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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0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사건의 재판부 판결에 주목하는 이유
    PP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사건의 재판부 판결에 주목하는 이유

3년 전인가 일천한 경험으로 어떤 지역에 반성폭력 교육을 간 적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만 그 때는 더욱 ‘배우는 입장’이라 누구에게 여성억압과 반성폭력운동에 대해 교육할 주제도 아닌데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무거운 발걸음을 땠다. 교육을 시작하자마자 첫 마디를 뗀 것이 “조직내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 바로 내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그 길이를 알 수 없는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교육하겠다고 서 있는 지금 순간도 터널 속에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교육을 받기 위해 모인 이들은 내 말에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들도 그 캄캄한 터널에, 언제 나올지 모르는 그 굴속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조직적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토론을 하고, 수 개 월에 걸친 토론에 지쳐 찜찜함이 있어도 ‘처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마무리됐던 무수히 많은 성폭력 사건을 기억한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비로소 그 과정에 피해자에 대한 고민과 배려, 치유와 일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고민은 말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올바른 해결을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은 함께 분노했고, 함께 울고, 함께 반성폭력운동의 주체되기를 결의했지만 그 속에서도 적어도 나는 고백컨대 피해자가 정말 당당하게,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운동으로, 자신의 일상으로의 복귀를 사건 해결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지독하게 아팠다.
성폭력사건이 벌어지면 가해자에 대한 분노는 있어도 피해자의 상처치유와 복귀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운동사회 역시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올바른 해결을 말하지만 이것이 조직논리와 부딪히는 순간 많은 이들은 조직의 수호자가 되어 피해자의 주장을 과도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그 조직을, 혹은 관련된 공동체를 떠나기가 일쑤다. 그 결과 사건을 처리해도 피해자는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가고, 조직혁신과 반성폭력운동의 주체되기를 주장하며 조직논리와 맞서 싸웠던 활동가들은 또 다른 상처를 안고 조직운동에 절망하기도 한다.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징역 3년’ 의 원심을 확정하는 판결에서 1.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모든 행위는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 2. 술로 인한 심신미약이 감경요소로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점 3. 성폭력사건은 금전배상으로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으며 공탁이라는 방식은 오히려 피해자를 욕되게 하고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출했다.
내가 헤깔리는 것일까. 사법부가 헤깔리는 것일까. 사법부 해체를 외치는 입장에서 이번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을 주목하는 것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해체되어야 할 정치권력자들의 하수인인 사법부가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운동조직보다 더 피해자의 고통과 맥락을 고려해 판결문을 작성했다면, 그래서 그토록 성폭력사건을 둘러싸고 수 많은 논란과 조직논리 속에 피해자의 고통과 맥락조차 잃어버렸던 결코 적지 않았더 우리의 경험을 돌아본다면  그 진보적인 운동조직의 정체성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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