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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환기미술관에 다녀왔다. 김환기, 김향안 부부의 작품과 글을 한데 모아 엮은 책 출간에 맞추어 '그림에 부치는 시'라는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김향안은 구본웅의 이복동생으로 이상과의 사별 후에 김환기와 재혼한 여인이다. 그 자신도 화가이며 문필가라는. 친구가 읽으라며 일러준 신문기사에서, 나는 그들의 그림보다도 문장에 관심이 갔더랬다. 어찌 되었건 '반생을 강아지처럼' 살았던 화가 부부의 문장. 하여, 갤러리에 말끔하게 박힌 문자들을 보러 갔다. '넌 어째 그림이 아니라 글을 보러 온 것 같다?'던 말은 정작 내게 했던 말이었고, 그 친구라면 단박에 알아들었을 터.
2.
환기미술관은 종로구 부암동이라는, 청와대 뒷편으로 올라가야 닿는, 퍽 높은 동네에 있었고. 그런 동네가 그러하듯, 잘 사는 이들과 못 사는 이들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서울이라 느껴지지 않는 고즈넉함. 환기미술관을 찾아들어가는 골목길은 적막하고 차가워 좋았다. 하얀 직사각 명판에 Musee Whanki라 쓰여진 입구를 지나쳐 계단을 조금 오르면, 미술관이 보인다. 이제 그 안과 밖을 훑어보고 있으니, 건축을 모르는 내 눈에도, 공간구성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2층이 그저 뻥 뚫린 채 계단과 복도로만 연결되어 있는데, 그 난간을 짚고 서서 1층 전시물을 내려다 보면, 전시물을 전시하는 데에도 디자인이 숨어 있구나 싶어 앗, 한다.
3.
3층 전시실을 오르는 계단 맞은편에는 직사각의 커다란 유리창이 있고, 5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태양빛이 그리로 붉게 스며들고 있었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얼굴을 물들이는 그 빛에 환하게 웃었다. 때맞춰 잘 왔구나. 그 가운데 놓여진 단아한 나무의자에 등을 맞대고 앉아 있으면 이 편으로는 환기의 그림이, 저 편으로는 향안의 그림이 수다스럽다.
4.
김환기는 현대문학의 겉표지를 비롯해 많은 책의 표지그림과 속지그림을 그렸다. 딴에는 고민고민해서 그려내는 그림들인데, 편집으로 넘어가면 싸인을 해 두어도 위아래가 바뀌는 경우가 있더라는, 하지만 어찌 타박하겠냐는 글을 보며 그에게 정을 준다. 그림 몇 장 보냈으니 표지할 거 빼고는 내다팔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 주라는 하소체 어투에도 그만 마음을 뺏기고 만다. 그림만 그릴 줄 알았지 도통 삶에는 여우 같지 못 했던 그에게는, 그와 마찬가지로 예민한 감성을 지녔으되 강단 있는 여인이 평생을 함께 했다. 사실 김향안의 그림은 전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작품 아래 붙어있는 짧은 문장들 속에 비쳐지는 그녀의 자신감이 맘에 들었다. 환기와 환기의 예술을 정확히 이해하고 애틋하게 추억하면서도, 자신만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간 그녀가 아름다웠던 거지...
5.
환기의 책, 향안의 책, 이렇게 두 권의 수필집이 출간된 모양인데 한 권에 18000원이던가. 책의 두께만큼 입벌리고 섰다가 빈손으로 나왔다. 환기미술관에서 큰길로 나와 문득 아랫길을 조금 밟았더니 오래된 옛문이 하나 있다. 창의문(자하문)이란다. 그 아래로 난 작은 길과 길섶의 벤치는 한숨 돌리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아직은 빛의 온기가 남아있을 시간이라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모두에게 숨 돌릴 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끝의 공장으로부터
푸른 곰팡이가 쏟아지듯이
포자처럼 집으로 간다 하아하아
입김이 서린 하늘은 차갑도록 하아하아
무사한 하루도 좋다 무사할 내일도 좋다
포장마차나 함바집엔 고기굽는 냄새가 새어나오고
뱉어내었던 작업장 굴뚝이 마냥 하늘로 올라
시장통이나 한 번 뒤적이며 생선의 푸른 등을 찔러본다
장난감 가게의 불은 구멍뚫린 주머니처럼
할 수 없거나 잃어버리거나 없는 것은 그 불처럼
빛나라 시시덕이는 여인네의 짧은 치마
분칠한 얼굴이 고와 입맛 한 번 다셔도 보고
가래침 타악탁 뱉으며 자꾸만 만지작 거리는 인형은
작고 예쁜 집에 잘도 사는구나 양과자 가득
쌓인 과자가게를 지나 정육점 두어근의 돼지고기
빠알갛게 코로 들이치는 바람 무사할 내일 이야기
달랑이며 잠시 실내포장마차 훈기어린 순대국에 낱잔 소주
곁들이었다 지칠 때까지 익힌 그 순대같은 이야기
푸욱 퍼져 달랑이는 모든 것을 꿰어 들고
검정비닐봉지 우리 집에 간다 집으로 간다
아무 할 말 없이
포자처럼 부유하는
푸른 곰팡이
멍이 든다
-- 그렇게 찾아도 찾을 수 없었는데, 백석의 시집과 여승, 그리고 이 시까지..
모든 사물들을 실물크기로 그리고 싶다
내 사랑은 언제나 그게 아니 된다
실물크기로 그리고 싶다
사랑하는 자정향(紫丁香) 한 그루를 한 번도 실물크기로 그려낸 적이 없다
늘 넘치거나 모자라는것이 내 솜씨다
오늘도 너를 실물크기로 해질녘까지 그렸다
어제는 넘쳤고 오늘은 모자랐다
그게 바로 실물이라고 실물들이 실물로 웃었다
p.s "클라인씨의 병" 같은 너의 이상한 사랑에 고마움을...
어느 날, 기적 같이 그 애를 마주칠 것 같다. / '안녕'이란 말이 튀어나오면 어쩌지. / 이젠, 그만큼 친숙해져 버린 어떤 얼굴. / 그 애의 얼굴이 또렷해질수록 그의 얼굴은 희미해져가. / 슈펑크.
밭고랑에서 삐긋해 금 간 다리뼈 겨우 붙으니
늙은 어머니는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마당가로 가
참나무 아래서 도토리 주워 껍질 까다가
막내아들이 쉬라고 하면 내뱉었다
놔둬라이, 뼈에 숭숭 드나드는 바람 달래는 거여
장가 못 든 쉰줄 막내아들이
홀로 된 여든줄 어머니 모시고 사는데
막내아들이 검정콩 베어다 마당 한복판에 쌓아놓으면
늙은 어머니는 참나무 가지로 타닥타닥 두드려 털고
막내아들이 멀리 튄 콩 주워오면 소리질렀다
놔둬라이, 한구석에 묻혀서 명년까지 있고 싶은 거여
막내아들이 갈아입힌 속옷에 새물내 나서
늙은 어머니는 코 킁킁거리며 새물새물 웃다가
막내아들이 겉옷에 붙은 풀씨 뜯어내면 중얼거렸다
놔둬라이, 혼자 못 가는 곳에 같이 가자는 거 아니겠냐
늙은 어머니가 해거름에 집 안으로 들 적에
이웃집 수캐가 어슬렁어슬렁 대문 먼저 넘어서
암캐에게 올라타려고 낑낑거리는 꼴이 민망해서
막내아들이 콩줄기 거머쥐고 후려치면 말렸다
놔둬라이, 지들 딴엔 찬 밤 길어지니 옆구리 시린 게여
다들 지 살자고 하는 짓이여 다들 지 살자고 하는 짓이여
"결정적 순간 the decisive moment은 시공간의 통합 즉 완전한 조화와 균형 속에서의 찰나이다."
그의 사진은 지나치게 엄격했다.
훌륭했지만 숨이 막혔다.
그래서 좋아할 수는 없었다.
인물사진에도 브레송만의 느낌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표정을 잡아냈을까 싶은 사진들.
그가 누구건, 그의 꼼꼼함을 꼬장꼬장함을 거침없음을, 만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하지만 명사들의 사진은 어딘지 모르게 비슷비슷한 것이 그닥 흥미진진하지는 않았다.
제일 좋았던 인물 사진.
자코메티다. 실제 사진을 보면 훨씬 느낌이 좋은데..
인도 최북단 카슈미르주, 스리나가르의 여인들.
르네상스 이전의 서양화가 주는 단순한 숭고미가, 약간은 비틀어진 형태로, 더욱 강하게 전해지는 작품이었다.
브레송의 사진들은 죄다 '순간'을 '고정'하고 있었다.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숨이 멎은 듯한 찰나.
고집스런 열망이 빚어낸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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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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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똥구멍을 사랑해.부가 정보
toi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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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ㅡㅡ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