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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26
    내 작은 비애 / 박라연
    ninita
  2. 2004/09/20
    사람이나 새나
    ninita
  3. 2004/09/19
    '내가 과격해서 그런 게 아니예요'
    ninita
  4. 2004/09/19
    일찍이 나는 / 최승자
    ninita
  5. 2004/09/15
    사람 취급(2)
    ninita
  6. 2004/09/10
    산다는 것은 위대한 걸까.(3)
    ninita
  7. 2004/09/05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1)
    ninita
  8. 2004/09/01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ninita
  9. 2004/08/30
    평택, 마을이장단의 혈서식과 삭발식(1)
    ninita
  10. 2004/08/30
    팽성읍 할머니, 할아버지들..
    ninita

내 작은 비애 / 박라연

소나무는 굵은 몸통으로
오래 살면 살수록 빛나는 목재가 되고
오이나 호박은 새콤 달콤
제 몸이 완성될 때까지만 살며
백합은 제 입김과 제 눈매가
누군가의 어둠을 밀어낼 때까지만 산다는 것
그것을 알고부터 나는
하필 사람으로 태어나
생각이 몸을 버릴 때까지만 살지 못하고
몸이 생각을 버릴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단명한 친구는
아침이슬이라도 되는데
나는 참! 스물 서른이 마냥 그리운
사람으로 살아 간다는 것 그것이 슬펐다
딱 한 철 푸른 잎으로 파릇파릇 살거나
빨강 보라 노랑 꽃잎으로 살거나
출렁 한 가지 열매로 열렸다가
지상의 치마 속으로 쏘옥 떨어져 안기는
한아름 기쁨일 수 없는지 그것이 가끔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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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새나

사람이나 새나

 

시. 이건직 / 노래. 백창우

 

사람이나 새나 죽으면 불쌍하다

우리가 새를 죽여도 불쌍하고

새가 우리를 죽여도 불쌍하다

사람이나 새나

새나 사람이나

 


초등학생 시에, 백창우씨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

평화유랑단과 기차길 옆 작은 학교 아이들이 함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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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격해서 그런 게 아니예요'

사진 출처. 박기범의 철군투쟁 단식일지 중에서



헛헛한 웃음이 난다.

 

우리에겐 왜 이런 말이 필요한 걸까.

 

마치 '순결함'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나의 '온건함'을 증명해야만 한다.

 

때로 싸우는 것이 평화더라, 라는 박기범씨의 말이 맞다.

 

싸우는 것, 이란 표현에는 - 비폭력 직접행동, 저항, 시민불복종.. 이런 개념들이 포함된 것이었을테다.

 

박기범의 이라크 통신 '바끼통'

울진평화모임

전범 민중재판운동 임시소통게시판

 

12월 민중재판까지,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감동의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재판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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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나는 /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너를모른다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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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취급

다 사람인 것 같은데 사람 아닌 사람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친다.



요즘 하고 있는 작업 - 노숙인에 대한 철도공안의 폭력 행위 문제 있다 - 때문에 구성안을 쓰다가,

문득 제목을 뭘로 할까, 고민하는데..

 

산다는 것...

사람...

 

뭐 그런 것들이 생각 났다..

인터뷰 중에 "강아지 패듯 그렇게 패더라고" "개만도 못 하게 취급해", 이런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억을 되살려 보니,

 

장애인들이 용산 육교 밑 도로를 점거했을 때 촬영한 속보 영상 제목이 "우리는 사람입니다"였고,

이주노동자들의 피켓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말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였고,

뭄바이에서 어느 여성 단체 부스에서 샀던 티셔츠 뒷면에 적힌 말이 "페미니즘이란, 여성이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이다 - Feminism is the radical notion that women are people"였다.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래한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꼭 찾아오리라"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에서 '사람'은 누구인가?

 

이 많은 사람들이 '사람 취급'을 받고 싶어 한다면,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참 어이없는 세상이다.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이 '사람' 행세하고,

'사람'들은 '사람 취급' 해 달라고 목에 핏대를 세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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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위대한 걸까.

저녁엔 서울역에 갔었다.

 

지난 7월, 철도공안의 폭력에 의해 (거의 확실시) 숨진 일시적 노숙자(혹은 부랑자) 문 모씨 사건을 계기로 대책모임을 꾸린 노숙인 지원단체들(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 등)과 노숙인 당사자들이 준비한 추모문화제가 열렸기 때문이다.



철도공안에 의한 폭력 피해 당사자 인터뷰를 어떻게 할 지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한 노숙인이 특유의 술냄새를 풍기며 다가왔다.

 

"나 맞았어요. 할 말 있어요."

 

노숙인들이 부당하게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해 분노하며 이 자리에 왔다손 치더라도,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노숙인들이 문득 말을 걸어왔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익숙치 않은 내게 당연한 일인 듯 싶다.

어설프게나마 한 분 한 분 알아가면서 그런 문제는 옅어져간다 해도.

 

그 분은 얼굴 모자이크 처리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원하시는대로 꼭 해드리겠다, 몇 번이고 다짐을 해도 기어코 명함을 달란다.

마음 속으로 살짝 갈등이 인다 - .. 간단치 않은 마음이다.

 

TV 보다가 술에 취해 잠들었는데, 행패를 부린 것도 아니고 그저 잠을 잤을 뿐인데, 공안실로 끌려가 구타를 당했다고 했다.

살아나가려고 빌고 또 빌었다고 말하는 그의 마음에는, 이미 너무 큰 분노와 상처가 남아 있었다.

 

인간... 취급도 받지 못 하는 그들이지만,

분명 그들은 철도청에서 좋아하는 '시민'이고,

대통령이 좋아하는 '국민'이고,

무엇보다.. '인간'이다..

 

IMF 이후 하던 사업이 망하고, 아내는 자살하고, 아이는 누나에게 맡겨진 채 홀로 노숙생활을 한다는 권 모 아저씨. 그는 건대 84학번이다.

가슴을 치다가 눈물을 흘리다가 목이 메어 '미안해요''미안해요' 하다가..

마지막엔 '노숙인 무시하지 말아요'라고 말한다.

내게 어느 학교를 나왔냐고 물으면서, 자신이 대학 교육까지 마쳤음을 재차 강조하고도 싶어했다.

 

그와 인터뷰를 마쳤을 때, 천지인의 '청계천 8가'도 끝나가고 있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그럴까.

인간 취급 못 받으며 살아도, 산다는 것은 위대한 것일까.

끈질기고 비루한 인간들의 삶, 단지 산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것일까.

 

오늘도 살기 위해 발버둥 쳐보지만,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속상함을 달래주는 건 술 밖에 없고,

공안 단속에 잠은 깊이 들지 못 하고, 자꾸만 여기저기 아파는 오고, 이렇게 시간은 가고, 나이는 들고..

 

노숙인들은 '청계천 8가'를 무척 좋아했다. 박수소리는 힘찼고, 그들은 앵콜을 외쳤다.

 

그들은 분명, 믿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라고.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다가 손바닥에 코끝을 대보았다.

오늘만 해도 여러 노숙인과 악수한 이 손.

 

문득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듯도 싶다.

술냄새.. 오랫동안 제대로 씻지 못한 몸냄새.. 고단한 숨냄새..

그건 고통스런 삶의 냄새였고,

나로써는 거역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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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도도, 저는 지독한 슬픔과 그리움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답니다!



나는 엉엉 울었다.

"걱정 마세요. 죽여 버릴 거니까요."

"무슨 소릴 그렇게 해. 네 아빠를 죽이겠다고?"

"예. 죽일 거예요. 이미 시작했어요. 벅 존스의 권총으로 빵 쏘아 죽이는 그런 건 아니에요. 제 마음 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

"난 널 무척 사랑한단다, 꼬마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러니까 자, 이젠 웃어봐야지."

...

망가라치바에 치여서 죽겠다던 녀석은 제제였는데, 슬프게도 사랑하는 뽀르뚜가가 죽어버렸다. 제제는 뭘 먹어도 다 토하고 야위어만 갔다. 다섯 살, 노랗고 억센 머리털의 악동 녀석이 견디기엔 너무 큰 슬픔. 제제는, 모든 걸 아는 듯 영리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어린애였다.

- 뽀르뚜가를 살아 돌아오게 해 주세요.

제제는 그렇게 기도하지도 않았다. 다만 슬픔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나에게도, 마음 속으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고, 내가 죽어 없어질 때까지 죽지 않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제제가 겪은 아픔 같은 거, 나는 견뎌낼 자신이 없다. 내가 죽는 건 차라리 쉬울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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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목이 메이는 게 아니라, "멕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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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마을이장단의 혈서식과 삭발식

8명의 마을 이장들은 몇 번이고 칼로 손가락을 그어댔다.

 

뷰파인더로 클로즈업 된 손만 보고 있으니, 그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데도 내 머릿 속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을에서는 꽤나 젊은 축에 속할 이 분들, 어려서부터 동무였겠지.. 들로 산으로 놀러다니며 구슬도 치고 딱지도 치고, 몰려다니며 함께 놀던 사람들 아닐까.. 시골을 잘 모르는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 유치한 장난치며 놀던 동네 개구쟁이들이, 이제 다 커서, 우리 마을 지키겠다고 제 손으로 피를 짜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들은 아이고, 아이고, 아파하며 눈물을 찍어냈다. 미.군.기.지.이.전.반.대, 였던가. 새하얗던 피씨천은 한 글자, 한 글자 붉게 물들어 갔다. 내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는 "잘 찍어, 이게 현실이야, 잘 찍어야 돼", 그러셨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제대로 못 찍었다.. 젠장.. ㅡ.ㅡ

암튼...

 

글자 하나씩 앞에 두르고 삭발식이 진행됐다..

농민가가 흘러나오고... 잘려나가는 검은 머리칼.

 

하얀 보자기에 머리카락을 모아 담았다. 항의서한을 낭독한 후,

이장단은 K-6 정문을 향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무도 이장단을 맞이하지 않았다.

 

아무도 안 나올 거냐, 팽성대책위 김지태 위원장의 다소 경직된 목소리가 정문을 타고 넘어갔다.

되돌아온 건, "미8군으로 보내세요" 하는 들으나마나 한 소리.

 

결국 머리카락은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우편으로 보내기로 하고,

들고 간 서한은 구겨서 정문 안으로 던져넣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아주 당황스럽게도, 안에 있던 한국군인이 그 서한을 정문께로 도로 던지는 것이 아닌가.

 

내 목까지 육두문자가 치밀어 오르는데, 마을이장들은 오죽했을까.

 

집회 순서가 다 끝나고, 마을 어른들은 어느 새 그림자도 챙겨 돌아가셨다.

서울로 갈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전경버스도 사라진 깨끗한 거리로 K-6 정문이 열리고 있었다.

정문을 열던 두 명의 군인 중 한 명은 문 열리는 속도가 빨라질 때쯤 아이처럼 문에 매달려 공기를 저었다.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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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읍 할머니, 할아버지들..




참 치사스러웠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힘없는 노인네들, 그동안 고생한 것도 서러운데 이제 땅 내놓고 나가란다. 한 할머니 말마따나 억만금이 문제랴.

 

28일엔 캠프 험프리 (K-6) 정문 앞에서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주민 총궐기대회가 열리는 평택에 다녀왔다. 집회의 첫인상은 '전국노래자랑'... '우리나라'와 '희망새'가 공연할 땐 정말정말 그랬다! 제일 어려뵈는 얼굴이 40대였고, 300여 주민들은 모두 주름살 가득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함정리, 도두리, 신대리, 대추리..

 

이름부터 참 촌스럽고 귀여운.. 자그만 시골마을일 터였다.. 땅 일궈먹기를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그 분들께, 미군 기지 이전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예닐곱 분의 대답이 다 다른 듯 똑같은 걸 보며, 모두 한마음이구나, 싶었다..

 

- 벼농사 짓다 이 땅에 묻히는 게 소원이여.
- 나는 흙을 사랑하다 죽으면 흙으로 갈껴.

- 사람이 입으로 먹는 건 다 땅에서 나온겨. 땅을 지켜야 뎌.
- 현금 억대로 준대도 못 가고, 내 손으로 만든 땅, 내가 지킬껴.

 

시끄러운 집회장 뒷쪽으로 빠져나와 인터뷰 시도를 했을 때, 마이크를 한사코 거절하던 한 할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젊은 사람은 하나 없어. 무슨 상관이여. 우리가 다 죽으면 되는 거여. 그쟈? 우리만 죽으면 다 뎌."

 

순간 가슴이 애렸다.

 

미국의 신군사전략이 어떻고, GPR이 어떻고, 하는 게 다 필요없었다.

이건 명백한, "생존"의 문제인 걸.

지금 당장 이 곳을 떠나면 어디로 갈텐가.

땅을 일궈먹지 않으면 달리 무슨 일을 할텐가.

아파트가 무어냐, 보상금이 무어냐.

 

이런 타는 속내는 아랑곳않고, 반대편에서는 "미군 기지 이전 적극 지지" 등 상인연합회 명의의 배너가 걸린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미군을 환영하며, 너희는 빨갱이니 북으로 올라가라. 소주와 먹거리들이 한상 차려져 있었고, 필리핀 여성들이 있었다. "미군이 떠나면, 이 아가씨들도 가야 돼. 우리한테 잘 해 주고 있는데", 이런 말도 언뜻언뜻 들려왔다.

 

벌써 흉흉한 소문은 동네를 분열시키고 있었다. 가겟집 계단에 앉아있던 한 아주머니는 땅을 치고 있었다. 보상금을 얼마를 받아처먹었다더라, 그러고도 더 받아먹을라고 저 지랄들이라더라, 아이고 속터져, 아이고 분해.

 

<아름다운 시절>이 떠올랐다. 이런 거구나,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구나.. 반대편의 사람들은 대책위 방송차가 지나가는 것도 독을 품고 막아섰다. 지칠대로 지친 난 음료수를 마시며 그 광경을 힘없이 지켜보고 앉아 있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340여만 평의 땅. 미군을 위한 그 너른 땅에는 공원이 두 개, 뭐가 몇 개, 또 뭐가 몇 개 들어설 거랜다.

그 땅은 그저 '평택 미군 기지'라고 불릴 땅이 아니다,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가진 땅이다.

 

그 곳의 이름을 불러본다. 함정리, 도두리, 대추리, 신대리, 내리, 동창리...

들판 이름도 불러볼랜다.. 흑무개들, 도두리들, 신대리들, 내리들...

 

그 정겨운 이름들이 사라져간다. 평생을 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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