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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5/21
    글을 짓는다는 것 - 글 쓰기의 어려움.(2)
    레이-1
  2. 2007/05/16
    컵 사세요!(2)
    레이-1
  3. 2007/05/08
    Skin 변경 자축 및 감사 인사(4)
    레이-1
  4. 2007/05/05
    지루함.
    레이-1
  5. 2007/04/25
    표현의 맛.(5)
    레이-1
  6. 2007/04/18
    버지니아대학 총격사건, '총기'만 있고 '사건'은 없는(2)
    레이-1
  7. 2007/04/05
    나를 울린 어느 가정주부의 성명(5)
    레이-1
  8. 2007/04/03
    뭘 해야 할까.(2)
    레이-1
  9. 2007/03/27
    FTA를 반대한다는 것.
    레이-1
  10. 2007/03/21
    우리는 왜 타인들에게 편협한가.
    레이-1

글을 짓는다는 것 - 글 쓰기의 어려움.

'글을 짓는다'..는 말은, 적어도 내게는, 꽤나 엄숙하고 묵직한 느낌이다. '짓다'라는 동사를 쓰는 가장 흔한 경우는 '농사'일 것이다. '피땀흘려 지은 농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농사짓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글을 '짓는 것'도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작가들도 책을 내는 일을 출산의 고통에 비유하곤 하지 않는가. 기껏해야 회의문서나 성명서, 보도자료 등 기사형태의 사실전달을 위한 문서작업이 글 쓰기의 전부인 내가 글짓기에 대해 운운한다는 것이 어이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글짓기가 어떤 것인지는 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예전에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보면서 한 선배가 그의 통찰력에 대해 칭찬한 적이 있었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책 속의 한 문장을 언급하면서 그 문장에 드러난 무력/권력에 대한 속성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그의 문장을 칭찬했던 것 같다. 난 어렸을 때부터 외국소설(주로 영미권이지만)의 번역체에 길들여져서인지 한국작가들의 소설을 거의 안 읽기도 하지만, 선배의 말을 듣고나니 김훈의 책은 더더욱 읽고 싶지 않아졌다. 아마도 그 문장의 내용들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로인해 밀려올 나 자신의 초라함을 견디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히 다른 의사소통의 방법들(음악, 미술, 춤등 비언어적 방법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내가 가진 말과 글의 표현력이 일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게 꽤나 무서웠던 모양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이지만. 말이나 글이 갖는 일차적 목표는 결국 어떤 단어들을 적재 적소에 정확하게 배치하여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일차적 목표일 뿐이고, 사전적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문장을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화자/필자의 의도까지 정확하게 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령 '평화사진작가 이시우씨의 국보법반대 단식이 30일을 넘기고 있다'라는 문장과 '한 예술가이며 운동가인 이의 장엄함'이 다른 것 처럼 말이다.


'이것도 인권이에요?' - '당연하지!'라는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것은 글 '쓰기'가 아니라 글 '짓기'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없던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과학적인 과정을 통한 재창조인 것이다. 볍씨를 뿌려 벼를 거두는 농사처럼, 내가 알소있는 사실과 느낌을 종합하여 언어라는 비료를 통해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것. 달마다 닥쳐오는 마감에 어지러이 쫓기는 것만 생각하다보니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를 몰랐었다. 출산의 고통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통을 감내하면서 내 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것이다. 내 글에 대한 애정을 내가 쏟지 않으면 누가 쏟아주겠는가. 좀 더 열심히,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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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 사세요!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반대 서울대책회의에서 벌금마련 및 후원을 위해 평화머그컵(내 맘대로 네이밍 ㅋ)을 만들었습니다. 한 개 10,000원이구요. 가장 장점은, 모든 컵이 다 다른 모양(그림을 전부 수작업으로 했기 때문에 글씨고 그림이고 아주 쪼금씩은 다르다는거~)이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컵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 제 컵은 이런 상태입니다. 한 쪽에는 이런 글씨가 써 있습니다. (그러나 저 글씨는 제가 쓴게 아니라는거~ 단순히 주최측의 농간으로 이런 글귀가;; 자세한건 여기 치르님의 포스팅을 보삼 ㅋ) 또 다른 쪽에는 이런 그림도 있네요. 마이 사세요~ 저한테 연락하셔도 되고, 서울대책회의 명랑(공일육-칠공육-팔일공오)님께 전화주셔도 됩니다. 도와주세요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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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 변경 자축 및 감사 인사

스킨 바꿨다. 오른쪽 메뉴에서 소개글 밑에 조그맣게 달아놓았지만, 이 스킨은 달군님의 작품이다. 친히 하사해주셔서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포스트를 빌어 대신함을 용서해주시라. 깔끔해진 블로그를 보니, 내 마음도 정리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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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

삶이. 갑자기. 엄청나게 지루해졌다.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이 무거워 답답함에도. 천근만근 느껴지는 눈꺼풀을 힘들게 들어올려야 할 이유가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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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맛.

2007년 1월호 월간 [사람]에 글을 쓴 적이 있다. 대략의 내용은 소위 '편리함'이 그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는 얘기였고, 핸드폰 문자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 여사님의 사례와 ARS 접속의 어려움을 예로 들었었다. 그러다 오늘 이 글을 봤다. 딱 한 줄, "이것들이 전 국민을 프로게이머로 만드려고 하나." 쓰러졌다. ㅋㅎㅎ 나도 딱 저렇게 간결하게 핵심을 확 찔러봤으면 하는데 말이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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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대학 총격사건, '총기'만 있고 '사건'은 없는

지난 주엔가, 포털에 뜬 기사 중에 '한국인 8명 중 1명은 국제결혼'이라는 기사를 봤다. 대강 내용은 우리나라도 이제 다민족국가 사회로 접어든다.. 뭐 이런 거였다. 물론 그 기사가 나온 배경에는 사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따위의 국경을 초월한 성매매와 다름없는 조건부 결혼등의 상황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어쨌건간에 이렇게 '외국인' 배우자를 맞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민족'따위를 외치는 것이 얼마나 차별적인가. 하는 내용의 사설들도 몇 편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어제,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충격적 총격사건의 범인이 한국인 유학생인 것으로 최종적으로 밝혀졌다. 사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차이나타운 이제 곧 테러당하겠군', 한국인이라는 정정보도를 듣고 나서는 '한인타운 사람들은 이제 죽고 싶겠구나'라는 생각. 예전 94년이었던가? LA의 폭동을 떠올려보면 쉽게 연상할 수 있는 공식처럼 말이다. 평생 한 번도 자기 나라를 떠나본 적 없이 사는 사람이 외국을 나가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이게 통계나 수치로 나와있는지 어떤지는 모르니 묻지 마삼-_-)는 걸 생각해보면 타국에서의 상황이 얼마나 먼나라 얘기고 나와 상관없는 얘기처럼 느껴질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처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도 거의 없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간만에 지리 교과서에서 나올법한 말이 등장!) 이 쪼만한 한반도에서 사는 사람들이, '타국인', '외지인'에게 얼마나 배타적일지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타국민,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것은 우리뿐만은 아니다. 그러니까 LA 폭동도 일어나고 그렇겠지. 처음에 중국인이라는 보도가 나왔을 때는 미국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한 중국학생의 블로그가 악플로 테러당하기도 했다는 기사도 있긴 했다. 그러나 넷이라는 공간은 오프라인과는 달리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텍스트로만 전달할 수밖에 없는 한계때문에 악플이 훨씬 불거지게 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테러당한 그 분은 정말 안됐지만) 그런 정도는 지금도 늘상 드러나는 인터넷상의 부작용(아놔..왜 표현이 이러냐!)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미국 내의 분위기이다. 실제로 미국내에서는 범인의 국적이 공개되긴 했지만 그에 대한 전반적인 분위기는 특정 국가 출신의 아시아인에 대한 적대적 표현들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아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기도 하고..사실 아시아인들의 국적을 세밀하게 따지면서 사는 것은 아닐 수도 있으니. 정말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총격사건이 일어났느냐 하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가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폭력과 공포를 일상화하는 정치와 사회적 분위기가 오히려 저런 참사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주목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등장하는 흉기 살해사건 기사들과, 얼마전 FTA 협상 타결 후 한 농가에서 벌어졌던 총기 사건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우리도 그닥 '사고로 죽을 자유'에서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개인적 연원이건 아니건, 타인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심을 키우는 사회, 폭력을 용인하고 묵인하는 사회는 결국 그만큼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총격사건의 범인이 누구였고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그런 사건을 저질렀는지를 상세히 보도하는 내용을 보는 것 보다는 이런 평이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임 : 다음 아고라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랑 비슷한 글(난 이렇게 못 쓰겠더라)이 올라와서 링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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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린 어느 가정주부의 성명

다섯병님의 [[개인성명]협상단 및 문화관광부 관계자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에 관련된 글.

.... '어느 가정주부'라고 하기엔 너무 뻔한(?) 사람이라 좀 아쉽긴 하지만 (ㅋ) 완전 나를 울렸다. 상실감에서 벗어나서 한껏 비꼬아주며 투쟁해야지! 아자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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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야 할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속담이 이렇게 딱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솔직히, 계란으로 바위치기/바람앞에 촛불이라고 생각했다. 평택투쟁을 볼 때도 비슷했던것 같다. 그런데, 막상 협상이 체결되고 나니. 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망연자실한 채로 넋이 나간듯 지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뭘 하려고 해도 참..의미가 없는 듯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저것 열심히 다른 일들을 벌여보려고는 하는데.. 이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싶다. 그래도 살아가긴 하겠지. 그런데, 살아지는 것인지, 살아가는 것인지를 구분하기는 당분간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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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를 반대한다는 것.

Q. 당신에게 FTA는 무엇입니까? A. 모든 답변 앞에는 '사람을 죽이는데'가 들어감. 1. 정부가 앞장서서 하는 것. 2. 여러가지 방법을 쓰는 것. 3. 물 못 먹게 하는 고문하는 것(물 사유화). 4. 약 못 사먹게 하는 것(제약회사만 배불리기). 5. 때깔도 안나게 죽이는 것(광우병 소 먹었다가;;). 6. 길거리에 나앉게 해서 굶어 죽이는 것(NAFTA 체결 이후 노점상 급증, 빈민 급증). 7. 폭력을 쓰는 것(NAFTA에서는 국경을 넘다 죽은 사람들이 해마다 꾸준히 늘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집회에 나갔다가 방패(!!!)에 맞아죽는다.). 8. 병에 들게 하는 것(아토피 등의 환경병은 물론이고, 비싼 약값 때문에 치료 못받아서 죽을 가능성도 높다. 인도는 물 사유화 이후 빈민들이 깨끗한 물을 사먹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수인성 전염병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9. 지하실에서 넘어져서 죽게 만들 수도 있는 것(전력 사유화 되면 지하실에서 불 켜기도 무서울 듯 - 이거 진짜 괴담이다!). 10.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게 만드는 것(캐나다는 NAFTA 체결 이후 에틸사의 석유첨가제가 환경오염의 위험이 있어 규제했다가 제소당해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지불했다. 투자자-국가 소송 조항에 대한 사례로 자주 인용됨). 11. 일자리 찾다가 홧병나게 하는 것. 12. 이런거 쓰게 하면서 더 울화통 터지게 만드는 것!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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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타인들에게 편협한가.

비올님의 [내 상식으로는] 에 관련된 글.

* '타인들에게 편협한가.'라는 말이 문법상으로는 틀린 것 같은데, 그냥 저 단어를 꼭 쓰고 싶어서 그냥 둔다. 그러고 보면 언어라는건 참 무엇인가를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구나. 비리 교직원 새끼 하나의 목을 치면 나올 월급, 그 돼지들(돼지들아 미안!)의 판공비, 잔디깔고 벽돌깔며 떼 처먹은 더러운 돈. 그 돈은 결국 그들의 세련됨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외피에 처덕처덕 쳐 발라져 있겠지. 결국 지금의 사회에서 '돈 = 세련됨' 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게 아닌가 싶다. 오늘, 말 안듣는 핸드폰 때문에 전화를 한 통 걸었다. 기껏해야 아이들 학비를 걱정하며, 생활비를 걱정하며 하루종일 귀가 부르트도록, 잔뜩 달아오른 뜨거운 수화기를 귀에 대며 지겹도록 전화를 받았을 그녀들에게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불편을 겪고 있는 고객이 친히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는데 그녀들은 왜 내 말을 제대로 못알아 듣고 우왕좌왕 헤매고 있는거냐. 그녀들의 잘못이라면 그 따위 전화를 팔아먹는 기업의 잘못을 최전방에서 막아주고 있는 것일 뿐인데. 세련되지 못하고 내 말을 알아먹지 못하는 어리버리한 그녀들 때문에 하루종일 울화가 치밀다가, 문득 비올의 글을 보며 청소용역분들에게 구석지고 비좁아터진 휴게공간 하나 선심쓰듯 내밀며 '지저분하니 눈에 띄지 말아야지. 우리는 세련되고 깨끗한 공간을 원해'라고 생각했을 그 돼지들의 얼굴이 내 모습과 오버랩되어버렸다. 같이 싸우는 것과 내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 동화되는 것, 그리고 함께 하는 것. 정말 너무나 먼 길이구나 싶어 살짝 눈 앞이 아찔하다. 그래도, 세련된것 보다는 그 아줌마들의 인간미에 동화되고 싶은 작은 바램하나는 잃지 않겠다고 다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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