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좋아했던 알란 파슨즈 프로젝트 그룹의

올드 앤 와이즈라는 서정적인 노래가 생각난다.

여행지에서 만난 늙어 현명해보였던 사람들... .

 

 

중국 광저우에서 토미토리(2층침대 여러개가 한방에 있어 값이 싼)에서 만난

네덜란드 할아버지. 그의 나이가 일흔 여섯이었다.

하얀 백발에 풍만한 체구의 장기 투숙자로 동네에선 싼타할아버지로 불리웠다.

다 벗고 잠을자다 밤에 화장실 갈때면 동네 중국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란단다.

그는 그 나이에 섹스 씨디와 잡지를 침대위에 늘어놓고  나에게 권하기까지 했다. 

그 에너제틱한 감성에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지도를 펼치자

이 중국보다 작디작은 유럽의 패권주의가 문제라며 역사의식 또한 보여주셨다.

 

이 70대 배낭여행자의 모습은 내 40년뒤 모델로서 아직도 귀감이 되고 있다.

 

 

인도 마날리에서 만난 사우디에서 사업하다가 매년 여행 온다는 한국 아저씨

그의 나이 예순이었나 예술 둘이었나 그랬다.

큰 가방 두개를 짊어지고 혼자 다니는데 여행의 맛이 있단다.

아직 미혼인거 같은데 김치를 얼마나 맛나게 담궈드시고 음식을 잘하는지

사우디의 한인 모임 부인들이 겸연쩍어 할 정도란다.

내 숙소 배란다에 의자놓고 술 한잔하면서 서로 군침흘리며 먹는 얘기를 나누었었다.

사람은 얼굴도 얼굴이지만 목소리에 나이가 든다.

그런데 이 아저씨 아직 청년의 감성 그대로의 목소리다.

헤어질때 아쉬워하며 나에게 그 귀한 참치캔 세개와 라면 세봉지를 분양해 주셨다.

 

이 한갑나이 배낭여행자의 모습은 내 한갑때 모델로서 아직도 생생하다.

 

 

현명해지는것은 변하지만 변치않는 것이다.  

나도 그들같이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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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9 03:12 2008/02/29 03:12

 

 

 

먼저 여행했던 친구의 말

 

"어느 순간 정말 꼼짝하기도 싫고 헬리콥터가 와서 나를 한국으로 실어갔으면 하는

때가 있었어. 장기여행자는 그런 상태가 한 번쯤은 와."

 

 

여행은 돌아오니 낭만이고 무용담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은 수많은 삐끼와 장사치와 사기꾼들을 상대해야 하는 아귀다툼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남아공을 여행할때는 이 호객꾼들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남아공의 밤거리의 위험함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장거리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밤에 도착할때 느꼈던 그 압박감과 스트레스... .  

 

그 한꺼풀을 벗겨내야만 배낭여행자들이 염원하는 리얼세계, 현지사람과의 접촉이 가능하다.

이게 어디 쉬운일인가.

똑같은 여행지에서도 저마다 자기 수준만큼 여행한다.

 

그럴때마다

여행 초보자였던 내가 객지에서 감정을 다루는 방법은

'호기심을 드높이기'이다.

이는 한번도 가보지못한 공간에 다다르고 그 공간이 어떨까하는 호기심을 마음에 품어

머리의 상념을 날려버리는 방법이다.

 

잠비야에서 잠베지강으로 뛰어내리는 111미터 번지점프를 신청하고 난 날 밤

내 머리는 내가 왜 100불(몇초 뛰어내리는데 85불,  그 모습을 찍어주는 사진 15불)씩이나 주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걸 신청했을까를 고뇌하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떨어질때 그 몇초동안 내 인생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질거야. 그때 그 기분이 어떨까."

 

난 다음날 머뭇거림없이 사진사에게 억지웃음을 지어보이고 한번에 슉 떨어졌다.

물론 그 순간 내 인생사의 파노라마는 없었지만 곤두박질이라는 단어의 느낌은 알았던것 같다. 

 

 

 

여행은 호기심과 그걸 확인하려는 욕구에 의해 지속된다.

그것은 지금도 적용되는 삶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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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8 15:07 2008/02/28 15:07

 

 

 

여행을 세배로 즐기려면

우선 대형서점의 외국코너에서 쓸만한 세계지도를 산다.

이 지도를 매일 처다보면서 나만의 여행코스를 세운다.

그러다보면 관심있는 지역이 생기고 관련한 기행문이나 역사서를 사거나 빌려서 본다.

조금만 터득되면 이 재미가 쏠쏠하다.

첫번째 여행은 상상하는 여행이다.

 

 

그리고 실제 여행을 떠난다.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과감하게 배든 비행기든 표를 끊어버린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풍광과 거리에 온몸을 내맡긴다.

일기장을 구입하라. 평소에는 며칠을 못 넘기던 일기가 그냥 써진다.

갈 곳이 오지탐험이 아니라면 여행자용 피씨방이 있다.

블로그에 흔적을 남겨서 객지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라

두번째 여행은 느끼는 여행이다.  

 

 

이제 여행에서 돌아왔다.

여행의 무용담은 독이 될수도 있다.  빨리 현실을 직시하고 생활에 적응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 순간 다시 그 여행의 기록을  잠깐 들여다본다.

여행지에서 호기를 부리는 나를 떠올리며

지금 지지고볶는 나와 비교해본다.

세번째 여행은 돌아보는 여행이다.

 

 

 

이 글은 세번째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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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7 20:58 2008/02/27 20:58
  1. re
    2008/03/04 11:21 Delete Reply Permalink

    두번째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여행은 혼자 다니는 중이고요, 세번째 여행 글들이 가슴에 팍팍 와닿네요(벌써? ㅎㅎ) 놋북에 수첩에 블로그에 끄적끄적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용담'으로만 끝나면 안되니깐요. 세번째 여행이야기 계속 적어주시와요~~

  2. 아이비
    2008/03/04 23:17 Delete Reply Permalink

    저도 여행을 돌아보면 어떻게든 계획대로 움직이려는 강박같은것도 있었던것 같아요. 쉴때는 쉬면서 리듬을 타면서 여행을 즐기기 바래요.~ 멀리서 보내는 님의 응원에 힘을 받아 저도 계속 세번째 여행을 떠나보렵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캠랑

 

영어잘하는 중국아줌마 소개로 그의 집에 열흘을 묵었었다.

앙크로와트의 특급 호텔 자제과에 근무하는 그는

새벽같이 나가 일본어와 영어를 공부한다.

어느날 한 공원에서 그가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한국에 가서 돈벌어와서 작은 여행사 차리는게 내 꿈이야. 

날 좀 초대해줘."

"난 그럴 처지가 아니야."

 

 

네팔 트레킹에서 만난 셀파

 

에베레스트 쿰부 히말라야로 가는 길에 한 곱상한 외모의 셀파를 만났다.

비스킷을 나눠 먹다가 3일을 함께 길을 걸으며 같이 먹고 자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나 내일이면 저쪽 방향의 내 집으로 가. 돈 조금만 주면 내가 가이드 할 수 있어."

"난 누구를 고용하고 싶지않아. 내 힘으로 배낭을 매고 오르고 싶어."  

 

 

탄자니아에서 만난 고등학생

 

수도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스물한살이라는 고등학생을 만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우는상을 지으며 말한다.

 

"아버지가 선생님인데 월급이 100불이야. 그런데 내 일년 기숙사 학비가 총 1000불이야.

좀 도와줘."

"난 아끼며 아끼며 길을 지나가는 배낭여행자야."

 

 

...

 

그런데 돌아와서는

그 누구에 대해 연민을 갖기 보다는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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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23:48 2008/02/25 23:48

 

 

여행하면서 뭐가 좋았냐는 질문을 받을때

먼저 얘기하는 대답

 

 

길눈이 아무리 밝아도

헤멜 수 밖에 없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의 에피소드는 이순간 발생한다.

 

배트남 하노이 구시가지

100만대의 오토바이와 함께  그 복잡한 미로를 걸을때

숙소에서 나와 이길로 이길로 왔었지를 계산하다 계산하다

머리가 벅차올라 그냥 포기해 버리는 순간이 있었다. 

 

길에서 물어야 한다.

 

안녕하세요(그나라말로)

손짓 발짓(인류공통의 언어)

감사합니다(그나라말로)

 

평균잡아 하루에 열명정도의 현지사람들에게

대화를 청하고 눈빛을 주고 받았다.

총 오천오백오십명정도의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돌아왔다. 

이것이 여행에서 가장 큰 수확이다. 

 

 

그런데 돌아와서는 사람들 만나기가 녹녹치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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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4 02:05 2008/02/24 02:05
  1. re
    2008/02/24 22:32 Delete Reply Permalink

    아이비님의 여행기를 읽으며, 여행준비를 하던게 얼마전 같은데
    이제 제가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네요. ^^
    그렇죠... 정말 많은 사람들과 눈빛을 나누는 것 같아요.
    어떤걸로 환산할 수 있는건 아닌것 같고, 그냥 마음속에 하나씩 차곡차곡 남네요.
    요즘도 가끔 아이비님 포스팅 참조한다는.ㅋㅋ

  2. 아이비
    2008/02/25 00:54 Delete Reply Permalink

    블로그에 가보니 코스가 인상적이더군요.^ 여행자들 얘기로 티벳 더 망가지기전에 나도 가보고 싶네요. 그런데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는 건가요? 아무튼 건강하고 별탈없이 여행 잘 하세요.~


 

 

네팔 트레킹 할때 처음 일주일 동안

이 나무 지팡이는 동료의 손에 있었다.

 

동료는 돌아가고 이 나무 지팡이는 내 한 쪽 손에 쥐어졌다.

점점 이 지팡이는 내 여행의 친구가 되어갔다.

 

인도 뭄바이에서 아프리카 나이로비를 경유할때

공항에서 지팡이의 보관확인 끈이 없어졌다.

 

나는 내가 온 발길을  되짚어

공항바닥에서 그 끈을 찾아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는 지팡이를 봉고버스에 놓고 내렸다가 뛰어가서 찾았다.

인도 뿌네에서도 정류장에 놓고 릭샤오토바이버스를 탔다가 다시 돌아가서 찾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 지팡이를 잃어버리면 

내 여행은 끝이라는 마음으로 여행했다.  

 

덕분에 난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지금 이 지팡이는 조용히 내 안방 귀퉁이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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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0 22:53 2008/02/20 22:53

 

 

65리터 배낭안에

사는데 필요한 모든것이 들어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옷

나라를 넘을 때마다 치던 러시안집시카드 책 한 권

해당 지역에 대한 가이드북 한 권

인도 델리에서 산 건전지 네개 들어가는 컴퓨터 스피커 한 세트

태국 방콕에서 산 CD플레이어와 음악CD들

네팔 루클라에서 물려받은 지저분한 이불대신 할 수 있는 얇은 침낭하나

인도 다람살라에서 교환한 얇은 숄 하나

서울 교보문고에서 산 세계지도

등등

 

그때는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갔다.

여행은 이삿짐을 단번에 나르는 일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 살면서는

점점 필요한게 많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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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9 01:36 2008/02/19 01:36

 

(주)

이번 주 겨울추위만 넘어가면 봄이 온다고 하네요.

봄이 오는 소리를 기다리면서 블로그도 다시 시작해보려고

집에 인터넷 신청도 하고 뻑뻑한 키보드도 새로 장만했습니다.^

 

이글은 제가 활동하는 매체에 기고한 글인데

소재가 '나의 일상공간이야기'  이런겁니다.

 

제 마지막 포스트가 '잘리다'로 끝나  

혹 뭐하고 사나 궁금하셨다면 이글이 약간의 정보가 될 수 있겠네요... .

 

 

 

 

 

 

고시원에서 안방텐트까지

 

 

 

96-97년 총파업이 끝난 늦겨울, 운동을 그만둬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속한 단체에서는 ‘인생 별거 없다’며 3개월 쉬고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그렇게 백수로 봄 길을 거닐면서 생각해낸 직업이 이른바 ‘인테리어디자이너’였다. 고객들이 자신의 공간을 변화시키는 벽지를 고르고 색을 칠하는 미적 감각을 돕는 카운슬러 이거 멋질 거 같아. 이러한 운동권 아류스럽고 낭만적인 생각은 찾아간 학원의 담당자가 말하는 이 업계의 냉혹한 현실에 금세 기가 죽어 버렸다. 나는 3개월 뒤 다시 복귀했다.

 

 

시간을 흘러가고 21세기가 되었다. 활동도 나름 잘 풀려나갔다. 그 정점이 대학 졸업 후 운동 10년을 자축한다는 명분으로 전세금 빼서 지구의 서쪽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누구말대로 온갖 폼 다 잡으면서 지구의 반 정도를 쏘다니다 금의환향했는데 아무래도 기가 다 빠져버렸나 보다. 그때부터 완전 내리막길이었다. 2006년 초겨울 서울 봉천동 노벨고시원 입성은 관계와 활동, 생활 모두가 벽에 부딪힌 내가 선택한 공간이었다.

 

 

나중에 홍대쪽 고시원 생활하던 운동권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왠지 반가운 마음에 이 고시원 프렌드와 술한잔 하게 되었다. 대화를 해보니 고시원세계가 좀 더 눈에 들어왔다. 정돈해서 말해본다면 고시원은 세 등급으로 나뉜다. 우선 상급은 벽돌로 벽이 시공된 고시원이다. 벽의 재료가 벽돌이냐 아님 전통적인 베니어합판 인지가 상급과 중급을 가르는 기준이다. 고시원 상의 상급은 방에 화장실이 달려있고, TV와 냉장고가 구비되어 원룸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 어느 날 지나가다 ‘원룸고시원’이라는 간판을 본적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분명 이는 고시원생들의 내면화된 원룸으로의 신분상승욕구를 들추어내는 광고기법일 것이다.

 

 

중급과 하급 고시원을 나누는 기준은 밖으로 창문 있는 방이냐 복도쪽 방이냐는 것이다. 물론 합판수준의 벽은 동일하다. 나는 그때 3만원이 더 비싼 창문 있는 방을 선택했다. 전망이 보여야 살지 않겠는가! 작은 책상, 아주 작은 침대, 얇은 책꽂이로 딱 들어찬, 창문으로 작은 재래시장이 내려다보이는 방이었다. 파라솔 밑에 야채거리를 놓고 파는 아주머니, 열쇠집 할아버지, 두부집 아저씨가 내려다 보였다. 처음 여행계획을 세울 때 그 중 하나는 각 나라마다 시장이 내려다보이는 여관에 한 달씩 묵는 것이었다. 숙소의 2층 테라스에 앉아 시장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이유 없이 바라보자. 그리고 수시로 시장거리를 왔다 갔다 하자. 그렇게 한 달을 묵으면 그 공간에 대한 인상이 강렬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있게 되지 않을까? 많이 움직이는 여행보다 이게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하는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고시원 생활이 며칠 지나면서 생겨난 느낌은 어떤 모종의 이질감 같은 것이었다. 처음엔 이 느낌이 내가 마치 어떤 나라 한 도시에 여행을 와있는 듯한 느낌으로 여겨졌었다. 3층 방에 있다가, 때가 되면 1층 부엌에서 ‘햇반’에 ‘3분카레’를 비벼먹고 나와 도서관을 갔다가 공원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시장근처 슈퍼에 들르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일상은 장기여행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기여행자는 볼거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 생활이 하루 이틀 반복되면서 다시 든 생각은 이건 여행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여행에선 그곳의 사물과 대상과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서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어떤 상념이 생길 틈이 없다. 그런데 고시원생활에선 이 세계와 나는 점점 더 멀어지고 내가 격리된다는 느낌이었다. 8~90년대 소수의 외국배낭여행자들이 서울에 와서 묵은 곳이 영등포역 뒤 8천 원짜리 쪽방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나도 여행 중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렇게 했었다. 배낭여행자는 가장 싼 것을 선택하는 게 기본정신이다. 인도 델리의 유명한 여행자거리는 빠하르간지라는 곳인데 델리사람들은 이해를 못한단다. 그 좋은 숙소를 다 놔두고 그 진흙탕 거리에 왜 그리 꾸역꾸역 몰려가냐는 거다.

 

 

8~90년대의 쪽방은 21세기 들어 제도화 상품화 과정을 거치면서 고시원으로 재탄생했다. 붕어빵에 붕어 없고 고시원에 고시생 없다. 서울이라는 거대도시를 당당하게 리모델링 하고 있는 고층 아파트와 대형 쇼핑상가의 그 화려한 이면에 00고시원들은 음침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서열화된 한국주거공간의 최하층인 00고시원의 익명의 고시생이었던 것이다. ‘일상을 여행처럼’이라는 우아한 내 삶의 모토를 위해서라도 우선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2007년 초 봄 낙성대공원에서 탐스럽게 피었다 지는 하얀 목련꽃을 바라보면서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느꼈던 것 같다. 목련꽃은 필 때는 그렇게 예쁜데 질 때는 그렇게 허접할 수가 없었다. 선이 굵은 목련꽃...

 

 

아무튼 2007년 6월부터 다시 상근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거주공간도 노벨고시원에서 사무실 근처인 황금고시원으로 이사를 왔다. 역시나 창문 있는 방을 선택했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를 옥죄라는 컨셉으로 난 아주 작은 창으로는 골프장과 아파트가 보였다. 방이 더 좁아져 대각선으로 누워야하고 여름에 복도쪽 방 아저씨가 에어컨 틀어달라고 하며 고시원 총무와 몸싸움 하는 바람에 고시원주인의 역공으로 초가을까지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던 일 등등 70년대 풍 소설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 생각나는 칙칙한 얘기들은 이제 그만 두련다. 하나 터득한 경험은 노벨고시원 시절에는 베니어판을 사이에 두고 나던 옆방 백수청년의 소음이 그렇게 신경이 쓰였는데 황금고시원으로 오면서는 그냥 들을 만한 수준으로 여겨지더라는 것이다. 1년 동안 고시원의 그 일상적인 부대낌의 현실을 마주하는 공력이 쌓여지면서 썰렁하다고 정평 나고 운동권 활동 중에도 3D업종이라고 회자되는 조직의 상근업무도 별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2007년 늦가을, 드디어 나는 한 평도 안 되는 고시원에서 무려 열두 평이나 되는 양평동의 방 두 개짜리 1층 슬레트 기와집 독채에서 살게 되었다.

 

 

전월세가 섞인 이 집 일대는 이른바 재개발지역이다. 내가 활동하는 사무실 아래층에도 번듯하게 재개발 추진위가 들어서 있다. 그래서 이 다닥다닥 붙은 1층짜리 집들이 아직도 생명을 보존하고 있다. 몇 년 후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집이다. 허름한 이 집들 중 내가 계약한 집은 준수한 편이었다. 주인아들의 신혼집이었던 터라 집 내외부를 깔끔하게 개조공사를 했고 작은 마루 겸 부엌에는 에어컨까지 달려있다. 여기에다 작은 앞마당이 있고 채소를 키울 수 있는 작은 옥상까지 완전히 독립적으로 구성된 집이었다. 일 년 동안 고시원에서 부대낀 나로서는 더할 나위없는 대궐과도 같은 집에 온 것이다. 내가 7살 때 살았던 미아리 언덕 1층집에서는 어머니와 나, 고모와 아저씨, 그리고 세 들어온 야구선수 김재박의 누나 부부 이렇게 살았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김재박 감독의 팬이다. 그런데 이젠 완전히 나 혼자만의 집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있었다. 부동산에서 소개를 받아 집을 볼 때 집은 단번에 마음에 들었으나 가스보일러 밸브시공이 통째로 된 것이 흠이었다. 뭐 이 가격에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기에 계약했지만 한 번 보일러를 돌리면 안방 건넌방 마루 화장실바닥까지 다 가스열이 투입되는 이 가스비를 어떻게 감당할지 참 난감했다. 전세금은 보다 못한 집에서 지원을 받았지만 운동권상근비로 월세내면서 생활하는데 마음 놓고 보일러 온도를 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겨울이 시작되는데 말이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그 최종결론은 안방텐트전술이었다.

 

 

우선 인터넷쇼핑몰에서 저렴한 3~4인용 텐트를 구입했다. 깔끔한 녹색텐트가 도착했다. 길쭉한 안방에 텐트를 쳤다. 텐트 안에 가지고 있는 퀸 사이즈 크기의 자석요와 극세사 침구를 집어넣었다. 이제 기본 설치는 되었다. 보일러는 외출로 해두고 자석요의 전원을 켜고 온도를 적당히 유지하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지퍼를 내리고 눕는다. 바닥은 따뜻하고 외풍은 막아주고 가스비는 절약되니 이 어찌 흡족하지 않으련가. 사무실의 사람들, 몇몇 사람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하면서 이 안방텐트를 선보였을 때 전반적인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 안방이 참신한 아이디어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텐트 안으로 스탠드를 끌고 와서 책을 읽으려고 마음은 먹지만 각종 생각에 빠지다 자고야 마는 생활이 반복되던 어느 날 밤이었다. 텐트에서 자다가 나와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어두운 공간 속에 안방텐트가 스탠드 불빛에 의해 은은하게 녹색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텐트는 하나의 상징물처럼 내 마음속에 있던 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난 작년 봄 탐스러운 목련꽃이 그렇게 허접하게 쭈그러지는 걸 보면서 현실을 깨달았었다. 이제 다시 깨닫는다. 삶도 활동도 그 굴곡의 과정을 담담하게 거칠 수 있어야만 비로소 탐스러운 목련꽃을 피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삶의 평범 아닌 평범을 다시 생각해본다. 올 봄 목련꽃이 피어날 즈음에 다시 낙성대공원에 가보련다. 작은 시장거리에서 내가 머물렀던 노벨고시원의 그 방 창문을 올려다보며 미소 지으련다.

 

 

 

 

아직은 춥다. 빨리 꽃피는 봄이 왔으면 좋겠다. 나의 ‘안방텐트전술’은 올여름 시즌 ‘마루모기장텐트전술’로 이어질 계획이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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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1 23:19 2008/02/11 23:19
  1. 자일리톨
    2008/02/14 19:30 Delete Reply Permalink

    저도 블로그 안 쓴지 엄청 오래되었지만 이따금 아이비님 블로그에 들렀었더랬습니다. 이렇게 글이 올라오니 반갑네요. 고시원에서 생활하신 얘기도 저에게는 목련꽃의 기품으로 다가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2. 아이비
    2008/02/15 16:17 Delete Reply Permalink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2004년 겨울 이 여행초보자에게 관심을 보이며 힘을 주던 자일리톨님도 잘 지내셨겠지요. 30대 샐러리맨의 생활의 지혜를 듣고 싶네요.^ 요즘 대궐같은 기와집에서 우아하게 살다보니~ 그동안 놓쳐왔던 것들도 다시 보이고 그러네요.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061013(금) 

- 노동. 오전은 상가 10층 옥상 방수작업을 위한 핀따기, 청소, 고소리 솔질, 각종나르기를 했다. 오후는 비슷한일로 옥상 물땡크위 방수작업 보조

- 오늘 문제가 생겼다. 지난 이틀 좀 더 힘들었고 어제 밤 평가와 술자리가 있어 두시간 밖에 못잤다. 일을 하는데 허리에 힘이 안들어간다. 허리 구부리고 청소를 한참하다 펴는데 허리가 아프고 안펴진다. 사장도 같이 있는데 눈치없는 이씨아저씨 재 허리 못펴는거좀 봐라고 얘기한다. 그냥 키가 커서 그런거라고 대답했다. 몸이 힘드니 시키는 일에 대한 파악력 순발력도 떨어진다.

- 안산팀 둘은 오늘까지만 일하기로 했나보다. 어제 사장과 사장의 형 노씨아저씨와 봉고차를 타고 오는데 안산팀 미장이에 대해 일이 의욕이 없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예상보다 일감이 줄어든 상황에서 이들이 1차 정리대상이 된 것이다. 안산팀 형제중 동생 어두운 얼굴로 옥상에 올라와 사장과 얘기하고 간다.

- 3시반 참시간이다. 옥상 물땡크위에서 미장사장과 수원팀 미장이 두분과 막걸리 한잔하면서 대화를 했다. 노태우때가 가장 건설경기가 호황이었던 시기란다. 그때 일산 분당등 5개 신도시 건설계획이 나왔단다. 문제는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설사업을 동시에 하느라 사람이 모자르고 작업의 질이 떨어지고 그때부터 중국 건설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단다. 아저씨들 머잖아 중국인노동자들이 이 곳을 다 차지할 거라며 불안한 속내를 드러낸다. 차기 대통령감은 이명박으로 통일이다. 

- 힘든 하루를 마치고 봉고차로 오산으로 왔다. 사장 같이 저녁먹고 가란다. 먹고 소주몇잔하고 헤어지는데 사장이 말한다. 내일까지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란다.

- 어제 7만원으로 맞춰달라. 덜 준돈 달라고 할때 앞으로 열흘 남짓이라고 했는데 이건 더 일찍 잘리는 거다. 어제 체불임금달라고 한것과 오늘 내 몸 상태 안좋은 것이 고용에 영향을 준 것이다. 어짜피 그사장 사람이 좋든아니든 사장이라는 위치에서 머리를 굴린다. 함께 잠 잘 때 내년까지 함께 하자고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게 내일까지다.

- 터벅터벅 센터로 걸어왔다. 약국에서 붙이는 파스를 사서 허리 양쪽에 붙였다.


061014(토)

- 노동. 오전 상가 옥상 방수작업 보조, 각 층 난간 에어컨 놓을 씨레기 자리 방수작업을 위한 레미콘 섞기, 양동이 담아 나르기 10층부터 6층까지. 오후 5층부터 2층까지 방수작업보조와 크랙난 것 보충 솔질작업 함.

- 수원35년미장경력 아저씨에게 오늘까지 한다고 말했다. 아저씨말 이쪽일 이런게 더러운 일이란다. 점심시간 막걸리 한잔 따라주며 이 일 하지말고 그전에 하던일 하란다.

- 일 마치고 봉고차타고 다른 분들에게 작별인사했다. 사장 미안하단다. 그리고 전화하겠단다. 그리고 이 일 하지마란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사장은 사장이다. 센터로 걸어오는데 기분이 꿀꿀하다. 길거리에서 순대와 떡볶이를 사먹었다.

- 요즘밤은 동네 돌아다니기 좋은 날씨다. 한참을 걷다가 음료수 하나 사서 가게앞 플라스틱의자에 앉아 가을하늘을 쳐다본다.

061015(일)

- 긴장이 풀려 그런지 몸 이곳저곳이 통증을 호소한다.

- 센터가 주최하는 이주노동자와 지역민을 위한 문화제를 한다. 꽃다지도 온다. 일찍가서 행사준비를 했다.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사진과 비디오를 번갈아 찍었다. 문화제가 끝났다. 일산으로 올라갔다.

061016(월)

- 어머니는 당일 관광으로 오대산 소금강가고 나는 일산아파트에 누워서 보냈다.


061017(화)

- 아침 빨래 다림질을 해 배낭에 넣고 집을 나와 노뉴단에 갔다. 노동영화제 준비를 하고 저녁에는 담궈놓은 매실주를 먹었다. 다들 가고 사무실에서 잠을 자는데 모기가 달라 붙어 잠을 설쳤다.  


061018(수)

- 낙성대에서 전철로 수원으로 가서 화성가는 버스를 탔다. 화성이란 명칭은 잘 안쓰나보다. 운전수 아저씨 남양이란다. 상가거리 둘러보고 다시 버스 두 번타고 제부도 입구까지 왔다. 지금 한시가 넘었는데 밀물때라 4시까지는 섬으로 못들어간단다. 입구에 000와이키키라는 해수탕에 들어갔다. 오른쪽 가슴 겨드랑이쪽 근육통이 안풀린다. 각종 해수온탕에 몸을 담궜다. 

- 수원으로 돌아올때 퇴근길이라 차가 막힌다. 센터로 내려왔다.


061019(목)

- 좀 늦게 일어났다. 근육통은 여전하다. 오산도서관으로 가서 일반열람실에 들어갔다. 각종 시험준비하는 사람들이 죽도록 공부를 하고 있다. 책을 읽는데 눈이 감긴다. 오늘 걷기 좋은 날씨다. 북쪽으로 죽 걸었다. 아파트 촌을 지나 고속국도를 지나 작은길로 논두렁을 지나 공사용도로를 지나 다시 오산쪽으로 걸어왔다. 가을향기를 살짝 느낀다. 배가 고파 보이는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사먹었다. 오산으로 들어와 시장 둘러보고 목욕탕으로 갔다. 수면실에서 좀 자고 탕에서 몸 풀고 나와 센터 부근 슈퍼의자에서 가을하늘 바라보다가 들어왔다.  



***

- 6주정도 경과했다. 실제로는 일한지 한달이 된다. 석달중 3분의 1인 초반부가 흐른 것이다. 초기 적응과정이었다.

- 그간 적응해오던 00신도시 상가 미장보조일이 끝났다. 앞으로 노동영화제가 끝나는 11월 중순까지는 주5일(화~토) 건설용역사무실에 나간다. 그 이후는 월급제 공장에 나간다.

- 그동안 무작정 열심히 일을해서 근육통을 얻었다. 앞으로는 요령있게 일을 한다. 이번주는 몸을 추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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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0 05:16 2006/10/20 05:16
  1. nudity
    2006/10/20 17:37 Delete Reply Permalink

    그 요령이라는게 참으로 요령부득인것이라 몸으로 체득되기까지 상당한 시일을 요할게다. 어쨌든 쉬는 동안에도 계속 몸을 움직이며 쉬는게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싶다. 암튼 몸 잘 추스리고 아프지 말어라~~^^

  2. aibi
    2006/10/20 20:20 Delete Reply Permalink

    nudity/네말대로 앞으로 얼마나 요령있게 일을 할수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건설미장보조일 이건 절대 막노동이 아니다는 생각이다. 안그래도 오늘 시원한 가을공기 마시며 오산 개천가 산책로를 죽 걸었다.

  3. 노동
    2006/10/24 00:53 Delete Reply Permalink

    힘들었습니다. 잘리는 것이 매일인 일용공의 힘듬을 공감하며
    다른 일자리를 또 어디에서 구할지
    선택할수 있는 자유가 있어서 좋겠습니다.
    자유인으로 살기는 쉽지 않은데 너무 아름다운 님의 걷는 모습이 ! 세상의 평화를 온몸에 안고 걷는모습
    노동자의 고뇌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노동의 여유를 차자나서고 싶은데 정일님이 대표로 누리고 있어요

  4. nudity
    2006/11/30 12:05 Delete Reply Permalink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 연락 좀 하시게~~^^

  5. 꽃초롱
    2006/12/18 21:58 Delete Reply Permalink

    aiby/뉘시온가 몹시 궁금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님의 글에 답글을 남길 수 있어 다행입니다..요즘 뭐 하시느라 꼼짝을 안으시는지 ?nudity/말씀대로 연락좀 주세요.

  6. nudity
    2007/01/01 08:09 Delete Reply Permalink

    여전히 두문불출이구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니 별 일이야 있겠냐만은 그래도 너무 그리 무심하게 지내진 마시게나~~
    어쨌든 또 한 해 지나갔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했으니 소망하는 모든 것 다 이루시게나~~^^

  7. 뻐꾸기
    2007/02/21 02:20 Delete Reply Permalink

    아직 안 돌아오셨네요. 오랜만에 와 봤어요.


 

 

060929(금)

- 오늘도 주된일은 벽 정리작업이다. 핀을 따고 못을 뽑고 망치로 일명 똥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천장 근처까지 손이 자리기 위해 작업자들이 제작한 나무 받침대인 우마를 들고 옥상부터 내려오면서 정리한다. 계속되는 못질이 손목에 하중을 준다. 

- 40키로 포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나를것인가? 노씨아저씨는 가슴팍으로 안는게 좋다고 하고 사장은 등으로 매고 가라고 하고 수원팀의 일명 김부장은 한쪽손목 인대가 고장나서 그런지 어깨로 맨다. 나의 경우 등으로 매는게 가장 수월하다. 그런데 아직 바닥의 포대를 들어 어께로 가는 부드러운 동작이 서투르다. 근력은 있어야 하지만 힘으로 하는건 아니라는데 이건 참 어려운 문제다.   

- 하루의 흐름 : 사장과 같이 안자고 오산에서 작업장까지 버스로 출퇴근 하기로 했다. 알람을 5시 5분에 맞춰두고 기상. 세면하고 정리하고 나와 걸어 정류장에 가면 5시 40분이 넘어감.  5시 50분 버스를 타면 20분 만에 상가건축공사장 입구 도착. 그때부터 동이 트기 시작한다. 오후 5시반에서 6시 사이에 일이 끝난다. 작업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나와 정류장에 앉아 지는 붉은 해를 바라본다. 이따금 다니는 버스를 타고 오산으로 가면 7시. 하루중 14시간을 일과 이동준비로 보내고 있다. 이렇게 거의모든 시간을 바쳐 일해도 하도급의 족쇄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은 이전보다 낮아지는 추세다.


060930(토)

- 오늘도 벽 정리작업과 사장이 지시하는 포대나르기. 높은곳 미장을 위한 아시바쌓기를 하다. 나는 안산팀 수원팀 충청팀 미장이의 조수라기 보다는 사장직속으로 벽정리 포대나르기 미장보조등 제반 준비작업을 한다. 이 미장팀의 작업 규모가 있어서 쉴틈없이 일한다.

- 이 일을 소개해준 벽돌나르는 조적 보조하는 남자와 매일 대화를 한다. 노숙자라는데 선한 눈매를 가졌다. 일자리 소개를 잘 해줘서 술한잔 사겠다고 했다.

- 버스를 타고 오산으로 왔다. 공장 망해서 싸게 판다며 여러 가지 상품을 거리에 늘어놓았다. 손목 압박보호대를 천원주고 샀다. 난 왼손 왼발잡이인데 꼭 왼쪽만 다친다. 

- 센터의 간장공장이 원룸으로 이사하는날이다. 하여튼 거길 가서 약간 힘을 보태고 술을 먹었다.


061001(일)

- 일산 어머니 집으로... .


061002(월)

- 노뉴단으로 출근했다. 

-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10회 노동영화제 진행역할을 맡아 8월말부터 매주 1회 노뉴단 출근하고 있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은 학생운동이후의 내 첫 활동공간이다. 

- 저녁 전철타고 오산센터로 내려가다.

- 배낭을 매고 간장공장 집으로 가서 잠을 청하다. 그런데 잠을 설쳤다.


061003(화)

- 28분을 걸어 5시 30분 공사장가는 버스 탔다. 아직 밤이다. 내가 작업하는 상가건물 앞에서 동트기를 기다렸다.

- 오늘의 주된 노동은 시레기 난간 청소작업이다. 건물 층마다 밖으로 에어컨 놓을 턱을 만들어 놓았다. 거기 바닥을 방수하기위해 깨끗이 청소하는 작업이다.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하기 힘들 작업이다. 

- 조심조심 난간에서 구부정한 포즈로 빗자루 질을 하는데 잠을 설쳐서 그런지 허리가 무척 아프다. 일할 때 자세가 중요하다.

- 푸대나르기 등등... .

- 수원 하씨아저씨가 9월 일한 것 입금되었으니 확인해보란다. 오산역 ATM에서 잔액조회를 해보는데 임금은 되었으나 하루 7만원기준 열흘치 70만원보다는 몇 만원적게 입금되었다.  이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고민이 시작되다. 일 초보자이고 처음에 계약을 분명히 하지못하고 월요일 못나오는 나의 약점을 들어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문제제기를 할것인가. 문제제기도 어떤 수위에서 할 것인가. 암묵적인 언급인가 체불임금받기투쟁인가. 지금 안정적으로 일에 적응하고 있는데 이 상황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061004(수)

- 오늘 주된일은 지하3층 두군데 엘리베이터 바닥의 방수작업 보조다. 먼저 벽 정리하고 바닥을 깨끗이 청소한다. 푸대를 내린다. 필요한 연장을 준다. 연장이름들은 이제 귀에 들어온다. 

- 오후 3시반 참 먹을때 사장이 돈 넣었다고 말한다. 내가 별 언급없이 인상을 쓰자 왜 그러냔다. 돈이 들어왔는데 얼마가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수원 하씨아저씨가 왜 그러냐고 따로 묻는다. 불만의 느낌은 전달했다.


061005(목)

- 오늘 센터에서 점심을 준비해 한신대에서 하는 이주노동자농구대회때 먹기로 했다. 시간이 미루어져 점심준비로 양고기 써는걸 잠시 돕고 일산 어머니집으로... . 어머니 이모와 송편을 빚는데 모양이 안나온다. 

- 통장으로 입금액 확인하는데 64만 7천원입금됨. 7천원은 또 무언가?


061006(금)

- 추석 아침 잘 차려먹고 이모 돌아가니 집이 한적해진다. 


061007(토)

- 어머니가 계곡 사진찍는다 하여 같이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감. 가뭄이라 물이 없어 과일과 도시락만 먹고 옴. 구파발에서 전철타고 황학동으로 갔다. 동묘쪽으로 벼룩시장이 길게 형성되어 있고 몸 근질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어슬렁거린다. 무조건 만원이라는 신발집에서 마침 작업용 안전화를 샀다. 


061008(일)

- 일산 마두도서관에 갔다. 책세권 반납하고 빌릴책 찾기시작. 건물세우는 과정책들 너무 전문적이다. 하드워크라는 제목의 육체노동체험에 관한 르뽀책 빌림. 


061009(월)

- 노뉴단 노동영화제 준비 작품 리스트 정리 1차 홍보문안 작성   .

- 오산으로 내려옴. 센터분들과 적게 받은 임금에 대한 논의. 받아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오고감. 계속 고민이 됨... .


061010(화)

- 층별 난간 시레기청소. 보조아시바가 한참 떨어져있어 위험하다. 바닥에 수북한 핀들을 그냥 쓸어 떨어뜨리면 밑에서 다칠 수 있어 조심스레 푸대에 쓸어담음. 4층부터는 청소하는 아저씨가 그냥 쓸어내려버리라 해서 그렇게함

- 하루 7만원으로 계약했다. 안준 돈을 달라고 말하는 쪽으로 마음먹음.


061011(수)

- 일의 지시를 받기위해 사장에게 전화를 하는데 사장 괜히 화낸다.

- 사장 레미콘포대 10층부터 내려오면서 각 층마다 24포 시멘 2포씩 올리라고 지시. 1층에서 작은 리어카 두 대로 공사용 엘리베이터로 나르기 시작. 먼저 리어카 한대당 4포에서 5포씩 넣고 추진력을 살려 밀어 엘리베이터에 집어넣고 내려 지정된 곳에 쌓아두는 공정. 포대 뒤로 매는 기술이 좀 생김. 200포대 이상 나르니 손 아귀힘이 떨어짐.  

- 한대인 엘리베이터를 벽돌 미장 창호 전기 등등 각 공정의 작업자들이 이용하는 것이라 양보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조적 창호 전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 청소하는 아저씨 평소에는 괜찮았는데 내가 쓸어내린 무엇인가에 맞아 눈썹부근 조금 다치셨단다. 내가 쓰던 연고 드림.

061012(목)

- 오늘 주된일은 지하 물땡크 미장작업 보조.  포대내리고 사모래큰통에 물과 포대풀어 지게라는 기게로 섞어 작은 통에 담아 일하는 곳 중간중간에 두는 일이다. 쉴틈없이 일이 이어진다. 까다로운 하씨아저씨가 만족해 할 정도로 일함. 대모도 조수일이 이제 좀 파악되었다.

- 점심을 먹고 저기 앉아있는 미장소사장에게 다가감. 뭐 할 얘기 있냐고 묻는다. 그동안 잘 봐줘서 고맙다. 통장입금액을 보았다. 나는 하루 7만원으로 들었고 이건 계약이다. 계약대로 주었으면 참 좋겠다고 설득조로 얘기함. 사장 다행이 준다고 함.

- 얘기하느라 점심먹고 한 2-30분씩 박스펴고 누워 낮잠자는데 못잤다.   


 

*

생각의 정리


1.

내 손과 몸이 변하고 있다.

지금 내 손모양은 소위 길죽하고 얇은형에서 두툼하고 굳은살 많은 손모양으로 바뀌는 중이다. 가슴과 팔 근육도 상당히 만들어졌다. 인간은 조건과 상황의 변화에 적응해나가기 마련이다. 몸이 강해지고 있다. 

한편 이 노동은 강한 육체노동이라 몸이 축나는 과정이다. 허리와 손목 머리카락이 문제다. 허리는 의식적으로 펼려고 노력하고 허리띠를 꽉 매고 있다. 손목은 압박보호대를 차고 일한다. 일하다보면 머리는 시멘트 먼지에 떡이 되다. 이건 샤워하면서 깨끗이 감는 수 밖에 없다. 


2. 

첫 월급을 통장으로 받았다.

9월 2주동안 열흘동안 일한돈이다. 그런데 이돈이 70만원이 아니라 64만 7천원이 왔다. 하여튼 나머지 돈을 받기로 했다. 이 일주일동안의 상황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고용과 임금의 문제, 사장의 생각 나의 생각 노동자의 생각의 차이들, 임금문제를 풀어나가는 관점 경험쌓기등... . 


3.

두건물을 왔다갔다하면서 작업하니 이제 조금 주변의 것들이 보인다. 다른 부분의 사람들, 건물이 완성되어가는 공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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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3 03:02 2006/10/13 03:02
  1. Nomad
    2006/10/19 12:51 Delete Reply Permalink

    강의 준비하다 머리식히러..여행글을 좀 읽으러 잠시 들렀어요..방랑의 자유를 끝내고, 이젠 일상으로 돌아와 노동현장에 있네요. 지금껏 그래왔지만, 힘겨운 노동에 비해 댓가가 넘 약소하죠?...이젠 정말 몸이 재산이니 잘 관리하세요. 건강하고 멋진 가을 보내세요~

  2. aibi
    2006/10/20 20:10 Delete Reply Permalink

    노마드/머리가 식혀졌는지 모르겠네요.^ 그래요 힘겨운 육체노동에 대한 평가는 참 인색하다는걸 느끼게 되네요. 그래도 2주만에 그전 활동하면서 받았었던 상근비의 두배를 벌었네요. 통장이 두둑해졌답니다.~

  3. labor
    2006/10/24 00:43 Delete Reply Permalink

    막노가다 육체노동으로 돈을 번다는것의 기쁨은 받는 사람의 형편애 따라서 다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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