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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 각파산 - 길위에서 길을

023 - 각파산(脚巴山)  - 길위에서 길을

 

빵다에서 출발한 버스는 비교적 평탄한 길을 내내 달렸다.

비교적 너른 밭이 있어 여기저기 보리 추수의 흔적이 보인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천장공로를 가다보면 가로수를 보기 힘들다.

땅이 척박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야크나 양떼가 남겨 두지를 안는듯 하다.

 

그래서 가로수를 보면 이렇게 가시나무를 둘러 치거나 돌로 샇아

보호막을 설치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티벳 전통 가옥,,

 

 

우리 버스의 운전사 아저씨(대머리 아저씨)와

캉파 티베탄 전통의 붉은 머리 장식을 한 두명의 차장, 그리고 승객들이

휴식을 취하며 늦가을 볕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가끔 충동적이 될 때가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을 보면 이 곳에서 며칠 머물다 갈까?

 

저 여인을 따라 가면 무슨일이 생길까?

갑자기 그녀를 따라 가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그렇게 속절없이 가버렸다.

 

 

망캉행 버스, 나와 마찬가지로 라싸에서 왔다.

 

쭈어꽁(左貢)에서 점심을 먹고 버스는 각파산을 향해 달렸다.

 

 

 

고개에 접어들자 대머리 운전수 아저씨가 피곤한지,

젊은 차장에게 운전대를 넘긴다. 그저 차장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운전은 더 와일드 해졋다. 길이 험해져 가는데도...

 

 

구비 구비 돌아서,,,,

 

물 채우는 곳을 지나

 

 

 

 

저 길을 지그 재그 돌아 내려 왔다. 

길을 어찌 만들었는지,,,, 그 고생이 눈에 선했다.

 

버스의 브레이크는 과열될대로 과열되었다.

 

 

 

그렇게 각파산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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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 빵다(갈림길) - 길위에서 길을

022 - 빵다(邦達) - 갈림길 - 길위에서 길을

 

아침 6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부산하다.

 

팍쇼 버스터미널 안에는 버스가 2대 있었다.

하나는 창뚜(昌都  참도 : 티벳식 지명)행 버스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지인  망캉(芒康 마캄 : 티벳식 지명)행 버스다.

 

그런데 망캉행 버스에는 빈 좌석이 없단다. 낭패다.

우선 창두행 버스를 타고 빵다에서 다른 차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빵다는 망캉, 창뚜, 라싸  세방향의 길이 만나는 삼거리다.

다시 말해서 교통의 요지다.

 

버스 차장이 숙소마다 버스승객들을 깨운다.

어제 늦게 도착한 승객들인 것이다.

 

이른 아침에 깬 아기들은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여기저기 간단히 세수하고

떠날 채비를 한다. 빠진 사람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버스는 떠난다.

 

 

누지앙산 (怒江山)  72 고개길을 이른아침부터 힘들게 올라간다.

사진은 안타갑게도 통로쪽 좌석인지라....없네요...

 

72 고개길을 돌고 돌아 이에라산( 業 拉山  4615미터)을 넘자

비교적(?) 평탄한 길을 달린다.

 

앞 쪽 창가에 앉은 여행객 중 하나(한족인듯 싶었다)가 창문을 열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 댔다.

 

하지만 그통에 찬바람이 온통 내에게 달려 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바람은 차가웠다.

 

문좀 닫아 달라 부탁하자 못 마땅한 표정의 그 남자, 마지 못해 닫는 시늉만 한다.

허걱,,, 당혹스럽게 하는 뻔뻔스러움,,,, 

자신만 좋다면 다른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는 중국인의 행동에 혀를 내두룰 때가 자주 있다.

 

...때론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기도 한다.

 

  

 

 

 

 

 

힘들게 고개를 넘어온 버스가 물을 채우기 위해,,,사람은 물을 버리기 위해 잠시 섰다.

 

 

아침부터의 소란스러움에 한 아이가 나와 지켜 보고 있었다.

 

 

물레방아도 있었다. 현재도 이용하는 듯 했다.

 

 

라싸 방향으로 달려가는 차들도 있었다.

 

 

빵다 풍경이다. 

 

전형적인 길이 생기고 나서 식당과 숙박 업소가 생긴 마을이다.

특히 삼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한마디로 목이 좋은 곳이다.

 

 

 

 

 

짐도 내리고 사람도 내린다.

 

나는 배낭을 챙겨들고 망캉방향으로 자리잡고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뭐 오겠지..급할거 있나?.

 

곧 버스가 들어왔다.

망캉행이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그런데...

 

 

저 멀리 버스가 들어 오고 있다.

이게 왠걸, 아침 빠수에서 빈좌석이 없다는 그 버스였다. 

우리 버스를 뒤따라 왔던 것이다.

 

혹시나 내리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가봤다.

버스 차장이 타라고 한다.

 

버스에 올라서 자리는 하고 물어 보니?...

천연덕스럽게 씩 웃으며 자신의 옆을 가르킨다.

 

정식 좌석은 아니고 보조석 비슷한 ,,,,

허걱,,,허나 어저랴 길은 가야 하고 찬밥 더운밥 가릴대가 아니다.

엉덩이를 비집고 자리를 앉자 차장 게면적게 웃으며 과자를 건넨다.

ㅎㅎㅎ  그렇다고 해서 버스비는 절대 할인 없다.

 

  

천장 남로에 본 비교적 튼튼한 다리, 수심도 무척 낮고,,,,,

30여분 달리자 버스가 선다. 마을도 없는데....

 

도로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를 가고자 함이 아니라 사람과 물건을 기다린 것이다.

 

인상 좋게 생긴 그 차장 또 씩 웃으며 이제 빈좌석에 앉으라 한다.

 

 

온 동네 오토바이가 다 나온듯 했다.

 

 

강렬한 태양을 피 할길 없는 도로변이라 다들 스카프를,,,춥기도 하고,,,

 

 

짐을 내리는 차장

 

균형을 맞추어 최대한 짐을 실은 오토바이...

 

 

아내와 아이까지 태우고 오토바이는 출발한다. 

 

사내의 넓은 등이 듬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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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 빠수(八宿) - 길위에서 길을

021 - 빠수(八宿) - 길위에서 길을

란우에서 빠수는 비교적 짧은 거리다.

점심쯤 출발해서 빠수(八宿  팍쇼 : 티벳식 지명)에 오후 4시쯤 도착했다.

 

망캉가는 버스는 다음날 아침 6시에나 출발한다고 한다.

어쩔수 없이 터미널에 딸린 숙소에 묵었다.

 

물론 다음날 출발하는 버스를 예매 할 수도 없었다.

오늘 저녁에 들어오는 버스가 좌석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단다.

 

뭐 어찌 되겠지....

 

 

빠수 가는 길에 본 티벳 마을

 

황량함이 또 다른 풍광이다.

 

 

흙 색도 붉은색에서부터 다양했다.

 

 

그래도 푸른 하늘만큼은 티벳 어느지역이나 같았다.

2층 복도에서 바라본 빠수 주변의 풍광은 척박함과 황량함의 연속 이었다.

 

 

앞에 보이는 2층 건물은 좀 더 싼 터미널의 또 다른 숙소 였다.

내가 묵는 숙소와는 딱 2배,

 

내방은 30위안, 저기는 15위안 이었다.

 

 

 

 

 

대충 짐을 풀고 복도로 나오니 아래층에서

오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 저녁 만찬인가?

아니면 누구 대접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그도 아니면 파는 것?

 

우선 뜨거운 물에 담그고, 털 뽑고, 그리고 내장을 정리하고,,,,,

 

어릴적 제삿날이 되면 닭잡는 일은 내 몫이었다.

적당한 온도의 뜨거운 물에 넣어 털 뽑을 준비를 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물이 너무 뜨거워도 미지근해도 문제다.

 

너무 뜨거우면 털 뽑을때 닭 껍질까지 벗겨지기 일 쑤이다.

미지근하면 털이 그대로 붙어 있다.

털뽑기는 인내심이 필요 하다. 귀찬다고 대충하면 막상 먹을때 여기저기 잔털이 남아 있다.

귀찬아도 즐겁게 먹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닭똥집은 제사지낼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숯불에 구워 ....ㅎㅎㅎ

소주 한잔 하면 그만인데 어른들 눈치도 있고 ...그냥 참았다...

 

중학교 졸업 후 집 떠난 이후로 그런 기억이 없다.

집에 닭도 없거니와 노인들이 되셔서 이제는 시장에 가서 다 손질된 닭을

사다가 제사상에 올리곤 하신다.

 

여행을 하며 멎진 풍광을 볼때마다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면 좋을 껄 생각해보지만

이제 모두 연로하셔서 가끔 온천이나 가시는게 전부다. 

 

 

터미널의 전경,,,일부 부속품도 재활용 하는 듯...

 

 

창밖에는 건물 신축이 한창,,페인트 칠 중인데 좀 위태해 보인다.

 

 

자재와 쓰레기가 뒤 엉킨 공사장 전경

 

아마도 건물 완공후 한꺼번에 대청소 하려는 듯..

평소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 몰아서 대청소 하는 나와 비슷 한듯....

 

체력이 비교적 튼튼해 피곤함을 잘 모른다.

그런데 가끔 귀차니즘이 물밀듯이 몰려 올때가 있다.

 

나른한 오후 대충 다음날 가야 할 일정을 확인 후,

벌건 대낮에 침대에 퍼져버렸다.

 

 

어둠이 내려 배가 고파서야 일어나 일용할 양식을 찾으러 어슬렁 거렸다.

 

여기 저기 피를 본 자취

 

위에 있는 사진의 개처럼 

만사가 귀찬아진 나는 그렇게 팍쇼의 터미널 숙소 한 구석에서

나른한 오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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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 란우(然烏) - 길위에서 길을

020 - 란우(然烏) - 길위에서 길을

평소 귀하게 자라지 않아 불편한 교통수단이나 익숙치 않은 먹거리,

열악한 시설의 숙소 등 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가지 이제는 어지간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극복되지 않는 것이 있다.

 

외로움이다.  향수병(鄕愁病)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고,

외로움인 것 같다. 

 

유명한 여행 가이드책 중에 론리 플래닛이 있는데 왜 론리가 들어갔는지

여행을 오래하다 보면 공감이 절로 간다.

 

혼자 여행을 오래하다 보면 여럿이 함께 하는 여행자들,,

특히 연인(戀人)끼리의 여행자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때론 부러움을 넘어 시기, 질투의 대상이다.

 

만화 다세포 소녀의 주인공이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라면

아마도 나는 '외로움을 등에 업은 여행자' 일 듯 싶다.

 

나의 중국어나 영어란 것이 그저 최소 생존 가능한 정도이니

생각은 많으나 표현하지 못함(교류하지 못함)의 답답함에 자주 직면하곤 한다.

 

최근  베르베르가 말한 것처럼 빠른 시일내에 텔레파시로 대화 할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

 

오후 늦게 란우(然烏, 라오그 : 티벳식 지명)에 도착했다.

란우에 도착하기 직전에 호수를 하나 보게되었다.

난  란우쵸인줄 알았는데 한국에 돌아오고서야 그게 란우쵸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아무쵸(阿木 錯)라 부르는 호수라는 것을 알았다.

 

 

  물빛은 ......

 

 

 

 

 

란우에 도착하여 창밖의 풍경이 나름 괜찬은 곳에 숙소를 잡았다. 30위안..

 

창밖에는 달이 떠 올랐다.

 

 

 

 

 

저녁이 되어도 설산에 반사되는 달빛에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그날 밤은 달이 머리위로 넘어가는 때까지 잠못드는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사람이란게 꼭 늦게 잠든다고 늦게 일어 나는 법은 아니다.

 

새벽녘 깨어 화장실에 다녀 오다가 화들짝 놀랐다. 

머리 위로 흰 설산이 덮칠듯 다가오는 것이었다.

 

분명 어제 저녁엔 복도쪽 방향으로는 설산이 없었는데.... 

 

 

밤새 외로움에 뒤척인 현장.... 

 

 

새벽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바위산에 달빛이 반사되어 흰 설산으로 보였던 것이다.

헛것을 본 것이다.

 

 

창밖의 백탑과 추수 후 보리대를 건조시키는 모습 

 

 

말들이 먹지 못하게 높이 올려서 건조시키는 듯 했다.

 

 

이름은 잊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먹기에 맛있어 보여 시킨 아침..

안에 설탕을 넣었는지 무척 달았다.

 

 

전기 가설 공사를 하는 인부들

 

 

란우는 중간 기착지라서 출발하는 버스는 없고 오후에야 버스가 온다하여 한적한 동네 산책을 하였다.

 

아무쵸(阿木 錯)의 다양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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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 통마이 다리와 뽀미 - 길위에서 길을

019 - 통마이(通麥) 다리와 뽀미(波密) -길위에서 길을

길은 점 점 험악해져 간다.

천장공로 중 가장 험악한 구간 중 하나이다.

 

길은 비포장되었고, 우기에는 산사태로 끊기기가 다반사라 한다.

 

길 옆은 낭떠러지이고, 거친 물살이 쉼없이 달리고 있었다.

좁은 길에서 간혹 차라도 만나면 신기에 가깝게 서로 피해간다.

분명 1차선에 가까운 길을 어찌 저리도 잘 피해가는지...

 

길을 돌때마다 기사는 경적을 울려 댄다.

서로 알아서 상대방을 인식해야만 하는 구간이다.

 

버스가 좌우로, 위아래로 몹시도 흔들려 대는 통에

사진이고 뭐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만사가 신의 뜻'이라 여기고 운전사만 믿어야지 별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한번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우편물 수송트럭이 갑자기 앞에 나타난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는 밀려나가 거의 종이 한장 거리를 두고 멈추었다.

앞에서 오던 우편물 수송 트럭 운전사나 우리의 버스 운전사나

서로 화를 낼 겨를도 그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바빴다.

 

한참을 후진해서야 서로 비킬 만한 곳을 찾았다.

후진은 더 살벌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통마이 다리이다.

 

2000년에야 새로운 다리가 완공되었다니...

아직 옆에 남아 있는 예전 다리를 보니,

이전엔 얼마나 험한길이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 웠다.

 

 

통마이 다리는 이꽁(易貢)과 뽀미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이공은 차농원과 이꽁호수가 유명하다고 한다.

 

통마이 대교의 도로 표지판

 

 천장공로 가다 보면 무경(武警)교통 당국의 경고표지판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주로 정원초과 문제, 중량초과 문제 등의 주의 표지판이다.

 

이곳 교통경찰은 무장경찰이다. 그래서 이름도 무경(武警)이다.

군인과 경찰의 중간적 성격이랄까?  이들이 검문검색을 담당한다.

 

내가 탄 버스안에는 2명의 어린남매가 타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운전수가 신호를 한다.

그러면 이 두남매 중 번갈아 가며 하나는 아버지나 엄마의 좌석과 무릅사이로 숨는다.

그리고 커다란 옷으로 덮는다.

 

정원초과인 것이다. 그러면 다른 승객인 우리들도 모두 한통속이 되어 시치미를 뗀다.

대개 검문소에서는 버스 차장이 내려가서 보고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가끔 직접 차안에 올라와서 검문하는 경우도 있다.

 

퍼밋없이 여행하는 나로서는 퍼밋 보잔 이야기가 나올까봐 잠시 걱정도 해봤지만

'걸리면 벌금 내지' 하는 여유로움마저 갖게되었다.

 

그렇지만 천장공로를 지나는 동안 여권이나 퍼밋 보잔 이야기는 없었다.

주로 올라와서 정원 초과 여부 등만 살펴보고 가는 것 같았다.

 

 

  정원/중량 등등 지키래요,,,,

통마이 대교를 넘는 차량은 15톤이 넘으면 안된다.

그래서 버스안 승객은 모두 하차해야만 한다.

 

다리 앞에서 버스가 서자 모두 내리란다.

내 짐작으론 '또 화장실 다녀오란 이야기구나" 했다.

 

그런데 왠걸 사람들이 줄줄이 걸어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여행하면서 는 건 눈치뿐,,,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내려서 걷는게 당연했다.

 

 ,,,

 

다들 버스에서 내려서 이열 종대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다리 상판은 이랬다.  보기보단 튼튼했지만...

 

이렇게 밑을 보면 좀 아찔하다.

 

 

 

군기는 금방 무너져 내렸다. 이열 종대는 곧 각자 맘대로 ....

 

 

랜드크루져 또한 다리를 건넜다. 여기에 탄 승객은 하차하지 않았다.

 

내려서 다리위를 걸어 보는 것도 괜챤을 텐데.....

 

 

옆 난간은 케이블과 철빔으로 만들어져 튼튼해 보이긴 한다.

 

 

승객이 다 건너자 우리의 버스도 다리를 건넌다.

 

 

저입니다.

 

 

옛 통마이 다리입니다.

 

좀 험난해 보이지요.

 

 

우리의 앞길에 또 설산이 부르고 있었습니다.

 

 

점심 무렵 도착한 뽀미(포메 : 티벳식 지명)의 시장거리입니다.

 

중국을 혼자 여행할때의 불편한 점 하나가 밥 먹는 것입니다.

 

자주 먹었던 볶음밥(양저우 짜오판)입니다. 

양만큼은 부족함이 없었읍니다.

 

 

뽀미의 파롱짱부강변에서 본 풍경입니다.

여기도 광동에서 돈을 댔군요..

 

 

강 상류쪽 방향입니다.

 

 

강 건너편 마을 모습입니다.

 

 

강 하류 방향에는 역시 설산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버스 터미널 안입니다.

 

 

 

설산이 보이는 터미널 넓은 공터에 오로지 우리가 타고가야 할 버스 한대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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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 빠이에서 루랑 - 길위에서 길을

018 - 빠이(八一)에서 루랑 - 길위에서 길을

 

길을 가다 보면 자주 속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천장남로 길을 가는데 있어 가장 빠른 속도는 아마도 랜드크루져를 이용하는것이다.

그다음이 승합차나 버스일거구, 오토바이도 비슷할 것이다.

 

그다음은 자전거, 도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체투지 순례일 것이다.

 

비용과 편안함도 비례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어찌하여 편안함과 속도와는 거리가 먼

자전거나 도보 순례자들에게 눈길이 갈까?

 

나중에 모터사이클이나 자전거로 아니면 진짜 무리해서 도보로 이길을 다시 가고 싶다.

 

여행자에게는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철칙이 있다.

잠시 머무를 수는 있어도 언제인가는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빠이 버스 터미널(신축이라 깔금하다)

 

 

라싸를 떠나 천장공로에서 첫 하루밤을 보낸 곳이다.  어제 하루 라싸에서 424km를 달려왔다.

 

이른 아침부터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출발에 앞서 짐 싣는 버스

 

이곳의 버스는 단순히 사람만을 실어 나르는 것이 아니라 많은 물자들을 운송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짐을 싣는데도 요령이 있어야만 하는 듯 보였다.

 

먼저 내릴 짐, 나중에 내릴 짐, 무거운 짐, 가벼운 짐,  험한 길이기에 차의 균형까지 고려 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단히 묶는 것.  내 배낭은 다행히 버스 뒷 트렁크에 실렸다.

 

 

빠이에서 린즈(닝트리)로 해서 써지라산(色季拉 山, 세킴라 해발 4730m) 고개로 계속

오르막길로 치달았다.

써지라산은 진달래꽃(두견화)로 유명한 산이다. 6월이 되면 진달래 꽃으로 뒤덮인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지나온 써지라 산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눈 덮인 써지라 산 고개

고개를 넘을 때마다 버스안은 역시 잠시 소란스러워진다.

그 순간을 놓쳐서는 안될듯이 준비해둔 오색종이를 창밖으로 날린다.

역시 창밖에는 롱다가 걸려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라싸로 혹은 운남으로 사천으로 오고 갔을까?

해발 4700미터의 고개를 넘자 끝없는 연봉이 시선을 압도한다.

고개를 넘었다지만 가야 할 길도 만만치 않다.

지그재그 눈 덮인 산으로 가야 할 길들이 보인다.

 

 

천장공로를 가면서 든 생각은 이 길이 험할 뿐만 아니라 천변만화, 변화무쌍하다는 것이다.

평탄한 길도 있고, 고개도 있고, 계곡도 있고, 황량한 곳을 지나다가

어느새 울창한 산림지대를 지나기도 한다. 그것도 하루에....여행자에게는 더 없는 행복이다.

나에게 자주 어색한 시간들이 있다. 그건 아침 처음 버스를 탔을때의 분위기다.

서로 각자의 자리를 잡고 오늘 동행 하게될 사람들을 살피어 볼때이다.

하지만 한시간 정도 지나면 어느새 '한배를 탄' 의식같은 게 생겨 자리다툼의 실갱이나 

초면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서로에 대한 호기심,관심과 배려(특히 먹을 것 나누어 먹는 일...)가

생겨나곤 한다.

티를 내려 하진 않지만 쉽게 이국의 여행자임이 드러나는 내게는 차안의 공기가

어색함에서 친밀함으로 변하는 것이 예민하게 느껴진다.

나에겐 익숙해져 별 불편함이 없지만 비위가 약하거나 깔끔파 여행자에게는 티벳 현지인들의

야크 버터향, 버스안 흡연 등이 괴로울 것이다.

흡연자인 나에게도 가끔은 버스안 흡연은 힘들 때가 있다.

특히 이 친구들의 흡연 습관은 필터부분에 이를 때 까지 흡연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 흡입하는 것보다 그냥 들고 있어 담배연기가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냥 날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흡연이 건강에 않좋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필터를 거치지 않는 담배연기는 더 힘들다.

하지만 어쩌랴 시간이 필요 한 것을,...

중국의 동부지역 대도시는 이미 차내 안은 금연을 하고 있다.

서부로 시골로 갈수로 흡연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내 경험으론 90년대 초반까지 시외버스를 타면 맨 뒷좌석에서 창문을 열고

흡연을 하였던 것 같다. 아마도 점차 중국에서도 대중교통에서의 금연은 정착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시간이 필요 할 것이다.

그래도 현지인과 서로 담배를 주고 받아 함께 피우는 것은 쉽게 친해질수 있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비흡연자는 어려운 일이지만...

루랑(魯郞)에서 써지라산 고개를 넘은 버스를 잠시 쉬게 한다.

버스들이 대개 수냉식이라서 자주 물을 보충하여야만 엔진과열을 막을 수 있다.

루랑치오 앞에서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일(물 버리는 일)을 보고,

버스는 물을 채운다.

 

이리 저리 바쁜 운전사 아저씨.

루랑 주변은 초원과 산림이 어우러진 곳이다.

여기 저기 새로이 건물들이 들어서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한 사내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삶은 그리 쉽지 않음을 잘아는 나에게 그렇게 보여진다.

오히려 등짐을 지고 걷는 이는 편안해 보이는데...

중국 정부가 서부 대개발을 추진하면서 많은 곳에서 이런 것을 보게 된다.

먼저 개발되어 부(富)를 쌓은 광동의 지원으로 건설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것은 자주 목격하게 된다.

 

 

지원(持援)인가, 투자(投資)인가  아니면 진정한 연대(連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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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 천년의 나무 - 길위에서 길을

017 - 천년의 나무 - 길위에서 길을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존귀하다.

 

 

오후 늦게 빠이(八一)에 도착하였다.

 

빠이는 원래 '라르가(拉日伽)'라고  하는 작은 부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51년 중국인민해방군이 주둔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한

린즈(林芝, 닝트리)지역의 중심도시이다.

그래서 이름도 중국인민해방군의 창군기념일(8월 1일)을 따서 八一로 불린다.

린즈는 원시삼림 지역으로서 나무가 빠른속도로 자라고 질이 좋아서

목재산업이 발달해 있다.

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숙소에 방을 잡고 택시를 탔다.

'천년의 나무'가 있다는 곳을 가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택시비는 담합을 하였는지 일률적으로 30원을 부른다.

깍으려해도 안된다. 거리가 꽤되려나. 지도상으론 얼마 안되는데...

채 10분이 안걸렸다.

허 참....

'세계백수왕원림(世界柏樹王園林)'이란 곳이다.

입장료는 15위안이다.

비교적 늦게 도착하여 폐장시간을 물어보니..

관리인이 참 걸작이다.

'24시간' 언제나 가능하단다. 시간에 구애 받지 말고 천천히 보란다.

참 맘 좋은 아저씨...

수천년을 버텨온 나무들을 관리해서인지 통 한번 크다.

그 이름에 비해 입구는 소박하다.

바이수(柏樹)는 측백나무과의 나무로 원산지는 중국이며, 중국에서는 소나무와 함께

사찰이나 묘지에 많이 쓰이는 나무이다.

린즈에 있는 바이수는 중국 최대, 최고의 바이수이다.

해발 3040미터 주변에 10헥타르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것은 중국최대로 높이 57미터, 직경이 5.8미터, 추정 수령은 2600년이라고

입장권에는 안내가 되어 있다.

 

그런데....이건 뭔가...????

 

이 표지석의 설명에는 높이는 50미터, 수령은 2500년으로 나와 있다.

갑자기 키가 7미터, 나이가 100년이 줄어버렸다.

아니면 이 표지석은 이 나무가 50미터 정도, 2500살쯤일 때 세워진 것일까?

적어도 표지석이 100년 전 것이란 애긴가? 그럼 100년 동안 7미터 컸다는 이야기인데...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아직은 여러가지 것들이 정확히 정리되지 못한 측면 들이 많다.

수천년을 모진 풍상을 겪으며 버티어온 역사 앞에서 100살이 많고 적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단순한 나무를 넘어 '생명의 나무'로 숭배의 대상이 되어 경배되고 있는 마당에...

나무가 크고 오래되어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 잘 보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바이수 주변에는 수 많은 하닥(흰 비단천 : 티벳인들의 존경과 경의의 표시로 바치는 것)이

이 걸려 있었다.

경배의 대상이 된 다바이수(대백수 : 大柏樹)를 한 컷으로 담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대백수왕 ,ㅎㅎㅎ 어감이 그렇다. 나의 삶의 적지 않을 부분을 지칭한 말이기도 하다.

백수,... 친근하기도 하고 좀 거시기 하기도 하고,,,,,

아래부분

윗 부분

줄기 부분,,

다바이수왕 옆에는 사당 비슷한 것도 있다. 이미 주변에는 땅거미가 갈리고 있었다.

주변은 한 30여분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각양 각색의 나무들은 수천년을 지켜오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군락을 이루었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굳건히 내린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경외감을 갖게 한다.

비록 그 줄기가 잘리고 갈리엇다 해도 생명의 연속성마저 귾을 순 없다.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그 자리를 지켜 내고 있었다.

저 멀리 어둠이 밀려와 여행자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자연에 비해 인간이 하는 짓이란 때론 이 정도 밖에 안된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고 싶을까?

하지만 저 나무는 그 상처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또 몇 천년을 버티어 낼 것이다.

낡은 표지판이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 너의 행동이 좋으면 그많큼 경치도 좋다 "   - 정확한가...ㅎㅎㅎ

오늘 밤에도 타르초는 낮은 울림으로 바람결에

'인간의 행복'을 위해 경전을 외고 있을 것이다.

 

올 때 받았던 명함을 이용 택시를 불렀다. 돌아가는 것 역시 30위안..

입구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진짜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시절 집안에 잔치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돼지를 잡을 때 듣던 그 소리다.

주변을 둘러보니 군용 트럭에 군인들이 농가에서 돼지 두마리를 잡아서 실고 있는 중이다.

오늘 저 부대원들 '회식"하는 날인가보다.

앳된 병사의 얼굴들에는 오늘 밤에 있을 만찬을 기대하며 안색이 밝다.

집떠나, 애인과도 떨어져,,,얼마나 외롭고 힘들 것인가....

  

하지만 2008년 오늘은

그 때 보았던 병사들이 티벳 전역에서 티벳인들을 학살하는 도살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 젊은 병사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총 칼을 쥐어 내보내서 학살을 명령하는 자들이고,

이를 방조하는 자들이다.

 

이밤도 앳된 병사들의 밝은 얼굴이 간직되어지기를,

티벳의 자유와 평화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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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 린쯔(링트리)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016 - 천장남로 - 닝트리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길을 가다 보면 갈 길을 막는 것은 다양하다.

 

때로는 폭우나 폭설로 길이 막히기도 하고,

돌더미가 굴러서 오도가도 못하게 한다.

 

또한 멎진 풍광이 여행자의 시선과 발길을 멈추게 하고,

새로 사귄 친구가 손을 붇잡고 잠시 머무르기를 청한다.

친구가 머무르기를 청하는 것은 가장 최상의 길막음이다.

 

길막음 중 가장 최악은 보내기로 한 돈이 제 날짜에 오지 않아

여행자의 행보를 막는 것이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거나 걷는 수 밖에 없다.

 

빠이(八一)로 향하는   길을 막은 것은

내가 사랑하는 놈이었다. 그것도 잠시 막은 거지만...

 

그 녀석이 없었으면 중국 여행 하는 동안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많은 인민들에게 닭과 함께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니까..

 

바로 이녀석이다.

 

 

그 내딛는 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급 할 것도 없었다. 사방천지가 자신의 영역이었다.

 

굳이 누구의 소유라고 표할 필요도 없고, 우리에 가 둘 필요도 없는 듯햇다.

스스로 돌아 다니며 먹다가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예전 고향집 암소가 생각났다.

어릴적 논갈이가 끝나면 늙은 암소를 그냥 풀어 놓는다.

그러면 제 스스로 논둑, 밭둑을 따라 풀을 뜯다가 저녁이 되면 주인보다 먼저 집에 돌아가

있었다. 시골 동네에서는 뉘집 소라는 걸 잘알기에 도난의 우려도 없었고,

비록 짐승이라지만 수년을 함께 살아온 덕에 제 집을 잊을리 없었다.

영특하게도 인간이 사용 할 식량에는 눈 길 한번 주지 않고 스스로 먹을 풀을 찾기까지 한다.

 

아마도 우리의 길을 막고 섰던 이 녀석도 이 동네에선 그런 존재인가 보다.

 

하지만 또 다른 녀석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었다.

용맹함은 늑대와도 겨룰만하고 변치않는 충성심을 겸비한 녀석이었다.

 

요즈음은 중국인 부유층에게 사치품으로 인기가 높다는 티벳의 개였다.

 

    

 

빠이로 가다 보면 티벳식 명칭은 잘 모르겠으나 중국인들이 중류지주(中流砥柱)라 불리우는

것이 나타난다.  이름 그대로 강 중간에 있는 돌기둥이다.

 

관광객들이 몇이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아마도 매일 그곳을 지나치는

우리의 운전사 아저씨는 잠시 쉬기는 거녕 속도조차 늦출 생각이 없었다.

 

수만년을 그자리에서 한결같이 버티었을 것인데, 그냥 획 지나가버렸다.

아쉬어도 어디 항변 할 것은 못되었다. 속된말로 운전사 맘대로 아닌가....

 

 

 

그렇게 획 지나가버렸다...ㅎㅎㅎ

 

 

 

하지만 그 길의 풍광은 사뭇 변화무쌍하였다.

 

 

정처없이 길 떠나는 베가본드(vagabond)에게는 하교길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은 잠시나마

떠나온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오늘 도착하게 될 빠이는 저 설산 너머에 있는 걸까?

눈이라도 올 듯 심상치 않다. 

 

 

 

저 설산 너머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는 여행자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길가에 차를 세운다. 왜 섰는지 언제 출발할지 별 말도 없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버스에서 내린다.

아하 생리적 현상을 해결 하라는 것인가 보다. 여기저기 흩어진다.

 

그런데 한참이 지난후에도 출발할 생각이 없다. 일부는 주저 앉아 있다.

이유를 물어보니 2006년 천장공로에서 다수의 외국인을 태운 버스가

전복되어 사상자가 많았다고 한다. 천장공로를 가다보면 사고가 않나는 것이

오히려 신기 할 정도로 험악하다.

 

그래서 당국은 운전사들의 과속을 막기 위해 구간구간을 정해서 출발시간과 도착 시간을

지정해준다고 한다. 1초라도 빨리 목적지(검문소)에 도착하게 되면 약 800위안 정도의

벌금을 물린단다.

 

그렇다고 운전수가 저속으로 다니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목적지에 다다를 쯤 적당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라도 운전사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니 사고는 어느정도 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하는 일 없는 당국이 그나마 잘한 일중의 하나 인것 같다.

 

티벳지역을 여행하다보면(버스 이용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구토를 한다.

아마도 평소 장거리 여행을 자주하지 않아서 그런것 같다.

 

큰 맘먹어야 장거리 여행을 하니 버스타는 일이 익숙치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멀미약을 구비할리 만무하고,,,,,

 

힘들어하는 티벳탄에게 좀 진정이 될까 싶어 생수를 건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그녀의 가족들이 과자며 이것 저것을 답례로 건넨다.

이렇게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어디를 가냐, 어디서 왔냐..자기집이 남가파와봉 근처인데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다들 관심을 표했다.

 

 

어떤 휴게소 보다 아름다운 휴게소였다.

 

주변엔 강도 있어 금상첨화였다. 

 

천장공로는 고개를 넘으며 강을 따라 가는 길이기도 했다.

 

  저 물길 처럼 나도 어딘론가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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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 천장남로(라싸에서-빠이) -길위에서 길을

< 최근 벌어진 티베트인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지지와 경의를 표하며,

  무력으로 탄압하는 중국정부에 대한 항의를 보냅니다. >

 

자신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정치적 권리는 그 어떤 이름으로도 억압되거나 파괴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행중에 만난 티벳인들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015 - 천장남로(川藏南路) -라사에서 빠이 - 길위에서 길을

여행자는 언제나 짐을 쌀댄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며칠이라도 머물렀던 곳은 여행자에게는 이미 익숙함과 안도감을 주게 마련이지요.

새로운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셀레임을 주는 것과 비례하여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두려움이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익숙한 것을 털고 일어날때만이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수 있습니다.

2007년 10월 22일 라싸를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초모랑마와 카일라스, 그리고 시가체, 간체

나무쵸, 데뽕스 등을 아쉽게 못 가보고 라싸를 떠나려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사천 등지를 돌기로 계획한 나의 여행 일정에서 더이상의 시간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음을 기약해 봅니다. 그러나 그리 오랜산 인생은 아니지만

어쩌면 다음이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른 아침(6시) 짐을 사고 채크 아웃을 하고 택시를 탔읍니다. 숙소 앞에는 아침 일찍 떠나는

여행자를 기대하며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사방은 어둠이 깔려 있었습니다.

라싸 북부버스터미널에서 빠이(八一)행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대형과 중형 두대가 있었습니다. 대형은 130원이었습니다.

대형버스의 운전석 옆의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형버스 손님이 다차면 옆에 있는 중형버스에 손님을 태우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소형버스가 더 빨리 간다고 합니다. 늦게 출발해도 먼저 간답니다.

급할 것 없는 여행자인지라 그냥 허허 웃고 말았습니다.

라싸에서 출발한 지 150여 km를 달리자 미라설산(米拉雪山 : 미 라 쉐 싼, Manxung_la, 4900m)이 앞을 막고 있었습니다. 굽이굽이 정상을 올라가자 햇볕이 비치는 곳은 늦가을의 정경이,

음지에는 한 겨울의 정경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가을 단풍과 눈 꽃이 동시에 눈을 아름답게 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차가 심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사진은 찍기 어려웠습니다. ㅎㅎ

그리고 고도가 오천미터에 육박하는 것이라서 멍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멍한 기분을 순간 일깨운 것은 정상에 다다르자 버스안 일행들이

갑자기 지르는 함성이었습니다.

창밖을 향해 온갖 색종이를 날리며 무사히 고개에 다다른 것을 감사히 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역시 정상에는 타르초가 나부끼었습니다.

마치 여기가 정상이다라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이런 의식은 매번 고개를 넘을때마다 행해졌습니다.

아주 어릴적 마을밖 성황당에 이르러 돌무더기에 돌 한줌 더하는 우리네 옛 풍습과 비슷합니다.

삶의 조건이 열악할 수록 신에게 안녕과 축복을 바라는

인간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집니다.

험난한 자연 앞에서는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가 될 뿐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의 가호가 절실한 모양입니다.

미라쉐산을 넘어서부터는 숲의 연속이었습니다.

척박한 티벳의 창탕고원과 라싸 주변을 보다가

울창한 숲지대를 보자 당혹스러웠습니다.

천장공로의 시작

버스안의 승객은 대부분 성지 라싸을 다녀가는 순례객들이었습니다.

일부는 일때문에 오고가는 것 같았습니다.

외국인 여행객은 나 한사람뿐이었습니다.

길은 끝이 없었고 이미 대지는 황금색이었습니다.

붉은색과 황금색 멀리는 설산도 보입니다.

운전기사 옆자리에 앉아서 서로 담배도 주고 받으며 피우다가

이른 아침 출발한 관계로 피곤도 하여 좀 졸다가 눈 앞에 나타난 풍광에 취하다가

다시 담배한대 피우는 그런 버스여행이었습니다.

,

저 멀리 야크를 방목하는 티벳 유목인의 거처도 보입니다.

작은 차가 앞질러 가기도 합니다.

길은 사람과 차의 통로이지만 이쪽과 저쪽을 구분짓는 경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길을 경계로 느끼는 것은 사람만이 그럴뿐입니다.

풀을 뜯는 야크는 이쪽 저쪽 경계없이 넘나듭니다.

차가 와도 여유만만입니다. 차 또한 급할것 없이 기다립니다. 야크가 건너기를....

멀리 보이는 집들은 지붕이 색다릅니다.

새마을 운동이라도 한 모양인듯 새롭게 페인트칠한 양철지붕으로 되어있었습니다.

그것도 보라색 붉은색, 파란색 동네마다 약간씩 다릅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정차한 길가 마을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길가 마을에 차를 세웁니다.

라싸에서 아침 일직 출발하면 점심쯤에 다다르는 마을입니다.

자연스럽게 식당들이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버스타고 가다가 밥 먹는 것이 익숙해저 맘 편히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킵니다.

 

 

혼자 식사할때는 간편하게 면 종류를 먹습니다. 10원입니다.

야크 고기로 고명을 얹은 국수입니다.

점심을 먹은 식당입니다.

식당에서 먹거나 혹은 각자 준비한 음식으로 요기를 한 다들 여유로운 휴식을 취합니다.

 

식당 뒤편에서 스레기 더미를 뒤지는 야크를 보았습니다.

까마귀도 함께 쓰레기를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다시 출발하면서 본 풍경은 매우 변화가 많았습니다.

노오란 단풍이 절정을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성지 라싸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휴식 모습도 보입니다.

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오랜 오체투지의 순례라서

다들 지쳐 보이고 행색이 초라하지만 라싸가 가까워서인지 행복으로 충만한 듯 여겨집니다.

순례자들과 나의 여행이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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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 암드록쵸 (下) - 길위에서 길을

암드록쵸 (下)

암드록쵸 호수를 한바퀴 돌고자 했으나 아직 건너편은 도로포장이 되질 않았다.

우리의 빵차는 비포장도로로 진입하였으나 이내 곧 차바닥이 닫는 바람에 돌아 나오자고 하였다.

짚차였으면 충분히 한바퀴 돌 수 있었을 텐데..아쉽지만 돌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오전에 차량문제로 몇가지 골치 아팟으나 함께 간 일행이 대만족하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아침에 기다리게 한 것은 여전히 미안했다.

 

암드록쵸 중간에 있는 마을에서 조그만 가게를 발견,

컵라면을 사먹었다. 친절한 티벳탄은 티엔차를 대접하였다.

 

그 가게는 동네 사람들 사랑방 구실을 하는 곳인가 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텔레비도 보고 그랬다.

 

아름다운 동네였다.

 

담 벼락엔 야크똥을 말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무하나 찾기 어려운데,

이런 자연환경에서 야크똥은 매우 유용하고 소중한 연료일 것이다.

 

 

 

 

 

 

 

 

 

 

 

늦가을 추수하는 모습도 볼수 있었다.

 

 

 

 

다양한 물빛과 설산 그리고 야크

 

 

 

 

 

 

 

 

 

 

 

그렇게 암드록쵸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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