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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를 보내고 온 날, 계단을 오르려다가 발을 허공에 딛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동지의 영원한 부재 앞에서 저는 그만 길을 잃은 아이처럼 서성였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은 오죽할까요?
이 세상 어떤 죽음이 예고되고 준비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원망이 남습니다. 한이 남아요.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힘겨운 모습을 보고서도,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할 때도 이렇게 속절없이 가실 줄 몰랐습니다. 혹독한 대의와 책임으로 단련된 동지가 아닙니까?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부대끼며 뜨겁게 살던 동지가 아닙니까?
저 세상으로 보낸 동지의 옷은, 결혼식 때 산 양복이라고 하더군요. 15년이 넘은 옷을 여태까지 입고, 아꼈다고요. 김동암동지? 우리에게 ‘운동’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 ‘좌파로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부와 자본가도 꺽을 수 없었던 것을, 제 몸이 녹아내리는 것도 모르고, 끝내 버리지 못한 헌 양복 걸치고, 그 비를 다 맞는 것입니까?
빛깔 좋은 변명하나 준비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법도 알지 못하고 끝내 쿨하지도 못하고 수줍고 낯 많이 가리는 사람, ‘시골에서 살고 싶다’면서 고지식하게 꿈꾸는 게 전부였던 이 모자라고 불쌍한 내 동지, 내 선배, 내 가족 동암이형?
2009년 올해는 연이어 거물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민국이 요동쳤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조를 건설했던 영광은 어디로 갔는지동지를 돌봐 주지 않고,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맹세처럼, 황량한 벌판에 바람만 흩날립니다.
그래요,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원한 종착역의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특별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그 뜻과 가치 마지막까지 노동자민중의 품으로 세상의 온기로 스며들기를 바랬지요.산화하는 삶으로, 소외되고 고통받는 세상의 눈물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아픈가 봅니다. 정작 제 눈물 닦아줄 손수건 한 장 마련하지 못하고 부여잡으려 발버둥을 쳐도 의지가지없는 생을 살아가니 말입니다. 그것이 죽음으로서 살고자 했던 자들의 선택이고 숙명이 아니겠습니까?
동지가 가면서 무엇 때문에 눈감지 못하고 통곡했을지 압니다. 부질없는 약속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가족으로 옆에 살겠습니다. 제 스승이며, 뜻을 나눈 동지이며, 평생의 벗인 언니와 아이들의 이모로서 그렇게. 그날도 보셨지요? 저를 위로하는 언니를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마시고 가던 길 편히 가십시오.
이제 이 까마득한 후배에 기대도 좋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쉬셔도 좋습니다. 나눌 영광따위야 없는 것이 우리네들이지만, 험난한 여정 함께 한 우리 동지들이 동지의 가는 길을 밝혀 드리겠습니다. 한 생이 다하도록 시대를 밝히려고 전념했던, 김동암동지에게 세월에 꺾이지 않을 동지애를 바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9년 12월 3일 박준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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