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지고 있는 영문소설을 번역시도했으나 진도가 안나간다.-_- 

 

1.

제목 : 남아있는 날들 The Remains of The Day

저자 : 카즈오 이시구로

출판사 : 팽귄 리더즈

책의 난위도 : 6번째 레벨, 3000단어 이상

 

2.

베트남에서 39000동(약 3000원)주고 산 이 영문소설의 표지는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작품인 동명 영화의 두 주인공 안소니 홉킨스와 엠마톰슨의 서로 다른 방향을 쳐다보는 사진이다.

그들은 그렇게 엊갈린다.

 

3.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고장을 탐험하지 않는 것은 나쁜일이네. 내 제안을 들었으면 며칠 내로? 며칠동안? 이 집을 나가게나.'

'난 페라데이씨의 제안을 즉각 수락 할 수가 없었죠. 이 제안에 대한 나의 태도의 변화는 당신은 왜 그것에 숨어있느냐는? 캔튼양의 편지때문입니다.'

 

4.

1956년 여름 스티븐은 다링턴 저택의 버틀러 경으로 부터 휴가를 받는다. 그는 고용주의 차를 빌려 여행을 시작한다. 그는 영국의 시골로 깊이 들어간다. 이 여행은 역시 그를 그의 과거로 깊이 빠져들게 한다.

 

5.

남아있는 날들은 잃어버린 사랑과 그 이유에 대한 주목할만한 스토리다. 그 배경은 2차 대전시기의 한 커다란 영국 저택이다. 한 남자가 그의 모든 삶을 여기에 바쳤다. 그리고 그는 여행속에서 그의 부서진 마음에 감정이 회복되기를 시도한다.

 

6.

카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다. 그는 5살때 부터 지금까지 영국에서 살고 있다. 그는 여러가지 상을 수상했다. 그는 현재 런던에서 그의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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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2 19:06 2005/02/12 19:06
  1. 자일리톨
    2005/02/13 22:15 Delete Reply Permalink

    대학1학년때 "경영학원론"(졸업장상 제 반동적인 전공이었습죠)담당교수가 수업시간에 틀어주어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안소니 홉킨스의 자발적인 복종에 대해 상당히 짜증이 났을 테지만, 당시에는 참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아요:)

  2. aibi
    2005/02/14 00:42 Delete Reply Permalink

    자일리톨)안소니 홉킨스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여행을 떠난게 아니라 복종했던 고용주의 강권에 의해 떠난다는 상황자체가 역설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는 그 열려진 좁은 공간에서 자신의 억눌렸던 감성을 회복하려 노력하죠. 이미 늦은 것일까요? 전 오늘 앙크로와트의 도시 씨엠립으로 왔답니다. 우연이 겹쳐 한 특급 호텔 자제과에 근무하는 30살먹은 캄보디아 친구 원룸에서 내일부터 열흘동안 머물기로 했답니다. 베트남에서 부터 사람만나는 게 소원했는데 또 만남의 공간이 살짝 열리네요.


1.

오늘은 하루 메콩강 페케지 여행하는 날이다. 버스 점심 배삯 포함 7불이다. 혼자가서 배를 탈려면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훨씬 많은 돈을 주어야 한단다. 버스는 남쪽으로 달려 미토란 곳까지 간다. 생각같아서는 5시간 거리인 수상시장 마을에서 며칠 머물고 싶지만 그럴려면 비자를 연장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냥 하루로 만족하자. 맨 앞자리에 앉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다. 일산 살때 밤 늦게 술먹고 심야 좌석버스 맨 앞자리에서 자유로를 달릴때 그 느낌이 떠오른다.

 

2.

버스는 처음엔 잘 나가다 곳곳에서 막힌다. 아직 베트남 남부 메콩 삼각주는 도로개발이 덜 되었나 보다. 내가 서울에서 읽은 베트남 글 중에 원래 이 지역이 베트남 땅이 아니라 크메르 족의 땅이었는데 예전 전쟁중에 베트남이 포로로 잡은 크메르인 수천명을 홍수가 날때 그냥 묶어두어 수천이 물에 익사했다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8시 반쯤 출발한 버스는 11시가 되어 도착했다.

 

3.

한 3-40명 규모의 중간급크기의 배로 갈아탔다. 배가 넓다란 메콩강을 가로지른다. 삼협과 같이 강가로 웅장한 산은 없지만 열대나무들과 어울어진 넓은 강이 또다른 매력을 풍긴다. 배는 보이는 4개의 섬중에 가장 큰 섬 앞에서 또다시 7인승 배로 갈아탄다. 그리고 섬의 샛강으로 들어가 한 농장에 정박했다. 52살 독일아저씨와 인사를 했다. 방콕에 일때문에 오랫동안 있단다. 가족들은 독일에 있고. 내가 10년일했다고 하니 놀랍다며 자기 눈엔 26살로 밖에는 안보인단다. 한 한국남자가 있다. 인사를 하니 자긴 여기 베트남에서 산단다. 대전에 사는데 형이 이곳에 공장을 차렸단다. 일을 거들고 있단다.

 

4.

카라멜 농장이다. 카라멜을 하나씩 돌린다. 몇명이 카라멜 한 봉지를 산다. 쌀이 재료인 술공장이다. 점심을 주는 모양이다. 독일아저씨와 한국인 남자와 같이 앉았다. 음료수를 돌린다. 내가 고른데 호주산 맥주다. 잘 선택했군 하는데 나중에 돈을 따로 받는다. 교묘한 수법이다. 밥과 반찬은 형편없다. 그냥 시금치와 국 조금에다 밥을 먹었다. 이 독일아저씨 한국인들이 어릴적부터 습득한 젓가락 기술을 놀라워한다. 밥 한톨을 테이블 위에 놓고 집어보란다. 가볍게 집으니 저쪽의 미국남자에게 이거 보라며 놀랜다. 그 다음으로 밥알 하나를 던진다. 공중에서 집으란 얘긴데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다른 직업으로 풀렸을지 모른다. 아이 돈 스킬.

 

5.

밥을 먹고 나와 작은 동물우리들을 구경하고 길을 걸으니 큰 뱀이 있다. 1불을 내면 목에 감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용감한 한국인 여성 벌벌 떨면서도 뱀을 메고 사진기 앞에서 브이자를 그린다. 다시 가장작은 4인승 배로 갈아탄다. 앞뒤에서 두명이 손으로 노를 젓는다. 좁은 수로를 헤쳐나간다. 이 메콩 페키지 투어는 메콩강에서 다른 크기의 배 3가지를 타보는 투어인거 같다. 다시 큰 강이다. 처음 탔던 배로 갈아탄다. 한 부산 여성이다. 초등학교 특수 교사란다. 한 아이를 3년은 계속 맡는단다. 오늘 밤 한국으로 떠나야 한단다. 다음엔 베이징에 가고 싶다며 얼마가 드는지 묻는다. 자기도 나같이 길게 여행하는게 꿈이란다.

 

6.

버스를 다시 탔다. 한 절에 잠시 들렸다가 사이공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은 조금 수월하다. 킴 트레블 앞에 도착했다. 한국인 4명이서 음료 한잔씩을 했다. 무표정한 얼굴의 한국인 자매가 있었는데 어디 가버렸나 보다. 뱀을 매고 사진찍었던 한국여자는 계속 혼자서 여행했단다. 직장때문에 시간이 없어 비행기로 캄보디아로 간단다. 두여성 모두 회사나 학교에서 짤리지만 않으면 1년 무급휴직내서 여행을 다니는게 꿈이라 말한다. 대전남자가 아까 말한 것이 생각난다. 자기가 베트남에서 한국관광객들을 보면 딱 표가 난단다. 인상 잔뜩 찡그리고 있는사람들이 한국사람이란다. 이 깊은 억압의 사회를 어찌해야 하나?

 

7.

두 여성과 헤어지고 대전남자와 맥주한잔을 했다. 베트남 관리들 참 영리하단다. 베트남은 토지사유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투자도 할만하게 법을 절묘하게 만들어 놓았단다. 이 친구는 진보나 활동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토지나 사유재산 규제를 풀면 베트남도 자본에 넘어가 버린다는 것을 말한다. 베트남은 성공할 거 란다. 열대지방나라에서는 드물게 사람들이 일에 열심이란다. 잔업특근을 별로 싫어하지 않는단다. 여기도 가족 전체가 벌어야 살 수 있단다. 보통 월급이 우리나라돈으로 10만원선 외국계 회사야 되야 3-4백 만동 한 20-30만원이 된단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사람들이 가라오케 같은데서 100달라를 팁으로 던진단다. 

 

8.

이곳에서 한국사람은 베리리치한걸로 찍혀 있나보다. 내가 어제 공원에서 숙소로 가는데 한 베트남 젊은 여자가 하이하면서 팔짱을 끼려는 것을 뿌리친 적이 있다. 어떤 여자들이냐고 물어보니 한 100만동에서 150만동, 한국돈으로 10만원 내외를 주면 며칠동안 같이 먹고 자고 노는 여자들이란다. 중국과 베트남은 외국남자와 현지여자가 혼숙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 놓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혼숙하다 걸리면 추방이란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는단다.  

 

9.

이 대전남자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사이공의 마지막 밤이다. 베트남은 좀 아쉽게 넘어가는 거 같다. 아쉬움이란 느낌은 곧 이곳이 나쁘지 않았다는 말일게다. 베트남 넘어올때 보다는 이 곳이 훨씬 편해졌다. 단지 10흘만에... .

 

 

* 050206 (일) 여행 73일차

 

(잠) 사이공 4인 도미토리 3150원 (3불)

(식사) 저녁 해물스파게티, 맥주한병 3000원 (40000동) 

(이동) 메콩강 하루 페키지 7350원 (7불)

(간식)  호주맥주 1050원 (14000동)

          과일주스 375원 (5000동)

           빵 300원 (4000동) 

          과일음료 300원 (4000동) 

(기타) 인터넷 450원 (6000동)  

       

...................................................................... 총 15,97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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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2 18:30 2005/02/12 18:30

1.

오늘은 좀 일찍 움직였다. 그래야 태양의 강렬함을 피할 수 있다. 오늘은 서북쪽이다. 근처 시장에서 먼저 뭘 좀 사먹자. 고기 꼬치를 석쇠에 굽고 있다. 그걸 가리키니 비빔국수와 함께 꼬치하나를 잘라준다. 이건 좀 먹을 만 하다. 꼬치 고기도 부드럽고 비빔국수도 상큼한게 서로 잘 어울린다. 나와서 북쪽 길로 올라갔다. 대형 슈퍼 두개가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들어가 한바뀌 둘러보면서 먹음직한 오랜지 3개 묶음을 샀다. 이건 씨가 있는 약간 신맛이다.

 

2.

왼쪽 길로 한참을 가니 아담한 공원이 보인다. 작은 연단을 꾸미고 있다. 베트남 공산당 75주년 관련 행사인가 보다. 옆에는 스파르쿠스라 부르나 세명씩 경기를 하는 족구 비슷한 경기 연습을 한다. 공은 나무껍질로 만든 속이 빈 것이다. 제법 아마추어 선수 급들이다. 그걸 쳐다볼 수 있는 노천카페에 앉았다. 커피 비슷한 티를 하나 시켰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3대3시합을 치룬다. 한팀이 이겼다. 기다리고 있던 10대 후반 3대3팀이 경기를 치룬다. 또 한팀이 이겼다. 이긴팀끼리 경기를 한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3.

나와 걸으니 큰 건물들 입구가 보인다. 여기가 대학인가? 들어가보니 병원이다. 나무들이 멋드러지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이젠 버스를 한 번 타보자. 버스 정류장을 찾는데 한 당구장이 보인다. 여긴 냉방시설이 되어있다. 들어가니 포켓볼들을 치고 있다. 여 종업원들이 많다. 내 당구대 담당 종업원은 성형수술하기전 풋풋하던 정다빈처럼 생겼다. 타이거 맥주한캔을 시키니 얼음 가득 담겨있는 잔과 함께 테이블로 가져온다. 여기서는 맥주를 얼음에 함께 먹는게 기본이다. 좀 치다 나와서 버스를 탔다. 한 멋있는 사원이 보여 근처에서 내렸다.

 

4.

사원은 겉 폼 만 요란했지 안은 별로였다. 어제 남쪽으로 걸으며 들어간 한 사원안에는 커다란 고깔모양의 향이 천장에 가득 걸려 있었다. 한 아저씨가 새로운 향을 달고 있었다. 향 연기가 사원안에 가득차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긴 아니다. 그 옆에는 스포츠댄스 건물이 있고 그 옆이 영화관이었다. 로버트 드 니로 등등이 나오는 코미디 가족 영화 간판이다. 들어가 이 영화하냐고 손짓하니 내일부터 한단다. 이제 숙소로 들어가자. 다시 버스를 탔다. 왠만한 버스는 숙소근처 버스터미널로 간다.

 

5.

숙소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인터넷을 좀 하다 여행사로 갔다. 김 트레블이란 여행사다. 내일 하루 메콩강투어를 신청했다. 모래 구정전 마지막으로 떠나는 캄보디아행 버스도 예약했다. 메콩강투어 신청서에 몇명의 한국인 이름이 보인다. 다시 숙소로 들어와 이제 일어난 웨일즈 친구와 대화를 했다. 자긴 6주동안 이 침대에서 생활했단다. 20개월코스로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아 호주까지 배로 이동한단다. 배가 다 있단다. 자긴 하루에 7불가지고 생활한단다. 그런데 어제 밤 20불을 썼단다. 포켓볼을 치고 맥주를 마셨단다. 내가 너 다이어트 투 데이즈?라 물으니 그렇단다.

 

6.

저녁이 되어 시장으로 나갔다. 감자와 떡과 계란후라이를 부쳐 한 접시에 올려놓는 음식하나를 노점에서 먹고 일어나는데 한 베트남 아줌마가 이거 사달란다. 고단한 얼굴이다. 그 아줌마 음식까지 돈을 치루고 일어섰다. 9시가 넘는다. 어제 봐둔 재즈라이브바로 들어갔다. 밴드 앞 푹신한 자리는 이미 다 찾다. 그 옆 테이블에 앉았다. 공연타임이라 비싼 음료만 된다. 작고 탄탄한 몸매의 한 베트남 여가수다. 나이는 60가까이 되어보인다. 세월의 깊이가 우러나오는 목소리다. 그런데 노래를 끝내고 스테이지를 내려간다.

 

7.

이곳의 매인 연주자의 색소폰 솔로가 이어진다. 그리고 한 젊은 남자 가수, 성량은 좋은데 재즈의 맛이 없다. 노래가 딱딱 끊어진다. 재즈노래는 좀 질펀한 맛이 있어야 한다. 사이공은 혁명이전 그런 도시 아닌가. 아직도 이곳에는 그런 분위기가 조금 조금 남아있어 보인다. 다시 그 멋진 가수아줌마가 카페로 들어온다. 반짝이 옷위에 코트를 걸치고 저쪽 뒤에서 멋있게 담배를 피고 있다. 내가 사이공 행 기차에서 만난 베트남 전사와 비교되는 아줌마다. 선이 굵은 얼굴에는 지나쳐온 인생의 여정이 그려져있다. 그녀에게 이 베트남 혁명의 역사는 무엇이었을까?

 

8.

이제 1부 마지막 무대다. 이 여가수 다시 등장한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조지아~ 조지아~ 단순한 노래지만 그 감정이 느껴진다. 1부 순서가 끝났다. 숙소 근처에서 베트남 라면하나 사먹고 방으로 올라갔다.

 

 

* 050205 (토) 여행 72일차

 

(잠) 사이공 4인 도미토리 3150원 (3불)

(식사) 아침 꼬치비빔국수 525원 (7000동)

                   고기덮밥 825원 (11000동)

         저녁 찰밥 포장 375원 (5000동)

                감자,떡, 계란후라이 접시 2개 1500원 (20000동)

(이동) 시내버스 3번  450원 (6000동)

(간식)  요구르트 225원 (3000동)

          오랜지 3개 1125원 (15000동)

           웨트티슈 225원 (3000동)

          물 300원 (4000동) 

          파인에플 한조각 150원 (2000동)

          재즈라이브바 토마토주스 4500원 (60000동)

          베트남 라면 600원 (8000동)    

(기타) 인터넷 900원 (12000동)  

       

 

...................................................................... 총 14,8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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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2 17:26 2005/02/12 17:26
  1. 나름
    2005/02/14 21:03 Delete Reply Permalink

    나도 베트남... 부러워ㅠㅠ
    형 여행기는 기관지에 잘 실리고 있어
    건강 조심하구 새해복~

  2. aibi
    2005/02/15 15:40 Delete Reply Permalink

    나름)100미터 달리기 방금 마치셨나요? 숨차라.^^ 나름님은 저보다 더 느리게 말하는 분으로 알고있는데 자기의 스타일을 지켜나가는 게 매력인거 같습니다. 어제 이 열대지방에서 자전거를 좀 심하게 타면서 차가운 걸 연신 들이켰더니 밤새도록 배가 끓었답니다. 음.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닌데 조심해야지요. 몸도 마음도 건강한 한 해를 열어나가시길... .


1.

7시도 안 되어 눈이 떠졌다. 요즈음의 현상이다. 옆 베드의 서양인들은 한 밤중이다. 밖은 벌써 해가 실력과시를 시작하고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다. 사이공에만 300만대의 오토바이가 있단다.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하늘거리며 우아하게 자전거 타는 베트남 여성은 옛날 말이다. 여기서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비율은 2:8 아니 1:9 정도 되어 보인다. 그동안 잘 만지고 만 있었던 학습 자료를 꺼내 보았다.

 

2.

프린트 물은 한 장에 4페이지 출력으로 해서 가지고 왔다. 욕심을 내서 처음에는 분량이 책 두권어치 정도 되었다. 그 중 반인 여행관련 프린트는 보면서 찢어 버리고 이제 한 권 분량으로 줄였다. 주로 남은 건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토요노동대학 자료를 중심으로한 학습자료들이다.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앞 뒤 출력으로 했으면 분량이 반으로 줄었을 텐데, 하여튼 여행은 짐과의 전쟁이기도 하다.

 

3.

아침 일찍 일어나 한 서너시간 집중해서 공부하고 책읽고 점심부터 이곳저곳 세상을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각국의 여행자들과 인생의 대화를 나누고 시원한 맥주 마시고 일기로 하루를 돌아보고 푹 잠자고... . 좋은 여행의 진수다. 이렇게만 하면 얼마나 알차겠는가? 꼭 안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은 여행지에서 집중하기도 힘들고, 더워서 아님 추워서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통하는 여행자 만나기도 힘들고 언어의 장벽도 높고, 일기도 점점 밀린다. 엄살인가?

 

4.

자료를 좀 읽다가 출출해져서 공짜 아침 식사를 먹으러 내려갔다. 몇개의 선택이 있다. 계란 두개 프라이 빵 커피가 써있는 1번을 달라했다. 종업원이 머라한다. 잘 못 알아 듣겠다. 이 친구 갑자기 짜증을 낸다. 잠이 덜 깨었는지 무슨 뒤틀린 일이 있는지 내가 당했다. 아이 돈 노우라 말했더니 잠잠하다. 커피를 따라 먹으라는 말 같다. 음식을 가져다 준다. 내일부터는 안 먹어야 겠다. 

 

5.

그제는 동쪽, 어제는 서쪽, 오늘은 사이공 도시 남쪽으로 걸어가보자. 밥을 사먹고 남쪽으로 길을 따라 걸었다. 저기 응달이 드리워진 골목이 있다. 작은 상점들이 끝도 없이 죽 이어진다. 남녀노소 사람들이 더운 방을 나와 상점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다. 이들은 뭘 먹고 살까?

한 한시간 반쯤 걸으니 다리가 보인다. 간이 카페에서 밀크음료를 하나 사먹고 강가 공원으로 들어갔다. 나무 그늘에 앉았다. 강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화물선들이 분주히 지나간다. 한 지체장애 청년이 어린 소녀들과 술래잡기 비슷한 걸 하고 있다. 천진난만한 얼굴이다.

 

6.

저쪽 강뚝에선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젖은 몸 그대로 걸어온다. 나도 초등학교 5학년때 어머니는 서울에서 돈벌고 난 큰집이 있는 부산 고향으로 전학갔는데 거기가 금정산 계곡 밑이다. 이른바 애기소라는 곳이다. 애기와 관련한 연못전설이 있는곳이다. 내용은 모르겠는데 예전 인기 라디오 프로 전설따라삼천리에도 소개되었었다. 하루는 애기소 적당한 곳에서 다 벗고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놀림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7.

다시 공원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정류장 앞에서 반팔 티셔츠를 팔고 있다. 마침 잘되었다. 두장을 샀다. 버스가 온다. 그냥 올라탔다. 에어콘이 잘 나온다. 버스는 북쪽으로 가다 동쪽으로 꺾어져 선착자을 지난다. 여기서 내리자. 매표소 대기실에서 배들을 쳐다보며 333맥주하나를 사먹었다. 다시 도심으로 걸어 시원한 서점에서 놀다가 전망대가 있다는 트레이드 센터까지 걸었다. 전망대를 못 찾겠다.

 

8.

슈퍼에서 멀좀 사먹고 벤탄시장 근처까지 왔다. 재즈라이브 바가 있다. 난 스포츠는 뭐든 라이브를 무척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들어가니 8시 45분부터 한단다. 다시 오겠다고 하고 시장으로 갔다. 반바지가 하나 뿐이라 하나를 사야겠다. 나이키 가짜바지 하나를 샀다. 처음에 6만동을 부르는데 그냥 돌아서자 팔을 붙잡으며 가격이 내려간다. 35000동에 샀다. 숙소앞 레스토랑에서 맥시칸 라이스를 사먹고 숙소에 들어가 잤다.

 

 

* 050204 (금)  여행 71일차

 

(잠) 사이공 4인 도미토리 3150원 (3불)

(식사) 아침 고기덮밥 1125원 (15000동)

         저녁 맥시칸 라이스 2250원 (30000동)

(간식)  간이카페 밀크음료 225원 (3000동)

         333캔맥주 750원 (10000동) 

          해피덴트껌, 음료수, 쥐포 1950원 (26000)         

(기타) 인터넷 615원 (8200동)  

          나이키짝퉁바지 2625원 (35000)

 

...................................................................... 총 12,6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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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1 22:15 2005/02/11 22:15

1.

오늘은 좀 싼데로 옮겨야 겠다. 아침에 나가 첫날 밤 물어보았던 도미토리 있던 호스텔로 가서 도미토리 비었냐고 물어보니 하나 비었단다. 사이공에서 몇 개 없는 도미토리다. 가격은 하루 3불.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 하고 2일치 숙박비를 계산했다. 깔끔하고 괜찮은 곳이지만 할 수 없다. 어제 아침 보았던 한국여자가 서양남자와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둘이서 여행을 다니나 본데 태국 북부가 가장 좋았단다. 베낭을 메고 새 숙소로 올라가니 허름한 방에 침대 4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시트는 그런데로 깨끗하다.

 

2.

옆에 누워있는 젊은 서양 친구와 잠깐 대화를 했다. 영국 웨일즈에서 왔단다. 내가 웨일즈 지방에 있는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에 대한 책을 읽었다 하니 반가워 하는 눈치다. 한 괴짜 친구의 용기가 유명한 헌책방마을을 만들었다. 중국에는 3개월 있었단다. 다음 주 부턴가 이곳에서 영어 선생을 한단다. 인사만 나누었는데 이방에는 스코틀랜드 한 50대 아저씨와 독일인 남자가 있다. 숙소를 나와 고기 덮밥하나를 사먹었다. 밥위에 작은 고기 스테이크 하나와 야체 조금 나오고 한 500원 한다. 오늘은 어제 걸었던 반대쪽인 서쪽으로 죽 걸어보자. 로터리에서 티 한잔 먹고 좀 걸으니 에어컨 나오는 큰 마트가 나온다. 다리 숙소에 스테인데스 뚜껑있는 컵을 두고 왔다. 다목적 용으로 좀 큰 걸 사자. 물도 따라 먹고, 사발면도 끓여먹고, 씻은 과일도 두고 먹고, 과자도 부어먹는 그런 크기로 하나샀다. 베트남 넘어올때 책을 서울로 많이 부쳤는데 또 베낭이 꽉 차있다.

 

3.

마트를 나와 좀 더 죽 걸었다. 아이구 덥다. 고만 가자. 길을 건너 맞은편 옷가게 들을 구경했다. 살만한 건 없다. 골목으로 좀 들어가는데 허름한 당구장이 나온다. 한 번 쳐볼까? 혼자서 한 40분 치니 이것도 운동이 된다. 가격도 아주 싸다. 다시 길을 돌아갔다. 아까 쇼핑한 마트 1층 레스토랑에서 해물스파게티와 타이거맥주 한 캔 먹었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 한판하고 다시 나와 인터넷 룸에서 이리저리 검색을 했다. 베트남이 사스 비상이란다. 여러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이곳 사이공은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듯 보인다. 여기는 시간당 300원 꼴이다. 시간당 450원 하는 곳으로 갔다. 여기는 스켄 서비스를 한다. 장당 3000동이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스캔할 것을 추려서 주인 아줌마와 협상을 했다. 작은 것도 많으니 몇 개를 스케너에 놓고 그림 한장으로 스캔해달라. 내가 알아서 잘라 저장하겠다. 약간 실랑이를 하다가 아줌마 좋다고 하고 해보니 4번에 얼추 된다. 아직 디카살 마음은 안생긴다.

 

4.

날을 저물었다. 공원 꽃 시장으로가 또 꽃 구경을 했다. 슬리퍼 하나 사야겠다. 아웃도어 신발은 이 더위에 좀 무리다. 벤탄시장 옆 한 신발가게, A급 짝퉁가게이다. 가격도 만만찮다. 나이키 끈 찍찍이 슬리퍼를 8불에 샀다. 다시 돌아와 시장을 한 바뀌도는데 아까 인터넷 베트남 여행 카페에서 본 한국식당이 보인다. 들어가 앉았다. 한국인 아줌마가 주인인거 같은데 내가 벽에 붙어 있는 매뉴를 쳐다보고 있으니 이렇게 말한다. 여긴 돼지갈비 전문 집이에요. 비싼 돼지갈비 먹으란 얘기다. 얼마냐니까 혼자왔으니 500그람 8만동이란다. 6000원이다. 한국에선 1인분 가격이지만 여기선 비싼 요리다. 그래 한번 먹어보자.

 

5.

숫불에 석쇠를 놓고 베트남 종업원이 갈비를 굽는다. 반찬이 4가지 나오는데 차게한 김치볶음이 구미를 당긴다. 다익은 갈비를 커다란 상추 반을 잘라 그 위에 올려놓고 양념장과 김치볶음 그리고 밥 한공기 시켜 밥 반 숫가락을 함께 넣어 입에 넣었다. 비싼 값을 한다. 홍콩에서 먹던 9000원짜리 김치찌게 같이 맛이 있다. 저쪽 테이블에 단골로 보이는 한국인 장사치들이 않는다. 얼음 구덩이에서 방금 꺼낸 거 같은 참이슬 소주를 종업원이 가져온다. 아쉬울 뿐이다.

 

6.

밥과 고기를 비우고 나오니 속이 든든하다. 가끔씩은 이렇게 먹어주자. 방으로 올라가면서 물을 하나 샀다. 냉장고가 없으니 물은 살때 그 몇 분의 시원한 맛으로 먹기도 한다. 침대에 기대 물을 천천히 들이켰다. 사이공은 살 만 하다.

 

 

* 050203 (목) 여행 70일차

(잠) 사이공 4인 도미토리 3150원 (3불)

(식사) 아침 고기덮밥 600원 (8000동)

          점심 해물스파게티, 타이거 맥주 3000원 (40000동)

          저녁 돼지갈비, 공기밥 6750원 (90000동)

(간식)  과일요구르트 225원 (3000동)

          포테토칩 2개 450원 (6000동) 

          찰밥 포장 375원 (5000동)

          물1.5L 300원 (4000동)

(기타) 당구장 465원 (6200동)

          인터넷 스캔 2100원 (28000동)  

          나이키A급짝퉁 슬리퍼 8400원 (8불)

 

...................................................................... 총 25,81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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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1 20:55 2005/02/11 20:55

1.

일어나서 프론트로 내려가 공짜로 주는 아침식사로 스프를 시키니 사발면이 달랑하나 나온다. 화장을 했는지 얼굴이 하얀 여자가 내려온다. 주인 아줌마가 코리안 이란다. 낮설어 하며 인사를 했다. 묵은지 3일 되었단다. 내가 묵는 9번 방은 문이 망가졌다. 옆의 8번방으로 옮겼다. 훨씬 안락하다. 나와서 집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잘있다. 건강하다. 같이 잘 다니고 있다. 시편 잠언 성경책 조금씩 읽고 있다. 중국 윈난성 사진집 3권 부쳤다. 등등 엄선한 대화를 했다.

 

2.

숙소가 모여있는 팝 응우 라오 거리 맞는 편 긴 공원에는 꽃 시장이 열리고 있다. 구정 전 특수 인지 몰라도 싱싱한 꽃들이 죽 이어져 있다. 우선 가장 가까운 흰두교 사원을 찾아가자. 가다 한 골목에서 고기 덮밥을 하나 먹었다. 물어 물어 마리안느 흰두교 사원인가에 들어갔다. 짐승 머리 모양의 검은 신 앞에서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다. 그 신의 생김이 마음에 끌린다. 큰 거리로 나섰다. 대형 상가 건물이다. 여기가 없는게 없다는 벤탄시장 인가 보다. 시장안은 서울의 평화시장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빽빽하게 상점으로 가득차있다. 나이키 아디다스 카피 옷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3.

계속 걸어 나갔다. 한 상점에서 7000동 주고 지도 하나 샀는데 더 모르겠다. 사이공에서 가장 사진발을 받는 위치인 구 인민위원회 청사 앞 호지민 동상 옆에서 잠깐 앉아 쉬었다. 한국 여자 셋이서 말을 주고 받으며 걸어간다. 동상과 뒤 황금색 인민위원회 건물을 배경으로 서양인들이 사진찍기에 열중하고 있다. 베트남은 도시마다 두 세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곳 사이공은 예전 이름이고 통일 되면서 호찌민 시로 이름을 바꾸었다. 아니 두 세가지의 이름이 같이 사용된다고 한다. 호지민 시 박물관은 옆 골목에 있었다.

 

사이공 소재 호지민 시 박물관. 프랑스 풍의 웅장한 건물안에 혁명의 역사가 전시되고 있다

 

4.

박물관을 걸어 들어가니 입구에 결혼식 사진 촬영하는 한 커플이 보인다. 우리나라 덕수궁의 풍경과 다름이 없다. 안으로 들어가니 두 커플이 보인다. 그들은 이 공간안의 내용은 관심이 없어 보인다. 프랑스 제국주의의 상징인 이 건물이 그들이 배경이다. 전시는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하노이 혁명 박물관에 다녀 와서 그럴까? 벽면을 가득채운 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혁명승리의 기쁨을 표현한 그림이다. 탱크와 옆의 환호하는 사람들이다. 탱크위에는 여성이 깃발을 쳐들고 있다. 환호하는 사람들은 아오자이 자락을 휘날리는 여성들이다. 우아함과 혁명의 연결이라. 혁명은 무언가를 거부하는 몸짓이아니라 모든 것을 포괄하려는 듯하다.아오자이 자락이 발에 끌린다. 힙합바지가 생각난다.

 

5.

박물관을 나와 슈퍼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서 공원에 잠시 앉았다. 코코넛 음료 파는 한 친구가 영어를 쓰며 하나 사란다. 만동이란다. 그냥 샀다. 5천동이면 될텐데하는 생각이 스친다. 하노이와는 좀 달라지자. 너무 예민하다가는 나 자신이 알뜰 소비자로 전락한다. 그냥 넘어가기도 하자. 노트르담 대성당은 문이 닫혀있었다. 한 골목에 사진전시회를 한다. 프레스 센터인가 보다. 프레스 사진들은 하나같이 포인트가 있다. 그런데 포인트와 포인트가 겹치니 전체적으로는 믿믿한 느낌이다. 리듬과 강약이 중요하다. 저기가 대통령궁 아니 통일궁이다.

 

호지민 시 통일궁. 건축상으로도 대통령궁의 중심을 잘 표현하고 있단다. 창문은 돌로된 커튼으로 장식되어 있다

 

6.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직원이 반갑게 맞이한다. 내가 신짜오하고 인사를 하자 자긴 한국어를 잘 모른단다. 영어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한다. 열명쯤의 서양인들과 합류했다. 일본여자 셋은 따로 돌아다닌다. 회의실 영빈관 영화관 등등이 3층 까지 이어진다. 4층 옥상 옆에는 핼리콥더가 있다. 대통령궁 답게 최고의 미술품들이 걸려있다. 옥상에서 잠시 쉬고 방공호 같은 좁은 계단으로 지하로 내려간다. 유사시에 대응할 작전본부 방들이 이어진다. 대통령이 피할 침대도 있다. 볼품없는 침대 하나다. 세밀한 지도들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다큐 비디오 감상. 영어방, 프랑스방, 중국어 방이 있다. 한국어방은 없다. 영어방에서 한 30분 보고 나왔다.

 

전쟁 박물관 입장권

 

7.

마지막 박물관 순례 코스인 전쟁 박물관으로 가자. 길을 반대로 들어 호찌민 박물관이 나온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시클로를 한 번 타자. 3만 동 부르는거 15000동에 탔다. 이 전쟁박물관은 호찌민 시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박물관이란다. 전쟁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단다. 들어가니 그 당시의 땡크, 포 등의 무기가 마당에 전시되어있다. 여러 전시방들이 빙 둘러 있다. 전쟁당시 정치범 수용소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방이 있다. 서대문 형무소는 양반이다. 철문의 구멍을 들여다 보는데 흠찟 놀랐다. 안에서 한 정치범 인형이 나를 보고 있다. 프랑스가 사용했던 길로틴(단두대)도 전시되어있다. 6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다. 단두대로 목이 잘린 한 혁명가의 사진이 옆에 걸려있다. 이곳의 사진은 가식이 없다. 전쟁의 상흔, 시체들, 고문의 피해자, 손 발 잘린 아이들이 그대로 사진에 있다.

 

8.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작은 충격을 받은 얼굴들이다.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한다. 한 전람실은 세계적으로 베트남 반전에 대한 포스터와 선전물이 전시되어있다. 일본, 호주, 미국, 유럽, 등등 각국의 연대 선전들, 연대 집회 알리는 선전들이 있다. 한국 반전 선전물은 하나도 없다. 대단한 군사 정권이었다. 한 전시방에는 참전한 나라와 숫자가 표로 정리되어 있다. 호주도 이때 한 몫 잡을 려고 대거 참전했었다. 한 7-8천, 그런데 한국은 5만이다. 다국적 참전국은 대부분 남쪽 사이공 방어전선에 배치되었다. 그런데 한국군은 가장 치열했던 중부 전선에 투입되었다. 참전 지도 중부 전선에 한국 태극기가 붙어 있다. 기차에서 만난 베트남 아저씨, 한국군의 총알에 맞았던 것은 아닐까?

 

9.

한 곳에 방명록이 보인다. 좀 들쳐보니 한국인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대부분 너무 참혹해요. 전쟁은 이제 그만 투의 표현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언급도 있다. 한 참전용사의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난 000부대 출신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싸웠다. 여기와서 보니 내가 참전한 뜻은 온데간데 없고 하나의 시각으로만 정리되어 있어 아쉽다.... 마지막 마무리는 이거였다. 베트남이 빨리 경제가 발전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오련다. 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참전용사의 심정이 느껴진다.

 

10.

박물관 무기들 옆으로 서양식 음식 테이블이 세팅되고 있다. 여기와 안 어울리게 밤에는 인형극이 열린단다. 이제 숙소쪽으로 이동하자. 지도에서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다. 나침판을 꺼냈다. 음 저쪽 방향이군. 꼭 길을 몰라도 방향만 확인하면 숙소 찾기 그리 어렵지 않다. 오면서 안에 매추리알 고기들이 들어있는 고급 만두 하나, 햄버거, 생맥한잔, 바나나구워소스뿌린거 등을 사먹었다. 숙소 근처 일본인이 운영하는 한 중고 서점이 있다. 들어가니 한국말 인사를 한다. 한국책이 있단다. 내가 찾던 한-베트남 회화책이다. 작은 책 표지에는 김희선 등등의 한류스타의 사진이 있다. 4만동 주고 사서 뒤 라벨을 벗겨보니 2만 8천동이 정가다. 뭐 필요한 것을 샀으니 할 말은 없다. 밤 늦게 까지 인터넷을 하다 숙소로 들어갔다.

 

 

 

* 050202 (수) 여행 69일차

(잠) 사이공 트윈 침대 8400원 (8불)

(식사) 아침 고기덮밥 600원 (8000동)

(이동) 시클로 1125원 (15000동)

(입장) 호지민 시 박물관  750원 (10000동)

          통일궁  1125원 (15000동)

          전쟁 박물관 750원 (10000동)

(간식)  생맥주 한잔, 과자  750원 (10000동)

           오징어채, 오징어땅콩,아체크랙커 750원 (10000동)

            코코넛 음료 2개 1125원 (15000동)

           왕만두1개 375원 (5000동)

           제과점 햄버거 525원 (7000동)

           생맥 1잔 300원 (4000동)

           바나나 구운거 소스 150원 (2000동)

           캔 맥주 825원 (11000동)

           사발면 300원 (4000동)

(기타) 인터넷4시간 1650원  (22000동)

         집에 전화 2025원 (25200동)  

 

...................................................................... 총 21,52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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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0 19:17 2005/02/10 19:17

1.

아침일찍 눈이 떠졌다. 신기한 것은 어제는 내 침대에 앉으면 몸 뒤쪽으로 열차가 향했는데 깨어보니 앞쪽으로 간다. 열차가 중간에서 한 바뀌 돌았나. 모를일이다. 7시쯤 사발면을 하나씩 준다. 나는 안 먹고 있었는데 이 부자 사발면을 처음 먹는지 뜨거운 물을 받아서 뚜껑을 덮어두지 않고 바로 부셔 먹는다. 면발이 가는 사발면이라 그렇게 먹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아는척 할거 같아 가만히 있었다.

 

2.

생수 병들이 없어졌다. 아저씨는 맥주를 연신 들이키고 아들은 우유와 티를 먹느라 물을 먹지 않는다. 잘 모르고 치웠나보다. 물은 하나 샀다. 차창밖은 완전 열대의 풍경이다. 바라만 보아도 더운 열기가 훅훅 느껴진다. 11시쯤 아침도시락을 준다. 어머니가 싸준 투뷰형 고추장을 꺼냈다. 밥에 비벼먹으니 그나마 미슥거리는게 덜하다. 또 맥주캔 하나를 받아먹었다. 나도 뭘 하나 사야겠다.

 

3.

12시쯤 되었나. 아저씨가 자기 팔을 보여주며 뭐라고 한다. 겨드랑이 근처에 큰 흉터가 있다. 그리고 창밖을 가리킨다. 여기서 전투를 하다 총 맞은 상처란다. 내가 어메리카라고 물으니 그렇단다. 아니 한국인에게서 맞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것을 대답했다. 어메리카, 코리아 같이 참전한 것을 알고 있다. 아저씨 고개를 끄덕인다. 아저씨의 이름은 ngvyen van thiet 위엔 반 티엣이란다. 66년에 총을 맞았단다. 그때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내가 dang cong san 베트남 공산당 창립일을 노트에 쓰자 내일이란다. 그는 베트남 공산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4.

아저씨 아들과 자리를 바꿔 창밖을 유심히 쳐다보신다. 창밖은 산악 지형이 이어진다. 이른바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붙은 중부지역이다. 한국군도 이 고지에 있었을 것이다. 서로 뺏고 뺏기고 했을 것이다. 나는 좀 뒤쪽에서 이 아저씨와 창밖풍경을 보았다. 이 아저씨의 도움으로 그냥 그런 풍경이었을 창밖이 달라진다. 이 아저씨가 창밖을 보며 생각에 깊이 잠기면 잠길수록 나도 그만큼 상상에 빠진다. 22살의 젊은 위엔 반 티엣이 저기 있다. 굳은 신념으로 미국군과 5만이나 간 한국군과 맞선다. 진격할 찰라 총알이 몸에 스친다... . 한 20분 정도 지났을까? 아저씨가 일어나신다. 창밖은 다시 풍경이 된다.

 

5.

2시쯤 되어 기차가 한 역에 선다. 내려서 상점에서 쥐포 구운 포장 하나를 샀다. 아저씨는 이빨이 안좋아 못먹고 아들과 나눠 먹었다. 또 캔맥주 하나를 얻어 마셨다. 베트남사람은 한국사람과 같이 체면을 중시여긴다고 한다. 결혼식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기둥뿌리가 뽑힌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 자존심이 있다. 5시가 넘어가자 기대했던 바다가 잠시 보인다. 그리고 황량한 벌판이 이어지고 예정 시간 보다 1시간 가까이 넘어 8시 30분경에 기차는 사이공역에 도착했다.

 

6.

정신이 없어 베트남 부자와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여행자 거리인 팝 응우 라오 지역가는 택시는 5불을 달란다. 2만동 주고 오토바이를 탔다. 여행자 거리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대부분의 숙소에 방이 없다. 3불짜리 도미토리는 기대할 수 없다. 한 골목의 게스트하우스 5층 방에 8불을 주고 들어갔다. 베란다에 작은 침대가 하나 더 있는 묘한 구조다. 샤워를 하고 베란다 쪽 침대에 누웠다. 밤인데도 낮의 열기가 아직 후끈하다. 사이공의 밤이다.

 

 

* 050201 (화) 여행 68일차

 

(잠) 사이공 hoang yen 9450원 (126000동)

(이동) 오토바이 1500원(20000동)

(간식) 쥐포포장 2250원 (30000동)

           물 150원 (2000동)

(기타) 인터넷 300원 (4000동)

 

................................................총 13,6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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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9 21:30 2005/02/09 21:30

1.

일어나서 샤워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부가세 10%를 붙인다. 그동안 부가세 붙인 호텔에서 자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손해 본 느낌이다. 기차에서는 먹을 것이 별로인지라 좀 먹어두자. 우선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밀가루 지단을 펴서 살짝 구운다음에 안에 속을 넣고 마무리한 즉석 만두 한접시를 먹었다. 그리고 여기 하노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찰밥을 먹었다. 아직 기차시간이 많이 남았다. 11시에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프랜치토스트 아침식사를 시켜서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2.

르완끼엠 호수로 갔다. 여기는 론리플래닛등 여행자가 볼만한 책들을 복제해서 파는 장사들이 많다. 한 친구가 집요하게 사라고 쫒아온다. 여기도 있을 만큼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 운전사에게 기차역 가는 버스가 몇 번이냐고 물었는데 없단다. 없을리가 없는 코스인데 없다고 하니 할 수 없다. 택시를 탔는데 여긴 택시 종류에 따라 요금차이가 배로 난다고 하는데 정말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 배로 나왔다. 또 시간이 남아서 하노이 기차역 맞은편 간이 카페에서 주스하나를 시켜 먹었다. 이 주인할머니 만동을 내란다. 5천동도 하지 않는데 내가 두번이나 모른 척 하면서 5천동을 꺼내니 인상을 쓰며 아니란다. 만동을 내고 대합실로 들어섰다.

 

사이공 행 SE1 특급 열차다. 가장 빠른 29시간이 걸린다. 낮시간에 출발하는 열차가 이것 뿐이여서 큰 맘먹고 티켓을 끊었다

 

3.

2시가 되니 개찰이 시작된다. 빨리 타서 앉아 있자. 개찰을 하고 내 열차칸을 찾는데 한 사람이 와서 표를 보여달란다. 역무원 옷을 입고 있지 않고 뭔가 이상했는데 하여튼 보여주었다. 따라 오란다. 그가 내 자리를 찾아주면서 우는 얼굴로 돈을 달란다. 중국 국경에서 하노이떠나기 바로 직전까지 줄줄이 당하고 있다. 이게 마지막이야. 2만동 달라는 걸 5천동 쥐어 보냈다. 저렇게도 먹고 산다. 소프트 침대는 생각보다는 좁다. 하여튼 3층 침대만 타다 2층 침대칸으로 들어오니 아늑한 느낌이다.

 

4.

조금 있으니 우루루 여러 사람이 들어온다. 베트남 가족인거 같은데 배웅하러 왔나 보다. 나무 두 그루와 여러 짐들이 들어온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맞은 편에 앉은 약해 보이는 한 친구 손을 붙잡고 한 여자가 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런 울음이다. 옆의 아버지로 보이는 아저씨도 눈을 훔친다. 한 아저씨가 우는 여자에게 이제 그만 가자 한다. 이산가족과 같이 그들이 나갔다. 약해 보이는 친구를 유심히 보니 약한 정도가 아니다. 아주 뼈만 남은 몰골이다. 인사를 나누었다. 역시나 아들이 아파서 어디 요양하는지 치료를 받으러 간단다. 내 나이를 물어본다. 내 나이를 말하자 자기 아들은 25살인데 이렇다고 하면서 뼈만남은 손목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코리아 인베이더 베트남.

 

5.

인베이더라 순간 당황했다. 이건 여행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침략, 침략자란 뜻이다. 이 아저씨가 이걸 말한 것일까? 혼란스러워 아저씨에게 우선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좀 더 곰곰히 생각해보니 침략자가 맞다. 내가 어릴때 핑퐁오락부터 해서 뽕뽕오락실이 등장했을때 인베이더 오락이 있었다. 적의 비행기 무리가 척척 내려온다. 옆으로 내려오다 한칸 밑으로 다시 옆으로... . 천천히 내려오지만 죽이지 못할 경우 마지막은 아주 빨라진다. 그리고 내가 죽는다. 아저씨에게 뭔가 대답은 해야겠다. 나 어제 호지민 묘소에 다녀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6.

이 아저씨의 나이가 61살이란다. 그러면 베트남 전쟁때 아마 젊음을 바쳤을 것이다. 중국 베트남 두 사회주의 나라를 두달이 넘게 다니면서 이렇게 충격을 주는 말을 들은건 처음이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한국이 베트남 침략자인거 아니? 이 말이 계속 머리속을 맴돈다. 내가 과연 알기나 하는 걸까? 나도 지옥의 묵시록 정도의 추상적인 전쟁의 광기를 알고 있다. 이 사이공 행 기차안에서 거의 뼈만 남아 있는 아들을 데리고 가는 베트남 전쟁에 젊음을 바친 베트남인이 물어본다. 너 한국이 베트남 침략자인거 아니? 사실 난 잘 모르고 있었다.

 

7.

5시쯤되니 도시락이 들어온다. 닝닝한 국같은 반찬이 셋에다가 푸석한 쌀밥이다. 이 젊은 친구 나에게 계속 맥주를 마시라고 권한다. 베트남 산인 타이거 캔맥주 한 박스를 들고 왔나 보다. 너무 사양하는 것도 무례한 것이다. 이 부자와 중간에 놓인 작은 테이블위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이 친구 정말 잘 먹는다. 아까 빵에다가 음료도 시켜먹고 그런데 몸이 그 영양분을 거부하는 듯 보인다.

 

8.

밥을 먹고 좀 쉬다가 셋 다 일찍 자리에 누웠다. 나와 아들이 1층 침대, 아버지가 아들 위의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이 아버지의 삶을 생각해 본다. 청춘을 바친 베트남 전쟁, 아들은 병들었다. 그의 생각에는 지금의 베트남이 병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가 가진 신념 용기는 지금 베트남에서 우선 순위는 아닌 듯 싶다. 내가 그라면 참으로 착찹할 듯 싶다. 너 한국이 베트남 침략자인거 아니? 이 사이공행 열차안에서 한 베트남 인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나에게 전달되었다. 비싼 열차 티켓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밤이 지나가고 있다.

 

 

* 050131 (월) 여행 67일차

 

(잠) 기차

(식사) 아침 베트남씩쇠고기쌀국수 750원 (10000동)

                 밀가루지단얇게펴서안에속넣은만두 300원 (4000동)

                 잎에싼 찰밥 300원 (4000동)

                 레스토랑 프랜치 아침 메뉴세트 3000원 (2.75달러)         

(이동) 택시 1800원 (24000동) 

          하노이-사이공 특급열차 74625원 (995000동)         

 (간식) 과일주스 750원 (10000동)

(기타) 열차 안내비 375원 (5000동)         

 

 ...................................................................... 총  81,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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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9 20:03 2005/02/09 20:03

오늘도 쉬엄쉬엄 걸어가며 캄보디아 프놈펜 시내를 돌고 있습니다.

이렇게 더위에 쩌 죽을 거 같은 설날을 맞는 것도 처음입니다.

 

조금전 웨트 프놈펜이라는 사원에 들렀습니다.

계단 양쪽으로 걸인들이 죽 앉아있는게 앞으로 가볼 인도를 떠오르게 합니다.

새장속에 새들과 향을 팔고 있습니다.

이제 할수없이 영문으로 읽고 있는 론리 캄보디아에서는 이 새들이 다시 돌아오게 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가 프놈펜의 유일한 언덕이라는데 27미터 언덕 위 사원안은 향연기로 자욱하군요.

 

여행이란 벽을 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넓혀가는 특별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이 블로그를 만들고 일기를 올리면서 여기 사이버 공간 역시 또 하나의 여행이라 생각됩니다.

 

아이비 블로그에 오신 분들께 그동안 짧지만 여행에서 보고 느낀 기를 보내드립니다.아자~

저는 한국에서 점점 멀어지지만 느낌이란 거리와는 상관없는거 아니겠어요?

 

당신의 일상이 여행처럼 고이지 않고 가벼워지기를 2005년 새해에는 그렇게 만들어나가시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기를 보내드립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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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9 15:36 2005/02/09 15:36

2월 7일 저녁 버스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도착했습니다. 밤에 숙소를 구하는데 애를 먹었는데 어제는 현지사람들이 묵는 여관에 3불주고 하루 자고 오늘 8일 아침 옆 쪽의 여행자 거리의 숙소로 옮겼답니다. 3불짜리 욕실 없는 싱글인데 어제 보다는 아주 깨끗하고 라운지가 호수가라 아침 1.35불짜리 야체카레밥을 시키고 호수를 쳐다보며 밥을 먹었지요. 여기는 서울의 한 여름 가장 더울때의 땡볕 분위기라 낮에 걸어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군요. 며칠 머물고 앙크로와트 도시 씨엡립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앙크로와트는 내 머리속에 방을 만들어 그 인상을 작은 골목골목까지 세심하게 담아볼 생각입니다. 돌아가 다시 일을 하게되고 필시 스트레스를 받을때 슬며시 머리속의 그 방에 들어가서 둘러보다 나오면 또 힘이 생기겠지요. 당신은 이런방이 있습니까? 여기 중심지의 인터넷 바는 한 시간에 500원 정도입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이렇게 긴날동안 써보는 일기를 쓰렵니다. 내일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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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8 16:04 2005/02/0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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