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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7/09
    야만.(2)
    레이-1
  2. 2006/07/07
    신체의 소리에 민감해지는 것.
    레이-1
  3. 2006/07/07
    배우자 50% 상속...?(12)
    레이-1
  4. 2006/06/29
    정치적 문제와 개인적 문제의 경계는?(14)
    레이-1
  5. 2006/06/28
    살아간다는 것 조차 투쟁인 세상(17)
    레이-1
  6. 2006/06/24
    응원과 광기의 사이에 대해 생각해보다.(4)
    레이-1
  7. 2006/06/21
    절망과 분노(5)
    레이-1
  8. 2006/06/15
    상념에 젖다 2.(6)
    레이-1
  9. 2006/06/13
    상념에 젖다.(5)
    레이-1
  10. 2006/06/12
    [책 광고] 침묵과 열광(2)
    레이-1

야만.

시와님의 [[긴급보도자료] 경찰 폭력규탄과 평화행진 보장] 에 관련된 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끔찍하고,

 

그 어떤 액션영화보다 폭력적이다.

 

징검다리로 행진단에 참가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저런 일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워낙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줄은 알았지만 정말 해도 너무한다.

 

분노해야 하는건지, 슬퍼해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 자세한 상황은 트랙백 된 글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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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소리에 민감해지는 것.

예전에 대체의학 비슷한걸 공부하던 선배가 말해준 것이 있다. 말버릇이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신체부분중 어디가 안 좋은지를 알 수 있단다.


고행이 갖는 장점은 신체를 혹사함으로서 얻는 고통때문에 생각의 가지를 쳐낼 수 있다는 부분일거다. 이틀간의 짧은 행진. 짧은 거리였지만 안락하고 나태한 생활 습관으로 얻은 무거운 몸뚱이는 이런 걷기 조차도 고행으로 느껴지게 했다. 여기저기 치인 발이 아프고, 다리는 부어서 욱신거리고, 자외선에 고스란히 노출된 피부가 따갑다고 비명을 질러대는 순간이다. 그런데 몸이 너무 무거워져서일까. 충분히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는데, 머리 속 가지들은 아직 다 말라붙은 잎사귀들까지도 놓지 않고 끈질기게 붙어있다. 내딛던 걸음마다 한 번씩 생각들을 되새김질했다. 발이 부어오를때 머리 속 실타래도 같이 엉켜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깨달았을 때, 화가 날 때, 암튼 소소한 외적 자극이 생길때 마다 머리를 움켜쥐는 버릇이 생겼다. 두 손으로 두개골을 움켜쥐는 것처럼. 또 언제부턴가 갑자기 짧은 비명을 내지를 만큼 아픈 두통도 생겼다. 길다란 바늘을 뇌 속에 쿡 찔렀다가 빼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고행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고, 내 신체중 가장 약한 곳이 머리라면, 내가 정말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더 한참을 고민하고 풀어야 하는걸까..생각해봤다. 어쩌면 최근의 내 고통은 고민하기를 회피하기 때문에 생긴걸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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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50% 상속...?

행인님의 [배우자에게 상속 50%가 진보적?] 에 관련된 글.

저 얘기가 나왔다는건 들었는데, 관련기사를 찾아서 읽지는 않았다. 다만 저 뉴스에 대한 인터넷에서의 황당한 반응들을 전해듣기는 했다. 뭐 대강 '여자들은 이제 앉아서 돈 벌겠군'하는 비아냥 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구역질 나는 반응들이었다. 그 반응 듣고난 내 반응도 뭐 별로 다르진 않았다. '그런 개새*들!!' 정도랄까. 근데 상속..이라는 말 참 기분이 나쁘더라. 결혼에도 관심없고 실물경제에도 관심없으며 법/제도라는건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도 잘 모르는 철없는 피터팬인 나같은 녀석이 생각하기에 '상속'이라는 말은 진짜 기분 나쁜 단어더란 말이다. 내가 아무리 철이 없어도, 결혼 생활이 '우린 사랑만 있으면 돼요~'라는 이슬만 퍼마시고 살 시츄에이션이 아니란 것쯤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년의 결혼생활 후 남는것이라는게 그 일생을 '재산'으로 환원하지 않는다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니. 그리고 그 환산된 것 조차 여성들에게는 인정해줄수 없다니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재산은 재산이고, 애정은 애정이고, 현실은 이슬과 사랑뿐만 아니라 밥도, 빵도, 외식도 원한다. 그렇다고 일생의 결혼생활의 결과를 '재산'으로 환산해서 '배우자 상속'이니 어쩌니..하는 꼴을 듣고 있자니 정말 정 떨어진다. 서로 지극히 신뢰한다면 법이 정해주지 않아도 재산과 애정을 잘 나눠가지면 될 것이고, 그냥 적당히 쿨하고 합리적이라면 일생동안 서로의 생각을 적당히 존중해주면서 합의를 하면 될 문제일텐데, 제 앞가림도 못하는 정부가 나서서 부부 재산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설치는 꼬락서니를 보자니 참 이것도 못할 짓이다 싶다.


사람들이 너무 질척거리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너무 모르고 있거나. ┐( ㅡ_-)┌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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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문제와 개인적 문제의 경계는?

레이님의 [살아간다는 것 조차 투쟁인 세상] 에 관련된 글.



우선 가슴 아프고 슬퍼해주신데 감사합니다. 아니, 사실 이런 일에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또 다른 분노를 느끼지만, 이건 멀리서님에 대한 문제도 아니고 저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단지 이런 분노를 느끼는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렇게 따로 포스트를 달게 된 것은 멀리서님이 쓰신 어휘에 대해 제가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왜 그런 거부감을 갖게 됐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저의 일방적인 생각이라거나 아니면 타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려는 태도라고는 생각지 말아주십시오. 멀리서님과 저, 그리고 슬픔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소통의 코드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해 생존자'가 아닙니다. 가해자입니다. 가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는 방식의 결과가 생물학적 죽음을 택한 것(제가 해석한게 맞다면)이었다는 점이 저를 더욱 분노케 합니다. 이것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피해생존자는 여전히도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안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인 한 개인에 대한 애도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느낀것은 가해자의 행동이 피해자에게, 그리고 이 사건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반성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제가 만약 가해자의 지인이었다면, 저도 역시 슬퍼했을 것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인간적 애정과 신뢰는 개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실수가 아닌 이상 갑자기 추락하게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멀리서님의 안타까움에 공감(100%는 아닐지라도)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가해자가 '가해 생존자'가 아닌 것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현실적 문제에서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해 생존자는 다릅니다.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현실을 되돌아보고 직시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는 '생존자'인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는 별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이건, 윤리적이건, 도덕적이건..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특히 도덕과 윤리의 문제는, 현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나 관습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일처제가 갖는 사회적 의미나, 아이가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 근친관계를 부정하는 것 등은 사실 우생학적 의미나 자본주의 혹은 가부장제를 존속시키기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운동 사회 전반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이론적인 사회주의의 내용들을 생활의 과정에서 체득하고 구현하기 보다는 자본주의적 생활 방식과 관념들을 그대로 둔채 이론적 부분에서만 차용하고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관념을 가진 주체들만을 조직화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제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처럼 성폭력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도 정치적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당사자들간의 문제로 치부되면서 정치적인 영역에서 논의되지 않아도 될 문제쯤으로 치부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이야기를 드러냈다는 점에 대해 저는 지지하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해자가 자신의 도덕적인 오점, 가해자 가족들이 가졌던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사회적 낙인에 대해 괴로워 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바가 아니지만, 결국 그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우리에게 던저진 윤리관념이고 도덕관념일 뿐입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운동을 위해서였다면, 그런 도덕/윤리적 관념에서 벗어나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먼저 되돌아보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차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분노했던 지점은, 가해자를 옹호하는 방식이 상당히 '정치적 고려'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성폭력 사건 자체는 '정치적이지 않은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가정폭력이나 아동폭력, 학교폭력등이 사회적인 문제로 인정되고 있는 반면에 왜 성폭력만큼은 당사자 개인들간의 문제이거나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는 걸까요? 위에 나열한 폭력의 문제 역시도 개인들간에 시작된 것들이긴 마찬가지 입니다. 정치적 문제와 개인의 문제를 나누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관계된 문제냐 아니냐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집을 거래하는 것도 개인간에 이루어지지만 이것은 공적인 부분으로 취급됩니다. 제게 '정치적'이라는 단어는, 제가 관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고려되는 문제입니다. 친구와 술을 마실때도 상대방의 정치적 상황들을 고려하며 말을 고르게 마련입니다. 왜 '성'적인 문제가 어떠한 정치적 조건들을 배제한 채 사적 개인들 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착각하게 되는걸까요? 그건 우리가 '자신의 소유에 대해 집착하는 이기적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부르주아식의 인간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성운동에서 종종 이야기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은,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면서도 이기적인 개인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집단이 가질 수 있는 정치적 폭력성에서 벗어나 자치(自治)를 행할 수 있는 개인들의 정치적인 능력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조직'이나 '집단'으로서의 정치적인 영역만으로는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생활양식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조직의 성원이자 집단에 속해있는 개인들이 스스로를 정치의 주체/혁명의 주체로 인식할때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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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 조차 투쟁인 세상

지랄공주님의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후 3년, 내 이야기 2] 에 관련된 글.

+ 이 글을 읽는 내 지인들에게 부탁. 당신들이 느끼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예의를 보여주세요. 트랙백도 좋고, 덧글도 좋습니다. 그냥 읽고 지나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죽어있다는 느낌으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에게도, 생존자에게도 당신들의 애정이 필요해요. 거부감도 아니었고,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생각하기가 싫었다. 무관심이라기 보다는 무심함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성폭력 사건이로군..'이라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이미 너무나 비일비재한 일이어서, 그런 사건을 전해듣거나 알게 될 때 느낄 비참함과 절망감, 패배감을 또 마주하기에는 아직 내 신경이 그리 무디지 못한 것도 있었다. 한 낮에 사무실에서 혼자 소리없이 울게 될 상황따위는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어버렸다. 아마도 혼자서 울어본 사람은 알고 있으리라. 그게 어떤 이유였던건 간에, 운다는 것은 그만큼 아프다는 것이다. 분노 때문이건, 슬픔 때문이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나 비참함, 타인에 대한 연민이거나 어줍잖은 동정심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운다'라는 행위의 공통점은 '아프다'는 것이다.


당신들이 울어봤던 상황들을. 똑같은 이유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분명 당신이 울었을때는 그만큼 아팠기 때문일거다. 존경하는 선배의 부음 소식을 들었을때도 나는 울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 조차 '그 상황과 성폭력 사건을 보고 우는 것은 다르다'며 나를 무시하거나 질책하는 인간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대체 '아프다'는 느낌이 어떻게 다를 수 있나. 가슴이 먹먹하고 머리는 멍해있고 이성으로 통제하기도 전에 몸이 반응하는 그 느낌의 공통점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나. 감성에 호소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다. '너 피해생존자 만큼 아파봤냐?'고 따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똑똑하고 잘난척 하지만, 그건 노력에 의한 것이지 인간의 본성적인 것은 아니다. 노력에 대해 칭찬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노력 이전에 사람 개개인은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말도 안되는 천부인권따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건 공산주의건간에 그 기반은 공동체 성원이 될 수 있는 '인간'들이 있어야 가능하고, 그 인간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기본적인 예의와 존중, 애정이 필요한 것이다. 나 역시 피해생존자이다. 나는 이 사건의 생존자만큼의 생존에 대한 의지가 없다. 몇 번 내가 생존자였다는 사실을 밝힌적이 있으나, 그 뿐이었다. 내가 생존했다는 것과 이번의 생존자가 말하는 생존의 개념은 다르다. 나는 풀이나 나무처럼 그냥 죽지 않았을 뿐이며, 그녀는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인간이다. 나는 아직 내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누구에게 분노를 느껴야 할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걸 되돌아보는 과정이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덤덤해지는 것이 내가 치유되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었다. 내가 지극히 정상인것 처럼 보여지고 '생존자'라는 딱지를 붙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아직 죽어있고, 얼마나 더 죽어있게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직도 삶에 대한 의지를 세울 수 있을지도 가늠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의 죽음에 대해 쉽게 슬퍼하고, 슬퍼해줄수 있다. 성폭력피해자(아직 부활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적 살인을 당한 사람이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슬퍼하고, 슬퍼해줘야 한다. 생물학적 죽음만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며 슬퍼하는 것은 동물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전적 의미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것이 고상한 행위인양 착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 무엇에 공감해야 할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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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과 광기의 사이에 대해 생각해보다.

어제(그러니까 6/23) 10시쯤 서대문에서 광화문 앞길을 가로질러 가는데..정말 너무 공포스러웠다.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의 물결..이 아니라 파도가 마구 밀어닥치는 것이다. 경기 시작이 6시간 정도나 남았는데도 벌써 광화문에는 자리 잡고 앉으려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이미 큰 전광판들이 몇 개 설치되어 있었고 레이저 쇼따위를 보여주면서 응원가들을 소리높여 틀어놓았다. 동행자와 같이 사람들을 헤치고 나오는 동안 나는 동행자와 멀어질까봐 계속 신경을 써야 했고, 너무 크게 울리는 응원가와 노점상들의 물건 파는 소리, 기타 소음들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거기를 빠져나와 미 대사관 뒷길로 들어섰을때야 겨우 한숨을 돌렸고, 살짝 소름이 끼치기까지 했다. 잠깐 있었던 술자리에서 그 얘기를 꺼냈더니, 누군가는 옛날 학생들이 우르르 뛰어나오는 시위를 했을때 일반 시민들이 느꼈던 기분이 그거랑 비슷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애들이 갑자기 쌩~하고 뛰어나가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게 뭐야. 당장 보기만 해도 무서운걸. 그 생각을 하니 우습기도 하고 참 한심하기도 했다.

 

 

스위스전이 어떤 결과였는지는 TV를 켜자마자 나오는 뉴스를 통해 알았다. '만취한 40대 스위스 대사관 폭파 협박'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_-; 아버지는 자신의 커뮤니티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느라 집에 안들어 오시고, 자식은 나와서 술 먹느라 집에 안들어 가는 날 어머니 혼자 TV를 보며 쓸쓸히 축구를 응원하고 있을것이라고 했던 술자리 동석자의 말이 갑자기 오버랩되기도 했다. 아마 대사관 폭파 협박을 했던 그 아저씨도 가정이 있겠지. 그리고 아마 16강 진출이 좌절된 이 상황에서 이제 아저씨는 가끔 스위스 얘기만 나오면 핏대를 올리겠지만 또 자신의 팍팍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악을 쓰고 살아야겠지..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지기도 했다.

 

 

응원하는 순간만큼은 서로 하나였을지 몰라도, 그 순간 사이사이 또 다른 차이를 느끼게 되기도 할거다. 누구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사업 아이템을 들고 거리 장사를 했을 것이고, 누구는 이때를 노려 연인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나왔을지도 모르며, 누구는 응원을 핑계삼아 집에 안들어가도 되는 시간을 만끽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을 가지고 대중의 심리를 하나로 파악해서 마케팅에 이용하는 기업들이 문제인지, 아니면 그걸 알고 있음에도 그냥 같이 부흥회 하듯 쓸려가는 것이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월드컵 4강에도 들었던 나라이니 우리나라 좋은나라'라며 응원이나 하고 보자..하는 것이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그 순간에 모인 사람들의 '응원'이라는 공통된 목적이 사실은 공통된 목적이 아닐 수도 있음을, 그리고 그 집단의 힘이 마치 나를 지지해줄 수 있을거라는 착각만큼은 위험할 것이다.

 

 

아저씨의 대사관 폭파 협박은 어린 아이들의 객기와 뭐가 다른가. 무리를 지어서 같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을 그대로 실현시켜줄 것이라는 착각은 그냥 착각이고 광기다.

 

 

아.. 참 내. 어이가 없어서 별 잡설을.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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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분노

불량공주동거인님의 [차별받는 언니들] 에 관련된 글이라기 보다는 그냥 생각나서;;

한 여성이 "결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퇴사했어"라고 말할 때와 "'결혼하면 당연히 퇴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라고 말할 때, 첫 번째에서는 절망감을 느끼고, 두 번째에서는 분노를 느낀다.


중매 시장. 뭐 흔히 하는 말로 돈 많고 명 짧은(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 하나 있다며 은근히 말을 건네시더니, 말은 은근했지만 그 뒤에 숨은 압력은 전혀 은근하지 않았다. -_- 안 나가겠다고 하면 친척들까지 다 동원할 기세였으니. (뭐..결국 귀찮아서 설득을 포기하신것 같지만) 내가 원래 좀 속물이라..전혀 유혹적이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다. orz 돈 많은 배우자 만나 세상일 나몰라라 하고 살겠다면 욕이야 좀 먹겠지만 뭐 힘든 일도 아니고...라고 생각했었다는 의미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힘들겠더라. -_ㅜ) 나도 순간 등따시고 배부르게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지만, 은근한 척 압력을 넣었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나보다. 나를 뒤에 업고 좀 따뜻하게 살아보고 싶으신 욕심 같은 것 말이다. 뭐. 욕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씁쓸한건 어쩔 수 없다. 언제부턴가 식탁에 내 자리가 없어졌고 언제부턴가 가족 대소사에 내가 함께하지 않게되면서 나는 명목상의 가족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터질때는 갑자기 가족의 존재를 새삼 느끼게 된다. 또 뭔가 딴 소리로 샜네;; 뭘 해도 남성이 디폴트값으로 설정되어 있는 사회에서 표준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때 참 열받고 분노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조건이라는데 더 절망하게 된다. 절망보다는 분노가 낫다. 차라리 분노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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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에 젖다 2.

레이님의 [상념에 젖다.] 에 관련된 글.

* The Smashing Pumpkins의 공식 Live 모음 앨범 "Earphoria" ([weiv]의 album review를 보시려면.)
왜 The Smashing Pumpkins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처음 "Tonight, Tonight"의 뮤직비디오를 접했을 때 빌리의 박박 밀어버린 머리가 인상적이었던것 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후 2000년 어느 잡지에선가 앨범이 나온다는 말에 그냥 '듣고 싶다'고 생각해서 앨범을 산 것이 전부였다. "Machina : The Machines of God" 이라는 특이한 앨범 제목(다 알죠? 나 기계 매니아인거 ㅋ) 때문이었을까. 그 해 여름, 처음이자 마지막인 내한공연에 못 가게 되었을때 쯤에는 아마 거의 반쯤은 화가나서 미쳐있었던것 같다. 같은 해, 해체한다는 발표를 하고 사상 최초의 온라인 음반 "Machina II: The Friends And Enemies Of Modern Music" 배포(*맨 아래 덧붙임 글 참조)를 통해 마지막 정규앨범을 내던지듯이 낸 후에는 그들의 싱글 음반을 찾아다녔다. 저 음반이 나온걸 안지는 꽤 되었는데, 대부분 지겹게(?) 들었던 곡들이라 사는걸 유보하고 있었다. 오늘 다른 음반을 살까 하고 들렀다가 앨범 한 장이 겨우 버티고 있는것 같아 보여서 그냥 샀다. 그리고 [weiv]의 리뷰를 보니 갑자기 이 밴드의 음악이 더욱 듣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왜 이 밴드를 좋아하게 됐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생각나는건 어떤 특정한 기억들이 아니다. 그냥 이 밴드에 미쳐있었던 그 때의 내 모습들이 조각조각 흩어져있을 뿐이다. 특별히 어떤 상황이 기억에 남지도 않고, 관련된 특정한 [본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90년대 초반의 공연 실황 음반을 들으면서 이들을 알지 못했던 때를 떠올려보고, 내 과거를 떠올리면서, 이 음악에 미쳐있는동안 내게도 뭔가 가지고 싶었던게 있었던걸까....하고 생각해봤다. 예전 음반들을 계속 되돌려 들을때마다 나는. 갖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걸까, 갖고 싶은것이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걸까. * 덧붙임 : 음반을 발매하지 않고 온라인에서만 음악 파일을 무료로 배포했다.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한 사례인 셈. 뭐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상업적인 밴드가 아니라는건 절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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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에 젖다.

MP3 Player 없이 하루를 지낸다는 것은 내게는 정말 고역이다. 일상에서의 소음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아는 사람들은 내 말을 이해할 듯. 예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중학교 입학 선물로 워크맨을 선물받은 이후로는 등/하교, 야자시간, 출퇴근시간 따위의 혼자 있는 시간은 120% 늘 이어폰을 꽂고 다녔었다. (덕택에 청력이 상해 음향시설이 좋지 않은 극장에서 한국영화 보는 것은 거의 불가;;; 대사가 안들려!) 가사 따위는 이미 무시한 지 오래고, 가수의 음성과 멜로디에만 의지해 음악을 들어왔다. 한때는 마이클 잭슨에 빠져있었고, 고3때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왔던 'American Top40의 곡들을 모조로 녹음해서 들었으며, Smashing Pumpkins의 정규 앨범 전 음반은 음반 순서대로 전 곡 순서를 그대로 외운 나머지 마치 모든 곡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착각까지 할 정도로 들었고, Keith Jarrett의 Koln Concert 실황 음반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는데다 Gun's N Roses의 Estraged는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돌고래 꿈을 꿀 정도로 반복해서 들었다. Roy Buchanun의 The Messiah will come again은 들을 때 마다 내가 기타를 치고 있다는 환상(아... 대체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orz)까지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 이 두 곡에 빠져있다. (아래 곡 듣기 클릭!) 나른한 목소리와 나른한 멜로디가 좋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은, 곡을 들으면서 곡에 몰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 동동이가 포스트에 썼던 만화 '쿨핫'의 대사와 정도는 다르지만, 언제 어디서 들어도 그 당시의 상황을 떠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좋다. 그래서 잠깐 이런 저런 생각에 젖었다.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기에 쓰는 동안 다 잊었다. -_-; 그래도 가끔 이렇게 편안하게 뭔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건 참 좋은 일이다. + 만화 [쿨핫]의 대사 다 그렇겠지만- 특히 노래같은 건, 그렇다. 처음 들었을 때의 주변 상황이 강한 이미지로 남은 경우- 나중에도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저절로 그 처음 순간이 생각나버리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들을 원하지만 원하는 것을 직접 손에 쥘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대신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연관물]들을 원하게 되고... 상인들은 돈을 번다. 그런 걸 가져 봤자, 사실 그것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도- [본체]와 어설프게나마 연관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못내 사랑스럽고 탐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라디오에는 추억의 노래를 신청하는 엽서가 끊이지 않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를 넓힌다.


Lasse Lindh, C'mon Through
Fiona Apple, Across the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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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 침묵과 열광


 

 

침묵과 열광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 강양구, 김병수, 한재각 / 후마니타스

* 책의 자세한 소개는 이 곳에서.

 

저자 3인과 한 때 꽤 잘 놀았던 적이 있었다. 무척 까마득한 얘기처럼 느껴진다. 특히, 저 생뚱맞은 꽃분홍색 표지만큼이나 자극적이면서도 맘에 착 달라붙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들을 열정적으로 끊임없이 해 댈 그 세 사람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맘에 달라붙지 않는다는건 그들이 SF운동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걸 SF운동이라 명명하는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년(그 이상)을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매달린 저 사람들을 나는 항상 존경하고 또 존경한다.

 

직접 들어본 적은 없지만 간간히 섞여 나오는 말 속에서 책을 낼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다만 내가 진짜 놀라운 것은, 저 끔직하고 지겹고 짜증나고 어려웠던 일들을 되짚어가며 책으로 만들어 낼 생각을 했다는 것 그 자체다. 만약 좀 더 일찍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술자리에서라도 농담삼아 '그 일을 되 돌아 보고 싶어? 그렇게 자학하고 싶어?'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ㅎㅎ

 

오늘이 출간일이라 나는 아직 읽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에 관심이 있는 혹은 있었던 분들이라면 일독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만큼 이 문제에 대해 꾸준히 싸우고 모니터링 했던 사람들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

 

 

 



할 말이 참 많기도 하고 정말 할 말이 없기도 하다. 내가 같이 놀았던 때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간에 있었던 사건 사고들은 너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몇 번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으며 싫증을 내고 던져버리기도 했다. 그걸 생각해보니 참 저 사람들, 성격 진짜 특이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ㅎㅎ

 

책이 나왔다.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오늘이 출간일이라고 되어 있어서 며칠을 기다렸다. 얼른 책을 들고 저 사람들을 만나서 저자 싸인을 받아두고 싶다. 가보까지는 아니더라도 두고두고 내 자랑거리로 삼고 싶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자랑에 시샘을 덧 붙이겠지. 그리고 질투하며 말하겠지. '얘네는 성격이 정말 이상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이런 짓을 하는거라고!' ㅎㅎ

 

기다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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