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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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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23
    아직도 먼 길.
    레이-1
  2. 2004/09/22
    이럴때 더 살고 싶다. (9/24 수정함)(5)
    레이-1

아직도 먼 길.

* 이 글은 marishin님의 [2004-04-28>좌파 남성과 좌파 여성주의자]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좌파 남성들의 여성주의에 대한 평가(혹은 논의)는 내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내용이다.

 

그 내용(물론 내용도 문제일때가 있지만) 보다는 좌파 '남성'들의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김규항님과 델라님의 논쟁이 참세상 칼럼에 떴을때, 한참을 생각해보게 됐다.

 

 



 

누군가 내게 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쪽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제에 대한 비판은 분리되어야 한다.

 

박근혜는 여성이 아닐 수있다. 박근혜는 분명 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상화 될때, 여성들은 당연히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똑같이 주변화 되었던 경험들을 투영하여 사건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기'때문이다.

 

김규항님의 '슬픈 마초'라는 표현은 더 슬프다.

수백년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부차화 되고 사회화 되어온 여성들이 스스로의 능력과 자존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조차 발버둥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몇몇) 남성들은 알고 있지만, '사실'과 '실제'는 다르다. 웹에 글을 올릴때의 가슴 졸임과 두려움이 텍스트 결과물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 처럼.

 

(여기서 부터 거만*오만 모드)

 

좌파 남성들에게 여성주의자가 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여성주의에 대해 입다물고 있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운동들처럼 여성주의가 냉정하게 도마위에 올라 평가 받고 논의 되기에는 아직 여성운동은 해야할 것이 많고 갈길이 멀다. 주변에 있는 괜찮은 남성들과 소모적인 논쟁까지 벌여가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반보수, 반부르주아투쟁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분명 여성주의자들 중에서도 좌파 활동가들이 있다. '여성주의'를 좌파의 우산 아래 끌어들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아직도 '좌파'운동은 다른 운동에 비해 전혀 우세이지 않고 지지하는 자도 '한줌'에 지나지 않는데 여성주의는 왜 '좌파'에 동참해야 하는가?

 

여성주의가 '좌파'적 방식으로만 표현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한 출발선이 다른 좌파적 시각과 여성주의적 시각이 같은 수준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여성주의의 주체들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P.S :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다시는 이렇게 말도 안되는 얘기를 쓰고 싶지 않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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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때 더 살고 싶다. (9/24 수정함)

* 이 글은 미류님의 [평화로 가는게 쉽지 않네이..^^]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선배 하나랑 만날때 마다 하는 농담이 있다.

 

"야~ 너 이제 얼마 안남았어. 어떻게 죽을거야? 약? 칼? 밧줄?"
"형, 어떻게 하면 좀 덜 아프고 예쁘게(!) 성공할 수 있을지 연구좀 해봐~"

 

뭐, 사실 상당히 질 나쁜 농담이란걸 알고는 있다. 아픈 사람들한테는 얼마나 비수를 꽂는 말일까 싶으면서도.. 참 세상이 별로 살고 싶지 않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확~! 받는 날이면 저 농담이 얼마나 절실해지는지 모른다.

 

 



 

전범민중재판 발기인(기소인) 총회 날이었다.

 

나는, 정말 나와 상관없는 일에 감동받는 사람이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이라크 민중들은 물론 나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나야 워낙 '측은지심'따위를 키우는 사람이 아닌지라...

 

그런데, 그날 정말 '울컥' 눈물이 쏟아질뻔 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가 왜 활동을 지겨워 했는지 알았다고나 할까.

당위성이나 기본윤리, 예의, 정당함만으로 운동을 하는건 스스로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죄책감만을 가져다줬지만,

정말 즐거워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하겠다고 결정한다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살수 있을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흠. 지금 나가봐야 해서 말이 이래저래 꼬인다. 추후 덧붙이기로. ^^*)

 

어쨌든, 그날 내가 기소인 몇몇의 발표에 엄청나게 감동받았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랑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같은 생각으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는걸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여기서부터 수정한 글. 9/24)

 

그날, 그 감동과 행운을 발견하고 나서, 그 희망의 끝이 어딘지 보고 싶어졌다.

그런 일상(?)의 발견이 계속 된다면, 난 아마 계속 살고 싶어질 것 같다.

 

호기심 때문에 살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있다는 것'자체를 숨쉬듯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런 일상의 발견이 더 이상 '발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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