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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8/27
    학교는 다다
    ninita
  2. 2004/08/12
    21세기의 상식을 위하여
    ninita
  3. 2004/08/11
    <인터내셔널가, 역사와 전망> 인트로(2)
    ninita
  4. 2004/08/11
    우리 동네에서 생긴 일 (2)
    ninita
  5. 2004/08/11
    우리 동네에서 생긴 일 (1)
    ninita
  6. 2004/08/10
    세상 모든 곳이 천성산(2)
    ninita
  7. 2004/08/04
    지금 네이버나 다음에 접속하면,(7)
    ninita
  8. 2004/07/31
    quotes
    ninita
  9. 2004/07/31
    5월 혁명에 제작된 학생신문의 일부
    ninita
  10. 2004/07/30
    연쇄살인과 여성에 대한 '여성'들의 이야기..(1)
    ninita

학교는 다다

 

훗..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 노래

(mms://mms.plsong.com/plsong/jkj/bulrayng/01.wma)

 



미소.

썸머힐.

핑크 플로이드 - 더 월.

서태지.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 노래.

모던 타임즈.

시험문제들 - 늘 귀여운 만화가 그려져 있던. 최민식 인물 사진.

에포케.

기독교 좌파.

레이몽 아롱.

고개 숙인 멕시코 농부 인형 - 멕시코 혁명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교직원 회의 땐, 울보였다고, 말하던 기억.

뚜껑을 열면 작은 인형이 또 나오고 또 나오는 러시아 인형 마뜨로쉬까를 보여주며,

내 안에는 너희들이 모르는 또다른 내가 있어, 라고 말하던 '선생님'

 

그리고, 작은 영화광이었던 내게 선물해 준 '헐리우드 키드' - 어렸을 땐 정말 '헐리우드 키드'였다. ㅡ.ㅡ 볼 수 있는 게 주말의 명화 뿐이었으니.

 

책들이 지구를 감싸고 있는 책세상 카드.

 

넌 신경 안 써줘도 잘 하는 아이니까, 그 말을 넉넉하게 받아들이기엔 '아이'였던 내게 아직도 섭섭한 그 말.

 

...........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누군가 <학교는 다다>를 북 폴더에 올려둔 걸 보았다..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한 번도 빼놓은 적 없는, 몇 안 되는 선생님 중의 한 분, 의 책.

 

중고등학교 6년을 가르친 우리들이 졸업할 때,

사표를 냈고,

이듬해 나온 책이 <학교는 다다>, 우리 동네에선 베스트셀러다..

 

문득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해서 독일 수도 있지만.

 

20061231.

일다 인터뷰에 실린 선생님 기사
http://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idx=2006122700006&art_menu=1&art_su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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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상식을 위하여

토리님의 '평균인'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지금 상식이라고 믿는 것들, '현실적'으로 이것을 선택해야만 한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뭐, 당연한 이야기라고 여겨질 지 모르나,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들에 적용할라치면, 그다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얘기다.

 

이를 테면, 경제성장, 경제발전론은 우리 시대의 거부할 수 없는 '선'인 듯하다.

 

그렇지 않다고, 이제 제로성장을 이야기할 때라고 말한다면,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해? 라는 말을 금세 듣게 될 것이다.

 

천성산 개발을 막자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현실적'인 이야기가,

지극히 '비상식적'이며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위해, 지율 스님은 땡볕 아래 스스로의 생명을 내어놓고 계신다.

 

문득 얼마 전에 읽었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머릿말 첫 페이지가 떠올랐다.

 

21세기의 상식을 위해서

 

1775년에 토마스 페인이 그후 그가 쓴 것 가운데서 가장 유명해진 책을 집필하였을 때, 국왕제를 부정하고 미국 독립을 옹호하는 그 책의 중심적 주장은 소수파의 견해였다. 책의 내용은 당시의 상식에 거꾸로 된 것이었지만, 그는 감히 그 제목을 <커먼센스 common sense>라고 불렀다.

 

실제, 페인은 그 시대를 정확하게 읽었다. 책 출판 당시, 미국의 상식은 대전환의 한가운데 있었다. <커먼센스>는 수십만부나 팔리고, 미국 독립혁명의 사상선언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상식이라는 것은 불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크게 변화하는 것도 있다.

 

지금 우리는 결코 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상식의 대전환, 즉 대다수 사람들이 '비상식'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사고방식이 주류의 상식이 되는, 새로운 상식을 위한 대변혁 직전의 단계에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변혁에 조금이라도 공헌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는 처음에 이 책에 <21세기의 커먼센스를 위해서>라는 제목을 붙여볼까 생각하였다.

 

-------------------------------

 

평균인이란 결국, (아룬다티 로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상상력이 결핍된, 기성 체제가 제시해 준 것 이외의 관점에서 세계를 볼 수 없는 사람'을 말하는 거다.

 

우리는 힘이 있다 http://blog.jinbo.net/toiless/?pid=4

살아남기로서의 활동 http://blog.jinbo.net/toiless/?pi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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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가, 역사와 전망> 인트로


 

세계 각국의 인터내셔널가 모음 : http://plsong.com/bbs/view.php?id=minjung_album&no=103



 

제목 :인터내셔널가, 역사와 전망 The International
상영시간 :30분
제작년도 :00년  
- 제작 : 피터 밀러
- 감독 : 피터 밀러
- 편집 : 에이미 캐리 린튼
- 배급 : 피터 밀러 필름 주식회사 (Deboutles@aol.com)

- 작품 소개 :
노동자의 노래 <인터내셔널>의 기원과 노래가 각 역사적 시기의 투쟁과 맺은 관계, 그리고 그 현재적 의의를 다룬 작품이다. 미국, 중국(1989년 천안문 광장), 소련, 이스라엘, 필리핀, 스페인등 세계각지에서 각 시기에 인터내셔널이 불리워진 실제 자료와 피트 시거, 빌리 브랙을 비롯한 노동 가수들의 해설이 결합된다. 특히, 천안문과 스페인의 반파시즘 투쟁, 현재의 반지구화 투쟁에 걸쳐 세계 각지에서 20세기 전체에 걸쳐 대중들의 함성에 실려 불리워진 동서 고금의 인터내셔널가를 노래의 각소절을 이어서 연속적으로 편집한 프롤로그가 인상적이다.

 

(4월 정기상영 때도 상영했는데, 또 놓쳤다. ㅡ.ㅡ 비디오를 사야만 할까. 어쨌든 이제 8월이니 노동영화제도 슬슬 준비에 들어갈 시기일텐데... 올 노동영화제도 목빠지게 기다리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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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 생긴 일 (2)

(우리 동네다. 나는 고층아파트에 살지만,

고층아파트는 12동 뿐, 나머지는 5층 이하의 나즈막한 아파트들이다.)

(여기도 우리 동네다. 옛날에는 고위직 가족들이나 

외국인 기술자 가족들이 살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문득 87년이 떠오른다. 포항에서 광양으로 이사온 지 2년 째, 난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없는 형편에 그래도 남들 다 하는 거라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해엔 인신매매단에 관한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테레비에선 서울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연일 데모하는 소식이 나왔고, 같이 테레비를 보던 엄만 "너 대학교 가서 데모질 하면 다리몽댕이 분질러버린다"라고 위협하곤 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외부 사람들(포스코 사원들은 주택단지 내에 살고 있었고, 그래서 단지 외의 사람들을 '우리'는 '외부 사람들'이라 불렀다.)이 데모를 하는 바람에 광양 장에 나갈 수 없었던 일이다.

원래 광양은 김양식으로 유명한 곳이었다.(김양식이 대한민국 최초로 시작된 곳으로 알고 있다.) 그 바다는 제철소가 들어설 곳으로 낙점됐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바다는 땅이 되었다.

그로 인해 강제이주를 당해 삶터를 잃어야만 했던 원주민들이 동네로 들어가는 길목 - 전남동부건설노조가 얼마 전에 막았던 - 을 막은 것이었다. 장날이라고 버스 타고 광양에 나갔다가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들고 씩씩대며 걸어들어온 엄마의 말에 따르면, 외부 사람들이 퇴비더미로 길을 막았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 퇴비를 던져대는 통에, 그거 피해서 걸어들어오느라 고생바가지를 썼다는 거다. 어디 나갈 때 포스코 마크가 찍힌 옷을 입고 나가서는 안 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 회사에서 보상금은 아쉽지 않게 줬을텐데 왜 저 난리들인지 몰라.

그게 어디 단지 보상금만의 문제였으랴. (아쉽게 줬는지 아쉽지 않게 줬는지는 알 수 없다.) 어부였거나 농부였던 그들이 생소한 지역 혹은 생소한 직업군으로 내몰리며 겪었을 어려움과 고통을, 억만금이라도 '보상'할 수 있었을까.

우리 동네는 참 예쁘고 깨끗하고 조용하다. 어른들은 그래서 살기 좋다고들 한다. 학교 앞엔 오락실도, 떡볶이 장사도, 뽑기도, 만화가게도 없다. 그래서 애들 교육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하지만 코딱지만한 동네,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훤해서 별별 소문이 다 도는 동네, 아빠들은 똑같은 작업복, 애들은 똑같은 교복을 입지만 집전화번호부터 아빠들의 직위가 들어있고, 누구네 아빠는 차장, 누구네 아빠는 부장, 아빠 직책 따라 애들 씀씀이도 달라서 계급의 차이가 더 잔인하게 드러나던 동네. 아빠의 대학 나온 직속상관 딸과 한 반에 있어서, 죽어도 그 애는 이겨야만 했던 고졸 주임 어린 딸래미의 오기.

난 우리 동네를 죽도록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한다.

1년이면 두세 번도 찾아가지 않는 우리 동네,
잊고 살고 싶은데, 이렇게 또 내게 가슴 아프게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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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 생긴 일 (1)

 

저 멀리 보이는 포스코 표지.

우리 동네로 들어가는 다리 입구에 서 있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이고 예쁘게 가꾸어진 우리 동네에서 어디든 오갈 때마다 보게 되는,

익숙하디 익숙한..



그 표지 앞 널따란 도로에, 전경과 노동자들이 한가득. 생소한..

 

익숙한 그 곳의 생소한 풍경. 묘한 기분. 씁쓸한 기분.

 

우리 동네는 원래 어디에도 없던 곳이었다. 바다를 메꿔 만든 땅.
70년대 개발의 신화가 아직도 전설처럼 떠도는 곳.

(누가 새벽을 불태우는가, 따위의 책들이 집집마다 있다. 그걸 보는 사람이 있는지는 미지수.)
박태준은 신이요, 개발은 선인 곳.

 

그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건설노동자들의 파업은,
나의 부모님을 비롯한 우리 동네 어른들에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관련기사]
"그냥은 안내려간다, 2선 준비 중이다"
총파업 27일차 플랜트노동자 포스코 2차 상경투쟁
시청점거, 광양제철소 완전 봉쇄에 이어 분노한 조합원 다시 서울로

 

비정규직이 뭔지, 하청업체가 뭔지, 건설현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들의 일이 1년 365일 안정적인지 어떤지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그저 그들이 현재 일당 6-8만원이 모자라 50% 인상해 달라고 데모한다고, 그렇게들 생각할 뿐이다.

 

특히 동네 엄마들에게 포스코는, 좋은 회사고, 포스코에서 하는 일은 모두 옳고, 포스코는 누구에게나 정당한 대우를 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건 불경스런 일이다.

 

예전부터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싫다.
우리 동네가..

 

예전부터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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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곳이 천성산

 

"지율스님의 소망은 천성산 내원사의 바느질꾼이 되는 것이다. 그의 바느질 솜씨는 빼어나다. 스님들 옷을 뒤에서 짓는 일, 그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길 빈다. 지금 지율스님의 단식기도는 온갖 생명붙이들을 품고 있는, 천성산의 옷을 짓고 있는 것이다. 지율스님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기도해 본다."

 

개발의 미친 시계가 이제 그만 멈출 수는 없을까.

자연이 인간에 의해 착취당하는 일, 이제 그만할 수 없을까.



지율을 정녕 죽일셈인가...
〈김택근 편집국 부국장 wtkim@kyunghyang.com〉

청와대 앞 단식 40일째. 지율스님은 삶과 죽음을 넘나들고 있다.
스님은 1인 시위라기보다는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눈은 맑고 표정은 밝았다.
그 맑고 밝음이 더 아팠다. 스님의 메마른 손을 차마 잡을 수 없었다.

천성산, 예쁘고 깊은 산. 원효가 그 품에서 용맹정진했고 남쪽의 소금강이라 불린 산.
그 산의 생명붙이들에게 너희들만은 꼭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도롱뇽을 내세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양서류의 인간에 대한 권리요구’라는 호기심으로 쳐다봤다.

스님은 ‘천성산에 도롱뇽이 없다’는 학자의 증언은 역사가 꼭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소송은 6개월 만에 기각되었다. 지금은 다시 항고심이 진행 중이다.


생각하면 울음이 나온다. 매일 산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스님은 내원사의 비구니로 산의 가르침을 받던 천성산의 딸이었다. 그러나 길이 뚫리면 길가 700m 안쪽의 생명붙이들이 겨울잠을 자지 못한다고 해서 절을 뛰쳐나왔다. 이제는 천성산 온갖 생명붙이들의 어미가 되었다.
하지만 저 천성산을 저승으로 가져가야 할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어-


함께 흐느끼던 비구니들도 하나 둘 떠나갔다. 시민단체들도 은근히 그만하면 됐다고 한다. 다들 떠나갔다. 청와대 사람들도 조계종단과 시민단체와 얘기가 잘되었는데 왜 그러느냐고 했다.
그러나, 그러나 아무것도 된 것이 없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적당히 하라는 것인가.
스님은 고속철 터널구간공사를 중단하고 천성산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라며 세번째 단식에 들었다. 산에 구멍을 뚫으면 산에서 물이 빠져나가고, 그러면 계곡이 마르고, 그러면 강물이 마르고, 그러면 심성(心性)이 마른다는 것을 다 안다. 그러면서도 산을 파괴하는 것은 천성산을 뚫는 6조원의 돈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천성산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고향의 정기를 끊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되지 않겠다던 대통령 후보 노무현, 도지사 김혁규, 장관, 시장 그리고 지난해 단식기도 때 대통령의 뜻을 믿어달라며 손을 잡아주던 수석비서관 문재인. 그들은 왜 말이 없는가.


스님은 정부가 ‘지율 하나 정도는 죽어도 좋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했다. 일순 햇살이 뒤집히는 듯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이제 청와대에서 답을 얻기는 틀린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스님은 육신을 버리러 왔단 말인가. 절망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작금의 청와대의 침묵은 정녕 무엇인가.

지율스님이 딱 한가지 믿는 게 있다. 도롱뇽의 친구들이 늘어나 1백만 소송인단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권력도, 금력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천성산을 뚫으면 22분 빨리 간다고 한다. 그러나 22분이 늦더라도 예쁘게 보존된 천성산을 가리키며 전설 하나를 이야기해주는 훗날이 훨씬 아름다울 것이다.

“저 산을 지키기 위해 이름없는 비구니가 어느날 온 몸을 던졌단다. 그때는 개발논리가 마지막 기승을 부릴 때였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내놓은 거야. 그 용기와 정성이 온 나라에 녹색 공명을 일으켰지. 푸른 울림이 퍼져나갔다는 얘기다. 그리고 저 예쁜 산을 지켰단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현명한 일인지 모른단다. 산은 한번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거든.”

우리 모두의 무관심으로 정녕 지율을 죽일 작정인가? 지율을 향한 저 거대한 폭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세상은 모든 곳이 천성산인데 지율은 혼자이다.

-세상 모든곳이 천성산-

지율스님의 소망은 천성산 내원사의 바느질꾼이 되는 것이다. 그의 바느질 솜씨는 빼어나다. 스님들 옷을 뒤에서 짓는 일, 그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길 빈다. 지금 지율스님의 단식기도는 온갖 생명붙이들을 품고 있는, 천성산의 옷을 짓고 있는 것이다. 지율스님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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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이버나 다음에 접속하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LG정유 노조원 최종 복귀 시한 8월 6일 오후 5시까지" 라는 플래시가 떠있다.

 

 

 




파업 중인 노조원들이

마치 탈영병이나 대단한 범법자라도 되는 듯한 뉘앙스가 강하게 풍겨나온다.

 

상업포털이라 돈이면 다 좋은 모양이다.

돈 많은 기업이라 이런 식으로 자기 회사 노동자들 범죄자 취급하기도 쉬운 모양이다.

 

허위 의식을 유포하는 일은, 돈이면, 이렇게 쉬운 거구나 싶다.

교섭이나 제대로 하지, 돈이나 써서 혹세무민하고 명령인가.

정말로 무서운 세상이다.

LG에서 한 번 써먹었으니, 돈 있는 회사들은 다 따라하겠다.

 

자본에 의해 이용당하는 미디어의 범주가 이렇게 넓어져만 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일간지에 전면 광고가 나갔다는데,

어젠 시내 한복판 전광판에서 봤는데,

이제는 인터넷까지.

 

광고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있다면,
광고를 의뢰한 자 뿐만 아니라 광고를 실은 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법 같은 거 없나?

 

무슨무슨 위원회 많기도 하잖아,

이런 거 그냥 놔둬도 되는 건가?????

 

LG정유노조의 파업과 외국 자본의 성격 / 하종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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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s


(도리스 되리, "나 이뻐?" 중 <금붕어>, 405)

 

그치만 난 땀나는 건 질색이다.

난 걸을랜다, 그녀처럼.

 

"그녀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날마다 그녀는 조금씩 더 걸었다.
처음에는 1마일을 갔다 집에 돌아오고,
그 다음에는 2마일을 갔다 집에 돌아오는 식으로.
그러다 어느 날 그녀는 그냥 계속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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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혁명에 제작된 학생신문의 일부

만일 우리의 상황이 우리를 폭력으로 끌고 간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가 우리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불안정이야말로 절망을 만들어낸다.

 

또다시 이 절망에 괴로워하지 않으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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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과 여성에 대한 '여성'들의 이야기..

강원도에 가 있던 28일,

아마 서울에 있었다면 카메라를 들고 한달음에 달려갔을 행사가 하나 있었다..

 

명동성당에서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인권 보호 대책을 마련하고 연쇄살인사건으로 희생된 피해여성에 관한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추모행사가 열렸던 것이다.

 

여성인권운동사를 공부할 때, 나는 '죽어야 사는 여성들의 인권'이라는 챕터를 맡았었다..

죽어야 겨우 존재를 인정받는 - 세상에 그들이 인간임을 인식시키는 -  기지촌 여성들에게 살아있는 동안 인권이란 말은 사치에 불과했다.

분노 때문에 눈물이 쿨럭쿨럭 나서 발제하는 동안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제 보니, 성매매 된 여성들에게, 인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치인 것 같다.

 

죽어도 살지 못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언니들의 명복을 빌며.

 

"죽어도 있어도 없는 듯 외면 당하는구나

절대로 죽지 말라

성매매가 없어지는 세상이 올 때까지 절대로 죽지 말라"

 

[참세상 칼럼] 살인의 추억, 사회의 풍경

 

[언니네] 연쇄살인 - 여성은 인간이 아닌가

 

[일다] 여성을 혐오하는 사회 - 연쇄살인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

 

[인권하루소식] 죽어서도 소외되는 어떤 이들의 삶 -

여성단체, 성매매 피해여성 인권보호 대책 마련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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