상 지속되었다. 그러나, 경제위기이후, 이상관의 죽음과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계급은 노동강도강화로 인한 근골격계질환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경제위기이후 가중된 노동강도강화는 근골격계질환투쟁관련 노자대립의 양상을 더욱 변화시켰다.

 

그 예로 자본가계급의 강력한 탄압에 대항하여 가열찬 노동강도강화저지투쟁을 벌린 사업장들을 보자. 대우조선은 특히 1999년 거의 해외에 매각되기 일보직전까지 거덜난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워크아웃(workout)이라는 이름하에,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우조선에서는 1998년도 경제위기이후 “워크아웃졸업”이라는 회사측의 이데올로기와 작업속도의 증가는 근골격계질환을 증가시켰고, 1999년이후 산재사망률의 증가로 나타나자, 2001년도에 대우조선 노동조합 및 노동자들은 노동강도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심하에, 노동강도강화를 저지하기 위한 일환으로 회사측의 원천봉쇄를 뚫고 근골격계질환 환자 78명에 대해서 집단산재요양신청투쟁을 하게 된다.

 

삼호조선의 경우에도 노동자들의 현장 역학조사와 검진에 대한 계획을 시작하자마자 회사측의 정문봉쇄로 이어지고, 이에 노동조합은 100여명의 대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연구원을 구성하여 지금까지 수행한 조사사업중 가장 큰 규모의 현장연구원을 조직했고, 이 현장연구원들이 조사사업에 직접 참여도 하고 조사의 주체가 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단호한 투쟁의지가 없었다면 회사측의 전면봉쇄를 뚫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후에 핵심적인 노동자들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두원정공, 풀무원 노동자들에게 이미 노동강도와 근골격계질환문제는 자본과는 타협할 수 없는 전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노동강도저지와 근골격계질환근절투쟁과 관련해서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지 일부 증상의 완화, 공정의 개선, 일시적인 치료, 자본에 의한 미봉책등에 만족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이미 노동강도강화와 근골격계질환발생률의 증가는 이미 자신들의 노동력이 착취당한 결과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이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2. 확대되는 질환, 증가하는 산업재해에 대한 정부와 자본가계급의 음모

 

정부는 2004년 ''근골격계 질환 업무관련성 인정기준 처리지침안''을 내면서 산재판정 기준을 엄격화하였다. 명백한 자본의 반격의 시작이었다. 최근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진 "근골격계질환업무관련성처리지침에 의해서 2004년 8월이후에는 로템공장 노동자를 비롯하여 많은 공장에서 산재불승인으로 이어졌다. 자본가계급은 이제 자신들의 이해에 맞도록 법과 제도를 재편하였다. 그런데, 왜 자본가계급은 이렇게도 결사적으로 막는가? 왜 이렇게 산재요양을 위한 과정은 죽음과 불사한 투쟁을 요구하는가?

 

1980년대 초에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업무상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의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해, 기타 사망을 말하며, 업무수행성(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명령하에서 업무를 행하는 것), 업무기인성(업무와 재해간에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뉘고 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제 54조 업무상 질병의 범위에는 37번째까지에는 업무상의 부상, 근골격계질환, 진폐증, 벤젠등으로 인한 질환이 나오고, 마지막 38번째의 항목은 [기타 업무로 기인한 것이 명확한 질병]이라고 하여 업무상 질병의 기준을 정하여 놓고 있다. 이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모든 질환은 업무로 기인한 것이 증명된다면, 업무상 질병의 범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은 모든 질병이 업무상질병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는데도, 왜 끊임없이 직업병인정기준에 대한 논란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 직업병인정과 관련된 법은 자본가가 만든 법임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 이전에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선행하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은 이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과 제도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산재보상보험법은 그 업무상질병의 정의가 새로운 노-자관계와 노동과정 및 노동조직에서 발생되는 모든 질환을 포괄하지 못하므로 이미 노동자계급의 직업성질환과 산업재해를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계급은 경제위기이후 급격히 넘쳐나고 증가하는 직업성질환과 산업재해로 인해, 이미 자신들이 노동자계급을 억압하려고 만들어 놓은 기존의 법체계로도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불가능하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더 악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1998년 경제위기이후, 산재와 직업병은 점점 더 증가하는데, 더 악법이라니, 얼마나 시대를 거스르는 자본가계급의 행위인가?

 

현재 산재인정과정과 관련된 산재보상보험제도의 문제는 법 자체는 차치하고서라도 바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에 있으며, 자본가계급에 의한 산재은폐, 산재불인정, 조기치료마감, 재요양거부, 치료시설 및 재활치료의 부재, 사업장복귀불가, 산재당한 노동자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면서 노동시장에서의 퇴출과정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이 경제위기이후 점차 강화되어 오다가, 2000-2003년 노동자계급의 근골격계투쟁 전개이후, 주춤하던 자본가계급은 기어코 2004년부터 또 다시 반격을 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재승인의 문제는 법과 제도와는 관계없이 노동자와 자본가의 근본적인 생산관계를 통해서 발현되는 것이므로, 결국은 그것의 해결도 노동자와 자본가의 힘의 관계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가계급이 산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착취를 해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전된 자본주의보다도 더 착취를 해야만이 다국적 자본가들의 인수와 합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한국의 자본가들에게는 산재, 그 자체를 원천봉쇄해야 할 확고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바로 산재승인을 거부하려는 자본의 입장은 바로 자신들의 잉여착취를 가로막은 산재승인을 거부하는 것이다. 

 

3.점점 확대되는 직업병: 정신질환도 직업병이다

 

자본가계급이 산재판정기준을 강화시킨다고 해서 늘어나는 산재를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현재 직업성 질환은 경제위기의 시대를 거쳐서 자본가계급의 착취가 심화될수록 신체적, 정신적 질환은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계급과 그의 시녀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최근 정신질환은 직업병이 아니라고 한다. 특히, 하이텍노동자의 정신질환 산재승인문제와 관련해서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탄압에 의해 발생한 정신질환들은 산재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지금 근로복지공단의 이러한 행위는 국제노동기구(ILO)나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국제기구에 의해 지적을 받을만한 일이라는 것을 자본가계급은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왜 자본가계급은 정신질환을 산재승인해주길 두려워하는 것일까? 1997년말 경제위기이후, 정부와 자본에 의한, 자신들에 의한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  노동강도강화와 노동통제, 노동탄압 등이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 실업의 증가, 노동자의 산업예비군으로의 전락, 사회계급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빈곤의 심화, 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하게 되고, 노동자들의 직업성질환이 급증해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국의 정부와 자본가계급이 자신들에 의해서 양산된 근골격계질환, 사망재해, 재해의 증가에 이어서 정신질환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이미 한국사회에 직업관련성 정신질환이 숨길수 없을 정도로 만연해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승인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염연하게도 정신질환은 직업성질환이며, 한국 자본가계급의 노동강도강화, 노동통제, 노동탄압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다른 나라를 보자, 의료보험제도가 민영화되고, 그 혼란스러운 의료제도를 가진 미국에서조차 정신질환은 10대 직업성질환으로 분류가 되어 있으며, 영국에서는 10대 직업성질환으로 분류가 되어있을 뿐아니라, 이미 주요 직업관련성 질환이 근골격계질환과 스트레스로 인한 직업성질환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미 우울증, 과민성신경질환, 직업적 스트레스, 강박질환, 성격장애등을 겪고 있다. 영국정부는 이미 직업성질환의 가장 많은 종류는 근골격계질환과 스트레스 및 정신질환 (우울증, 신경과민, 직업적 스트레스)이다. 이 두 질환이 전체 직업병발생의 1/3을 차지하고 있다[1]는 것을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다.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 문테이너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스웨덴, 스페인, 영국을 포함한 몇 개의 나라들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을정도로 심한 노동자의 직업적 스트레스는 제 3자의 중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즉 또한 보통의 직업적 스트레스수준이라 하더라도, 자율성의 부재, 관리자의 괴롭힘, 직업에서의 자유의 부재, 과도노동, 해고의 위협,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것, 폭도,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불법적인 위협 등으로 인해 직무스트레스가 심한 사업장은 국가에  벌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Muntaner 2005).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은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에 미치는 영향은 이주노동자, 소수민족, 노동조합원등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그들의 노동시장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많은 권위있는 나라들에서 관리자들이 노동조합지도부들에 대해서 심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Muntaner 2005).

 

노동조직과 직무스트레스 및 정신건강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업무의 하중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심하게 일을 해야하는 가의 문제)이 우울증을 더 많이 유발한다는 연구들이 있다 (Eaton et al, 2001). 또한 갈등의 부정적인 효과가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들이 있다 (Phelan and cols 1991). 최근 미국에서 관리자의 학대, 노동법 위반, 관리자에 의한 해고의 위협등이 미국의 간호사들 사이에 우울증을 심화시킨 연구가 있다 (Muntaner, 2005).

지금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근골격계질환 및 정신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의 정신질환이 신자유주의,구조조정에 의한 노동강도강화, 노동통제, 노동탄압의 결과이고, 노동자와 노동자끼리의 경쟁의 강요, 노동자의 사회적 차별내지는 계급적 차별에 의한 정신질환의 문제로 대두되었슴을 인정해야 한다.

4.노동자계급의 산재투쟁은 노동자들을 스스로 해방시키려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산재인정기준을 만들어야 하는가? 산재인정기준을 위해서 싸워야만 하는가? 아니다. 현재의 산재인정기준은 없어야 한다. 이것은 자본가계급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을 보다 잘 만들어달라고, 보다 완화하게 해 달라고 자본가계급에게 애걸복걸 할 것인가?

 

이미 많은 노동자들이 죽었다. 산재로 죽고, 직업병으로 죽고, 산재와 직업병에 걸리고도 산재로서 인정이 안되어서 억울해서도 죽고, 치료를 받지 못하여서도 죽고, 울분을 못이겨서도 죽었다.

 

해결의 근원은 다시 힘의 역관계이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힘의 역관계이다. 노동자들은 산재를 넘어서서 산재인정 그 자체의 문구를 넘어서서 산재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 자본가의 착취구도를 이해하고, 자본가계급의 노동력착취에 대해서 분노의 칼날을 갈면서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현재 투쟁하고 있는 하이텍동지들은 전국의 노동자를 대표해서 자본가의 탐욕스러운 착취가 어떻게 노동자들을 피폐하게 하고 있는가를 만천하에 고하고 있으며, 자본가계급에 대항하여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의 노동자동지들이여, 각 단위 작업장에서 산재은폐의 문제, 산재불승인문제, 산재치료와 재활의 문제, 산재환자의 노동시장에서의 퇴출문제에 대해서 노동자들과 토론을 시작하자. 산재승인의 문제는 단순한 법과 제도적인 문제가 아닌, 노동자와 자본가의 생산관계, 즉 자본가계급의 노동력 착취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을 가지고 토론하고 조직하자, 그리고 투쟁하자. 그래서 노동해방을 위한 첫걸음이 되자.

 



[1] 영국의 국립보건안전연구원 (Occupational Health Statistics Bulletin 2004/05, http://www.hse.gov.uk/statistics/overall/ohsb040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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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집회소감:농협노동자와 농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농협, 농촌주민의 주체가되는 공동체 농협으로 발전해나가기위하여 -

<횡성집회소감>

 

농협노동자와 농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농협, 농촌주민의 주체가되는 공동체 농협으로 발전해나가기위하여 -

 

 

오늘 10월 1일, 원주 횡성농협노동자들이 23일째 하고 있는 파업에 연대투쟁을 다녀왔다. 아침에 서울에서 춘천을 향해 오면서 버스안에서 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가 어떻게 늙은 노동자의 노래로 바뀌게 되었는가?에 대한 시대적인 상황을 이야기하는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면서, 설마 오늘은 집회가 없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학교를 와 보니, 강원대 생활도서관 학생들이 전화를 한다…… 강원도 횡성에서 집회가 있단다. 전화를 끊자마자 부랴부랴 달려나왔다. 결국 차비도 없이 달려나갔다가, 학생들이 나의 차비까지 내어주면서 버스를 타고 횡성까지 갔다.

 

파업연대투쟁에 참여하는동안 옛날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실 때 농협과 아버지와의 관계가 계속 생각이 났다. 옛날 1970년대말-1980년대 초에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실 때 이야기이다. 어렸을 적의 기억으로 아버지는 농협으로부터 일부 농자금을 빌리기도 했고, 또 농약을 외상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는 여름이 다가도록 매일 이자를 지불하라는 용지가 날라오고, 체불용지가 날라왔다. 어떨때는 아버지가 농협빚을 다 갚지 못하여 농협의 조합장을 만나야 했다고 하면서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농협과 농협의 조합장은 농민들에게는 권위의 상징이었고,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농촌에서 농협의 주인은 조합장이고, 그는 마을의 지주였고, 군인이었던 지배계급이 휴양겸 낙하산인사로 농협에 거점을 잡기시작 했다는 것을 당시 학교 선배들로부터 들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농협의 조합장과 관리자들은 그전과 비교하여 변함이 없어보인다. 오늘 집회에서 투쟁발언을 하는 활동가들이 하나같이 조합장의 권위주의적이고, 자기이익중심의 조합운영과 조합이 농민들의 피 같은 돈을 가져다가 이자놀이에 급급하고 있슴을 폭로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협의 직원들은 자신들이 노동자임을 선포하였고, 자신들은 농민을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가 아니라, 조합장의 이윤착취와 이자놀이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분노하고 나섰노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농협의 고위관리자들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비정규직화, 고용불안조장, 농민들로부터 이윤을 착취, 농산물개방정책 및 쌀수입화정책옹호에 대항하여 농협노동자들이 반대와 저항을 하는 것을 보면서, 옛날의 농협내의 구도와 농협과 농민과의 관계가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수 있었다.

 

이제, 농협의 민주화, 공공화, 더 나아가 농민이 주체가 되고, 농민들의 대표가 농협을 직접 운영하는 농촌의 공동체의 거점으로 자리잡으면 어떨까? 하는 꿈도 그려보았다.

 

그런면에서 이 집회에서 농민과 농협노동자들이 연대하여 투쟁하였으면 더욱 좋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농민들의 쌀시장개방화에 대한 반대투쟁과 농협노동자의 농협내에서 관리자들의 착취구도를 타파하고, 구조조정, 비정규직화에 반대하는 투쟁 및 농협의 공공화를 같이 벌려나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쌀개방 저지하고, 농협을 농민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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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마라톤소감:황금물결나락에 줄줄이 엮여진 농민의 시름을 생각하다

충주마라톤소감:

황금물결나락에 줄줄이 엮여진 농민의 시름을 생각하다

 

손미아

 

어제 충주 마라톤을 다녀왔다. 단지 마라톤을 할 목적으로 춘천을 벗어나서 먼 곳(실제 내고향이긴 하지만)으로 원정을 한 경험은 지난번 서울 동아마라톤이후 두번째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벌써 마라톤 마니아가 되었나 보다.

 

전날 토요일에는 서울에서 거의 새벽 3시까지 사람들이랑 모여서 일을 했다. 정말이지 우리는 새벽까지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습관화 되었던가? 겨우 그 일터를 빠져나와서 새벽 6시 충주로 가는 새벽버스에 몸을 싣고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북적거리는 소리에 일어나니, 벌써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밖에 즐비하고, 기사아저씨께서 내리라고 하신다.

 

눈도 안떠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거 100미터라도 달릴수가 있을까? 하면서 내렸다. 탄금대인가보다. 그곳에 인라인 스케이트장처럼 생긴 광장이 하나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8시가 조금 넘었다. 다행히 그 옆에 슈퍼가 하나 있어서 무조건 그곳으로 들어갔다. 약간은 묵뚝뚝한 그러나 마음씨 좋으신 주인아주머니께서 뒷 광을 쓰라고 하셔서, 옷도 갈아입고, 양말도 사 신고.. 이제사 복장을 갖추었다.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단지 고향이라서 그런 것일까? 왜 그렇게 정겹고, 나와 비슷해보이는지……정말 그분들의 말투를 기억할 수 있었다. 고향분들을 보면서 그동안의 나의 모습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는 든든함이 왜 생기는 것인지? 너무나도 평범해보이는 나의 모습을 바꾸어보려고 했었는데, 나는 고향에 와서 드디어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충주호반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탄금대에서 시작하여 중앙탑을 지나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곳까지 갔다오는데 하프의 거리였다. 어제 밤도 샜으니, 오늘은 하프로 만족하자!! 중앙탑아래에는 탑문화제가 한창이다. 마을 어른과 노인들이 다 나오신 것 같다. 예전에도 탄금대에 가끔 가보면 노인들중심의 문화제가 꽤 있었는데, 지금도 이런 풍경을 보니 정겨울 뿐이다. 한 할아버지는 별로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햇빛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달리는 내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이런 어디에 실릴꼬, 내 모습이...예전에는 내가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찍었었는데, 이제 할아버지가 내 사진을 찍다니...

 

오다가 버스를 타고 오는 길은 황금들판이었다. 아직 벼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그래서 요새 가을볕이 뜨거워야하고, 마치 여름날처럼 뜨거운 열기가 벼이삭을 익게 만들어야 하나보구나. 이 황금들판을 보니, 농촌 사람들의 시름만 떠오른다. 누가 이 황금들판을 보면서 마냥 기뻐만 할 수가 있는가? 옛날에는 정말 국어교과서의 형님아우 볏단나르기가 실제상황이었던 적도 있었고, 지금쯤이면 벌써 한해농사가 풍년이 되었노라고 하면서 모두들 기뻐할 시기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한 농가 옆에 흰색천에 검을 글씨로 쓰여진 국회의 쌀협상 비준안을 을 거부한다는 팜플렛하나가 달랑 보인다. 아무도 없는 곳에 쓸쓸히 걸려있는 팜플렛을 보면서, 황금물결나락에 줄줄이 엮여진 농민의 시름을 생각한다.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의 시름이 무색하도록, 저 들판에서 농민들의 또 그 아들 딸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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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그대를 사랑하기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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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하고있는 대우조선 노동자-항상 내가슴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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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타는 대우조선 노동자-2001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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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은 직업병이다”

“정신질환은 직업병이다”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손 미 아

 

지금 서울 영등포로타리에 위치한 근로복지공단앞에서는 하이텍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정신질환 산재승인을 위해 95일간의 천막농성과 26일간의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현재 26일이상 장기단식하는 분들의 건강이 심히 매우 위험한 지경에 처해있다. 이를 보다못하여, 9월 9일에는 158명이 100인 동조단식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정신질환에 의한 산재승인을 결사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자신들이 언론에서 광고하듯이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추구하는 기관’이라면, 마땅히  왜 노동자들이 문밖에서 100여일동안 산재요청을 하고있고, 26일동안 물한모금으로 버티면서 자기몸을 죽여가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를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정신질환의 산재승인과 관련해서 볼 때에도 역시 근로복지공단은 국가와 자본가계급의 시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은 근로복지공단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도대체 근로복지공단은 왜 정신질환을 산재승인해주길 두려워하는 것일까? 1997년말 경제위기이후, 정부와 자본에 의한, 자신들에 의한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 이어진 노동강도강화와 노동통제, 노동탄압, 노동자의 단결탄압등이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 실업의 증가, 노동자의 산업예비군으로의 전락, 사회계급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빈곤의 심화, 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하게 되고, 노동자들의 직업성질환이 급증해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국의 정부와 자본가계급이 자신들에 의해서 양산된 근골격계질환, 사망재해, 재해의 증가에 이어서 정신질환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이미 한국사회에 직업관련성 정신질환이 숨길수 없을 정도로 만연해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승인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염연하게도 정신질환은 직업성질환이며, 한국 자본가계급의 노동강도강화, 노동통제, 노동탄압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다른 나라를 보자, 의료보험제도가 민영화되고, 그 혼란스러운 의료제도를 가진 미국에서조차 정신질환은 10대 직업성질환으로 분류가 되어 있으며, 영국에서는 10대 직업성질환으로 분류가 되어있을 뿐아니라, 이미 주요 직업관련성 질환이 근골격계질환과 스트레스로 인한 직업성질환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미 우울증, 과민성신경질환, 직업적 스트레스, 강박질환, 성격장애등을 겪고 있다.

“직업성질환의 가장 많은 종류는 근골격계질환과 스트레스 및 정신질환이다. 이 두질환이 전체 직업병발생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의 국립보건안전연구원, Occupational Health Statistics Bulletin 2004/05, http://www.hse.gov.uk/statistics/overall/ohsb0405.htm)”

지금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근골격계질환 및 정신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의 정신질환이 신자유주의,구조조정에 의한 노동강도강화, 노동통제, 노동탄압의 결과이고, 노동자와 노동자끼리의 경쟁의 강요, 노동자의 사회적 차별내지는 계급적 차별에 의한 정신질환의 문제로 대두되었슴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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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에 비통함을 금치못하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에 비통함을 금치못하며

 

언제부터인가 계절이 서늘해지면 열사의 죽음을 생각한다. 2003년, 10월 129일을 외로이 한진자본의 탄압에 죽음으로 맞선 김주익열사, 2003년 가을 근로복지공단에 다니던 비정규직 노동자 이용석열사의 분신, 2004년 설무렵에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 박일수열사의 분신 등등 2003년과 2004년을 오가는 추운겨울에 많은 정규직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으로 이어진 항거가 있었다.

 

그런데, 2005년 9월 4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또 죽음으로 항거했다. 이제 막 30살의 나이에.. 나보다도 젊은 나이에, 한창 꽃을 피울 나이에, 왜 그렇게도 절망하고 절규를 했어야만 하는가? 왜 죽어야만 했는가?

 

경제위기의 시기에, 자본가계급의 무분별하고 방만한 확장과 집중의 결과로 빚어진 그 혼돈의 시기에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무능과 부패를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였다. 1999년, 2000년 파견법의 도입으로 인한 급격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 이것은 자본가와 자본가계급의 투철한 앞잡이인 정부가 위기를 전가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시기에 파견법의 도입을 막지 못한 노동자계급의 한계도 있으나, 그것을 앞장서서 합의해준 민주노총 지도부는 씻을 수 없는 역사적인 과오를 저질렀다. 자신을 휘둘러칠 철퇴를 자본가계급에게 갖다 준 셈이 되었다. 이렇게 볼 때,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는 그 일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학자들의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의 고용관계, 미래사회의 고용형태도 아니고, 새로운 노동시장의 흐름이 아닌 것이다. 노동자의 힘의 열세와 사회적 합의주의로 인한 노자관계의 재형성의 결과인 것이다.

 

그후에 노동자계급은 절규한다. 아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절규하고 절망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계급의 문제는 바로 정규직 노동자의 문제인 것은 모든 노동자계급이 인정하고 있는 바이나, 함께 투쟁하기에 무엇이 그다지도 방해를 했던가? 바로, 자본가계급과 국가였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이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관계없이 함께 단결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 한다. 그것은 바로 위기의 시대를 해방의 시대로 전환시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가계급은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결사적으로 막았던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절망하게 둘것인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한명 한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기전에 차라리 우리 같이 죽도록 함께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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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이 사치스러운 사람들

 마라톤이 사치스러운 사람들... 마라톤을 할 수 없는 사람들


얼마전 한 자동차 공장에 갔다. 일요일 특근시간이었다. 공장은 겉에서는 불도 꺼진듯하고 조용하나, 실제 공장 내부를 들여다 보면, 일요일인데도 어찌 그리 다 나와서 일을 하시는지...... 요새는 특근과 휴일근무를 할수 밖에 없다고 한다.

 

예전에 주 40시간을 외치고, 주 5일제를 외칠때는 그것만 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주 5일제가 되고, 주당 40시간이라고 외치는 이시대에 야간잔업과 특근이 늘어나기만 하니 이게 왠일인가?

 

길게 늘어진 줄을 기다려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한 노동자분이 점심시간이라고 공장주변을 뛰신다. 나는 덩달아서 나도 마라톤을 달려보았노라고 재면서 자랑을 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오는 말이 나의 심장을 멈추게 하였다.

 

“마라톤, 그거 우리 환영안합니데이. 마라톤을 할 수 없지요.. 무릎이 다 망가졌는데 무슨 마라톤입니까? 마라톤이...”


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마라톤이 사치스러운 것이구나!  그 순간 얼마나 무안했는지..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너는 알기나 했는가? 도대체'...

 

지금 세상은 아니 자본과 정부는 지난 2004년부터 반격을 시작하였다. '직업병인정기준 개정안'이 그것의 시작이다. 1998년 경제위기이후, 노동강도강화와 고용불안정으로 황폐화된 노동현장... 그 현장에 굴하지 않고 노동자계급은 꿋꿋하게 싸웠었다. 대우조선, 삼호조선, 두원정공, 풀무원(춘천),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 등에 이르기까지...... 이제 자본은 신자유주의정책으로 불안정노동을 증대시키고 노동의 양극화를 시키고, 노동자 건강권에도 반격을 시작하고 있다.

 

지금도 근로복지공단앞에서 힘겹게 투쟁하는 하이텍 알씨디 여성동지들...... 정부와 자본의 반격을 온몸으로 막고 있다.

 

내일이라도 서울가면 하이텍 동지들을 찾아가 보아야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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