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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1/13
    안경잡이
    무화과
  2. 2009/01/13
    2009/01/13
    무화과
  3. 2008/12/26
    2008/12/26
    무화과
  4. 2008/12/25
    성탄절이 뭐 이래 (2)
    무화과
  5. 2008/12/25
    대체복무반대의 논리에 대하여
    무화과
  6. 2008/12/19
    재수없는 편지 (8)
    무화과
  7. 2008/12/18
    그 가사가 내 마음을 빼앗아갔어
    무화과
  8. 2008/12/17
    산소가 필요해(1)
    무화과
  9. 2008/12/08
    군것질(1)
    무화과
  10. 2008/12/06
    꼬였다.(3)
    무화과

안경잡이

안경을 벗어두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안경을 찾아야 비로소 눈을 뜰 수 있는데 안경이 없으니 보이는 것이 없어서 보기 위해 안경을 찾는다지만 안경없이 안경을 찾을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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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예전엔 세상이 쉬워만 보였었는데 아니 쉬웠다고 말하기엔 오해가 있을수도 있지만 암튼 세상이 내맘대로 변하지는 않더라도 나또한 세상맘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너무나 확실하게 구분이 되었었는데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 옳고 그른 기준들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암튼 갈수록 세상을 모르겠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모르겠고 이건 뭐 조금 커다란 이야기로 내 삶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바로 지금 이 곳 이 자리에서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지 나의 쓸모는 무엇인지,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인지, 혹은 내가 그렇게 누군가를 절실하게 필요로하는건지. 어느 순간부턴가 완벽한 것은 없다고, 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런걸 감안하더라도 너무도 불안하고 너무도 모호하기만 한. 그래도 이렇게 들떠서 맞이하는 기분좋은 서른 살은 없을거라고 생각할만한 상황도 있지만, 내가 없어도 세상은 굴러가고. 세상없어도 나는 숨쉬며 살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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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6

끈 만약 나와 너의 사이가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누군가 그 끈을 잡아당겨 서로 사이에 놓인 끈이 짧아지면 서로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라면. 그런데 어느날 문득 나 혼자 끈을 잡아당기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소심한 자각에 에이 그래도 설마 하고 꽉 잡고 있던 손을 슬며서 풀어놓는다면 그러면 끈은 힘없이 스르르 풀려나가고 멀어지더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던 우리의 사이도 그대로 끝이 나게 될까? 어쩌면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을 또 다른 너가 나한테 느끼고 있는지도. 너 혼자서 끈을 애타게 잡아당기는 데도 나는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고 너의 노력만으로 우리의 사이는 유지가 되고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나 장담할 수 없으니, 이대로 네가 또 다른 너와의 사이에서 나처럼 슬며시 끈을 놔버리면 그것으로 너와 나의 사이는 끝이 나게 될까? 과대포장 가끔씩 사람들이 사이에서 내가 과대포장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워낙 다른사람들의 단점에 너그럽고 장점에 관대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때론 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시선의 대상이 되면 부담스럽기도 한다. 문제는 과대포장을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내 쪽에서 이미 과대포장되어 있는 것보다 더 크고 화려한 포장지를 입히려고 한다는 것이다. 노력은 하지 않고 사람들이 나를 보다 화려하게 바라보기만을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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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뭐 이래

교회를 다니는 것도 성당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크리스마스시즌에 연애해본적도 없어서 크리스마스가 언제는 뭐 나한테 특별한 날이었냐 싶지만 그래서 크리스마스라고 딱히 무슨 기대 따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유독 올 해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가 뭐 이래?"라는 짜증섞인 불만이 사방군데서 튀어나온다. 집에서 좀 쉬면서 청소도 하고 반찬도 하고 소식지 원고도 쓰려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갑자기 국방부로부터 대체복무 전면 백지화라는 선물이ㅠㅠ 근데 어디 가서 짜증도 못내는게 요새 사는 게 안 힘든 사람이 있나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짤리고, 청소년들은 공부하는 노예가 되기를 노골적으로 요구받고 있고, 저기 여의도에서는 아주 별 그지같은 법안들 통과시킨다고 한나라당이 지세상 만나 떠들고 있고 암튼 어지간한 사연으로는 어디가서 명함도 못내밀고 뭐 이따위 크리스마스가 있나 싶어서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기도나 한 번 해봐야겠다. 크리스마스 저녁엔 온 하늘에서 아름다운 노래가 지상으로 사뿐히 내려오기를 사람들은 어디서 나오는 노래인지 몰라서 어리둥절 사방을 둘러보다가 자기 귀를 의심하고 몇 몇 예민한 사람들은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순식간에 눈치를 채고 몇 몇 순수한 사람들은 그저 노래에 감정을 실어버리고... 거리는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는 어둑해지는 도심사이로 사라지고, 정신없던 네온사인들도 파스텔톤으로 바뀌고, 마치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음악감상실이나 조그만 클럽이 된 것처럼 모두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노래에 집중하는 모습이면 좋겠다. 방방 뜨는 신나는 노래보다는, 한숨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슬픈 노래보다는, 슬픈 듯 하지만 슬프지만은 않고 아름다운 듯 하지만 오히려 아프고 잔잔하고 또 먹먹하게 가슴이 시려오는 노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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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반대의 논리에 대하여

뭐 워낙 대꾸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들이 많으니 다 패스 특히 병역거부를 여호와의 증인에 국한시켜서 바라보는 일부 보수기독교도들의 반대의견은 진지하게 외면해줘야 한다. 그냥 국방부의 대체복무제도 백지화 계획(?)에 대해서 지지와 찬성을 보이고 있는 의견들이나 기사들을 보면 '신성한 병역의 의무에 예외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스포츠 선수들 올림픽에서 금메달따면 면제해주는 건 뭔대? 국방부가 병역을 가지고 징병대상자를 상대로 장난치고 있을뿐이다. 전혀 신성하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사례가 스포츠스타에 대한 병역면제다 '개인의 양심과 인권도 중요하지만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도대체 어느법 어느조항에 '병역'이 국민의 의무로 되어 있다는 건지. 혹 국방의 의무라 할지라도, 소로우를 흉내내어 보자면 "내가 지켜야할 유일한 의무는 국방의 의무가 아니라 평화에 대한 의무일 뿐이다" "나는 병역법을 존중할 필요보다는 다른 사람을 존중할 필요성을 더 크게 느낀다. 그리고 만약 내가 군인이 된다면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총구멍을 상대방으로 향한 상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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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없는 편지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는 사람의 마음에 어떤 연필자국같은 흔적을 남긴다. 물론 글씨를 너무 심각하게 못쓴다면 감동을 절감되겠지만 말이다. 앗 때마침 브로콜리너마저 1집의 '편지'가 나오네ㅋㅋ 굳이 손으로 정성스레 쓴 편지가 아니라도 컴퓨터로 출력한 편지라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언제나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누구나 몇 번을 꺼내 다시 읽고 또 읽은 그런 편지들이 한 두 통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왕창 재수 없는 편지 받았다!!! 아... 크리스마스 카드도 아니고 짜증나... 표지를 보는 순간 불안감은 이미 우리집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자나 하는 내용을 확인하고 짜증ㅠㅠ 벌금이 250만원이란다. 촛불집회 5월 31일 물대포를 쏘던 그날. 밥먹고 집에가다 잡혀가서 어디서 쪽팔려 이야기도 못하는데 25만원이라니 세상에. 뭐 준법정신 코딱지만큼도 없고 그래서 저들이 나보고 유죄라고 해도 사실 억울하지는 않은데 벌금 액수를 보고 이건 뭔가. 예전에 내가 받았던 벌금들과 비교해봐도 이건 정말 짜증이다. 국회 국방위원장실 점거한다고 설치다 잡혀나왔을때도 200만원(이 땐 내가 주동자처럼 되어버렸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더 조금 나왔다)나왔고 평택에서 포크레인위에 올라가서 의도적으로 해정대집행을 방해했을 때도 100만원 벌금이었는데, 겨우 이정도꺼 가지고 250만원이라니 어처구니 없다. 그날 200명 약간 넘게 연행되었는데 그사람들한테 200만원씩 걷으면 4억이 되는구나. 국가경제가 어렵다고 이런식으로 재정을 확충하려는 건가? 근데 재미있는건 편지를 보낸 곳이 중앙지법 공안부다. 그리고 나의 죄명은 일반교통 방해다. 천하의 공안팀이 일반교통사범들이나 다루고 있다니... 바보들. 아 검사새끼 욕나온다. 나 착하게 살고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못되게 살고싶지도 않은데. 착한척하며 아무도 안미워하기보다는 미운사람 미워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미운사람 하나라도 안만드는게 좋은데... 계속 욕만 나오네ㅠㅠ "메리크리스마스" 이런 말이라도 하나 붙여주는 센스가 있었다면 그래도 덜 재수없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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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사가 내 마음을 빼앗아갔어

역시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항상 무언가 다른 일을 해야하는데 그 일이 잘 안되고 하기 싫고 그럴때가 많다. 이미 마감을 넘긴 기사를 쓰다가 너무 쓰기 싫어서 또 이러고 있다ㅠㅠ 노래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본적이 있는지... 나는 조지오웰의 1984와 같은 사회가 만약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언론이나 역사의 통제보다는 왠지 노래나 혹은 예술의 통제를 통해서 이루어질것만 같은, 논리에 기반하기보다는 전적으로 나의 느낌에 기반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노래는 사실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혹은 때로는 신념이나 사상을 발화하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의 내용과는 상관없이(물론 내용도 좋지만) 김남주 시인의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제목의 시를 좋아했다. 참고로 이 시는 안치환이 '희망이 있다'라는 제목의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감옥안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생각해보니 다른 어려운점도 많이 있었다ㅋ) 그나마 잠시 독방에 머무를 때는 노래책 하나 방에 가져다 놓구 혼자서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부른 노래는 항상 내가 아는 노래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어서ㅠㅠ 하루에 아침 점심으로 1시간씩 틀어주는 라디오에서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혹은 듣고싶었던 노래가 나오면 그날은 정말 보고싶었던 친구가 면회를 온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어쨋든 나오면 노래나 실컷 들어야지 했는데 대부분의 결심이라는 것이 그렇듯 막상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다지 절실하지 않게되는 것처럼 정작 나와서 노래를 많이 듣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런데 뭐 언제나처럼 큰 특별한 계기 없이 요새는 노래를 듣는 일이 많아졌다. 컴퓨터나 엠피쓰리로 듣기도 하고 직접 공연을 가서 듣는 경우도 많아졌다. 아... 분명 노래를 듣는 것보다 책을 보는 것이 나의 지식을 풍성하게 해주겠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노래들을 만나게 되면 어쩔 도리가 없다. 특히 요새는 몇몇 곡의 가사중 특정 부분에 푹 빠져들어가있다. 원래 내가 노래 들을 때 가사를 중요하게 듣는지라...(언제쯤 외국곡에 빠져들 수 있을까ㅠㅠ) 먼저 시와의 '화양연화'. 노래는 뭐 그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정으로 하지만 아주 서서히 다가온다. 끝나버린 사랑이 슬프지도 그렇다고 덤덤하지도 않은 그런 감정이라고 해야하나. 뭔가 먹먹하지만 말로 설명해낼수 없는 느낌. 그리고 루시드 폴의 '바람, 어디어세 부는지'에서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같아.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라는 가사. 정말 혼자 있어본 사람은 알거다. 아니 사실은 누구나 결국엔 혼자다. 나는 이 가사를 들으면 왠지 루시드폴의 '사람들은 즐겁다'에서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즐겁다"와 연결이 된다. 뭐랄까, 언제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세지고 살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고독감이 인간이면 누구나 원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죄(기독교적인 원죄라기 보다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누군가의 희생과 관계맺을 수밖에 없는)를 바라보는 눈빛이 느껴진다. 언니네이발관의 '산들산들'에서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도 난 가야하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이 부분도 참 좋다. 마구마구 공감이 간다. 그래 난 부족하지. 그래도 절망하지 않을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이런말이 절로 나온다. 사실 언니네이발관 5집은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인데 헤어져서 힘들어하다가 해탈하는 내용인데, 나야 뭐 그런 해탈은 해본적이 없지만ㅠㅠ 암튼 좋다 며칠전에 길을 걸으며 이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고 있는데 앞에오던 초등학생이 걸음을 멈추고 뭔가 이상하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 나 노래 못한다 ㅠㅠ 그런데 이석원의 그 독특한 보이스를 흉내내서 불렀다. 그래 미안하다ㅠㅠ 브로콜리 너마저의 '말'도 감정이입 이빠이다. "하지 않았다면 좋을 말들. 유난히도 파랬던 하늘이라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스틸컷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참 말이 많아서 하지 말았어야하는 말도 많이 하게 되고, 아뿔사 이미 뱉어낸 순간부터 후회하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면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또 하필 그런 날의 하늘은 왜 저다지도 파랗고 맑은지. 아마 올초에 했던 다짐이 말 수를 줄이자였던거 같은데. 담배피는 사람들이 매번 새해에 금연다짐하는거랑 똑같은거다 나에게는. 결국 블로그질 하느라 시간 다잡아 먹고ㅠㅠ 이제 서둘러 글 쓰지 않으면 뒤에 있는 약속들 줄줄이 늦게 생겼다. 후회해서 뭐하랴. 고쳐지지 않는 못된 습관들에는 후회조차도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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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가 필요해

때로는 상징과 비유를 쓰지 않고 직접적으로 한 표현들이 사람들의 해석을 거치면서 의미심장한 문구로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면,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쓰고 막아보려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 두 마디이다. 반복되는 두 마디의 강렬한 포스가 듣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사랑노래로 생각한다. 아무리 애를쓰고 막아보려해도 들리는 너의 목소리라니, 얼마나 끈적한 고백인가. 소설가 한강은 한 에세이에서 이 노래를 들으면 정태춘박은옥의 '그대 고운 목소리에~'로 시작하는 노래가 생각난다고 한다. 그런데 델리스파이스의 말을 들어보면 이 노래의 가사가 쓰여진 배경은 이렇다. 방음시설이 잘 안되어 있는 집에 살고 있을 때, 옆집 사람의 말소리가 너무 시끄럽게 들려서,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해도 역부족이었던 경험에서 쓴 가사라는 것이다. 델리스파이스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암튼 사랑노래로 사람들이 받아들여도 충분히 아름다운 노래임은 틀림없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또한 데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처럼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님의 침묵에서의 님이 무슨 부처라느니 민족이라느니 말들을 하지만 난 아무리 봐도 그건 사랑시다. 사랑하는 님이 멀리 떠나가버려서 너무 슬픈거다. 뭐 근데 이건 확인할 수 없으니... 넬 노래 중에 제목이 기억이 안나지만, "유난히 내 곁에만 산소가 모자란듯..."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갑자기 바로 이 구절도 상징과 은유가 아닌 직접적인 표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숨쉬기 힘들정도로 외롭고 힘든 감정상태가 아니라 정말로 산소가 모자라서 숨쉬기가 힘든거다. 고산지대도 아닌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나는 오늘 아침에 경험했다. 요새들어서 자주 이런 경험을 하는데 술을 마신 다음날은 숨쉬기가 힘들다. 산소가 뇌에 잘 공급이 안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느린 걸음에도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람들을 둘러보면 다들 멀쩡하다. 유난히 내 곁에만 산소가 모자란 듯 나 혼자서만 숨쉬기가 힘들다ㅠㅠ 넬도 술마시고 난 다음날 이 가사를 썼을까? 암튼 때로는 의도적으로 상징과 비유를 배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상징을 띄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람들이 의미를 덧칠하기도 한다. 산소가 뇌에 잘 공급되면 더 정리된 글을 썼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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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것질

겨울엔 뭐니뭐니 해도 따뜻한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호빵 앗뜨뜨 하면서 하얀 눈덩이를 살짝 가르면 달콤한 팥앙꼬에서 입김보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추운날 길거리에선 오뎅 국물에 떡볶이 얼얼한 떡볶이 한입 가득넣고, 목메인 계절에 뜨끈한 오뎅국물 부어주면 시려웠던 손끝까지 찌릿찌릿 녹아가는 느낌이란. 호떡집 앞을 지날때면 노릿노릿한 구수한 호떡의 유혹 반가운 마음에 한입 성큼 베어물면 끈적한 설탕물에 혓바닥 입천장 다 헐려도 맛있다고 좋다고 찬바람 많이 맞아 감기기운 느껴질 때는 모과차 한잔 은은하게 달콤한 모과의 향 채 지워지지 않은 기억들이 은은하게 온몸에 퍼진다. 아 이렇게 맛난 것들이 나를 유혹하는데 왜 요새 속이 계속 안좋아서 부담없이 된장국에 밥만먹어도 배가 아픈건지. 이 계절이 다 지나가기 전에 빨리 이것 저것 먹어야하는데ㅠㅠ 목도리 칭칭감싸고 차가운 바람에 따스한 체온을 느낄수 있는 계절이 몽땅 지나가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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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였다.

어제 너무 추워서 몸이 갑자기 안좋아져서 인권두마당 가려다가 그냥 집으로 와버렸다. 추위에 몸이 안좋아져서 가려던 일정을 안가게 되다니... 몸이 별로 안좋은 상태인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지. 암튼 집에서 와서 배가고파서 밥을 허겁지겁 꽤 많이 먹었다. 밥먹고 재택알바 하던거나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소화가 안되더니 온몸이 으스스하고 힘이 쫙 빠져서 여름철 후라이팬위에서 축 늘어진 인절미 마냥 철퍼덕하고 방바닥에서 뒹구는데 볼록 올라온 배에는 가스만 차는지 계속 헉구역질만 나올뿐이고. 늦게 들어온 동생의 도움으로 매실 원액을 먹었더니 뭔가 막힌게 쑤욱하고 내려가는 느낌이 나더니 이젠 헛구역질이 아닌 거대한 트림이 공룡울음처럼 솟구치고. 이런 날은 빨리 자는게 최고라며 그냥 잠이 들었건만, 밤중에도 몇번이나 물처럼 흘러내리는 설사를 참지못해 잠을 뒤척여야했다. 아... 아침밥도 못먹고, 친구 결혼식가야하는데 가야하는데 가서 밥한끼도 못먹겠구나. 추운날씨에 장이 완전히 베베 꼬인거 같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장 말고도 요새 꼬여 있는게 있는데, 바로 성격. 요샌 이상하게 벌컥 벌컥 짜증이 잘나고 그런다. 뭐 짜증날만한 일들도 있긴 했지만, 예전같으면 그냥 신경안쓰고 넘어갈 일들에도 짜구 확 꼬여서 뒤틀어진 감정들이 분출된다. 그냥 무시해버리거나 웃고 넘겼을 상황들이 자꾸 머리를 떠나지 않고 어떻게든 짜증을 풀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은 결코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고, 상대방에게 가장 상처를 주거나 짜증을 유발할 수 있는 말들을 기어코 찾아내 그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게 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 말을 꾹 참지만 혹 그 말을 하게될 경우에도 일말의 미안한 감정도 안생긴다. 왜 이리 꼬여만 갈까. 추운날씨 좋아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자나. 내복꺼내입으면 괜찮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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