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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내가 쓴 글

4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9/30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 (2)
    무화과
  2. 2008/09/26
    땅 부자들의 피해의식
    무화과
  3. 2008/09/14
    악몽
    무화과
  4. 2008/09/12
    비오는 가을 날엔 지하철을 타야한다.(1)
    무화과
  5. 2008/09/10
    부당한 힘과 맞서는 방법(1)
    무화과
  6. 2008/09/10
    착각(2)
    무화과
  7. 2008/09/09
    병역거부자로 살아간다는 것
    무화과
  8. 2008/09/07
    9월, 일요일
    무화과
  9. 2008/09/02
    "당신의 용기를 지지합니다"는 말 (2)
    무화과
  10. 2008/09/01
    비오는 9월의 첫날
    무화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을 따라 집에오다 보면 언제나 망설이게 되는 갈림길이 있다. 고척교, 다리위로 올라와서 경인국도를 타고 오는 길과 목감천의 자전거도로로 돌아오는 길, 두 갈래 길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아주 잠깐이라도 망설인다. 경인국도의 장점은 시간. 고척교에서 우리집까지 경인국도는 거의 직선으로 쏴준다. 5km거리니 미친척하고 밟으면 10분정도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미친척하고 밟고 싶지는 않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심장은 귓가에서 소리보다 빠르게 두근거릴테니. 하지만 단점은 차와 함께 달리니 아무래도 무섭고, 특히나 남부순환로와 교차하는 오류IC는 차들이 어찌나 씽씽 달리는지 공포의 대상이다. 목감천으로 돌아오는 길은 약간 돌아서 시간은 더 걸리지만 자전거도로를 길게타서 안전하고 쾌적하게 달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늦은 밤에 올 때면 이 길 또한 두려움에 가득찬 길이 되어버린다. 자동차들의 속도와 사고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원초적인 두려움. 고요하고 시커먼 하천과 습하고 차가운 공기와 사람 허리까지는 자라있는 풀들(실제로 낮에 보면 무릎정도밖에 안자란)이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극한다. 결국 어느 길로 가든 두려움은 피할 수 없다. 야구는 두려움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도 3할을 친다는 양준혁은 어느 인터뷰에서 가장 어려운 공은 빠른 직구라고 했다. 몸쪽으로 붙는 빠른 직구는 아무리 프로선수라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릎으로 공을 본다는 최고의 선구안을 가진 장성호도 같은 맥락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로 이혜천을 꼽았다. 빠르고 제구가 되지 않는 투수만큼 두려운 상대는 없다는 뜻이다. 이혜천이 마운드에 있으면 그냥 야구하기가 싫어진다고 한다. 한 편 2008시즌 기아를 상대한 팀들은 바로 다음 팀과의 경기에서 평균적으로 타율이 올랐다는 어느 야구광의 분석도 있었다. 빠른공을 던지는 선수가 많은 기아를 상대하면서 두려움을 어느정도 극복했기 때문에 다른 팀과의 경기에선 타율이 올랐다는 이야기였다. 부산의 롯데팬들에게 가을에도 야구하는 선물을 선사한 로이스터감독 또한 야구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훌륭한 타자의 조건인 3할 타자는 10번나와서 7번을 실패한 타자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결코 좋은 타자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투수도 홈런맞을까봐 걱정하게 되면 자신의 공을 던질수가 없다고 인터뷰하였다. 아웃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홈런 맞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다시 돌아와서 인생 또한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의 극복이 관건인거 같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면 좋겠지만, 즐길 수 있는 두려움이란 애시당초 두려움이 아니다. 그렇다고 극복이라는 단어로 쉽사리 해결되지도 않는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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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부자들의 피해의식

간만에 100분토론을 보면서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토론자로 나온 한나라당 나성린의원의 이야기도 그렇고 중간에 시청자 의견으로 전화걸어서 필요이상으로 흥분한 서초동 사는 그 남자분도 그렇고 강남 사는 사람(나성린이 강남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의식을 대변한다고 보았기에)들이 종부세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이 상당하구나. 징벌적인 세금이라고 이야기한다. 하기사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세금이 징벌처럼 느껴질 수 있을것 같다. 종부세 안내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한국사회 자체가 징벌이란것을 모르나보다. 자기는 10원 20원 모아서 10평에서 20평으로 30평으로 해서 겨우 자기집 마련했다는 그 서초동 사는 12억짜리 집에 살면서 700만원 세금낸다고 오열하는 남성분. 글쎄 내가 경제 관념이 워낙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12억짜리 집만 있으면 세금 700만원 내도 참 좋겠다. 뭐 그사람은 돈모으려고 열심히 했을테고(무엇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돈모을 생각없어서 아무 노력도 안해서 이런말 하기 살짝 거시기하긴 하지만. 암튼 12억 짜리 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나보다. 700만원의 세금이 억울하겠지만 12억짜리는 커녕 억소리도 못나는 집가지고 있거나 아예 자기집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 자체가 억울함의 일상이라는 것을 모르나보다. 이 빌어먹을 부동산 땅투기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에 겨운 일인데, 마치 자신들이 특별한 피해자들인것처럼 오버하는 모습에 토할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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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차례지낸 후 아침먹고 동생침대에 누워서 녹색평론 지난호를 읽어볼까 하다가 깜박 잠이들었는데 정말이지 푹잤다. 자면서 꿈을 꿨는데, 이런 악몽을 다 꾸다니. 서울구치소. 뭔가 잘못되었는지 또다시 병역법위반으로 구속이 된것이다. 낯설지는 않은 징역생활이었지만 나는 너무나 답답하고 억울해 재판에서 한 번 제대로 사워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논리를 준비한다. 신기한 점은 교도관 중 한 명이 지금 서산에 내려가 노동운동 하고 있는 선배였다는 점. 그 선배한테 원래 구속되던날 저녁에 만나기로 했던 오리한테 오늘 못가게 되었다고 전화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여옥이나 오리한테 전화해서 변호사좀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미 병역거부로 살았는데 또 1년 6개월을 살려고 생각하니 너무 막막했던 느낌이 잠에서 깬 지금도 남아있다. 방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부르뎅을 알고 있다는 사람이 있었던듯하다. 부르뎅이 서울구치소에서 이감간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서울구치소에 있다니 굉장히 오래 있는 사람이었나보다. 암튼 이런 꿈을 꾸다니. 기분이 언짢다. 명절이 심심하다 보니 별의 별 꿈을 다 꾸나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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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가을 날엔 지하철을 타야한다.

비가 오는 가을날엔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나가야 한다. 버스가 막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막장같은 어둠의 땅속에서 참고참고 견디다 못해 빠른 속도로 땅위로 뛰쳐나온 지하철은 한강과 만난다. 상류쯤에서 흘러내려온 빗물들이 섞여서 한강은 높고 거칠고 투박하다. 지하철 바퀴의 반복적인 기계음에 익숙해질 무렵 누런 한강물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물리적인 시공간에선 불가능한 소리의 전달이 풍경을 타고 흘러 내 귀에서 무정형의 연주를 들려준다. 아... 이 순간을 위해 그 어두컴컴한 지하의 숨막히는 공기도 꾹 참아가며 지하철은 냅다 달렸는지도 모른다. 비가와서 자전거를 탈 수 없지만 비오는 가을날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 순간은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변을 달리는 순간만큼이나 소중하다. 덧글) 잠시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꿈을 꿨다. 결혼식이었다. 한화의 류현진이 결혼을 하고 있었다. 근데 신부가 혹시나 했는데 세상에 강유미였다. 강유미가 강유미와 결혼을 하다니. 갑자기 문득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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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힘과 맞서는 방법

수원구치소에 있을 때는 정말 힘들었었다. 그 당시의 편지나 글들을 보면 지금도 그 답답함이 꽉차올라 심장이 터질것만 같다. 근데 이건 뭐 지나고났으니 하는 이야기지만 수원구치소에서의 생활이 좋은 것도 있었다. 책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거. 재판중이라 일은 안해도 되고 재판의 사건덕에 공안수라서 독방쓸 수 있게 되어서 혼자서 TV도 안켜고 조용히 책읽을 시간이 많았다. 아니 편지쓰고 영어공부하는 것 빼면 책읽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어제 너무 늦게(사실은 오늘 아침 일찍) 들어오기도 했고, 기분도 살짝 거시기하기도 해서 오늘은 사무실에 안나갈 작정이었다. 그래도 해야할 일들이 제법 있어서 집에서 일을 하려고 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하루종일 일은 안하고 책만 보고 있다. 그러니 문득 수원에서의 나날들이 생각이 났다. 이렇게 여유롭게 그리고 조용히 책만 보는 하루가 언제만인지. 반갑다. 김중미씨의 소설 '꽃섬고개친구들'을 읽고 있다. 감옥안에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고 감동 왕창받았던 기억이 있다. 역시나 이 책도 쉽고 빨리 읽히고 가난하고 아름답고 슬프다. 게다가 주인공이 병역거부를 한다니까 괜히 마음이 간다. 아무튼 책을 읽는 중인데 참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다. "자신을 억누르는 부당한 힘과 맞설 방법은 그 부당한 힘을 누를 더 큰 힘을 갖는 게 아니라 약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맞서는 것이었다." 나중에 여러군데서 써먹어야지ㅋㅋ 출처 밝히면 표절이나 무단도용은 아니자나용~ 하늘아래 새로운게 없다는 핑계로 맨날 남들이 만들어 놓은 좋은 것들만 낼름하는건 아닌지몰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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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고기를 먹지 않으면 살이 빠질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하나도 안빠졌다. 채식하는 외국 활동가중에는 배가 전인권만한 사람도 많았다. 고기 안먹어도 다른거 많이 먹으면 살찌는게 당연하다. 암튼 고기안먹는다고 모두가 살이 빠지는 건 아니다. 자전거를 타면 살이 빠질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자전거를 아무리 타고 다녀도 살은 하나도 안빠졌다. 아예 자전거 여행을 장거리로 다닐때도 살은 안빠진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살은 안빠져도 전체적으로 체형이 슬림해져서 몸의 선이 예뻐진다고는 한다. 자전거는 참 뛰어난 도구이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너무 좋아서 실제로는 걷는것보다 에너지 소비가 덜든다고 한다. 근데 자전거 타면 은근히 배고파서 먹는 것은 또 많이 먹게 된다. 물론 자전거 많이 타면 살은 안빠져도 군살이 근육으로 바뀌고 많이 먹는 양을 다 소화해내기는 한다. 관계에 대한 착각. 내가 저사람을 좋아하고 가깝게 느끼는 만큼 저사람도 나를 좋아하고 가깝게 느낄거라는 생각. 혹은 나는 저 사람이 내키지 않는데 저 사람도 아마 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안을거라는 생각.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는 많은 경우 착각일뿐이다. 착각은 때로는 나에게 희망을 불러일으켜주며 나를 지탱하는 힘이된다. 착각은 때로는 나를 좌절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내리막을 겪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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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로 살아간다는 것

병역거부자로 살아간다는 것 이라고 쓰고 보니 너무 거창하다. 그냥 사는 건데 쩝.

하고 싶은 말은, 병역거부자가 되는 일은 징병을 거부해서 감옥에 다녀오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싫든 좋든 병역거부를 결심하는 순간부터 감옥에 다녀와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폭력과 군대와 평화에 대한 끊임 없는 질문을 받아야한다. 이것은 뭐 대단한 사상이나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병역거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의 타이틀을 획득하거나 한 때의 이벤트가 아닌 아주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삶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살짝 걱정이 되는 친구가 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그 친구의 삶도 걱정이지만 그친구가 혹여나 전쟁없는세상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이미 끼치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걱정이기도 하다. 병역거부가 삶이 아니라 타이틀이 되어버리면 어떤 비극이 일어날까.

물론 병역거부자들이 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하고 이럴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정말 그냥 군대가기 싫어서 군대를 거부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러기에는 지금은 그 대가가 너무 막대하기 때문에 이런 거부자들은 한참 있어야 나올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한때는 병역거부라는 타이틀을 먼저 봤었다. 평화주의자로서 내면이 가득 찬 이후에야 병역거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병역거부자의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서 성급히(지금 생각해보면) 병역거부를 선언해버렸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후에 평화주의자들을 만나면서 그 당시의 성급했던 선언을 지켜갈 수 있었지만, 또 다른 친구들은 성급한 결정에 후회를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병역거부자. 확실히 센 느낌이다. 감옥에 갔다온다니. 사람들은 그래서 병역거부자들을 함부로 보지 않는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나에게 종종 함부로(나쁜의미아님) 하지만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같은 경우는 내가 진지하게 무게를 잡는다면 십중팔구 나의 연기에 다 넘어갈 것이다. 내 친구들은 나를 병역거부도 한 '이용석'으로 보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병역거부자' 이용석으로 보기 때문일것이다.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지 그사람들이 알면 병역거부자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지도.... 암튼 사회적으로 많은 불이익을 받지만, 또 한편에서는 다른 형태의 권력(이렇게 표현할수 있을까?)을 획득하는 것이 병역거부자이다. 그리고 정말 별거 아닌 그 권력에 살짝쿵 눈이 멀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얼마나 소심하고 쪼잔하게 이리저리 계산하고 병역거부자인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은근히 병역거부자임을 내세우기도하는지 알고 있다.

 

다시 각설하고 병역거부 타이틀이 분명 유명해지는데, 그리고 소위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에게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받는 눈빛을 받는데 유용할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을 병역거부와 정 반대의 삶으로 이끌어 가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백번 양보해도 병역거부자라는 타이틀을 병역거부자 스스로가 신경쓰는 것은 그다지 좋은 모습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병역거부자가 되기로 하는 것은 병역거부자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병역거부자는 아주 다양할것이다. 누구는 근본적인 평화주의자 일것이고, 누구는 폭력이나 전쟁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일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현실과의 최소한의 타협을 조정하는 일이다. 누구는 농부로 살아갈 것이며, 누구는 마을공동체를 꾸리는 활동가로, 누군가는 대안학교 교사로 살아갈 것이다.

 

세상 모든 기자들과 언론들이 관심 가져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만큼 병역거부자 이름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 병역거부, 더 넓게 양심에 따른 거부는 이름없이 살아가며 자기 삶을 고요하게 들여다보며 자신의 삶속에서 다른 존재를 인식하고 세상속에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좀 멀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쓴 글이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바라고 내가 참여하는 행사들이 대박나기를 바라고 내가 좀 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운동은 뭔가 더 쎈 것을 잘 포장해서 관심을 많이 끄는 운동이 아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병역거부자로 불리거나 유명해지는 것에 신경쓰기 보다는 어떻게 살아갈지 삶을 고민하면 좋겠다. 사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느껴지는 요즘 더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평화주의자라고 입으로 떠들어대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병역거부자라고 인정해준다고 해서 내 삶이 평화를 살아가는 것은 아니더라.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떻게 돈을 벌고, 무엇을 먹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무슨 일을 할 지. 결국 모두가 하는 고민들이지만, 바로 거기에 평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병역거부자가 되기 위해서 아주 현실적으로 군대를 거부하는 것보다 감옥가는 것을 준비해야하고, 감옥가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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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일요일

가을은 유난히도 몸을 자극한다. 온 몸 구석구석 가을의 파장 긴 햇살이 파고든다. 일요일 아침의 한가하고 여유로운 공기는 심장을 거쳐서 손끝과 발끝까지 다다른다. 내 온 몸은 9월을 느끼고 아무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파르륵 떨린다. 지난 밤 만취의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정신은 길상사 조용한 극락전 앞 벤취에서 꾸벅거린다. 아직은 한낮의 더위는 여름을 기억한다. 그늘은 서늘하지만 햇볕은 아직 살갗을 그을리기 충분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하늘엔 이제 막 불켜진 붉은 십자가에 걸려있는 구름은 더딘 발걸음을 늘어놓고 있다. 부쩍 접어든 가을덕분에 기분은 상쾌하고 고요하지만 갑자기 사는 일이 무서워졌다. 지겨워진다. 해야하는 너무 많은 일들이 버겁지는 않지만 귀찮아진다. 고장난 라디오처럼 세상과 주파수 맞지 않아 지지직 거린다고 생각했는데 굳이 세상하고만 안맞은게 아닌 거 같다. 생각보다 고장이 심하고 여러군데가 나 있는 라디오였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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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용기를 지지합니다"는 말

참 좋은 말이 독이될 때가 있다. 참 좋은 의도로 한 말들이 그 말을 듣는 사람을 오히려 안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갈 때가 있다. 병역거부는 확실히 대단한 일이다. 누구나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지만. 누구나 병역거부자가 될 수 있지만, 또한 아무나 병역거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병역거부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군대간 사람과 마지막까지 병역거부를 하게 되는 사람의 차이는 그 사람들의 신념의 단단함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각자가 처한 상황때문인 경우가 많다. 쉽게 이야기해서 나는 병역거부를 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상황이전에 자신의 문제로 좌절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뛰어넘고도 상황에 의해 좌절한 사람들과 나의 차이는 단지 내가 운이 더 좋았던 것일 뿐이다. 병역거부운동을 해오면서 느낀것은 사람들은 병역거부해서 감옥에 갔다오는 것을 굉장히 크게 인식하고 병역거부자들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물론 예전부터 친한 친구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병역거부를 하면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병역거부만을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참 아쉬운 시선이다. 나는 병역거부자이기도 하지만,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이고, 채식주의를 노력하고, 자전거를 더 많이 타려고 노력하고, 암튼 나를 설명하는 단어는 세상에 차고 넘칠텐데 병역거부자들은 사실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텐데 병역거부와 감옥행만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그것으로 수렴해서 보면서 병역거부자들을 거대한 국가폭력을 이겨낸 대단한 사람으로 봐버리는 경향이 너무 많은것이 현실이다. 나는 윤동주의 마음에 동감하고 기아타이거즈의 4강을 바라고 시와의 노래에 푹 빠져있고 이런것들은 병역거부와 수감자라는 타이틀 앞에서 중요한것이 아니게 된다. 물론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화캠프를 다녀오면서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지지가 오히려 당사자들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병역거부자는 아무래도 감옥을 갔다온다는 선정성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더라도 은근히 영웅이 되거나 주위의 관심을 받게되기가 쉽다. 이번 평화캠프에서도 병역거부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다른 캠프 참가자들이 그들의 용기를 칭송하는 이야기나 글을 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들의 용기에 감탄하고 무한대의 지지를 보내는 바이지만 그들의용기를 칭송하기만 하는 것은 꽤 위험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병역거부운동에서도 많이 지적된 바 있는 문제들. 병역거부자들은 결코 영웅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스스로 원치안아도 주변에서는 그들을 엄청난 어려움을 이겨낸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에게 쏠리는 과도한 관심과 지지에 각자 다른 반응들을 보이지만 가장 우려되는 것들은 병역거부자들이 다른 시민들의 지지를 과대해석하거나 그 덧없는 인기(연예인들에 대한 인기처럼)에 정신이 팔려 자신의 신념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모습들이다. 나는 사람들이 병역거부자나 병역거부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용기에 감동받았습니다"는 류의 말을 자제하면 좋겠다. 물론 그들의용기는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그 말들이 그들에게 도움보다는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나는 당신의 마음에 공감합니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해주면 좋겠다. 물론 내가 한 말들은 아주 작은, 내 주변을 참고삼아 한 말일 뿐이다. 병역거부자들은 이미 너무나 다양해졌고, 덕분에 한국의 병역거부는 짧은 시간에 쉽게 정리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하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어쩌면 내가 질못 생각하거나 변화하는 현실에 너무 구닥다리처럼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술 많이 마시고 쓰려니 쓰고 싶었던 내용들이 많이 못들어간거 같다. 술이 왠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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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9월의 첫날

8월 31일과 불과 몇 시간의 차이를 둔 하루. 그러나 왠지 8월 31일은 9월 1일 보다는

8월 1일과 가까워 보인다. 단 하루만에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지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변화들이 그러하듯 더딘 걸음속에서 보자면 아무 차이도 없을텐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9월 1일에서 갑자기 가을을 느낀다.

오늘은 더더욱 비가와서 그런 느낌이 강한것 같다.

 

텐트에서 자는 잠은 잠자리가 불편하기는 하지만 뜨거운 아침 햇살 덕분에 잠에서 깨어나는 기분은 불편함을 얼마든지 감내하게 한다. 이때만큼 일어나는 일이 행복한 시간도 없다. 어쩌면 하나 더 있다. 빗소리... 똑같은 듯 하나도 정녕 똑같지 않은 소리들.

작년 9월 출소를 2개월 남겨논 그 때, 그리고 가석방 명단 못올라서 못나가는줄 알고 있다가 다시 뒤늦게 명단이 추가되고, 이런저런 해프닝들에 마음썼던 그 때.

어느날인가 두두두두 총총총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시원한 기운이 귀로부터 얼굴에 퍼지면서 나는 잠을 털어내고

베토벤처럼 헝클어진 머리로 세상의 소리들에 귀기울였다.

창 밖, 손 내밀면 닿는 거리에서 비오는 소리는 왠지 감옥이어서 그런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가볍게 두드리는 퐁퐁퐁 드럼소리.

빗소리가 분위기를 깔아주면 다른 소리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쌔근 쌔근 잠들어 있는 수인들의 숨소리.

저 멀리서 저벅 저벅 걸어오는 교도관의 구두굽소리.

나는 마치 소리들의 합주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지휘자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곧추세우고 침묵의 시간들을 경청했다.

소리를 가진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그 말을 되뇌이면서.

 

이렇게 하루종일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써도 바지 밑자락이 비에 젖는 날이면

문득 여러가지 소리들이 떠오른다.

올 가을은 또 어떤 이야기들을 나에게 들려줄까

거리에 부딪혀 통통 튀어오르는 빗줄기들을 보면서

살짝 설레어 봐도 되는지, 소심해진 마음에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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