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10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1/07
    커밍아웃 / 황병승(2)
    ninita
  2. 2005/10/14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1)
    ninita
  3. 2005/10/13
    그림에 부치는 시_환기미술관..(4)
    ninita
  4. 2005/09/26
    멍처럼 푸른 귀가 / 황지(1)
    ninita
  5. 2005/09/10
    자정향 / 정진규(2)
    ninita
  6. 2005/08/15
    이런 사진.
    ninita
  7. 2005/07/28
    내가 좋아하는 혁명가의 이 한 마디
    ninita
  8. 2005/07/11
    우리 살던 옛집 지붕 / 이문재
    ninita
  9. 2005/07/04
    지 살자고 하는 짓 / 하종오(2)
    ninita
  10. 2005/07/03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사진전..
    ninita

커밍아웃 / 황병승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
뒤로 걸을까 봐요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부끄러워요 저처럼 부끄러운 동물을
호주머니 속에 서랍 깊숙이
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지요

부끄러운 게 싫어서 부끄러울 때마다
당신은 엽서를 썼다 지웠다
손목을 끊었다 붙였다
백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도 됐다가 고모할머니도 됐다가...

부끄러워요? 악수해요

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는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廢水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림에 부치는 시_환기미술관..

1.

환기미술관에 다녀왔다. 김환기, 김향안 부부의 작품과 글을 한데 모아 엮은 책 출간에 맞추어 '그림에 부치는 시'라는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김향안은 구본웅의 이복동생으로 이상과의 사별 후에 김환기와 재혼한 여인이다. 그 자신도 화가이며 문필가라는. 친구가 읽으라며 일러준 신문기사에서, 나는 그들의 그림보다도 문장에 관심이 갔더랬다. 어찌 되었건 '반생을 강아지처럼' 살았던 화가 부부의 문장. 하여, 갤러리에 말끔하게 박힌 문자들을 보러 갔다. '넌 어째 그림이 아니라 글을 보러 온 것 같다?'던 말은 정작 내게 했던 말이었고, 그 친구라면 단박에 알아들었을 터.



 

2.

환기미술관은 종로구 부암동이라는, 청와대 뒷편으로 올라가야 닿는, 퍽 높은 동네에 있었고. 그런 동네가 그러하듯, 잘 사는 이들과 못 사는 이들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서울이라 느껴지지 않는 고즈넉함. 환기미술관을 찾아들어가는 골목길은 적막하고 차가워 좋았다. 하얀 직사각 명판에 Musee Whanki라 쓰여진 입구를 지나쳐 계단을 조금 오르면, 미술관이 보인다. 이제 그 안과 밖을 훑어보고 있으니, 건축을 모르는 내 눈에도, 공간구성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2층이 그저 뻥 뚫린 채 계단과 복도로만 연결되어 있는데, 그 난간을 짚고 서서 1층 전시물을 내려다 보면, 전시물을 전시하는 데에도 디자인이 숨어 있구나 싶어 앗, 한다.

 

3.

3층 전시실을 오르는 계단 맞은편에는 직사각의 커다란 유리창이 있고, 5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태양빛이 그리로 붉게 스며들고 있었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얼굴을 물들이는 그 빛에 환하게 웃었다. 때맞춰 잘 왔구나. 그 가운데 놓여진 단아한 나무의자에 등을 맞대고 앉아 있으면 이 편으로는 환기의 그림이, 저 편으로는 향안의 그림이 수다스럽다.

 

 

4.

김환기는 현대문학의 겉표지를 비롯해 많은 책의 표지그림과 속지그림을 그렸다. 딴에는 고민고민해서 그려내는 그림들인데, 편집으로 넘어가면 싸인을 해 두어도 위아래가 바뀌는 경우가 있더라는, 하지만 어찌 타박하겠냐는 글을 보며 그에게 정을 준다. 그림 몇 장 보냈으니 표지할 거 빼고는 내다팔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 주라는 하소체 어투에도 그만 마음을 뺏기고 만다. 그림만 그릴 줄 알았지 도통 삶에는 여우 같지 못 했던 그에게는, 그와 마찬가지로 예민한 감성을 지녔으되 강단 있는 여인이 평생을 함께 했다. 사실 김향안의 그림은 전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작품 아래 붙어있는 짧은 문장들 속에 비쳐지는 그녀의 자신감이 맘에 들었다. 환기와 환기의 예술을 정확히 이해하고 애틋하게 추억하면서도, 자신만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간 그녀가 아름다웠던 거지...

 

 

5.

환기의 책, 향안의 책, 이렇게 두 권의 수필집이 출간된 모양인데 한 권에 18000원이던가. 책의 두께만큼 입벌리고 섰다가 빈손으로 나왔다. 환기미술관에서 큰길로 나와 문득 아랫길을 조금 밟았더니 오래된 옛문이 하나 있다. 창의문(자하문)이란다. 그 아래로 난 작은 길과 길섶의 벤치는 한숨 돌리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아직은 빛의 온기가 남아있을 시간이라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모두에게 숨 돌릴 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멍처럼 푸른 귀가 / 황지

 저 끝의 공장으로부터

 푸른 곰팡이가 쏟아지듯이

 포자처럼 집으로 간다 하아하아

 입김이 서린 하늘은 차갑도록 하아하아

 무사한 하루도 좋다 무사할 내일도 좋다

 

 포장마차나 함바집엔 고기굽는 냄새가 새어나오고

 뱉어내었던 작업장 굴뚝이 마냥 하늘로 올라

 시장통이나 한 번 뒤적이며 생선의 푸른 등을 찔러본다

 장난감 가게의 불은 구멍뚫린 주머니처럼

 할 수 없거나 잃어버리거나 없는 것은 그 불처럼

 빛나라 시시덕이는 여인네의 짧은 치마

 분칠한 얼굴이 고와 입맛 한 번 다셔도 보고

 가래침 타악탁 뱉으며 자꾸만 만지작 거리는 인형은

 작고 예쁜 집에 잘도 사는구나 양과자 가득

 쌓인 과자가게를 지나 정육점 두어근의 돼지고기

 빠알갛게 코로 들이치는 바람 무사할 내일 이야기

 달랑이며 잠시 실내포장마차 훈기어린 순대국에 낱잔 소주

 곁들이었다 지칠 때까지 익힌 그 순대같은 이야기

 푸욱 퍼져 달랑이는 모든 것을 꿰어 들고

 검정비닐봉지 우리 집에 간다 집으로 간다

 아무 할 말 없이

 포자처럼 부유하는

 푸른 곰팡이

 멍이 든다

 

-- 그렇게 찾아도 찾을 수 없었는데, 백석의 시집과 여승, 그리고 이 시까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정향 / 정진규

모든 사물들을 실물크기로 그리고 싶다

내 사랑은 언제나 그게 아니 된다

실물크기로 그리고 싶다  

사랑하는 자정향(紫丁香) 한 그루를 한 번도 실물크기로 그려낸 적이 없다

늘 넘치거나 모자라는것이 내 솜씨다

오늘도 너를 실물크기로 해질녘까지 그렸다  

어제는 넘쳤고 오늘은 모자랐다

그게 바로 실물이라고 실물들이 실물로 웃었다

 

p.s "클라인씨의 병" 같은 너의 이상한 사랑에 고마움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런 사진.


http://www.shufonk.com

 

어느 날, 기적 같이 그 애를 마주칠 것 같다. / '안녕'이란 말이 튀어나오면 어쩌지. / 이젠, 그만큼 친숙해져 버린 어떤 얼굴. / 그 애의 얼굴이 또렷해질수록 그의 얼굴은 희미해져가. / 슈펑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내가 좋아하는 혁명가의 이 한 마디

참세상에서 "영화와 혁명 특별전" 티켓 이벤트를 한다.

 

알고 있던 혹은 몰랐던 혁명가들의 전언,

사람들 덕에 잘 읽고 있는 중.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리 살던 옛집 지붕 / 이문재

마지막으로 내가 떠나오면서부터 그 집은 빈집이 되었지만
강이 그리울 때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강이나 바다의 높이로 그 옛집 푸른 지붕은 역시 반짝여 주곤 했다
가령 내가 어떤 힘으로 버림받고
버림받음으로 해서 아니다 아니다
이러는 게 아니었다 울고 있을 때
나는 빈집을 흘러나오는 음악 같은
기억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에는
우리가 울면서 이름붙여 준 울음 우는
별로 가득하고
땅에 묻어주고 싶었던 하늘
우리 살던 옛집 지붕 근처까지
올라온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무거워진 나뭇잎을 흔들며 기뻐하고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그해의 나이테를
아주 둥글게 그렸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위를 흘러
지나가는 별의 강줄기는
오늘밤이 지나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그 집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그 아름다운 천정을 바라보며 죽을 수 없었다
우리는 코피가 흐르도록 사랑하고
코피가 멈출 때까지 사랑하였다
바다가 아주 멀리 있었으므로
바다 쪽 그 집 벽을 허물어 바다를 쌓았고
강이 멀리 흘러나갔으므로
우리의 살을 베어내 나뭇잎처럼
강의 환한 입구로 띄우던 시절
별의 강줄기 별의
어두운 바다로 흘러가 사라지는 새벽
그 시절은 내가 죽어
어떤 전생으로 떠돌 것인가

알 수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 집을 떠나면서
문에다 박은 커다란 못이 자라나
집 주위의 나무들을 못박고
하늘의 별에다 못질을 하고
내 살던 옛집을 생각할 때마다
그 집과 나는 서로 허물어지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죽음 쪽으로 허물어지고
나는 사랑 쪽에서 무너져 나오고
알 수 없다
내가 바다나 강물을 내려다보며 죽어도
어느 밝은 별에서 밧줄 같은 손이
내려와 나를 번쩍
번쩍 들어올릴는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 살자고 하는 짓 / 하종오

밭고랑에서 삐긋해 금 간 다리뼈 겨우 붙으니
늙은 어머니는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마당가로 가
참나무 아래서 도토리 주워 껍질 까다가
막내아들이 쉬라고 하면 내뱉었다
놔둬라이, 뼈에 숭숭 드나드는 바람 달래는 거여
장가 못 든 쉰줄 막내아들이
홀로 된 여든줄 어머니 모시고 사는데
막내아들이 검정콩 베어다 마당 한복판에 쌓아놓으면
늙은 어머니는 참나무 가지로 타닥타닥 두드려 털고
막내아들이 멀리 튄 콩 주워오면 소리질렀다
놔둬라이, 한구석에 묻혀서 명년까지 있고 싶은 거여
막내아들이 갈아입힌 속옷에 새물내 나서
늙은 어머니는 코 킁킁거리며 새물새물 웃다가
막내아들이 겉옷에 붙은 풀씨 뜯어내면 중얼거렸다
놔둬라이, 혼자 못 가는 곳에 같이 가자는 거 아니겠냐
늙은 어머니가 해거름에 집 안으로 들 적에
이웃집 수캐가 어슬렁어슬렁 대문 먼저 넘어서
암캐에게 올라타려고 낑낑거리는 꼴이 민망해서
막내아들이 콩줄기 거머쥐고 후려치면 말렸다
놔둬라이, 지들 딴엔 찬 밤 길어지니 옆구리 시린 게여
다들 지 살자고 하는 짓이여 다들 지 살자고 하는 짓이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 the decisive moment은 시공간의 통합 즉 완전한 조화와 균형 속에서의 찰나이다."

 

 

그의 사진은 지나치게 엄격했다.

훌륭했지만 숨이 막혔다.

그래서 좋아할 수는 없었다.



인물사진에도 브레송만의 느낌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표정을 잡아냈을까 싶은 사진들.

그가 누구건, 그의 꼼꼼함을 꼬장꼬장함을 거침없음을, 만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하지만 명사들의 사진은 어딘지 모르게 비슷비슷한 것이 그닥 흥미진진하지는 않았다.


 

제일 좋았던 인물 사진.


 

자코메티다. 실제 사진을 보면 훨씬 느낌이 좋은데..

 

 

인도 최북단 카슈미르주, 스리나가르의 여인들.

르네상스 이전의 서양화가 주는 단순한 숭고미가, 약간은 비틀어진 형태로, 더욱 강하게 전해지는 작품이었다.

 

브레송의 사진들은 죄다 '순간'을 '고정'하고 있었다.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숨이 멎은 듯한 찰나.

 

고집스런 열망이 빚어낸 예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