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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이구 허리야, 다리야!! (7) 2005/04/29
  3. 내가 가족과 따로 다니는 사연... (7) 2005/04/26
  4. 월급이 깍였다.. (7) 2005/04/25
  5. 옷 좀 다리게 하지? (16) 2005/04/24
  6. 산기평 지부가 이겼다.-4월 21일... (2) 2005/04/24
  7. 오랜만에 삼악산행... (7) 2005/04/24
  8. 회사 야유회.. 200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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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금욜밤 9시 삼성프라자 앞으로 오세요! (14) 2005/04/20

김회구 18주기...

from 단순한 삶!!! 2005/05/01 20:30

아픈 허리 다 풀리지 않아 어디 앉아 있기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영의 민박집으로 갔다.

뭔가 준비를 해 온다는 정철이 늦게 오는 바람에 먼저 온 네사람이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먹는 도중에 정철이 도착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는 제사음식을 만들고 챙겨서

간단하게 제사를 지냈다.

 

벌써 18년...

이제는 며칠날 회구가 다쳤는지,

죽은 건 그날이었는지 다음날이었는지,

대한병원에서 서초동 어느병원으로 옮겨간건 언제쯤인지...

서로가 기억이 다르다.

 

지난 연말 민주화운동 보상 신청을 해 놓았다는데,

그거라도 잘 처리되었으면 좋겠다.

 

제사 지내고 괜히 울적해 져서는

음복으로 소주 두잔을 마셨다.

(한달 보름만에 첨으로 입에 댄 술인데, 왜 그리 맛이 없던지...)

 

친구라 생각하며 심어둔 나무를 찾아갔다 오는 걸로 이행사는 끝나는데,

집에 들러서 노동절 집회 가느라고 산에 가는 건 포기했다.

 

지난해 까페라도 하나 만들어서 살아가는 얘기나 공유하자 했던 건

올해 다시 같은 얘기로 반복되었고,

나라 걱정도 지난해와 마찬가지였다.

 

나이탓에 엄살까지 더해서 풀어댄 병하의 너스레에

친구들이 함께 웃었다.

 

지난해에는 http://go.jinbo.net/webbs/view.php?board=산오리-1&id=801&pag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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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1 20:30 2005/05/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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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우리 지부 창립기념일이라 휴무...

평일날 집에서 혼자 빈둥거릴까 생각하니, 좀 아쉬운거 같아서, 홍성에 전화..

별로 할 일 없지만, 일할 거리 만들어줄테니까 오란다.

마침 다리 아프다고 집에서 쉬고 있는 꿀단지 한친구 태워서 27일밤에 출발....,

28일 새벽 5시 반쯤에 일하러 나가는 지역주민을 보고선

나야 그렇게 까지 무리할 거 없다 싶어서 그냥 좀 더 개기다가.

7시쯤에 돌아온 그와 함께 일할 집에 가서 아침밥 얻어 먹고

본격적인 오전 일을 시작한 건 8시쯤...

 

비닐하우스 안에 쌓아둔 모판에서 싹이 튼 걸 덜어내서 그 옆의 마른논에 옮기는 작업.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 때문에 푹푹찌는 찜질방도 저리가라 할만큼 더워서 금새 옺은 후즐그레하게 젖었고, 모판은 들어내도 들어내도 줄어들지 않고...

 

10반쯤에 참으로 빵과 과일을 먹고, 다시 시작...

모판 2-3개 들어서 작은 손수레에 실어서 옮기고, 다시 내려놓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게 일의 전부이니, 허리가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동네 노인네들이 4-5명 합세해서 사람수가 늘어나니 일은 팍팍줄기 시작했다.

2천개는 넘을듯한 모판을 모조리 옮기고 그걸 부직포 덮어서 논에 물대는 것까지 하고 나니 1시.

점심 먹는데, 밥맛이 없다. 더위도 먹고 허리가 내 허리 같지 않아서 아무생각이 없다.

 

오후는 좀 쉰다고 다른 친구네 가서 좀 자다가  쉬다가 밤 늦게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허리둘레 전체에 알이 배긴거 처럼 뻣뻣하다. 앞으로 숙이거나 의자에 앉을때도 허리가 아파서 신음소리가 나온다.

운전을 해서 그런지 오른쪽 허벅지도 알이 배겼다.

농사일인지, 노가다인지 겨우 한나절하고서는 이모양인 꼴을 보니 내 스스로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60대, 7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능숙하게도 힘들지도 않게 일도 잘 해내시던데...(그렇게 평생을 일하셧으니 병원 안다니는 분들 한분도 없단다..)

 

벼농사 대부분 기계로 짓는다고 해도 , 사람손 안들어가는 곳 없고,

모판 잠간 옮긴 것도 이렇게 힘이 드니,

농사지으며 먹고 살라고 하면 살아남지 못할 듯하다...

 

아이구, 허리야...끙...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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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9 12:59 2005/04/2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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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내와 새끼들과 함께 손잡고 어디로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고 싶다.

그런데, 왜 그게 안되는 것일까? 왜 그걸 안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1. 어릴때를 돌아보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어딜 같이 다녀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니다. 몇차례 있었다. 처음에 아버지만 서울에 와 계시고 그다음에 내가 왔는데, 아버지는 그 여름에 나를 데리고 창경원 구경을 시켜주셨다. 그때 그 옆에는 모르는 젊은 여자가 같이 있었는데, 아버지 회사 동료였는지, 아니면 애인쯤 되는 여자였는지 모르겠다.

하튼, 그리고 중학교 다닐때 언젠가도 인천의 작약도에 같이 놀러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 따라서 동생들과 같이 가서는 수영복도 없이 그냥 하얀 팬티만 입고 더러운 바닷물(70년대 초반에도 인천앞바다 물은 더러웠다.)에서 수영하며 놀았던 생각이 난다.

몇번 아버지를 따라서 놀러간 적은 있었지만, 중학교 이후에는 놀러 같이 간 적이 없었다. 당연히 아버지 따라서 다니는 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근엄함에 눌려서 착한 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했고,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아들을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소개했지만, 그 당사자인 나는 정말 싫은 노릇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심지어 결혼해서도 아버지는 내게 '큰애야 같이 가자'하면 나는 아무소리 없이 따라 나섰는데, 이건 연로하신 친척들에게 인사가는 거라든지, 돌아가신 분들을 조문한다든지, 병원에 계신 어른들에게 문병간다든지, 아니면 친척들 제사에 간다든지.. 하튼 내가 하고 싶은 일하고는 아무 상관없고, 재미 없는 일이었다.

스무살 넘어서부터는 아버지가 허리 아프시다고 묘사에 안가시고 큰아들인 나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나는 내 부모가 아닌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소에 아들 대신에  손자로서 항상 묘사를 지내러 가고 있다.(할베, 할메는 좋아하실라나.... 장손하나 잘 뒀다고..)

그러니 애들이 부모를 따라 다녀서 좋은 일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을 듯하다.

 



2.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생님께 부모님을 보인다는 것은 왠지 챙피스럽게 느껴졌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무슨 도둑질을 하신 것도 아니고, 고생스럽게 우리들 공부시키느라고 일하셨지만, 왠지 다른 돈많은 부모님들보다 못난 거 같고, 또 벼슬 높은 친구들 부모님보다 못난 거 같고, 그래서 부모님이 학교나 친구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싫었다. 챙피했다.

특히 중학교 때 제법 산다는 친구들 집 몇군데 가 보고서는 그게 부럽기도 하고, 부모님이 친구들이나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심해졌다.

나이 들어서도 마찬가지 였다. 항상 '중심부'에 있지 못하고, '주변부'에서만 맴돌아 왔기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뭔가 꿀리는 듯하고, 뭔가 나는 모자라는 듯하고, 그래서 주눅이 잔뜩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을, 형제를, 가족을 남들에게 드러내 놓는 것은 더 쪽팔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학교에서 배우거나, 심지어 책으로 나오는 부모님들의 얘기를 보면 우리 부모님은 그 10분의 1도 쫓아가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책으로 자기네 어머니 자랑이나 해 대는 건 다른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잘난 어머니들이나 내 어머니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하면서  '훌륭한 부분'만 멋지게 표현하면 되는 것이니까...

어쨌거나 내 부모님들도 훌륭한 부모님이라는걸 알고 느끼게 된 건 정말 나이가 들어도 한참 들어서 였다. 어디서나 우리 부모님도 떳떳한 삶을 사셨고, 다른 누구의 부모님에 모자라지 않는다고, 아니 더 나은 분이라고 말할수 있게 된 것은, 내 새끼들이 한참 커 가면서 속을 썩이기 시작 하니까 그때서야 알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3. 결혼하고서 처음 몇 해 동안은 아내와 애들과 함께 어디든 가려고 노력했다. 난지 얼마 안되는 큰놈을 들쳐 업고서 놀러 가기도 하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지 함께 다녔다. 언젠가 과기노조 창립 기념 등반대회에 두 놈을 다 데려 가서는 작은놈은 걷지도 못하는 놈을 주위 사람들에게 업히고 무동태워서 가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시켰는지..

그리고 회사사람들 놀러 가는데 춘천으로 함께 놀러 가다가 기차에서 통로로 담배피러 간다고 작은 놈 손잡고 통로로 나서다가 작은 놈 손이 기차 문에 끼여서 애 손을 못쓰게 만들뻔 했던 적도 있었다. 중간에 청평에서 내려서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청평에서 도시락 까먹고 따로 놀다 온적도 있었다.

안양에 살았을때 애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데, 그때도 산에 다니는게 좋아서 관악산으로 항상 갔는데, 두 놈 손을 잡고 관악산에 올랐다. 초등학교 1, 2학년인 큰 놈은 그 먼 길을 불평없이 잘 걸었고, 길이 없는 곳을 걸어서 내가 힘들어 하는데도 그 놈은 싫은 내색 하지 않아서 얼마나 기특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여름철에는 아파트 뒷산에서 잠자리 잡기며, 공차기며, 공던지기, 배드민턴이며, 애들이 원하는 것은 안해준 것이 없을 만큼 열심히 놀아 주었다.

그리고 애들은 정말 귀엽기도 하고, 새끼들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더구나 그 즈음에도 산오리는 노동조합 일에 빠져서 맨날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도 수련회다 집회다 해서 집을 비운 적이 많지만, 그런 와중에도 열심히 놀아 주려 했고, 애들도 여기에 맞춰서 잘 놀아 주었다. 그게 10살 즈음 까지다.

 

4. 어느 순간부터 애들이 함께 놀러 가는 것을 싫어 했다. 전철과 버스를 타지 않고 승용차에 태워서 편하게 가는데도 한 30분만 지나면,

"아빠, 아직 멀었어?"

"거기 꼭 가야 돼?"

"뭐 재미 있는 일이 있어?"

하면서 귀찮아 하고, 아예 차를 타지 않으려 하고, 차만 타면 그저 잠들었다.

또 어딜 가서도 내내 얼굴에 똥 씹은 얼굴로 싫은 표시를 하고 다니고, 조금만 지나면

"아빠, 빨리 집에 가자" "언제 집에 가?" 하면서 보채기 시작했다.

친구들 모임이든, 친척들 모임이든, 어디로 놀러가든, 마찬가지였다.

집에는 게임기가 생겼고, 또 주위의 친구들 집으로 가든지, 아니면 친구들을 불러서 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걸 못하게 두드려 패 가면서 아빠가 가는 곳에, 엄마가 가는 곳에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냥 냅두면 난장판을 만들지라도  엄마 아빠 찾지 않고 잘도 놀았으니까..

그리고 먹는 것도 스스로 라면을 끓여 먹는다든가 가게에 가서 뭔가 사먹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4 학년 정도면 이미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정도가 된다.

 

5.컴퓨터가 나오고 인터넷이 되고, 더 재밋는 게임과, 채팅이 생겼다. 당연히 애들은 자기들의 세상에 빠져 들었고, 그 세상에 부모가 끼어들 곳은 없었다. 그리고그 곳에 부모들은 끼어들어서도 안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세계에서 놀고 싶은데, 부모들이 그걸 방해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부모의 과잉간섭이리라...

중고등학생이 되었기에, 이제는  저들 나름대로의 생각도 있으리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어딜 가든 말든, 자신들의 의견이 중요하고, 심지어는 일년에 서너번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가는 것도 가라 말라 강요하지 않았다. 가고 싶으면 갈 것이고 싫으면 말겠지...

그게 어쩌면 큰 착각이었는지 모른다. 애들은 중고등학생이 되어도 몸집만 커졌지 생각은 초등학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그리고 마음은 싫어도 내색하지 않고 해야 할 일 등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이 편한대로, 자기 이기대로 표현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태에는 엄마가 상당히, 거의 대부분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그가 다른곳을 빠지는데, 어쨌든, 이래서 애들은 완전히, 확실하게 아빠와 엄마를 따라 나서지 않게 되었다. 따라 나서는 경우가 있긴 한데, 지난 일요일 엄마는 동명이와 같이 오후에 나가서 쇼핑하고 저녁먹고 들어왔다는데, 생일선물로 신발과 가방을 사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게 생긴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일에 나설리가 없다는 것이다.

 

6. 아내와도 마찬가지다. 결혼해서 초창기에는 아내와 어디든 같이 가고 싶어 했고, 짧은 기간은 그렇게 하기도 했다. 아내가 좋기도 하고, 같이 다니면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항상 부부간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고 밖에서 다른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시댁에 가면 시댁식구들 문제로 집에 들어와서는 싸움이 붙게 되고, 남편 친구들 부부 모임이 있어서 같이 가면 다른 부부들 하는 꼴에 눈꼴이 시거나, 다른 아내가 내놓는 남편과 자식 자랑 등 잘난체를 듣고 있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또 아내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 내가 갔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디가서나 말하고 행동하듯이 별로 스스럼 없이 말한다. 또 아내자랑이나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남사스럽게 자랑하지는 못하고, 그냥 우스개소리를 하거나 집안얘기를 하면 그런 얘기를 왜 남들에게 하느냐고 또 짜증을 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부가 함께 어딜 가는 것은 줄어들었고, 이젠 같이 가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같이 움직이는 건 명절과 제사, 또는 부모님 생신때 부모님 집으로 가는 일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싸움과 투쟁이 있었다. 그 투쟁의 결과와 17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적당한 선에서 암암리에 타협한 결과가 오늘의 현상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현재의 상태에 서로 만족한다고 말하고, 아내는 진심으로 어떤지 모르지만, 산오리는 만족한다.

 

혹시 친구들의 모임에서 부부동반 모임을 제안하면 산오리는 그런다. "그럼 산오리는 안나올 것이다" 부부는 함께 해야 할 공간이 집이라는 곳과 가족이 있다. 그리고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아내나 남편, 또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서 만나는 모임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 모임이 애당초에 부부와 자식들이 함께 만날 것을 전제로 모인 것이라면(예를 들어서 가족들이 함께 하는 나들이 모임 이라든지...) 당연히 가족이 함께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모임이나 외출에서는 당연히 부부와 자식들은 서로가 개별적으로 취급받아야 할 자유가 있고,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자식, 이런 식으로 취급되거나 불리워 지는 것은 적당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또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서 이런 자유로운 관계가 또 어떻게 재설정될지는 산오리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부부는 서로 밖에 나가서는 같이 다니지 않는 것에 거의 불만이 없다. 물론 새끼들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긴 하지만, 얘들은 아직 청소년이라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흐이그... 너무 길게 썼나? 아침 점심 저녁 시간 날때마다 대충대충 생각나는 대로 썼는데, 그러다 보니 일관성도 없는 글이 되고 말았네... 더 생각나면 다시 추가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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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6 23:48 2005/04/2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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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깍였다..

from 단순한 삶!!! 2005/04/25 19:56

주말에 정신없이 돌아 다니다가 오늘에서야 아내에게 월급을 송금하려고 인터넷뱅킹에 접속했는데, 월급이 지난달 보다 확 깍여서 들어왔다.

 

'엥? 오르지는 못할망정 깎아?'

 

급여담당자에게 당장 전화를 했는데, 자리에 없대서,

옆 동료에게 물어봤더니, 게시판에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건강보험료가 올라서 그렇단다.

게시판을 뒤져보니 그런게 올라와 있다.

건강보험료, 지난해 납부분을 소득에 맞게 올해 정산해야 해서 부담 늘어나고,

또 건강보험료 올라서 부담이 더 늘게 된다는....

 

도체 건강보험료는 얼마나 오른 것이야? 열받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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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5 19:56 2005/04/2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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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틀동안 신나게 놀고 들어와서는 잠시 앉았는데, 애들이 들어오고 애들이 엄마한테 뭘 해 달라고 한 모양인데, 아내가 뭐라고 한다.

"동희아빠! 쌈장 산에 갈때 가져 갔어요?"

"응.... 배추쌈 조금 남았길래 가져가서 싸먹었는데...."

그리고는 애들한테,

"얘들아, 쌈장이 없어서 오리고기 못구워 주겠다."

고 하더니,

 

갑자기 말의 높낮이가 달라져서는 화살이 산오리에게 날아왔다.

"회사서 야유회 간다더니 집에 있는 쌈장은 왜 가져 가요?"

"그래? 그럼 나가서 하나 사 올게."

"이 밤에 사긴 뭘 사러가? 됐어요 됐어 "(완전히 빈정거린다.)

"내가 사 온다니까..."

"왜 집에 있는 쌈장을 가져가서 애들 고기도 못 구워주게 만드는 거야?"

나도 갑자기 머리위로 피가 솟는 걸 느꼈다.

그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사다 준다잖아. 그놈의 쌈장 조금 남은거 먹었다고 도대체 몇번이나 똑 같은 잔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나와서는 가게에 가서 쌈장을 한통 사다 줬다.

그랬더니 아내와 두 아들이 오리고기를 구워서는 열심히 먹고 있었다.

나는 열이 받는 와중에도 아내나 애새끼들이나

"여보, 당신도 고기 안먹어요?"라고 물어보거나

"아빠, 고기 드세요"라고 최소한 예의상으로라도 물어볼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먹으라고 하더라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됐다'고 할 참이었는데,

아무말 없이 세 모자가 열심히 잘도 먹고 끝냈다.

 

하루가 지나서 아내에게 물었다.

"아무리 맘에 안들지만, 고기 좀 먹어 보라고 말도 못하나?"

"당신 잠자는 거 같아서 말안했지..."

 

 



2.

낮엔 2년동안 먼지쌓인 자전거 기름칠하고 손보기, 평화바람 매장 정리하는데 가서 일손 도와주기, 목욕하기, 그리고 집에 와서 여름옷과 겨울옷 바꿔서 정리하기... 이렇게 하고 저녁 먹고 나니 아내가

"아이구 애들 옷을 다려야 하는구나..." 하길래,

"내가 다려줄게..."  했더니,

아내는 마루 한쪽에 다리미와 다릴 옷들을 쌓아 두었다.

 

아무생각 없이 텔레비전 소리나 들으면서 애들 옷을 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빨랫줄에 걸려 있는 애들 셔츠를 세개나 더 가지고 와서 다리고 있는데,

자기방에 있던 애들이 나와서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한다.

이순신을 봐야 한데나...

혼자서 옷을 다릴 때는 몰랐는데,

애새끼들이 나와서 옷다리는 아빠를 앞에 두고 드러눕거나 기대앉아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으니 괜히 속이 뒤집힌다.

 

동희에게

"야, 너 앞으로 네 옷은 네가 다려 입어라!"

"............" 

아예 무시한다.

 

동명이에게

"동명아, 너 앞으로 옷 네가 다려 입어라, 짜샤, 아빠가 너만할테 다 다려 입었어."

"내가 다리면 주름이 안없어져."

"그런게 어딧냐 임마."

"저번에 옷 다려 봤는데 안되더라니까..."

"티셔츠나 다리고 있었나 보지... 하튼 다려 입어라!"

"싫어..."

 

동희가 들어가고 그 자리에 아내가 왔다.

"앞으로 애들 옷 자기가 다려 입으라고 해."

"..............."

똑 같이 말 같지 않은 말을 했다는 듯이 대꾸도 없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다려서 애들 셔츠 5장, 바지 2장, 내 셔츠 한장. 이렇게 8장을 다리고 나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네.

 

언제부터 옷을 다려 입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학교 1학년때 교복바지 다리다가 잠간 다른데 신경쓰느라 옷을 태워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 태워먹은 바지를 기워서 그대로 입고 다녀야 했는데, 그 쪽팔림이라니....

그런데, 이새끼들은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예 엄두도 내지 않는다.

그건 왜일까? 엄마가 시키지 않아서다.

아빠가 시키기라도 하면, 엄마는 당연히 난리가 나겠지.....애들한테 그런 거 시킨다..

애새끼들이 무슨 왕자냐? 귀공자냐?

 

그러면서 아내는 언제나 할일이 많고, 애들 때문에 바쁘다고 항상 입으로는 투덜거린다.

입으로는 그런데, 사실은 그런걸 해 주고 싶고, 그래서 애들은 더욱 버릇도 나빠지고 자립심도 없어지고 한다. 애들은 엄마가 망가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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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4 23:12 2005/04/24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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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산오리님의 [무기력증....]   가문비 님의 과학의 날에 반가운 선물 하나 덧글 관련된 글입니다.

산기평 어용노조가 만들어진게 1년은 더 된듯 한데, 뒤져보니 지난해 9월에 일어난 일이네. 겨우 6개월쯤 지났는데 이렇게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4월 21일....

회사일로 전화기 붙잡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렷다.

받았는데, 조한육지부장이 뭐라고 한다. 내가 전화하겠다고 하고선 끊으려 하는데, 산기평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려서 뭐라고했는지 물었더니,

"오늘 재판이 열렸는데, 산기평 지부가 이겼다"고 한다.

어용노조를 인정해준 강남구청의 설립신고 교부가 무효라는 판결이 났단다.

전화통화를 마치고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했더니, 사람들이 다 좋아서 난리가 난 거다.

건자재 지부에서 중앙위원회가 있다면서 산기평의 지부장과 김태진, 김준동지도 그쪽으로 가고 있단다.

 

송주의동지와 점심약속을 하고선 회사일로 산기평으로 갔다. 한 식당에 모인 산기평 조합원들은 너무나 좋아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천안에서 과천에서 달려와 함께 모인 조합원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저녁에 축하뒷풀이가 있다는데 가지는 못했지만, 산기평에서 싸웠던 온갖 것들이 함께 떠올랐다.

해고된 동지들은 복직되고, 원장 연임도 막았고, 어용노조는 무효라는 판결도 받았고...

 

그래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고 또 높을 것이다. 이놈의 나라에서는 도대체 올바른 것들이 살아 남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동안 끈질기게, 살아 남아서 투쟁해 온 안형수 지부장, 배성환 사무국장, 그리고 김태진, 김준, 송주의 동지를 비롯한 조합원 동지들, 그들이 없었다면 이 싸움은 너무나 일찍 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감사와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 둔한 기억에라도 이 날 쯤은 남겨둬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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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4 22:39 2005/04/2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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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현근님의 [강촌 삼악산행 사진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뻐꾸기님의 제안으로 꽤나 오래전부터 계획된 산행이었다. 근데, 금욜날 회사 야유회로 북한산을 갔다 와서는 정신없이 차를 몰고 시청앞으로, 그리고 다시 강촌으로...

놀기도 피곤한, 힘든 이틀이었다.

 

강촌 민박집에 가서도 술을 안마신다는 이유로 행인님과 같이 먼저 잠들었는데, 새벽까지 잠들지 않고 술마시면서 열심히 토론을 벌인 분들의 정열에 감탄...

 

등선폭포에서 출발해서 정상을 거쳐 의암댐 쪽으로 하산.

사진은 현근님이 많이 찍어서, 카메라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장은 남겼다.

비 내린지 며칠 안지나서인지 폭포에 물도 많고 맑았다.





 

삼악산은 역시 정상에서 의암댐입구까지 내려오면서 감상하는 의암호와 춘천시의 경치감상이다.



 

내려오면서 뒤처진 세사람은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바위를 기어서 갔다.

'산오리 폼'을 잡아 본다고 다들 자세을 잡았는데, 비슷한가?

 





 

사진은 이것뿐이네...

 

강촌에서 먹은 막국수와 닭갈비는 맛있었구나.

서울로 오는 길에 새터에서 막히지 않아서 잘 빠질거라 생각했더니 새터를 지나자마자 밀리기 시작해서 구리시까지 끈질기게도 밀렸다.

몸은 피곤해도 아무생각 없이 이틀동안 잘도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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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4 19:27 2005/04/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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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야유회..

from 단순한 삶!!! 2005/04/24 19:06

산으로 가자, 영화보러가자 말도 많더니,

실장의 한마디로 그냥 북한산으로 간단히 정리된다.

그 논의 과정과 결정을 보면서 그저 웃음이 나왔다.

젊은 친구들이 너무 자기생각없이 오락가락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산오리가 북한산 삼천사길로 가자고 해서  차로 삼천사까지 부왕동 암문을 거쳐 증취봉까지 올랐다가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삼천사 아래 어느 음식점에서 오리구이를 먹고 일산에 들어와서 영화(마파도)를 봤다. 산에도 가고 영화도 보고, 할 건 다 했는데, 산에 갔다 왔더니 영화보자고 하던 젊은 친구들은 또 사라지고 없다.

그저 움직이기 싫다는 뜻이었을까?

 

내려오는 길에 꽃 사진을 몇장 찍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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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4 19:06 2005/04/2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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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 생일....

from 나홀로 가족 2005/04/21 09:03
쓸쓸

봉투엔 미역이 없엇다......
곽동명
 
엄마는미역도 안사와....

 

어제 우연히 동명이 싸이에 들어갔더니... 이모양이다..



아침에 밥상에서 미역국은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동명이 생일인데 몰랐어?"

"응,, 아침에 동명이가 미역국 왜 안주냐고 묻데.. 며칠전까지 기억했는데 잊어버렸지."

"그랬구나..."

"바쁜세상에 그새끼 생일까지 기억하고 있어야 돼?"

"뭐 그런건 아니지만...."

"그리고 지가 생각났으면 어제저녁에라도 얘기해주면 되잖아, 아무말 없었어..."

"알았어..."

 

저녁에 집에 가서 동명이에게 물었다.

"너 오늘 생일이라며?"

"응.."

"근데 왜 생일 선물 사 달라고도 안하냐?"

"엄마한테 했는데, 헛소리 말라고 해서..."

"뭐 사달라고 했는데?"

"옷.."

"그냐? 아빠한테 얘기해라, 비싼거 아니면 하나 사줄게.."

"응...."

 

엊저녁에 아내는 미역국을 끓여, 동명이에게 줬고,

작은 케잌도 하나 사서 촛불도 켜 줬다.

근데, 뭣땜에 삐져서는 케잌 먹지도 않고 사라졌다.

하루 지난 오늘 아침에 우리 식구는 동명이 생일 미역국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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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1 09:03 2005/04/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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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뻐꾸기님의 [[알림]진보블로거 산행 4/22(금)저녁부터 4/23(토)] 에 관련된 글입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산행계획을, 그리고 만날 장소를 알려야 하는데, 어제 오후에 출장을 가는 바람에 , 또 밤늦게까지 당에서 회의하느라 못했습니다.

'먹고 노는 산행'에 무슨 그럴듯한 계획이 있겠어요? 적당히 만나고, 발길 닿는 대로 가고, 가다가 못가면 쉬고, 아무데나 퍼질러 먹고 잠자고....그렇게 가는 거지요.

차마 그럴수 없어서 어제 잠잘곳은 알아두었습니다. 저도 가 본지 오래 되어서 인터넷에서 찾고 전화로 물어보았으니까, 그 많은 잠잘곳들이 '거기가 거기'로 비슷할 듯싶습니다.

 

 

1. 만나는 것은

 

4월 22일(금) 밤 9시까지

시청앞 삼성프라자 앞으로 모여주세요!

가시겠다고 하신 분들은 당근이고, 혹시 더 가실분들도 오시면 되지요.

(근데, 가실 분들은 메일이나 전화로 확인은 좀 해주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왜냐면 차에 탈 사람이 넘치면 차를 한대 더 구해야 하니까요,

차는 산오리차로 가고, 모자라면 머프의 차를 쓰도록 하지요.

  잠자는 곳은 7-8명짜리 방을 예약하면 열댓명이 오더라도 낑겨서 자면 되구요. 아님 밤새워 놀면 되니까요. 방은 오늘 예약합니다.)

산오리 메일 sanori@jinbo.net 으로 연락주시고, 휴대폰 번호도 꼭 남겨주세요, 만날때 어디까지 오고 있나 물어보게요.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실 분들은 덧글로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2. 23일 오실 분들은...

 

알아서 오십시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시든지, 상봉동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든지, 아니면 승용차를 몰고 오시든지, 자전거를 타시든지, 걸어서 오시든지??

하튼 23일 10시 즈음까지 강촌으로 오시면 같이 만나서 산으로 오르도록 하겠습니다

기차를 타시면 청량리에서 한시간 40분쯤 걸린답니다.

이날 오시겠다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메일로 연락을 남겨 주시든지, 아니면 덧글을 달아주시면, 도착할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30분쯤 더 기다려 줄수도 있죠... 

 

3. 먹을 것은...

 

알아서 먹을 만큼 챙겨 싸 오십시오. 밤새워 술 마시고 싶으시면 술과 술안주를, 산에 오르면서 먹고 마셔야할 과일과 음료수를... 이런 기회에 냉장고에 처박아 둔 유효기간 지난 식품들 다 싸 오세요, 처분하게요..ㅋㅋ

그냥 빈손으로 오셔도 됩니다. 돈좀 걷어서 취향에 맞게 좀 사서 먹을테니까요.

(돈은 방값이 5만원 할거구요, 교통비에 입장료에 사서 먹을 것... )

 

4. 챙길 것은...

 

산에 가야 하니까 면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오시지 말고, 등산화에 신축성이 있는 바지를 입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물통과 김밥정도 넣을수 있는 배낭은 하나씩 매고 오시기 바랍니다.

 

5. 그래도 부족한 것은...

산오리한테 연락주세요. 위의 메일이나 덧글이나 전화(019-657-2205)로....

 

함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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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0 08:47 2005/04/2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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