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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균형

 

어슐러 K. 르 귄 읽기 3
 
어스시의 세계
넓은 바다, 작은 섬들의 세계. 헤인의 우주보다 보잘 것 없이 작은 곳에서 고작 수백 년의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놀라운 마법이 세계를 변화시킨다. 마법이라 부르는 그것은 어스시의 세계에서는 과학기술이다. 자연이나 생명 곧 마법을 걸 대상의 본질과 원리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 어스시의 마법이다. 본질은 이름이고, 원리는 주문이다. 대상의 진정한 이름을 찾고, 이름을 불러 소환하고, 적절한 주문을 걸어 변화시키는 것이 마법의 기본과정이다. 그것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마법사의 기예다. 마법사들에게 기예보다 중요한 것은 지혜다. 지혜가 풍부한 마법사들을 현자라 부른다. 
 
변화와 균형
어스시는 작은 섬들의 세계이기 때문에 다른 섬들과 교역하기 위해서는 항해술이 대단히 중요하다. 마법사는 배가 잘 항해할 수 있도록 마법풍을 쓰기도 하지만, 그 결과로 다른 곳의 기후 변화를 초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조심스런 기술이다. 현자들은 폭풍우를 만들거나 없앨 수도 있지만, 웬만해선 자연에 저항하지 않고 감수한다. 반면에 사악한 마법사들이 가끔 등장하거나, 지혜가 모자란 마법사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을 빚기도 한다. 이런 구절이 있다. 
 
좋은 일을 하려고 할 때의 위험한 점은, 마음속으로 선한 의도와 실제로 잘 해내는 행위를 혼동하는 데 있다. 그것은 수달이 옌바나 강을 바르게 헤엄쳐 내려가면서 할 생각이 아니다. 수달은 속도와 목적지, 그리고 달디단 강물의 감촉과 헤엄치는 힘의 달콤함 외에는 별로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 수달이 된 그는 그대로 수달로 남아 있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쾌적한 갈색 물속에 살아 있는 강물 속에, 언제까지나 수달인 채 있었으면…. 
- 제5권 어스시의 이야기들, ‘찾은 이’ 편에서
 
선한 의도를 가졌지만 일을 망치고서 자신이 부끄러운 나머지 도피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다. 다행인 것은 저 수달은 자신의 혼동을 깨달았기 때문에 결국 도피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낸다. 그리고 가능한 만큼 일을 바로 잡는다. 그는 악에 대항하기 위해 수많은 마법사들을 찾아 모으는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자신의 실수로 죽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자신의 몸에 남은 상처로부터 평생 고통과 후회 속에 산다.  
르 귄이 강조하는 균형은 마법의 균형뿐만이 아니다. 주인공들이 성장을 보여줄 때는 꼭 고통을 동반시킨다. 좋은 결말 아래에 숨겨진 그 고통이 마음을 너무 후벼파서 르 귄이 미울 정도다. 그러나 그것이 르 귄 작품의 장점이다. 판타지라는 장르가 무색할 만큼 사실적이다.
 
감수성
여기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너무 큰 비약일지 모르겠다. 일군의 사회주의자들이 지금까지의 운동과 다른 질적 성장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아직은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지 못한다. 다른 역사를 가진 사회주의자들을, 또는 지금까지 다른 운동이라 생각했던 여성주의나 생태주의 운동을 만날 것이다. 
현실을 아름다운 우화나 상상으로 비유하는 훌륭한 이야기꾼의 감수성과 현실의 고통을 이겨낼 냉철함의 균형을 갖춘다면 사회주의자들이 변화할 이야기의 전개가 조금 더 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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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

제1권 어스시의 마법사
어스시의 세계에서 가장 지혜롭고 위대한 마법사 새매(진정한 이름은 게드)의 성장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약간의 재능을 타고난 새매는 힘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또래 여자아이가 “나 이런 거 할 줄 아는데, 넌?” 하는 소리에 감당할 수 없는 마법에 접근하는 야망 가득한 소년이었다. 그래서 지혜로운 스승의 가르침 보다 로크 섬의 마법학교를 선택한다. 거기서도 끝내 동급생과 질투어린 마법대결로 치닫고, 너무나 위험한 어둠의 존재에게 쫓기게 된다. 쫓고 쫓기는 모험의 과정에서 마법사의 진정한 책임을 느낀다. 돌아 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어둠의 존재와 대면한다. 그 어둠의 존재는 새매의 다른 모습이었다. 
1권에서는 마법의 원리가 소개되고, 마법을 통한 세계의 변화를 제대로 책임지는 마법사의 자세가 그려진다.
 
제2권 아투안의 무덤
어스시의 변방 아투안은 마법사들의 힘보다 대지의 힘이 지배적인 곳이다. 대지의 힘을 숭배하는 사원의 대무녀는 아르하라는 소녀다. 아르하는 ‘먹힌 자’란 뜻이다. 자신의 이름을 먹힌 채 영원히 환생하는 대무녀의 현신이 아르하다. 원래 이름이 테나인 아르하는 어려서 부모와 헤어지고 시녀들과 환관의 지시에 사육당하는 불쌍한 소녀일 뿐이다. 아르하는 어느 날 지하 무덤의 미로 아래서 유물 도둑과 맞닥뜨린다. 도둑은 미로 속에 갇혔고, 아르하는 처음보는 도둑, 아니 남자를 훔쳐본다. 먹힌 자와 갇힌 자는 오랜 시간 동안 최소한의 대화로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도움으로 자유를 찾는다. 도둑은 새매였고, 유물은 옛 영웅의 평화의 상징인 룬이었다. 평화의 상징을 원래 있던 곳에 되돌려 놓음으로 전쟁과 약탈이 판치는 어스시의 세계를 평화롭게 하려는 의도였다. 
마법사 새매보다는 아르하의 운명과 자유의지의 대결이었다. 
 
제3권 머나먼 바닷가
새매는 그간 세계의 불균형을 손질하고 평화의 룬을 되찾는 등 많은 활약을 펼쳐 존경받는 대현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변방에서 마법사가 마법을 잃어버리거나 마법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며 어둠이 세계를 덮쳐왔다. 이를 일찍 알아차린 어느 섬 지역의 왕자 아렌이 새매를 찾아온다. 이들은 원인을 찾아 머나먼 여행길을 떠난다. 문제의 원인은 영생을 갈구하는 어둠의 마법사 거미였다. 세계의 균형이 무너져 아주 옛날 인간과 한 종족이었던 서쪽 바닷가의 용들도 말을 잃고 서로를 죽이는 일이 생겼다. 새매와 아렌, 그리고 나이 많은 위대한 용이 만나 삶과 죽음의 경계지로 간다. 겨우 세계의 균형을 바로 잡은 새매와 아렌은 용을 타고 로크 섬으로 귀환한다. 아렌은 800년간 비어있던 어스시의 중심인 헤브너의 왕좌에 오르고 모든 능력을 잃은 새매는 고향 곤트 섬으로 돌아가 은퇴한다.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제4권 테하누
르 귄은 1권 1968년, 2권 1971년, 3권 1972년,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1990년에 제4권 테하누를 출간했다. 게드는 고향에서 2권의 주인공인 테나와 노년을 보낸다. 테나는 부랑자들에게 버려져 불에 반쯤 탄 여자 아이 테루를 돌본다.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해가는 과정에 새로운 가족이 형성된다. 그러나 무언가 다른 테루에게 사악한 마법사가 접근하고 새로운 가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긴다. 위기의 순간 아주 오래된 용이 등장해 사악한 마법사를 물리치고 테루를 자신의 딸 테하누라 불렀다. 이 작품에서는 르 귄이 그간 완벽하게 창조했던 마법의 세계에 의문을 던지며 그 마법보다 더 깊은 곳의 비밀을 드러냈다. 한편 3권까지 마법의 진정한 힘을 탐구하던 내용이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평을 받아들여 마법의 힘 보다 인간의 감성과 정신에 더 큰 비중을 두며 여성주의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제5권 어스시의 이야기들
르 귄은 테하누에 ‘어스시의 마지막 책’이란 부제를 달았었다. 11년 뒤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며 변화한 어스시의 세계와 새매 이전의 어스시 역사를 다룬 5편의 중단편을 묶어 발표했다. 현자들의 섬 로크가 형성되는 과정인 ‘찾은 이’, 마법의 힘을 넘어선 사랑과 예술, ‘검은장미와 금강석’, 새매의 스승의 이야기 ‘대지의 뼈’, 대현자 게드의 친구이자 숙적인 마법사의 노년 이야기 ‘높은 습지에서’, 그리고 테하누의 자매 ‘잠자리’의 이야기들이다. 이 작품들은 작가의 작품이 독자적인 세계로 변화할 수 있고, 작가는 그 세계를 겸허하게 탐험할 수도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들이다. 
 
제6권 또 다른 바람
남자 마법사들의 세계에 발을 들였던 여자 마법사 잠자리가 용이 되어 날아간 뒤, 그리고 테하누가 장성했을 때, 오지의 어느 떠돌이 마술사는 자신의 고통을 감당할 길이 없어 로크 섬을 거쳐 은퇴한 게드를 찾는다. 세계의 균형이 다시 무너지고, 서쪽의 용들이 인간의 토지를 침략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균열이 생긴다. 모든 문제의 실마리를 가진 자들과 용들이 헤브너의 젊은 왕을 중심으로 모인다. 동쪽에 날지 못하는 용들이 사는 곳의 공주도 헤브너의 왕을 찾고, 이들은 힘과 지혜를 모아 용과 인간의 비밀, 삶과 죽음의 비밀을 밝힌다. 환생하는 인간들, 죽음의 세계에 갖힌 영혼들, 그리고 용들은 다른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난다. 이 작품은 인간의 종교, 문화의 차이들 그리고 억압과 해방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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