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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간부 성폭력사건의 재판부 판결에 주목하는 이유

3년 전인가 일천한 경험으로 어떤 지역에 반성폭력 교육을 간 적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만 그 때는 더욱 ‘배우는 입장’이라 누구에게 여성억압과 반성폭력운동에 대해 교육할 주제도 아닌데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무거운 발걸음을 땠다. 교육을 시작하자마자 첫 마디를 뗀 것이 “조직내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 바로 내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그 길이를 알 수 없는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교육하겠다고 서 있는 지금 순간도 터널 속에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교육을 받기 위해 모인 이들은 내 말에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들도 그 캄캄한 터널에, 언제 나올지 모르는 그 굴속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조직적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토론을 하고, 수 개 월에 걸친 토론에 지쳐 찜찜함이 있어도 ‘처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마무리됐던 무수히 많은 성폭력 사건을 기억한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비로소 그 과정에 피해자에 대한 고민과 배려, 치유와 일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고민은 말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올바른 해결을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은 함께 분노했고, 함께 울고, 함께 반성폭력운동의 주체되기를 결의했지만 그 속에서도 적어도 나는 고백컨대 피해자가 정말 당당하게,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운동으로, 자신의 일상으로의 복귀를 사건 해결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지독하게 아팠다.
성폭력사건이 벌어지면 가해자에 대한 분노는 있어도 피해자의 상처치유와 복귀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운동사회 역시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올바른 해결을 말하지만 이것이 조직논리와 부딪히는 순간 많은 이들은 조직의 수호자가 되어 피해자의 주장을 과도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그 조직을, 혹은 관련된 공동체를 떠나기가 일쑤다. 그 결과 사건을 처리해도 피해자는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가고, 조직혁신과 반성폭력운동의 주체되기를 주장하며 조직논리와 맞서 싸웠던 활동가들은 또 다른 상처를 안고 조직운동에 절망하기도 한다.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징역 3년’ 의 원심을 확정하는 판결에서 1.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모든 행위는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 2. 술로 인한 심신미약이 감경요소로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점 3. 성폭력사건은 금전배상으로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으며 공탁이라는 방식은 오히려 피해자를 욕되게 하고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출했다.
내가 헤깔리는 것일까. 사법부가 헤깔리는 것일까. 사법부 해체를 외치는 입장에서 이번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을 주목하는 것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해체되어야 할 정치권력자들의 하수인인 사법부가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운동조직보다 더 피해자의 고통과 맥락을 고려해 판결문을 작성했다면, 그래서 그토록 성폭력사건을 둘러싸고 수 많은 논란과 조직논리 속에 피해자의 고통과 맥락조차 잃어버렸던 결코 적지 않았더 우리의 경험을 돌아본다면  그 진보적인 운동조직의 정체성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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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논리 넘지 못하면, 성폭력 근절 없다

7월 22일, 민주노총 김○○성폭력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기자회견



반성폭력운동 10년, 여전한 조직논리
민주노총 김ㅇㅇ성폭력사건이 발생한지 9개월이 넘었다. 이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민주노총은 성폭력 관련 규약·규정이 만들어진지 10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핵심간부라는 자가 성폭행을 저지르고 조직은 이를 은폐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 공개된 후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퇴했고 새롭게 당선된 집행부는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과 조직문화 혁신’을 과제로 제출했다.
그러나 9개월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은 올바른 해결은커녕 몇 차례 걸친 피해자측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겠다던 지도부는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규약규정에 얽매어 형식적 처리로만 접근하고 있다.
민주노총 진상규명 특위는 진상조사 보고서를 통해 남성중심적 조직문화 속에서 성폭력에 대한 무감함과 조직보위 논리에 의한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를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특위 보고서는 민주노총의 공식 보고서로 채택됐다. 그러나 특위가 제기한 성폭력 사건의 성격과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에 제기한 문제는 전교조 집행부의 ‘조직의 명예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실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전교조 내에서는 2차 가해자들의 구명운동이 공개적으로 전개됐고 특위의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라는 판단은 전교조 징계재심위원회에 ‘혐의 없음’으로 뒤집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또한 2차 가해자들의 징계양정은 ‘정권의 탄압과 조직에 대한 공적을 인정’해 ‘제명’이 ‘경고’로 경감됐다.
이에 분노한 전교조 내 여성활동가들, 피해자 지지모임은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피해자의 상처 치유와 활동복귀, 성평등한 조직문화 건설을 위한 요구안’을 제출하고 대의원들과 7시간에 걸친 장시간 논쟁을 벌였지만 요구안은 부결되고 말았다. 전교조 다수 대의원들은 ‘피해자 상처 치유와 활동복귀’, ‘성평등한 조직혁신’보다는 조직보위와 조직논리에 따른 규약규정과 형식적 처리가 더 우선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 누구도 피해자의 치유와 복귀, 성평등한 조직혁신을 위한 안을 제출하지 않은 것일까? 역으로 말하면 그들은 조직의 형식적 처리와 조직 지키기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성폭력사건’의 해결, 공론화 없는 과정은 형식적 징계로 남아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은 과연 뭘까?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폭력 사건이 가해자 징계를 중심으로 한 처리’에 의문을 제기한다. 맞다.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의 초점은 ‘징계’가 아니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대다수 조직들은 징계위주의 처리를 요구하게 만드는 조직문화와 논리를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완강한 조직보위 논리에 부딪혀 성폭력이 일어나게 되는 가부장적 조직구조와 문화에 대한 공론화와 성평등에 대한 인식의 전환 등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3차에 걸친 연속적인 피해와 상처를 방어하기 급급하며, 조직논리를 앞세워 사실상 제대로 된 반성을 거부하는 조직적 결정에 분노하고 이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에 힘을 소진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성폭력사건 이후 대국민사과를 발표하며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복귀,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사건 초기에 나타났던 긴박함과 조직문화 혁신에 대한 목소리와는 달리 정권과 자본의 탄압 속에 긴박한 투쟁을 이유로, 규약과 규정에 의한 절차를 따지느라 성폭력사건의 해결은 지체됐다. 해결의 원칙 또한 피해자 중심주의를 지키지 못한 채 피해자를 외면하는 꼴이 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 그리고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위한 공론화는 가시화되지 않았고 결과로서 형식적 처리, 즉 징계만이 남게 됐다.
그런데 징계마저도 형식적 처리에 그쳐 피해자의 일상/활동 복귀를 위한 조치들은 전혀 취해지지 않았다. 조직 내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한 구성원들 간의 토론, 공론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그저 조직의 처리를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고 조직 내 처리에 문제제기하는 조합원들은 ‘조직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비판자’들로 취급됐다.
운동사회는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주체로 함께 서면서 운동사회에 만연한 (여)성억압적-차별적 조직구조와 문화를 혁신하는 운동에 동참하기 보다는 그저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문제로 치부해버렸다. 결국 운동사회는 사건 초기와는 다르게 대부분 침묵하거나 사건 자체를 잊어버렸고 해결의 몫은 고스란히 피해자,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몇 명의 문제로 남았다.
그럼에도 피해자와 지지모임은 민주노총과 전교조 내에서 ‘혁신해야 해야 할 조직운동’을 제기하고 피해자의 상처치유와 일상/활동 복귀를 위해 발언을 중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번번이 ‘조직의 명예’를 중시하는 바로 그 조직보위 논리라는 벽에 부딪혔다. 이번 전교조 대의원대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해자의 요구안을 반대하는 대의원들 또한 피해자 치유와 복귀를 바란다고들 한다. 그러나 조직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성폭력, 조직논리 발생에 대한 진단이 필요
조직논리가 팽배한 운동사회 조직문화는 들여다보면 여성을 부차화하고 비가시화하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조직문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조직보위 논리이다. 10년 전 운동사회 가부장적 조직문화를 단적으로 드러냈던 일이 바로 민주노총 포스터 였다. 이 포스터는 ‘가족 부양자로서 투쟁하는 남성노동자와 이를 격려하는 의존적 주부로서의 여성’을 보여줬고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여성을 종속적으로 위치 짓는 언어 및 슬로건들, 대중조직에서의 성별 대표성 문제, 남성성을 강조하는 노동조합활동 기풍과 전술, 조직내 여성 분리와 차별관행, 성폭력에 대한 무감함,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등은 한국사회의 가부정적 인식으로부터 운동사회 역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직문화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남성 혹은 조직권위에 기반한 성폭력 이슈는 사라질 수 없다.
또한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 해결에 임하는 태도 문제다. 물론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성폭력 문제는 조직이 처해질 수 있는 어려움 때문에 침묵을 강요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허다하다. 특히 정권과 자본의 탄압이 거세지면 이런 행위는 더욱 정당화된다. 이번 사건 역시 조직보위를 앞세워 피해자를 압박하고 고통을 주는 2차 가해가 일어난바 있다. 여기에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몰성적 태도는 정세를 이유로 성폭력 문제 해결을 부차화시켜 버린다.

다시 일어나 이야기하자.
그리고 지지 연대를 만들자
여성의 권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가부장적 조직문화는 필연적으로 조직보위론을 낳는다. 가부장적 조직문화는 여성의 문제를 부차화하고, 성별화된 권리를 인식할 수 없다. 이 속에서 가장 숨쉬기 어려운 자는 운동조직 내 여성들이며, 성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에서 축출되었던 피해자들이었다.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의 올바른 해결이란 이러한 조직문화를 아프게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을 통해 시작할 수 있다. 형식적·절차적 조직논리와 조직보위를 넘어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확산하고,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공론화를 이제부터라도 시작하자. 아직 늦지 않았다.
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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