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여성주의

여성주의 글쓰기, 그리고 말하기

성폭력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성폭력사건을 가해자개인이 저지른 파렴치한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많이 변했습니다) 성적권력에 의한 구조적 폭력이 성폭력이고, 그것은 개인의 문제를 떠나 성별위계적인 사회구조적 문제, 가부장제적인 조직문화에 따른 일이라 규정합니다. 그런데 가부장적이고 성별위계적인 조직문화를 어떻게 쇄신하고 혁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습니다.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일이 단순히 반성폭력교육 또는 성평등 교육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년 교육프로그램을 하는데 머무르구요. 그래서 조직 뒤에 숨은 ‘비주체적 개인’이 조직을 이루는 ‘주체적 개인’으로 조직문화를 혁신하기 위한 실천으로 ‘여성주의적 말하기와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 글쓰기와 말하기
“여성주의 글쓰기? 그럼 남성주의 글쓰기도 있나?”라는 소리를 하시는 분이 있겠지요. 통속적인 예입니다만, 제주도에서 봤을 때 우리가 소위 말하는 남해(南海)바다는 어디일까요? 제 3세계는 어디죠? 유색인종은 누구인가요? 우리가 아는 언어는 누구의 언어이고, 지금까지 객관이라고 불리던 것은 누구의 시각일까요? 여성주의 글쓰기와 말하기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기존의 언어와 해석틀이 (남성)지배권력의 경험을 보편화한 것과 다르지 않음을 지적하는 일입니다. 동시에 배제되어왔던 타자의 시선에서 새로운 시각과 언어, 해석틀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남성)지배권력 중심의 기존인식, 언어, 법, 제도, 규범 등의 사회적 구조를 여성중심으로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남성)지배권력중심의 구조가 형성되어 왔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배제되어왔던 타자들의 눈과 목소리로 세계를 인식하자는 것입니다.
그럼 또 다시 질문이 생깁니다. “여성주의 글쓰기와 말하기는 알겠는데, 그게 조직문화랑 뭔 상관?”

여성주의 글쓰기와 말하기를 통한 조직문화 혁신
여성주의 글쓰기와 말하기는 단지 개별 단어들의 표현뿐만이 아니라 문장구조, 사유방식의 변화까지 요구합니다. 노동형제를 쓰지 말자는 주장이 단순히 형제가 남자가족만을 부르는 단어라서가 아니라, 형제로 표현되는 운동사회내의 가부장제적인 문화를 지적하는 일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알았던 하나의 목소리(남성중심)말고도 또 다른 목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의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답과 모색을 가능하게 하자는 겁니다. 권위주의와 성별위계적인 조직문화에서 만들어진 논리적이고 인과관계를 따지는 말하기 방식(report-talk)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해 배려하고 관용하며 공감하는 말하기방식(rapport-talk)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주의 글쓰기와 말하기는 남성위계질서로 굳혀져있는 운동사회 조직문화 전반의 변화와 구조적 혁신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여성주의 글쓰기와 말하기와 조직문화 혁신은 아주, 매우 상관있는 일이구요.
마지막으로 여성주의 글쓰기와 말하기가 왜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하는 일인지 뤼스 이리가레이의 「나, 너, 우리」의 한 구절로 대신하려 합니다.

“사회 정의, 특히 성과 관련된 정의는 언어의 법칙과 사회질서를 구성하는 진실과 가치의 개념을 바꾸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문화적 수단의 변경은 엄밀한 의미에서 물질적 재산의 분배만큼이나 장기적 차원에서 중요하다. 다른 하나가 없이는 나머지도 얻을 수 없다.”    - 뤼스 이리가레이, 「나, 너, 우리」
 

최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내조의 여왕을 넘어 투쟁하는 여성주체로 서자

평택, 창원, 구로, 청와대, 산업은행, 법원 등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차 노동자투쟁의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녀들! 바로 가족대책위이다. 지난 7월 4일 여의도 산업은행 앞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유인물을 돌리고 있는 그녀들 가운데 가대위 운영진인 권지영동지를 만나 가대위 활동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에서 또 하나의 투쟁주체로 

 

 

그녀들은 사측의 정리해고 계획 발표 이후 가대위의 필요성을 공감해 5월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가대위 까페 가입회원 수는 1000여명, 보통 상시적으로 움직이는 가대위원들은 60명 정도이고 평일저녁이나 주말에 직장에 다니는 그녀들이 가세하면 한 개의 투쟁사업장 대오를 이룬다. 파업대오가 옥쇄투쟁에 돌입하면서 가대위는 더 바빠졌다.

 

파업대오가 자유롭지 않자 선전전, 공장안 농성 및 정문사수까지 하루하루 쉼 없이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쌍용차 공투본에 노조와 함께 참여하면서 고민도 나누고 활동계획도 수립한다. 그녀들은 스스로 결의해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삼보일배를 하기도 했다. 이제 그녀들은 남편의 상태만 궁금해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고민, 파업대오의 상태, 사측의 협박 내용 등 쌍용차 노동자투쟁이 어디에 위치해 있고 어디로 갈지가 궁금하다. 

 

남편에게 정보를 소통받는 아내가 아니다. 쌍용차 노동자투쟁에 또 하나의 주체로 서서 노동조합과 공식적으로 소통하고 논의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고민이다. 

 

 

 

가대위 활동, 내 이름 찾기 

 

가대위 활동의 어려운 점에 대해 묻자 ‘남편 또는 시댁에서 가대위 활동을 못하게 하는 경우’라고 말한다. 이는 가대위 활동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공장 안 대오가 1000여명이 넘는데 가대위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그녀들은 100명이 안 된다. “남의 마누라는 고생하면 힘내라고 하면서 왜 자기 마누라는 못 오게 하는 거야”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장 거점마다 돌면서 가대위 필요성을 알리는 유인물 돌리고 전업주부이든 직장을 다니든 가대위에 참여하도록 조직했다. 

 

하지만 “나혼자 하면 되지, 가족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여자들이 뭐하러 나대냐, 위험하니 나오지 말고 애들 잘 챙겨라” 등 다양한 이유로 가대위 활동을 말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누구의 아내 또는 엄마로만 불리지 않고 꼭 이름을 부르려고 노력하는 가대위의 활동 속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그녀들은 전업주부이든 직장여성이든 가사, 육아, 직장에서의 노동, 투쟁으로 이중, 삼중, 사중 힘든 조건이지만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가대위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진짜 성장하는 느낌”, 새로운 공동체를 위해 

 

그녀들은 벌써부터 ‘투쟁이 빨리 끝나고 놀러가자, 반지계 하자’며 투쟁 이후를 도모한다.   “사회문제나 노동자문제에 관심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싸움하면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됐죠. 선전물 뿌리면서 외면당하면 많이 울고 그래요. 그때 서로 얘기하죠. 우리도 남의 고통에 외면했었잖아하면서요. 많이 반성하죠” 그녀들은 바뀌고 있다. 권지영동지는 자신들이 진짜 어른이 되는 느낌,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제 가족을 넘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엄마, 여성이 될 것이다. 

 

많이 사람들은 옥쇄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 때 가족은 예전의 남편이 쉬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노동자와 가대위의 그녀들이 함께 쉴 수 있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가족이어야 한다. 이 속에서 가족, 공장, 지역공동체에서 투쟁을 이어나가는 여성들의 모임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자본의 탐욕에 의해 가족, 공장, 지역공동체를 깨는 해고에 맞선 투쟁은 남성노동자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주체인 여성들의 몫이기도 하다. 이제 그녀들의 투쟁이 남편과 가족 지키기를 넘어 자본의 이윤추구에 맞서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운동으로, 여성의 삶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나가길 기대한다. 내조의 여왕을 넘어 투쟁의 주체로! 

 

인터뷰 및 정리: 유현경


 


 

7월 1일 금속노동자대회. 누구의 아내 또는 엄마로만 불리지 않고 꼭 이름을 부르려고 노력하는 가대위의 활동 속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녹·보·적 연대를 찾아서…

여성, 생태, 소수자 등 계급모순으로 단순 환원할 수 없는 문제들을 사회주의 운동과 결합시켜 사회주의 운동의 관점을 재구성합니다. 

 

-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준비모임 출범 브로셔 중에서 

 


 

 

녹색 생태주의, 보라색 여성주의, 적색 사회주의의 연대가 가능할까? 어떤 이는 이 질문에 대해, “왜 녹, 보, 적뿐인가”라는 더 골치 아픈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21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화두다. 또한 생태주의의 화두이며, 여성주의의 화두다. 하나의 특정 관점에서 사회 모순을 해명하려 시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모순이 하나의 특정 관점으로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모든 투쟁영역에서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지만, 연대의 방법은 모든 투쟁영역에서 그 실험이 진행형이다.  

 


 

 

얼마 전 하나의 실험이 시작됐다. 6월 17일 중앙대 아트센터에서 ‘연구자네트워크(임시 이름)’ 두 번째 회의가 열렸고, 20여명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이 연구자네트워크는 아직 이름도 목적도 확정되지 않았지만, 대략 녹·보·적(+α)의 연대를 위한 이론연구자들의 모임이다. 

 


 

 

여성주의에 영감 받은 녹색 사회주의! 

 

이날 두개의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있었다. 성공회대 서영표의 ‘민주적 좌파와 연대전략?’과 진보평론 박영균의 ‘녹·보·적 연대를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였다. 첫 발제는 녹·보·적 연대를 영국 사례 중심으로 소개했다.  

 

예를 들어, 생태주의와 여성주의는 생물학적 환원론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근거이기 때문에 적대적이다. 여성주의와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범주에서 여성의 필요와 욕구의 문제로 적대적이다. 사회주의와 생태주의는 자연적 한계와 발전주의의 문제로 적대적이다. 이 관계들은 공격과 역공격이 교차한다. 이런 조건 속에서 범좌파적 이론연대, 저널 중심의 연대, 특정 주제에 대한 연대, 이론의 현실 개입, 정당 정책에 비판적 개입 등 사례별로 정리해서 소개했다.  

 

이 중 적-녹 연구 그룹의 팸플릿 ‘What on Earth is to Be Done?’ 두번째 호(2009년) 서문의 한 문장을 강조했다. “우리는 하나의 입장을 도출했다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어떻게 듣는지 배웠다” 이 말처럼 녹·보·적 연대는 여전히 방법을 찾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이들 연대의 바램은 “여성주의에 영감 받은 녹색 사회주의”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있다. 

 


 

 

계속 토론해 봅시다 

 

토론은 두 번째 발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연구자네트워크’를 어떻게 진행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었다. 목적과 명칭, 운영방법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특히 두 번째 회의까지 주로 적색 중심으로 녹색 연구자들이 모였고, 여성주의 진영의 참여가 없는 점에 대한 아쉬움과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많은 논의가 오갔다. 이 모임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이날의 자유토론 방식을 몇 번 더 거친 뒤에 서로의 합의지점을 찾기로 했다. 아직은 말랑한 찰흙같은 ‘연구자네트워크’지만,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활동가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의 참여를 더해가며 서서히 그 모양을 만들 것이다. 앞으로 이들의 활동이 대중 속에서 현실운동을 어떻게 담아낼까?  

 

끝으로 위의 팸플릿에서 “자본주의 다음의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전망이 지금처럼 절박하게 요구되었던 적은 없었다”라는 영국 적-녹 연구 그룹의 이야기는 지금 당장 이명박이 집권한 한국에서 더 절박하다.  

허성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