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내가 쓴 글

4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2/02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읽으면서
    무화과
  2. 2008/12/02
    콧물이 주룩주룩
    무화과
  3. 2008/11/30
    겨울나무
    무화과
  4. 2008/11/19
    찬바람
    무화과
  5. 2008/11/06
    병역거부자, 어떻게 할 것인가?
    무화과
  6. 2008/10/28
    편지 (2)
    무화과
  7. 2008/10/27
    하루
    무화과
  8. 2008/10/18
    2008년, 서울 하늘(2)
    무화과
  9. 2008/10/16
    말과 글, 그리고 삶(3)
    무화과
  10. 2008/10/07
    증발
    무화과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읽으면서

내게 분명히 열려있는 한 가지 행동의 가능성은 ‘아니오’라고 하는 것이다. - 아니오, 나는 조용히 따라가지 않겠소. 아니오, 나는 복종하지 않겠소. 나는 나와 제도적인 프로그램과의 양립가능성을 부정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인간답게, 가능한 한 자율적으로 고결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이러한 결정은 명확히 말해져야 하고, 매일 말해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것이 되기 위해서, 내게는 규칙적인 성찰, 즉 내가 무엇을 거부했으며, 내가 아직도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고, 무엇을 마지못해 견디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 내가 나 자신 속으로 들어갈 고요의 시간이 필요하다.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중에서, 리 호이나키 책을 읽으면 그걸로 끝이었는데, 이제 쫌 필요한 부분들은 찾기 쉽게 표시도 해놓고 노트도 해놔야겠다. 갈수록 예전만큼 머리가 핑핑 돌아가지 않는 다는 것을 느낀다. 내 기억은 여전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리 호이나키, 혹은 얼마전에 읽은 톨스토이는 참 많은 깨우침을 준다. 하지만 '거룩한 바보'로 살아가는 일이 아직 내겐 두렵기만하다. 과연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평균이상으로 많은 것을 누리고 산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내게 남겨진 '편리함'을 쉽게 버릴수가 없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지는 알면서도. 그래서 리 호이나키나 톨스토이, 멀지 않게는 권정생선생님은 대단하지만 그들의 삶에서 배워야할 것이 많지만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하지만 어쩐지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어떤 다른 형태의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쨋든 리 호이나키의 책을 읽다가 나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내려치는 구절을 만났다. 맨날 말로는 병역거부자는 감옥갔다오는 것이 끝이 아니라 평생을 평화주의자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고 떠들지만, 나는 종종 내가 뭘하고 살고 있는지 까먹는다. 내가 왜 감옥에 갔다왔는지 까먹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왜 고기를 안먹는지 까먹는다. 어느덧 습관이 되어버린 것들은 그만큼 무뎌진다. 그저 그냥 아침밥을 먹고 밤에 잠을 자는것처럼 이제는 나의 삶에 어쩌면 다른이들의 삶에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행위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리 호이나키가 적절한 타이밍에 내 뒷통수를 쳐줬다. 정신이 번쩍 든다. 아무래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콧물이 주룩주룩

지난 토요일 찬바람 맞으며 자전거탈 때 이미 감기란 놈은 내 몸에 들어와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감기바이러스와의 사투에서 이기지 못하고 내 몸이 한 발 짝 물러났나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건조한 사막처럼 목이 간지럽고 콧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서둘러 휴지로 콧물을 닦아 내면서 왠지 모르게 콧물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누런 콧물이었다면 차마 이런 생각을 못했을 텐데, 투명한 액체가 마치 눈물처럼 주루룩 흘러내리니 그 광경에 넋을 잃을 만도 하다(나만 그런가?) 대체로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것들은 아름답다. 눈물도 그렇고 심지어 격한 육체의 운동 끝에 등판에서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짭짜름한 땀도 아름답다. 더이상 아름다운 추락은 없다며 나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빗줄기도 아름답다. 생각해보니 그것들은 다 맛이 다르다. 하물며 눈물조차도 상황에 따라 감정에 따라 맛이 다른데, 샘솟는 구멍이 다른 액체들이 맛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영어학원가기 전에 예습하려고 했는데 또 그냥 시간낭비하고 말았다. 콧물닦고 나가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겨울나무

가을이 늦어서 단풍이 예년보다 늦게 들었었는데, 어느새 그 풍성한 색깔들이 다 떨어져버렸다. 가을은 갈수록 짧아진다. 연둣빛 싱그런 봄도 좋지만, 풍성한 잎사귀들이 저마다 뽐내는 여름의 건강미도 좋지만, 가장 아름다운 색깔들로 부끄러운듯 몸을 가리고 있는 가을의 나무는 아마 나무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일것이다. 그 가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문득 인식도 못했던 순간들이 지나가 버리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을 쓸쓸한 풍경으로 남겨두었다. 차가운 방안에서 겨울 나무를 생각했었다. 지리산 골짜기를 뒤덮은 그 엉성한 육신들. 나뭇잎 모두 떠나가고, 새들도 떠나가고 부끄러워도 제 몸하나 가릴 것 없이 추위속에서 그보다 더 커다란 고독속에서 속으로 속으로 파고들던 그 작은 떨림들. 겨울나무에게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끝난뒤 가장 혹독한 시절을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겨울나무를. 그래서 여름의 나이테는 쑥쑥 커나가지만 겨울의 나이테는 속으로 단단해지는 것을. 화려한 잎사귀 다 떠나보내고, 제 멋에 겨울만도 했을 법한 것들을 모두다 떠나보내고 몸뚱이 하나만으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나무들. 그래서 또 내년에 연둣빛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것임을. 나는 너무 많은 말들을 걸치고 있다. 나무는 나에게 침묵을 가르친다. 겉으로 너무 많은 옷들을 거칠지 말라고. 가진것 다 떠나보내고 속으로 단단해지라고. 겨울엔 침묵을 연습해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찬바람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그 곳의 기억 한켠에서 아련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부르뎅과 함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찬 바람과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온몸에 휘감기는 찬바람의 기분이 나쁘지 않아여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맘때였으니,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니 또 문득 생각이 난건지도.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 모든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세상의 특별한 사람이 되기에는 아무래도 많이 벅차보였고 또 만약 가능하더라도 부담스러울것도 같다. 나의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하고 고마울 따름이지만 나는 내가 내 친구들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이기를 한 때 바랬었다. 한 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보여준 관심과 애정 계절이 듬뿍 담긴 편지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시절에 나는 마치 감옥안에 있을 때를 상상하고 그 햇살 좋은날 철문을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것이 그 무렵의 일이다. 한동안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독방보다 더 싸늘한 사무실에서 나는 사람냄새를 그리워했었다. 어쩌면 기억되는 것과 잊혀지는 것의 사이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간격이었나보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이불밑 따뜻한 방구석의 기온을 단 한 번이라도 정말 단 한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던, 그래서 내내 추워도 좋으니 한 순간만이라도 녹녹하게 몸을 녹여보고 싶었던 그 독방에서의 계절과 비교할 수 있겠냐만은 내 옆에서 쓸쓸히 시들어가던 국화화분처럼 나도 쓸쓸했었다. 우표값보다 저렴한 문자조차도 마치 징역에서처럼 하루에 한 번씩 배달이왔다. 나는 그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내 삶에서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초대하기에는 너무나 겁이 많았던것같다. 어쩌면 내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적잖이 두렵고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를일이다. 적당히 상처받지 않을 거리를 찾는 일은 익숙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특별하지 않다고해서 소중하지 않은것은 아니니까. 다만 이 계절의 바람처럼 저 깊은 속 어딘가가 휑할 따름일뿐이었다. 이제는 특별한 사람이면 좋겠지만 또 아니면 어떤가 싶다. 이 차가운 바람은 예전에 불어오던 것과는 다르다. 아무래도 좋다. 얼굴을 에는 차가운 바람과 목도리 밑의 따뜻한 온기가 내가 이 계절을 좋아하는 이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병역거부자, 어떻게 할 것인가?

병역거부자,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촌스러운 공청회 제목이 이렇게 절실히 다가오다니. 감옥에서 한 통 편지가 왔다. 그동안 독방에 있기 위해서 성소수자라고 거짓말을 했었다고 고백했다. 아... 머리를 아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것도 내 뒤에서 우리편이 던진 돌에 맞은 그런 기분. 감옥안에서 좀 더 편하기 위해서 거짓말 할 수 도 있다. 그래도 해도 되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다. 게다가 이 친구는 같이 있는 한 성소수자 친구가 독방쓰는거 보고 이런 거짓말을 지어냈다. 이 친구의 진심을 믿었던 사람들, 특히 독방에서 있었던 친구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아야하나. 1심 재판을 받은 병역거부자 한 명이 군대가기도 싫고 대체복무도 싫고 감옥가기도 싫다고 면제받고 싶다고 했다. 뭐 그거야 당연한 마음이다. 누가 감옥가고 싶겠나. 나도 대체복무 하고 싶은 마음은 잘 안든다. 근데 이 친구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을 넘어서 군대를 거부하면 감옥에 가야하는 현실을 못받아들이고 있다. 면제받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그랬다. 근데 우리는 면제 받는 방법은 모른다고. 이 친구가 맨 처음 우리를 찾아왔을 때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우리는 일단 말렸다. 감옥이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 다른 방법을 고려해보거나 대체복무제를 기다려보면 어떻겠냐고 당시 우리에게 왜 자신을 못믿냐고 화내던 친구가 자기는 감옥가는 병역거부운동에서는 하차해야할 것 같다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1심까지 받은 마당에 병역거부 의사 철회하고 군대가거나, 감옥가거나, 아예 도바리치는 것 밖에는 없는데 이 친구는 셋 다 싫단다. 니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해도 안통한다. 나보고 어쩌라고. 그러게 신중히 결정하라할 때 좀 더 신중하질... 자꾸 나쁜 마음이 든다. 병역거부자인지 아닌지, 진심인지 아닌지, 의심의 마음이 커질까봐 두렵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어찌 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이냐고... 확실히 병역거부가 더이상 평화주의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담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어야하지? 병역거부수감자 지원활동 확 하기 싫어진다.(사실 난 하지도 않았지만) 기도라도 해야하나?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편지

딱히 그럴만한 일도 아닌데 괜시리 짜증만 나던 하루. 울고싶은데 빰맞은 것처럼 짜증 날만한 일을 만났다. 그동안 참았었는데 참지 말아야지 하다가 아서라 참는게 이기는 거다 하다가 암튼 참지 안기로 마음은 결정했지만 그래도 조금 시간을 둔 것이 다행이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받아온 편지들을 읽어봤다. 참 많은 사람들 도움으로 살아왔었구나 그리고 지금도 내가 미쳐 인식하지 못할뿐이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겠지. 그래서 편지를 써야겠다 오랫만에 손편지를 쓰는 계절이 되어야겠다.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그런데 뭐라고 쓰지? 최근에 한 통의 손편지를 써봤지만 안쓰다가 쓰려니 쉽지 않았다. 고마워서 쓰는 편지인데 글씨 못써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건 아닌지 몰라 ㅋㅋ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하루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께 사람들은 주로 수능대박의 소원을 빈다 저런 속세적인 소원을 빌어서야 되겠냐며 고고한척하다가 결국 나도 마찬가지의 소원을 빌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간 하루 이런날도 있었고, 지겹도록 더딘간 하루도 있었다. 어쨋든 살아가고 있고 삶이 힘겹지는 않다. 다행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년, 서울 하늘

한숨처럼 새어나온 안개같은 것이 도시를 뒤덮었다. 아무리봐도 그것은 안개는 아니었다. 안개는 촉촉하고 포근하지만 그것은 퍽퍽하고 답답했다. 한숨보다 짙은 어떤 짜증같은 것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벌써 며칠 째 이런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해는 힘을 잃고 한 점 하늘도 물들이지 못한채 빨갛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강건너 희미하게 보이는 국회의사당의 둥근지붕만이 서럽게 떨어지는 해를 보듬고 있었다. 저 눈부신 태양을 두 눈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아마도 50년쯤 후에야 이런 일기를 쓸거라고 생각했다. 그때쯤이면 이처럼 흐릿한 시계가 안개때문인지, 내 눈의 노안때문인지, 다른 어떤 것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2008년의 서울을 살고 있는 것은 나 혼자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시간만 2008년에 멈춘채 세상은 훌쩍 흘러서 사실은 지금이 2050년인지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의 시간만 2008년에서 머물러 있다가 이제 정신이 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우울한 대기와 삭막한 도시가 이해가 된다. 내가 살던 시절의 가을 하늘은 도대체 너무도 아름다워서 시인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노래했지 않았던가 강물은 여전히 29살의 내 얼굴을 비춰주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중년의 남성이 강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일지도 29살 그 시절 나의 친구들은 이 세상에서는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말과 글, 그리고 삶

말은 애시당초 믿을 것이 못된다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는 사람이나 과격한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내 뱉는 것이다. 듣기 좋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말들은 우리의 귀를 현혹시키고 생각을 마비시킨다. 물론 말 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의미가 되는 경우도 있다. 폭력의 피해자가 마침내 입을 열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그리고 사회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게의 경우 말많은 사람들은 그리 진실되지 못한것이 사실이다(나도 말이 너무 많다. 어차피 내가 뱉어내는 많은 말들은 장난섞인 뻥 이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지는 않을테지만) 고통스러운 말을 목 밖으로 끄집어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지만, 번지르르한 말이나 과격한 말들을 뱉어내기는 얼마나 쉬운가. 누구라도 말로써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로 만들수 있고 평화주의자로 만들수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지만, 모두 떠난 자리에서 말은 머물곳을 찾지못해 쓸쓸히 부유할 뿐이다. 글은 말보다는 신중하다. 말은 즉각적인 반응이다. 물론 평소에 깊은 사색을 해 온 사람같은 경우는 말자체가 하나의 삶일수 있겠다. 예수나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책 한권 쓰지 안고도 지금까지 그 말씀이 이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는 동적動的인 소통방식의 '말'보다는 정적인 소통방식인 '글'이 훨씬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낼 수 있다. 말은 내뱉으면 주워담긴 힘들지만 글은 내보이기 전에 얼마든지 수정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말잘하는 사람보다 글 잘쓰는 사람이 똑똑한 경우가 많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 순발력과 재치 등이 필요하지만, 좋은 글을 쓰려면 논리적인 생각의 체계가 잡혀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글을 잘쓰는 사람을 믿는 것은 아니다. 사회를 바꾸는 운동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은(직업적인 활동가이든 아니든 간에) 하여간에 말을 할 일과 글을 쓸 일이 참 많다. 기자회견이니 토론회니 각종 회의에서 수다스럽게 떠들어야하고 각종 원고와 기사와 기고글들을 뽑아내야한다. 말 잘하고 글 잘쓰는 사람은 확실히 다른 사람에 비해서 훌륭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세상은 말과 글로 바뀌지는 않는다. 번지르르한 말은 처음에는 듣기좋아도 느끼한 버터마냥 금방질리기 마련이고, 대책없이 과격적인 말은 처음에는 인상깊지만 갈수록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글 또한 마찬가지. 화려한 수사와 체계적인 논리는 처음에는 재미있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만 몸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머리의 기억은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결국 삶의 문제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반대를 그럴듯한 이론을 바탕으로 외치고 글을 써도 자신의 삶이 자본주의가 주는 떡고물을 아무 생각없이 넙죽넙죽 받아먹는다면 그 명문장과 명언들이 도대체 무슨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세계평화 너무도 좋은 말. 입으로 떠들어봤자, 글로 써봤자 그게 대체 어떳단 말인가. 내 삶은 권력과 폭력에 너무도 익숙해져있는데 말이다. 물론 모든면에서 올바른 삶을 살 수는 있는 사람은 드물거나 없을 것이다. 결국엔 지금의 나의 모습을 반성하고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 말을 못해도, 글을 못써도 진실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아주 느리고 더디지만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세계로 뻗어나가는 변화를 만들어 낸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말과 글을 잘쓰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 삶이 거세된 말, 삶에서 멀어진 글들이 펼치는 화려한 축제에 눈멀고 귀멀지 않기를. 내가 한 말들이, 내가 쓴 글들이 나의 삶을 배반하지 않기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증발

가끔식 너무나도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세상이 느껴질 때는 왠지 이 지나친 현실감이 마치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얼굴에 와서 감기는 서늘한 바람, 뒷 목을 따스하게 적시는 오후의 햇살, 계절로 가득찬 파란 하늘, 이 모든 것들이 따뜻한 살갗과 거친 숨소리보다 더욱 진짜처럼 느껴져 마치 나라는 존재는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버릴것만 같다. 오늘 낮에 완이를 잠깐 만났을 때,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인간답게 사는 것의 핵심은 결국엔 인간답게 죽는 것. 그런데 왠지 나는 인간답게 죽기보다는 한순간에 햇빛에 눈부셔서 돌아보면 사라져버리는 그렇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빅피쉬에서처럼 물고기가 되어서 훌쩍 떠나버려도 좋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가득채운 이 복잡한 일들 사이에서 나는 증발을 꿈꾼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