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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1/19
    들꽃처럼 ... 수줍게
    별똥별
  2. 2007/01/16
    겨울, 날씨, 흐림
    별똥별
  3. 2007/01/15
    도둑같은 사랑
    별똥별
  4. 2007/01/14
    그대 맘으로 가는 길
    별똥별
  5. 2007/01/13
    노을 빛 연가(戀歌)
    별똥별
  6. 2007/01/12
    겨울 끝자락 홀로 서는 이들을 위한 반성문
    별똥별
  7. 2007/01/11
    비 가 (悲 歌)
    별똥별
  8. 2007/01/10
    어느 겨울 밤
    별똥별
  9. 2007/01/09
    천국보다 낯선
    별똥별
  10. 2007/01/09
    도종환 - 폐사지, 일몰
    별똥별

들꽃처럼 ... 수줍게

[ 들 꽃 처 럼 ]

 

 

 

  한 점 구름이라도

 

  하얀 강이 흘린 눈물이
  검은 땅의 열기에 취해
  푸른 하늘로 올라서야
  제 몸을 만들어 드러낸다

 

  셀 수 없는 우연과 필연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쉼없이 사건을 만들어내고

 

  역사적이든 개인적이든
  모든 생명이
  그 속에서 성장하고 사라져갔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그리고 플라스틱으로 조립된
  도심 한복판을 거닐다 만나는
  작은 들꽃들도 그렇게 피고 진다

 

  한겨울 심술 궂은 바람에
  고개 숙여 걸을 때
  모질고 질겨서 반복되는 삶에
  상처받았다 여길 때도
 
  걸어 온 길을 조아리고
  앞으로 나갈 길을 헤메는 것은
  들꽃에 배인 사연을 앎이다

 

  우표 한장
  옆서 한장 만큼의 햇살이
  조각 조각 떼어져
  작은 몸뚱이에 옮겨오는 시간

 

  나도 한 점으로
  수줍은 떨림으로 세상에 나선다    

 

 

 

-  2007.01.19  세상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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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날씨, 흐림

[겨울, 날씨, 흐림]
 
 
 
 
 
흐린 하늘 손대면
먹물토하고 도망갈 듯
문어 얼굴로 부풀어 올랐네
 
장대라도 있으면
찔러보겠으나
모든 걸 뒤집어쓸 맘의 준비는 남았네
 
햇볕드는 길만 맴돌던
새 봄소식은
골목어귀 그림자에 갇혀있어
 
언제 울음 터질지 모르는
어린아이 변덕만큼
나는 온종일 뒤척이길 거듭하지
 
간 밤 달빛이 숨죽일 때
그 때 멈춰서야 했어
 
바람들이 전선에 매달려
재잘되는 소리를 귀기울여야 했어
 
총총걸음 내닫는
아이들도 떠난 놀이터 그네처럼
흔들리는 사람들은
 
외로움이 뭉쳐서 내리는
겨울비에 데일 때 조각난 얼음만큼
거칠게 무너지는 법
 
공터에 불을 지피고 둘러 선
이들에겐 여유로운 삶을 말한들
옛날 톱밥난로에 도시락 얹고
점심때를 기다리던 시절의 미소가 없지
 
한 겨울
눈대신 오는 빗방울은
그렇게 사람들을 낱개로 갈라놓고
질퍽해질 도시는 미리 겁을 먹어가네

 
 
- 070116,  날씨 잔뜩 흐린 겨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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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같은 사랑

 

 

발자국을 남기고 간
서투른 도둑같은 사람아

 

밟고 간 자리마다
너무 선명한 흔적으로 그댈 알게 해놓고
증거로 내밀면 바로 고개 젓는 야속한 사람아

 

당신 들고 나선 것을 막지 못해 후회안해도
함께 따라가지도 못하고
잡아 둘 수도 없었던 내 비겁함을 원망합니다

 

모든 범인은 한번 더 그 현장에 나타난다지만
나는 다시 올 날도 알지 못하고
또 온다해도 붙잡지 못할 것을 압니다

 

심장 밑바닥에서 시작된 비명은
얇은 새벽의 막을 베어내는 경고음
눈 질끈 감고 외면했던 것들의 복수입니다 

 

눈물이 굳어 만든 네모난 벽돌과
그 벽돌로 쌓아 올린 영혼의 감옥

 

이제는 감옥에 들어설 맘으로 살겠습니다
당신이 돌아 올 때는 단둘이 남게 될
너른 바다 무인도 같은 감옥 말입니다

 

세상 모든 행복한 시간과
찰라같은 미소만 훔치고 모아
그대 돌아올 길에 뿌려놓고 참회의 기도를 보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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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맘으로 가는 길

 

 

      길 찾 기 

 

 

 

      담배 한갑 사러 갈래도
      동네 앞 구멍가게까지 제일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큰 대로로 걸으면
      길은 편하나 1분여를 돌아야 하고
      얼마전에 발로 찾은 지름길을 통하면
      30초정도를 줄일 수 있다

 

      고등학교 때
      15분 정도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
      그정도 시간이 필요한 길이면
      거쳐갈 수 있는 갯수의 조합도 수백가지다

 

      골목 골목을 잇고 붙여서
      등교시간의 단조로움을 해체하고 했다
      가장 빠른 길은 늦잠을 잘때 이용하고
      우울할 때는 빙빙돌면서도 흥미로운 길로 정한다
      짝사랑하는 누나의 창문을 지나치는 것도 그 길이었다

 

       길도 공인된 단계가 있어
       골목길이라 해도 수준이 다 각각이다
       항상 열려진 어느집 대문을 통해 쪽문으로 나서는 길에서
       공사장을 가로지르고
       도둑고양이들이나 사용할 법한
       으슥한 길까지 더하면 탐험가의 자세가 된다

 

       지금은 나이 먹어 지름길은 편법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택한 길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누군가 끼어들지 못하게 담을 쌓기도 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몸을 뒤집고 길 수 있게 된 아이가
       허리를 굽고 지팡이 짚고 다닐 노년의 끝자락까지
       얼마나 많은 갈림길을 맞고 되돌아가길 반복할까

 

 

 

 


       그대 맘으로 가는 길
       약도라도 한장 있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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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빛 연가(戀歌)

노을 빛 연가(戀歌)

 

 

도시에 살다보니

저녁 노을을 잊은 적 많습니다

외로움 입에 물고서

두려움에 떨며 변함없이 하루를 보내도

밤으로 가는 길목

한낮 태양이 그 도도한 육신을

찬란히 녹여서 만드는

너무도 고요해서

그 치열함이 비장해지는

노을빛 꿈을 지우게 됩니다

 

아파트 숲을 빠져나와

곧게 뻗은 빌딩에 갇혀서

쇳가루 섞인 매케한 공단과

욕망으로 밝힌 네온들에 익숙해지면

수억년을 반복해온 자연의 흐름은

낯설거나 우연한 경험으로 여깁니다

 

가위에 눌려 잠을 깨면서 맞는

새벽은 알아도 헐떡이며 사는 이들에겐

낮과 밤의 경계에서 사색할 여유는

허락치 않습니다

그래서 늘 벗어나고픈 유혹에 시달리고

어깨에 매인 생존의 무게에 버거워도

매번 닥치는 일상을 감내하고 견딥니다

때때로 작은 욕정을 해결하고

눈가에 배인 물기를 지우고

크고 작은 몸살에 떨면서도

책임과 의무 그리고 일탈의 두려움

번민의 무덤에 누인 백골처럼 앙상해졌죠

 

그대를 만나고서

몇번이나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아직 고이 감추어진

미로같은 길에 들어 설 용기를 내봅니다

노을을 닮은 그대의 미소때문에

발갛게 번지는 희망을 베어 삼켰습니다

한 길에 서서 걸어도 길동무가 되기는 어렵지만

어제와 다른 세상에 이미 서게 만든

그대와 발걸음을 맞추는 것 만으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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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끝자락 홀로 서는 이들을 위한 반성문

 

 

 [반 성 문]

 

      - 겨울 끝자락 홀로 서는 이들을 사랑한다

 

 

 홀로 길에 서게되면 
 오랜 거짓약속에 익숙했던
 검은 혀도  비로소 쉼을 허락받는다

 

 회색도시 한복판
 인공섬으로 꾸며진 공원
 윤기잃은 나무벤치라도 있어
 당겨진 활시위 처럼 뻣뻣한
 몸뚱이를 기대자마자 절로 눈이 감긴다


 길잃은 도시짐승들은
 늘 따뜻한 눈길 그리워 하고
 떼를 지어 나는 날짐승들은
 누가 먼저 채갈까 조바심으로
 모이가 될만한 것이면 쪼아댄다

 

 낯선도시도 8년이 지나면
 흘린 눈물의 무게만큼 정이 든다

 

 숨돌릴 틈 없이  매인 일에 쫓기고
 책임질 것들의 빈궁함을 견뎌내다보면
 묵묵히 일해왔다는 것이
 자기 몸을 뜯어먹고 허기 채우길
 반복해온 것이 아닐까  맴도는 질문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생각이 많은 만큼 주름이 생긴다
 고된 노동의 땀이 그 안에 차고
 생채기 투성인 삶에 시달린 만큼 그 골이 깊어진다

 

 정답이 아니어도 그것이 해답이라고 강요받고
 적당한 타협의 유혹과 이를 뿌리치지 못해 
 덧칠된 절망, 거짓변명도 한웅큼 쌓아왔다
 그래서 더욱 여물어진 알곡처럼
 고요한 빛으로 생명으로 심어진 사랑이 애처롭다

 

 내가  나를

 조금 더 사랑해야 했던 것처럼
 나를 아는 이들에게 조금 더 마음을 열려는 것은
 늘 속삭이고 다짐으로 그친 것을 부끄러워 함이다

 몇번을 갈아 탔을 뿐
 늘 쳇바퀴에 매여 있었던 날들의 회한이다

 

- 2007. 01. 12  겨울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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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가 (悲 歌)

비 가 (悲 歌)

 

 

곡기 끊고

참회하는 수도승처럼
그대 생각 접고
그대 얼굴 지운 줄 알았어요

 

행여 떠올릴 물건이라면
첩첩산중 깊은 골에 무덤을 쓰듯
감춰 버린 것도 한해를 넘겼어요

 

처음 만난 날
고이 심었던 민들레
찬바람 불 때마다
꽃씨로 토막토막 떨어져

 

저마다 날개달고 떠났는데

덩그라니 남은 몸뚱아리
거멓게 비틀어져서도
움켜쥔 뿌리를 놓지 못했나봐요

 

기억이란

 

얇디 얇은 실줄기로
어쩌다 한번 스쳐갈 때
더욱 잔인해져요

 

날도 서있지 않은

종이 한장에 손이 베이면
피 한방울 겨우 맺혀도
눈에 띄지도 않는 생채기
퍼런 멍자욱으로 변해야 사라지고

 

떠나보낸 꽃씨도
바람타고 도착한 곳마다 뿌리박혀
발길에 채이고 눈길에 걸릴만큼
질긴 생명을 이어가네요

 

보고 싶어요

 

겁에 질린 짐승처럼
내 몸에 박힌 털이
모두 곤두 설 만큼 두렵고
두번 다시 부딪칠리 없는
평행선이 되었다 해도
그대 향한 그리움 더는 지우지 못해요

 

또 보고 싶어요

 

이렇게 떨어져 뒤돌아 선 것이
서로에게 최선이라고 다짐했지만
그대도 나도 눈물 들킬세라
긴 작별 못했음을 알아도

 

내 영혼 산산이 깨지고
마지막 바램마저 은빛가루로 빻아
레테의 강, 거스를 수 없는 물결에 뿌린대도
세상의 모든 신이 정한 형벌을 견뎌낼 만큼

 

그대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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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밤

어느 겨울 밤

 

 

 

연탄 화로 위
고기안주가 지글대면
오랜 벗과 술한잔 건네고
지난날 무용담을 농삼아 질겅이며
커져가는 목청따라 흔쾌히 취해간다

 

북쪽에서 시작된 삭풍도
대폿집 창문 한켠 쉬어가고
연탄불에 발그레 익어가는 추억
파르한 새벽녘의 한기도 녹고
몇겹으로 감쌌던 맘들이 열렸다

 

황태덕장에 가보면
뾰족나온 주둥이 꿰여
비명마저 얼어붙은 명태떼들이
잿빛도시 속 벌거숭이로 대롱 매달려
한겨울 지나온 가난한 이들과 닮아있다

 

몇번 남은 추위마저
길게 늘어선 밤이 짧아지 듯
처마 끝 고드름이 물방울로 맺히듯
고요한 침묵으로 변할 것을 안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말로 다 표현못하듯
거친 숨결을 토해내던 이 겨울도 정겹다

 

터벅 터벅 걸음 딛을 때마다
발끝에 걸리는 앉은뱅이 꽃처럼
주검처럼 가장 낮은 곳을 향해
겸손한 미소를 배우며 살기를
봄날 햇살을 기억해내고
그 날의 풋사랑이 봉인된 시간에 감사하며
어김없이 시작될 내일을 준비해야지

 

연탄불이 꺼지지 않도록
위아래 갈기를 게을리 않고
벗과의 인연이 동치미 익듯 맑은 빛
탐스럽고 뽀얗게 우러나는 시간


 

오늘 밤

어둠도 마냥 솜이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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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지도로만 봤던 낯선 땅

누구에게 알릴 겨를도 없이

하늘을 날아 반나절 걸려 도착해보니

이미 마중나와 있는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것 같은

 

또 다른 나

 

다잊고 지우고 

또 그렇게 비우고 떠나왔다 여겼건만

맨 처음 내가 사랑했던 첫사랑이

또 맨 처음 나를 사랑했던 그녀가

마지막 사랑이길 바랬던 내 아내가

또 마지막 사랑인 듯 설레게 하는 그이가

 

공항 어귀부터

도시로 들어가는 길가에

토담으로 메워진 골목 한켠에

야시장 어스름 가로등 밑에

우두커니 서서 

여행 하루만에 지쳐버린 나을 보듬는다

 

홀로 견디는 법을 배워가려

시작한 나의 서쪽 여행은

처음부터 제자리를 맴돈 것이랴

부질없다 여기고 훌훌 털어낸 것은

세상에 찌든 먼지가 아니라

다정한 그네들 숨결의 추억이랴

 

시작부터 끝을 보고 걷는 걸음만큼

사뭇 진지해지고

비장하게 내모는 것도 없다

십자가 메고 언덕길을 오르던 예수가 이미

운명을 걸고 원망보다는 사랑을 곱씹었다 했나

제 몸에 불을 당겨 세상에 빛이 되려 했던 이들도 그러했다

 

어쩌면 나도 나를

묻고서야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너무나 눈에 익어 낯선 이국의 도시 한 복판

욕정으로 가득찬 내 영혼을 묻고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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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 폐사지, 일몰

도종환 시인의 시어를 좋아한다

후배는 최근 교단에서 벗어나 요양중에 쓰여진 시들이 맘에 든다 하지만

난 이전부터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 녹여져 낱말이 된

그의 시를 읽으면서 위안을 얻곤 했다

 

 

 

 

폐사지

                                                                 - 도종환



열정이 식으면서 노을도
하늘 한쪽을 폐허로 만들고 있었다
마음이 잿더미인 사람들은
떠도는 동안 자주 폐허와 만나곤 했다
사원들은 수백 년을 걸어서
마침내 폐허의 완성에 이르렀지만
우리가 쌓은 성채가 무너지는 데는
채 몇 해가 걸리지 않았다
기울어진 내 성벽의 전돌이 허리를
땅에 대는 순간 폐허의 벌레들이 달려들어
내 생애를 분해해서는 땅속 깊이 내려갔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비문 하나 남기지 못한
왕국은 바로 잊혀지고
노을은 어둠으로 바뀌어 흔적 없이 지워졌다
영생의 선약 같은 말씀 한 모금 만들지 못하고
약초 뿌리 몇 개를 캐다만 나의 행로는
적막과 함께 마른 풀냄새를
바람에 흘려보내게 될 것이다
신화를 허공에 벽화처럼 새기고 싶어 하던 날들을
새들은 저희의 목소리로 비웃을 것이다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것은 반드시
폐허의 긴 복도를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길게 누운 채 마모되어 가는
돌부처들이 먼저 알았을 것이다
제국의 영광을 위해 이룩한 모든 것들도
폐허의 제단에 바쳐야 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나무의 씨앗과 뿌리에게 자신의 영역 전부를 맡기고
나머지도 새들의 잠자리로 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폐허의 따뜻하고 편안한 품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몰



지평선을 향해 해가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구릉 위에 있는 무너진 절터에서
지는 해를 보고 있었다
사암으로 쌓은 성벽의 붉은 돌 위에도
노을은 장밋빛으로 깔리고
폐허는 황홀하였다

그가 폐사지 근처 어디를 혼자 떠돌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거기서였다
젊은 날 그와 나는 새로운 세상을 세우고 싶어 했다
비슷한 시기에 둘 다 뇌옥에 갇혔고
그가 맨 앞에서 곤봉에 머리를 맞아 피 흘리면
내 옷을 찢어 피투성이 된 그의 얼굴을 감쌌고
내가 쓰러지면 그가 옆에서 울었다

왕국이 가장 강성할 때 지은
거대한 사원도 무너져 있었다
끝이 안 보이는 병사들을 사열하던
왕의 테라스는 적막하였고
햇빛을 하얗게 달구어 공중으로 튕겨내던 창들도
영원히 하늘을 찌르지는 못했다

일몰 속에서 나는 우리가 꾸었던 꿈도
이루어지지 않은 꿈의 파편들도
다 그것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꿈은 언제나 꿈의 크기보다 아름답게
손에 쥐어졌다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까움이 남아 있는 날들을
부축해 끌고 가는 것이다
내일은 다시 내일의 신전이 지어지리라
시대의 객체로 밀려나 폐허의 변두리를
걷고 있을 덥수룩한 수염의 그를 생각했다
익명의 쓸쓸한 편력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평선을 넘어가는 해가 그를 보고 있을 것이다
찬란한 폐허 위에 그와 내가 함께 있는 것이었다

 

 

박근재의 한국의문화유산중에서 황룡사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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